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공부, 설교/말씀묵상(QT)자료

오늘의 말씀 2024년 7월 3일(수)

후앙리 2024. 7. 3. 05:32

22 네 주 여호와, 그의 백성의 억울함을 풀어 주시는 네 하나님이 이같이 말씀하시되 보라 내가 비틀걸음 치게 하는 잔 곧 나의 분노의 큰 잔을 네 손에서 거두어서 네가 다시는 마시지 못하게 하고

23 그 잔을 너를 괴롭게 하던 자들의 손에 두리라(51)

 

+ 말씀 설명

하나님은 유다 백성의 죄악 때문에 분노의 표시로 악한 이방 나라를 사용하여 유다가 고통을 당하도록 하셨다. 유다의 입장에서는 이방에게 고통을 당하는 것이 억울한 상황이었다. 그러나 하나님은 억울함을 풀어 주시는 하나님으로 묘사한다. 어떤 억울함도 하나님은 풀어주신다. 비록 그들의 죄로 인해 고통을 당한다고 할지라도 결국 하나님은 유다를 괴롭히던 이방 나라에게 유다의 고통을 옮기시겠다고 하신다. 유다의 입장에서는 억울함을 푸는 것이다.

하나님은 그의 백성들의 잘못을 벌하시지만, 그 벌의 도구로 쓰임 받는 이방인들(사람들)에게 더 큰 벌을 내리신다. 우리의 억울함을 풀어 주시는 하나님께 회개하고 돌아오는 우리가 되어야 할 것이다.

 

+ 묵상과 적용

나의 억울함을 풀어 주시는 하나님께 회개해야 할 죄는 어떤 것이 있는가?

 

+ 선교적 실천

하나님의 교회를 끝까지 사랑하시고 회복하시는 하나님께 고쳐야 할 잘못된 것은 어떤 것인가?

 

+ 오늘의 기도

1. 억울함을 풀어 주시는 하나님께 회개하며 주님께 돌아가게 하소서.

2. 식량뿐 아니라 지역사회가 겪고 있는 다양한 문제 해결을 위해서 인도네시아 교회들이 힘을 모으고, 앞으로 더욱 인도네시아 곳곳에서 지역 교회를 통한 섬김과 나눔이 확장되도록

 

+ 성경 본문(51)

17 여호와의 손에서 그의 분노의 잔을 마신 예루살렘이여 깰지어다 깰지어다 일어설지어다 네가 이미 비틀걸음 치게 하는 큰 잔을 마셔 다 비웠도다

18 네가 낳은 모든 아들 중에 너를 인도할 자가 없고 네가 양육한 모든 아들 중에 그 손으로 너를 이끌 자도 없도다

19 이 두 가지 일이 네게 닥쳤으니 누가 너를 위하여 슬퍼하랴 곧 황폐와 멸망이요 기근과 칼이라 누가 너를 위로하랴

20 네 아들들이 곤비하여 그물에 걸린 영양 같이 온 거리 모퉁이에 누웠으니 그들에게 여호와의 분노와 네 하나님의 견책이 가득하도다

21 그러므로 너 곤고하며 포도주가 아니라도 취한 자여 이 말을 들으라

22 네 주 여호와, 그의 백성의 억울함을 풀어 주시는 네 하나님이 이같이 말씀하시되 보라 내가 비틀걸음 치게 하는 잔 곧 나의 분노의 큰 잔을 네 손에서 거두어서 네가 다시는 마시지 못하게 하고

23 그 잔을 너를 괴롭게 하던 자들의 손에 두리라 그들은 일찍이 네게 이르기를 엎드리라 우리가 넘어가리라 하던 자들이라 너를 넘어가려는 그들에게 네가 네 허리를 땅과 같게, 길거리와 같게 하였느니라 하시니라

 

+ 억울함

억울함은 누구나 갖는 감정이다. 사람들은 억울함을 왜 가질까? 아마도 다른 사람과 비교하고 경쟁하기 때문이 아닐까 생각해 본다. 다른 사람과 비교해보니 내가 더 많이 일하지만 덜 가졌기에 그런 억울함이 생기지 않을까? 대접을 제대로 받지 못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은 아닐까?

누구나 대접을 받고 싶어 하고, 인정을 받고 싶어 한다. 그러나 그것이 채워지지 않으면 억울하다.

나는 요즘 이런 질문을 해 본다. 사람들은 왜 자신이 일을 더 많이 하면 더 피곤하고 고생한다고 생각할까? 나는 생각한다. 다른 사람보다 일을 더 많이 한다면 억울한 것이 아니라 감사할 일이라는 것이다. 다른 사람보다 돈을 덜 적게 번다면, 자신을 비하하거나 기분 나쁘게 생각할 것이 아니라 심령이 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라는 말씀을 기억해야 하여 복을 받았다고 생각해야 한다는 생각을 해 본다.

나는 일을 더해서 고생한다면 그것이 바로 복이라고 생각한다. 내가 다른 사람보다 적게 돈을 번다면 돈을 더 많이 버는 사람에게 양보했다고 생각한다면 기분이 더 좋을 것이라고 생각 한다. 돈이 많고 큰 권력을 가졌다면 더 많은 죄를 지을 가능성이 있다는 것을 사람들은 왜 생각하지 못할까?

사람들은 고통 중에 하나님께 억울하다고 항변한다. 그러나 고난이 더 크게 온다면 우리는 당연히 회개하고 감사해야 한다. 왜냐하면 성경이 그렇게 말했기 때문이다. 성경대로 산다면 희생과 헌신을 귀하게 생각하며 살아야 한다. 이 세상의 삶의 가치는 희생과 용서와 헌신과 사랑이라는 것을 성경을 말하고 있다. 그렇다면, 성경을 믿는다면, 성경적인 세계관을 가졌다면 주어진 현실의 삶에 만족하고, 많은 고난에 대해 감사하고, 고통에 대해 찬양하면 살아야 한다. 풍요로움과 성공과 잘됨과 평안함은 주님을 향한 긴장감을 낮추지만, 고난과 고통과 힘듦은 하나님을 향한 절규와 간절함을 더 크게 만든다는 사실이다.

현실이 좋든지, 힘들든지 간에 하나님을 향하는 열정과 간절함이 커야 한다. 연약한 인간이기에 힘든 일이 있을 때 하나님을 더욱 간절하게, 절실하게, 절박하게 찾게 된다는 사실을 기억하며 오늘의 주어진 삶에, 그것이 어떤 삶이든지 간에 감사해야 할 것이다.

마지막으로 그렇다고 억울한 일이 생겼을 때, 억울해하지 말라는 것은 아니다. 억울한 감정을 갖는 것은 어찌보면 당연한 것이다. 연약한 인간이기에 그렇다.

억울한 것은 사실일지라도 억울함을 오래 간직하고 살지 않아야 한다는 것이 중요한 사실이다. 오랫동안 간직한 억울함은 앞으로 살아야 할 많은 시간들을 더 불행하게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억울하지만 복수나 원망이 아니라 용서와 허용으로 받아들여야 한다는 것이다. 억울하지만, 그것을 풀어가는 방법을 그리스도인이라면 생각해야 한다는 것이다. 억울하다고 하나님께 외쳐라. 그러나 억울함의 노예가 되지는 말아야 한다. 힘든 일이지만 시간을 두고 받아들이면서 새로운 삶, 이 세상에서 해야 하는 사명을 완수하며 살아야 할 것이다. 그것이 억울함을 이길 수 있는 길이라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