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공부, 설교/말씀묵상(QT)자료

오늘의 말씀 2021년 4월 13일(화)

후앙리 2021. 4. 13. 05:01

23 백부장 둘을 불러 이르되 밤 제 삼 시에 가이사랴까지 갈 보병 이백 명과 기병 칠십 명과 창병 이백 명을 준비하라 하고

24 또 바울을 태워 총독 벨릭스에게로 무사히 보내기 위하여 짐승을 준비하라 명하며(23)

 

+ 말씀설명

유대인들이 바울을 암살할 것이라는 계획을 들은 천부장은 백부장 둘을 불러 총독 벨릭스에게 보내어 정식 재판을 받게 하고자 보병 이백명과 기병 칠십 명과 장병 이백명의 군사를 준비시킨다. 천부장은 한 사람을 살리기에 위해 그 때 당시 천부장이 거느린 절반의 군사력을 준비시킬 뿐 아니라 총독에게 편지를 써서 바울이 죄가 없다는 것을 증명한다.

천부장은 로마 시민권을 가진 바울을 보호했다는 행위를 통해 총독에게 인정을 받고자 했지만 실제로는 배후에 하나님께서 바울을 살리시고자 천부장을 사용하신 것이다. 천부장은 자신을 위해 바울을 살리고자 했지만 결과적으로 하나님의 일에 쓰임 받은 복된 사람이 된 것이다.

오늘날도 하나님은 특별은총 뿐 아니라 일반은총, 즉 안 믿는 사람과 일반 과학을 통해서도 세상과 그의 백성을 보호하고 다스리신다. 어려운 상황에서도 다양한 방법을 사용하셔서 하나님의 백성을 보호하시는 하나님, 그리고 하나님의 손에 쓰임 받는 것 자체가 큰 복인 것을 기억하며 살아야 할 것이다.

 

+ 묵상과 적용

나는 내가 하는 일을 통해 하나님의 일에 쓰임 받고 있다고 생각하는가?

하나님께서 일반은총을 통해 나를 돌보신다는 것을 어떤 부분에서 알 수 있는가?

 

+ 오늘의 기도

1. 제가 하는 일이 하나님의 일에 쓰임 받는 일이 되게 하소서.

2. 리비아는 지난 2011년 민주 항쟁과 카다피 축출 이후 국제적으로 인정받는 정부와 동부의 라이벌 행정부로 나누어져 있는 혼란이 지속하고 있다. 이를 틈타 인신매매범들이 유럽으로 향하는 아프리카 난민들을 납치하는 사건이 종종 발생하고 있다. 리비아 사회가 속히 안정되고, 유럽을 향하는 난민들이 잘 보호받을 수 있도록 기도하자.

 

+ 성경본문(23)

23 백부장 둘을 불러 이르되 밤 제 삼 시에 가이사랴까지 갈 보병 이백 명과 기병 칠십 명과 창병 이백 명을 준비하라 하고

24 또 바울을 태워 총독 벨릭스에게로 무사히 보내기 위하여 짐승을 준비하라 명하며

25 또 이 아래와 같이 편지하니 일렀으되

26 글라우디오 루시아는 총독 벨릭스 각하께 문안하나이다

27 이 사람이 유대인들에게 잡혀 죽게 된 것을 내가 로마 사람인 줄 들어 알고 군대를 거느리고 가서 구원하여다가

28 유대인들이 무슨 일로 그를 고발하는지 알고자 하여 그들의 공회로 데리고 내려갔더니

29 고발하는 것이 그들의 율법 문제에 관한 것뿐이요 한 가지도 죽이거나 결박할 사유가 없음을 발견하였나이다

30 그러나 이 사람을 해하려는 간계가 있다고 누가 내게 알려 주기로 곧 당신께로 보내며 또 고발하는 사람들도 당신 앞에서 그에 대하여 말하라 하였나이다 하였더라

31 보병이 명을 받은 대로 밤에 바울을 데리고 안디바드리에 이르러

32 이튿날 기병으로 바울을 호송하게 하고 영내로 돌아가니라

33 그들이 가이사랴에 들어가서 편지를 총독에게 드리고 바울을 그 앞에 세우니

34 총독이 읽고 바울더러 어느 영지 사람이냐 물어 길리기아 사람인 줄 알고

35 이르되 너를 고발하는 사람들이 오거든 네 말을 들으리라 하고 헤롯 궁에 그를 지키라 명하니라

* "날마다 솟는 샘물"QT지 본문을 참고하였습니다.

 

+ 무력함(영생의 길, 헨리 나우엔)

예수님의 이야기는 성육신에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십자가에서 끝난다. 그 곳에서 우리와 동일한 인간으로 손과 발이 못박힌 채 벌거벗은 모습으로 매달리셨다. 말구유에서의 무력함이 십자가에서의 무력함이 되었다. 사람들은 그분을 조롱하고 비웃고, 그분의 얼굴에 침을 뱉으며 소리쳤다. “그가 남은 구원하였으나 자기는 구원하지 못하는구나. 그가 이스라엘 왕이시니, 지금 십자가에서 내려오시라지, 그러면 우리가 그를 믿을 터인데”(27:42). 그분은 거기 매달리셨다. 납 조각이 달린 채찍에 갈기갈기 찢긴 몸으로, 친구들의 거부와 적들의 모욕으로 인해 상한 마음으로, 번민으로 인해 괴로워하는 정신으로, 버림받음이라는 암흑에 휩싸인 영혼으로- 완전히 연약하고 완전히 무력한 상태로 말이다. 이것이 바로, 우리에게 하나님의 사랑을 드러내 보여주시기 위해, 우리를 긍휼의 품 안으로 되돌리시기 위해, 그리고 한없는 자비 속에서 분노가 녹아 없어졌다는 것을 우리에게 확신시키기 위해 하나님이 선택하신 방법이다.

그러나 나사렛 예수님을 통해 드러내 보여주신 하나님의 무력함에 대해서 알 말이 좀 더 있다. 그것은 무력한 탄생이요 무력한 죽음일 뿐 아니라, 좀 이상하게 들릴지 모르지만 무력한 인생이었다.

하나님의 무력한 아이 예수는 무력함 가운데서 복음 받으셨다. 기록되지 않은 나사렛에서의 오랜 생활 후 예수님이 사역을 시작하실 때, 그분은 처음으로 우리에게 자화상을 제시하신다. 그분은 마음이 가난한 자는 복이 있다고 말씀하셨다. 예수님은 가난하셨다. 그분은 자신이 속한 사회에서 지배 계층이 아니라 소외된 계층이었다. 나사렛에서 무슨 선한 것이 날 수 있겠는가?

그분은 온유한 사람은 복이 있다고 말씀하셨다. 예수님은 상한 갈대를 꺽지 않으셨다. 그분은 항상 작은 자를 돌보신다.

그분은 슬퍼하는 사람은 복이 있다고 말씀하셨다. 예수님은 슬픔을 숨기지 않으신다. 오히려 친구가 죽을 때, 사랑하는 예루살렘의 멸망을 예견하실 때, 눈물을 흘리신다.

그분은 의에 주리고 목마른 자는 복이 있다고 말씀하셨다. 예수님은 거침없이 불의를 비난하시고 굶주린 자, 죽어가는 자, 나병 환자들을 지키는데 주저하지 않으신다.

그분은 자비한 사람이 복이 있다고 말씀하셨다. 예수님은 복수를 청하지 않으시고 언제 어디서나 치유하신다.

그분은 마음이 깨끗한 사람은 복이 있다고 말씀하셨다. 예수님은 필요한 일에만 초점을 맞추신채, 주의가 산만해지지 않도록 하신다.

그분은 평화를 이루는 사람은 복이 있다고 말씀하셨다. 예수님은 차이를 강조하지 않으시고 사람들을 한 가족 안의 형제자매로서 화해시키신다.

그분은 의를 위하여 박해를 받은 사람은 복이 있다고 말씀하셨다. 예수님은 성공과 명성을 바라지 않으신다. 그분은 거절과 버림당함이 자신을 괴롭힐 것임을 알고 계신다.

팔복은 우리에게 예수님의 자화상을 보여준다. 그것은 무력한 하나님의 초상이다. 그것은 또한 병든 자, 죄수, 난민, 고독한 자, 성적 학대의 희생자. 에이즈에 걸린 사람들, 그리고 죽어가는 사람들을 보는 곳에서는 어디서나 언뜻 보게 되는 자화상이다.

우리는 바로 그들의 무력함을 통해서 형제와 자매가 되라는 부르심을 받았다. 우리는 그들의 무력함을 통해서 우정과 사랑의 유대를 깊게 하라는 부르심을 받았다. 우리는 그들의 무력함을 통해서 무기를 내려놓고 서로 용서하며 화해하라는 도전을 받았다. 우리는 그들의 무력함을 통해서 그리스도가 반드시 이런 고난을 겪고서 자기 영광에 들어가야 하지 않겠습니까?” 라고 하신 예수님의 말씀을 변함없이 기억한다. 진정 하나님의 무력함과 하나님이 친히 한 부분이 되신 인류의 무력함이 사랑의 집으로 가는 문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