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공부, 설교/말씀묵상(QT)자료

오늘의 말씀 2022년 6월 6일(월)

후앙리 2022. 6. 6. 05:01

2 침상에 누운 중풍병자를 사람들이 데리고 오거늘 예수께서 그들의 믿음을 보시고 중풍병자에게 이르시되 작은 자야 안심하라 네 죄 사함을 받았느니라(9)

+ 말씀설명

예수님이 사람들의 병을 고치신다는 말을 듣고 침상에 누운 중풍 병자를 사람들이 예수님께 데리고 나아온다. 이에 예수님은 그들의 믿음을 보셨다. 그리고 안심하라 하시면서 죄 사함을 받았다고 선언하신다.

중풍병자에게 죄 사함을 받았다고 선언하신 예수님의 말씀 속에서 예수님은 자신이 하나님이심을 드러내신다. 예수님은 죄 사하는 권세를 가지신 하나님이시다. 죄를 용서하시는 예수님은 육신의 병(중풍병)을 고치시는 것은 어려운 일이 아니다. 육신의 병뿐만 아니라 영혼의 죄 까지도 사하실 수 있는 하나님이시다. 그분께 모든 영육의 병을 가지고 나아갈 때 안심하라고 하시면서 용서해주시고, 치료해 주신다.

+ 묵상과 적용

중병병자처럼 나도 주님께 나아가야 할 영육의 문제가 무엇인가?

신경 안정제가 아니라 주님만이 이 세상의 모든 염려와 근심을 안심케 하시는 분임을 믿고 그분께 나가지 않겠는가?

+ 오늘의 기도

1. 주님만이 모든 죄의 뿌리를 고치시는 분임을 믿고 그 분께 믿음으로 나아가 치유를 받게 하소서.

2. 아프리카에서 백색증을 가진 사람들에 대한 인식이 제고되어 차별과 인권 침해가 없어지고 이들을 지원할 더 많은 국제적 관심이 일어나도록 기도하자.

+ 성경본문(9)

1 예수께서 배에 오르사 건너가 본 동네에 이르시니

2 침상에 누운 중풍병자를 사람들이 데리고 오거늘 예수께서 그들의 믿음을 보시고 중풍병자에게 이르시되 작은 자야 안심하라 네 죄 사함을 받았느니라

3 어떤 서기관들이 속으로 이르되 이 사람이 신성을 모독하도다

4 예수께서 그 생각을 아시고 이르시되 너희가 어찌하여 마음에 악한 생각을 하느냐

5 네 죄 사함을 받았느니라 하는 말과 일어나 걸어가라 하는 말 중에 어느 것이 쉽겠느냐

6 그러나 인자가 세상에서 죄를 사하는 권능이 있는 줄을 너희로 알게 하려 하노라 하시고 중풍병자에게 말씀하시되 일어나 네 침상을 가지고 집으로 가라 하시니

7 그가 일어나 집으로 돌아가거늘

8 무리가 보고 두려워하며 이런 권능을 사람에게 주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니라

* "날마다 솟는 샘물"QT지 본문의 순서를 따랐습니다.

+ 비범한 일상적인 일 (주일 신앙이 평일로 이어질 때. 톰 넬슨)

- 당신이 어쩌다가 청소부가 된다면,미켈란젤로가 그림을 그리듯이, 세익스피어가 시를 쓰듯이, 베토벤이 음악을 작곡하듯이 거리를 쓸어라. 그리하면 거리를 너무도 잘 쓴 나머지 하늘과 땅의 온 천군천사가 멈춰서서 여기 자기 일을 훌륭하게 수행한 위대한 거리 청소부가 살았다라고 말할 것이다. (마르틴 루터 킹)

- 의식적이든 의도하지 않았든, 목사가 교회의 일은 중요하지만 세상의 일은 그렇지 않다는 신호를 보내는 경우가 너무나 많다. 그래서 노동자들, 사업가들, 그리고 전문인들이 월요일에 일터에서 하는 자신들의 일이 일요일에 교회의 지지를 받지 못한다고 느끼는 것은 놀랄 일이 아니다. 우리의 은사를 기독교 조직 내에서 활용하는 것이 하나님 나라에 투자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이라고 설교하고 또 그런 결론을 내린다면, 이는 성경이 가르치는 소명의 신학에서 크게 벗어나는 것이다. 안타깝게도 성실한 신앙인들 가운데 그런 생각을 품고 있는 사람이 상당히 많다. 우리의 뇌리에 새겨진 많은 메시지는 아주 왜곡된 비성경적 관념인 만큼 이에 대해 우리가 깊이 생각할 필요가 있다. 어떤 종류의 일이 다른 종류들보다 더 기독교적이란 생각, 특정 종류의 일만이 영원한 가치가 있다는 생각, 나이가 들면서 성공 중심에서 의미 중심으로 전환하기 위해 직업을 바꿔야 한다는 생각 등은 우리가 자신의 삶과 신앙공동체에서 맞서야 할 비성경적인 사고방식이다.

그런데 하나님께 그토록 장엄하게 되도록 설계했던 일이 왜 그처럼 따분하고 무의미한 것으로 변했는가? 어째서 우리의 일에 대해 흐릿한 생각을 품게 되었는가? 아무리 평범한 일이라도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잘 수행한다면, 그것은 의미심장하고 비범한 일이 될 수 있다. -루터는 그 때 당시 사제, 수도원, 혹은 교회 사역으로 부름 받는 것이 농부나 상인이 되는 것보다 더 고상하고 더 신성하고 더 영적인 소명이라는 왜곡된 견해를 무너뜨렸다. 종교 개혁자들은 지혜롭게 일요일의 신앙을 월요일의 일과 다시 연결시켰다. “형제들아 너희는 각각 부르심을 받은 그대로 하나님과 함께 거하라”(고전 7:24)

- 세상에서의 하나님의 선교가 하나님의 섭리로 그들이 몸담게 된 직업을 통해 꽃을 피우도록 되어 있다. 우리가 번창하고, 소금과 빛이 되고, 영적으로 성장하고, 세상에서 하나님의 구속의 일꾼이 되어야 할 곳은 우리의 일상을 이루는 일과 휴식과 놀이의 영역이다. 사도 바울과 같이 종교 개혁자들은 기독교적 소명이 우리가 몸담은 비범한 일상적인 삶 속에서 이뤄진가르쳤다. 이것이 바로 예수님이 친히 보여주신 본보기였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