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공부, 설교/말씀묵상(QT)자료

오늘의 말씀 2020년 9월 1일(화)

후앙리 2020. 9. 13. 14:29

12 다른 이들도 너희에게 이런 권리를 가졌거든 하물며 우리일까보냐 그러나 우리가 이 권리를 쓰지 아니하고 범사에 참는 것은 그리스도의 복음에 아무 장애가 없게 하려 함이로다(고전 9)

 

+ 말씀설명

바울은 복음 전파를 위하여 자신이 가진 권리를 사용하지 않고 참았다고 고백한다. (바울과 그리고 그와 함께 다녔던 동역자들)가 가진 권리는 다른 사도들처럼 음식을 먹을 수 있었으며, 배우자와 함께 다니면서 생활비를 지원받는 것이었다. 이것을 사용하는 것은 당연함에도 불구하고 참았다. 사람들은 바울에게 어떤 결격 사유가 있어서 이런 권한을 사용하지 않는다고 생각했지만 사실은 복음에 장애가 되지 않기 위해서였다. 혹시라도 복음의 확장을 위해서 장애가 되는 것이 있다면 그것을 사용하지 않는 바울의 신앙관을 알 수 있다.

 

+ 묵상과 적용

- 복음에 장애가 되지 않기 위해, 자신의 권리를 사용하지 않고 범사에 참는 바울을 보며 무엇을 느끼는가?

- 내게 허락된 권리 행사하는 것이 복음 전파에 장애가 되는 경우가 있었는가?

 

+ 오늘의 기도

1. 복음 전파에 걸림돌이 되지 않도록 기꺼이 나의 권리도 포기하게 하소서.

2. 9월 한 달도 오직 주님이 삶의 주인돼 인도해 주시고 어디서 누구를 만나 무엇을 하든지 주님과 동행하며 그리스도의 제자 됨을 드러내게 하소서.

3. 전염병 확산, 메뚜기 재앙, 홍수 등 재난에 대한 최선의 대응책을 위해 전 세계가 긴밀히 협력하게 하시고 이를 위해 모든 그리스도인들이 연합해 기도하게 하소서.

 

+ 성경본문(고전 9)

1 내가 자유인이 아니냐 사도가 아니냐 예수 우리 주를 보지 못하였느냐 주 안에서 행한 나의 일이 너희가 아니냐

2 다른 사람들에게는 내가 사도가 아닐지라도 너희에게는 사도이니 나의 사도 됨을 주 안에서 인친 것이 너희라

3 나를 비판하는 자들에게 변명할 것이 이것이니

4 우리가 먹고 마실 권리가 없겠느냐

5 우리가 다른 사도들과 주의 형제들과 게바와 같이 믿음의 자매 된 아내를 데리고 다닐 권리가 없겠느냐

6 어찌 나와 바나바만 일하지 아니할 권리가 없겠느냐

7 누가 자기 비용으로 군 복무를 하겠느냐 누가 포도를 심고 그 열매를 먹지 않겠느냐 누가 양 떼를 기르고 그 양 떼의 젖을 먹지 않겠느냐

8 내가 사람의 예대로 이것을 말하느냐 율법도 이것을 말하지 아니하느냐

9 모세의 율법에 곡식을 밟아 떠는 소에게 망을 씌우지 말라 기록하였으니 하나님께서 어찌 소들을 위하여 염려하심이냐

10 오로지 우리를 위하여 말씀하심이 아니냐 과연 우리를 위하여 기록된 것이니 밭 가는 자는 소망을 가지고 갈며 곡식 떠는 자는 함께 얻을 소망을 가지고 떠는 것이라

11 우리가 너희에게 신령한 것을 뿌렸은즉 너희의 육적인 것을 거두기로 과하다 하겠느냐

12 다른 이들도 너희에게 이런 권리를 가졌거든 하물며 우리일까보냐 그러나 우리가 이 권리를 쓰지 아니하고 범사에 참는 것은 그리스도의 복음에 아무 장애가 없게 하려 함이로다

13 성전의 일을 하는 이들은 성전에서 나는 것을 먹으며 제단에서 섬기는 이들은 제단과 함께 나누는 것을 너희가 알지 못하느냐

14 이와 같이 주께서도 복음 전하는 자들이 복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명하셨느니라

* "날마다 솟는 샘물"QT지 본문을 참고하였습니다.

 

+ 권한 포기

바울은 복음을 위해 자신의 권리를 포기하였다. 마땅히 누릴 수 있는 상황에서도 바울은 그 권리는 사용하지 않았다. 그 권리란 먹을 것을 얻는 것이다.

일하는 소에게는 망을 씌우지 않아야 한다. 일하는 소에게 먹을 것은 당연한 일이다. 그 누구도 소가 먹겠다는 것에 대해 이의를 제기하는 사람은 없다. 당연히 먹어야 일을 한다. 바울은 사역을 하면서 당연히 주장할 수 있는 먹을 것(오늘날 같으면 생활비)을 요구할 수 있었지만 혹이라고 복음에 방해될까봐 포기하였다고 고백한다.

이는 회사에서 일을 했는데 월급을 받지 않고 포기하는 것과 같다. 복음을 전할 때 바울은 자신이 생활비를 받는 것을 보고 한 사람이라도 실족할까봐 그렇게 한 것이다. 바울이 권한을 포기한다는 의미는 바로 이런 것이었다. 우리는 복음을 위해 어떤 권한을 포기할 수 있는가?

한국에서 난민 사역을 하고 있는 한 선교사님께서 억울한 난민(난민 지위를 얻지 못하고 기다리고 있는 사람)들을 도와주는 사역을 하고 있다. 난민으로 한국에 와서 일하다가 월급을 받지 못해 억울함을 당하는 외국인 노동자가 많다는 말을 하였다. 사업주들 중에 조금 밖에 안 되는 월급을 주지 않기 위해 법 소송까지 가는 경우가 적지 않다는 것이다. 이 선교사는 말이 잘 안 통하는 난민, 노동자를 도와주면서 한국인 사업주들이 너무 악하여 꼭 받아내고 싶다는 말을 하였다. 법 소송까지 가서라도 힘없는 사람들의 권한을 찾아주겠는 것이다. 이는 당연한 것이다.

바울이 복음을 위해 자신이 주장할 수 있는 먹을 권한 마저 포기한다는 의미는 바로 이런 월급 받을 권한을 포기하는 것과 같다.

안타깝게도 많은 한국 사역자들 중에 복음을 위해(교인들을 상처주지 않기 위해) 자신의 생활비(목사 사례금, 급여)를 양보하는 목사가 얼마나 될까? 그런데 그 금액이 음식을 못 사먹을 만큼 된다면 더더욱 그것을 포기할 사역자가 얼마나 될까?

여기서 중요한 것은 모든 그리스도인들의 기준이 복음에 이익이 되는가? 손해가 되는가? 하는 것이다. 손해가 된다면 자신의 권리를 포기할 수 있는 사역자가 바울과 같은 사역자이다. 적어도 사역자라면 월급 때문에 교인들에게 상처주면 안 된다. 돈 때문에 목사나 선교사가 교인들에게 자신의 권한을 주장하는 것은 바울과는 너무나 다른 사역자다.

우리 모든 그리스도인들도 복음을 위해 자신의 권한, 즉 월급 받는 권한까지도 포기할 수 있다면 그렇다면 그때에야 진정으로 복음은 힘이 있을 것이다. 그런데 요즈음 교회와 성도들이 코로나 시대에 조금도 양보하지 않으려고 하는 것, 권한을 다 사용하려는 것은 참 된 바울의 사상이 아니다. 성경에서 요구하는 신앙이 아니다. 코로나 시대에 이미지가 바닥을 치고 있는 현재 한국교회의 상황에서 다시 일어서는 것, 다시 회복하는 것은 바울처럼 우리들이 사용할 수 있는 권한을 포기할 때에만 가능할 것으로 보인다.

한국 교회가 한국 사회와 정부에 따지지 않았으면 좋겠다. 우리의 권한이라고 다 사용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그것이 예배일지라도 예배드릴 권한, 종교의 자유의 권한을 사용하다가 사람들이 예수님을 떠난다면 주님이 기뻐하지 않을 것이다. 우리가 당연히 사용할 수 있지만 사용하지 않고 복음을 위해 포기하거나 양보할 수 있는 신앙이 참 된 신앙, 바울의 정신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