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말씀 2025년 3월 11일(화)
7 마침 구름이 와서 그들을 덮으며 구름 속에서 소리가 나되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니 너희는 그의 말을 들으라 하는지라
8 문득 둘러보니 아무도 보이지 아니하고 오직 예수와 자기들뿐이었더라
9 그들이 산에서 내려올 때에 예수께서 경고하시되 인자가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날 때까지는 본 것을 아무에게도 이르지 말라 하시니(막 9장)
+ 말씀 설명
예수님께서 베드로와 야고보, 요한을 산에 데리고 가셔서 변하는 모습을 보여주셨다. 예수님의 옷이 희어지며 광채가 났다. 그 모습이 얼마나 아름답고 압도적인 광경이었는지 제자들은 그곳에서 초막 셋을 지어 예수님과 모세와 엘리야와 함께 그곳에서 살았으면 좋겠다고 하였다. 그때 하늘에서 예수님을 향하여 소리가 나기를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라는 말이 들렸다.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인자(예수님 자신)가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날 때까지는 본 것을 아무에게도 말하지 말라고 경고하셨다.
하나님은 예수님의 죽음과 부활을 예비하신 영광을 미리 제자들에게 보여주신 것이다. 제자들은 이 모습을 보고 당장 영광을 기대하였지만, 예수님은 그 전에 있어야 할 십자가의 죽음을 말씀하셨다. 십자가의 죽음이 일어나고 이어서 예수님이 영광을 받으실 것이라는 것을 보여주는 사건이었다.
제자들은 영광만 바라보았지만, 예수님은 영광을 위한 십자가의 사명을 기억하신 것이다.
+ 묵상과 적용
주님의 영광을 맛보기 위해 오늘 내가 감당해야 할 십자가의 사명은 무엇인가?
+ 선교적 실천
어두운 세상에 우리 교회 공동체가 세상에 영광을 전하기 위해 감당해야 할 희생은 무엇인가?
+ 오늘의 기도
1. 예수님의 십자가 사랑을 기억하며, 고난 속에서도 복음의 사명을 감당하게 하소서.
2. 전쟁과 갈등, 질병과 빈곤의 위기 앞에서 세계 기독교가 성찰과 협력을 통해 함께 성장해 나가고, 복음을 접하지 못한 22억 명에게 사랑으로 다가설 수 있도록
+ 성경 본문(막 9장)
2 엿새 후에 예수께서 베드로와 야고보와 요한을 데리시고 따로 높은 산에 올라가셨더니 그들 앞에서 변형되사
3 그 옷이 광채가 나며 세상에서 빨래하는 자가 그렇게 희게 할 수 없을 만큼 매우 희어졌더라
4 이에 엘리야가 모세와 함께 그들에게 나타나 예수와 더불어 말하거늘
5 베드로가 예수께 고하되 랍비여 우리가 여기 있는 것이 좋사오니 우리가 초막 셋을 짓되 하나는 주를 위하여, 하나는 모세를 위하여, 하나는 엘리야를 위하여 하사이다 하니
6 이는 그들이 몹시 무서워하므로 그가 무슨 말을 할지 알지 못함이더라
7 마침 구름이 와서 그들을 덮으며 구름 속에서 소리가 나되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니 너희는 그의 말을 들으라 하는지라
8 문득 둘러보니 아무도 보이지 아니하고 오직 예수와 자기들뿐이었더라
9 그들이 산에서 내려올 때에 예수께서 경고하시되 인자가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날 때까지는 본 것을 아무에게도 이르지 말라 하시니
10 그들이 이 말씀을 마음에 두며 서로 문의하되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나는 것이 무엇일까 하고
11 이에 예수께 묻자와 이르되 어찌하여 서기관들이 엘리야가 먼저 와야 하리라 하나이까
12 이르시되 엘리야가 과연 먼저 와서 모든 것을 회복하거니와 어찌 인자에 대하여 기록하기를 많은 고난을 받고 멸시를 당하리라 하였느냐
13 그러나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엘리야가 왔으되 기록된 바와 같이 사람들이 함부로 대우하였느니라 하시니라
+ 고통론
영광을 위해서는 고통이 따른다. 학창 시절에 “No pain, No gain”이라는 말과 상통한다. 가시 면류관 없이 금 면류관이 없는 것이다. 그러나 사람들은 앞의 고통은 생각지 않은 채, 뒤의 영광만을 추구한다. 만약 고통을 먼저 생각하는 사람이라면, 뒤의 영광을 위해 앞(현재)의 고통에 순응해야 할 것이다. 영광만이 아니라 고통이 앞서는 것을 인정하고 고통의 의미를 이해하고 고통을 감수해야 할 것이다.
예수님은 인간의 고통은 죄에서 나오는 것을 아셨다. 그 죄를 해결하는 것은 바로 그 고통이라는 것도 아셨다. 그래서 그 고통을 예수님이 친히 감당하셨다. 그 고통으로 말미암아 인간의 죄로 인한 고통을 해결하고자 하셨기 때문이다.
예수님은 인간의 행복의 뿌리를 찾기 위해서 고통의 철학을 가지고 계신 것이다. 인생을 고통의 관점에서 보신 것이다. 그리고 그 고통을 다른 사람에게 전가하지 않으시고 직접 예수님이 해결자로 나선 것이다. 다른 사람의 고통을 이해하고 해결하기 위해서 자신이 고통을 지신 것이다. 일반적으로 사람들이 고통을 멀리하거나 피하거나 외면하거나 싫어하는 것과는 정반대였다.
예수님은 고통을 고통으로 끝나는 것이 아닌 고통을 영광을 위한 도구로 생각하신 것이다. 고통이 있어야만 영광이 있기에 그렇다. 고통이 있어야만 인간의 죄의 문제, 고통의 문제가 해결되기 때문이다.
그런 면에서 예수님의 십자가의 고통은‘신의 한 수’다. 하나님께서 사용하신 가장 확실하고 정확한 방법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고통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고통을 생각해야 한다. 고통을 피하지 말아야 한다. 더 큰 고통을 짊어질 것을 각오해야 한다. 그러면 삶에서 일어나는 작은 고통을 이길 수 있을 뿐 아니라 참된 영광도 맛볼 수 있을 것이다. 피할 수 없다면 친구를 삼아야 하는 것처럼 고통을 즐길 줄 아는 단계까지 가야 한다. 그래야 인간의 참된 행복을 찾을 수 있다. 하나님이 주신 영광을 맛볼 수 있다.
우리는 다른 사람보다도 먼저 고통을 앞장서서 자처해야 한다. 사람들이 싫어하는 노동과 섬김을 잘해야 한다. 다른 사람이 하지 않는 힘든 일을 먼저 해야 한다. 다른 사람보다 한 번 더 수고해야 한다. 현재의 고통과 힘듦을 불평하지 말아야 한다. 오히려 이 모든 고통은 다른 사람을 위한 것이며, 나의 영광을 위한 것이라는 생각을 해야 한다. 결국 이것은 하나님께 영광이 되는 것이다.
예수님의 제자들은 변화산에서 모세와 엘리야와 예수님과 함께 천막 셋을 짓고 사는 영광스러운 순간을 상상했다. 그러나 예수님은 그 순간에도 영광을 뒤로 한 채 십자가를 지셔야 한다고 말씀하셨다. 참된 영광은 십자가에서 시작된다는 것을 말씀하신 것이다. 고통 없는 영광은 없기 때문이다. 오늘도 우리는 평안함과 행복을 추구하기 전에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추구해야 한다. 십자가의 고통을 먼저 받아들이고 십자가를 지는 마음을 가져야 한다는 것이다. 오늘도 내가 져야 할 십자가는 무엇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