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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교교육 연구원(IMER)

오늘의 말씀 2019년 2월 7일(목) 본문

성경공부, 설교/말씀묵상(QT)자료

오늘의 말씀 2019년 2월 7일(목)

후앙리 2019. 2. 6. 23:19

10 그러나 인자가 땅에서 죄를 사하는 권세가 있는 줄을 너희로 알게 하려 하노라 하시고 중풍병자에게 말씀하시되

11 내가 네게 이르노니 일어나 네 상을 가지고 집으로 가라 하시니

12 그가 일어나 곧 상을 가지고 모든 사람 앞에서 나가거늘 그들이 다 놀라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며 이르되 우리가 이런 일을 도무지 보지 못하였다 하더라(2)

 

+ 말씀설명

예수님께서 가버나움에 가셨을 때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께 왔다. 한 중풍병자도 예수님을 보러 왔다. 그런데 사람이 많아 들어갈 수가 없었다. 그래서 그의 친구들이 그를 메고 지붕으로 올라가 구멍을 내어 중풍 병자가 누운 상을 집 안에 있는 예수님께로 내렸다.

 

어려운 중에 누가 지붕에 올라갈 발상을 하겠는가? 감히 상상도 못할 일이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아마도 포기했을 것이다. 우리들도 마찬가지로 앞뒤 사방이 다 막혔다고 생각할 때가 있다. 그러나 분명히 어디엔가 길이 있다. 그 길은 하나님께 나아가는 길이다. 믿음으로 나아가는 길이 해결의 길이다.

 

그 중풍 병자를 보시고 예수님은 동시에 그의 마음의 믿음을 보셨다. 믿음으로 나아오는 자의 마음을 보신 것이다.

 

오늘날도 예수님은 우리의 행동만이 아니라 우리들의 마음을 보신다. 마음의 동기와 믿음을 보신다. 믿음은 보이지 않는 것이 아니라 실제로 볼 수 있는 것이다. 믿음은 눈으로 보이지 않으나 실제로 존재하는 실상이다. 믿음을 보이는 실상처럼 생각하는가?

 

예수님은 그 믿음을 보시고 먼저 그의 죄를 용서해 주셨다. 모든 인간의 고통과 불행의 근원은 죄이기에 근본적인 부분을 치유해주셨다. 그리고 그의 몸의 병을 고쳐주셨다. 서기관들은 하나님만이 죄를 용서하실 수 있는데 예수님이 죄를 용서하신 것에 대해 불만을 품었지만 이 사건을 통해 예수님은 자신이 하나님이신 것과 하나님의 능력을 보여주신 것이다. 이처럼 예수님만이 인생의 근원적인 죄와 그로 인한 육신의 많은 고통을 치유해주시는 분이시다. 인생의 고통이 있는가? 예수님께 나아가는 것만이 해결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이다.

 

+ 묵상과 적용

나는 사방이 꽉 막힌 것 같은 어려움을 당한 적이 있는가? 그 순간에도 길이 있다고 생각한 적이 있는가? 그 길이 바로 믿음의 길인 것을 인정하고 믿음으로 해결하고자 했던가?

오늘 당하는 어려움이 있다면 믿음의 길로 가야 할 부분은 무엇이 있는가?

지금 어려운 점이 있다면 마음까지 보시는 하나님께 가지고 나아가지 않겠는가?

 

+ 육신과 죄의 문제

가톨릭에서는 고백성사라는 의식이 있다. 신부 앞에서 자신의 죄를 고백하는 것이다. 성경에는 서로 죄를 고하며 하나님께 기도하라는 말씀이 있다(5:16). 우리는 서로 죄를 고백할 수는 있다. 그러나 죄를 사하는 권세가 인간에게는 없다. 가톨릭에서는 교황이 죄를 사하는 권세가 있는 것처럼 말한다. 만약 그들이 그렇게 믿는다면 예수님 당시에 서기관들이 예수님을 향하여 품었던 의심만도 못한 행위이다. 서기관들은 하나님만이 죄를 사하는 권세가 있는 것으로 믿었다. 그런데 예수님이 중풍병자의 죄를 사하는 것을 보고 서기관들은 마음에 의심을 품었던 것이다. 서기관들의 관점은 맞았다. 사람이 죄를 용서할 수 없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예수님은 사람이 아니었던 것이다. 물론 사람이셨지만 하나님이셨다. 예수님은 하나님이셨기에 중풍 병자를 보시고 먼저 중풍병의 근원인 죄를 용서해주신 것이다. 예수님에게는 육신의 병이 그럴게 중요한 것은 아니었다. 죄만 용서함 받는다면 육신의 연약함은 별 문제가 되지 않기 때문이다. 병을 고치시는 것은 죄를 용서하시는 것과 비교할 때 예수님 입장에서는 아무것도 아니었던 것이다. 사람들은 병을 고치는 것이 더 중요했지만 예수님은 그가 죄를 용서받는 것이 더 중요했다. 물론 예수님은 병자의 육신의 병도 고쳐주셨다.

인간에게는 육신이 중요하다. 건강도 중요하고 물질()도 중요하다. 출세와 성공도 중요하다. 인간은 근본적인 문제보다는 눈으로 보이는 현실에 더 얽매여 살아 갈 수밖에 없는 존재이다. 그것도 필요하다. 그러나 그것은 근본적인 문제가 아니다. 근본적인 문제는 죄의 문제다. 죄의 문제가 해결되면 다 해결된다. 그러므로 죄의 문제에 좀 더 집중해야 할 필요가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예수님은 육신의 문제도 간과하지 않으셨다. 육신의 문제까지도 해결해주셨다. 육신의 문제를 해결해주심으로 인간이 죄의 문제까지 이르기를 원하신 것이다.

우리는 어떤 육신의 문제가 있는가? 우리 모두 육신의 문제로 주님께 나아갔으면 좋겠다. 그리고 죄의 문제까지 이르렀으면 좋겠다. 모든 육신의 문제와 함께 근본적인 죄의 문제까지 주님으로 인해 해결 받았으면 좋겠다. 오늘도 주님께 육신의 문제와 죄의 문제를 해결 받는 날이 되도록 중풍 병자처럼 믿음으로 주님께 나아가기를 원합니다.

 

+ 본문 말씀(2)

1 수 일 후에 예수께서 다시 가버나움에 들어가시니 집에 계시다는 소문이 들린지라

2 많은 사람이 모여서 문 앞까지도 들어설 자리가 없게 되었는데 예수께서 그들에게 도를 말씀하시더니

3 사람들이 한 중풍병자를 네 사람에게 메워 가지고 예수께로 올새

4 무리들 때문에 예수께 데려갈 수 없으므로 그 계신 곳의 지붕을 뜯어 구멍을 내고 중풍병자가 누운 상을 달아 내리니

5 예수께서 그들의 믿음을 보시고 중풍병자에게 이르시되 작은 자야 네 죄 사함을 받았느니라 하시니

6 어떤 서기관들이 거기 앉아서 마음에 생각하기를

7 이 사람이 어찌 이렇게 말하는가 신성모독이로다 오직 하나님 한 분 외에는 누가 능히 죄를 사하겠느냐

8 그들이 속으로 이렇게 생각하는 줄을 예수께서 곧 1)중심에 아시고 이르시되 어찌하여 이것을 마음에 생각하느냐

9 중풍병자에게 네 죄 사함을 받았느니라 하는 말과 일어나 네 상을 가지고 걸어가라 하는 말 중에서 어느 것이 쉽겠느냐

10 그러나 인자가 땅에서 죄를 사하는 권세가 있는 줄을 너희로 알게 하려 하노라 하시고 중풍병자에게 말씀하시되

11 내가 네게 이르노니 일어나 네 상을 가지고 집으로 가라 하시니

12 그가 일어나 곧 상을 가지고 모든 사람 앞에서 나가거늘 그들이 다 놀라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며 이르되 우리가 이런 일을 도무지 보지 못하였다 하더라

* "날마다 솟는 샘물"QT지 본문을 참고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