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공부, 설교/말씀묵상(QT)자료

오늘의 말씀 2023년 12월 27일(수)

후앙리 2023. 12. 27. 05:06

6 공의는 행실이 정직한 자를 보호하고 악은 죄인을 패망하게 하느니라(13)

 

+ 말씀 설명

공의와 악에 대해 비교하고 있다. 공의는 정직한 자를 보호하지만, 악은 사람(죄인)을 패망하게 한다. 공의가 정직한 자를 알아주는 것이다. 반대로 공의가 없는 악은 패망한다. 그래서 하나님의 자녀들은 공의롭게 살아야 한다. 공의가 사라진 악을 따라 살지 말아야 한다. 세상에서는 악한 사람이 성공하고 정직한 사람이 손해 볼 때가 있지만 성도는 끝까지 공의를 지키고 악을 떠나야 한다.

 

+ 묵상과 적용

공의가 아닌 악한 것으로 행하는 부분은 없는가?

 

+ 선교적 실천

우리 공동체에 공의를 실현하기 위해 악한 것이 있다면 그것을 어떻게 고칠 것인가?

 

+ 오늘의 기도

1. 악인 아닌 선과 공의로 살게 하소서.

2. 소말리아의 백색증 환자들이 처한 가난과 차별을 해소하기 위해 정부 차원의 지원책이 마련되고, 규모는 작지만 기독교 공동체와 선교사들이 이들을 따뜻하게 품을 수 있는 역할과 공간이 마련되도록

 

+ 성경 본문(13)

1 지혜로운 아들은 아비의 훈계를 들으나 거만한 자는 꾸지람을 즐겨 듣지 아니하느니라

2 사람은 입의 열매로 인하여 복록을 누리거니와 마음이 궤사한 자는 강포를 당하느니라

3 입을 지키는 자는 자기의 생명을 보전하나 입술을 크게 벌리는 자에게는 멸망이 오느니라

4 게으른 자는 마음으로 원하여도 얻지 못하나 부지런한 자의 마음은 풍족함을 얻느니라

5 의인은 거짓말을 미워하나 악인은 행위가 흉악하여 부끄러운 데에 이르느니라

6 공의는 행실이 정직한 자를 보호하고 악은 죄인을 패망하게 하느니라

7 스스로 부한 체하여도 아무것도 없는 자가 있고 스스로 가난한 체하여도 재물이 많은 자가 있느니라

8 사람의 재물이 자기 생명의 속전일 수 있으나 가난한 자는 협박을 받을 일이 없느니라

9 의인의 빛은 환하게 빛나고 악인의 등불은 꺼지느니라

10 교만에서는 다툼만 일어날 뿐이라 권면을 듣는 자는 지혜가 있느니라

11 망령되이 얻은 재물은 줄어가고 손으로 모은 것은 늘어가느니라

 

+ 교회가 공의로워야 한다.

얼마 전에 어떤 분이 쓰신 글을 읽은 적이 있다. “공의를 행해야 하는 교회에 공의가 사라졌다는 말이었다. 그러면서 교회에서 담임 목사가 부교역자보다 월등하게 사례금을 많이 받는 것이 공의롭지 못하다고 하였다.

나는 이 글을 읽으면서 여러 가지 마음이 들었다. 사례금이 똑같아야 그것이 공의로운 것인가? 하는 질문을 해 보았다. 만약 똑같다면 자본주의 사회가 아니라 공산주의 사회는 아닌가? 하는 생각도 해 보았다.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능력이 다르면 그에 대한 보수도 달라야 한다. 훌륭한 운동선수는 천문학적인 연봉을 받지만, 가난한 지역에서 태어난 사람은 죽을 때까지 고생하면서 살아야 한다. 이것을 일괄적으로 똑같이 만드는 것이 공의인가?

담임목사와 부교역자의 경우는 나이나 경력이나 학력에 차이가 있다. 그런데 똑같이 받지 않는다고 해서 과연 그것이 공의를 실천하는 것이 아니란 말인가?

성경은 자본주와 공산주의 사상을 다 가지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이런 말을 하면 비판을 할 사람이 있을지 모르지만, 성경은 가난한 자를 돌보라는 것을 강조한다. 그리고 부자를 인정하기도 하였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자원함이다. 억지나 일괄적으로 혹은 강제로 하라는 것은 아니다. 많이 가진 자가 자원함으로 나눠주라는 것이 성경의 핵심이다.

교회에서 담임 목사와 부교역자의 월급이 차등이 있다고 해서 공의가 없다고 쉽게 말해서는 안 될 것 같다. 성경에서 말하는 자본주의 사상이 교회에 있기에 일률적으로 단정 지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그렇다고 똑같이 일하면서 차등의 월급을 받고 가족 수가 더 많고 씀씀이가 많음에도 불구하고 그것을 모르는 채하고 직급에 따른 차등만을 내세우는 것도 잘못된 것이다. 가능하면 가진 자가 더 많이 나눠주는 방식으로 가야 한다. 사례금을 똑같이 주는 방식도 있지만, 더 많이 받는 자가 많이 나누어주는 방식으로 가는 것이 건강하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 그것이 교회의 공의와 은혜의 공식을 채우는 것이기 때문이다.

교회에 공의가 없다고 하기 전에 나부터 나보다 가난한 자를 돌볼 줄 알아야 한다. 직장에서 나보다 일을 더 많이 하는 부하 직원이 월급을 더 적게 받는다면 내가 직급이 높다고 당연히 많이 받는 것에 대해 아무런 의식을 갖지 않는 나부터 돌아보아야 한다. 세상은 자본주의이고 교회는 그러지 말아야 한다고 우기지 말아야 한다. 나부터 생활화해야 한다. 나부터 나누어야 한다. 나부터 실천해야 한다. 그 장소가 세상이건, 직장이건, 교회이건 마찬가지다. 그것이 내가 먼저 우리가 속한 교회에서 공의를 이루는 것이기 때문이다. 교회는 가능하면 차등이 적도록 해야 할 것이다. 그것이 성경의 사상이기 때문이다.

교회는 제 3자가 아니라 바로 나 자신이다. 나를 제외한 교회는 있을 수 없다. 그런데도 우리는 를 제외하고 교회가 잘못한다고 비판한다. 그러나 내가 비판하는 교회가 바로 라는 사실과 부터 고치고 개혁을 해야 한다.

추후: 참고로 나는 담임 목사가 아니다. 교회에서 월급을 받지도 않는다. 다만 교회에서 자원함으로 후원하는 후원금으로 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