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말씀 2021년 9월 14일(화)
15 즐거워하는 자들과 함께 즐거워하고 우는 자들과 함께 울라(롬 12장)
+ 말씀설명
오늘 말씀은 인간이 살아가는 중요한 방식을 가르쳐 준다. 성경의 다른 말씀보다 주목을 덜받는 말씀이지만 사람이 살면서 취해야 할 아주 중요한 말씀이다.
인간은 함께 살아가도록 하나님이 지으셨다. 함께 살아가는데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가? 그것은 공감하며 사는 것이다. 공감은 상대의 입장에서 생각하고 행동하는 마음이다. 내 중심이 아니라 상대 중심의 태도를 갖는 것이다. 즐거워하는 자들과 함께 즐거워하고 우는 자들과 함께 우는 것이다. 서로 마음을 나누며 사는 것이다. 일치된 마음을 갖는 것이다. 일치된 마음을 가진 사람들은 비교나, 경쟁이나, 시기나, 싸움을 할 필요 없다. 낮은 자들의 눈높이에 맞춰 낮아지고 높은 자들의 눈높이에 맞춰 높아지면 서로 화목하며 살수밖에 없다. 그것이 인간에게 가장 큰 행복이다.
그런 면에서 오늘 말씀은 인간 행복의 본질을 말해준다. 행복하고 싶은가? 함께 하라, 상대와 공감하라. 상대를 이해하라. 상대와 같아지라. 상대편을 들어주라, 내 생각이 아니라 상대 생각을 존중해주라. 그러면 나와 상대, 이 세상 모든 사람이 행복해질 것이다.
+ 묵상과 적용
나는 즐거워하는 자들과 진정으로 즐거워한다고 생각하는가?
오늘 찾아가서 함께 울어줄 우는 자는 누구인가?
+ 오늘의 기도
1. 사람들과 잘 지내기 위해 상대와 공감하는 능력을 키워 사람들을 존중하는 마음으로 살게 하소서.
2. 지난 6월 18일 이란에서 실시된 대통령 선거에서, 대미 강경파인 에브라힘 라이시(Ebraim Raisi)가 국민 61.9%의 압도적 지지로 새로운 대통령으로 당선되었다. 라이시는 미국 국무부에 의해 제재를 받는 상황이며, 이에 따라 핵 협상 파트너인 미국과의 관계가 악화될 것이라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새로운 이란 대통령 당선인과 미국과의 핵협상이 잘 진행되어, 불필요한 갈등과 중동지역에서의 긴장이 조성되지 않도록 기도하자.
+ 성경본문(롬 12장)
14 너희를 박해하는 자를 축복하라 축복하고 저주하지 말라
15 즐거워하는 자들과 함께 즐거워하고 우는 자들과 함께 울라
16 서로 마음을 같이하며 높은 데 마음을 두지 말고 도리어 낮은 데 처하며 스스로 지혜 있는 체하지 말라
17 아무에게도 악을 악으로 갚지 말고 모든 사람 앞에서 선한 일을 도모하라
18 할 수 있거든 너희로서는 모든 사람과 더불어 화목하라
19 내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가 친히 원수를 갚지 말고 하나님의 진노하심에 맡기라 기록되었으되 원수 갚는 것이 내게 있으니 내가 갚으리라고 주께서 말씀하시니라
20 네 원수가 주리거든 먹이고 목마르거든 마시게 하라 그리함으로 네가 숯불을 그 머리에 쌓아 놓으리라
21 악에게 지지 말고 선으로 악을 이기라
* "날마다 솟는 샘물"의 QT지 본문의 순서를 따랐습니다.
+ 즐거워하는 자들과 즐거워하고
전도서에 보면 “초상집에 가는 잔칫집에 가는 것보다 나으니 모든 사람의 끝이 이와 같이 됨이라... 슬픔이 웃음보다 나음은 얼굴에 근심하는 것이 마음에 유익하기 때문이라”(전 7:2,3). 이 말씀은 지혜롭게 사는 방법이 무엇인지를 가르쳐주는 말씀이다. 인생무상을 돌아보며 살기 위해서 잔칫집보다는 초상집 가는 것을 더 선호하라는 말씀이다. 슬픔을 당한 사람들을 보면서 인생의 연약함을 돌아보고 겸손하게 살라는 말씀이다. 초상집에 가서 같이 슬퍼해 주는 것이 슬픔을 당한 사람들에게도 큰 위로가 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바울은 로마서에서 “즐거워하는 자들과 함께 즐거워하고 우는 자들과 함께 울라”고 말씀하신다. 즐거워하는 자들과 우는 자들과 공감하며 삶을 함께 나누며 살라는 것에 초점이 맞춰진 말씀이다.
그러면 기쁨과 슬픔을 함께 나누는 것 중에 어느 것이 더 어려울까? 우리는 초상집에 가서 무슨 말을 해야 할까를 고민한다. 아무리 생각해도 해 줄 말이 별로 없다. 뭐라 말해도 위로가 되지 않을 것 같다. 섣불리 말했다가는 상처를 줄 것만 같다. 그래서 초상집에 가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많은 부담감을 가지고 간다. 그러나 나는 초상집에 가는 것이 잔치집에 가는 것보다 더 쉽다고 생각한다. 그것은 초상집에 가서 해야 하는 행동보다는 잔칫집에 가서 해야 하는 행동이 더 어렵기 때문이다. 왜냐하면, 사실 따지고 보면, 초상집에 가서는 많은 말을 하지 않아도 된다. 그저 인사하고 손을 잡아주고 묵묵히 옆에 있어만 주어도 된다. 울 때는 눈물을 닦아주면 된다. 그리고 전도서에서 말씀한 것처럼 인생에 대한 고귀한 생각을 많이 하고 돌아오면 된다. 그러나 잔칫집에 가서는 오히려 실수를 더 많이 할 수 있다. 그 실수란 겉과 속이 다른 행동을 보이는 것이다. 물론 다른 사람은 모르고 나만 아는 그런 마음과 행동이다. 즉 속마음에서는 진정으로 즐거워하지 않으면서, 말과 행동으로는 즐거워하는 척 한다는 것이다. 마음과 일치하지 않는 축하를 해 준다는 것이다. 축하해주는데 마음 한 켠에서는 부러움과 시기가 솟아난다. 너무 화려한 잔치에는 부러운 마음을 가짐과 동시에 너무 축하나 자랑할 것 없는 초라한 자신을 보게 된다는 것이다.
성경은 자랑하지 말라고 한다. 자랑하는 것은 교만한 태도이며 듣는 사람들의 시기를 유발한다. 그래서 나는 진짜 자랑할 만한 것이 있으면 가족들에게만 하는 것이 좋다고 생각한다. 예를 들면, 내 아이가 좋은 대학에 갔거나, 좋은 직장에 취업을 하게 되었을 때, 가족 이외에 진정으로 축하해 줄 수 있는 사람이 얼마나 있을까? 물론 진정으로 축하해주는 사람이 많이 있겠지만 그러나 각자의 속마음은 다를 것이다. 축하해 줄 일이 있을 때 사람들은 대개 두 마음을 갖는다. 축하해주면서도 자신과 비교하게 된다는 것이다. 비교하면 마음이 복잡해진다. 순수하게 축하해주지 못하고 속마음의 힘듦은 숨기고 겉으로만 축하해 준다.
다른 예인지 모르지만, 나는 청년 시절에 교회 담임 목사님의 생일을 교회에서 성대하게 치러주는 것을 보면서 많은 생각을 한 기억이 있다. 그때 나는 목사님의 생일을 축하해주는 마음이 있었지만 마음 한편에서는 목사는 교인들을 돌보는 목자인데, 많은 교인들은 저런 생일잔치를 하지 못할텐데, 목사님이 굳이 교인들의 마음을 헤아리지 못하면서까지 생일잔치를 거하게 해야 하는가? 하는 부정적인 마음을 가졌었다. 그러면서 나는 목사가 되면 내 생일은 비밀로 하고 생일잔치도 하지 않기로 작정했다. 지금도 내 생일을 정확히 아는 사람은 가족 말고는 없다. 왜냐하면 내 호적과 진짜 생일은 다르고 또한 내 진짜 생일을 말하지 않기 때문이다. 물론 하나님께 기도하며, 감사하며, 가족들과는 함께 즐거운 시간을 갖는다.
이런 이유로 우는 자들과 함께 우는 것보다는 즐거워하는 자들과 함께 즐거워하는 것이 훨씬 더 어려운 일이라 생각한다. 우는 자들과는 공감을 하지만 웃는 자들과는 다른 여러 가지 복잡한 마음이 든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즐거워하는 자들과 진정으로 즐거움을 나눌 수 있다면, 그 사람은 성숙한 사람이다. 시기와 질투와 경쟁심과 부러움을 모두 내려놓고 순수하게 즐거워할 수 있는 사람이 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그래서 나는 사람들과 더 많이 즐거워하고 축하해주는 성숙한 사람이 되었으면 좋겠다. 그래서 좋은 곳에, 즐거운 곳에, 잔치집에도 즐겁게 참석하여 축하해주는 것도 귀한 행복이라는 것을 생각해본다.
“즐거워하는 자들과 함께 즐거워하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