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말씀 2021년 3월 25일(목)
12 사람들이 살아난 청년을 데리고 가서 적지 않게 위로를 받았더라(행 20장)
+ 말씀설명
사도 바울은 드로아에서 밤새 주의 말씀을 강론한다. 계속된 선교 여행 가운데서 가는 곳 마다 성도를 양육하고 훈련시키는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는데 최선을 다한다. 바울이 말씀을 전할 때 3층에서 듣고 있었던 유두고라는 청년이 졸다가 떨어져 죽는 사건이 일어난다. 바울은 하나님이 주신 능력으로 유두고를 살린다. 만약 유두고가 죽었다면 바울의 말씀 사역은 적잖은 악영향을 받았을 것인데 하나님은 그를 고쳐주셨다. 그리고 사람들은 유두고가 살아나게 되자 많은 위로를 받게 된다. 죽었다가 살아난 사람을 보면서 하나님의 살아계심을 경험했을 뿐만 아니라 하나님의 사랑도 경험했을 것이다.
+ 묵상과 적용
요즈음 나는 말씀을 전하고 듣는 일에 열심을 다하는가?
모두가 힘든 이 때에 위로 받는 사건이나 기회가 혹이 있었는가? 무엇을 통해 위로 받기를 원하는가?
+ 오늘의 기도
1. 말씀을 전하고 듣는 일이 그 무엇보다도 중요하다는 사실을 삶의 중심에 두고 살게 하소서.
2. 한국 교회가 처한 현재의 상황 속에서 말씀을 통해 하나님의 뜻을 더욱 분명히 발견하게 하시고, 예레미야처럼 시대의 저항 앞에서도 끝까지 믿음으로 이겨 나가게 하소서.
3. 앙골라. 영양실조와 질병 퇴치에 헌신하는 선교단체들의 인도주의 사역에 동역할 일꾼들을 보내 주시고, 사역을 위해 기도하는 헌신자들이 많아지게 하소서.
+ 성경본문(행 20장)
7 그 주간의 첫날에 우리가 떡을 떼려 하여 모였더니 바울이 이튿날 떠나고자 하여 그들에게 강론할새 말을 밤중까지 계속하매
8 우리가 모인 윗다락에 등불을 많이 켰는데
9 유두고라 하는 청년이 창에 걸터 앉아 있다가 깊이 졸더니 바울이 강론하기를 더 오래 하매 졸음을 이기지 못하여 삼 층에서 떨어지거늘 일으켜보니 죽었는지라
10 바울이 내려가서 그 위에 엎드려 그 몸을 안고 말하되 떠들지 말라 생명이 그에게 있다 하고
11 올라가 떡을 떼어 먹고 오랫동안 곧 날이 새기까지 이야기하고 떠나니라
12 사람들이 살아난 청년을 데리고 가서 적지 않게 위로를 받았더라
13 우리는 앞서 배를 타고 앗소에서 바울을 태우려고 그리로 가니 이는 바울이 걸어서 가고자 하여 그렇게 정하여 준 것이라
14 바울이 앗소에서 우리를 만나니 우리가 배에 태우고 미둘레네로 가서
15 거기서 떠나 이튿날 기오 앞에 오고 그 이튿날 사모에 들르고 또 그 다음 날 밀레도에 이르니라
16 바울이 아시아에서 지체하지 않기 위하여 에베소를 지나 배 타고 가기로 작정하였으니 이는 될 수 있는 대로 오순절 안에 예루살렘에 이르려고 급히 감이러라
* "날마다 솟는 샘물"의 QT지 본문을 참고하였습니다.
+ 위로
말씀을 듣다가 3층 다락에서 떨어져 죽은 유두고라는 청년이 다시 살아났다. 하나님은 바울을 통해 그를 살리셨다. 그 사건으로 인해 성도들은 적지 않게 위로를 받았다. 이처럼 하나님의 기적은 사람들에게 위로를 준다.
유두고를 살리신 하나님은 유두고가 죽지 않게 하실 수도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왜 하필 그 순간에 유두고를 죽게 내버려 두셨을까? 바울과 교회가 온통 시험과 고통과 실망에 빠지게 하셨을까? 그를 다시 살리시고 그리고 성도들에게 위로를 주시기 위해서다. 분명한 것은 여기서 하나님의 목적은 그를 살리신 것이 아니었다는 사실이다. 성도들이 받은 충격에서 벗어나게 하는 것도 아니었다. 어차피 유두고는 나중에 또 죽었다. 그런데 왜 죽게 하셨다가 살리셨는가? 바로 성도들을 위로하기 위해서다. 그 사건을 통해 낙심해 있던 성도들을 위로하고자 하신 것이다. 유두고의 죽음의 순간의 고통에서 성도들을 벗어나게 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성도들에게 하나님의 살아계심을 경험하게 하고 또한 그리스도인으로 살아가는데 필요한 위로를 주시기 위해서였다는 사실이다.
그런 의미에서 일상에서 일어나는 모든 고통과 아픔과 힘든 것들은 그것을 벗어나 혹은 그것을 통해 더 좋은 결과를 얻게 하는데 목적이 있는 것이 아니라 사는 가운데 하나님의 위로를 경험하며 살게 하고자 함이다. 즉, 하나님이 인간이 겪는 많은 고통을 주신 것은 위로를 주시기 위함이라는 것이다. 인간의 삶은 어쩌면 고통의 연속이다. 그러기에 신앙으로 산다는 것은 고통 가운데 위로를 받기 위한 것이다. 고통의 인생에서 위로받는 것이 신앙 생활하는 중요한 이유라는 것이다. 그런 면에서 신앙인이 서로 위로를 주고받으며 사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를 알게 된다. 신앙인에게는 위로를 주고받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한 일이다. 돈을 버는 일, 성공하는 일보다 더 중요한 일이다. “위로를 주는 일”이것이 인생을 살아가는 중요한 목적이라는 것이다. 그러므로 성도는 불화하거나 화를 나게 하거나 싸우는 것이 아니라 위로를 주는 삶을 살아야 한다. 하나님이 성도들에게 위로를 주기 위해 유두고의 죽음의 고통을 경험하게 하신 것처럼, 신앙인들도 위로를 주는 삶을 산다면 가장 중요한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것이 된다. 오늘도 나의 말과 행동의 중심, 그리고 삶의 목적은 다른 사람을 위로하고 세워주는 것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