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말씀 2021년 4월 21일(수)
8 당신들은 하나님이 죽은 사람을 살리심을 어찌하여 못 믿을 것으로 여기나이까
9 나도 나사렛 예수의 이름을 대적하여 많은 일을 행하여야 될 줄 스스로 생각하고(행 26장)
+ 말씀설명
바울은 아그립바 왕에게 자신이 재판을 받게 된 이유를 설명한다. 한 마디로 하나님이 약속하신대로 예수님이 죽으시고 부활하셨고 바울이 그 부활을 믿고 가르친다는 이유로 고소를 당해 재판을 받고 있다고 말한다. 그러면서 어찌하여 사람들은 하나님이 약속하신 것임에도불구하고 죽은 자(예수님)의 부활을 믿지 아니하느냐고 반문하면서 자신이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난 얘기를 설명한다.
바울처럼 그리스도인이 믿는 것은 부활이다. 그런데 그리스도인이라고 자처하면서 유대인처럼 부활을 믿지 않는 자들이 있다. 바울은 부활을 실제로 체험했기에 자신의 경험을 설명하면서 부활을 증거하고 있는 것이다.
+ 묵상과 적용
부활을 믿는 자로서 변해야 할 생각과 행동은 무엇이 있는가? (부활을 믿는다면 이 세상에 미련을 두고 사는 것이 아니라 세상을 변화시키는 삶을 살아야 할 것이다.)
나는 부활의 체험을 어떻게 설명할 수 있는가?
+ 오늘의 기도
1. 부활 신앙을 가지고 부활의 가치관에 따라 살게 하시고 부활의 체험으로 예수님을 전하는 삶을 살게 하소서.
2. 서아프리카 시에라리온 인접 국가 기니에서 에볼라 바이러스가 재발하여 7명이 확진되고, 4명이 사망했다고 기니 보건 당국이 발표하였다. 이에 기니 정부는 에볼라 유행을 공식 선언한 상황이다. 코로나 19와 더불어 에볼라의 위기에 직면한 기니 정부와 세계보건기구가 적극적으로 대처하여 에볼라가 더는 확산하지 않고 무고한 희생이 일어나지 않도록 기도하자.
+ 성경본문(행 26장)
4 내가 처음부터 내 민족과 더불어 예루살렘에서 젊었을 때 생활한 상황을 유대인이 다 아는 바라
5 일찍부터 나를 알았으니 그들이 증언하려 하면 내가 우리 종교의 가장 엄한 파를 따라 바리새인의 생활을 하였다고 할 것이라
6 이제도 여기 서서 심문 받는 것은 하나님이 우리 조상에게 약속하신 것을 바라는 까닭이니
7 이 약속은 우리 열두 지파가 밤낮으로 간절히 하나님을 받들어 섬김으로 얻기를 바라는 바인데 아그립바 왕이여 이 소망으로 말미암아 내가 유대인들에게 고소를 당하는 것이니이다
8 당신들은 하나님이 죽은 사람을 살리심을 어찌하여 못 믿을 것으로 여기나이까
9 나도 나사렛 예수의 이름을 대적하여 많은 일을 행하여야 될 줄 스스로 생각하고
10 예루살렘에서 이런 일을 행하여 대제사장들에게서 권한을 받아 가지고 많은 성도를 옥에 가두며 또 죽일 때에 내가 찬성 투표를 하였고
11 또 모든 회당에서 여러 번 형벌하여 강제로 모독하는 말을 하게 하고 그들에 대하여 심히 격분하여 외국 성에까지 가서 박해하였고
12 그 일로 대제사장들의 권한과 위임을 받고 다메섹으로 갔나이다
* "날마다 솟는 샘물"의 QT지 본문을 참고하였습니다.
+ 위임하자
8주 동안 사랑의 교회 기드온 청년부(35~45세)주최로 ‘기드온 선교학교’를 개최하였다. 청년부를 담당하시는 김목사님께서 내게 부탁을 하셔서 8주 동안 8개의 강의를 하였는데 지난주에 수료식까지 잘 마쳤다. 선교학교를 마치면서 김 목사님과 식사를 하는 중에 김 목사님께서 이런 말씀을 하셨다. “우리 교회 담임 목사님의 심정을 이제야 좀 느낄 것 같네요. 우리 담임 목사님께서는 다른 사람들에게(주로 부목사님들께) 일을 다 맡기시고 결과와 열매는 자신이 다 가져가시는데 그런 마음이 바로 이런 마음인 것 같아요. 이영 선교사님이 선교학교 강의하시느라 고생은 다 하시고 제가 열매를 따 먹는 것 같은 기분입니다.”김 목사님께서 이런 말씀을 하시는 것은 나를 편하게 해 주시고자 하는 마음에서라는 것을 나는 안다. 내가 고생했다는 것을 표현하신 말씀이다. 감사하다는 표현이었던 것이다.
김 목사님은 참으로 대단하신 분이시다. 김목사님은 나와 아는 관계여서 나를 초청해서 선교학교를 부탁을 했지만 사실은 목사님도 선교사 출신이기에 선교학교 강의를 할 수 있다. 그렇지만 좀 더 전문적인 사람이 했으면 해서 나를 초청한 것이다. 김 목사님이 내게 전적으로 교육을 맡기는 일은 쉬운 일이 아니다. 그 누구도 자신이 목회하는 부서(혹은 교회)의 성도들을 맡겨서 교육을 시켜달라고 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라는 것이다. 그러나 김 목사님은 그렇게 하셨다. 나로서도 참으로 감사하다. 내가 하는 주 사역이 선교교육 사역인데, 이처럼 선교학교의 장을 열어주신 것이 무엇보다 귀한 일이었다. 물론 참가자들의 만족도도 높아서 다음 2학기도 하기로 하였다.
김 목사님의 고백을 들으면서 인생을 쉽게 사는 방법이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그것은 자신의 일을 다른 사람에게 위임하는 것이다. 자신의 일을 다른 사람(전문가)에게 위임할 수만 있다면 그 일은 제대로 할 수 있고 그리고 그 결과와 열매는 위임한 자신에게 돌아온다는 사실이다.
자신의 일을 다른 사람에게 맡기는 것만큼 쉬운 일은 없다. 그냥 맡기면 된다. 그러면 그 일을 맡은 사람(전문가)이 그 일을 제대로 할 수 있다. 만약 그 일이 전문가가 아닌 초보나 혹은 학생, 자녀에게 맡기는 것이라면 그것도 마찬가지로 그 맡은 사람에게는 훈련이 되는 것이어서 좋은 결과를 가져온다.
모세가 광야에서 이스라엘을 인도하면서 매일 싸우고 분쟁하는 백성들을 재판하는 일을 하느라고 몸도 마음도 지치고 무엇보다도 그 일을 혼자서 다 감당할 수 없었다. 장인 이드로에게 찾아가서 물어볼 때, 이드로는 혼자 다 하지 말고 오십부장, 백부장, 천부장을 세워서 그 사람들에게 재판을 위임하라고 하였다. 그 결과 아주 심각한 문제만 모세가 다루면 되었고 모세는 다른 더 중요한 일을 감당할 수 있었으며 무엇보다도 지치지 않았다.
이처럼 어떤 일이든지 다른 사람에게 위임하면 위임한 사람은 물론이고 위임받은 사람도 좋다. 그런데 문제는 사람들이 위임(일을 맡기는 것)을 잘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쉬운 일이고 좋은 일임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은 자기 혼자 다 하려고 하는 습성이 있다. 왜 그럴까? 무엇보다도 욕심 때문에 그렇다. 자신이 무슨 일이든지 다 하고자 하는 욕심, 자기만 영광 받아야 한다는 욕심, 좋은 것은 다 자기가 일하고 그 결과도 자신이 취하고자 하는 욕심 때문이다. 그리고 자존감(혹은 자신감)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다른 사람에게 맡기면 그 사람이 자기를 대신해서 일을 잘하면 자신의 공로를 빼가지는 않을까? 혹은 일 잘하는 사람에게 칭찬이 돌아가지 않을까? 자신의 일이나 직위가 위태롭지는 않을까? 등등의 염려를 하기 때문이다. 또한 다른 사람을 믿지 못하기 때문이기도 하다. 다른 사람을 믿는다면 맡기면 된다. 그러나 믿지 못하기에 잘 맡기지 못한다. 기독교의 핵심 교리는 믿음이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어야 한다. 그래야 구원이 있다. 그리고 사람도 믿어야 한다. 그래야 서로 신뢰하는 가운데 평안히 살 수 있다. 반대로 옆에 있는 사람을 믿지 못하면 불안하다. 간혹 맡긴다고(위임한다고) 하여도 자기 마음에 맞지 않는다고 간섭하고 잔소리를 한다. 결국 자기 일을 다른 사람에게 나눠주거나 맡기지 못하는 사람은 미련한 사람이 되는 것이다.
분명한 것은 맡기는 것이 너무나 쉬운 일이라는 사실이다. 그런데 쉬운 일을 못하고 오히려 어렵게 살아가는 사람은 어리석은 사람이 되는 것이다.
우리는 과감히 맡겨야 한다. 자녀에게도 간섭하지 말고 위임할 줄 알아야 한다. 학생들에게도 스스로 일을 할 수 있도록 숙제를 주어야 한다. 선생 혼자 가르치는 것이 아니라 학생 스스로 공부할 수 있도록 맡겨주어야 한다. 회사에서도 다른 동료 직원 혹은 밑에서 일하는 사람에게 과감히 맡겨야 한다. 그리고 잔소리를 하지 말아야 한다. 맡겼으면 최선을 다하도록 도와주는 일만 하면 된다.
담임 목사도 부목사에게 과감히 일을 맡길 줄 알아야 한다. 맡기면 쉽게 살 수 있다. 그리고 영광도 더 많이 얻을 수 있다. 그것이 다른 사람이 일하도록 하는 것이고 다른 사람을 세워주는 것이 된다. 인생을 어렵게 살지 말자. 쉽게 살자. 다른 사람에게 일을 맡기는 것을 주저하지 말자. 그렇게 사는 것이 현명하고 지혜로운 인생이다.
사랑의 교회 기드온 청년부 담당 김 목사님께서 마지막으로 하신 말씀은 “앞으로 기드온 협동 목사로 생각하시고 편하게 계속 선교학교를 진행해주세요”였다. 참 고맙고 통이 크신 참다운 지도자이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