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리 메뉴

선교교육 연구원(IMER)

제 3장 선교사 리더십 계발 본문

선교자료, 이슈, 연구/선교전략과 선교단체

제 3장 선교사 리더십 계발

후앙리 2020. 4. 21. 19:43

 

선교단체의 연구 개발원에서 선교동향과 선교전략을 구상하기 위해서는 연구위원(연구자)이라 할 수 있는 선교사 개인이 연구 역량을 키워야 한다. 연구 개발원 본부에서 일하는 사람은 연구 개발원의 한 위원일 뿐 진정한 연구위원은 선교현장에 있는 선교사들이다. 그러므로 현장 선교사들이 선교 연구를 하기 위해서는 연구할 수 있는 능력을 키워야 한다.

아울러 선교사 리더는 누가 키워주기 전에 스스로 만들어 가야 한다. 스스로 자기 계발을 해 나갈 때 리더가 될 수 있다. 리더가 되기 위해서는 다른 사람의 도움을 받을 수도 있지만 스스로 노력하지 않고는 리더가 되기 어려울 뿐만 아니라 조직의 리더가 되어서도 리더의 역할을 하기 힘들다. 선교 전략을 연구하고 선교사 리더로 자라가기 위해 자기 계발 차원에서 필수적으로 해야 할 작업이 책 읽기와 글쓰기다. 선교사의 책 읽기와 글쓰기는 연구자와 리더가 되는 기본 사항이다.

1. 선교사 책 읽기

선교사는 책을 얼마나 읽을까? 일반 성도, 혹은 목회자보다 책을 더 읽을까? 필자는 선교사라서 책을 더 많이 읽거나 더 적게 읽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사람에 따라 다르지만 원래 책을 잘 읽은 사람은 선교사로 나가서도 책을 많이 읽을 것이고 그렇지 않은 사람은 정반대일 것이다.

그러면 선교사가 책을 읽는 환경은 어떠한가? 선교사는 자신이 시간을 관리할 수 있기에 책을 읽고자 한다면 마음대로 읽을 수 있다. 그러나 선교사가 재정적으로 넉넉하지 않고 지리적으로 쉽게 사 볼 수 있는 곳이 아니기에 책을 많이 소유하거나 접하는 것은 한국에 있는 사람들보다 불리하다. 물론 선교사가 책을 읽고자 한다면 요즈음은 전자책으로 얼마든지 구입하여 읽을 수 있으며, 후원자들에게 요청할 수도 있다. 선교사들이 책을 구하는 것이 쉽지는 않지만 읽고자 한다면 책이 부족해서 못 읽는 것은 아니다. 먼저 선교사가 책을 읽어야 하는 이유를 찾아보고자 한다.

 

1) 선교사가 책을 읽어야 하는 이유

선교사는 가르치는 자이다. 성경을 가르칠 뿐만 아니라 일반은총의 측면에서 많은 지식과 경험을 가르치는 자다. 가르치기 위해서는 먼저 배워야 한다. 배우기 위한 공부는 학교에서 하는 공식 교육이 있지만 성인들은 주로 책을 통해서 스스로 공부하는 방법이 있다. 책을 통해서 공부하지 않고는 배울 수 없으며 또한 가르칠 수 없다. 가르치는 선교사가 스스로 공부하지 않는 것은 책임을 다하지 않는 행위이다. 공부하지 않는 선교사는 책무를 다 하지 못하는 것이다. 선교의 열매도 부족할 수밖에 없다. 선교 사역하러 간 선교사가 사역의 열매가 부족하다면 선교사로서 자격이 없는 것이다. 그만큼 선교사가 책을 읽는 일은 중요하다. 그러므로 선교사가 책을 읽는 것은 단순히 지식을 쌓기 위한 것이 아니라 사역을 위해서 필요한 것이다. 선교사가 책을 읽은 것은 필수적인 일이다.

 

선교사들이 필수적인 것을 선택사항으로 생각하기에 책을 잘 읽지 않는다. 노숙자를 위한 사역을 할 때 밥을 준비하는 것이 가장 중요한 준비이며, 이 준비가 당연한 것처럼 가르치는 선교사의 준비는 책을 통해서 공부하는 것이 가장 중요한 준비다. 그러기에 가르치는 사람은 반드시 책을 읽어야 한다. 그런데도 선교사가 책을 잘 읽지 않는 이유는 사역 때문이다. 이런 모순이 어디 있는가? 사역을 위해 책을 읽어야 하는데, 사역 때문에 시간이 부족하여 책을 보지 못한다는 모순이 책을 잘 읽지 않는 선교사들에게 나타나는 현상이다. 그러나 가르치는 자는 먼저 배우는 자가 되어야 하고 배우기 위한 기본적인 방법인 책을 읽는 자가 되어야 한다.

 

필자가 본 대부분의 지도자들의 모습 중에 공통적인 부분은 책을 많이 읽는다는 것이다. 위대한 설교자 중에 책을 적게 읽는 설교자는 거의 없다. 어떻게 책을 읽지 않는데 좋은 설교자가 되겠는가? 설교자들이 좋은 설교자가 되고 설교를 잘하고 싶다면 책을 많이 읽어야 한다. 책을 읽지 않고 좋은 설교를 할 수는 없다. 어떤 목사들은 책 대신에 기도를 많이 하면 설교를 잘 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필자는 좋은 설교자는 책을 읽는 것이 우선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필자가 미국에서 안식년을 보낼 때 강준민 목사님의 강의를 들은 적이 있다. 강의 내용 중에 지금까지 기억하고 있는 것은 강목사님이 미국에 유학을 오면서 다짐했던 한 가지 일이다. 그것은 매월 200불상당의 책을 사보는 것이다. 미국의 유학생활이 경제적으로 어려웠지만 한 달도 빼지 않고 200불어치의 책을 사 보았다고 한다. 비록 먹을 것이 없어도 책은 꼭 사보았다. 많은 책을 읽고 그는 지금도 목회를 열심히 하고 있으며, 많은 책을 펴내고 있다. 강준민 목사님의 독서에 대한 글이 국민일보에 실렸는데 여기에 옮겨 적는다(국민일보. 2012.5.13.).

 

나의 인생은 하나님과의 만남과 좋은 책과의 만남으로 형성되었다. 하나님은 좋은 책을 통해 나를 변화시켰고, 나를 성숙시키셨다. 좋은 책과의 만남은 우연한 만남이 아니었다. 그것은 섭리적 만남이었다. 우리는 좋은 책과의 만남을 인해 감사해야 한다. 책은 양식과 같다. 우리가 먹는 것이 우리 몸을 만드는 것처럼, 우리가 읽는 책이 우리 인생을 만든다. 우리가 먹는 음식을 바꾸면 우리의 체질이 바뀌는 것처럼, 우리가 읽는 책을 바꾸면 우리 인생이 바뀐다. 좋은 책은 우리 내면에 좋은 언어, 좋은 생각 그리고 좋은 태도를 갖도록 도와준다. 좋은 책은 결국 좋은 인생을 만들어 준다.

 

책속에 길이 있다. 길은 도(). ()는 열림이다. 책을 열면 길이 열린다. 책을 열면 마음이 열린다. 내면 깊은 곳에 있는 영혼이 열린다. 책을 열면 인생이 열린다. 책을 열면 미래가 열리고, 영원이 열린다. 책을 읽으면 길이 보인다. 책을 읽으면 영원한 천국 길이 보인다.

 

나는 좋은 책을 사랑한다. 책을 쓴 저자를 사랑한다. 책에 담긴 문자를 사랑하는 것이 아니라 그 문자 속에 담긴 정신을 사랑하고, 그 정신을 담은 저자를 사랑한다. 나는 책을 읽을 때 책을 쓴 저자를 만나 대화한다. 책은 시간과 공간을 초월해 훌륭한 인물을 만나도록 도와주는 은총의 도구다.

 

좋은 책은 보배다. 책 중의 책은 성경이다. 성경은 보배 중의 보배다. 나는 성경책을 읽으면서 길을 발견했다. 길 되신 예수님을 만났다. 길은 생명이다. 성경책을 읽으면서 생명을 얻었다. 성경은 생명의 말씀이다. 생명의 말씀을 읽을 때 하나님의 생명이 우리 안으로 흘러 들어와 넘쳐흐르게 된다. 그때 우리 영혼이 치유된다. 우리 영혼은 힘을 얻고, 풍성한 생명으로 충만케 된다.

 

성경과 함께 좋은 양서(良書)를 읽도록 하라. 그것을 우리는 고전이라고 한다. 양서는 변하지 않는 진리를 담고 있다. 인생 문제에 대한 대안을 담고 있다. 시대를 초월한 공통 언어를 담고 있다. 그 공통 언어는 고난, 고통, , 믿음, 소망, 그리고 사랑과 같은 언어들이다. 양서를 통해 영감을 얻게 되고, 시대를 초월해서 영향을 끼치는 지식과 지혜를 배우게 된다.

 

책은 배움의 도구다. 배움이란 변화이다. 배움은 변화를 자극하고, 변화에 도전하고, 변화를 일으킨다. 변화는 새로운 지식과 접촉될 때 일어난다. 좋은 책 한 권을 읽고 나면, 좋은 책 한 권속에 담긴 지식만큼 변화하게 된다. 책을 통해 우리는 이전에 몰랐던 것을 알게 된다. 또한 책을 통해 우리가 이미 알고 있는 것들을 발견하게 된다. 어떤 의미에서 배움이란 모르는 것을 아는 것이 아니라 알고 있는 것을 알게 되는 것이다. 그런 배움을 우리는 깨달음이라고 부른다. 좋은 책은 마음의 눈을 열어주는 책이다. 자신이 알고 있고, 소유하고 있는 것이 무엇인가를 알 수 있도록 도와주는 책이 좋은 책이다. 우리의 비극은 남이 갖고 있는 것을 갖고 있지 않은데서 오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소유하고 있는 것을 알지 못하는 데 있다. 그것을 활용하지 못하고, 누리지 못하는 데 있다. 좋은 책은 우리 마음에 꿈틀거리는 가능성의 씨앗을 발견하도록 도와준다. 좋은 책은 우리 안에 있는 잠재력의 씨앗에 물을 주고 영양분을 공급해 준다.

 

책은 하나님의 아이디어다. 하나님은 책을 사랑하신다. 책을 읽는 사람을 사랑하신다. 책을 읽는 사람과 더불어 일하신다. 하나님은 모세에게 성경책을 쓰게 하셨다. 여호수아에게 모세를 통해 받은 성경을 읽고 주야로 묵상하고 실천하라고 말씀하셨다. 예수님은 습관을 좇아 성경을 읽으셨다. 바울은 생의 마지막에 로마 옥중에 있으면서 디모데에게 책을 가져오라고 부탁했다. 고독한 바울에게 책은 옥중의 동반자가 되었다.

 

책은 외로울 때 친구가 된다. 세상의 친구들이 우리를 버려도, 책은 결코 우리를 버리지 않는다. 떠나지도 않는다. 그래서 책을 사랑하는 사람은 행복하다. 책은 관심을 가져주는 사람에게 자신이 가진 모든 것을 준다. 책은 아름다운 이상을 갖게 해 준다. 우리의 사상을 개조하고, 의식을 개혁하고, 깨달음의 혁명을 일으킨다. 책은 지혜를 주고, 사랑의 기술을 가르쳐 준다.

 

책을 읽는 젊은이에게 미래가 있다. 책을 읽는 지도자에게 희망찬 미래가 있다. 역사를 연구해 보라. 훌륭한 인물들은 한결같이 독서가들이었다. 우리 민족의 미래는 책 읽는 젊은이들의 손에 달려 있다. 책 속에는 인류의 보고가 담겨 있다. 책 속에 길이 있음을 거듭 기억하라. 책 읽는 사람은 영혼이 부요한 사람이다. 훌륭한 영성가들의 삶 속에는 거룩한 독서가 있었음을 기억하라. 하나님은 지금도 좋은 책을 통해 역사하고 계신다. 책 중의 책인 성경을 통해 역사하고 계신다. 우리 함께 좋은 책을 읽고, 성경을 읽도록 하자. 성경 속에서 말씀하시는 하나님께로 돌아가자. 그 길만이 우리 민족이 사는 길이다.

 

필자의 신학대학원 동기 중에 지금까지 친하게 지내는 김도인 목사는 지난 10년 동안 5,000권의 책을 읽었다. 그는 많은 책을 읽고 10년 동안 읽은 독서를 바탕으로 작년(2018) 한 해에 5권의 책을 출판하였다. 지금도 김도인 목사는 책읽기와 글쓰기를 바탕으로 목회자들에게 설교 글쓰기에 대해 가르치고 있다. 작년에 낸 첫 번째 책의 제목이 이기는 독서. 인생을 이기는 것은 독서라는 것이다. 독서는 하나님이 주신 선물이요, 독서는 일반 은총을 누릴 수 있는 통로라고 말한다. 하나님이 일반 은총으로 주신 독서를 통해서 복음을 풍성하게 살아낼 수 있다고 한다. 김도인 목사가 독서의 중요성과 방법론에 대해 인용하거나 그가 쓴 구절들 몇 가지를 소개한다(김도인. 2018).

 

- 남의 책을 많이 읽어라, 남이 고생하여 얻은 지식을 아주 쉽게 내 것으로 만들 수 있고, 그것으로 자기 발전을 이룰 수 있다(소크라테스).

- 우리를 현명하게 만드는 기본 요소는 우리가 읽은 책과 교류하는 사람이다(미국 작가 찰스 존스)

- 공부하지 말고 독서하라.

- 독서는 남에게 묻어서 살던 모습에서 남에게 선한 영향력을 끼치는 모습으로 살도록 해 준다.

- 독서에는 수명이 없다.

- 치열함과 절박함으로 독서하라. 삶이 치열하지 않으면 후회가 남지만 치열하면 행복이 남는다.

- 하루라도 책을 읽지 않으면 입에 가시가 돋는다(안중근).

- 이제는 학력이 아니라 실력의 시대다. 실력을 키우는 것은 스펙이 아니라 독서다.

- 지식 소비자가 아니라 지식 생산자가 되라.

- 내일 죽음이 와서 삶이 끝나는 것처럼 살아라. 그리고 영원히 살 것처럼 배움에 임하라.

- 하루에 한권 읽을 수 있다면 쪽박 인생도 대박 인생이 된다.

- 독서가 행복의 통로다.

- 너무 바쁘기에 독서해야 한다. 그래야 인생의 방향을 놓치지 않는다.

- 대한민국은 성형공화국이다. 얼굴대신 마음을 가꾸라. 자신감은 외모로부터 나오지 않고 마음으로부터 나온다. 내면의 힘을 강력하게 만들어 주는 무기는 독서다. 독서는 외모지상주의를 내면지상주의로 바꾸어주는 유일한 방책이다.

- 60세가 되었어도 10년을 독서하면 70세 때 할 일이 생긴다(이시형: 공부하는 독종이 살아남는다).

- 하루에 한 시간만 독서에 몰입하라.

- 독서력은 사고력이다.

- 읽어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쌓일 것이요, 읽어라 그리하면 답을 찾아낼 것이요, 읽어라 그리하면 미래가 너희에게 열릴 것이다- 이런 심정으로 최선을 다해 독서하라.

- 페이스북 창시자인 마크 저커버그(Mark Elliot Zuckerberg)는 독서광이다. 솔라시티 회장인 일론 머스크(Elon Musk)1만권의 독서를 한 뒤 사업을 시작해서 성공한 사람으로 유명하다. 이건희 회장은 신토피지컬 독서가로 유명하다. 신토피지컬 독서란 한 주제 아래 몇 권의 책을 엮어 읽는 것이다. 이건희 회장은 독서에 영향을 받아 세 가지를 가장 잘하는 직원을 키우는 것을 목표로 한다. 첫째, 독서를 잘하는 사람, 둘째, 영어를 적절히 잘 구사하는 사람, 셋째, 자기 분야의 최고가 되는 전문성을 가진 사람이다.

- 독서는 끝에서 마무리 된다. 책만 읽지 말라. 베껴 쓰기를 하라. 그래서 쓰기를 배울 때는 첫 단계는 베껴 쓰기, 둘째 단계는 바꿔 쓰기, 셋째 단계는 글쓰기, 넷째 단계는 책 쓰기를 하라.

- 메모 습관이 힘이다. 읽을 것을 기록하라. 적자생존, 적는 것이 생존이다.

- 글쓰기가 인생을 바꾼다. 글은 소통의 도구다. 소통이 경쟁력이다.

- 독서는 여유로운 사람을 만들고, 토론은 준비된 사람을 만들며, 쓰기는 정확한 사람을 만든다(프랜시스 베이컨, Francis Bacon).

- 오늘 나를 있게 한 것은 우리 마을 도서관이었다. 하버드 졸업장보다 소중한 것이 독서하는 습관이다(빌 게이츠).

- 우리는 남들이 가지 않는 좁은 문으로 들어가야 한다. 독서는 좁은 길이기 때문이다. 아니 좁은 길 중에 좁은 길이다.

- 사람은 부족함을 깊이 깨달으면 깨달을수록 그것이야말로 행복의 출발이다. 부족함을 깨닫는 수단으로는 독서가 최고다.

- 독서는 자존심 인생을 자존감 인생으로 바꾼다.

- 100세 시대에 오답을 정답으로 바꾸어 준다. 독서는 진정한 노후대책이다.

 

조만제 교수는 사람이 책을 만들고 책이 사람을 만든다.”고 하였다(조만제. 2009). 그는 도서관이 아니더라도 책상이 없이도 아무데서라도 책을 읽을 수 있다고 하였다. 그가 쓴 책 읽기에 대한 몇 가지를 소개한다.

 

- 천권의 책을 읽는 것은 대학을 네 번 졸업하는 것과 같다.

- 읽고 싶은 책을 읽어라.

- 책을 펴자. 사람답게 살자.

- 책속에 길이 있다.

- 독서는 지식이나 정보를 제공해 주는 가치가 있지만 인생을 사는 지혜로서 또한 용기로서의 가치가 더 크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 청소년 범죄가 잔악해진다는 사실은 어린 시절의 독서 부재와 함수 관계를 맺고 있다.

- 책을 읽는 사람은 결코 외로움에 빠지지 않는다.

- 책을 읽는 사람은 결코 싫증을 느끼지 않는다.

- 책을 읽는 사람은 절대로 무식해지지 않는다.

- 책을 읽는 사람은 좀 더 넓은 세상에서 살 수 있다.

- 책이 주는 유익은 이런 것이 있다. 두뇌가 발달된다. 인생관을 갖게 된다. 경험을 확대시킨다. 내면적 사고를 깊게 한다.

- 사람답게 살기 위해서는 책을 읽어야 한다.

- 나폴레옹은 말을 타고 전쟁터로 떠날 때에도 항상 마차에 책을 싣고 갔다는 에피소드가 있다. 세인트 헬레나 섬으로 유배되었을 때도 그는 자신의 운명과 처절한 고독을 독서로 극복해 나갔다. 5년 남짓한 기간에 약 8천 권에 달하는 책을 읽었다고 한다.

- 지도자가 되려면 책을 읽어라. 지도자가 되기 위해서는 지식, 인격, 지도력이 모두 필요하다. 독서를 통해서 이런 능력을 갖출 수 있다.

- 젊은 날에 어떤 책을 읽느냐에 따라 인생이 달라진다. 성경은 평생을 가장 가까이에 두고 읽어야 할 책이다.

- 한 달에 한 번쯤 책방에 들르는 사람은 책을 읽고 싶어 하는 사람이다. 한 달에 두 번 정도라면 책을 사고 싶어 하는 사람이다. 일주일에 한 번쯤 들른다면 그는 책을 자신의 것으로 만들 수 있는 사람이다.

- 책은 되도록 자기 돈을 주고 사서 읽어야 한다.

- 책읽기 운동은 영적 운동이다.

 

어떤 사람은 독서는 취미가 아니라 생활이라고 하였다. 디즈 레일리는 책을 한 권밖에 읽지 않은 사람을 경계하라고 하였다. 책은 사람이면 읽어야 한다. 동물이 책을 읽는 것을 보았는가? 사람이기 때문에 책을 읽어야 한다. 하물며 복음을 가르치는 선교사가 책을 읽는 것은 당연하다. 당연하다는 것은 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의미이다. 이런 맥락에서 어쩌면 책을 읽지 않는 선교사는 선교사가 아닐 수 있다. 사람이기에 책을 읽어야 한다면 선교사는 그 사람들에게 가르쳐야 하기에 더욱 책을 읽어야 한다.

 

독서가 안상헌 씨는 정말로 피곤에 지쳐 있다면 오히려 책을 읽어야 하지 않을까요? 책에서 솟아나는 에너지가 피곤에 지친 몸과 마음을 치유해주기 때문입니다라고 말한다(안상헌. 2010). 이 글을 읽으면서 선교사들이 피곤한 것은 책을 읽지 않은 까닭은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어떤 사람은 독서와 황금을 함께 사랑할 수 없다고 하였다. 독서를 하기 위해서는 선택을 해야 한다. 독서를 방해하는 것을 포기해야 한다. 선교사의 희생은 선교사가 되는 순간만이 아니라 일상의 삶에서 건강한 선교사가 되기 위해 희생하는 것도 포함한다. 건강한 선교사가 되기 위해서는 책을 읽어야 하는데, 책을 읽는데 방해하는 그 무엇인가를 포기하는 희생이 있어야 한다. 책을 읽기 위해 포기해야 하는 그것이 때로 지나친 사역일 수 있고, 돈일 수도 있다. 심지어는 가정일 수도 있다. 가정이 무엇보다 중요하지만 선교사로서의 사명을 완수하기 위해 하는 자기개발의 일환인 책을 읽는 것을 가정이 방해한다면 그것 또한 포기해야 한다. 가정을 내려놓으라는 말이 아니라 오히려 가정을 위해서 책을 보는 시간을 갖도록 해야 한다는 말이다.

 

광교 산울 교회 이문식 목사는 목회에 삼방 목회가 있다고 한다. 심방, 공방 서방을 가르치는 것으로 목회적 돌봄과 목회적 기도와 목회적 책읽기를 강조하였다(이문식. 2015). 그는 또한 목회자는 인문학적 책 읽기와 주석 및 경건서적 읽기와 성경읽기를 균형 있게 해야 한다고 말한다. 그는 목회자가 책읽기에 힘써야 하는 이유는 하나님이 창조하신 이 세계와의 거룩한 소통을 위해서라고 한다. 죄로 타락해 소통이 단절된 이 세상과 인간들에 대한 지적, 영적, 소통의 한 방편이 책읽기라는 것이다.

 

2) 어떻게 책을 읽을 것인가?

책 읽는 방법은 사람에 따라 각자 다르다. 사람마다 자신만의 방법이 있다. 중요한 것은 책을 읽는 자신만의 방법을 갖는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 독서하는 방법을 소개한 책들을 읽을 필요가 있다. 독서 방법에 대한 몇 권의 책을 보면서 자신의 독서의 습관과 비교해보면 좋은 독서습관을 갖게 될 것이다.

 

백금산 목사는 목회자들에게 책 읽는 방법에 대해 다음과 같이 권면한다(백금산. 2010).

 

한권의 책을 여러 번 읽어라. 한권의 책을 소화할 때까지 읽어라.

한 사람의 저자를 집중적으로 읽어라

독서의 균형을 맞추라(경건서적과 신학 도서/ 고전과 신간)

주제별로 읽어라. 한 주제에 대해 많은 책을 읽어라. 인문분야의 박사학위 논문의 인용문헌은 적게는 182권에서 940권에 이른다. 엘빈 토플러가 3의 물결을 쓰기 위해 534권의 책을 읽었다고 한다. 톨스토이는 전쟁과 평화를 쓰기 위해 작은 도서관 하나 정도의 분량을 읽었다고 한다.

5) 평생 독서의 스케줄을 만들자.

 

백금산 목사는 목사들에게 로이드 존스(20세기 가장 위대한 설교자 중의 한 사람: 로이드 존스, 제임스 패커, 존 스토트, 프란시스 쉐퍼, 빌리 그레이엄)으로부터 받은 교훈을 제시한다(백금산. 2010). 이 교훈은 선교사들에게도 도움이 될 것 같아 소개한다.

첫째, 설교에 목숨을 걸라.

둘째, 부흥을 위해 간절히 기도하라.

셋째, 교회사에 대한 깊은 관심을 가지라. / 넷째, 조직신학적 기초를 튼튼히 하라.

다섯째, 균형 잡힌 독서를 하라.

백금산 목사는 그의 책 목회자의 책읽기 혁명에서 성경 다음으로 읽어야 할 책으로 칼빈의 기독교 강요를 강력하게 추천한다.

 

큰 인물 독서법에서 백금산 목사는 전기를 읽으라고 권면한다(백금산. 2005). 그가 소개하는 인물은, 로이드 존스 목사. 브레이너드 선교사, 스터드(C T Studd) 선교사, 리처드 백스터, 짐 엘리엇 선교사, 조나단 에드워드 목사다. 그는 2001년부터 2004년 까지 자신이 읽었던 전기들을 독서 노트에 기록했는데 그것들을 모아 그대로 옮겨 책으로 내기도 하였다.

 

조만제 교수는 책을 읽는 방법을 다음과 같이 말했다(조만제. 2009).

 

자투리 시간을 잡으라.

새벽은 책 읽기에 가장 좋은 시간이다.

신문, 잡지, 그리고 텔레비전 보는 시간을 활용하라고 하였다.

 

그가 말하는 효과적인 독서법은 다음과 같다.

 

독서할 만한 환경을 스스로 만들라.

독서하는 습관을 길러야 한다.

책의 내용에 따라 완급을 정해야 한다. 책은 다독, 정독, 속독을 다 사용하는 것이 좋다.

 

그는 책을 읽는 구체적인 방식에 대해서 다음과 같이 말한다.

 

독서하면서 필요한 것을 그 책의 말 그대로 옮겨 쓴다.

그것을 자기의 말로 옮겨 쓴다.

필요할 때는 자기 의견을 부가하여 기록해 둔다.

그 내용에 맞는 제목을 붙여서 순서 있게 배열해 둔다.

책 이름과 쪽수를 쓴다.

 

안상헌 씨는 창의적인 책읽기의 3단계를 말한다(안상헌. 2010). 첫 번째 단계는 많이 읽고 많이 기억하는 단계이다. 두 번째 단계는 적게 읽고 많이 생각하는 단계이다. 세 번째 단계는 적게 읽고 많이 쓰는 단계이다. 그러므로 책을 읽기 위해서는 첫 번째 단계부터 시작해야 한다. 책을 많이 읽지 않고서는 책을 많이 내고 글을 많이 쓸 수는 없다. 유명한 작가의 집에는 글 쓰는 도구가 많은 것이 아니라 읽어야 하는 많은 책이 있다. 선교사가 책을 많이 읽을 때 그의 사고도 더 깊어지고 가르치는 자, 선교사 리더로서 강의를 할 수 있으며 책을 쓸 수 있을 것이다.

 

책을 읽을 때 읽는 사람은 자신이 옳다고 생각하지 말아야 한다. 자신이 옳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다른 사람이 틀렸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자신이 옳다고 생각하면 새로운 것을 배우지 못한다. 획일성은 창의적 사고를 죽이고 인간의 건강한 삶을 저해하는 요소들을 양산한다.

 

책 읽는 좋은 방법, 즉 공부하는 좋은 방법 중의 하나는 남에게 가르칠 것을 예상하면서 공부하는 것이다. 남을 가르치기 위해서는 일반적인 독서보다 더 깊고 더 높은 이해수준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가르칠 것을 전제로 독서를 하면 보다 주의를 기울여 읽게 되고 예상되는 질문까지도 생각해보게 된다. 또한 가르침은 다른 사람을 설득해야 하기에 가르침을 준비하며 책 읽는 과정에서 자신의 사고가 확장될 수 있다. 누구에겐가 설명을 하는 마음으로 책을 읽을 때 효과가 나타난다. 그러기에 소설이나 만화책 같은 종류는 가볍게 읽을 수도 있지만 전문서적이나 교양 도서는 그것을 다른 사람에게 가르칠 것을 염두에 두고 읽어야 한다. 장경철 교수는 누구를 만나든지 혼자 깨닫고 있기에 너무 아까운 내용들을 험담하듯이 유통하라고 권면한다(장경철. 2015). 험담할 때는 기록하는 것보다 더 자주 더 정확히 하는 습성이 인간에게 있기 때문이다. 선교사나 목회자는 그런 면에서 가지고 있는 내용을 유통하는 것이 주 사역이기에 독서의 내용을 기억하고 활용하는 장점이 있다.

 

필자는 책을 읽으면서 중요한 부분은 줄을 긋는다. 줄을 긋는 부분은 다시 독서 노트에 적는다. 그래서 줄을 그을 때는 적을 수 있는 부분만 긋기에 더 집중해서 책을 읽게 되고 이해도 훨씬 더 잘 할 수 있다. 독서 노트는 종이 노트가 아니고 컴퓨터에 파일을 만들어 기록한다. 컴퓨터에 기록해 놓는다면 다음에 어떤 글을 쓰거나 강의안을 준비할 때, 혹은 연구를 할 때 쉽게 인용할 수 있다.

 

장경철 교수는 자신의 책 읽기를 통해서 얻은 책 읽는 방법을 다음과 같이 소개한다(장경철. 2015).

 

책을 읽을 때 단지 자료를 접촉하는데 그치지 말고 그것을 흡수하도록 나를 준비시키는 것이 좋다. 흡수하기 위해서는 그 책의 제목이나 목차를 보면서 질문을 던지는 것이 유용하다.

질문과 더불어 책을 읽으면서 생각하는 습관을 기르도록 한다. 어떤 자료를 읽었다면 30분 이상 생각하는 습관을 들이는 것이 중요하다. 생각할 시간을 확보하지 못했다면 우리는 책을 너무 많이 읽고 있는 것이다.

독서할 때 기록하는 습관을 들이는 것이 좋다. 독서하는 동안 바로 기록할 수 있고 일단 밑줄을 그어둔 후에 시간을 내서 노트에 옮겨 적을 수도 있다. 선명한 잉크가 흐릿한 기억보다 낫다. 우리는 몇 권의 책을 읽었는가가 아니라 몇 권의 노트를 갖고 있느냐에 대한 질문을 해야 한다.

독서한 내용을 노트했다면 자주 산책과 묵상의 시간을 갖도록 한다. 내가 기록한 노트도 내 독서의 대상이나 자주 읽으면서 내 안에 떠오르는 생각들을 여백에 적어두고 다시 컴퓨터 앞에서 그 내용들을 입력하도록 한다.

 

송광택 목사는 독서 계획을 세우는 것을 권장한다. 만약 어떤 사람이 매주 한 권씩 60년을 읽으면 3000권을 읽을 수 있다. 영적 지도자는 매주 2권씩 1년에 100권 이상을 목표로 하라고 격려한다. 그가 말하는 독서 계획을 세우는 방법은 다음과 같다(송광택. 2015).

 

독서 시간을 확보하라. (이런 면에서 선교사는 다른 사람들보다 유리하다. 적어도 자신의 시간 관리를 타인이 아닌 자신이 할 수 있기 때문이다. 관리에 있어 타인의 제약을 받는다면 시간을 내고 싶어도 낼 수 없을 때가 많을 것이다.

실현 가능한 독서 계획을 세운다. 독서 목록을 만들어서 읽는 것이 대단히 중요하다. 시간, 날짜, 요일에 따라 독서 시간표를 작성하고 그에 따른 독서 목록을 만들 때 효과적인 독서를 할 수 있다.

독서 지침서의 도움을 받을 수도 있다.

권장 도서 목록을 참고할 수 있다. ‘크리스채너티 투데이가 선정한 20세기의 위대한 책 목록에는 C.S. 루이스의 <순전한 기독교>, 디트리히 본회퍼의 <옥중서간>, 빅터 프랭클의 <죽음의 수용소>, 아브라함 헤셀의 <예언자들>, 하퍼리의 <앵무새 죽이기>, 물트만의 <십자가에 달리신 하나님>, 앤더스 니그렌의 <아가페와 에로스> 이 포함되어 있다.

 

그리고 이 계획을 실천하기 위해서 몇 가지 힌트를 준다(송광택. 2015).

첫째, 독서 계획 내용을 종이로 출력해 눈에 띄는 곳에 붙여둔다.

둘째, 자신의 독서 목표를 주위에 알린다.

셋째, 독서를 하다가 감동이 되는 부분, 마음에 울림이 있는 이야기는 갈무리해 둔다.

넷째, 독서를 통해 얻은 정보와 감동을 공유한다.

다섯째, 설교 중에 감동받은 책을 소개할 수 있다.

 

필자는 전 장에서 선교사들의 모임을 <학습 공동체>로 만들 것을 제안하였다. 학습 공동체를 효과적으로 운영하기 위해 선교사들의 모임을 독서 모임으로 만들 수 있다. 선교사들이 책을 정하여 각자 읽고 모여서 함께 토론을 하는 것은 <회의 공동체>에서 <학습 공동체>전환할 수 있는 좋은 방법이다. 열권의 책을 혼자 읽은 것보다 열 사람이 한권의 책을 읽고 토론하는 것이 훨씬 낫다. 우리나라 도서관에서는 말을 하면 야단을 맞지만 유대인의 도서관은 세상에서 가장 시끄럽다고 한다. 두 사람만 만나도 읽은 것을 토론하기 때문이다. 다른 사람과 더불어 책을 읽으면 읽기 독서는 물론 쓰기 독서와 말하기 독서, 듣기 독서를 모두 실천할 수 있어서 언어가 지닌 변화의 힘을 총체적으로 활용할 수 있다. 책 한권에 대한 다양한 관점을 주고받을 수 있기 때문에 자신의 편견과 경험을 극복할 수 있어 더 넓고 깊은 내면의 성장을 이룰 수 있다(이영식. 2015).

 

독서 모임의 장점으로 한재술 목사는 책을 함께 읽으며 배워 갈 때 신앙이 건강해 진다고 한다. 독서 모임을 할 때는 구성원들이 겸손하게 공부하게 되고 함부로 판단하지 않게 된다. 진리를 더욱 경험할수록 교회와 가정, 이웃을 더욱 사랑하게 된다. 그는 독서 모임을 어떻게 할 것인가에 대해 몇 가지 제안을 한다(한재술. 2015).

 

첫째, 독서모임을 하려면 무엇보다 겸손하게 은혜를 구해야 한다.

둘째, 인내해야 한다. 독서 모임처럼 영혼에 관한 일은 농사와도 같아서 단기간 열매를 볼 수 없다. 부지런히 마음을 다해 씨를 뿌리고 가꾸며 기다려야 한다. 책 한권을 붙들고 질질 끌면 안 되겠지만 그렇다고 단기간에 책 한권 끝내는 것을 목표로 삼아서도 안 된다. 참여하는 지체 모두 충분히 소화하고 이를 각자의 신앙고백으로 승화할 수 있어야 한다.

셋째, 독서 모임은 책 내용을 자기 것으로 만들어 가는 과정이다. 참가자들이 돌아가면서 책 내용을 요약 발표할 수 있다.

넷째, 독서 모임은 책을 읽고 배우는 것 자체가 목표이기 때문에 교제의 시간을 따로 마련하지 않지만 지체들이 함께 하는 것만으로 교제가 된다. 모임에 활력을 더하기 위해서는 생일 파티를 하거나 책 한권이 끝날 수료식 등을 가져보는 것이 좋다.

 

선교사가 책을 읽을 때 사역에 직접적이고 결정적인 도움을 얻는다. 책을 읽지 않는다는 것은 이런 도움을 거절한다는 의미이다. , 책을 읽지 않는 것은 사역에 대한 열정이 부족하다고 볼 수 있다. 책을 읽을 때는 계획을 세워 읽어야 한다. 책을 읽을 계획을 세우다보면 시간 관리와 자기 관리를 동시에 하게 된다. 계획을 해서 책을 읽다 보면 책을 읽기 위해 시간을 아껴야 한다. 시간을 아낀다는 의미는 하나님 앞에 성실하게 산다는 의미이다. 성실하게 사는 것 자체가 선교사의 가장 큰 덕목이라 할 수 있다. 그러므로 책을 읽는 자가 자신을 사랑하는 자임과 동시에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가 된다.

 

현대는 너무나 많은 시간을 헛되게 보내도록 유혹을 하는 시대다. TV, 스포츠, 컴퓨터 게임, 음악, 여행, 기타 취미활동 등 재미있는 것들이 이전보다 훨씬 많다. 자칫 잘못하면 이런 많은 유혹에 시간과 자신을 관리하지 못해서 실패하는 인생을 살 수 있다. 이것은 선교사에게도 동일한 가능성이 있다. 어쩌면 선교사는 자신이 스스로 관리해야 하는 시간이 더 많기에 정신을 차리지 않으면 시간만 헛되이 보내는 인생을 살 수 있다. 그것을 해결할 수 있는 좋은 방법 중의 하나가 바로 독서다. 독서를 통해 인생을 제대로 살 수 있으며,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사역을 할 수 있다.

 

독서를 잘하기 위해서는 독서의 습관을 들이는 것이 아주 중요한 방법이다. 습관을 들이기 위해서는 독서에 재미를 붙여야 한다. 어쩌면 어떤 일이든지 처음에는 힘들지만 그 일을 계속할 때, 그 일의 재미를 붙일 수 있다. 요즈음 필자는 등산을 좋아한다. 필자는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정말 좋은 감정을 느끼면서 열정적으로 빠져본 취미생활이 거의 없었다. 계속해서 등산을 해 왔지만, 건강을 위해서 거의 의무적으로 해 왔다. 그러던 중에 건강을 위해 등산을 하지 않으면 안 될 만큼 등산이 필요해졌다. 그래서 등산을 계속하다보니 작년부터 억지로 한 등산이 이제는 건강을 생각하지 않고도 등산 자체가 좋아서 계속하게 된다. 지금은 등산을 가기 위해 등산화 끈을 매는 순간, 기분이 좋아진다. 억지가 아닌 기분이 좋게 등산을 하고 있다. 등산은 필자에게 지금은 하나의 습관이다. 책을 읽는 것도 필자에게는 마찬가지다. 전에는 공부하기 위해서 혹은 설교를 준비하기 위해서 책을 보았지만 이제는 책을 읽는 자체가 즐겁다. 그냥 책을 읽으면 마음이 편안해 진다. 소진됐던 힘도 새롭게 생기는 것 같다. 지금은 굳이 독서 계획을 세울 필요도 없다. 그냥 독서하는 것이 일상이다. 시간을 따로 내기도 하지만 그냥 자연스럽게 독서를 하게 된다. 책을 많이 읽고 적게 읽은 것은 두 번째 문제이다. 책을 읽으면서 기쁨을 찾고 희망을 찾을 수 있기에 억지로 읽는 것이 아니라 자연스럽게 책을 들게 된다. 습관은 하고 싶은 습관이 있고 하기 싫은 습관이 있다. 그러나 어떤 습관이던지 필요하다면 즐겁게 해야 한다. 책 읽은 습관을 들이는 것도 당장은 힘들고 귀찮지만 재미를 느낄 때까지 참고 시도한다면 반드시 책 읽은 기쁨을 다시 찾게 될 것이다. 책 읽는 것은 선교사에게(성도들도 포함) 사역의 기초일 뿐만 아니라 인생의 중요한 활력소가 된다. 책 읽는 것에서 시작하여 이제는 글쓰기로 들어가 보자.

 

2. 선교사 글쓰기

 

책읽기에 대한 책들은 책읽기가 글로 이어져야 제대로 된 책읽기가 된다고 말한다. 이처럼 책 읽기는 글로 끝맺음을 해야 책읽기가 완성된다. 선교사에게 글은 바로 사역이라 할 수 있을 만큼 중요하다. 선교사의 삶과 사역은 사적인 일이 아니고 공적인 일이기 때문이다. 공적인 일은 반드시 기록되어져야 한다.

 

글쓰기는 여러 종류의 글쓰기가 있다. 특히 선교사들의 삶을 기록한 일기는 선교역사가 될 수 있다. 선교사는 기도편지라는 글을 계속해서 써야 하고 설교나 강의를 위해 원고를 작성해야 하며, 선교 사역과 연구에 관한 글을 써야 한다. 취미로 시나 수필 혹은 소설을 쓸 수도 있다. 선교사가 이와 같이 다양한 종류의 글을 쓸 때, 그것은 공식적인 기록으로 남아 역사 자료가 된다. 무엇보다도 선교사의 글은 자기 계발과 발전, 그리고 리더십 계발에 결정적인 도구가 된다. 선교사가 글쓰기를 해야 선교사들이 모임이 <회의 공동체>에서 <학습 공동체>로 바뀔 수 있다. 글쓰기를 할 때, 선교사들이 선교전략을 위한 연구의원이 될 수 있다. 선교사 개인의 발전과 개발은 물론이고 선교단체와 한국 교회 선교, 더 나아가 세계 선교를 위해 선교사 글쓰기가 중심에 있다고 말해도 과언이 아니다. 선교사 글쓰기를 통해서 하나님 나라를 위한 선교사역이 확장되어 간다는 전제 하에 선교사 글쓰기를 다루고자 한다.

 

1) 일기

글쓰기의 시작은 일기에서부터 시작된다. 일기는 한 사람이 자신의 삶을 자유롭게, 형식에 구애받지 않고 쓰는 가장 기본적인 글쓰기다. 일기 쓰기는 어렸을 때부터 중요성과 방법을 배우면서 교육을 받지만 정작 일기를 쓰는 사람은 많지 않다. 여기서는 선교사가 왜 일기를 써야 하는지 그 중요성에 대해 언급하고자 한다.

 

선교사의 삶은 이미 말한 것처럼 사적인 삶이 아니고 공적인 삶이다. 공적인 삶이라면 그 삶이 당연히 기록되어져야 한다. 선교사는 일기를 통해서 글쓰기의 기본적인 실력을 향상시킬 수 있다. 또한 일기를 통해서 꾸준히 글을 쓰는 습관을 들일 수 있다. 선교사 뿐 아니라 그리스도인들이 일기를 써야 하는 가장 중요한 이유는 한 생명이 천하보다 귀하기 때문이다. 한 사람의 일생이 세상의 어떤 것보다 더 소중하다. 한 사람의 인생이 바로 역사다. 역사는 중요한 사건들의 연속이다. 이 세상에서 가장 중요한 사건이 있다면 한 사람의 인생, 그 자체라고 할 수 있다. 국회나 대통령 집무실의 일은 한나라의 역사에서 무엇보다 중요하다. 그러기에 모두 기록된다. 중요한 사건이나 역사는 기록되는데 한 사람의 인생이 어떤 역사적인 사건보다 더 중요하기에 기록되어야 하는 것이다. 그것이 개인이 쓰는 일기다. 그러므로 일기를 쓰느냐 혹은 쓰지 않느냐에 따라서 그 인생의 중요도가 결정된다. 한 개인이 일기를 쓰지 않는다면 그만큼 중요하지 않는 인생이 될 수 있다. 반대로 일기를 쓴다면 스스로 자신의 인생의 소중함을 표현하는 것이 된다. 자신의 인생이 얼마나 소중한가는 일기를 쓰는 한 자신에게 달려 있다. 자신이 정말 소중한가? 일기를 통해 역사를 남겨야 한다. 자신의 인생이 별로 소중하지 않는가? 그러면 일기를 쓸 필요가 없다. 누구나 자신의 인생의 가치는 자신이 만들어 간다. 그 수단이 바로 일기라는 것이다. 이런 관점에서 볼 때 일기를 쓰는 것이 얼마나 귀한 일인가? 더구나 공인인 선교사가 쓰는 일기를 통해 선교역사가 기록되어진다는 사실은 선교사가 일기를 써야 하는 가장 큰 이유가 된다.

 

일기를 쓰는 것은 하나님의 선물이다. 하나님의 은혜다. 하나님이 주신 영혼의 치료제다. 일기를 쓰는 것은 돈도 시간도 많이 필요치 않다. 일기를 쓰는 것은 백만 불짜리의 가치보다 더 크다. 일기의 효과에 대해 케들린 아담스는 다음과 같은 것들을 말한다(케들린 아담스. 2006). 나 자신을 더 잘 알아 간다. 나를 위한 시간이다. 나의 회복을 위한 시간이다. 나의 개인적 역사를 기록한다. 인간관계를 극복한다.

 

필자가 일기를 쓰면서 얻는 개인적인 유익들은 다음과 같은 것들이 있다.

첫째는 다양한 자신의 감정과 생활을 정리해준다. 필자는 일기장에 기도제목을 쓰기도 한다. 복잡한 사건이 있을 때는 일기장에 정리를 해서 기록한다. 기록하면서 그 사건의 복잡함을 단순화 시킨다. 글로 표현하면 생각 속에 머물렀던 복잡하고 다양한 걱정들이 정리되는 것을 경험한다. 어떤 사건에 대해 고민하고 생각만 하는 것과 그것을 기록하여 정리하는 것과는 하늘과 땅 만큼 그 차이가 크다. 문제를 글로 정리할 때 복잡한 실타래를 풀 수 있다.

둘째는 나 자신을 더 알아간다. 일기를 통해서 나의 삶을 기록하기에 나의 진정한 모습을 더욱 발견하게 된다.

셋째는 인간관계를 극복한다. 살면서 가장 어려운 것 중의 하나는 인간관계다. 그 관계 속에서 힘들게 살 수 밖에 없다. 그런 가운데 일기를 쓰면 그런 어려운 인간관계를 스스로 풀어가는 기회가 된다.

넷째는 인생을 즐길 수 있다. 일기를 쓰는 것은 말로 표현할 수 없는 만족감을 준다. 하루의 삶을 잘 살았다는 마침표의 역할을 한다. 하루의 삶이 소중함에 감사를 (고백)하게 된다.

다섯째는 일기 쓰는데 돈이 들어가지 않는다. 대부분의 취미생활은 돈이 들어간다. 일기를 쓰는 것은 그 효과에 비해 전혀 돈이 들어가지 않는다.

여섯째는 일기 쓰는 시간은 하나님과 기도하는 시간이 된다. 일기에 기도문을 쓰기도 한다. 일기 쓴 것을 읽으면서 기도하기도 한다.

일곱째는 꾸준히 일기를 쓸 때 창의력이 살아난다. 일기를 쓰는 시간은 단순히 사건을 기록하는 시간이 아니라 생각을 하는 시간이다. 다양한 생각을 하게 되고 이는 창의력으로 발전된다.

여덟째는 일기를 쓰면 시간을 조절할 수 있다. 시간 사용을 잘하게 된다. 일기를 쓰면서 시간을 허비한 것을 발견하게 되고 다음날은 시간을 잘 활용하게 된다.

 

안상헌 씨는 일기를 포함한 글쓰기에 대해 다음과 같이 표현한다(안상헌. 2010).

글쓰기가 장려된다면 그들의 낙서장도 한 권의 책이 될 수 있다. 많은 사람들이 글쓰기는 특별한 재주가 있거나 머리가 좋아야 가능한 일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글쓰기는 머리로 하는 것이 아니다. 글쓰기는 손으로 하는 것이다. 머릿속에 아무리 좋은 내용들이 정리되어 있어도 글로 표현되지 못한다면 그것은 글쓰기가 아니다. 공상일 뿐이다. 글은 손으로 종이 위에 표현해야만 하는 것이다. 글을 쓰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글을 쓰는 순간만은 머리와는 아무 관련이 없이 손이 혼자서 글을 쓰고 있다고 느껴진다고 한다. 펜을 움직이거나 자판을 두드리는 우리의 손동작이 두뇌를 자극하고 생각을 독려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우리들의 우둔한 머리를 걱정할 필요는 없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머리가 아니라 손이기 때문이다. 머릿속의 내용들이 정리되어야 글을 쓰는 것이 아니라 글을 써야 머릿속의 내용들이 정리된다.

글을 쓰면 좋은 점이 있다. 그것은 사람이 창의적으로 변한다는 점이다. 글쓰기는 그 자체에 엄청난 창의적인 능력을 내포하고 있다. 자기 안의 잠든 거인을 깨우는 가장 훌륭한 방법은 글쓰기임을 확신한다. 글쓰기는 실천이기 때문이다.”

 

일기를 잘 쓰는 방법이 있다면 꾸준하게 쓰는 것이다. 며칠 빠져도 계속해서 쓰는 것이다. 그러기에 지금 일기 쓰기를 시작하는 것이 가장 좋은 방법이다. 일기를 쓰기를 시작하는 것은 자신의 인생을 새롭게 살아갈 수 있는 기회를 다시 한 번 주는 것과 같다. 마음이 흘러가는 대로 자유롭게 쓰면 된다. 분노의 감정도 표현할 수 있다. 그것은 자연스러운 것이다. 두려움과 슬픈 감정을 일기에 표현할 때 힘든 상황을 회복할 수 있는 기회가 된다.

 

사람은 누구나 언젠가 은퇴하게 된다. 은퇴 후에 무엇을 하며 살 것인가? 누군가 말하기를 인간은 추억을 먹고 사는 존재라고 하였다. 하나님이 주신 시간과 젊음과 일생을 열심히 살다가 은퇴 후에는 지나간 좋은 추억들을 일기를 통해서 다시 회상할 수 있다. 지난날을 회상하면서 하나님께 감사하며 하나님 나라에 갈 것을 준비하며 살 수 있다. 이렇게 산다면 인생이 얼마나 아름다운가!

 

아울러 쓴 일기를 가지고 기회를 만들어 정리하면 자서전이 될 수도 있고, 더 나아가 꼭 남기고 싶은 내용이 있다면 책으로도 펴낼 수 있다. 이런 자료들은 자손들이나 다른 사람에게 또 다른 선한 영향력을 끼칠 수 있는 도구가 된다. 필자는 선교지에서 쓴 일기를 모아 두 권의 책을 냈다. 일기를 쓸 당시에는 나만을 위해 썼다. 누구에게 보여주거나 드러내고자 하는 생각은 전혀 없었다. 그런데 한국에 돌아와서 어느 날 옛날에 썼던 일기를 보게 되었다. 그 일기를 보면서 선교지에서 있었던 일들을 다시 떠올리게 되었다. 기억에 전혀 없던 일들을 다시 회상하면서 ! 이런 일도 있었구나하면서 감격했었다. 그러면서 그 내용들이 선교를 위해 쓰여 졌으면 하는 생각이 들었다. 너무나 생생한 선교사의 삶과 선교지의 이야기였기 때문에 누군가에겐 중요한 의미가 되겠다는 생각을 하였다. 그래서 개인적인 일기였음에도 불구하고 정리하여 책을 내었다. 책을 읽은 사람들이 책에 대한 좋은 반응을 보여주어 감사하였다. 무엇보다도 책을 통해서 선교에 대한 도전을 주었다는 것이 필자에게는 특권이었다.

 

어떤 목사는 선교사들의 삶이야말로 성도들에게 은혜를 끼칠 수 있는 좋은 도구라고 말했다. 선교사의 일기가 은혜를 끼칠 수 있는 역할을 할 수 있다. 선교지는 영적 전투의 장이며, 하나님의 기적과 은혜를 경험하는 곳이기에 그곳에서의 선교사의 삶은 한국에 사는 성도들에게는 도전과 위로가 될 수 있다. 선교사의 기록을 자유롭게 남길 수 있는 곳이 바로 일기장이다.

 

그러면 일기를 어떻게 쓸 것인가? 일기 쓰기는 특별한 원칙이 없다. 케들린 아담스는 일기를 쓸 때 따지지 않아도 될 규칙에 대해 다음과 같이 정리하였다(케들린 아담스. 2006). 다음의 원칙들은 재미있게도 잊어버리라고 한다.

모든 단어의 맞춤법과 띄어쓰기는 정확해야 하고 올바른 문법을 사용해야 한다.

문제의 핵심에 이를 때까지 써야 한다. 결론에 이르기 전에 그만두면 안 된다.

매일 써야 한다.

내 저널(일기)은 지저분하면 안 된다. 쓴 단어나 문장을 두 줄로 그어 지워서는 안 되며, 여백에 뭔가를 쓰는 것도 안 된다.

내 저널은 다른 사람이 읽기에 재미가 있어야 한다.

내 저널을 다른 사람이 읽게 해서는 안 된다(자신의 저널이 다른 사람이 읽기에 재미있어야 한다는 5번의 규칙을 믿는 사람들 중 많은 사람들이 이 규칙 또한 믿고 있다).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에 대해 나쁜 이야기를 해서는 안 되고 욕을 써도 안 되며 불공평하거나 투덜대도 안 되며 화를 내도 안 된다.

혹시 트럭에 치는 교통사고가 날 수도 있으니까 그런 경우 내 아이들이 내 저널을 찾아내어 읽는 고통을 주지 않기 위해 주기적으로 내 저널을 없애 버려야 한다.

저널을 한 번 쓰기 시작하면 지속적으로 써야 하며 평생 동안의 규칙이 되어야 한다.

 

일기를 쓸 때 이상과 같은 규칙에 얽매일 필요가 없다. 일기에 굳이 자신의 규칙을 만들 필요도 없다. 쓰고 싶은 대로, 마음대로 쓰면 된다. 누군가 다시 읽기를 원한다면 다음에 재편집하면 된다.

 

저널을 쓰는 방법에 대해서 아담스는 다음과 같은 조언을 한다(케들린 아담스. 2006).

글쓰기 전 명상으로 시작하라.

저널을 쓸 때마다 날짜를 기록하라.

당신이 쓴 것을 보관하라.

빨리 써라. 글씨 걱정은 하지 말라.

쓰기를 시작하라. 계속 쓰라.

가능한 한 빨리 완전한 진실을 말하라.

당신의 프라이버시를 보호하라.

자연스럽게 써라.

 

일기처럼 자유롭게 쓸 수 있는 장르가 또 있다. 일기는 일상의 삶을 자신이 쓰고 싶은 대로 쓰지만 선교사가 한 주제를 가지고 자유롭게 쓸 수 있는 것은 사역일지나 영성일기다. 선교사는 일차적으로 사역을 위해 선교지에 간다. 사는 것 자체가 선교라고 할 수 있지만 살기 위해서 가는 것만은 아니다. 선교사에게는 사역이 필요하다. 그 사역을 매일 기록하는 것은 선교사에게 큰 의미가 있다. 사역일지를 쓸 때, 선교사로서의 책무를 제대로 감당했는지를 점검할 수 있다. 사역일지를 쓸 때, 그것이 선교보고가 될 수 있다. 사역일지는 선교전략도 될 수 있다. 사역일지는 후배 선교사들을 위한 사역지침이 될 수 있다. 사역일지는 게으른 자신을 일깨워주는 역할을 할 수 있다. 사역일지에 아무것도 쓸 게 없다면 선교사로서의 책무를 못하고 있다는 증거가 된다. 그러기에 사역일지는 선교사를 다시 일어서게 하는 도구가 된다.

 

요즈음 한국의 한 교회에서 영성일기를 쓰는 운동을 하고 있다. 영성일기의 장점을 말하면서 하나님과의 교통을 친밀하게 하는 수단으로 사용하라고 권면한다. 이처럼 영성일기는 하나님과의 교제에 있어서 중요한 역할을 한다고 본다. 영성일기는 일상의 삶, 순간의 삶을 하나님 앞에서 바로 서기 위한 소중한 도구가 될 수 있다. 선교사들도 영성일기를 씀으로써 자신의 영성을 관리할 수 있다. 자신의 영성을 위해 좋은 도구를 사용하는 것도 하나의 지혜다.

 

글을 써서 책을 내거나 연구 논문을 작성할 때 글쓰기 실력이 기초가 되어야 한다. 글쓰기 실력은 하루아침에 늘어나는 것이 아니다. 계속해서 일기를 통해서 글쓰기를 한 사람은 공적인 글을 쓸 때 기본 글쓰기 실력을 갖출 수 있다. 선교사가 글을 꼭 써야 할 때나 연구 논문을 써야 할 때 일기를 써온 사람은 쉽게 쓸 수 있지만 그렇지 않는 사람은 많은 시간을 투자하여 글 쓰는 노력을 따로 해야 한다. 그냥 얻어지는 좋은 글은 없다. 선교사는 일기를 통해 자신의 지친 영혼을 회복시킬 뿐 아니라 건강한 사역을 할 수 있는 기초를 만들 수 있다. 또한 사역의 시너지효과를 가져올 수 있다. 일기를 쓰는 시간과 노력은 결코 헛된 시간이 아니다.

 

선교사가 시간과 재정, 그리고 삶의 자기관리가 되지 않으면 선교사로서의 직무를 제대로 감당하기 어렵다. 일기는 자기관리가 되는 사람이 쓸 수 있다. 역으로 생각해서 일기를 쓰지 못하는 사람은 자기관리가 잘 안 된다는 하나의 증거가 될 수 있겠다. 일기를 통한 자기관리가 되지 않는 사람이 어떻게 선교사역을 제대로 할 수 있겠는가? 선교사가 일기를 써야만 훌륭한 선교사가 될 수 있다고 일방적인 주장을 하는 것은 아니다. 일기를 쓰지 않아도 훌륭한 선교사가 될 수 있다. 그러나 일기를 쓰면 더 훌륭한 선교사가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일기의 장점을 알았다면 지금이라도 하나님이 주신 소중한 인생을 더 귀하게 살기 위해 일기쓰기를 시작하지 않겠는가?

 

2) 글쓰기 취미생활

글쓰기로 취미생활을 할 수 있다. 취미로서의 글쓰기는 에세이(수필, 산문). 에세이는 글쓴이가 주제를 가지고 지어낸 이야기다. 에세이를 취미로 글을 쓰다보면 책으로도 펴낼 수 있다. 어쩌면 책을 내기 위해 에세이를 쓴다고도 볼 수 있다. 에세이가 일기와 다른 점은 에세이는 글을 읽을 사람을 염두 해 두고 쓴다는 점이다. 에세이를 쓰기 위해서는 독서도 필요하고 여행이나 많은 묵상도 필요하다. 그리스도인들에게는 하나님과의 관계, 성경 말씀 묵상 등의 주제를 가지고 에세이를 쓸 수 있다. 많은 사람들이 블로그에 자신의 글을 올린다. 블로그의 글은 다른 사람들에게 보아달라고 올리는 것이다. 에세이를 쓰다보면 창의력이 생긴다. 아무런 의미 없는 글을 블로그에 올리거나 책으로 낼 수는 없다. 일상의 삶에서 어떤 주제로 써야 하는 가에 대한 많은 생각을 해야 쓸 수 있다. 그러한 고민을 하면서 창의력이 키워지는 것이다. 또한 단순한 느낌이나 경험만이 아니라 때론 정확한 근거가 있어야 한다. 근거를 찾기 위해서는 책을 읽어야 하고 공부를 해야 한다. 말씀 묵상 같은 글쓰기를 위해서는 묵상의 시간도 필요하다. 세상에 공짜는 없다. 글쓰기에 투자한 만큼 그 유익은 엄청나다.

 

요즈음은 이전보다 책을 낼 수 있는 방법이 더 많아졌고 쉬워졌다. 개인이 출판사를 어렵지 않게 낼 수도 있다. 출판사에서 출판을 거절당해도 많은 비용을 투자하지 않고 자비로도 출판 할 수 있다. POD라는 디지털 인쇄 방식으로 출판을 한다면 출판 비용 없이 자비 출판이 가능하다. 이 경우 북 디자인을 저자가 직접 해야 한다. 요즈음 선교에 대한 책들은 수익이 적기에 출판계에서 큰 인기가 없다. 자비 출판을 해야 하지만 책을 낼 수 있는 길은 많다.

 

선교사가 책을 낸다는 것은 사역과 선교사의 생활을 정리할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된다. 선교사가 책을 쓰고자 한다면 누구보다도 많은 소재를 가지고 있다. 선교 현장이라는 좋은 콘텐츠(contents)를 가지고 있다. 한국에 거주하는 사람들이 외국에 일주일 혹은 한 달 정도 여행을 하고 나서 쓴 여행기가 셀 수 없을 만큼 많이 출판되고 있다. 이런 현실을 볼 때 선교사에게 사는 그 자리가 모두 책을 쓸 재료가 될 수 있다. 무엇보다도 그리스도인들에게는 하나님을 향한 믿음의 주제들이 무궁무진하다. 사람들이 출판을 하는 목적 중에 중요한 것은 책을 많이 파는 것이다. 사람들에게는 책을 내는 것보다 얼마나 팔리느냐가 더 중요할 수 있다. 그러나 선교사들에게는 책을 많이 팔지 않아도 책을 낼만한 많은 이유와 가치들이 있다. 필자는 선교지에서 좀 더 많은 글을 쓰고 그것을 책으로 냈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하는 아쉬움이 있다. 지금은 책을 쓰기 위해 해외여행을 하고 싶은 생각이 들만큼 선교지(해외)가 글을 쓰고 책을 내는 데 소중한 자료의 보고寶庫.

 

선교사나 교회 사역자들이 글을 쓰기 위해서는 일상의 삶이 중요하다. 사람들은 보통 에세이를 쓸 때 자신의 삶과는 별개로 써도 별 상관없다. 독자들에게 많이 읽히는 내용으로 영향력을 끼치면 되지만(그것도 아무나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며 쉬운 일도 아니다. 기독교 사역자들은 삶의 기반이 되는 글을 써야 한다. 행동과 동떨어진 글쓰기는 큰 의미가 없다. 왜냐하면 복음의 능력은 말에 있지 않고 그 사람의 행동과 삶 자체에 있기 때문이다. 어떤 설교자가 그의 삶과 일치하지 않는 설교를 한다면 그 설교는 좋은 설교가 아니다. 설교자 자신의 삶과 전혀 무관한 설교내용은 감동을 주지 못한다. 물론 설교자가 자신이 설교한 그대로 살기는 어렵다. 설교한 그대로 사는 설교자가 있다면 그는 예수 그리스도뿐일 것이다. 그러므로 설교자는 설교한대로 사는 것이 아니라 사는 그것을 설교하는 것이다. 설교한 데로 살지 못했다고 고백하는 것이 진실 된 설교다. 그러므로 삶과 무관한 설교를 하는 설교자가 말을 잘한다면 잠시 싹이 나고 기운이 자랄 수는 있지만 진정한 열매를 맺지 못한다. 그리스도인들의 진정한 열매는 그의 전인의 삶에 달려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글을 쓰고 책을 내는 것은 하나님 앞에서 그의 자녀로서 합당하게 살려는 노력이 된다. 글은 첫 번째로 자신을 위해 쓰는 것이고 그리고 다른 사람을 위한 것은 두 번째다. 물론 하나님을 위해 쓰는 궁극적인 목적은 변함이 없다.

선교사들은 소설이나 시를 쓰는 취미도 가질 수 있다. 인도네시아의 한 선교사는 꾸준히 시를 쓴다. 그는 재외동포 시 경연대회에서 1등을 하기도 하였다. 이런 시와 소설은 기독교 세계관 가운데 쓰이기에 독자들에게 간접적으로 복음을 전할 수 있는 기회가 된다. 시와 소설을 책으로 펴낸다면 복음의 씨를 뿌리는 역할을 하게 되는 것이다. 시나 소설을 쓰는 작가가 되는 것은 선교사일지라도 하나님이 주신 은사를 활용할 수 있다. 하나님이 주신 은사를 활용하여 시와 소설이라는 장르를 통해 또 다른 사역을 할 수 있다. 선교사라고 해서 시나 소설을 써서는 안 된다는 원칙은 없다. 오히려 그런 작업들을 통해서 선교사로서 또 다른 귀한 사역을 감당할 수 있기도 하다.

 

3) 기도편지와 보고서

선교사라면 반드시 써야 할 글의 장르가 있는데 그것은 선교 기도편지와 사역 보고서다. 어느 선교사도 기도편지를 쓰는 것에서 면제 받을 수는 없다. 왜냐하면 선교사는 공인이며, 공인은 보고를 해야 하기 때문이다. 기도편지는 공인의 활동을 교회와 후원자들에게 보고하는 중요한 도구이다. 선교사가 기도편지를 쓰지 않는다면, 이미 공적인 선교사가 아닌 것이다. 기도편지는 단순히 재정후원을 받기 위한 도구가 아니다. 기도편지는 사람들에게 선교를 일으키는 선교 동원의 수단이며, 아울러 기도의 후원을 일으키는 방법이다.

 

기도편지는 자주 쓸수록 좋다. 어떤 선교사는 페이스 북에 글을 매일 올린다. 이 선교사는 후원자들과의 소통의 도구로 페이스 북을 사용한다. 소통을 위해 매일 페이스 북에 글을 올리는 선교사를 생각한다면 선교사가 기도편지를 적어도 두 달에 한 번 정도 쓰는 것은 꼭 필요하다. 후원자들은 기도편지를 통해 기도의 동기를 얻는다. 기도는 선교에 있어서 무엇보다 중요하다. 후원자들의 중보 기도는 전적으로 필요하다. 선교는 영적 전투이다. 영적 전투의 무기는 기도다. 기도 없이 사역할 수 없다. 후원자들에게 기도편지는 말 그대로 기도를 위한 편지다. 재정후원을 위한 편지가 아니다. 물론 기도편지가 재정을 모금하는 수단이 되기도 하지만 기도편지는 본질적으로 기도를 위한 편지가 되어야 한다. 기도편지도 선교사의 일기처럼 나중에 중요한 선교역사가 될 수 있다. 선교역사 자료는 대부분 공식적 기록인 기도편지를 통해 얻어진다.

 

선교사가 기도편지를 자주 쓰기 위해서는 자기만의 쓰는 틀을 마련하는 것이 좋다. 필자의 경우 기도편지를 받는 사람들의 입장에서 기도편지의 틀을 만든다. 선교사의 삶과 사역을 나누는 공적인 편지이지만 편지를 읽는 사람들이 궁금한 것을 우선으로 쓴다. 기도편지는 읽는 사람 중심으로 써야 하기 때문이다. 선교사의 기도편지를 받는 사람들의 대부분은 가족을 비롯한 지인들이다. 가족이나 지인들도 후원자이다. 한국은 관계문화이기에 후원도 주로 관계를 통해 이루어진다. 그러기에 개인적인 관계가 없는 재정후원자는 그렇게 많지 않다. 그렇다면 개인적인 관계가 있는 지인들은 선교사의 어떤 소식을 듣고 싶어 할까? 선교사의 안부를 먼저 궁금해 할 것이다. 선교사 식구들의 건강에 대해 궁금해 하고 생활은 어떠한지에 대해 제일 먼저 알고 싶을 것이다. 선교사의 개인 생활이 안정되어 있어야 사역도 가능하다. 그런 면에서 필자는 지금 필자와 가족들이 어떻게 사는지에 대해 먼저 설명한다. 그리고 그동안의 선교사역이 어떻게 진행되고 있는지에 대해서 쓴다. 마지막에는 선교지에 있으면서 특별히 경험한 이야기를 쓴다. 그것은 선교지 문화 경험, 개인 성경묵상, 선교지 사람들의 이야기 등 다양하다. 그리고 마지막에는 기도제목을 정리해서 올린다. 기도제목은 편지 내용의 요약이 될 수도 있다. 기도편지를 읽는 사람들이 기도편지의 내용을 전부 읽지 않을 수도 있다. 바쁜 사람들은 기도제목만 본다. 기도제목을 보면 선교사에게 중요한 일들이 무엇인지를 알 수 있기 때문이다. 지금까지 필자가 쓰는 기도편지의 틀을 다시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서론: 인사

선교사의 생활과 근황

선교사역

특별한 사건, 이야기, 말씀 묵상

기도제목

 

모두가 필자와 같은 틀을 사용할 필요는 없다. 자기만의 틀을 만들고 그 틀에 따라 내용을 쓰면, 기도편지를 쓰는 부담을 줄일 수 있다. 그 결과 기도편지를 자주 쓸 수 있다.

 

KWMA에서 선교행정학교에서 기도편지를 쓸 때 참고해야 할 부분을 다음과 같이 설명하였다. 선교원리에 벗어나지 않는다.

개성을 살린다.

논리적이어야 한다.

조화와 일치가 있어야 한다.

객관성이 있어야 한다.

전달효과가 있어야 한다.

진실이 담겨있어야 한다.

윤리성이 있어야 한다.

관심 있는 내용을 선택한다.

창의력과 실험정신이 있어야 한다.

비전을 제시해야 한다.

전문성이 있어야 한다.

 

선교사가 기도편지를 작성할 때, 주의해야할 가장 중요한 것은 정직성이다. 기도편지는 사람에게만 보이는 것이 아니다. 하나님 앞에서도 부끄럽지 않는 내용을 담아야 한다. 똑같은 내용이라도 과장 혹은 축소할 경우 사실을 왜곡하게 된다. 예를 들면, 사역을 위해 일 년에 한 번 방문한 지역에 대한 기록을 할 때, 방문주기를 밝히지 않는다면 선교지 상황을 모르고 읽는 사람들은 그곳에 자주 가는 것으로 이해할 수 있다. 오래 전에 한 선교사가 KBS 방송국에서 외국에 사는 자랑스러운 한국인을 소개하는 프로그램에 나왔다. 방송국에서는 사람이 거의 들어가지 않는 오지 정글에 땀을 흘리며 힘들게 걸어서 들어가는 선교사를 촬영하였다. 선교사는 힘든 지역이지만 자신이 꼭 들어가는 것은 그곳의 어린이들을 돕기 위해서라고 자랑스럽게(?) 설명하였다. 그러나 실제로는 일 년에 한 차례 약간의 학용품 몇 종류를 사서 전달해 주는 것이 전부였다. 그곳 사정을 잘 아는 필자가 그 프로그램을 보았을 때, 이것은 정직하지 못한 방송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선교사는 사역 보고서를 정기적으로 기록해서 보고해야 할 책무가 있다. 보고 대상은 파송교회와 선교단체이다. 선교사를 하나님 나라의 대사, 혹은 교회의 대사라고 말 한다. 국가의 대사로 외국에 나간다면 당연히 대사의 공적임무 상황에 대해 보고해야 한다. 이처럼 선교사도 공적인 사역 업무를 보고해야 한다.

 

선교사의 보고서는 궁극적으로 선교사 자신을 위한 것이다. 보고서를 작성하는 동안 선교사가 스스로 자신의 사역을 돌아볼 수 있다. 부족한 부분과 잘되는 부분을 정직하게 정리할 때 그것은 선교사에게 큰 도움이 된다. 보고서는 또한 선교단체의 중요한 기록물이 될 수 있다. 선교단체가 선교사들의 보고서를 잘 정리한다면 그 선교단체의 역사가 된다. 잘 정리된 선교사들의 보고서는 후배 선교사들에게 선교지 생활과 사역의 지침이 될 수 있다. 이렇게 중요한 사역보고서를 한국 선교사들은 얼마나 정기적으로 작성할까?

 

사역 보고서는 가능하면 자세하게 기록하는 것이 좋다. 필자의 경우는 작성해야 하는 주제를 정해서 그 주제에 따라 작성하였다. 여기서 필자는 첫 선교지 에콰도르에서 사역할 때는 일 년에 4차례씩 정기적으로 보고서를 작성하였지만 그 후로 본부 사역을 하고 필리핀에서 사역을 하면서 보고서 작성 횟수가 줄어들었음을 고백한다. 그 주제로는 1) 가정생활(건강, 여가 생활, 자녀교육, 부부관계 등 포함), 2) 영적인 상태(말씀묵상과 기도생활), 3) 지적인 자기 계발(언어, 책 읽기, 연구 등), 4) 개인 사역, 5) 선교지 팀 사역, 등이 있었다. 보고서 분량은 A4 용지 10페이지 정도였다. 지금도 보고서를 보면 그 때 어떻게 살았으며 어떤 사역을 했는지에 대해 기억하며 추억하게 된다. 물론 현재 사역에도 도움이 되는 부분이 많이 있다. 한국 선교사들은 성향상 보고서 작성을 하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니지만 사역 보고서를 작성하는 것을 가장 중요한 사역으로 여겼으면 한다.

 

4) 선교사 연구

선교사들은 자기 계발을 위해 연구를 계속할 필요가 있다. 선교사 모두가 다 공부해야 하는 것은 아니지만 연구를 계속해야 하는 선교사가 있다. 대학원에서 학위를 받기 위해 공부하는 선교사가 있는데, 이 경우에는 학교에서 요구하는 논문을 써야 한다. 논문을 쓰는 방법은 학교마다 다르다. 각 학교에서 논문을 작성하는 방법을 가르칠 뿐 아니라 논문을 쓸 수 있도록 도와준다.

 

선교사가 공부를 해야 하는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다. 선교사가 하는 사역을 이론적으로 점검하기 위해서 공부할 수 있다. 사역에 학위 자체가 필요한 경우도 있다. 사역의 질을 더 높이기 위해 자기발전 차원에서 할 수 있다. 선교사가 학문적으로 뒤 떨어져서는 안 되기에 하는 경우도 있다. 선교사들이 모두가 다 학위를 위해 공부해서는 안 되지만 선교사가 공부하는 것을 지나치게 부정적으로 볼 필요는 없다. 선교사가 사역을 잘하기 위해 공부해야 한다면 당연히 해야 한다. 공부하지 않는 선교사, 자기성장이 안 되는 선교사가 어떻게 사역을 잘 할 수 있겠는가? 선교사의 연구를 통한 이론과 선교사가 하는 사역 실행은 기차의 두 레일과 같다. 선교사의 사역은 이론과 실천의 차원에서 두 레일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기차는 한 레일로 달릴 수 없다. 선교사의 사역도 이론과 실천이라는 측면에서 이론도 사역이 된다. 그러기에 선교사가 꾸준히 공부하는 것은 이론으로서 사역에 필수적이다. 다만, 사역을 위한 공부가 아닌 공부 자체를 위한 공부가 되는 것은 주의해야 한다. 후원자들의 상황과 헌신을 기억하면서 겸손하게 공부해야 할 것이다.

 

선교사의 공부는 학교에서 할 수 있는 것만은 아니다. 선교사 스스로 할 수 있다. 선교사가 학교에 가서 공부하기 위해서는 일정한 시간을 따로 내야 하고 재정적인 지출도 감수해야 한다. 선교사에게 시간과 돈은 선교사의 책무 차원에서 잘 관리해야 한다. 선교사에게 시간과 돈이 항상 넉넉하지 않다. 그러기에 학교에서 공부를 하지 못하더라도 혼자서 얼마든지 스스로 공부할 수 있다. 책을 통해서, 혹은 선교사들과 스터디 그룹을 만들어서 공부할 수 있다. 앞에서 선교사의 모임을 회의 중심에서 학습 공동체로 만드는 것이 이상적이라는 설명을 하였다. 선교사들이 학습 공동체를 통해 모여 함께 공부할 때 굳이 학교에 다니지 않고도 공부할 수 있다. 학습 공동체를 만들어 선교사들이 함께 공부할 때 학교에서 하는 공식적인 공부보다 더 좋은 효과가 있을 수도 있다. 선교사들이 공부할 때 선교단체 연구소(연구 개발원)에서 멘토 역할을 하면서 가이드를 제공할 수 있다. 이런 공부를 통해서 선교사들이 함께 선교전략을 만들어 낼 수 있다. 이렇게 만들어진 선교전략은 선교학자들이 사무실에서 만들어 내는 전략과는 달리 실제적으로 활용할 수 있는 전략이 된다. 선교 연구원에서)는 학습 공동체를 어떻게 도울 수 있으며 가이드 할 수 있는지에 대해 계속해서 연구할 수 있다. 선교단체 연구원은 선교사들이 연구위원으로서 사역과 동시에 현장에서 공부하면서 선교전략을 만들어 낼 수 있도록 도움을 주는 역할을 수행할 수 있을 것이다.

 

5) 글을 잘 쓰는 방법

선교사가 글을 잘 쓰기 위한 첫 번째 방법은 계속해서 글을 쓰는 것이다. 아무리 뛰어난 재능을 가진 사람도 글 쓰는 연습을 하지 않는다면 잘 쓸 수 없다. 그러나 재능이 좀 부족해도 글을 자주 쓰면 좋은 글이 나올 수 있다. 물론 선교사가 모두 글을 잘 쓰는 전문 작가가 되라는 말은 아니다. 전문 작가가 아니더라도 자기만의 글을 쓸 수 있는 사람이 되라는 것이다. 좋은 글을 쓰기 위해서 지금 당장 글을 써보지 않겠는가?

 

선교사가 글을 잘 쓸 수 있는 두 번째 방법 글을 쓰는 것은 글의 문장 실력이 아니라 가지고 있는 생각이다. 바른 생각을 가지고 있으면 좋은 글을 쓸 수 있다. 생각이 좋으면 좋은 글이 나온다. 그러나 생각이 바르지 않으면 좋은 글을 쓰기 어렵다. 선교사는 사람 됨됨이가 우선인 존재다. 바른 생각과 정직한 삶이 뒷받침 된다면 선교사도 얼마든지 좋은 글을 쓸 수 있다. 훌륭한 작가가 되기 위해서는 문장실력이 우선되어야 하지만 선교사는 훌륭한 작가가 아니라 훌륭한 사람이 된다면 문장실력이 부족해도 좋은 글을 쓸 수 있다.

 

세 번째는 자신의 색깔로 글을 쓰는 것이다. 글은 자기만의 스타일이 있다. 어떤 사람이 책을 잘 내고자 해서 자신의 원고를 전문가에게 수정 혹은 편집을 부탁한다고 가정해 보자. 아니면 자신이 써야 할 스토리를 얘기해주면 전문가가 글로 만들어준다고 가정해보자. 그렇게 나온 책이 정말 그 사람의 책인가? 그렇지 않다. 내용은 자신의 것일지 몰라도 책은 그 사람의 것이 아니다. 엄밀히 따지면 그 사람의 이름으로 낼 수도 있지만 그 사람의 문장 색깔이 들어가지 않았기에 그 사람의 것이 아니다. 자신의 문체로 쓰되 조금 어색한 표현이 들어갈지라도 자신의 개성이 들어간 혹은 자신만의 문장으로 표현할 때 그 작품이 진짜 그 사람의 것이 된다. 그런 책이 가치 있는 책이다.

그렇다면 선교사도 충분히 자기 글을 쓸 수 있고 책을 낼 수 있는 저자가 될 수 있다. 글을 쓰고자 하는 마음먹기에 달렸다.

 

네 번째는 좋은 글을 쓰기 위해 다른 사람의 도움을 받는 것이다. 다른 사람이 쓴 책을 가까이 해야 한다. 책을 많이 읽을 때 글을 쓸 수 있는 실력이 늘어간다. 또한 글을 쓰는 방법에 대한 책들을 보고 공부하는 것이다. 시간이 된다면 글 쓰는 학원이나 평생 학습관에서 글 쓰는 법을 배울 수도 있다. 이런 노력이 향상된 글을 쓰게 한다.

 

다섯 번째는 묵상시간을 많이 갖는 것이다. 글은 생각에서 나오는 것이라고 하였다. 많은 생각과 묵상의 시간이 글의 내용을 만든다. 좋은 글을 쓰기 위해서는 묵상하는 것에 시간을 충분히 투자해야 한다.

 

여섯 번째는 메모의 습관을 들이는 것이다. 사람의 기억은 한계가 있기에 메모가 필요하다. 언제나 메모 할 수 있도록 준비하면 좋다. 필자는 스마트 폰을 삼성 갤럭시 노트로 구입해서 사용한다. 이 시대는 어디서나 스마트 폰을 가지고 다니는 시대이다. 스마트 폰이 손에 있지 않는 시간은 아마도 잠자는 시간밖에 없는 것 같다. 그만큼 스마트 폰은 일상의 삶 가장 가까운 곳에 있다. 그 스마트 폰이 메모지가 될 수 있다. 다른 필기도구를 꺼낼 필요가 없다. 어떤 생각이 떠오르면 그 자리에서 바로 기록하면 된다. 사람들과 대화할 때도 생각나면 그 자리에서 바로 메모할 수 있다. 블루투스 자판기가 있다면 스마트 폰과 연결해서 언제 어디서나 컴퓨터처럼 글을 빠르게 쓸 수 있다.

 

일곱째는 단문으로 글을 쓰는 것을 권장한다. 많은 사람들은 글을 복잡하게 쓰는 습관을 가지고 있다. 복문으로 어렵게 쓰는 것이 좋은 글이라고 생각하기도 한다. 그러나 단문으로 쓸 때 쓰기도 쉽고 읽기도 쉽다. 단문으로 쓰는 글은 수준이 낮은 글이 아니다.

 

여덟째는 새로운 내용을 쓰는 것이다. 다른 사람이 알고 있는 것, 혹은 다른 곳에서 베껴 쓰는 것이 아니라 나만의 새로운 것을 써야한다. 새롭지 않은 글은 별 가치가 없다. 다른 사람의 글과는 다른 내용이 있어야 하는 것이다. 70억 인구 중에 나와 똑같은 사람은 없다. 나만의 개성이 있는 것처럼 글도 나만의 글이 가치 있는 글이다.

 

아홉째는 글 쓰는 전문가들이 말하는 글을 잘 쓰는 몇 가지 원칙을 소개한다. “나로부터 시작하라. 반복하지 말라. 한 문장에 하나의 정보만 담아라. 접속사를 쓰지 말라.”

 

마지막으로 목사나 선교사가 글을 쓰고 연구하는 방법을 언급한다. 성경 연구와 글의 주제를 얻는데 도움이 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김기현 목사의 글을 소개한다(김기현. 2015).

 

일일일 법칙을 제안한다.

첫째, 성경 1, 성경 66권의 흐름을 꿸 줄 알면서도 그 중 한 권에 익숙한 에스라가 되는 것이다. 너무 분량이 많은 이사야서 등은 피하고 가급적 3-6장 분량의 성경을 고른다. 최소한 백번 이상을 읽고 통째로 암송하고 관련 서적을 수십 권 읽고 정리한다. 그것을 정기적으로 설교하고 가르치면 이미 전문가다. 입소문이 나서 외부에서 초청받을 일이 생긴다. 나는 하박국서와 야곱을 읽고 책을 썼다. 지금은 욥기와 빌레몬서를 열독 중이다.

 

둘째, 멘토 1명 전작 독서를 한다. 한 사람의 모든 작품을 다 읽는 독서다. 예컨대 CS루이스의 것은 모조리 읽는다. 일만 스승이 뭔가. 아예 스승도 없는 시대에, 교우들의 스승과 아비가 되어야 할 목사에게 책으로라도 멘토를 사숙하는 것은 극히 유일하다. 나의 전작 독서 목록에는 레슬리 뉴비긴, 자크엘룰, 톰 라이크, 헨리 나우웬, 존 요더 등의 이름이 있다.

 

셋째, 주제 1, 목회 사역에 관련해서 수십, 수백 개의 주제어가 있다. QT, 기도, 예배, 용서, 성품, 일기쓰기, 사회참여, 환경, 결혼, 청소년, , 영화, 음악, 미술 등. 취미처럼 즐기면서도 오타쿠처럼 한 주제를 파고든다. 100권이 어려우면 최소한 50권을 독파한다. 10권 읽기가 힘들지 그 다음부터는 술술 넘어간다. 나는 변증, 예배, 자살, 세계관에 관련된 책을 쓰고 강의한다. 특히 독서와 글쓰기는 내 전문 브랜드가 되어 로고스 서원이 세워졌다.

 

이 밖에도 글을 쓰는 여러 가지 방법이 있다. 그것은 각자가 연구하여 자신의 방식대로 글을 써야 한다. 또한 모든 종류의 글을 다 쓸 수는 없다. 자신에게 맞는 글을 쓰는 것이 중요하다. 그것을 위해 노력하고 지금부터 글쓰기 작업에 들어가기를 바란다. 글은 자신의 성장에 도움이 되고, 균형 있는 사역을 할 수 있는 기반이 된다. 글을 쓰면서 리더십이 계발된다. 아울러 글을 쓰는 것은 복음을 전하고 사람을 키울 때 사용할 수 있는 중요한 방법이 된다. 결국 글 하나님 나라의 확장과 하나님께 영광을 돌릴 수 있는 소중한 도구가 된다. 선교사와 선교단체, 그리고 교회와 그리스도인들이 글쓰기를 통해서 하나님 나라의 확장에 기여하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결론

 

선교단체는 하나님 나라의 확장에서 중요한 역할을 감당할 뿐 아니라 선교사 한 개인의 역사에도 영향을 미치는 중요한 조직이다. 선교단체에 선교사의 인생이 달려 있다고 할 만큼 선교단체의 역할은 크다. 선교단체가 만약 잘못되면 소속 선교사들이 피해를 그대로 입게 된다.

그런 면에서 선교단체가 바로 서는 것은 한국 선교에 있어서 핵심이라 할 수 있다. 그러기에 선교단체가 우선순위를 정해 선교단체의 방향과 해야 할 일을 명확하게 정해야 한다, 무엇보다 선교단체의 선교연구소이 중심이 될 필요가 있다. 선교연구소는 지금까지의 선교 사역과 역사를 정리함과 동시에 앞으로의 선교 전략을 만들어야 한다. 선교단체의 연구소는 학습 공동체의 조직과 문화를 만들어갈 역할을 감당해야 한다. 선교 연구소는 학습 공동체를 통해 공부하는 선교사, 자기관리를 통한 자기계발을 할 수 있는 선교사가 될 수 있도록 돕는 역할을 할 수 있다. ‘학습 공동체가 자리를 잡고 제대로 시행이 될 때, 선교단체가 해야 할 중요한 일들을 연계해서 행할 수 있다. 현재 선교단체가 해야 할 중요한 사역이란 선교사 멤버케어’, ‘선교사 재교육’, ‘선교사 리더십 계발’, ‘선교지(필드) 체제등이다. ‘학습 공동체가 선교 연구소를 통해 시행될 때 이런 중요한 선교단체의 사역들을 쉽게 이루어 갈 수 있을 것이다.

선교단체가 가야 길은 선교연구소를 중심으로 학습 공동체를 만들어 가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