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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교교육 연구원(IM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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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교자료, 이슈, 연구/현대선교 이슈

선교(사)란?

후앙리 2011. 4. 16. 09:58

선교부 사무실에서 사역을 하다 보면 다양한 선교사님들을 접하게 된다. 그분들의 태도를 보면서 때로는 선교가 무엇인가 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 선교사님들이 지나간 자리의 흔적을 보면 그 분의 삶이 어떤가, 그분의 사역이 어떤가 하는 것을 감히 짐작해 볼 수 있다. 완전히는 아니지만 그분의 삶을 조금은 알 수 있다. 어떤 분은 자리의 흔적을 깨끗하게 정리하는 분이 있다. 가령 선교부에서 선교사님들에게 차량을 대여해 줄 때가 있다. 선교사님들이 차량을 사용한 후에 연료도 채우고 세차도 잘 해서 반납을 하는 경우가 있다. 반면에 차량을 쓰던 그대로 반납을 하는 경우도 있다. 또한 선교관을 사용하고 나서도 깨끗하게 정리하고 돌려주기도 하지만 뒷정리를 잘 하지 못하는 경우도 있다.

선교사님들끼리도 동료 선교사가 한국을 방문할 때, 물건을 배달해달라는 부탁을 하기도 한다. 꼭 필요한 경우에 아주 가까운 사이에 부탁을 하는 경우도 있지만, 가끔은 별로 잘 지내는 사이도 아니면서 물건을 가져다 달라고 부탁을 하는 경우도 있다. 물건도 약품이나 선교지에서 구할 수 없는 꼭 필요한 것이 아니라 본인이 노력하면 부탁하지 않아도 될 것들을 부탁하는 경우도 있다.

선교사님들이 한국에 잠시 방문할 때 어떤 선교사님들은 아는 사람이면 누구에게든지 한국에 귀국했다고 알리는 분들이 있다. 물론 교제하고 아는 사람들에게 선교를 일깨우기 위해 만나는 것도 필요하지만 도를 지나치게 사람들을 찾아다니는 경우가 있다. 부끄러운 이야기지만 심지어 다른 선교사님들의 후원자가 선교지를 방문했을 때 전화번호를 기억해두었다가 한국에 들어왔을 때 찾아가는 경우도 있다. 어떤 이는 다른 선교사의 후원자를 자기 후원자로 만드는 경우도 있다. 이런 경우가 많지는 않을 것이다. 그러나 이런 좋지 않은 소리가 들리는 것은 안타까운 일이다.

선교사가 한국에 들어와서 많은 사람들을 만다는 것이 반드시 잘못되었다고 말할 수는 없다. 그러나 한국에 방문한 목적 이외에 지나치게 후원자들을 계발하려는 태도는 한번쯤 생각해 보아야 한다. 언젠가 선교사들끼리 모여 한국을 방문하면 바쁘다는 이야기를 한 적이 있다. 그 때 나는 주일날 갈 교회가 없어서 집 근처의 교회에 갔다고 말한 적이 있다. 같이 있던 선교사님들이 나를 보고 이상하게 생각하는 것이다. 후원자를 계발하러 전화하고 주일날 교회를 찾아다니지 않아도 될 만큼 후원금이 넉넉하다고 생각하는 것 같았다. 솔직히 나는 한국에 나올 때 후원자들(아는 분들)에게 전화하는 것이 그분들을 생각할 때 부담스러울까봐 염려가 되기도 한다. 그래서 보고 싶고 만나고 싶지만 그분들에게 연락을 하지 않는 경우가 많다.

말한 김에 한 가지 더 언급하고자 한다. 선교지에 한국에서 오는 방문자들이 있다. 그 손님들을 모시면서 때로는 선교사들이 지나치게 환대하는 경우가 있다. 선교사의 주도로 선교사의 입장을 설명하고 보여주는 것보다 방문하는 사람들의 입맛(?)만을 맞추는 지나친 아부(?)를 하는 경우를 본다. 손님을 잘 대접하는 것은 자연스럽고도 필요한 일이지만 때로는 그분들의 후원을 염두 해 두고 지나친 행동을 보인다는 것이다. 이런 모습을 볼 때 안타까운 생각이 든다. 선교사들의 아픈 부분이고, 극히 일부분의 선교사들만이 이렇게 하지만 같은 선교사로 부끄러운 일이다.

어떤 선교사들은 선교부에서 요구하는 재정의 투명성을 지키지 않는 경우도 있다. 대부분의 선교사들은 투명하게 모든 수입에 대해서 보고를 한다. 그러나 극히 일부는 그러지 않는 경우를 보는데 그것이 안타깝다. 잠시는 속이는 것이 자신에게 이익이 될 수 있을지 몰라도 결국은 이것들이 자신에게 손해가 되는 것을 모르는 것이다.

선교는 삶을 통해 말씀을 나누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세상을 구원하시기 위해 말씀이 육신이 되신 예수님을 기억할 필요가 있다. 선교사의 삶이 곧 말씀이 될 수 있다. 아주 기본적인 생활의 태도를 지키지 못하면서 말씀을 전한다는 것이 모순일 수 있다. 상식과 도덕성에서 다른 사람에게 존경을 받지 못하거나 영향력을 주지 못하는 그 사역과 (전파되는) 그 말(씀)은 울리는 꽹과리가 될 수 있다. 진정한 능력과 사역자의 모습은 일상생활에서 다른 사람들에게 존경을 받을 만한 삶의 모습이다. 이것이 우리 주님께서 육신으로 나셔서 세상을 구원하는 방법이기 때문이다. 있었던 자리를 깨끗하게, 말끔하게, 그리고 산뜻하게, 그래서 역시 선교사는 신사적이라는 칭송을 받는 내 자신과 모든 선교사들이 되었으면 한다. 그것이 바로 선교 그 자체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