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리 메뉴

선교교육 연구원(IMER)

제 4-4강도시선교와 교회성장 전략 본문

선교 교육, 훈련 자료/선교학교 4학기

제 4-4강도시선교와 교회성장 전략

후앙리 2020. 4. 21. 19:06

 

차례

제 1부 도시선교

I. 서론

II. 도시에 사람들이 몰려드는 배경

III. 왜 도시선교가 논의 되어야 하는가?

IV. 도시선교가 소홀히 되어 온 이유

V. 도시화의 개념

VI. 도시문제

VI. 도시선교 전략

VII. 결론

제 2부 교회성장 전략

I. 교회성장 전략의 배경

II. 교회성장 전략의 원리

III. 교회성장 운동의 방향

 

제 1부 도시선교

I. 서론

성경에서 도시는 악의 상징이다. 소돔과 니느웨가 그랬다. 그러나 아브라함에게 있어서 소돔은 구원받아야 할 도시였다. 니느웨도 하나님께는 구원의 대상이었다. 현대 도시는 발전과 팽창을 거듭하고 있으며 인구도 늘어가고 있을 뿐 아니라 죄악으로 가득차고 있다. 그러기에 우리 그리스도인에게 도시는 전도의 대상이다. 복음이 전해지고 구원받아야 할 도시인 것이다. 도시에 대한 선교는 하나의 전략 차원이 아니라 우리 그리스도인이 당연히 해야 할 의무이고 책임이다.

 

II. 도시에 사람들이 몰려드는 배경

 

1. 과학과 의학의 발달

도시 인구가 증가하는 것은 질병과 영양실조, 전쟁 등을 극복한 의학의 발달로 인한 인구 증가를 들 수 있다. 산업혁명이 일어나면서 새로운 농약의 개발과 농작법의 발달로 인한 식량 공급의 증가로 영양실조의 위험이 줄어들었기 때문에 인구는 증가하고 있다. 의학의 발달은 유아 사망률이 줄어드는 원인이 되기도 한다. 세계 인구가 늘어나면서 자연히 도시 인구도 증가하고 있다.

 

2. 3세계 인구의 급격한 증가

서구에서는 산업혁명과 의료혁명이 서서히 진행되어 부작용이 적었지만 제 3세계에서는 각종 부작용이 야기되었다. 산업발전은 전통적인 사고방식과 행동 양식을 변화시키지 못했다. 그 결과 제 3세계는 대가족 제도가 계속되고 있으며, 아기를 많이 낳는 것은 축복이요, 아기를 낳지 못하는 것은 저주로 생각하고 있다. 서구는 인구가 감소하고 있지만 제 3세계 국가는 인구가 증가하고 있는 이유다. 현재 세계인구 증가의 90%가량이 제 3세계에서 일어나고 있다.

 

3. 농촌 인구의 급격한 증가

3세계의 농촌 인구가 계속 증가하고 있지만 제한 농지 때문에 농촌에서 살기 어려워지고 있다. 자연히 인구가 도시로 이동함으로 인해서 도시 인구가 증가할 수밖에 없다.

 

4. 문화적인 혜택을 받을 수 있다는 기대감

사람들은 도시로 가면 자녀들이 더 좋은 교육 혜택을 받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사람들은 TV와 컴퓨터 등 여러 가지 문화적인 혜택을 기대하기에 도시로 이주해 간다.

 

5. 도시가 행정 중심지가 됨

사람들은 도시가 행정적으로도 편리한 생활을 할 수 있다고 생각하여 몰려든다.

 

6. 일자리를 얻을 수 있다는 기대감

산업 구조가 도시 중심으로 되어 있기에 사람들은 도시로 가면 일자리를 얻을 수 있다는 기대감이 있다. 농촌에서는 일자리가 부족하고 도시에는 일자리가 있다고 생각하는 젊은이들에게 도시는 대단한 기대와 소망이 된다.

 

7. 농촌 생활의 어려움

도시로 간다고 해서 일자리가 많은 것도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도시로 몰리는 이유는 농촌보다는 삶의 기반이 잘 되어 있어서 각종 혜택이 있기 때문이다. 농촌과 시골에서는 아직도 전기와 수도가 없는 곳이 많지만 도시는 최소한 그런 것들은 제공이 된다. 멕시코 빈민가에 살고 있는 한 여인은 이렇게 말했다. “내가 태어나서 처음으로 수세식 화장실과 수돗물을 쓰고 있다”. 이 말은 곧 아무리 어려워도 도시가 농촌보다는 생활하기에 더 편리하다는 의미이다. 이런 이유로 도시 인구는 증가하고 있는데, 현재 제 3세계는 매일 약 180,000명의 사람들이 시골을 떠나 도시로 이주하고 있다.

 

8. 교통, 통신의 발달

교통과 통신의 발달은 사람들이 도시가 어떤 곳인지를 알게 하는 역할을 하였고 그 결과 사람들의 도시로의 이주를 장려하는 요인이 된 것이다.

 

 

III. 왜 도시선교가 논의 되어야 하는가?

 

1. 세계 인구의 반 이상이 도시에 거주하기 때문이다.

 

도시지역(%)

1990 2000 2025

도시인구()

1990 2000 2025

전 세계

45 51 65

24 32 55

3세계

37 45 61

15 23 44

 

현재 세계인구의 25억 이상이 도시에 거주하고 있다. 이 숫자는 세계 인구의 거의 절반이 되는 숫자이다. 사람들이 많은 도시에 선교사들은 관심을 가져야 한다는 뜻이다.

 

2. 마태복음 2414절의 순종 때문이다.

다가오는 땅 끝을 도시로 볼 수 있다. 도시는 계속 성장하고 있고 대부분의 도시 성장이 도시 빈민에서 일어나고 있기 때문이다. 예전에는 이것을 예상하지 못해서 빈민가에 교회를 세울 수 있는 기회를 놓쳐 버린 경우가 있었다. 3세계의 도시 빈민은 사람들로부터 완전히 소외된 대상이다. 현재 제 3세계 도시 빈민가에는 교회가 많지 않으며 목사가 드물며, 선교사를 찾아보기가 힘든 실정이다. 예를 들어 태국 방콕의 1,020개의 빈민가를 이루고 있는 방콕시의 인구 19.6% 가운데 고작 2개의 교회가 가정 모임이 있을 뿐이다. 방콕의 60만 매춘부를 위해 일하는 사역은 2개가 있으며, 50만에 달하는 마약 중독자들을 위한 사역은 거의 없는 편이다. 3세계의 빈곤의 인구는 어마 어마하게 늘어나고 있지만 그들 가운데 사역하는 사람들은 소수에 지나지 않는다. 아프리카 성인 남성의 1/4이 도시 내의 실업자다. 전 세계 1억의 거리의 아이들이 있다. 최종 땅 끝인 도시에 선교가 절실하게 요청되는 이유인 것이다.

 

3. 도시는 복음의 추수 지역이다.

도시는 복음에 대해 열려있는 개방 지역이다. 새로운 가치관에 대해 열려 있기에 복음에 대한 수용성이 높다.

 

1) 도시 안에 자유가 있다.

도시는 농촌이나 시골보다 더 많은 자유가 있다. 전통적인 행동 양식과 가치들은 시골에서 더욱 강하지만, 사람들이 도시에 오면 사회적 유대들은 거의 사라지게 되고 도시에서 TV나 컴퓨터, 대학 등 새로운 개념들의 세계가 있다. 산업화로 인해 도시로 이주해 오는 사람들은 조상들의 종교를 포기하게 될 가능성이 많은 사람들이다. 거기에다 시골의 생활 방식을 버리고 도시의 생활 방식을 배우는 기간은 문화적 혼란과 몰가치 상황을 경험하는 과도기가 된다. 새로운 문화와 삶의 방법들에 공격을 받기 쉽고 또 개방적인 환경이 되기에 불확실함과 염려와 두려움이 있게 된다. 도시로 이주한 사람들 가운데는 새로운 지역의 종교에 순응해야 한다는 생각을 가지고 오는 사람들이 많다. 그런 이유로 이들을 향한 복음 전도는 많은 열매를 맺을 수 있는 것이다.

미국 독립 전쟁이 끝난 후에 이민자들이 미국에 몰려들었을 당시에 사람들은 복음에 매우 민감했다. 침례교와 감리교회는 이들 이민자들에게 접근하여 복음을 전하여 좋은 결실을 맺었다. 반면에 회중교회는 이민자들에 대한 관심이 적었고 교회는 쇠퇴하게 된 역사가 있다.

1973년 레바논, 요르단, 이집트에서 그리스도께 회심한 자들을 분류해 보았다. 이들 중에는 전통주의자들, 현대주의자들, 중도주의자들이 있었는데 기독교에 민감한 관심을 가진 사람들은 복음을 받아들였다. 5세기 초 게르만 민족이 로마 제국을 침입한 후 겨우 1 세대가 지나서 그들의 전통 종교를 바꾸고 기독교로 개종하게 된 것은 역시 그들이 로마 제국의 도시들에 이주하면서 그들의 사회적 조건이 붕괴되었기 때문이다.

일본도 1850년대에는 농촌에 교회가 부흥이 되었지만 1900년대에 산업화로 말미암아 도시화가 계속 됨으로 인해서 도시교회가 발전하게 되었다. 도시에서 새로운 관계를 맺게 되면서 사람들은 황량한 도시 속에서 한 개인으로 살아야만 한다. 도시 생활의 외로움과 고통은 많은 사람들에게 복음을 받아들이게 하는 요소가 되었다. 그 결과 일본은 도시에서 주로 지식인들에게 많은 기독교인이 있다. 아프리카에서도 부족 사람들이 촌락과 도시 중에서 어느 곳에서 더 복음에 귀를 잘 기울이는지에 대해서 조사했을 때, 도시에 정착하고 나서 처음 몇 년 동안 복음을 잘 받아 들였다는 역사가 있다. 라틴 아메리카의 교회 장에 있어서도 한 그룹의 조사에 의하면 라틴 아메리카 전체에 신흥 도시로 이주해온 시골 사람들이 밀집한 곳에서 교회성장이 제일 크게 일어나고 있다고 했다. 멕시코에서 복음에 가장 민감하게 반응하는 사람들은 하류층인데 그 중에서도 특히 최근에 시골에서 도시로 이주한 사람들이라고 한다. 이들에게는 전통종교에 대한 자유가 있는 것이다.

 

2) 도시 안에 운동이 있다.

도시 안에는 같은 계층 간에 교류하는 것이 자연스럽게 나타난다. 많은 교류 속에 있는 사람들에게 복음은 잘 전해질 수 있다.

농촌 교회와 도시 교회를 연결해서 농촌의 그리스도인이 도시로 이주해갈 때 그 지역에 있는 교회와 바로 접촉할 수 있도록 하는 방법을 사용할 수 있다. 많은 사람들이 농촌에서 도시로 이주하면서 신앙을 떠나는 것을 방지하도록 도농 교회의 연결이 필요하다. 미국에서 메노파 회중이 농촌에 많이 있는데 청년들이 도시로 이주하면서 다양한 직장에서 일하게 되고 또 도시에 메노파 교회가 없기에 많은 이들이 교회를 떠난 사례가 있다. 반면에 일본 메노파 교회들은 규수에서 교토로 달리는 고속 철도 선상에 있는 주요 도시들에 교회들을 개척하는 전략을 세워 좋은 효과를 보았다.

도시에 새로 이주한 사람들은 일반적으로 그들이 살고 있는 부족이나 전에 살던 마을 출신의 사람들이 살고 있는 곳 근처에 자리를 잡게 된다. 그들은 친척들이 어디에 살고 있는지 이미 알고 온다. 농촌을 떠나 도시에 사는 사람들 사이에 지속되는 친족 관계들을 이용해서 교회를 설립할 수 있다. 캐나다에 이주한 이태리 사람들이 20세기 초에 토론토에 1,000명이 살고 있었다. 다음 30년 동안 그 사람들은 13천 명으로 늘어나게 되었다. 그러다 71년에 와서는 250만에 달하는 토론토시의 12%에 달하는 인구가 되었다. 이들은 토론토시의 유대인처럼 인종적으로 밀집된 지역에 살고 있다. 토론토 지역의 북서부 지역에는 이 지역 인구의 약 39%가 이태리 사람들이다. 이곳의 어떤 지역은 약 76%에 달하는 이태리인들의 인구 조밀 지역이 되었다.

이와 같이 도시 전역에는 공통의 언어와 문화와 출신 지역을 가진 사람들로 이루어진 보이지 않은 연결망들이 있다. 사도행전의 사도 바울도 이와 같은 연결망을 토대로 선교 활동을 했음을 볼 수 있다. 바울과 실라가 빌립보 시에 도착할 때 성문 밖 강가에 기도하는 장소가 어떻게 존재했었는가(16:11-13)? 고린도 시에 바울은 어떻게 같은 장막 지기인 아굴라와 브리스길라를 만날 수 있었을까(18:1-3)? 이 시대에는 어떤 도시에 가면 같은 고향 출신의 사람들을 만날 수 있는지 금방 알 수 있었기에 그렇다. 그 때는 회당이 중요한 역할을 한 것이다. 사도 바울은 이런 사회적 연결망인 회당을 이용해서 복음을 전했다. 현재 세계에 흩어져 있는 한인 교회들도 마찬가지 역할을 할 수 있다.

친척 관계를 통해 도시에서 시골이나 농촌으로 복음을 전달할 수 있다. 도시에 있는 시골 출신자들은 도시 내에 친족들뿐 아니라 시골과도 긴밀한 관계를 가지고 있다. 홍콩의 한 마을은 런던으로 이주해간 사람들이 보내오는 송금에 의해서 생활하고 있다. 이주한 자들은 남겨진 가족의 가계를 책임질 뿐만 아니라 또 먼 거리에도 자주 왕래한다. 멕시코에서는 대부분 도시로 이주해간 사람들이 시골 땅을 그대로 가지고 있다. 아프리카 사람들은 다른 대륙보다도 시골과 도시의 유대와 왕래가 많다. 그들은 일 년에 적어도 다섯 번은 자기 시골을 방문한다. 이런 사람들을 통해서 복음이 시골로 전해 질 수 있기에 도시 사역은 많은 복음의 열매를 맺을 수 있는 것이다.

 

3) 도시는 동질집단으로 모인다.

도시들은 단 하나의 동질단위로 구성된 단위가 아니라 수많은 이질적 집단들이 섞여 사는 집성체이다. 시골에서 이주한 사람들은 도시에서 그들의 인종적, 언어적, 종교적, 사회적 정체를 상실하지 않는다. 오히려 전 세계에 있는 이주자들은 그들의 문화적 유대를 보존하기 위해 함께 살며 또 공동체 의식을 유지 할 수 있는 특정 지역들을 찾아 이주하는 경향이 있다. 페루의 리마시에는 새로 도시에 온 이주자들이 고향을 대표하는 향우회를 만들어 상부상조하며 새로운 환경에 적응한다. 이처럼 도시에는 인종 집단의식이 사라지지 않고 어떤 경우에는 더욱 확장된다. 도시에 이주해 오는 사람들은 도시에서 사용되는 공용어를 제대로 사용하지 못하는 것과 낯선 도시 문화 때문에 많은 외로움과 좌절을 경험하고 있다. 같은 인종과 같은 언어 군으로 교회를 세우는 것은 좋은 전략이다.

 

4) 도시에는 가정이 있다.

도시에는 가정이 있기에 가정을 중심으로 가정 교회를 세워서 복음을 전할 수 있다. 가정 교회들은 새로운 도시들이 갖고 있는 많은 필요들을 충족시킬 수 있다. 그리스도인들이 가정에서 모이는 작은 모임들을 통해서 새로운 이주자들이 도시로 이주해 오면서 상실하거나 약화된 공동체 의식과 개인적인 자존심을 회복할 수 있다. 도시에 사는 이주민들의 가장 큰 어려움은 외로움이라고 할 수 있는데, 이 외로움을 달래줄 수 있는 프로그램을 이용해서 복음을 전할 수 있다.

새로운 이주자들은 그리스도인들의 가정에서 모이는 작은 모임들에서 도시에서 살아가는데 매우 중요한 일차적인 관계를 맺을 수 있다. 남미의 오순절 교회가 성장한 것은 도시 이주로 사회적 혼란에 처한 이농민들에게 가정 교회를 통해 새로운 종교와 실제적인 생활의 도움을 제공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가정교회는 복음 전도를 하기에 자연스러운 환경이다. 일반적으로 사람들은 영토 의식이 있다. 어떤 장소에서 전도 집회를 하거나 교회 건물에 그들을 초청할 때 사람들은 그곳을 종교적 영토로 보기에 참석하는 것을 꺼려한다. 그러나 이 영토가 아닌 중립지역이라면 참석할 수 있는데 이곳이 바로 가정이라는 것이다. 여기서 친구들과 이웃들은 복음을 받아들이라는 압력을 받지 않고 부담 없이 모여서 복음을 접할 수 있다.

도시에 교회를 건축하기는 땅값이 비싸서 쉽지 않은 일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가난하기 때문에 교회 건물을 구하기가 어렵다는 점에서 가정교회는 효율적이다. 가정교회가 불리한 점이 있다면 한 사람의 집에 계속 모이다 보면 지루할 수가 있고 장소를 제공하는 가정도 헌신의 대가가 아주 크다. 세상에서도 불편을 감수하는 이들이 교회까지 와서 불편을 감소하라는 것은 힘든 일이고 자칫 잘못하면 문을 닫게 되는 위험에 빠지게 될 수도 있다. 이것을 이겨내기 위해서 형편이 되는대로 창고나 땅을 사서 독립을 하도록 준비해 나가야 할 것이다.

 

5) 도시에는 제도가 있다.

도시선교는 복음을 말과 행위로 증거 하라는 말이 있다. 이슬람 인들은 그들이 들어가 있는 곳에 상권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사람들이 자연적으로 이슬람으로 귀속할 수밖에 없다. 복음을 전할 때 사람들에게 직업이나 경제적인 면에서 도와야 할 필요가 이런 이유 때문이다.

 

6) 도시에 복음의 추수 종결이 올 수 있다.

추수 지역인 도시에 관심을 갖지 않고 복음을 전하지 않을 때, 이 지역은 복음에 닫힌 지역이 될 수 있다. 이전에 미국에 왔던 베트남 난민이 처음에는 복음에 수용적이었다가 차츰 수용성이 감퇴되었고 결국은 복음에 저항하게 되었다. 중국 본토에서 대만으로 피난 온 중국인들 역시 10년 정도는 개방적이었다가 그 후 다시 마음이 굳어졌다. 브라질의 한 장로교 신자가 관찰한 바에 따르면 처음에 빈민가에 들어오는 이주자들이 몇 년간은 복음에 민감한 반응을 보이지만 어느 정도 자리를 잡고 살만 해지면 빈민가를 떠나게 된다는 것을 발견한다. 떠난 후로는 복음에 둔감해 진다고 했다.

켈리포니아의 한 목사는 남미계 이민자 4세가 새로 이주해온 남미계 1세대보다 복음에 더 많이 저항한다고 보고했다. 산업혁명 당시 시골의 교구에 속해 있던 수많은 사람들이 도시로 몰려들었을 때 도시화의 의미를 잘 몰랐던 영국 교회의 목사들은 그들 가운데 교회를 세우고 목사를 파송하는 일을 게을리 하였다. 복음화의 기회를 놓쳐버린 지금의 영국 도시는 세속화되고 말았다. 한번 복음에 대한 수용성이 감퇴되면 다시 돌아오는 기간이 길어지게 되고 복음을 전하기 위해서는 더 힘든 과정이 따르게 된다. 오늘 복음에 문이 열린 수많은 도시가 내일 다시 복음의 문을 닫을 수 있는 것이다.

 

4. 도시선교는 선교 전략적으로 중요하다.

1) 도시에는 개방성이 있다.

개방성은 혼란기에 있다는 의미다. 혼란기에 정체감이 불안정 할 때 복음을 잘 받아들이는 것이다. 어느 도시는 인구의 절반이 15세 미만인 도시가 있는데, 이곳의 젊은이들은 복음에 대한 개방성이 큰 그룹인 것이다.

 

2) 인구가 많아야 성장 할 수 있다.

도시에 60% 이상의 인구가 집중되어 있다는 것은 교회가 더 많이 성장 할 가능성이 많다는 의미이다. 농촌 지역의 한 영혼도 중요하지만 더 많은 사람들을 그리스도에게 인도할 수 있는 도시선교가 중요한 이유이다.

 

3) 주변지역에 대한 영향력 때문이다.

바울의 선교전략을 보면 도시 주변지역을 통해서 복음을 전한 것을 볼 수 있다. 바울은 로마의 대륙 횡단 통로 중심 도시들에서 복음을 전했다. 그 후에 복음이 어떻게 전해졌는가에 대한 역사적인 사례는 다음과 같다.

1

알렉산더 대왕에서 6세기: 초대 교회 헬라 문명권, 도시 중심 선교

2

16세기 종교 개혁 시: 대부분 도시들이 기독교화, 종교 개혁의 중심지

3

19세기 산업 혁명 이후: 웨슬레, 무디 등의 대 부흥 운동

4

2차 대전 이 후 제 3세계 중심의 도시화: 아직 교회 성장 관련성 미약하지만 가능성 많음

 

5. 도시에는 가난한 자들이 있다.

세계 인구 가운데 33%가 제 3세계 도시에 살고 있으며, 그 가운데 최소한 40%가 빈민가에 살고 있다. 성인 남성의 1/4이 도시 내의 실업자다. 남미 대부분의 나라들은 70~80%의 인구가 가난한 자들이다. 10~20% 만이 잘사는 사람들이고 중산층은 거의 없다. 잘 사는 사람들은 국가 전체의 80%의 재산을 가지고 살고 있다. 아시아와 아프리카의 가난한 지역도 비슷하다. 전 세계에 집이 없이 떠도는 거리의 아이들은 현재 2억 명에 달한다. 그들은 낮에 길거리에서 껌을 팔거나, 구두를 닦고 밤에 여자 아이들은 몸을 팔거나 아무데서나 잠을 잔다. 이들은 가스를 마시는 등 마약에 노출되어 있다. 그렇게 사는 것을 더 자유롭게 생각하고 있기에 그들을 변화시키는 것이 쉽지 않다. 그들은 얽매이거나 공부하기 싫어하고 다시 자기 집으로 돌아가려고 하지 않는다. 대부분의 그들의 부모는 이혼한 상태이며, 술 중독 아버지들이 그들을 학대하고 있다. 많은 이들은 미혼모의 어머니를 두고 있으며, 미혼모들이 결혼하면 의붓아버지 밑에서 살아야 한다.

전 세계인구의 13%20억 명 정도가 도시 빈민가에 살고 있다. 선명회에 따르면 20세기 말에 세계인구 1/4에 해당하는 사람들이 제 3세계의 도시 빈민가에 살고 있다고 보고한다. 도시하면 성장과 산업 운동, 인구 밀집을 생각하기 전에 가난한 자들의 집합체라고 보아야 한다. 오늘날 예수님을 어디에서 찾을 수 있을까? 예수님은 부자들과도 함께 하시지만 가난한 자들과 분명히 함께 계신다. 예수님을 만나기 위해 그분이 계시는 곳으로 가야 한다.

가난한 자들은 왜 가난할까? 성경은 왜 가난한 자들이 복을 받는다고 했을까? 어떤 가난한 자들이 복을 받는가? 야고보는 가난한 자들을 왜 믿음에 부유한 자들이라고 했는가? 예수님이 말한 가난한 자들은 어떤 자들인가? 성경에는 가난한 자들, 가난, 또는 부족함이라는 단어가 245번 나온다. 다윗과 솔로몬의 군주 정치 이전에 부는 하나님이 주신 복이었고, 가난의 개념은 어떤 불행이나 저지른 죄에 대한 심판이었다. 잠언에서 악이 배를 굶게 하며(13:25), 너무 많이 잠을 자면 가난이 무장한 강도처럼 우리를 공격할 것이며, 가난은 개인적 죄악들이 만들어 내는 것이라고 설명하고 있다(6:10, 11, 21:5, 22:16, 28:22, 21:17, 28:22). 그 해결책은 여호와를 찾는 자들이 회복 될 것이라고 한다(23:1, 34:10). 잠언 308-9절에서는 가난하게도 마옵시고 부하게도 마옵소서라고 한다.

가난은 사람들을 도적질하게 만든다. 배가 고프고 가난에 고통스런 삶을 살다보면 자신도 모르게 도적질을 하게 된다.

가난은 사람들을 술 취하게 한다. 빈민가에서 제일 먼저 발견할 수 있는 사람들은 술 취한 사람들이다. 3세계에서는 대 낮부터 술 취해 있는 사람들을 쉽게 볼 수 있다. 이들이 술을 마시는 이유는 술은 가난을 잊게 하기 때문이다(31:6,7).

가난은 사람들을 부도덕하게 만들기에 가난한 사람들의 가정이 파괴되고 있다. 어떤 지역은 전체 인구의 1/6만이 처음 결혼한 여자와 살고 있다. 부도덕은 슬픔과 불안정과 가족의 해체와 미움과 살인을 유발함으로 가난을 만든다. 이처럼 개인적인 죄악들은 가난을 만들어 낸다.

가난한 자들은 다른 사람을 의존하게 된다. 가난의 원래 단어의 뜻은 구걸하는 자, 의존하는 자들이다. 가난은 다른 사람을 의존하기에 독립을 하지 못하고 가난은 계속된다.

몸이 너무 약해서 일할 수 없는 자들은 가난할 수밖에 없다. 그러나 성경은 이들이 하나님 나라에서 복을 받을 것이라고 말하고 있다.

과부들 역시 재앙으로 인한 가난한 자들이다. 여호와께서 객을 보호하시고 고아와 과부를 붙드신다(146:9).

힘든 일을 하는 아이들 또한 가난한 자들이다. 요한 일서 317절에는 누가 이 세상 재물을 가지고 형제의 궁핍함을 보고도 도와줄 마음을 막으면 하나님의 사랑이 어찌 그 속에 거할 것이냐라고 말씀하고 있다.

가난은 강탈이다. 다국적 기업이 설탕과 바나나 농장을 만듦으로 인한 부당한 토지 제도 때문에 강제로 땅을 빼앗긴 사람들은 가난하게 될 수밖에 없다. 가난한 나라들은 화폐 개혁을 자주하는데, 화폐 개혁 할 때는 가난한 사람들이 가진 돈이 그대로 종이 짝이 된다. 무지 때문에 돈을 벌어 착취를 당하는 결과가 되는 것이다. 이와 같은 가난한 자들을 위해 하나님은 중재자를 찾으신다(42:22).

가난은 인신매매를 만든다. 가난한 자들 가운데는 노예들이 있다. 시골에서 올라와 가정부 일을 하다가 주일이면 밖으로 나갔다가 남자를 만나 임신하게 된다. 그러면 그들은 직장에서 쫓겨나게 되지만 고향으로 돌아 갈 수도 없어서 다시 윤락가로 간다. 몸을 팔게 되고 가난은 그들을 떠나지 않는다. 하나님은 이들을 위해서 일할 사람을 찾으신다.

필자가 살았던 에콰도르 교회에서 모로초라는 형제가 있었다. 이 형제는 집안이 어려워서 학교에 가지 못해 공부를 할 수가 없었다. 가난한 부모 밑에서 자랐기에 부모로부터 물려받은 유산도 없다. 시골에서 도시로 나와 살지만 도시에는 아는 사람이 없다. 에콰도르는 친척 관계가 매우 중요한데, 도시에서 친척이 없기에 그를 도와줄 사람이 아무도 없다. 배운 기술도 없어 박봉에 아주 힘든 일을 해야 하고 집도 없다. 그가 자신의 집을 짓는다는 것은 엄두도 못 낸다. 자녀는 여섯 명이지만 그가 이 어려운 상황을 돌파해 나갈 방법이 없다. 이런 악순환에서 다시 일어설 수 있는 방법은 어려움 가운데서라도 자녀들을 교육시키는 것이다. 그렇지만 자녀들을 교육시키기가 어렵다. 다만 교회가 그 가정을 도와주었다. 교회의 형제자매들의 도움으로 하나님의 은혜를 경험하며 어렵지만 하나님께 소망을 두며 살아가고 있다.

성경에서 보면 솔로몬 시대 후에 가난의 개념이 바뀐 것을 볼 수 있다. 솔로몬 이후에 부자들은 가난한 자들을 하층 계급으로 보았고 인격적인 결함으로 보았다. 반대로 가난한 자들은 자신들의 가난을 억압당하는 것과 같은 것으로 보았다. ‘가난한 자들을 억압하는 자라는 표현에서 가난의 원인을 부자에게 돌렸다. 선지자들은 부자들을 억압하는 자나 불의한자라고 했고, 경건하지만 가난한 자들을 옹호하는 것을 볼 수 있다.

예수님은 자신을 가난한 자들과 동일화 하셨다. 예수님은 가난한 자들에 대해 억눌린 자들이라고 하셨다. 예수님이 말씀하신 심령이 가난한 자라는 뜻은 근본적으로 이 사회 계층과 또 그들이 그와 같은 억압에 대해 반응하는 태도를 묘사하는 표현이다.

복 받은 가난한 자들은 누구인가? 가난은 하나님이 지으신 모든 자연을 파괴하기 때문에 하나님은 가난을 반대하신다. 가난한 자들이 가끔은 의로운 사람으로 보이지만 그것은 가난한 자들이 무엇을 잘했기 때문이 아니라 그들을 억압하는 자들이 불의하기 때문에 가난한 자들을 의롭게 보는 것일 뿐이다. 가난한 자들은 억압자들에 비해 의로운 자들인 것이다. 그들의 재물이 부족하기 때문에 복을 받는 것이 아니라 부자보다 더 의롭게 보이기 때문에 가난한 자들이 복을 받는 것이다. 가난이 복이 아니라 가난한 자들이 복을 받기에 가난한자가 복이 있다고 한다. 가난은 크게 3가지로 볼 수 있다.

1) 죄악으로 인한 가난이 있다.

2) 억압으로 인한 가난이 있다.

3) 재앙으로 인한 가난이 있다.

참된 제자도의 복음은 죄악으로 생긴 가난을 변화시킨다. 하나님의 자녀들은 약한 자들의 가난을 변화시키는 사명이 있다. 복음은 억압과 불의와 착취로 생긴 가난을 변화시킨다. 가난의 상황에서 복음은 심판과 자비의 복음이다. 부자들과 억압자들에게는 회개를 요구한다(6:20-21).

 

6. 성경적인 이유에서 도시선교가 언급되어야 한다.

1) 도시에 대한 성경의 관점

성경에 총 119개의 도시가 언급되었다. 성경에 도시라는 단어는 1,127 번이나 언급하고 있다. 그러면 성경에서 도시를 어떻게 묘사하고 있는가?

 

(1) 도시는 악의 상징이다. 도시의 기원은 하나님에 대한 대체물로 세워진 것이다. 최초의 도시는 살인 후 가인이 세웠는데 이는 하나님의 배반의 결과로 도시가 생긴 것이다. 도시의 건설과 바벨탑에서도(11) 도시 문명은 하나님을 대적하는 성격이 있다. 소돔과 고모라시의 상황도 마찬가지로 도시는 악의 상징이다.

 

(2) 도시는 선의 상징이다. 여호수아 20장에서 도피성은 긍휼과 공의의 상징이다. 여호와 삼마(48:35)에서 도시를 하나님 임재의 장소로 표현했다. 시온성과 하나님의 도성(60:14, 107:4-8), 새 예루살렘(21:20)으로도 표현 되었다.

 

2) 대표적인 두 도시

(1) 소돔이 있다(18:19, 16:49). 하나님은 이 도시의 상황을 보고 계셨다. 아브라함의 기도에서 볼 수 있듯이 도시를 향한 하나님은 사람에 관심이 있으셨다. 도시 내에 있는 하나님의 사람의 존재와 도시에 대한 심판 사이에 관계를 말하고 있다. 하나님은 자신의 종을 구분하셨다. 그래서 롯과 그의 가족을 구출하셨다. 도시가 타락함으로 빈부의 격차가 생겼고, 가난한 자들이 함께 멸망당하였다. 이것이 하나님의 심판의 이유였다.

 

(2) 니느웨가 있다(요나서, 나훔서). 니느웨는 위대한 도시와 악함과 심판의 도시라는 두 성격이 있다. 이 도시도 역시 범죄의 특성이 있다. 개개인의 문제가 아닌 도시 전체의 문제다. 도시 선교의 패턴이 있다. 그것은 선교의 주도권은 하나님이시라는 것이다. 도시를 향한 하나님의 긍휼의 마음이 있다. 요나서에서 사람들에 대한 요나의 무관심을 볼 수 있다. 우리는 요나서에서 도시 선교학자인 하나님을 볼 수 있다. 하나님은 니느웨에 인구 120만 명이 있다고 하셨다.

 

(3) 도시를 바라보는 성경적 요구

모든 도시는 일반 은총의 결과다.

도시 문제는 영적 통찰력을 요구한다.

도시에 대한 긍정적 관점을 요구한다.

도시 문제 해결을 위한 성경적 접근이 필요하다.

 

(4) 성경적 도시관 회복의 필요성

창세기 127-28절에서 문화 명령의 귀결로 도시 문명이 들어간다고 볼 수 있다.

21장에서 지상 최후의 모습을 도시, 곧 예루살렘으로 언급했다.

현재의 도시는 타락 후 왜곡된 도시의 모습이다. 도시는 연속성과 불연속성이 있다. 하나님의 최초의 의도인 일반 은총은 계속되나 그 방향성이 죄의 영향을 받았다.

 

(5) 사도행전에 대한 분석

바울은 로마 행정지의 중심으로 선교를 시행했다. 바울은 단지 더 안전하거나 복음 전파를 덜 방해하기 때문에 그것들을 선택한 것이 아니었고 그 도시들은 세계적인 제국을 대표했기에 활용한 것이다. 바울이 선택한 모든 중심지들은 헬라 문명의 중심지였다. 바울은 헬라어로 설교하고, 글을 쓰고 가르쳤다. 헬라의 교육과 문명이 발달하면서 헬라어는 복음을 전파하는데 유익한 도구가 되었다. 바울이 교회를 세운 중심지들은 유대인들의 문화와 영향이 큰 도시들이었다. 이와 같은 전략은 그 당시 유대인들이 하나의 계층으로 누리고 있었던 특권을 이용한 것이었다. 유대인들은 그들의 기금을 자유롭게 관리할 수 있었고, 황제 숭배와 징집을 면제 받을 수 있었던 것이다. 바울은 세계의 교차로인 세계 상업의 중심지들을 선택했다. 이곳에 세계의 물적, 지적인 부들이 몰려왔기 때문이다. 바울은 주변 지역에 대한 영향력을 고려(19:10)해서 도시를 선교 거점으로 활용했다. 대부분의 서신서도 도시 상황의 선교지 교회들에게 보내진 편지들인 것을 알 수 있다.

 

 

IV. 도시선교가 소홀히 되어 온 이유

 

1. 전통적이고 부정적인 도시관 때문이다.

하나님은 자연을 만들고 인간은 도시를 만들었다고 말할 수 있다. 산업혁명과 함께 급속히 진행된 도시 성장으로 말미암아 엄청난 혼란을 경험한 그리스도인들은 도시를 점차 무질서와 혼동의 상징으로 보았다.

 

2. 선교 역사적 원인이 있다.

과거 선교의 추수지는 농촌 지역이었고 도시선교는 상대적으로 결실이 적은 지역이었다.

 

3. 사회 문화적 요인 때문이다.

지금까지 많은 선교사가 농촌 출신이었다(서양의 경우 90%이상). 농촌 출신이 편하게 적응할 수 있는 선교지는 농촌 지역인 것은 당연하다. 훈련도 특정한 한 부족 집단에 속한 사람들의 언어와 문화에 정통하도록 훈련을 받았지만 다양한 인종과 사회 계층으로 이루어진 도시의 복수주의 문화 가운데 살면서 복음을 전하도록 훈련받지는 않았다. 그 동안 인류학, 사회학, 언어학 분야의 발전도 주로 원시 부족 문화를 중심으로 발전되었다. 결과적으로 선교사들은 농촌은 선호하게 되었고 복잡한 도시를 기피하게 되었다.

 

4. 신학적 원인 때문이다.

전통적으로 선교사라면 지리적으로 멀리 있는 부족의 사람들에게 가는 것으로 생각하는 경향이 있었다. 한 기독교 신문은 선교사들이 대부분 도시에 살고 있다고 지적하면서 도시선교를 비판하는 것을 볼 수 있다. 사람들은 선교를 보통 농촌, 정글, 오지 지역에서 하는 사역으로 생각한다. 도시에서 선교하는 선교사들은 좋은 환경에서 사역하고 싶어 한다고 비판한다. 도시에는 문화시설이 있고 자녀교육을 하기 쉽기에 도시에 거주하기를 좋아한다고 선교사들을 비판해왔다. 도시에 너무 많은 선교사들이 몰려 있기에 선교사를 재배치해야 한다는 주장까지 나온다. 이렇게 비판하는 것은 도시선교에 대한 잘못된 이해에서 비롯된 것이다. 특히 한국인은 70-80년도에 독재 정권들에 대항하기 위하여 일부 운동권 세력들이 도시 산업선교 활동을 사회 운동의 도구로 이용한 전래 때문에 교회 일각에서는 도시선교를 복음을 위장한 불순한 사회 활동으로 치부하는 분위기가 있어서 이런 결과를 가져온 것일 수 있다.

V. 도시화의 개념

 

1. 도시성 혹은 도시문화(urbanism)

1) 도시성의 특성: 도시성이란 다음의 문장으로 표현하고 이해될 수 있다.

(1) 인구 밀도

(2) 기능분화

(3) 접촉의 빈도가 높음

(4) 이익 집단

 

2) 도시 문화의 특성

(1) 이질적 집단 간의 상호 작용

(2) 비교적 높은 정도의 전문화

(3) 비농업 활동의 추구

(4) 시장 경제 구조

(5) 혁신과 변화 추구

(6) 진보된 형태의 학습과 예술

(7) 도시 중심의 중앙 집권적 정부 형태

 

2. 도시의 분석

1) 도시화의 유인: 도시의 수많은 문제들 즉, 빈곤, 슬럼, 범죄, 소외, 공해 등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이 도시로 몰려드는 이유는 무엇인가? 그 이유는 다음과 같은 원인 때문이다.

(1) 도시의 흡인요인

높은 수익성: 현금 수입이 현저히 높음

교육의 기회: 신분 상승의 개방성

문화적 혜택: TV, 전시회, 인터넷 등

의료 등 각종 사회 복지 제도의 혜택

(2) 농촌의 배출 요인

토지의 한정: 낮은 토지 소유 확대의 가능성

농업 생산력 감소, 가뭄, 홍수로 인한 각종 생계의 위험

낙후된 복지, 문화 시설

(3) 사회 경제적 요인

산업화는 농촌의 희생 속에서 성취되었다. 인력 확보와 자본의 확보 과정으로 산업화가 이루어진 것이다.

 

 

VI. 도시문제

 

1. 부패 도시

착취, 범죄, 질병, 굶주림, 무주택, 실업으로 인한 문제와 도시 빈민의 문제가 크게 대두된다.

2. 고용의 문제

먹고 살 문제가 막막해 농촌에서 밀려나거나 돈을 벌 수 있다는 희망에 부풀어 도시에 끌려온 이주자들에게 충분한 일자리가 있는 것은 아니다. 국제노동 기구에 따르면 도시 노동력의 40%가 실업이나 불완전 고용 상태에 있다.

3. 주택난

전 세계적으로 10억 가구 중에 7억 가구 가까이가 열악한 위생 사태와 더러운 물 때문에 표준 이하의 주거 생활을 하고 있다. 3세계의 40~50%의 사람들이 슬럼에 살고 있다. 3세계의 3분의 1 이상의 사람들이 집 없이 살고 있다.

4. 상하수도 시설

세계 물의 2.4% 만이 깨끗한 물이다. 남미의 도시 인구 가운데 59%만이 파이프를 통해서 물을 공급받고 있다. 나머지 가운데 17%는 공공 급수탑을 통해서 물을 공급받고 있으며, 가난한 달동네는 한 주에 2-3번만 물이 나온다. 3세계의 반수 이상이 하수도가 없이 살고 있다. 하수도가 없기에 조금만 비가와도 운하들이 넘쳐 물난리가 난다. 하수도의 부족은 결국 강물을 오염시켜 상수도에도 영향을 미치고 있으며, 멕시코의 어떤 지역에서는 지하의 대수층에서 물을 빼 씀으로 인해서 땅이 일 년에 12인치가 가라앉은 경우도 있다. 하수도가 없는 것은 많은 위생에 문제를 야기한다. 위생은 3세계의 비 도시 거주자의 87%, 도시 거주자의 47%가 되는 8억의 인구가 적절한 위생 시설을 공급받지 못하고 있다.

5. 교통 문제

교통 체증은 심각한 사회 문제를 낳는다. 멕시코시티는 최소한 300만대의 자동차와 버스가 매일 운행되는데 공공 주차장과 적당한 도로가 부족하기에 심각한 교통 체증을 자주 불러일으킨다. 한 시간에 15Km로 움직이는데 마차를 타고 여행하는 것과 같이 느리고 이것은 350만 명이 한 시간 동안 일하는 것과 맞먹는 셈이다. 브라질의 상파울루도 하루에 서너 시간을 자동차 타는데 낭비하고 있다.

6. 공기 오염

멕시코시에서는 공기 오염으로 인해 10명당 1명의 어린이가 천식으로 고생하고 있다. 멕시코시에서는 매년 10만 명의 사람들이 오염으로 죽어 가고 있다. 켈커타 인구의 60% 이상이 호흡기 질환에 시달리고 있다. 3세계의 정부들은 그들의 자원을 도시 하층민의 물질적, 사회적 복지를 향상시키는데 쓰이는 것이 아니라 잘 사는 사람들을 위한 산업화에만 쓰고 있는 실정이다.

7. 교육 문제

세계 평균 인구 75%가 초등학교 혜택을 받고 있지만 3세계에서는 4분의 3만이 초등학교에, 중등학교에는 3분의 1만이 혜택을 받고 있다. 산토도밍고에는 40%가 문맹자로 있다. 세계 문맹자는 남성의 3분의 1이 문맹자이고, 여성의 절반이 문맹자이다. 이들 중 3세계가 98%를 차지하고 있으며, 문맹률은 계속 증가하고 있다.

8. 영양실조

10억 이상의 사람들이 영양실조에 걸려 있다. 하루 평균 필요한 섭취 칼로리가 2,400칼로리인데 거기에 미치지 못하는 나라가 60개국에 해당한다.

9. 도시의 가난

도시 빈민가들의 수입의 10분의 9가 음식을 구하는데 사용되고 있다. 그들의 주택, 문화생활에 대한 것을 상상할 수 없을 만큼 열악하다. 3세계 도시 인구의 3분의 1이 도시 빈민가에 살고 있다.

10. 거리의 아이들

남미 도시 인구의 반 이상이 20세 이하다. 전 세계의 청소년들의 1억 이상이 거리에서 잠을 자고 여자 아이들은 몸을 판다. 9~13세 사이에 있는 200만 명의 소녀들이 몸을 팔고 있다는 보고가 있다. 브라질 교도소의 80%가 거리의 아이들이며 이들은 마약 문제, 가솔린, 마리화나, 에이즈, 알코올 중독 문제 등이 심각하다.

11. 빈곤의 문화

가족 관계붕괴, 청소년 문제, 소비 향락적 문화, 적개심, 기존 가치관의 붕괴가 되고 있다. 과도한 인구 집중, 불안정 고용, 빈민, 과밀, 소외 등의 악순환이 계속된다. 도시 인구는 늘어나고 있는 상황에서 도시 그리스도인은 줄어들고 있다. 2,000년의 도시 인구가 50%이며, 아시아 지역 자연 성장률은 2.4%이고, 도시 성장률은 7%이다.

 

 

VI. 도시선교 전략

 

1. 도시 빈민선교를 해야 한다.

1) 무허가 촌(Slum, Squatter Area, Depressed Area)을 향한 선교가 급하다.

2) 빈민의 급속한 확산이 일어나고 있다. 전 세계 도시 성장률은 2.7%이고, 빈민촌 성장률은 6- 12%가 되기에 빈민선교의 필요성이 있다.

 

2. 성육신적인 선교를 해야 한다.

빈민가에서 사역하는 선교사는 극소수에 달한다. 이곳에서 사역하는 선교사는 현지인들과 같은 수준으로 살아야 하는데, 너무나 열악한 환경이기에 선교사가 빈민 사역을 하기에 쉽지 않다. 그럼에도 빈민 선교는 그들의 처지에 따라 선교사의 관심사가 아니라 그들의 관심사에 맞추어 선교해야 한다.

 

1) 빈민들의 우선된 필요는 전도를 통한 영혼 구원이지 다른 부분이 아니다. 물질적인 것이라기보다는 정신적인 것이 우선 되어야 한다. 프로젝트성 사역을 할 때 당장은 결실이 있는 것 같이 보이지만 결국에는 말씀으로 변화시키지 않으면 소용없는 것이다.

2) 지역 사회 개발: 현지인들의 삶의 문제를 가지고 선교사가 고민하며, 근본적으로 해결책을 줄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한다.

3) 신유와 이적: 병마와 싸우고 있지만 치료 받을 수 없는 사람들에게 하나님의 치유로 선교하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다. 이 방법은 이 일에 은사가 있는 사람이 할 수 있다.

 

3. 총체적인 접근으로 할 수 있다.

1) 전도 및 제자 훈련

2) 교회 설립

3) 지역 개발 사역

4) 모든 필요에 대한 응답

 

4. 소수 부족 선교가 있다.

1) 소수 민족 정착지 형성의 이유를 알아야 한다.

2) 각 종족 그룹에 대한 연구가 필요하다.

3) 접근 전략에 대한 모색이 필요하다.

 

5. 특수 선교로 할 수 있다.

1) 거리의 아이들을 위한 사역이 있다. 고아, 가출, 버려진 아이들, 매춘, 가판원, 거지, 소매치기 등을 위한 사역을 하는 것이다.

2) 공장 직공들을 위한 사역이 있다.

3) 홍등가 사역과 교도소 사역이 있다.

4) 아파트 촌, 사무실 지역 사역의 사역이 있다.

5) 매스 미디어 사역 등을 할 수 있다.

 

6. 공동체적 선교 접근이다.

도시선교를 할 때 선교사 한 개인이 개인적인 차원으로는 접근해서는 도시복음화를 하기가 쉽지 않다. 도시문화가 수많은 하위문화와 종속 제도로 구성되어 있기 때문에 개개인은 도시구조와 연관되어 자신의 동질성, 역할, 소속, 성취, 정서적 안정감 등 인간의 기본 욕구를 충족시키면서 생활해 나간다. 따라서 도시 안에 있는 개개인을 복음으로 변화시키고 말씀으로 계속해서 양육 훈련하며 교회를 설립하고 확장하는 것은 개인적인 차원의 회심뿐 아니라 그들이 소속된 문화와 각양 제도들을 고려하여 구조적인 변혁까지 일으켜야 한다. 이런 바탕 위에서 도시 상황 속에서 진정한 토착교회가 뿌리를 내리며, 하나님 나라의 영향력을 나타낼 수 있다. 이런 측면에서 도시선교를 위한 교회 구조는 제도적인 조직, 역할, 건물, 시설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도시인의 기본 욕구들을 성경적인 방법으로 승화 시켜 줄 수 있고 도시 특성에 부합하는 창의적이고 선교적인 구조로 해야 한다. 도시 구조 속에서 개개인의 외로움과 정서적인 불안감, 영적 황무함 등을 치료하고 하나님의 백성의 소속감과 위로와 내적 변혁과 외적 정신을 얻기 위해 초대 교회와 같은 가정 교회 형태의 모임이 필요하다. 도시 구조 안에 묶여 있는 개개인을 회심시키며 도시 구조에 왕국적 차원의 변혁을 일으키려면 진정으로 헌신되어 있고 그리스도의 모습을 닮아 가려는 제자들의 공동체가 우선적으로 결성되어야 한다.

 

7. 동질 집단을 중심으로 한 선교 접근 전략이다.

도시는 복합 문화와 다인종으로 구성되어 있다. 이러한 동질 그룹이 선교 역사를 통해서 계속 존재했으며, 이것은 하나님 나라의 확장에 큰 기여를 하였다. 단순히 어느 특정 종족 중심의 교회를 설립한다는 것이 아니라 가족, 친족, 직업, 취미, 생활수준, 지역적 근린성 등의 사회적 결속력을 고려하여 다양한 성경 공부 모임과 봉사, 구제 선교 기구를 교회 안에 설치하여 하는 것이다. 상호간에 소속감과 효율적인 친교 분위기를 형성하고 하나님 말씀으로 성숙화 하여 다른 동질 단위의 그룹들을 섬기고 도시 안에 있는 다양한 계층의 사람들을 복음화 하는데 효과적인 접촉점의 역할과 양육, 훈련의 장소를 제공하는 것이다.

 

8. 사회봉사의 구조 갱신을 지향하는 총체적인 선교 접근 전략이다.

개인의 회심뿐만 아니라 구조적인 갱신까지도 필요하다고 보는 것이다. 교회 중심의 정적인 프로그램이 아니라 총체적인 프로그램이 필요하다.

 

9. 지역적인 협력을 통해 교회 설립, 도시 개발 선교에 공동으로 참여하는 것이다.

전략적인 지역에 교회를 설립하는 것이다. 도시의 구조악의 문제는 기득권층의 특권이나 탐욕에 연관되어 있기 때문에 도시 선교는 종종 오해를 불러일으킬 수 있기에 선교 단체들은 서로 협력하는 것이 필요하다.

 

10. 성숙한 지역 토착 교회를 뿌리내리는 일이다.

성숙한 토착 교회라 함은 지역 교회 지도자가 선교사를 의지해서는 안 된다는 의미이다. 모든 도시 선교의 프로젝트는 현지인이 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VII. 결론

도시선교는 21세기에 하나의 전략적 차원이라기보다는 전체적인 요구로 선교사들이 해야 할 필수적인 사역이 될 것이다. 도시선교에 대해서 더 많은 관심을 가지고 연구하면서 도시선교에 참여해야 할 시대가 된 것이다. 전통적으로 부족을 찾아가는 선교도 필요하지만 이제는 패러다임을 바꾸어 도시선교의 실체를 알고 구체적으로 담당해야 할 때인 것이다.

 

 

2부 교회성장 전략

 

I. 교회성장 전략의 배경

 

1. 맥가브란(Donald McGavran, 1897-1990)

교회성장 전략의 부류에 속할 수 있는 내용들은 초대교회부터 찾아볼 수 있고 특기 19세기 서구의 부흥운동을 통해서도 발견할 수 있다. 19세기 서구의 부흥운동을 통해서도 발견할 수 있지만 선교적 차원에서 체계적인 교회성장 전략이 제시된 것은 도날드 맥가브란의 공로이다. 맥가브란은 자신의 할아버지와 아버지가 인도에서 선교사로 섬긴 선교사 가정의 자녀로 1897년 인도의 다모에서 출생하였다. 미국에서 교육을 마치고 3대째 인도 선교사로 30년간을 섬겼다.

맥가브란은 Disciples of Christ 교단 소속의 선교사로 파송되어서 행정 책임자로 일하게 되었다. 맥가브란은 선교부의 행정을 맡으면서 자신의 선교부가 지난 50여 년 동안 선교사를 투입하여 개척한 교회들이 너무도 미비한 성장을 보이고 있음에 주목하였다. 상당수의 교회들은 성장이 멈춘 상태에 있었다. 인도 중부 지역이 다른 선교기관들의 미션 스테이션들도 조사를 해 보았는데 165개 주 136개가 역시 성장이 멈추었거나 미약한 성장을 하고 있었다. 인도는 서구 기독교에 대해서 호의적이 아닌 지역이므로 교회들이 성장하지 않는 것에 대한 기존의 선교사들은 당연한 일이라는 생각이 지배적이었다. 이에 대하여서 맥가브란은 생명력 있는 복음은 모든 곳에서 반드시 성장하여야 함을 주장하면서 인도에서 교회가 성장하지 못하고 있는 것은 정상적인 것이 아니고 오히려 선교사들이 인도에서 교회가 성장할 수 있는 방법을 찾지 못하였기 때문이라고 지적하면서 스스로 행정직을 사임하고 17년간 교회를 개척하였다.

교회를 개척하는 동안 감리고 선교사였던 와스콤 치켓(Waskom Pickett)을 만나게 되었고 그를 통해서 대중 운동(People movement)에 대한 개념을 얻게 되었다. 이 개념을 중심으로 맥가브란은 교회가 성장하는 이유와 성장하지 못하는 이유를 분석하고 체계화시켰다. 마침내 그는 1955년에 그동안 발견한 내용을 정리하여서 하나님의 선교 전략이라는 책을 출간하였다. 이 책에서 그는 처음으로 대중 운동혹은 족속운동으로 알려진 개념을 소개하였다.

1955년 이전까지는 선교단체들이 영구적인 선교기지를 설립하고 유지하는 일에 그들의 역량을 집중해 왔다. 이러한 선교기지들은 유지와 보수를 위해 선교사들의 많은 관심과 노력을 필요로 하는 상당한 규모의 재산과 건물들과 관련이 있다. 선교사들은 그들의 전 생애를 한 곳의 선교기지에서 보내기도 했다. 대다수의 선교사들은 병원, 학교, 고아원, 신학교, 농협시험장, 나병요양소 등의 기관에서 봉사하고 있었다. 이 모든 기관들은 많은 선교 인력과 재정을 필요로 했다. 선교단체들은 막대한 비용을 들여 세워놓은 이 기관들을 유지하는 데 적지 않은 어려움을 겪고 있었다. 그 결과로 전도와 교회개척에 집중하고 있던 선교사들도 사역 현장에서 정기적으로 불려 와서 이 기관들을 운영하는 행정 업무에 참여해야만 했다. 많은 현장선교사들이 수년에 걸쳐 이 비생산적인 일을 위해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이러한 기관 사역에 종사하던 선교사들은 많은 사람을 전도하여 세례를 주고 여러 교회를 개척하고 있는 다른 선교사들과 비교하여 열매는 없었지만 열심히 일했다는 틀에 박힌 말을 자주 하곤 했다.

신학적으로는 세계선교 협의회가 소속 교회들의 선교적 동기를 약화시키는 결과를 초래했다. 세계선교협의회는 점차적으로 선교를 전도와 교회개척보다는 사회 참여, 경제적, 정치적 활동에 중점을 두기 시작했다. 도널드 맥가브란은 이 문제를 지적하고, 교회로 하여금 선교의 본질적 목적으로 돌아갈 것을 촉구했다.

1954년에서 60년까지 맥가브란은 자신의 원리가 인도가 아닌 타문화권에서도 적용이 되어지는가를 연구하기 위해서 아프리카와 필리핀, 태국, 카리비안 연안국 등을 여행하면서 교회 성장이론을 연구하였다. 자신의 이론을 수정 보완하면서 완성시켜 나갔다. 맥가브란은 점차 유명강사로 선교세미나에 초빙되어져 갔으나 단순한 세미나의 한계를 느끼고 1965년 오레곤 주 유진에 있는 Northwest Christian College에 교수로 가서 안식년에 돌아오는 선교사들을 대상으로 교회 성장학강좌를 개설하였다. 이 강좌는 대단한 성공을 거두었다. 그 후 1965년에 파사디나에 있는 풀러 신학교의 교수로 초빙을 받아서 세계선교대학원을 설립하였다. 이때 동역자로서 알렌 테펫, 랄프윈터, 아더 글래서, 찰스 크래프트, 피터 와그너, 에드윈 오르 등이 가세하면서 풀러 신학교를 중심으로 교회성장학파를 형성하여 갔다.

1970년에는 교회 성장 이해를 출간하였는데 이후로 선교지에서 시작된 교회성장이론이 미국 국내의 교회성장에도 적용이 되는 계기를 이루게 되었다. 맥가브란은 199194세로 세상을 떠났는데 그의 교회성장이론은 초기에 성경적 기초가 없다는 심한 비판도 받았다. 그러나 선교전략에 최초로 종족 그룹의 개념을 도입한 그의 공로는 결코 잊혀 질 수 없을 것이다.

 

2. 교회 장 운동의 발전

1953년에 맥가브란은 정글속의 오두막집을 임대하여 칩거하는 가운데 선교에 대한 자신의 철학을 정립하기 시작 했고그 결과로 하나님의 선교 전략이 나오게 된 것이다. 맥가브란의 제안은 당시로서는 진정한 혁명이었다. 그는 거의 모든 전통적인 선교 방식에 대해 이의를 제기했다. 신학적으로 그는 선교사의 최우선적 과업이 잃어버린바 된 사람들을 전도하여 그리스도인이 되게 하는 것과 아울러 단순한 회심의 차원을 넘어 제자화 할 것을 강조했다. 선교학적으로 그는 선교행정가들에게 선교사들로 하여금 선교에 대한 책무에 충실하고 모든 선교 현장의 통계를 분석할 것을 권면했다. 맥가브란은 선교의 방법을 평가하는데 있어서 철저한 실용주의자가 될 것을 요청했다.

교회성장운동은 1955년에 출판된 하나님의 선교 전략에 의해 시작됐다. 맥가브란은 이 운동을 공식적으로 시작한 것도 아니고, 의도적으로 교회성장운동이라는 명칭을 사용하지도 않았다. 그의 주된 관심은 대중운동을 일으키는데 있었다. 후일에 맥가브란은 이 용어 대신 효과적인 전도라는 용어를 사용해야 했었다고 회상한 바 있다. 교회성장에 대한 저술을 할 때 맥가브란은 진보적 목회자들이 갖고 있었던 선교와 전도에 대한 부정적 인식을 배제하고자 했다.

 

3. 교회성장의 원리

1) 전도와 교회 척에 선교의 우선순위를 둔다. 맥가브란은 하나님께서는 잃어버린 바 된 양들을 찾고 계신다는 말을 수 없이 반복하였다. 맥가브란은 전도와 교회개척이 항상 선교 사역의 회우선순위가 되어야 한다고 믿었다. 그가 사회 참여의 중요성을 부인한 것은 아니었다. “복음의 우선순위에 대한 그의 저술은 인간의 필요에 대한 그의 관심을 잘 보여주고 있지만 전도에 우선순위가 있어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맥가브란은 사람들이 예수 그리스도를 믿을 때 그들의 가족과 공동체에 해를 끼쳤던 습관과 생활 방식을 버릴 수 있게 될 것이라고 믿었다. 이러한 결과적인 발전이 복음의 우선순위를 증거하고 있는 것이다.

2) 종족 집단 단위로 선교해야 한다. 맥가브란의 가장 위대한 유산은 단일 민족 국가를 문화적 모자이크로 보았다. 오늘날의 종족 입양개념은 맥가브란의 통찰에서 직접적으로 영향을 받은 것이다. 지금은 당연하게 받아들여지지만, 1955년 처음 소개되었을 때는 놀랍고도 충격적인 개념이었다. 맥가브란과 훗날의 랄프 윈터는 선교 전략가들에게 모든 족속의 상황을 파악하여 상황화 된 방식으로 조직적으로 복음화 할 것을 촉구했다. 현재의 종족 집단 개념의 기초를 확립한 것이다.

3) 사회학과 인류학이 선교에 도움이 될 수 있다. 맥가브란의 교육학적 학문 배경은 사회과학이 어떻게 선교사에게 도움이 될 수 있는 가를 이해하는데 기여했다고 볼 수 있다. 풀러 신학교의 선교대학원을 창립한 맥가브란과 그의 동료들은 문화인류학을 강조했다. 지금은 인류학이 선교훈련의 가장 기본적인 요소로 받아들여지고 있지만 과거에는 그렇지 않았다.

4) 완전화보다는 제자화(전도)를 강조하였다. 맥가브란은 인도에서 사역하는 많은 선교사들이 몇 명의 회심자들을 얻은 다음 완전화를 위해 전도를 위한 노력을 중단하는 것을 관찰하였다. 맥가브란은 이러한 선교 방식이 대중운동의 가능성을 억제하는 원인이 될 수 있다고 보았다. 그는 성령께서 종족 집단을 서로 다른 시간에 무르익게 할 수 있다고 믿었다. 따라서 어느 종족이 무르익었을 때는 곡간에 완전히 거두어들일 때까지 선교사는 추수하는 일을 멈추지 않아야 한다고 확신했다.

이러한 주장에 대하여 일부에서는 맥가브란이 새신자를 양육해야 할 필요성을 인정하지 않았다고 비판하기도 하였다. 이는 맥가브란의 관점을 잘못 해석한 결과에 불과하다. 그는 대중운동의 일부로 주님께 돌아온 사람들의 가르침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그는 가르치고 육성하기 위해 전도하는 노력을 중단하는 것을 거부한 것이다.

5) 선교사들은 교회성장의 방해요소를 파악하고 방지해야 한다. 맥가브란의 교회성장의 이해에서 교회 성장의 방해요소를 다음과 같이 열거하고 있다.

(1) 통계적인 장애

맥가브란은 교회의 수, 세례 받은 새신자, 새로 개척된 교회, 전도처 등에 대한 통계를 잘 관리하고 있는 단체들이 극히 소수에 지나지 않는다는 사실에 대해 개탄하였다. 그는 이러한 기록들은 마치 환자의 의료 기록과 같아서 건강과 질병, 진보와 퇴보 등을 알려주는 지표가 될 수 있다고 주장했다.

(2) 행정적 장애

맥가브란은 선교행정가들이 선교사들의 성과에 대해 적절한 보상을 하지 않음으로 모두를 평범한 사람으로 만들어 버리고 있다고 지적했다. 일반적으로 모든 선교사들은 그들의 성취나 실패와 상관없이 똑같은 취급을 받고 있다. 그는 행정가들이 교회가 성장하는 곳에 재정과 인력을 투입해야 한다고 확신했다.

(3) 문화적 장애

많은 경우에 선교사들이 북미주에서 효과적이었던 방식은 전 세계 어디에서도 같은 결과를 가져올 것이라고 생각했다. 에를 들면, 때로는 효과적일 수도 있겠지만 많은 경우에 문화적 차이로 인해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

(4) 의미론적 장애

맥가브란은 선교사들이 사용하고 있는 모호한 언어가 혼란을 가중시킬 수 있다고 보았다. 예를 들면, 어느 선교사가 산타크루즈에서 사역을 시작했다고 보고했을 때 이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이 말은 그가 교회를 개척했다’. ‘설교했다’, ‘어느 가정을 방문해서 전도지를 주었다등 다양한 의미로 전달될 수 있다. ‘증거(Witness)’도 하나의 불분명한 용어이다. 어떤 사람이 우리가 파다고르 주의 7개 마을에서 증거했다고 보고했을 때 이 보고를 읽는 사람은 7개의 교회를 개척했다는 것인지, 7개의 전도처를 세웠다는 것인지, 아니면 단순히 7개의 마을을 방문했다는 것인지 이해하기가 어려운 것이 사실이다.

(5) 심리학적 장애

일반적으로 선교사들 혹은 선교행정가들은 그들의 실패를 합리적으로 보고하는 경우가 많이 않다. 보고서나 홍보지 등은 정확한 통계를 제시하지 않고 화려한 수사학적 용어들로 대체하기도 한다. 맥가브란은 모든 통계 수치는 하나님 나라에 한 사람의 영혼이 더 추가되었다는 것을 의미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가능한 많은 사람이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해야 한다는 사실에 대해 타협의 여지를 두지 않았다.

(6) 홍보의 장애

선교사들과 선교 행정가들은 선교 사역에 필요한 재정을 모금해야 한다. 따라서 홍보 자료는 일반적이고 낙관적인 방향을 제시하는 것이 관례이다. 그들은 인간의 관심에 대한 이야기들로 후원자의 감성을 자극하고자 한다. 매우 이례적인 감동적 회심 이야기를 들려주면 청중은 마치 이러한 일들이 일상적으로 일어나고 있는 것처럼 느낄 때가 있다. 이러한 접근 방법을 사용하고자 하는 충동은 자연스러운 것이겠지만 맥가브란은 이러한 현상이 교회성장의 실체를 이해하기 어렵게 만들고 후원자들로 하여금 정확하게 무엇을 위해 헌금하고 있는가에 대해 알기 어렵게 할 수도 있다는 사실을 지적하고 있다.

(7) 신학적 장애

맥가브란은 여러 가지 신학적 요소가 교회성장의 장애요소가 되고 있다고 언급했다. 그 가운데 하나는 비회심주의적 신학(nonconversionist theology)이다. 예를 들면, 오늘날의 많은 신학자들이 궁극적으로는 모든 사람이 구원을 받게 될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이러한 보편주의(universalism)는 필연적으로 전도와 선교를 약화시킨다. 다원주의는 최악의 셩우 이 세상의 모든 종교들은 동일한 가치를 지니고 있기 때문에 선교사들은 그들을 개종시키는 것을 삼가야 한다는 결론에 도달한다. 또 다른 신학적 장애는 인도주의에 대한 배타적 관심이다. ‘현존 전도(presence evangelism)’를 주장하는 사람들은 선교사들이 현존과 그리스도를 닮은 삶의 자리로 사람들에게 영향을 끼치고 세상 사람들의 물리적 필요를 채우는 일에 중점을 두어야 한다고 믿고 있다. 맥가브란은 이러한 입장을 이해하지만 받아들이지는 않았다.

6) 수용성이 높은 지역에 자원을 투입해야 한다. 일명 추수의 원리로서 선교사들은 어느 종족 집단이 복음에 대해 무르익었을 때 영혼의 추수를 통해 수확을 거두어야 한다는 것이다. 2차 대전 후의 일본은 복음에 대해 긍정적인 반응을 보였지만 1955년 이후에는 급격하게 관심이 떨어졌다. 맥가브란은 선교 단체들이 이 현상에 주목하고 복음에 대해 수용적인 지역에 인력과 재정을 집중적으로 투자해야 한다고 하였다.

7) 선교사는 선교지의 문화에 적응해야 한다. 교회 성장운동을 지지하는 사람들은 선교사들이 선교지의 언어를 능통하게 구사하고 문화에 적응하기 위한 모든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고 생각했다. 맥가브란은 사람들이 일상 언어로 복음을 들어야 할 필요가 있다고 믿었다. 그는 또한 선교사들이 더 많은 사람을 주님께 인도하기 위해 그들의 삶의 방식에 적응해야 한다고 확신했다.

8) 선교사는 재생산이 가능한 방법을 사용해야 한다. 교회성장 운동 지지자들은 선교사들이 실행하는 모든 것은 현지인 그리스도인들이 감당할 수 있는 방식이어야 한다는 신념을 갖고 있다. 맥가브란은 그의 학생들에 의해 되풀이 될 수 있는 방식의 교회성장 전략을 사용하고 있는가를 신중히 점검해야 한다고 가르쳤다.

9) 새로운 교회가 교회를 개척할 때 가장 빠르게 배가할 수 있다. 교회성장 운동은 교회개척이 지상명령(28:18-20)을 성취하는 핵심적 과업이라고 보았다. 초대 교회의 그리스도인들은 로마 제국 전역에 걸쳐 교회를 개척함으로 예수님의 명령에 순종했다. 교회성장에 관한 연구에 따르면 새로운 교회가 기존의 교회보다 더 전도를 잘하고 교회개척에서 더 활발하다. , 새로운 집단이 오래된 집단보다 더 신속하게 배가한다. 교회성장운동이 왜 공격적으로 교회를 개척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10) 동질집단이 더 신속하게 성장한다. 맥가브란이 제시한 이 원리가 가장 논쟁의 여지가 많다. 일부에서는 교회성장운동이 인종차별주의를 하고 있다고 비판하고 있다. 사실상 맥가브란의 이 이론은 단순한 사회학적 관찰에서 나온 것이었다. 그는 사람들이 자신과 같은 민족적 배경을 가진 사람들과 함께 예배드리는 것을 선호하고 그들이 언어, 민족 혹은 문화적 장벽이 없을 때 주님께 나아올 가능성이 가장 높다고 확신한 것이다. 그는 선교사들이 동질의 계층이나 언어 집단에 초점을 맞추어 교회를 개척할 때 교회가 가장 잘 성장할 것이라고 믿었다. 맥가브란은 인종차별주의자가 아니었다. 그는 자신의 생애의 대부분을 인도에서 보냈다. 그가 미국에 돌아와서 미국이 인종차별주의 문제를 해소하기 위한 다양한 방안들을 제시하기도 했다. 교회성장 운동에 있어서 동질집단의 원리는 언어, 직업, 계층, 나이 혹은 예배 형식 등 거의 모든 영역을 포괄한다. 맥가브란의 논지는 하나님 나라에 들어오기 전까지는 왕국적인 도덕성을 보여줄 수 없다는 것이었다. 그는 동질집단의 교회가 더 많은 사람을 하나님 나라로 나아오게 할 수 있다고 믿었다.

11) 정기적이고 정직하게 선교 방법을 평가해야 한다.

맥가브란과 와그너는 철저하게 실용주의적이었다는 사실에 대해 자부심을 갖고 있었다. 그들은 선교사들이 그들의 선교 방법에 대해 정기적으로 평가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들은 세계복음화의 과업은 너무도 중요하기 때문에 선교사들은 비효과적인 방법으로 돈이나 시간을 낭비하지 않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맥가브란은 이러한 평가를 위해 사회과학적 통계 연구를 활용해야 한다고 가르쳤다. 그들의 실용주의적 가치에 대해 비판하는 사람들에게 교회개척 운동의 지지자들은 그들의 비판이 선교사들로 하여금 비실용적인 방법을 사용하도록 조장할 수 있다고 우려했다. 선교사들은 어디에서 진전을 이루고 있는지에 대해 알 수 있도록 그들의 접근 방식을 정기적으로 분석하고 평가해야 한다는 것이다.

 

4. 탐색신학(Search Theology)과 추수신학(Harvest Theology)

맥가브란은 교회가 성장을 멈추고 선교의 열매가 나오지 않는 이유로 선교가 이제가지 철저히 씨 뿌림의 신학에 사로잡혀 결실에는 상관없이 어디든지 복음만 선포하면 된다는 식의 방법을 고집하였다는 것을 지적한다. 맥가브란은 이것을 탐색의 신학이라고 지칭하였다. 탐색신학에서 선교의 본질은 어디든지 가서 복음을 선포하는 것이라는 전제를 가지고 있었다. 서구 선교는 이 탐색 신학적인 사고방식 때문에 한계에 도달하였다고 그는 지적한다. 맥가브란은 선교는 단순히 탐색하는데 그치지 않고 하나님의 자녀들을 발견하고 추수하여 거두어들이는 것임을 강조하였다. 하나님은 적극적으로 영혼을 찾으시는 열정이 있으신 분이므로 그런 영혼들이 추수할 들판처럼 준비되어 있는 곳으로 집중적 선교가 이루어져서 교회가 실제적으로 열매를 거두어들여야 함을 지적하고 이를 추수신학이라고 불렀다.

추수신학은 당시 선교가 지지부진한 것에 대한 반성과 비판에서 시작하였다. 당시 선교는 특별한 전략도 없이 단순히 복음만 전하거나 병원과 학교를 짓고 구제 사업을 하는데 그치므로 실제적인 선교의 열매가 없었고 교회성장은 멈추어 있었다. 추수신학은 이러한 정체된 선교에 새로운 패러다임을 제공하였다. 탐색신학에는 전도의 개념이 현존(presence), 선포(proclamation), 혹은 설득(persuasion) 등으로 정의되었다고 할 수 있다. 현존의 전도는 구두적인 복음전파보다는 구원받지 못한 자들 속에서 복음을 생활로 보여주는 것이다. 주로 봉사와 사회구제 활동 등이 이에 속한다. 선포는 복음을 구두로 선포하지만 선포자체로 그치고 결과에는 책임을 지지 않는 전도를 말한다. 설득은 구두로 선포하고 예수를 영접할 것을 설득 권유하는 전도를 말한다. 대형복음전도 집회들이 이러한 부류에 속한다.

맥가브란은 전도의 정의를 복음을 선포하고 이를 영접하도록 권하여서 지역교회의 책임 있는 지체가 되도록 하는 것이라고 하였다. , 추수신학은 단순한 선포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대상자가 교회의 안정된 지체가 될 때까지의 과정을 전도로 정의하는 것이다. 복음을 들었어도 아직 교회의 책임 있는 지체가 되지 않고 있다면 이 전도는 완성되어진 것이 아니다. 이러한 사고방식의 전환을 요구하는 것이 교회성장 전략의 출발개념이다.

 

5. 종족집단(People group) 개념

종족집단이란 언어 인종학적 개념의 종족과는 다른 작은 단위의 개념으로 이해하는 것이 교회 성장학을 이해하는데 도움이 된다. 종족집단이란 공동의 집단 의사결정이 이루어질 수 있을 만큼 긴밀한 공동체의 최소단위라고 할 수 있다. 서구 사회는 철저하게 개인주의와 이에 따른 개인적 의사결정 구조에 의해서 구성되어져 있다. 이에 비해 비서구 지역은 개인주의보다는 집단주의와 집단적 의사 결정 단위가 존재한다. 맥가브란은 서구사회에서 사회의 기본 구성단위는 개개인이지만 비서구 사회는 종족집단이 기본 구성단위라고 지적하였다. 그러므로 서구적 개념에서의 회심은 개개인의 의사결정에 의한 개인적 사건이지만 비서구 지역에서는 회심도 종족집단 단위의 집단 의사 결정에 의한 집단적 사건이라는 것이다.

 

 

II. 교회성장 전략의 원리

 

1. 수용성의 원리

수용성이란 복음에 대한 반응 정도를 의미한다. 수용성 개념은 복음 전도가 어떤 사회나 집단에서는 왜 회심을 이루고 다른 곳에서는 못 이루는가에 대한 답변으로 제시되었다. 복음이 동일하게 제시되어져도 복음에 대한 반응은 지역이나 공동체, 각 개인에 따라서 각각 다르게 나타난다. 성경의 예에서는 갈릴리 사람들이 예루살렘의 사람보다 더 수용적이었고 뵈레아 사람들은 데살로니가 사람들보다 훨씬 더 수용적이었다. 수용성은 사람들의 그룹에 따라서 다르고 시간에 따라서 쇠퇴하기도 하고 증가하기도 한다.

맥가브란은 각기 다른 수용성을 나타내는 것은 본질적으로는 하나님의 주권에 속하는 문제이지만 사회 문화적 요소들에 의해서도 영향을 받는다고 하였다. 새로운 개척지로 이동할 때라든지, 전쟁이나 무력에 의해서 정복당할 경우, 외국에서 돌아온 경우, 민족주의나 압제로부터 해방되어질 때, 문화의 변화가 급격하게 이루어질 때 등의 경우에 수용성이 증가하게 된다. 이러한 수용성을 미리 안다는 것은 복음을 효과적으로 전하기 위한 좋음 발판을 마련하는 것과 같다고 하겠다. 이 수용성 원리에 근거하여서 맥가브란은 추수이론을 주장하였다. 즉 수용성이 높은 지역은 희어져 추수하게 된 준비된 지역이므로 일꾼들을 우선적으로 파송하여야 한다는 것이다 이에 따라서 선교사들은 전 세계 국가들의 수용성을 살펴보고 어느 곳이 현재 추수지역인가를 인지하여서 이 지역으로 가야한다는 것이다. 수용성 원리는 선교의 전략적 접근 방안을 결정하는 데에도 커다란 영향을 끼쳤다 예를 들면 아래와 같은 각기 다른 수용성을 보이는 선교지역이 있다면 하면,

 

수용성이 낮음 수용성이 높음

A B C D Z

 

A지역은 복음을 완강하게 거부하는 지역이다. Z 지역은 복음 전도에 열려있고 반응이 아주 좋은 지역이다. 이럴 경우 AZ지역에 동일한 전략적 접근을 해서는 안 된다. A지역은 인내와 믿음으로 꾸준히 뿌리는 사역이 필요한 지역이다. 구제와 봉사 사역이 병행하여야 할 것이다. 그러나 Z지역에서는 그러한 방식으로 선교를 해서는 안 된다. 이들은 추수지역의 영혼이기 때문에 한 개인에게 매달리지 말고 종족 전체를 대상으로 적극적이고 직접적으로 전도하고 제자 삼는 전략을 추구하여야 한다.

그러나 대부분의 종족은 AZ의 중간에 위치하고 있다. BC와 같은 지역은 개인적인 전도를 통해서 개개인이 타 종교적 배경에서 돌아오도록 하여야 하지만 D, E, F 와 같이 수용성이 높아질수록 집단적인 대중운동이 일어나도록 유도하는 접근을 하여야 한다. 맥가브란은 수용성에 맞게 선교방법, 제도 및 직원들을 조정하는 것이 선교의 본질적인 과제라고 강조하였다.

 

2. 동질집단의 원리

동질집단의 원리(Homogeneous Unit Principle)란 당시의 선교기지(mission stations) 중심의 접근 방법에 반대하여 제시된 원리였다. 맥가브란은 당시의 서구 선교사들은 선교지에 선교기지를 구축하는 방식으로 접근하였다. 이런 기지에는 선교사들의 숙소와 교회, 서구적 기관들이 구비되어 있었고 선교사들은 선교지에 모여 살면서 회심자들을 그들의 문화와 사회로부터 벗어나서 선교기지 안으로 들어오도록 하는 방식으로 선교를 하였다. 맥가브란은 이러한 선교방식에 반대하면서 사람들이 사회 문화적으로 자신이 속한 동질집단을 떠나지 않고 신앙을 가질 때 가장 성장률이 높다는 것을 원리로 제시하였다.

실제로 선교지의 사람들이 기독교로 개종할 때 예수를 구세주와 주님으로 받아들이는 영적인 결단보다도 더 어려운 것은 이전에 자신이 속하였던 문화적 관습과 사회 집단을 만나는 것이다. 문화 인류학자들은 이것을 문화적 할례라고 부른다. 할레는 통과의례이지만 고통스러운 과정이다. 이교적 배경의 문화에서 돌이킴이 없이 개종한다는 것은 불가능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불필요한 문화적 할례의 장벽을 낮추어 줄수록, 그리고 자신의 동질성이 보장되어지는 동질집단에서 벗어나지 않으면서 개종할 수 있다면 가장 좋은 선교의 방법이다. 또한 교회도 자신들의 동질성이 보존되어지는 분위기에 놓일 때 가장 빨리 성장하게 된다.

동질집단 원리를 이용한 선교전략은 사회적인 장벽을 헐지 않고 복음을 받아들이고 교회의 일원이 되라고 하는 것이다. 또한 한 개의 동질집단에만 머물지 말고 기독교의 세포들이 교회 지역, 새로운 개간지, 종족, 카스트 또는 사회의 다른 구역으로 확장되기 시작하 는 동질단위를 중심으로 제자를 삼으라는 것이다. 동질집단 원리는 잘 못하면 폐쇄적이고 배타적인 교회로 전락할 위험이 있지만 맥가브란은 오히려 동질집단 내의 교회에서 하나 됨의 의식이 높아지고 단위가 늘어 가면 다른 단위들의 구석구석까지 기독교를 전파하는 것이 충분히 극복되어질 수 있다고 보았다.

이미 교회가 이루어진 경우 대부분의 교회들은 원하던 원치 않던 일정 시간이 지나면 독특한 동질성을 보이게 된다. 어떤 교회는 중하층의 사람들이 주로 모이는 교회가 되고 어떤 교회는 주로 아파트에 사는 고등교육을 받은 사람들이 모이는 교회가 되기도 한다. 이 때 이러한 동질성을 의도적으로 와해시키려고 노력하기보다는 이러한 동질성을 적절히 전도의 방안으로 활용할 때 교회의 성장은 빨라지게 된다.

 

3. 대중 회심운동(People Movement)

대중 회심운동(People Movement)은 맥가브란의 교회성장 전략에서 가장 핵심적인 내용이다. 대중 회심운동이라는 용어는 한국에서는 다양한 용어로 번역되어 혼동을 일으키기도 한다. 족속운동, 인간운동, 집단회심 운동, 종족운동 등이다. 이 개념은 와스콤 피켓의 연구에서 영향을 받은 것인데 피켓은 서구적인 개인 결단을 통한 회심만이 유일한 회심이 아니라 종족그룹별로 집단회심을 일으키는 것도 그 문화권에서는 유효한 회심임을 지적하였다. 대중 회심운동이란 이러한 종족그룹별의 집단회심을 유도하는 선교방법을 의미한다.

회심이란 복음을 받아들이겠다는 의사결정(decision making process) 이다. 서구의 문화에서는 중요한 결정일수록 철저하게 개인적 의사결정에 달려 있다. 점심 메뉴에 무엇을 먹을까 정도는 남들의 의견에 편승해 줄 수 있지만 종교를 개종할 것인가라는 중요한 문제는 남들의 의견을 따라줄 수 없고 자신의 개인적 결정에 따른다. 그러나 이와 반대로 비서구 문화에서는 상당부분 중요한 결정일수록 집단적 의사결정(group decision making) 이 더 유력한 결정이 된다. 즉 서구와는 반대로 종교를 개종하는 중요한 문제는 오히려 개인적 결정이 유력하지 않고 집단의 결정에 더 의존하게 된다는 것이다. 의사결정 과정은 문화의 한 부분이다. 각 문화권은 자기 나름대로의 의사결정 과정이 있으며 그 문화권 내에서는 그들의 의사결정 방법이 유효한 것이다.

피지에서 사역하였던 한 선교사가 재미있는 질문을 하였다. 피지에 살고 있는 인도인 가정을 계속 전도하였는데 어느 날 방문을 하였더니 남편이 외출 중이고 마침 부인만 있었다고 한다. 선교사 부부는 열심히 복음을 전했고 그날 이 부인이 예수님을 영접하기로 결단하고 영접기도를 하였다. 그런데 저녁에 선교사에게 그 부인으로부터 전화가 왔다. 남편에게 물어보았는데 안 된다고 하니 자신이 예수님을 영접한 것을 취소하겠다고 하였다. 이 경우 이 부인은 구원을 받았겠는가, 안 받았겠는가? 서구적인 개념에서는 이 부인은 자신의 결정으로 영접을 하였기에 때문에 구원을 받았다고 하여야 할 것이다. 남편이 반대하여도 일단 자신의 결정이 더 유효하다는 것이다. 그러나 집단 의사 결정이 효력을 발효하는 비서구의 문화적 관점에서 볼 때, 이 부인의 개인적 결정은 커다란 의미가 없다고 지적된다. 남편이 반대하면 자신의 개인적 결정은 유효하지 않은 것이므로 이 부인은 영접하지 않는 것이라는 것이다. 이는 단정하기 쉽지 않은 문제로서 신학자들 간에 논란의 여지가 있는 부분이다.

집단적 의사결정이 더 유효한 지역에서는 서구적 개인주의가 적용되어지지 않음을 선교사들은 알아야 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지역에서 서구식의 개인적 결정을 요구하는 것은 오히려 회심에 장애가 될 수도 있다. 그러므로 이런 지역에서 선교사는 개개인을 선교의 단위로 보지 말고 공동의사 결정을 하는 종족집단을 기본 단위로 하여 선교활동을 펴나가야 한다. 이 경우 한 종족집단을 접근한 선교사는 단번에 회심을 기대하지 말고 꾸준히 선포와 교육의 방법으로 복음을 제시하여야 한다. 그리고 언젠가 그 종족집단에서 집단 의사결정이 이루어지기를 기다려야 한다. 그 중에는 특이하게 먼저 개인적으로 영접하는 사람도 있을 수 있다. 이들은 그 종족집단 내에서 특별한 하나님의 가교 역할을 하게 될 것이다. 대부분의 집단의사 결정은 서구식의 다수결 투표가 아니다. 충분한 시간을 가지고 절대다수의 동의에 이르도록 하는 것이다. 물론 일부 끝까지 거절하는 사람들이 있을 수 있지만 이러한 집단결정에 의한 회심은 가장 효과적인 선교전략이라는 것이다. 이 집단 결정은 동의한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참된 결정이고 참된 회심이 된다.

맥가브란은 이러한 대중 회심이 결코 집단회심과는 다른 것임을 강조하였다. 집단회심이란 교회역사에서 종종 발견이 되는 것인데 그들의 지도자가 회심할 때 추종자들이 따라서 회심하는 것이다. 이런 집단회심을 참된 회심으로 볼 수 없다. 대중회심은 막연히 지도자를 따르는 것이 아니라 집단 의사결정 과정을 통한 회심이라는 차이가 있다. 그래서 맥가브란은 대중회심을 다중적 개인 회심이라고 표현하였다. 즉 개개인의 회심이 동시에 여러 사람에게 일어나는 것이라는 의미이다.

대중 회심운동을 통한 선교는 회심자들을 보존하는데 최선의 방책이며 토착교회 형성의 지름길이고 자연스럽게 동질집단 원리를 적용할 기초도 형성이 되는 것이다. 물론 현 시대에 점차 전 세계가 서구화됨에 따라 서구적 개인주의가 널리 확산되어지면서 대중회심운동이 일어날 수 있는 토양은 점차 적어지는 것이 사실이다. 특히 도시 지역에서는 집단의사 결정이 일어나기 어려워지고 있다. 그러나 여전히 비서구지역에서 비도시 지역이라든지 부족민들 사이에서는 대중 회심운동이 유력한 선교의 전략으로 인정되어지고 있다.

 

 

III. 교회성장 운동의 방향

 

1. 교회성장 운동의 영향

이 운동이 개신교 선교운동의 발전에 도움을 주었거나 적어도 복음주의적 관점에서 볼 때 전도와 교회개척에 대한 전통적인 강조를 재발견하게 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교회성장 운동의 동질 집단의 강조는 북미주 선교 지도자들에게 종족 집단을 위한 교회개척을 촉진하는 결과를 가져왔다. 오늘날의 많은 교단들이 그들의 가장 역동적인 성장이 종족의 회중들 가운데서 일어나고 있다고 보고하고 있다. 이 운동은 세계 교회협의회(WCC)의 신학에 도전했다. 세계 교회협의회의 신학이 자유주의를 추구하는 가운데 맥가브란과 그의 동료들은 모든 그리스도인은 아프리카, 아시아, 라틴 아메리카에 살고 있는 수억 명의 미전도 종족을 복음으로부터 소외되지 않게 해야 한다고 확신했다.

교회성장 운동은 북미주의 신학교와 기독교 대학에 큰 영향을 끼쳤다. 오늘날의 많은 신학교와 기독교 대학이 교회 성장학을 가르치고 있다. 교회 성장학이라는 정식 과목이 개설되어 있지 않는 학교에서도 다른 과목에서 이 주제를 다루고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교회성장 운동은 지역교회에 영향을 주었다. 매년마다 지역교회의 목회자들을 대상으로 수많은 교회성장 세미나가 개최되고 있다. 교회성장 자문가들은 북미주 전체에서 교회의 프로그램들과 시설들을 평가하는 등 다양한 형태로 교회를 지원하고 있다.

교회성장 운동은 다양한 방법으로 선교사들을 돕고 있다. 이 운동이 강조하는 연구의 중요성은 선교사들과 현장 행정가들에게 미전도 지역에서의 교회성장에 대한 잠재력을 예측하고 기존의 지역의 진전을 평가하는 방법을 배우게 해 주었다. 이 운동은 또한 인류학에 대한 관심을 갖게 해 주었고 이러한 변화는 새로운 선교사들이 보다 더 신속하고 효과적으로 사역할 수 있도록 준비시켜주는데 유용하게 사용되었다.

교회성장 운동이 가져다 준 혁신 가운데 하나는 신학연장 교육(Theological Education by Extension)’과 같은 지도자 훈련 프로그램들을 제공하여 교회의 배가를 가능하게 해 주었다. 이 운동은 선교사들에게 어떻게 교회를 개척해야 하는가에 대해 가르쳐주기도 했다. 많은 선교사들이 교회를 개척해야 한다는 사실은 알고 있었지만 그 방법에 대해서는 잘 알지 못했다. 이 운동은 많은 선교사들이 현장 전도자에서 교회개척자가 되게 만들어 주었다.

 

2. 현대 교회성장 운동의 개선 방안

맥가브란의 제자인 에비 스미스는 교회개척 운동이 개선할 것에 대해 다음과 같이 열거했다. 교회성장 운동은 다시 그 본래의 정신으로 돌아가야 한다, 오늘날의 대다수의 교회개척 운동에 대한 문헌들은 10/40 창의 미전도 종족 가운데서의 교회배가 운동이 아닌 북미주의 개인주의적 성장을 위해 존재하고 있다. 대부분의 교회 성장 운동과 관련된 대다수의 문헌들은 베이비 붐 시대와 X세대를 대상으로 하는 중산층 교회의 성장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맥가브란은 가난한 자들과 억압받는 자들의 필요를 고려한 운동으로 되돌아 갈 것을 촉구하고 있다. 교회성장 운동은 대형교회의 중요성과 역할을 지나치게 강조하는 것에 대해 신중해야 한다. 물론 대형교회는 흥미로운 현상이 아닐 수 없지만 대다수의 교회들은 규모가 작다. 교회성장 운동은 재생산성에 대한 강조를 재확인해야 한다. 과학 기술과 미디어에 대한 서구의 관심은 이해할 수 있지만, 전근대 사회에서 사용된 교회 성장에 기술적으로 더 적합할 수도 있다.

교회성장 운동은 특정한 선교 방법이 모든 상황에 적합하다고 가르치고자 하는 유혹을 경계해야 한다. 모든 선교 방법은 선교지의 고유한 문화적 특성에 적합하게 상황화 되어야 한다. 교회 성장 운동은 결코 완전한 신학적 기초를 제공하지 않는다. 맥가브란은 실천가였지 신학자가 아니었다. 교회성장 운동의 신학에 대한 완벽한 책은 아직 쓰이지 않았다. 선교지에서 채택하고 있는 각종 제도들에 대한 교회성장 운동의 반감은 이해할 수 있지만 지나치게 광범위한 사실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교회성장 운동은 이 문제에 대해 신중하게 재검토할 필요가 있다. 교회 성장학을 배운 한 학생은 맥가브란의 마음에 든 기존의 선교 정책은 하나도 없었다고 말한 바 있다. 그의 후계자들은 보다 정교하고 세밀한 선교 정책들을 개발할 필요가 있다.

 

<토의를 위한 질문>

1. 도시선교의 필요성과 중요성은 무엇이 있는가?

2. 도시선교를 위해 할 수 있는 사역들은 무엇이 있는가? 도시선교를 잘 하고 있는 선교사들의 예를 알고 있는가?

3. 맥가브란의 교회성장이론의 단점과 문제점은 무엇인가?

4. 우리 교회의 교회성장을 위해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무엇이며, 이런 것들을 어떻게 실행할 것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