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정에 대한 기도 응답
선교사는 재정에 대해 민감한 사람들인 것 같다. 선교사는 돈을 초월한 사람들이라고 생각하기도 하지만 때로는 돈에 얽매여 살기도 한다. 그것은 선교지의 생활 가운데 돈이 떨어질 때는 한국에서 살 때보다 더 힘들기 때문이다. 선교지는 돈이 급하게 필요할 때 누구에게 돈을 꿀 수 있는 환경이 아니다. 돈을 빌릴 수 있는 사람도 없을 뿐 아니라 돈을 꾸는 것은 선교사로서 합당치 않은 일이기 때문이다. 선교사는 저축을 하고 사는 사람도 아니다. 늘 하루 벌어 하루 사는 사람처럼 매달 후원자들의 정성어린 후원금에 의존해서 사는 사람들이다.
내가 속한 선교부에서는 후원금이 생활비보다 적게 들어올 때 기본 생활비를 채워서 보내준다. 부족한 금액은 생활비보다 후원금이 더 많이 들어오는 선교사들의 돈을 임시로 빌려서 보내주는 것이다. 그러기에 후원금이 부족한 선교사는 다른 선교사에게 빚을 지고 부담을 주는 입장이 된다. 그래서 선교사는 최소한 자기 생활비에 대해서는 후원금을 채워야 할 책임이 있다.
내가 속한 선교부의 재정 정책은 후원금을 직접적으로 모금하는 것을 금하고 있다. 후원금 모금을 금하는 것이 아니라 후원해 달라고 사람들에게 요청하는 것을 금하고 있는 것이다. 내가 속한 선교부에서 선교사들의 후원금을 모금하는 방법은 기도이다. 기도할 때 하나님께서는 적절한 후원자들의 마음을 감동시켜서 후원하도록 하신다는 믿음으로 이런 정책을 실행하고 있다. 그래서 다른 선교사들과 마찬가지로 나도 지금까지 사람들에게 선교 후원금을 해 달라고 직접 요청한 적이 없다. 필요할 때마다 인생의 주인이신 하나님께 기도하고, 하나님께서는 사랑하는 적절한 사람들을 사용하셔서 재정을 채워 주셨다.
선교사가 사람들에게 요청하지 않고 기도를 통해 하나님께만 요청하는 것이 어찌 보면 소극적인 방법처럼 보인다. 그러나 이것은 내가 속한 선교부의 정책이요, 나의 신앙관이기에 돈이 필요할 때는 사람에게가 아니라 하나님께 기도만 한다. 내게는 이런 방법이 최상의 방법이요, 신실하신 하나님을 신뢰하는 방법이다. 사람들에게 요청하지 않아도 하나님께서는 지금까지 한번도 부족함이 없이 채워주셨다. 나는 그것을 경험하면서 살고 있다.
지금부터 10년 전, 내가 선교사로 나오기 전에 한 선교사님을 후원하는 후원 책임자로 일한 적이 있다. 이 선교사님을 파송할 교회가 없어서 내가 후원회를 만들어 파송 교회 역할을 하기로 한 것이다. 그때 나는 신학교에 다니는 신학생이었다. 그 선교사님을 파송하면서 돈은 내가 책임질 테니 후원금은 걱정하지 말라고 하였다. 선교사님이 선교지로 가신 지 1년 만에 500만 원의 빚을 지게 되었다. 10년 전 그때 당시에 이 액수는 내게 거의 천문학적으로 큰 금액이었다. 나는 이 빚을 갚아야 할 책임자였다. 그때 당시에 빚은 연말까지 꼭 갚아야 했다. 가난한 신학생 입장이었던 나는 빚을 갚을 수 있는 능력이 없었고 누구에게 부탁할 수 있는 형편도 아니었다. 내가 할 수 있는 방법은 오직 하나님께 기도하는 것이었다. 그해 3개월 정도를 남겨 놓고 연말까지 빚을 갚아 달라고 기도하기로 작정했다. 그리고 다른 후원자들과 함께 기도하였다. 우리의 모든 마음의 부담을 온전히 하나님께만 아뢰었다. 하나님이 갚아 주시지 않으면 다른 방법이 없다고 부르짖었다. 당시의 정황으로 보아서는 기적이 아니면 갚을 수 없는 상황이었다. 결과는 하나님께서 기도를 들어 주셔서 500만원이라는 큰돈을 갚을 수 있었다. 연말이 지나가기 전에 누구도 믿을 수 없는 방법으로 하나님께서는 그 빚을 갚아 주셨다. 내게는 정말 기적이었고 분명히 하나님이 내 기도를 들어 주셨음을 체험하는 경험이었다. 그 후로 나는 선교지에서 돈이 필요할 때마다 하나님께 기도하면서 재정적인 문제를 해결하고 있다.
선교지에서 살면서 내가 속한 선교 본부에 빚을 지는 상황이 거의 매해 반복되고 있다. 그럴 때마나 나는 이 빚을 해결해 달라고 하나님께 기도한다. 연말까지는 모든 빚을 청산하고 새해를 맞이할 수 있게 해 달라고 기도한다. 그럴 때마다 하나님께서는 연말에 빚을 해결해 주신다.
작년에도 11월 말까지 선교 본부에 빚이 많이 있었다. 나는 12월 말까지 갚아 달라고 한 달 동안 열심히 기도하였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작년에는 12월 말까지도 하나님께서 빚을 갚아주지 않으셨다. 그 전까지는 매해 빚을 갚고 새해를 시작했는데 올해 처음으로 빚을 지고 새해를 맞이하게 되었다. 나는 기도가 응답되지 않은 것 같아 마음이 무거웠다. 12월 마지막 날에 다 갚아지지 않은 빚으로 인해 무거운 마음으로 하나님께 계속해서 기도하였다. 기도하는 중에 하나님께서는 내게 이런 마음을 주셨다. 다 갚는 것도 중요하지만 올 한 해 하나님께서 주신 것들을 셈해 보라는 마음이었다. 남아 있는 빚을 셈하지 말고 한 해 하나님이 주신 것들을 셈해 보라는 것이다. 이러한 마음이 들면서 반드시 빚을 갚는 것만이 하나님의 은혜가 아니고 빚이 남아 있는 상태라도 날마다 살아가고 있는 것 자체가 은혜라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하나님이 지난 한 해 동안 얼마나 풍족히 채워 주셨는가를 생각할 때 비록 빚을 다 갚지는 않았어도 새로운 한 해에도 하나님께서 풍족히 채워주실 것이라는 마음을 갖게 되었다. 그런 경험을 하면서 올해도 신실하신 하나님과 함께 마음의 풍요로움과 확신과 소망으로 시작하게 되었다.
선교사는 돈이 있어도 살고 없어도 산다. 단지 돈이 부족하면 좀 불편할 뿐이다. 물론 마음이 불안하기도 하다. 돈이 필요하거나 부족하여 불안한 마음이 들 때 할 수 있는 것은 하나님께 기도하는 것이다. 필요한 돈을 달라고 기도할 때 하나님께서는 들어 주실 때도 있고 들어 주시지 않을 때도 있다. 그러나 나는 기도하는 것 자체가 이미 하나님께서 들어주신 것이라고 생각한다. 돈을 주시지 않으시더라도 하나님께서는 기도를 듣고 계시는 것이다.
기도하는 순간에 하나님께서는 돈보다 더 큰 은혜를 주신다. 그 은혜란 무엇인가? 하나님을 향하는 갈급한 심령이다. 하나님이 돈의 주인이시고 인생의 주인이심을 믿고 의지하는 심령을 갖는 것 자체가 하나님의 은혜이다. 하나님을 사모하는 마음을 가질 수 있는 것이 하나님의 은혜요, 또한 기도의 응답인 것이다. 그러기에 돈은 하나님의 은혜를 경험하는 도구요, 돈의 필요는 하나님의 응답을 받는 과정이라 할 수 있다. 결과적으로는 돈이 부족한 것은 은혜이다. 선교사에게는 돈이 항상 풍족해야만 은혜가 아니다. 어쩌면 돈이 부족할 때 하나님을 만날 수 있는 기회가 더 많기에 돈이 많을 때가 감사할 때가 아니라 돈이 부족할 때가 진정으로 감사할 때인 것이다. 그러기에 작년 말에 빚을 다 갚지 못하고 시작한 올 한 해가 더욱 큰 은혜의 해가 되는 것을 믿는다. 돈을 달라는 기도에 응답해 주시면 주시는 대로, 주시지 않으면 안 주시는 대로 감사하며 살고 싶다. (2001.1.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