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말씀 2020년 3월 4일(수)
29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하나님께서 보내신 이를 믿는 것이 하나님의 일이니라 하시니 (요 6장)
+ 말씀설명
군중들은 육신의 양식, 즉 배고픔과 필요를 충족시키기 위해 예수님을 찾았다. 예수님은 군중들에게 하나님께서 보내신 이, 곧 예수님을 믿는 것이 하나님의 일이라는 것을 가르치신다. 예수님은 단순히 배고픔을 해결하는 세상의 양식이 아닌 인류를 영원히 먹이실 생명의 양식이기에, 그 분을 믿는 것이 모든 일의 근원이며, 그 믿음이 하나님의 일이라고 말씀한다. 이처럼 세상의 양식도 중요하지만 더 근본적인 양식은 예수님을 영원한 생명으로 믿는 것이다. 이것이 진정으로 하나님이 원하시는 일이다. 오늘날도 예수님을 진정한 삶의 양식, 생명으로 알고 믿고 따르고 순종하는 것이 하나님을 섬기는 것이다.
+ 묵상과 적용
예수님을 믿는 이유가 일상적인 세상의 양식 때문인가? 아니면 영원하며 가치있고 의미있는 하나님을 섬기기 위한 것인가?
나는 영원한 생명을 위해 어떤 일을 하고 있는가? 모든 일이 진정한 하나님의 일이 되기 위해 구체적으로 결단해야 할 일은 무엇이 있는가?
+ 오늘의 기도
1. 제가 제 육신의 일보다 하나님의 일에 관심을 갖는 참 믿음의 사람이 되게 하소서.
2. 우리 교회가 교회 자체의 일보다는 하나님의 일에 집중하게 하소서. 교회의 일과 하나님의 일이 상반되는 것이 아니라 일치되는 일을 하는 교회가 되게 하소서.
3. 코로나 19로 인해 한국 교회가 하나님의 일과 육신의 일의 구분을 잘 하게 하시고 하나님께 영광 돌리며, 사람을 살리는 일에 지혜롭게 대처하게 하소서.
4. 아프리카 국가들마다 전염병 감시와 차단을 위한 ‘글로벌, 감염병 확산 방지 프로그램’이 가동되게 하셔서 사망률을 줄이는 데 기여하게 하소서,
+ 청국(淸國) 선교사 롤런드 알렌(Roland Allen)의 선교원리(宣敎原理) (파라과이 김교철 선교사가 보내온 선교 단상)
타문화권 선교사는 선교지에서 자신의 교회와 학교, 봉사 기관을 세우려고 하는 것인지, 아니면 현지 교회와 학교와 봉사 기관을 세우려는 것인지 대하여 분명하게 인식할 필요가 있다. 롤런드 알렌(Roland Allen, 1868-1947)의 저서 “바울의 선교 vs 우리의 선교”는 이 문제에 관하여 고심한 내용을 담고 있는 책이다. 타문화권에서의 교회와 학교, 봉사 기관 설립과 운영에 대한 저자의 생각은 무엇인지 살펴보자. 롤런드 알렌은 선교사들이 선교지에서 최대한 빨리 집과 교회와 학교를 세울 땅을 마련하는 데 온통 신경을 쓰고, 이런 것을 확보하는 일이 해외 선교사나 선교회의 최우선 과제인 것처럼 생각한다는 점을 언급하고 있다. 땅과 건물의 확보를 중시한 결과 선교사들은 본국 후원자들에게 땅과 건물을 건축하기 위해 재정의 필요를 호소하게 된다. 선교사는 심혈을 다해 부지와 건물을 마련하고, 교사와 교역자를 고용하며 기관 운영의 책임을 지게 된다. 선교사는 이렇게 설립된 교회와 학교의 재산권, 운영권, 지도력을 장악하게 되고, 현지인들은 피고용인의 신분에 머물게 된다.
그러므로 선교사가 세운 교회와 학교는 현지인의 시각에서 보면, 외국의 자금으로 만들어진 건물과 시설은 상당히 외래적이며, 자신들의 힘으로 세워진 것이 아니므로 회심자들은 스스로 노력해서 교회와 학교의 필요를 공급하는 대신에 남에게 즉 선교사에게 의존하는 법을 배우게 된다. 선교사는 예배당과 학교 건물 및 운영 경비 심지어 성가대 의복, 피아노, 학용품까지도 책임지고 공급하는 자로 자리 매김하게 된다. 전도사역, 교육사업, 사회봉사 등이 모두 선교사의 손에 집중되어 있기 때문에, 현지 교인들과 교사들은 선교사에게 의존하는 법을 자연스럽게 배우게 된다. 그리고 선교사 중심의 이러한 운영 체계는 현지인이 선교사의 자리를 계승하는 것을 무척 어렵게 만든다. 선교사는 시작부터 선교사 중심 구조로 선교 사업을 추진했고, 선교사 자신의 질병, 은퇴, 사망에 대비한 출구전략 없이 사업을 시작하고 몰두했기 때문에 현지인에게 지도력을 이양하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 되고 만다.
그리고 만에 하나 현지인을 지도자로 세운다고 해도 현지인은 선교사의 방식대로 자금의 공급처를 가동할 연줄도 없고, 선교사와는 다른 입장과 위치에 처해 있기 때문에 곤경에 처하게 되는 것이다. 선교사는 현지인의 지도력을 불신하고, 현지인은 선교사의 권위와 지도 없이는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전통에 익숙해지게 된다. 모든 권한이 선교사의 손에 집중되어 있는 것이 큰 문제이다. 선교사는 자신이 그 곳을 떠나는 순간 모든 것이 금방 와해될 것 같은 위기감을 느끼고, 그런 서글픈 상태에 이른 것을 한탄하게 된다. 선교사들이 자급자족하는 교회와 학교를 세우는 데 실패하는 원인은 무엇일까? 회심자들이 커다란 장점을 갖고 있어도, 그들은 종종 여러 세대에 걸쳐 선교사들에게 의존하는 상태에 머무르게 된다. 현지인들은 선교사에게 의존하면서 자신들의 필요를 다 채워 주길 기대한다. 힘이란 것은 자꾸 사용해야 세지는 법이다. 누군가를 대신해 일을 해주면 그들은 스스로 하는 법을 배울 수 없다. 교육과 관련하여 우리가 계속 배우는 것은, 선생의 일차적 책임이 학생을 위해 모든 문제를 풀어 주는 것이 아니라, 학생에게 어려운 문제를 내주고 어떻게 접근해서 그것을 정복하는지 보여 줌으로써 그의 정신을 일깨우고 자신의 능력을 인식하도록 가르치는 일이라는 점이다. 선교사의 사역은 이런 의미에서 하나의 교육이다. 선교사가 모든 일은 다 한다고 해도 결코 잘하는 것은 아니다. 선교사는 그 시작부터 물러날 생각을 하고 선교 활동을 시작해야 한다. 그리고 물러남을 통해서만 진정한 독립의 길을 닦아 줄 수 있다. 첫 단추를 잘못 끼우면 그 결과는 명약관화(明若觀火)한 것이다. 1912년에 출간된 롤런드 알렌(Roland Allen)의 저서 『바울의 선교 vs 우리의 선교』에 담긴 선교 사상을 다시 음미해 본다. 앨런은 1858년 케임브리지대학교를 졸업했으며, 1895년에는 3년이라는 짧은 영국 성공회 주교 경험을 배경으로 청국(淸國)으로 떠났다. 청국 선교사로 일하던 1900년에는 의화단 사건으로 인해 수개월간 억류생활을 했다. 앨런의 시대에 서구 선교사들은 보호주의, 간섭주의, 지배주의적 선교활동을 하고 있었다. 즉 지도력의 이양을 시기상조로 보았다. 하지만 앨런은 선교사들이 마치 아이들을 지나치게 보호하여 자유롭고 책임감 있게 성장하지 못하게 하는 부모와 같다고 여기면서, 교회가 세워지면 바로 현지 교인들이 스스로 교회를 섬기고 성장하는 데 참여할 수 있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가진 자가 없는 자에게 베푸는 듯한 선교는 중단되어야 한다. 전재옥이 지적한대로, 선교사는 자신이 참여한 선교지 교회나 학교, 봉사 기관에 현지인 지도자를 세워 성령의 능력과 인도하심과 지도하심에 기쁘게 맡기고 다른 선교지로 갈 마음의 준비가 되었는지 자문해야 한다. 자신이 이룩한 업적에 자만하여 떠나지 못하는 추태(醜態)를 부리지 말아야 한다.
+ 성경본문(요 6장)
22 이튿날 바다 건너편에 서 있던 무리가 배 한 척 외에 다른 배가 거기 없는 것과 또 어제 예수께서 제자들과 함께 그 배에 오르지 아니하시고 제자들만 가는 것을 보았더니
23 (그러나 디베랴에서 배들이 주께서 축사하신 후 여럿이 떡 먹던 그 곳에 가까이 왔더라)
24 무리가 거기에 예수도 안 계시고 제자들도 없음을 보고 곧 배들을 타고 예수를 찾으러 가버나움으로 가서
25 바다 건너편에서 만나 랍비여 언제 여기 오셨나이까 하니
26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가 나를 찾는 것은 표적을 본 까닭이 아니요 떡을 먹고 배부른 까닭이로다
27 썩을 양식을 위하여 일하지 말고 영생하도록 있는 양식을 위하여 하라 이 양식은 인자가 너희에게 주리니 인자는 아버지 하나님께서 인치신 자니라
28 그들이 묻되 우리가 어떻게 하여야 하나님의 일을 하오리이까
29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하나님께서 보내신 이를 믿는 것이 하나님의 일이니라 하시니
* "날마다 솟는 샘물"의 QT지 본문을 참고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