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말씀 2023년 8월 16일(수)
14 그러므로 주께서 친히 징조를 너희에게 주실 것이라 보라 처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을 것이요 그의 이름을 임마누엘이라 하리라(사 7장)
+ 말씀설명
하나님께서 아사스 왕에게 징조를 구하라고 한다. 아하스 왕은 여호와를 시험하지 않기 위해 징조를 구하지 않겠다고 대답한다. 겉으로는 하나님을 시험하지 않겠다고 했지만, 내면으로는 하나님의 말씀을 듣지 않은 것이며, 하나님에 대한 불신이 들어 있는 대답이었다. 또한 그에게는 하나님보다는 앗수르를 의지하는 마음도 있었다.
그런 그에게 하나님은 친히 징조를 주신다. 즉 하나님이 끝까지 함께 하실 것이라는 약속이다. 이 말씀은 메시야에 대한 예언의 말씀이기도 하다. 하나님은 메시야를 주실 뿐 아닐 그 메시야를 통해 끝까지 그의 백성들과 함께 하시겠다는 약속이다. 이것을 직접하신 것이다.
이 약속은 예수 그리스도의 탄생을 통해 이미 성취되었고 지금도 지켜지고 있다. 사람의 약속이 아닌 하나님의 약속에 대한 믿음을 갖고 살아야 할 것이다.
+ 묵상과 적용
요즈음 나는 하나님의 말씀보다 인간적인 생각이 앞서지는 않는가?
하나님의 약속을 믿기 위해 가져야 할 태도와 결단은 무엇인가?
+ 오늘의 기도
1. 오직 하나님의 약속에 대한 신뢰를 가지고 살게 하소서.
2. 아직도 무고하게 구금되어 있는 알제리 기독교인들까지 모두 빠른 시일 내로 석방되고, 알제리에서 개종의 자유와 신앙의 자유가 보장되어 자유롭게 예배할 수 있는 날이 속히 찾아오도록
+ 성경본문(사 7장)
10 여호와께서 또 아하스에게 말씀하여 이르시되
11 너는 네 하나님 여호와께 한 징조를 구하되 깊은 데에서든지 높은 데에서든지 구하라 하시니
12 아하스가 이르되 나는 구하지 아니하겠나이다 나는 여호와를 시험하지 아니하겠나이다 한지라
13 이사야가 이르되 다윗의 집이여 원하건대 들을지어다 너희가 사람을 괴롭히고서 그것을 작은 일로 여겨 또 나의 하나님을 괴롭히려 하느냐
14 그러므로 주께서 친히 징조를 너희에게 주실 것이라 보라 처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을 것이요 그의 이름을 임마누엘이라 하리라
15 그가 악을 버리며 선을 택할 줄 알 때가 되면 엉긴 젖과 꿀을 먹을 것이라
16 대저 이 아이가 악을 버리며 선을 택할 줄 알기 전에 네가 미워하는 두 왕의 땅이 황폐하게 되리라
17 여호와께서 에브라임이 유다를 떠날 때부터 당하여 보지 못한 날을 너와 네 백성과 네 아버지 집에 임하게 하시리니 곧 앗수르 왕이 오는 날이니라
18 그 날에는 여호와께서 애굽 하수에서 먼 곳의 파리와 앗수르 땅의 벌을 부르시리니
19 다 와서 거친 골짜기와 바위 틈과 가시나무 울타리와 모든 초장에 앉으리라
20 그 날에는 주께서 하수 저쪽에서 세내어 온 삭도 곧 앗수르 왕으로 네 백성의 머리 털과 발 털을 미실 것이요 수염도 깎으시리라
21 그 날에는 사람이 한 어린 암소와 두 양을 기르리니
22 그것들이 내는 젖이 많으므로 엉긴 젖을 먹을 것이라 그 땅 가운데에 남아 있는 자는 엉긴 젖과 꿀을 먹으리라
23 그 날에는 천 그루에 은 천 개의 가치가 있는 포도나무가 있던 곳마다 찔레와 가시가 날 것이라
24 온 땅에 찔레와 가시가 있으므로 화살과 활을 가지고 그리로 갈 것이요
25 보습으로 갈던 모든 산에도 찔레와 가시 때문에 두려워서 그리로 가지 못할 것이요 그 땅은 소를 풀어 놓으며 양이 밟는 곳이 되리라
+ 광야에서 하나님을 만난다
줄리 월터스와 마이클 케인이 주연한 <리타 길들이기>(1983)라는 영화가 있다. 대략적인 줄거리는 노동자 계층의 가정주부인 리타 이야기다. 그는 자신의 좁은 인생을 깨뜨리고 세상으로 나가고 싶어한다. 리타는 영문학학위 과정을 공부하려고 대학에 등록한다. 그가 대학에서 받는 교육과정의 일부는 새로운 사람들을 만나서, 그들에게 좀 더 세련된 인생을 살아가는 법을 배우는 것이다. 드디어 리타는 남편을 떠나, 인생에 파티 밖에 관심이 없는 어린 여학생과 함께 살게 된다. 어느 날 집으로 돌아온 리타는 그 친구가 목숨을 끊으려고 일부러 마약을 많이 복용하여 의식을 잃은 것을 발견한다. 다음 장면은 그 여학생이 깨어나는 장편이다. 리타는 혼수상태에서 막 깨어난 친구에게 “왜 그런 짓을 했니? 너는 모든 것을 다 가졌잖아!” 하고 말한다. 그에게서 돌아온 대답은 끔찍했다. “파티가 끝나고, 친구들도 다 떠나고, 음악도 멎으면 나에게 남는 것이란 나 자신뿐이지. 나 자신만으로는 충분하지 않아. 나혼자서 살 수가 없다고!”
단지 나 혼자 있는 상황을 견뎌내지 못해, 결국은 나로부터 숨게 된다. 술과 마약으로 숨어보려는 사람도 있다. 어떤 이들은 시끄러운 소리와 인간관계 뒤에 숨기도 한다. 그러나 이들은 모두 중독으로 이어지게 된다. 이들은 정신적인 고통을 단지 일시적으로 진정시켜주는 감정적인 아스피린일 뿐이다. 어쨌든 우리는 밖에서 들려오는 소리를 높이기만 하면 우리의 내면으로부터 들려오는 부르짖는 소리를 피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하나님께는 다른 계획이 있다. 하나님은 더 좋은 생각을 갖고 계신다. 진정한 기독교 도피주의와는 정반대다. 당신은 현실에서 도망치기 위해 마약을 사용한다. 그러나 당신이 예수님을 영접하면 진리를 알게 된다. 그분의 진리는 우리를 자유롭게 한다. 하나님이 우리를 광야로 데려가시는 이유는 그곳에서 우리를 만나 주시기 위해서다. 광야는 배경 음악도 없다. 아주 적막하고 조용하다. 광야는 하나님을 발견하는 장소다. 그곳은 우리가 우리 자신을 발견하는 장소이기도 하다. 우리 중 많은 사람이 리타의 친구와 같다. 자신을 그렇게 많이 좋아하지 않는다. 그래서 아무도 없이 자신과 보내는 상황은 어떻게든 피하려고 애쓴다. 어쨌거나, 당신이 좋아하지 않는 사람과 필요 이상으로 시간을 보내야 할 이유가 무엇인가? 내가 만나본 사람 중 외로움을 피하려는 대부분의 사람은 자신을 좋아하지 않으며, 자기가 뭔가 중요하고 의미 있는 일을 할 수 있어야 중요하고 의미 있는 존재가 될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문제는 그러한 마음으로 살아가는 사람에게는 결코 마음의 평안이나 안식이 없다는 것이다. 그렇게 해서 생기는 좋은 느낌은 오래가지 않는다. 다음에 또 그
런 일을 해야만 한다. 그래서 인생은 지치고 피곤해진다. 그러한 삶은 당신이 절대로 통과할 수 없는 시험을 계속해서 치르는 것과 마찬가지다.
예수님은 다른 길을 알고 계신다. 예수님은 자기가 누군지를 아셨다. 예수님은 자신이 누군지 증명할 필요가 없으셨다. 그래서 다른 사람에게 인정받기 위해 무엇인가 한 적이 한 번도 없다. 주님은 자신이 누구에게 속한, 누구의 존재인지를 알고 계셨기 때문이다. 예수님이 세례를 받으실 때 들으신 "너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라 내가 너를 기뻐하노라 하시니라"(눅 3:22)는 말씀은 예수님이 기적을 베풀거나 설교하기 전에, 십자가에 달리기 삼 년 전에 들으신 말씀이다. 예수님은 아버지에게 받는 사랑과 인정 가운데서 안전감을 누렸다. 예수님의 사역은 대단한 인물이 되려고 안달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을 아버지 하나님께 사랑받는 존재로 아는 것으로부터 나오는 안전감에서 비롯되었다.
우리도 하나님께 고통 말고는 드릴 것이 없다. 우리는 순간마다 하나님께 슬픔을 안겨 드렸지만 하나님은 여전히 우리를 사랑하신다. 우리는 하나님의 사랑을 받을 자격이 없지만, 그것은 문제되지 않는다. 우리는 그저 하나님의 사랑을 받아야만 한다. 자신에 대해 아무런 가치도 없는 사람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하나님의 무조건적인 사랑을 받아들이기가 힘들다. 하나님은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사람이라고 말하는 내면의 목소리를 잠재우고, 한나ᅟᅵᆷ 말씀의 진리를 듣고 받아들이기를 원하신다. 광야는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자신의 사랑을 보여주시는 가운데 하나다.(광야에서, 마이클 플라비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