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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교교육 연구원(IMER)

오늘의 말씀 2024년 4월 13일(토) 본문

성경공부, 설교/말씀묵상(QT)자료

오늘의 말씀 2024년 4월 13일(토)

후앙리 2024. 4. 12. 23:29

17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열 사람이 다 깨끗함을 받지 아니하였느냐 그 아홉은 어디 있느냐

18 이 이방인 외에는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러 돌아온 자가 없느냐 하시고

19 그에게 이르시되 일어나 가라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느니라 하시더라(17)

 

+ 말씀 설명

예수님께서 열 명의 문둥병자의 병을 고쳐 주셨다. 제사장에게 가서 몸을 보이고 병이 나은 것을 확인하라고 하였다. 제사장이 확인하여야만 사람들과 함께 공동체 안에서 살 수 있기 때문이었다. 확인을 받은 문둥병자 중에 사마리아인 한 사람만 돌아와서 예수님께 감사의 인사를 하였다. 예수님은 열 사람을 고쳤는데 아홉 사람은 어디 있느냐고 말씀하시면서 돌아와 감사한 사마리아인에게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다고 하셨다. 이는 다른 아홉은 육신의 나음만 입었지만 한 사람은 예수님께 돌아옴으로 인해 믿음으로 영혼의 구원을 받았다고 말씀하신 것이다. 그러므로 감사가 믿음이 되었고 그 믿음이 이 사람의 영혼을 구원해준 것이 되었다. 예수님께 감사하는 사람이 구원받은 사람으로서 해야 하는 마땅한 행위인 것이다.

 

+ 묵상과 적용

나는 예수님께 늘 감사하는가?

감사치 못한다면 아홉 명의 문둥병자처럼 구원을 받지 못한 것 때문은 아닌가?

 

+ 선교적 실천

하나님의 구원의 은혜를 전파하기 위해 우리 교회 공동체가 주변 이웃에게 해야 하는 적극적인 일은 어떤 것이 있는가?

 

+ 오늘의 기도

1. 하나님의 말씀에 반응하고 감사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하소서.

2. 나이지리아 정부 당국이 실질적인 보안 강화 조치를 통해 자국민의 안전을 보장해 나가고, 나이지리아 기독교인들은 폭력과 선동으로 대응하지 않고 그리스도의 사랑으로 인내하며 무슬림들을 포용할 수 있도록

 

+ 성경 본문(17)

11 예수께서 예루살렘으로 가실 때에 사마리아와 갈릴리 사이로 지나가시다가

12 한 마을에 들어가시니 나병환자 열 명이 예수를 만나 멀리 서서

13 소리를 높여 이르되 예수 선생님이여 우리를 불쌍히 여기소서 하거늘

14 보시고 이르시되 가서 제사장들에게 너희 몸을 보이라 하셨더니 그들이 가다가 깨끗함을 받은지라

15 그 중의 한 사람이 자기가 나은 것을 보고 큰 소리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며 돌아와

16 예수의 발 아래에 엎드리어 감사하니 그는 사마리아 사람이라

17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열 사람이 다 깨끗함을 받지 아니하였느냐 그 아홉은 어디 있느냐

18 이 이방인 외에는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러 돌아온 자가 없느냐 하시고

19 그에게 이르시되 일어나 가라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느니라 하시더라

 

+ 구원과 감사

열 명의 문둥병자 중에 한 사람인 사마리아 사람은 예수님께 돌아와 감사를 표시하였다. 그 감사의 표시가 바로 믿음의 행위였다. 그런 면에서 성경에서 범사에 감사하라는 것은 믿음의 행위인 것이다. 만약 감사치 못하면 믿음의 행위가 아닌 것이다. 감사치 못한 사람은 믿음의 행위를 보이지 않는 것이다. 즉 아홉 명의 문둥병자처럼 믿음이 없는 것이다.

구원 받은 사람은 구원보다 더 귀한 것이 없기에 감사를 해야 한다. 감사는 당연한 것이다. 아무리 큰 어려움이 있더라도 구원이 그 크기가 비교할 수 없이 크다. 그러기에 구원의 크기와 영광 때문에 어려움 앞에서도 감사해야 한다. 만약 감사치 못한다면 구원을 경히 여기는 것이 된다. 어려움의 크기보다 더 적은 것이 구원이 되는 것이다.

우리는 세상의 일 때문에 실망한다. 실망할 수 있다. 실망해야만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의 기준은 구원에 있다. 그러기에 실망 앞에서도 감사해야 한다.

심지어 죽어도 감사할 수 있다. 구원받은 사람은 영원한 천국에 이르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죽음 앞에 슬퍼하지 말라는 말이 아니다. 슬퍼할 수 있다. 인간은 감정을 가지고 있기에 슬퍼해야만 한다. 그러나 또 한편으로 감사해야 한다. 사랑하는 사람이 죽었을 때, 슬퍼하면서도 다시 만날 소망을 가지라는 것이다. 그것이 슬픔을 이길 수 있는 하나의 방법이기 때문이기도 하다.

오늘도 불평해야만 하는 상황에서 감사를 할 수 있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그것은 우리가 구원받았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