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교와 영성/약함의 선교

선교사와 감사

후앙리 2020. 7. 14. 17:58

 

19971124일의 일기내용이다. 내용에서 다소 감정적인 표현이 있다. 그래도 고치지 않고 그대로 옮겨 적는다. 선교사의 감정은 때로 더욱 진실을 말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 감정이 바뀌지 않고 언제까지나 그대로 유지되는 것은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순간의 감정은 중요한 것 같다. 나중에 이성으로 판단할 때 부족한 부분이 있겠지만, 그 순간의 감정은 소중하고 때로 정직한 감정으로 인해 세상에 또 다른 유익을 줄 수도 있기 때문이다.

 

<한국의 L 교회의 담임 목사님께서 선교 잡지에 쓴 칼럼 하나를 읽었다. 핵심 내용은 선교사는 파송교회와 후원자들에게 감사(感謝)를 잃어서는 안 된다는 것이었다. 목사님께서 선교사들에게 감사해야 한다고 너무 강하게 질책하는 투의 권면을 하신 글이었다. 교회는 힘을 다해 선교사들을 돕고 있는데, 선교사들은 왜 감사를 하지 않느냐고 하는 선교사를 비판하는 내용이었다. 이 글을 읽고 나는 선교사로서그래 감사가 부족했구나. 더욱 감사해야지라는 생각을 하는 것이 당연할 텐데 그런 생각이 들지 않는다. 오히려 마음이 무겁고 불편한 생각이 앞선다.

왜 이처럼 내 마음이 무거운가! 아니 불쾌하기까지 하다. 왜 그런가? 이 말을 선교사를 돕는 사람이 했기 때문이다. 이 말을 누가 했는가가 중요하다. 선교사들이 스스로 했다면 그것은 자성의 말이다. 그러나 후원하는 목사님이 선교사들에게 가르치는 것처럼 하는 말은 비판과 비방의 말이다. 그래서 나는 이 말이 듣기 싫은 것이다.

선교사도 교회가 어려운 상황에서도 선교사를 후원하고 있다는 것을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다. 그래서 늘 감사하고 있다. 나는 항상 후원자들에게 죄인 된 마음으로 살아간다. 그들의 후원 때문에 귀한 사역을 하고 있으니 얼마나 그들의 헌신이 귀한가! 생각만 해도 감사하고 혹시라도 나로 인해서 그분들이 힘들지는 않는가? 하는 죄스런 마음을 갖고 산다.

그러나 한편으로 선교사만 후원교회에 감사해야 하는가? 아니다. 선교사도 교회를 돕고 있다. 선교사를 후원하는 교회는 그것을 알아야 한다. 선교사는 교회가 선교에 동참할 수 있는 기회를 주고 있는 사람이다. 선교사는 영적 전투의 장인 선교지에서 살아있는 생생한 선교의 간증으로 교인들의 삶에 영적인 도움을 주고 있다. 선교사가 선교지에 자신의 인생을 드리는 것만 해도 교회와 교인들은 감동을 받고, 더욱 깨어 신앙생활을 할 수 있는 자극을 받는다. 선교사는 교회와 교인들에게 후원을 통한 헌신의 기회를 제공한다. 선교사는 교회에게 주신 선교의 명령을 대표로, 대리자로, 대사로 감당하고 있는 것이다. 선교사를 통해서 선교에 동참하는 교회는 더욱 뜨겁고 신앙에 있어서 열정적인 교회가 될 수 있다. 선교사가 없으면 어떻게 교회가 선교에 동참할 수 있는가? 선교사와 선교가 없는 교회는 건강한 교회가 아니다. 아니 선교가 없는 교회는 교회가 아닐 수 있다. 선교가 없는 교회에 어찌 하나님의 말씀이 살아 역사할 수 있는가? 불가능하다. 선교를 위해 세워진 교회가 선교사가 없다면 교회의 본질이 빠진 교회가 되는 것이다. 그런 면에서 선교사는 교회에 영적 힘을 공급해 주는 역할을 한다. 선교사의 존재만으로도 하나님의 가장 큰 뜻인 선교를 감당할 수 있도록 도움을 주고 있다. 교회를 교회되게 하는 것이 바로 선교사다.

그러므로 선교사만 감사해야 하는 것이 아니라 교회도 선교사로 인해 감사해야 한다. 교회가 선교사를 후원한다고 해서 선교사를 종으로 생각한다면 이것은 잘못된 것이다. 이런 칼럼을 쓴 목사님은 선교사를 교회의 종(?) 정도로 생각하는 것 같아 내 마음이 아프다.

선교사도 마땅히 감사해야 하고 교회도 선교사로 인해 마땅히 감사해야 한다. 그런데 이 말을 누가 하느냐가 중요하다. 선교사들이 스스로 교회에 더욱 감사해야 한다는 칼럼을 썼으면 좋겠다. 교회는 선교사들로 인해 교회가 살아있는 교회가 될 수 있기에 선교사에게 감사하자는 칼럼을 썼으면 좋겠다. 그런데 이 칼럼은 거꾸로 되었다. 그것이 내 마음을 아프게 한다.

L 목사님이 말씀하시기를 돕는 사람들은 많은 고생을 하며 후원하고 있고, 그 고생은 선교사들의 고생보다 덜하지 않다고 하였다. 돕는 자가내가 더 당신보다 고생하고 있으니 당신이 나의 고생을 알아주라는 말 같아서 더 안타깝다. 오히려 선교사가 목사님이 말씀하신 것처럼 말해야 하고, 돕는 사람들은 그렇게 말하면 안 되는 것이다.

선교사가 후원자들에게나는 이렇게 선교지에서 고생하고 있는데 당신들은 후원도 제대로 안하고 뭐합니까?”라고 한다면 죽도록 고생해서 후원하는 사람들의 마음은 어떠할까? 다시는 그 선교사를 돕고 싶지 않을 것이다.

나는 누가 선교사인 나의 고생을 알아달라고 하고 싶지 않다. 그것은 나의 몫이기 때문이다. 후원자들에게 후원을 더 많이 하라고 강요하고 싶지도 않다. 그것은 그분들이 자신들이 가진 은혜로 하기 때문이다. 선교사만이 고생하는 것도, 후원자들만이 고생하는 것도 아니다. 하나님 나라를 위해 후원자들은 피와 땀으로 번 돈으로 후원하고 선교사는 선교지에서 외로움과 많은 아픔들과 싸우며 선교하고 있다. 서로를 위해서 비방하는 것이 아니라 서로를 위해 기도하고 서로를 위해 격려하는 것이 우선되었으면 좋겠다. 목사님께서 그렇게 격려하는 칼럼을 쓰셨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선교사들은 스스로 더 많이 감사하지 못해 죄송합니다.”라고 했다면 얼마나 아름다웠을까?

선교는 경쟁도 아니고, 후원자와 선교사가 서로 주종관계도 아니다. 오직 해야 할 일이 있다면 서로 격려하고 위로하는 것뿐이다. 오늘은 왠지 슬픈 마음을 안고 잠자리에 들어야할 것 같다. 그 목사님 한분만 그런 마음을 가졌을지라도 왠지 오늘은 외롭다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선교사는 혼자구나하는 생각도 든다. 이런 생각은 옳은 것이 아닐지라도 오늘은 이런 외로운 감정을 간직해야 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