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말씀 2024년 1월 13일(토)
24 또 주의 율법에 말씀하신 대로 산비둘기 한 쌍이나 혹은 어린 집비둘기 둘로 제사하려 함이더라(눅 2장)
+ 말씀 설명
요셉과 마리아는 아들을 낳고 이름을 예수라 했다. 이것은 가브리엘 천사가 일러준 이름이었다. 모세의 법대로 요셉 부부는 아기의 정결 예식을 위해 예루살렘에 올라갔다. 주의 율법대로 처음 난 남자를 주께 드리는 예식을 치렀던 것이다. 또한 주의 율법대로 산비둘기 한 쌍이나 혹은 어린 집비둘기 둘로 제사하려고 했다.
오늘 본문은 총 4절이다. 4절 모두 하나님의 말씀에 따라 행동했음을 기록하고 있다. “천사가 일러준”, “모세의 법대로”, “주의 율법에”, “주의 율법에 말씀하신 대로”
요셉과 마리아는 아들을 낳고 하나님이 말씀하신 대로, 말씀의 기준에 따라 양육했던 것이다. 온전히 말씀에 매여 자녀를 양육하는 요셉과 마리아의 신앙을 볼 수 있다.
+ 묵상과 적용
오직 말씀대로 자녀를 양육하는 요셉과 마리아를 보면서 어떤 마음이 드는가?
나의 모든 삶의 기준이 하나님의 말씀이 되도록 하기 위해서 내가 해야 할 것은 어떤 것이 있는가?
+ 선교적 실천
우리 공동체는 말씀대로 교회를 운영하는가?
+ 오늘의 기도
1.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의 기준에 따라 순종하며 살아가게 하소서.
2. 지역 교회와 기독교인들이 복음의 능력으로 살아가는 모습을 개인적인 신앙 영역에만 국한하지 않고 자신이 살고 있는 지역의 문제와 현안에 관심을 가지면서 선한 영향력 미칠 수 있도록
+ 성경 본문(눅 2장)
21 할례할 팔 일이 되매 그 이름을 예수라 하니 곧 잉태하기 전에 천사가 일컬은 바러라
22 모세의 법대로 정결예식의 날이 차매 아기를 데리고 예루살렘에 올라가니
23 이는 주의 율법에 쓴 바 첫 태에 처음 난 남자마다 주의 거룩한 자라 하리라 한 대로 아기를 주께 드리고
24 또 주의 율법에 말씀하신 대로 산비둘기 한 쌍이나 혹은 어린 집비둘기 둘로 제사하려 함이더라
+ 양보의 이익
지난 주일(1월 7일) 교회에서 공동체 성경읽기 모임에서 아브라함에 대한 내용을 다루었다. 성경을 보고 들으면서(공동체 성경 읽기는 동영상으로 되어 있어서 읽고 듣도록 되어 있다.) 아브라함에 대한 한 관점을 묵상하게 되었다. 아브라함은 양보와 나눠주는 사람이었다는 것이다. 그는 재산이 많은 부자였다. 부자가 되는 과정이 다른 사람의 것을 빼앗고 취해서가 아니라 양보하고 나눠주어서라는 사실이다. 조카 롯에게 소돔 땅을 양보하였다. “네가 좌하면 나는 우하고 네가 우하면 나는 좌하겠다”는 말은 유명한 말씀이다. 양보해서 더 좋은 결과를 얻은 것이다. 창세기 21장에서 아비멜렉과 언약을 맺는 장면이 나온다. 아브라함과 아비멜렉의 종들이 우물 때문에 싸운다는 소식을 듣고 아비멜렉과 언약을 맺게 된다. 언약의 증표로 그에게 암양 새끼 일곱 마리를 준다. 이것이 증거가 되었다. 먼저 양보하는 희생을 감당하였던 것이다.
그가 이삭을 제물로 하나님께 드리라는 명령을 이행한 창세기 22장의 사건에서도 이삭이 독자이지만 하나님의 말씀 그대로 하나님께 드렸다. 하나님의 말씀대로 행한 것인데, 인간적인 표현으로 하나님께 양보 하였던 것이다. 창세기 23장에는 헷 족속에게서 아내 사라의 매장지를 취할 때도, 그들은 공짜로 주겠다고 했지만, 아브라함은 그 땅값을 지불 하였다. 공짜가 아닌 대가를 치른, 즉 자신의 소유를 양보하는 모습을 보인 것이다.
아브라함은 믿음의 조상이었는데, 믿음을 양보로 나타내었다는 사실이다. 믿음을 눈으로 보여주는 행동을 하였는데 그것이 바로 양보다. 아브라함의 믿음은 양보의 믿음, 나눠주는 믿음, 희생의 믿음이었다. 아브라함은 “흩어 구제하여도 더욱 부하게 되는 일이 있나니 과도히 아껴도 가난하게 될 뿐이니라”(잠 11:23)는 말씀을 실천한 믿음을 가졌다. 일보 후퇴, 이 보 전진하는 믿음을 보여준 것이다. 하나를 양보하면 둘을 얻는다는 세상의 지혜가 바로 성경의 믿음의 원리라는 것이다.
움켜쥐면 더 많이 버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가난하게 되고 흩어 구제하고 양보하면 더 많이 버는 믿음의 원리를 아브라함은 보여주며 그렇게 산 것이다.
올 한해도 믿음의 원리대로 살아야 한다. 이기려고 하기보다는 지는 태도를 가져야 한다. 손해 안 보려고 하는 것이 아니라 먼저 희생하려고 해야 한다. 그것이 바로 십자가의 원리이고 부활의 신앙이기 때문이다. 우리가 먼저 져야 이긴다. 먼저 양보하는 것이 이기는 것이기 때문이다. 나눠주는 것이 많이 버는 것이다. 고통이 성공을 낳는 것이다. 손해가 이익을 가져오는 것이다. 이 원리대로 진정한 승자가 되는 믿음의 사람들이 되어야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