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말씀 2021년 7월 28일(수)
12 그들이 와서 시온의 높은 곳에서 찬송하며 여호와의 복 곧 곡식과 새 포도주와 기름과 어린 양의 떼와 소의 떼를 얻고 크게 기뻐하리라 그 심령은 물 댄 동산 같겠고 다시는 근심이 없으리로다 할지어다
13 그 때에 처녀는 춤추며 즐거워하겠고 청년과 노인은 함께 즐거워하리니 내가 그들의 슬픔을 돌려서 즐겁게 하며 그들을 위로하여 그들의 근심으로부터 기쁨을 얻게 할 것임이라(렘 31장)
+ 말씀설명
바벨론과 온 땅으로 흩어졌던 이스라엘이 회복될 것을 예언한 말씀이다. 그날에는 시온의 높은 곳에서 찬송하며 곡식과 짐승떼를 얻고 크게 기뻐할 것이라고 한다. 그 심령은 물댄 동산처럼 근심이 없을 것이라고도 한다. 처녀는 춤추고 즐거워하며 청년과 노인은 함께 즐거워할 것이라고 한다. 슬픔이 변하여 즐거움이 되고 하나님의 위로로 인해 근심이 변하여 기쁨이 될 것이라고 한다.
현재 살면서 갖는 어려움이 있다고 하더라도 언젠가 하나님이 이처럼 회복케 해 주실 날이 올 것이다. 그 날을 소망하면 견디고 참고, 주님을 의지하며 살아야 할 것이다.
+ 묵상과 적용
- 주님과의 깊은 교제에서 오는 기쁨과 만족함을 놓치고 세상 즐거움을 구했던 적이 있다면 언제인가?
- 내 삶이 물 댄 동상 같은 축복을 누리려면 무엇을 결단해야 하는가?
+ 오늘의 기도
1. 주님의 회복을 믿고 현재의 어려움 가운데서도 믿음으로 소망 가운데 살게 하소서.
2. 한국기아대책기구에서는 우간다 쿠미(Kumi) 지역 농가 소득 증대를 위한 신재생 에너지 활용 농업 사업을 추진한다. 이 지역은 인구의 90%가 농업에 종사하고 있어 농업 의존도가 매우 높지만, 낮은 소득, 부실한 지역 공동체 인프라 등의 이유로 빈곤이 반복되고 있다. 국내외 굶주리고 소외된 이들에게 떡과 복음을 통해, 영적, 육체적 자립을 돕는 기아대책기구의 사역을 통해 우간다의 빈곤 문제가 해결되고, 이를 통해 현지에 복음이 확산되고, 교회가 세워지도록 기도하자.
+ 성경본문(렘 31장)
10 이방들이여 너희는 여호와의 말씀을 듣고 먼 섬에 전파하여 이르기를 이스라엘을 흩으신 자가 그를 모으시고 목자가 그 양 떼에게 행함 같이 그를 지키시리로다
11 여호와께서 야곱을 구원하시되 그들보다 강한 자의 손에서 속량하셨으니
12 그들이 와서 시온의 높은 곳에서 찬송하며 여호와의 복 곧 곡식과 새 포도주와 기름과 어린 양의 떼와 소의 떼를 얻고 크게 기뻐하리라 그 심령은 물 댄 동산 같겠고 다시는 근심이 없으리로다 할지어다
13 그 때에 처녀는 춤추며 즐거워하겠고 청년과 노인은 함께 즐거워하리니 내가 그들의 슬픔을 돌려서 즐겁게 하며 그들을 위로하여 그들의 근심으로부터 기쁨을 얻게 할 것임이라
14 내가 기름으로 제사장들의 마음을 흡족하게 하며 내 복으로 내 백성을 만족하게 하리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 "날마다 솟는 샘물"의 QT지 본문을 참고하였습니다.
+ 지혜와 지식은 다르다. (아침향기. 2021년 7월호 발췌/장소연, 미주중앙일보. 2020.11.30 인용)
지식(Knowledge)과 지혜(wisdom)는 다른 것이다. 말장난이 아니다. 지식과 지혜는 매우 다르다. 소설가 최인호 선생의 표현을 빌리자면 ‘든 사람’과 ‘된 사람’의 차이 같은 것이다.
사전의 설명을 빌리면 지식은 어떤 대상에 대하여 배우거나 실천을 통하여 알게 된 인식이나 이해이고, 지혜는 사물의 이치를 빨리 깨닫고 사물을 정확하게 처리하는 정신적 능력이다. 이것을 구분하지 않는 것이 오늘날 문제 중의 하나다. 실제로 학교 공부를 많이 해서 지식이 많은 사람이 꼭 지혜로운 것은 아니다. 오히려 반대인 경우가 더 많아 보인다. ‘전문바보’ 또는 ‘박사 바보’라는 우스갯소리가 농담이 아니다.
마찬가지로 지식인과 지성인은 다르다. 지도자에게는 한층 더 다른 덕목이 요구된다. 이에 대해서 작가 시오노 나나미라 <로마인 이야기>에서 아주 명쾌하게 설명했다. 학문으로 익힌 지식과 ‘지도자의 지적 능력’을 구별하면서 지식인은 “자신은 확실한 비전이 없으면서 타인이 하는 일에는 큰 소리로 비판을 한다”고 규정한다. 즉 비판을 위한 비판은 잘하지만 비전을 제시하지는 못한다는 것이다. 공감이 간다.
바로 지금 우리사회에도 그럴 듯한 비판은 넘쳐나는데 그럼 어쩌자는 거냐. 대안이 뭐냐고 되물으면 제대로 못 하는 일이 되풀이되고 있다. 그래서 요란하게 시끄럽기만 하다.
오늘날은 통신 수단이 획기적으로 발달한 덕에 모든 사람이 지식인이 되었다. 그래서 혼란이 한층 더 심하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지식은 일부 특수한 사람들의 전유물이었다. 학자들은 물론 정치가들도 자신의 이익을 위해서 정보를 독점하고 조작하고 요리할 수 있었다. 배운 것이 많은 사람이 대접을 받고 출세도 했다.
하지만 지금은 형편이 완전히 달라졌다. 컴퓨터를 켜고 인터넷 검색을 하면 온갖 정보가 주르르 흘러넘친다. 지식을 머리통에 넣고 다니는 귀찮은 짓을 할 필요가 없다. 검색만 하면 된다. 사색을 할 필요가 없다.
단지 어느 것이 바른 정보이고 어떤 것이 엉터리인지 가리기 위해 순간적으로 잠시 망설이기만 하면 된다. 그러니 모든 사람이 균등하고 훌륭한 지식인이다. 교수가 학생보다 다양한 지식을 가지고 있다고 아무도 말할 수 없다.
그뿐만 아니라 온라인 세상이 열리고 소통 방법도 다양해지면서 누구나 자기 생각을 큰 소리로 떠들 수 있게 되었다. 이 동네에선 무조건 목소리 크고, 튀는 놈이 인기를 끌고 이긴다. 진실이나 대안이나 비전 같은 건 찾아보기 어렵다.
하지만 세상이 이렇게 변해 갈수록 지혜, 자기 나름의 비전과 대안을 제시하는 지적 능력이 소중해지게 마련이다.
그런 점에서 보면 아무런 대안도 제시하지 못하면서 이런 글을 쓰고 있는 나 역시 한심한 중생이다. 가련하다. 대안이랍시고 도덕 교과서 읊어 봐야 들어줄 사람도 없을테고, 이렇다 할 비전을 제시할 깜냥도 아니다. 그저 나 자신을 되돌아보고 반성할 따름이다.
나 스스로 다짐하는 것은 이런 것이다. 한 번 검색하기 전에 세 번 사색하자. 남을 한 번 비판하기 전에 세 번 나를 되돌아보자. 삼사일언(三思一言) 삼사일행(三思一行) 이라는 옛 어른들의 가르침을 흉내 낸 것이다. 이런 것이라도 실천하려고 애쓸 따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