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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교교육 연구원(IMER)

오늘의 말씀 2024년 2월 17일(토) 본문

성경공부, 설교/말씀묵상(QT)자료

오늘의 말씀 2024년 2월 17일(토)

후앙리 2024. 2. 17. 05:02

36 귀신 들렸던 자가 어떻게 구원 받았는지를 본 자들이 그들에게 이르매

37 거라사인의 땅 근방 모든 백성이 크게 두려워하여 예수께 떠나가시기를 구하더라(8)

 

+ 말씀 설명

예수님께서 거라사 지방에서 귀신 들린 자를 고쳐주셨다. 귀신 들린 자를 고치시며 귀신을 제압하시는 영적 세계의 주관자이심을 보여주셨다. 귀신 들린 자의 입장에서는 고침을 받은 것이 얼마나 감사한 일인가. 생명을 다시 얻은 놀라운 은혜를 입은 것이다. 그 사람은 당연히 생명을 주신 예수님을 따르기를 원했다.

한편, 이 사실을 안 사람들은 귀신 들렸다가 고침을 받은 사람과는 정반대의 반응을 보였다. 곧 예수님을 그 마을에서 떠나라고 한 것이다. 왜냐하면 예수님이 귀신을 쫓아내시면서 그 귀신들이 돼지 떼에게 들어갔고 돼지들이 죽게 되었다. 손해를 본 사람들은 예수님이 또 다른 손해를 입힐까봐 떠나달라고 한 것이다.

세상을 지배하시는 왕 중의 왕인 예수님에 대해 자신의 재물의 유익 때문에 거부하는 사람들의 모습을 볼 수 있다. 그러나 예수님은 오늘날도 여전히 생명을 주시는 분이시고, 사람들은 예수님을 하나님으로, 이 세상의 왕으로 받아들여야만 한다.

 

+ 묵상과 적용

내가 예수님을 따르는 이유가 사적인 유익 때문은 아닌가?

사적인 유익을 내려놓고 온전히 주님을 따를 때 손해라고 감수해야 할 것은 어떤 것이 있는가?

 

+ 선교적 실천

우리 교회가 생명을 살리는 일을 적극적으로 잘하고 있다고 생각하는가? 어떤 일을 더 많이 함으로 생명 구하는 일에 동참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가?

 

+ 오늘의 기도

1. 모든 것의 주관자이신 하나님을 내 삶에 모시고 그분의 능력을 내 능력으로 삼는 삶을 살게 하소서.

2. 이스라엘-하마스 간 전쟁이 장기전으로 이어지지 않고 하루속히 휴전과 종전이 선포되고, 더 이상 어린이를 비롯한 무고한 생명들이 희생되지 않도록

 

+ 성경 본문(8)

26 그들이 갈릴리 맞은편 거라사인의 땅에 이르러

27 예수께서 육지에 내리시매 그 도시 사람으로서 귀신 들린 자 하나가 예수를 만나니 그 사람은 오래 옷을 입지 아니하며 집에 거하지도 아니하고 무덤 사이에 거하는 자라

28 예수를 보고 부르짖으며 그 앞에 엎드려 큰 소리로 불러 이르되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의 아들 예수여 당신이 나와 무슨 상관이 있나이까 당신께 구하노니 나를 괴롭게 하지 마옵소서 하니

29 이는 예수께서 이미 더러운 귀신을 명하사 그 사람에게서 나오라 하셨음이라(귀신이 가끔 그 사람을 붙잡으므로 그를 쇠사슬과 고랑에 매어 지켰으되 그 맨 것을 끊고 귀신에게 몰려 광야로 나갔더라)

30 예수께서 네 이름이 무엇이냐 물으신즉 이르되 군대라 하니 이는 많은 귀신이 들렸음이라

31 무저갱으로 들어가라 하지 마시기를 간구하더니

32 마침 그곳에 많은 돼지 떼가 산에서 먹고 있는지라 귀신들이 그 돼지에게로 들어가게 허락하심을 간구하니 이에 허락하시니

33 귀신들이 그 사람에게서 나와 돼지에게로 들어가니 그 떼가 비탈로 내리달아 호수에 들어가 몰사하거늘

34 치던 자들이 그 이루어진 일을 보고 도망하여 성내와 마을에 알리니

35 사람들이 그 이루어진 일을 보러 나와서 예수께 이르러 귀신 나간 사람이 옷을 입고 정신이 온전하여 예수의 발치에 앉아 있는 것을 보고 두려워하거늘

36 귀신 들렸던 자가 어떻게 구원 받았는지를 본 자들이 그들에게 이르매

37 거라사인의 땅 근방 모든 백성이 크게 두려워하여 예수께 떠나가시기를 구하더라 예수께서 배에 올라 돌아가실새

38 귀신 나간 사람이 함께 있기를 구하였으나 예수께서 그를 보내시며 이르시되

39 집으로 돌아가 하나님이 네게 어떻게 큰일을 행하셨는지를 말하라 하시니 그가 가서 예수께서 자기에게 어떻게 큰일을 행하셨는지를 온 성내에 전파하니라

 

+ 상대와 나를 이성적으로 분리해야 한다?

오늘 한 사람에게 전화를 받았다. 지금 하고 있는 일을 상의하기 위해 그 분이 전화를 하였다. 그런데 내 마음이 약간 불편하게 하는 말투로 전화를 하였다. 나는 나를 무시하는 태도 같아서 한동안 마음이 무거웠다.

감정이 조금 불쾌했기에 잠깐 그 전화 통화에 대한 생각을 하게 되었다. 그러다가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이 전화의 내용은 나를 불편하게 하였지만, 사실은 나를 무시한 것이 아니라 그분의 문제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었다. 그 사람은 나를 잘 알지 못하고 그 일과 관련된 상황을 잘 모르는데 자기의 입장에서 그냥 말을 한 것이다. 이 말에 내 감정이 불편했는데, 결국 이분은 나를 무시해서가 아니라 그분의 문제여서 이렇게 말한 것이라는 사실이다. 나는 그분을 조금은 알고 있다. 그분이라면 충분히 그렇게 내게 말할 수 있는 분이라는 것을 나는 이전부터 알고 있었던 것이다. 만약 입장을 바꾸어서 내가 그 사람이었다면 내게 그렇게 말을 했겠는냐는 것이다. 나는 분명히 그렇게 말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래서 나는 이 문제로 기분이 상할 필요가 없다는 결론을 맺게 되었다. 내가 문제가 있어서가 아니라 그분의 문제 때문에 내 마음이 상했는데 그럴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우리는 살면서 대부분 다른 사람의 말 때문에 상처를 받는다. 그런데 그 상대의 말과 나와는 상관없을 때가 있다. 그리고 본질적으로 상대의 말이 문제이지 나의 존재성은 변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사람들이 하는 실수나 잘못된 말로 인해 나의 감정을 기분 나쁘게 방치할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문제는 내가 아니라 상대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상대의 문제를 내 문제로 끌어 들여와서는 안 된다. 상대의 문제 때문에 내 감정을 상하게 할 필요가 없다. 그런 면에서 상처나 아픔과 불쾌한 감정을 가지게 되었을 때, 정말 내 문제인가, 아니면 상대의 문제인가를 구분하여 생각할 필요가 있다. 이런 감정적인 소모를 이성적으로 해결할 때 어두운 감정을 이길 수 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