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속과 나눔
죄가 가져온 비극 중의 중요한 것은 자신만을 위한 욕심이다. 욕심 때문에 자신만 잘 살면 된다는 생각이 자리 잡게 되었고 그 결과 세상은 가난한 자들, 연약한 자들, 소외된 자들이 생기게 된 것이다.
그러므로 죄를 없앤다(구속을 받는다)는 의미는 욕심이 없어진 다는 의미이며, 그 결과 이 세상에 연약한 자가 없어진다는 의미이다.
죄 용서함으로 구원받은 성도는 먼저 욕심을 버려야 한다. 욕심을 버릴 때 죄를 용서함 받은 성도가 되는 것이다. 죄를 용서함 받은 성도는 당연히 이 세상에서 존재하는 연약한 자를 돌봐야 한다. 하나님께서 죄에서 구원해 주신 이유는 이 세상에 너무나 많은 연약한 자를 섬기도록 하기 위해서다.
하나님은 그의 자녀들에게 구원의 은혜를 누리기만 하라는 주신 것이 아니고 그것을 나누라고 주셨다. 구원의 은혜를 나누는 것이 바로 연약한 자, 가난한 자를 돌보는 것이다. 그러므로 만약 연약한 자를 돌아보지 못한다면 구원을 받은 증거가 나타나지 않은 것이다. 구원받지 않았기에 연약한 자를 돌볼 마음이 생기지 않는 것이다.
당신은 구원받았는가? 그러면 연약한 사람을 돕고 세우기 위해서 무엇을 하는가? 다른 사람을 위해 자신의 것을 과감히 나누어야 한다.
나눔은 그리스도인들의 거룩한 의무이다. 거룩한 삶을 산다는 것은 나눔을 실현하는 것이다. 나는 개인적으로 한 교회를 섬기는 목회를 한다면 그 교회 이름을 ‘나눔의 교회’로 하고 싶다. 이름만이 아니라 성도들이 그런 삶을 살도록 목표를 설정하고 그런 교회가 되도록 하고 싶은 마음이 있다. 나누기 위해 교회가 이 땅에 세워졌기 때문이다. 그런데 대부분의 교회는 나눔을 하기는 하되 조금밖에 하지 않는다. 그리스도인들도 나눔을 한다고 하지만 아주 조금씩만 한다. 그러면서 자신은 많이 나누고 있다고 생각한다. 자신과 자신의 가족을 위해서는 큰돈을 거침없이 사용하면서 가난한 자를 위한 나눔에는 아주 조금만 행한다. 그리고 자신은 많이 나누고 있다고 생각하고 있다는 것이다.
성도는 교회가 세워진 목적이 나누기 위해서라는 것을 기억해야 한다. 그리스도인들이 구원받은 이유는 나눔을 실천하기 위해서라는 것을 또한 기억해야 한다. 나누는 삶이 거룩한 삶이며, 거룩한 의무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