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공부, 설교/말씀묵상(QT)자료

오늘의 말씀 2024년 5월 22일(수)

후앙리 2024. 5. 22. 05:30

12 베드로는 일어나 무덤에 달려가서 구부려 들여다보니 세마포만 보이는지라 그 된 일을 놀랍게 여기며 집으로 돌아가니라(24)

 

+ 말씀 설명

예수님이 장사 한지 여인들이 3일째 되는 날, 무덤에 갔을 때 무덤이 비어있는 것을 발견하였다. 천사가 참아온 여인들에게 나타나 생전에 예수님께서 하신 말씀을 떠올리면서 삼 일에 살아나신 것이 이루어졌다고 하였다. 여인들이 무덤에서 내려와 사도들에게 이 사실을 알렸으나 제자들은 믿지 아니하였다. 베드로는 여인들의 말을 듣고 혼자 무덤으로 달려갔다. 그리고 예수님의 시신이 없고 시신을 감쌌던 세마포만 있는 것을 보고 놀라 집으로 돌아갔다.

베드로는 자신의 배반과 예수님의 죽음을 경험하면서 절망 가운데 있었을 것이다. 이때 부활의 소식을 듣고 홀로 예수님의 무덤을 찾아가 확인하였다. 아마도 베드로의 이런 열정적인 행동으로 예수님의 부활을 경험하게 되고 다시 일어서는 계기가 되었을 것이다.

우리들도 어떤 일에 절망과 좌절이 있을 수 있지만, 그 자리에 머물러 있는 것이 아니라 그 문제를 해결할 수 있도록 일어서는 것이 필요하다. 그리고 적극적으로 대처하며 소망과 긍정의 마인드로 문제를 직면해 나가야 할 것이다.

 

+ 묵상과 적용

부활의 주님을 믿으면서도 절망하고 두려워하며 머뭇거리는 모습은 없는가?

주님의 부활을 믿는다면 어떤 상황에서도 소망이 있음을 알고 일어서지 않겠는가?

 

+ 선교적 실천

우리 교회가 부활하신 주님을 믿는 믿음으로, 머뭇거리지 말고 앞으로 나아가야 할 일은 어떤 것이 있는가?

 

+ 오늘의 기도

1. 부활을 믿는 자답게 긍정과 소망과 다시 회복될 것을 믿고 적극적으로 살게 하소서.

2. 전 세계에서 종교로 인해 차별과 박해와 핍박을 당하고 있는 사람들이 신앙생활을 자유롭게 할 수 있도록 사회적 변화가 나타나고, 그 땅에 복음 전파의 기회들이 더욱 확장되도록

 

+ 성경 본문(24)

1 안식 후 첫날 새벽에 이 여자들이 그 준비한 향품을 가지고 무덤에 가서

2 돌이 무덤에서 굴려 옮겨진 것을 보고

3 들어가니 주 예수의 시체가 보이지 아니하더라

4 이로 인하여 근심할 때에 문득 찬란한 옷을 입은 두 사람이 곁에 섰는지라

5 여자들이 두려워 얼굴을 땅에 대니 두 사람이 이르되 어찌하여 살아 있는 자를 죽은 자 가운데서 찾느냐

6 여기 계시지 않고 살아나셨느니라 갈릴리에 계실 때에 너희에게 어떻게 말씀하셨는지를 기억하라

7 이르시기를 인자가 죄인의 손에 넘겨져 십자가에 못 박히고 제 삼일에 다시 살아나야 하리라 하셨느니라 한대

8 그들이 예수의 말씀을 기억하고

9 무덤에서 돌아가 이 모든 것을 열한 사도와 다른 모든 이에게 알리니

10 (이 여자들은 막달라 마리아와 요안나와 야고보의 모친 마리아라 또 그들과 함께 한 다른 여자들도 이것을 사도들에게 알리니라)

11 사도들은 그들의 말이 허탄한 듯이 들려 믿지 아니하나

12 베드로는 일어나 무덤에 달려가서 구부려 들여다 보니 세마포만 보이는지라 그 된 일을 놀랍게 여기며 집으로 돌아가니라

 

+ 행동

지난 주에 헨리 나우엔 신부의 마지막 책이라 할 수 있는 날다, 떨어지다, 붙잡다라는 책을 보면서 새로운 사실을 발견하였다. 헨리 나우엔 신부는 이 시대에 기독교(가톨릭, 개신교 합하여) 3대 영성가(토마스 머튼, 씨에스 루이스, 헨리 나우엔) 중의 한 사람이라는 말을 할 정도로 영성에 있어서 탁월한 사람이다. 헨리 나우엔은 하버드 대학의 교수였다. 그래서 나는 그가 학자인 줄로만 알았다. 영성에 대해 많은 책을 썼기에 책상에서 글을 쓰는 사람으로 생각했었다.

그러나 그는 학자의 일을 그만두고 장애인 시설인 데이 브레이크로 들어가 장애인을 돌보는 일을 하였다. 뿐만 아니라 에이즈에 걸린 사람들을 위한 활동을 하였고 흑인 해방을 위해 시위에 함께 적극적으로 참석하는 일도 하였다. 페루에 선교사로 가서 어린이들을 직접 가르치고 함께 생활하기도 하였다. 이번에 읽은 책 <날다, 떨어지다, 붙잡다>는 책은 공중 낙하하는 서커스단과의 관계를 기록한 책이다. 그는 공중 낙하를 보면서 다 표현할 수 없을 정도의 좋은 감동을 받았다. 커다란 충격이라고도 할 수 있는 순간이었다. 그래서 그는 매일 이 공연을 두 번씩 보았다. 그리고 서커스 단원들과 친구가 되었고, 그들이 연습하는 것도 보았다. 함께 생활하기도 하였다.

이런 행동하는 도중에 그는 매일 일기를 썼으며, 계속해서 글을 썼다. 그렇게 쓴 글들이 나중에 영성에 대한 책으로 나왔고, 베스트 셀러가 되었으며, 그는 위대한 영성가로 자리 잡게 되었다.

나는 이런 헨리 나우엔을 보면서 영성은 산속이나 광야 수도원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새롭게 알게 되었다. 영성은 책상에서 나오지 않고 일상의 삶에서 나온다는 것이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희생과 헌신과 다른 사람을 위해 하는 행동 가운데 일어나는 것이라는 사실이다.

어떤 정치인은 행동하는 양심에 대해 말했다. 양심은 선언이나 말이 아니라 행동에서 나온다는 것이다.

예수님의 제자 베드로는 행동하는 사람이었다. 생각보다는 일단 행동하고 보는 사람이었다. 그는 어떤 일에도 앞장서서 행했다. 예수님이 물 위로 걸어오실 때, 예수님께 달려가면서 물 위를 걷게 해 달라고 하였다. 대 제사장을 호위하는 군인들이 밤에 예수님을 잡으러 왔을 때에도 베드로는 한 군인의 귀를 칼로 베어 버렸다. 여인들이 예수님의 부활 소식을 전했을 때도 다른 제자들은 고향으로 내려갔거나, 아직도 예수님의 처형으로 혼란 가운데 두려워하였지만 베드로는 혼자 예수님의 무덤을 찾아갔다. 예수님이 잡혀가셨을 때도 혼자 몰래 예수님을 따라가서 어떻게 되는가 보았다. 거기서 유명한 예수님을 세 번 부인한 사건이 일어났다는 것을 우리는 잘 알고 있다. 그런 행동이 그를 다시 예수님을 전하는 제자로 거듭나게 하였다. 그래서 초대교회의 수장이 되었으며, 바울이 이방인의 사도가 되게 하는 결정적인 역할을 하였다.

2주 전에 나는 한국 위기관리 재단의 포럼에 참석하였다. 포럼에서 발제를 하면서 많은 사람들과 교제를 하였다. 나는 원래 선교대회 같은 많은 사람이 모이는 곳에는 잘 가는 편이 아니다. 그곳에 에너지를 쏟을 만한 의미가 없다고 생각해서이다. 나와는 반대로 그런 곳에만 쫓아다니는 선교사들도 있지만 나는 그런 은사가 없다고 생각하여 웬만한 모임에는 가지 않았다. 대신에 글을 쓰고 교회에서 설교하고, 여러 곳을 다니면서 선교에 대한 강의를 한다. 시간이 있으면 책상에 앉아 책을 보고 글을 쓴다. 활동이 적은 편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이번에 포럼에 참석해서 발제하면서 많은 사람을 만나고 교제하면서 책상에서 하는 것과는 완전히 다른 배움을 얻을 수 있었으며 동시에 귀한 사역을 할 수 있었다. 그때 깨달은 것은 책상에만 앉아 있지 말고 선교대회 같은 다양한 모임에도 자주 참석하는 행동가가 되는 것도 의미가 있다는 것이다. 그곳에서 주는 에너지가 있고 배울 것이 있으며, 사람들과 함께 행동 하는 가운데 사역을 하게 되는 것이다.

영성의 책은 책상에서 나오지 않는다. 행동에서 나오며, 일상에서 나온다. 일상의 삶이 바로 영성이다. 행동이 영성이다. 다른 사람을 도와주는 순간이 최고의 영성이다. 혼자 조용한 곳에서 앉아서 기도하고 하나님의 말씀을 연구한다고 해서 위대한 영성가가 되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이다. 물론 역할면에서 수도원에서 생활하는 영성가도 필요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영성은 활동하는 가운데서 일어난다. 조용한 곳에 임재하시는 하나님이기도 하시지만 일상의 모든 삶 가운데 임재하시는 분이 하나님이시기도 하시기 때문이다. 일상을 제외한 신앙과 영성은 존재할 수 없다. 그런 면에서 나는 오늘도 마음과 생각만이 아니라 손과 발이 움직이는 일상을 살아야 한다. 일상의 영성을 찾아 살아야 한다. 일상의 희노애락에 함께 하시는 하나님의 임재를 경험해야 한다.

이 일상의 삶이란 사람을 귀히 여기고 사람을 사랑하며 섬기며 사는 것이다. 이것이 일상의 삶에서 나타날 때 나의 신앙은 제대로 된 영성을 형성할 수 있다. 그것이 바로 나의 영성이며, 영성의 글로 나타나는 것이다. 훌륭한 영성가가 되는 것은 선한 행위를 하는 것이며 말씀에 따라 행동하는 사람이 되는 것이다. 그리고 그 일상 가운데 틈틈이 글을 쓰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