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말씀 2025년 4월 15일(화)
14 빌라도가 이르되 어찜이냐 무슨 악한 일을 하였느냐 하니 더욱 소리 지르되 십자가에 못 박게 하소서 하는지라
15 빌라도가 무리에게 만족을 주고자 하여 바라바는 놓아 주고 예수는 채찍질하고 십자가에 못 박히게 넘겨 주니라(막 15장)
+ 말씀 설명
예수님은 분봉왕 빌라도 앞에서 재판을 받고 있었다. 그때 당시 유월절에 죄수 하나를 풀어주는, 요즘 말로 기념일에 특사를 하는 제도가 있었다. 군중들은 죄수 중에 바라바라 하는 악한 죄수를 풀어달라고 빌라도에게 요청한다.
빌라도는 예수는 어떻게 할 것인가에 대해 군중에게 묻는다. 군중은 십자가에 못 박으라고 외친다. 빌라도는 예수가 죽을 죄를 지은 것을 찾아볼 수 없다고 하였지만 사람들에게 만족을 주고자 하여 예수를 십자가에 못박히게 내어 주었다. 진실과 정의보다는 사적인 유익을 위해 재판을 하는 빌라도의 모습을 보게 된다.
그는 사도신경(사도들의 믿음의 고백문)에 “본디오 빌라도에게 고난을 받으사”라는 영원히 불명예스런 잘못된 재판을 하는 이름(인물)으로,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히게 하는 악명높은 자로 남게 되었다.
자신의 욕심을 위해 불의를 서슴치 않고 했던 빌라도와는 반대로 예수님은 자신을 위해서가 아니라 인류의 모든 죄를 위해 십자가의 고통을 감수하셨다.
우리도 이 세상의 구원과 화목을 위해 우리의 희생이 필요하다. 나의 유익을 위해 세상의 고통의 소리를 외면하지 말아야 할 것이다.
+ 묵상과 적용
지금 내 주위에서 내 고통을 들어주고 해결해달라는 요청의 소리가 있는가? 그것이 나의 희생을 필요로 한다면 나는 기꺼이 희생하겠는가?
+ 선교적 실천
우리 교회만의 유익을 위해 다른 교회나 이 사회에 악영향을 끼치는 부분이 우리 교회에는 없는가? 그것이 있다면 어떻게 고쳐나가겠는가?
+ 오늘의 기도
1. 성공과 권력에 집착하는 세상에서 선택과 결정의 기준을 하나님의 말씀에서 찾게 하소서.
2. 라마단 기간이 지났는데, 이슬람 혐오와 갈등을 조장하는 태도가 아니라 하나님이 우리에게 부어주신 사랑과 긍휼의 마음을 가지고 이들을 바라볼 수 있도록
+ 성경 본문(막 15장)
6 명절이 되면 백성들이 요구하는 대로 죄수 한 사람을 놓아 주는 전례가 있더니
7 민란을 꾸미고 그 민란중에 살인하고 체포된 자 중에 바라바라 하는 자가 있는지라
8 무리가 나아가서 전례대로 하여 주기를 요구한대
9 빌라도가 대답하여 이르되 너희는 내가 유대인의 왕을 너희에게 놓아 주기를 원하느냐 하니
10 이는 그가 대제사장들이 시기로 예수를 넘겨 준 줄 앎이러라
11 그러나 대제사장들이 무리를 충동하여 도리어 바라바를 놓아 달라 하게 하니
12 빌라도가 또 대답하여 이르되 그러면 너희가 유대인의 왕이라 하는 이를 내가 어떻게 하랴
13 그들이 다시 소리 지르되 그를 십자가에 못 박게 하소서
14 빌라도가 이르되 어찜이냐 무슨 악한 일을 하였느냐 하니 더욱 소리 지르되 십자가에 못 박게 하소서 하는지라
15 빌라도가 무리에게 만족을 주고자 하여 바라바는 놓아 주고 예수는 채찍질하고 십자가에 못 박히게 넘겨 주니라
+ 법과 복음
우리나라의 헌법재판소의 대통령 탄핵 재판을 통해 국민들은 법에 대해 좀 더 이해하는 기회가 되었다. 우리나라는 법치주의인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법을 통해 나라가 통제되고 있는 것이다. 한걸음 더 나아가 결국 법을 만드는 주체는 사람이라는 것이다. 법을 사용하는 것도 사람이다. 사람이 법을 사용하고, 법으로 다스려지는 세상인 것을 확인하는 기회였다. 법이 사회와 사람을 통제함으로 우리나라는 일단 안정된 상황이 되었다.
법을 사용하는 사람이 법을 잘못 이용할 때 일어나는 부작용도 우리는 보게 되었다. 정치인들이 법을 자기 유익대로 사용하여 법의 공정성을 훼손할 수도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결국 사람이 타락하고 자기 욕심으로 법을 사용하면 공정이 무너지고 피해를 보는 사람이 생기는 것이다.
성경에서 말하는 법은 구약의 율법이다. 하나님의 법인 율법과 유대인이 사용하는 율법은 차이가 좀 있다. 성경 말씀이 하나님의 율법이다. 문제는 유대인들이 만든 율법이 잘못 적용되고 사용되었다는 것이다. 물론 성경에서 말하는 율법도 그 기능을 분명히 말하고 있다. 신약성경은 율법을 복음과 구별지어 설명한다. 복음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인한 영생을 얻음이라고 말할 수 있다. 율법은 구약에서 ‘하라, 하지 말라’는 계명이라 할 수 있다. 그래서 율법은 사람을 죽이는 것이고 복음을 살리는 것이다.
그렇다면 사람을 죽이는 율법이 왜 필요한가? 율법은 하나님이 심판하실 때 기준점이 된다. 율법이 있어야 하나님이 심판하실 수 있다. 죄를 판단하는, 즉 정죄하는 기준이 되기에 사람을 벌하는, 죽이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복음은 율법을 통해 벌을 받게 된 인간, 즉 죽을 죄를 지은 인간을 구속하는 역할, 생명을 주는 역할을 한다. 그래서 율법은 죽이는 역할, 복음을 살리는 역할을 한다고 표현할 수 있다.
복음의 가치를 얻기 위해서는 희생이 필요하다. 그러나 율법의 가치를 얻기 위해서는 ‘이는 이, 눈은 눈’, 즉 율법의 기준에 따라 그대로 실행하면 된다.
우리나라의 법은 사람을 살리기보다는 사람을 정죄하는 기능을 감당하는 것이다. 그래서 가장 이상적인 것은 복음의 관점으로 율법을 사용하는 것이다. 헌법이나 실행되는 법을 통해 사람을 벌주는 것은 계속해야 하지만 그것으로 끝나지 않고 서로 희생하고 용서하고 화해하는 복음의 기능이 적용되어야 한다.
우리나라의 어지러운 상황은 부패한 정치인이나 국민이 해결할 수 없다. 부패한 인간이 법을 잘못하면 답이 나오지 않는다. 오직 복음만이 해결할 수 있다. 복음은 생명을 주고 살리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런 면에서 우리나라의 성패에 대한 책임은 교회와 성도에게 있다고 할 수 있다. 먼저는 교회와 성도가 그리스도인답게 제 역할을 하는 것이다. 하나님의 자녀답게 살아야 하는 것이다. 즉 희생하고 용서해야 한다. 그런데 현실은 그리스도인들이 용서와 희생을 무시하고 율법을 사용하여 상대를 죽이려고 하고 있다. 또 하나는 교회와 성도가 이 나라가 복음화되도록 노력을 해야 한다. 이 나라를 위한다는 것은 자기가 가진 사상이나 당이 이기게 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복음이 이 땅에 편만해지도록 역할을 감당하는 것이다. 정치인이나 다른 사상을 가진 사람에게 책임을 돌리는 것이 아니라 자신에게 책임을 돌려야 하는 것이다.
빌라도와 군중은 법을 악용하여 예수님을 사형시켰다. 예수님은 그 법 앞에 자신을 희생하여 이 세상을 구원하셨다. 그리스도인들이 법을 사용하여 다른 사람을 죽이거나 자신의 이익을 챙기는 것이 아니라 법 위에 서서 법의 정의를 실현할 뿐 아니라 복음으로 자신을 희생하고 양보하여 다른 사람을 세워야 한다. 그것만이 우리나라를 살릴 수 있는 길이다. 복음만이 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