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공부, 설교/말씀묵상(QT)자료

오늘의 말씀 2023년 4월 18일(화)

후앙리 2023. 4. 18. 05:03

31 이새의 아들이 땅에 사는 동안은 너와 네 나라가 든든히 서지 못하리라 그런즉 이제 사람을 보내어 그를 내게로 끌어 오라 그는 죽어야 할 자이니라 한지라

32 요나단이 그의 아버지 사울에게 대답하여 이르되 그가 죽을 일이 무엇이니이까 무엇을 행하였나이까(삼상 20)

 

+ 말씀설명

다윗이 식사 자리에 참석하지 않자 사울은 요나단에게 물어본다. 요나단은 다윗의 가정사 때문에 왕의 식사 자리에 올수 없었노라고 보고한다. 이에 사울은 화가 나서 아들 요나단까지 죽이려 한다. 사울은 다윗이 살아 있으면 자신의 왕권에 위협이 될 것으로 생각하여 계속해서 다윗을 죽이려 한 것이다. 그러나 요나단은 다윗이 죽을 만한 죄가 없다고 다윗을 변호한다.

본문에서 선을 악으로 보는 사울과 선을 선으로 보는 요나단의 다른 모습을 본다. 사울은 죄악과 욕심 때문에 선을 악으로 보았지만, 요나단은 하나님의 선함을 마음에 새기며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삶을 산 것이다.

 

+ 묵상과 적용

하나님이 기뻐하지 않으실 것을 알면서도 내 생각과 감정이 앞섰던 일은 무엇인가?

내 욕심을 내려놓고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일을 실천하기 위해 구체적으로 무엇을 결단하겠는가?

 

+ 오늘의 기도

1. 내 욕심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과 선함으로 살게 하소서.

2. 대도시 인구 밀집과 그에 따른 부작용을 해소하려는 일본 정부의 정책이 효과를 거두고, 일본 선교가 이러한 추세를 잘 파악하여 효과적인 선교 방법을 마련할 수 있도록

 

+ 성경본문(삼상 20)

24 다윗이 들에 숨으니라 초하루가 되매 왕이 앉아 음식을 먹을 때에

25 왕은 평시와 같이 벽 곁 자기 자리에 앉아 있고 요나단은 서 있고 아브넬은 사울 곁에 앉아 있고 다윗의 자리는 비었더라

26 그러나 그날에는 사울이 아무 말도 하지 아니하였으니 이는 생각하기를 그에게 무슨 사고가 있어서 부정한가보다 정녕히 부정한가보다 하였음이더니

27 이튿날 곧 그달의 둘째 날에도 다윗의 자리가 여전히 비었으므로 사울이 그의 아들 요나단에게 묻되 이새의 아들이 어찌하여 어제와 오늘 식사에 나오지 아니하느냐 하니

28 요나단이 사울에게 대답하되 다윗이 내게 베들레헴으로 가기를 간청하여

29 이르되 원하건대 나에게 가게 하라 우리 가족이 그 성읍에서 제사할 일이 있으므로 나의 형이 내게 오기를 명령하였으니 내가 네게 사랑을 받거든 내가 가서 내 형들을 보게 하라 하였으므로 그가 왕의 식사 자리에 오지 아니하였나이다 하니

30 사울이 요나단에게 화를 내며 그에게 이르되 패역무도한 계집의 소생아 네가 이새의 아들을 택한 것이 네 수치와 네 어미의 벌거벗은 수치 됨을 내가 어찌 알지 못하랴

31 이새의 아들이 땅에 사는 동안은 너와 네 나라가 든든히 서지 못하리라 그런즉 이제 사람을 보내어 그를 내게로 끌어오라 그는 죽어야 할 자이니라 한지라

32 요나단이 그의 아버지 사울에게 대답하여 이르되 그가 죽을 일이 무엇이니이까 무엇을 행하였나이까

33 사울이 요나단에게 단창을 던져 죽이려 한지라 요나단이 그의 아버지가 다윗을 죽이기로 결심한 줄 알고

34 심히 노하여 식탁에서 떠나고 그달의 둘째 날에는 먹지 아니하였으니 이는 그의 아버지가 다윗을 욕되게 하였으므로 다윗을 위하여 슬퍼함이었더라

 

+ 건강한 교회

똑같은 사물을 보면서 사람들은 왜 다른 생각을 할까? 아름다운 자연을 보면서 아름답다고 하는 것이 당연한데 마음이 꼬인 사람은 그런 표현을 할 수가 없다. 아무런 악의를 가지고 말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악의가 있는 것처럼 해석하는 안타까운 사람이 있다.

아마도 이런 사람들은 마음에 상처가 있던지, 아니면 자기중심의 생각, 혹은 주관성이 강하기 때문일 것이다.

알고 보면 이런 사람도 그렇게 해석하고 받아들이는 것에 대해 괴로워할 것이며, 결과적으로 어떤 요인에 대한 피해자일 수 있다.

혹시라도 사실을 사실 그대로 볼 수 있고, 아픈 사람을 긍휼의 마음으로 볼 수 있는 사람이라면 그런 사람은 복을 받은 사람이며, 한편으로 책임이 더 많은 사람이다. 건강한 사람이 아픈 사람을 도와야 하는 책임이 있는 것처럼 말이다.

그런 면에서 영적으로, 육체적으로, 정신적으로 진짜 건강한 사람은 다른 사람을 긍휼히 여기며 도움을 줄 수 있는 자이다. 만약 연약한 사람, 상처가 많은 사람을 돕고자 하는 마음보다는 그 사람을 정죄하거나 완악한 마음이 드는 사람은 그 사람도 똑같이 연약한 사람일 수 있다. 건강치 못한 사람은 건강치 못한 사람을 도울 수 없기 때문이다. 오히려 건강치 못한 사람은 자신의 문제 때문에 계속해서 자신과 타인에게 상처를 더 많이 만들어 가면서 살아간다.

건강한 사람이 더 많아지는 교회가 되었으면 좋겠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교회가 아픈 사람이 더 많은 것을 본다. 교회에 상처를 치유하러 가는데 오히려 상처를 더 많이 받고 있는 현실인 것 같다. 모든 교회가 다 그런 것이 아니라 그런 교회들이 점점 많아지고 있는 것 같아 안타깝다. 교회가 건강해야 상처받은 사람들이 치유 받을 수 있다. 그러기에 먼저 건강한 교회를 만드는 것이 필요하다. 내가 먼저 건강한 사람이 되어야 한다. 그래서 아픈 사람을 도와줄 수 있는 힘을 길러야 한다.

아픈 사람이 많은 공동체에서 견디기 힘들다면 나도 아픈 사람인 것을 자각하는 것도 또한 필요하리라. 건강한 그리스도인, 건강한 교회가 더욱 많아지기를 소원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