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어찌할꼬!
성령의 강림으로 능력과 기적이 임하자 사람들은 좋아하기보다는 오히려 더 혼란스러워했다. 성령의 기적은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에 대한 의문을 더했다. 기적의 현상 앞에 더 작아지는 자신들, 무엇을 해야 할지를 모르는 연약한 자신들을 보게 된 것이다. 그래서 그들의 입에서 탄식이 나온다. “어찌할꼬!” 사람들은 예기치 않는 이 세상의 일로 인해 탁식할 수밖에 없다. 눈에 보이지도 않는 바이러스로 온 세상 사람들은 어찌할 바를 모르고 헤매고 있다. 모두가 바이러스의 공포 가운데 떨고 있다. 경제활동 뿐 아니라 일상생활에서 자유를 제약받고 답답하고 불편해 하고 있다. 새해를 맞으면서도 “올 한해 어떻게 살아갈꼬!” 한 숨이 먼저 나온다. 코로나만이 아니라 우리 삶의 형편이 어려움으로 인해 자연스럽게 한숨이 나온다.
인간은 이처럼 약한 존재이다. 열심히 노력하며 세상을 지배하는 것처럼 살지만 초자연적인 능력이나 조그만 바이러스 앞에서 해결책을 내어 놓을 수 없는 무능한 존재이다.
예수님의 제자들은 “어찌할꼬!”라고 하는 사람들의 외침에 답을 내 놓는다. 그런데 그 답은 기대한 것과는 전혀 다르다. 엉뚱한 답을 내 놓는다. 동문서답, 사오정의 대답이다. 회개하고 죄 사함 받고 구원을 받으라는 것이다.
그러나 이 대답은 엉뚱한 대답이 아니라 근본적인 문제 해결에 대한 답이다. 이 어지럽고 혼란스럽고 할 수 있는 능력이 부족함을 느끼는 모든 상황 가운데 가장 중요한 것은 구원을 받는 것이다. 기적은 구원을 위한 하나의 보여주는 수단에 불과하다. 기적이 사람이 살리는 것이 아니다. 이미 말한 것처럼 기적은 오히려 사람들에게 절망만을 가져올 뿐이다. 인간의 삶의 해답은 오직 구원이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주신 길이다. 코로나가 올해는 해결 될 것이다. 그러면 코로나 때문에 “어찌할꼬!”라고 답답해했던 인간들에게 코로나가 해결된다고 해서 참다운 생명과 자유가 올 것인가? 그렇지 않다. 인간의 근본 문제는 죄의 문제다. 죄를 해결하는 것이 인간의 근본문제를 해결하는 것이다.
베드로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죄 사함을 받고 구원을 받으라는 초청을 한다. 이어서 또 하나의 해답을 제시한다. 그것은 “성령의 선물”을 받으라는 것이다. 성령의 선물은 성령께서 우리 안에 내주하시고 우리의 삶을 인도하신다는 약속이다. 성령이 함께 하시는 것이 곧 선물이다. 성령은 우리에게 어떤 과격한 것을 요구하시지 않으신다. 성령은 ‘불’과 ‘능력’이기 전에 선물이다. 성령은 우리에게 부담스러운 존재가 아니다. 우리에게 기쁨을 주는 선물이 곧 성령님이시다. 성령님을 모시고 사는 것이 ‘어찌할꼬’ 하는 인간에게 해답이다. 성령님과 함께 살 때 두려움과 고통과 어려운 환경을 이길 수 있는 근본이 되는 것이다.
성령의 선물, 즉 성령이 우리의 선물이라는 사실은 두렵고 절망스러운 우리들에게 평안과 소망을 준다. 인간의 행복과 기쁨은 성령께서 주시는 것이다. 이 성령님이 함께 하는 삶, 그 삶으로 올 한해도 어떠한 어려움 가운데서도 기쁨으로 살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