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10장 선교사 재배치의 문제와 추수지역 선교전략
미전도 지역에로의 재배치
몇 년 전에 선교를 많이 하는 교회에서 선교 지도자들을 초청하여 선교 세미나를 열었다. 그곳에서 한 강사가 선교사들을 재배치해야 한다는 것과 미전도 지역 선교지의 필요성에 대해 강하게 주장하였다. 그 강사의 주장은 지금 한국 선교사들은 몇몇 지역, 특별히 추수지역에 너무 많은 선교사가 들어가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추수지역에 있는 선교사들을 미전도 지역으로 재배치를 해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이 세미나에 참석했던 사람들은 이 문제를 가지고 열띤 토론을 벌였다.
그 후에 한국 선교계는 계속해서 선교사 재배치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고 있다. 선교사 재배치에 대해 논하는 사람들은 세계 선교 통계를 가지고 그 당위성을 주장하고 있다. 그들은 세계를 네 지역으로 나누어 한국 보다 복음화 율이 더 높거나 기독교인이 많은 나라에는 더 이상의 선교사를 파송하지 말아야 한다고 한다. 그리고 아직 복음이 들어가지 않은 미전도 지역을 중심으로 사역을 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 결과 현재 한국 교회에서는 미전도 지역, 복음화가 덜 된 지역, 닫힌 지역에 선교사를 집중적으로 보내는 결과를 가져왔다. 반면에 추수지역은 그 용어조차도 생소하게 되었고 추수지역으로 가는 선교사는 점점 줄어들고 있다. 무엇보다도 현재 추수지역에서 사역하고 있는 선교사들은 선교가 필요 없는 지역에서 사역하고 있다는 눈총가운데 사역하고 있는 현실이다.
이런 현실을 바로 잡지 않으면 한국 교회 선교는 균형을 잃은 선교가 될 가능성이 많다. 균형을 잃을 때는 나가야 할 방향을 찾지 못하게 된다. 방향 없이 하는 선교는 하지 않은 것보다 못할 수도 있다. 잘못된 선교는 참된 선교를 방해하기 때문이다. 선교사 재배치에 대해서 언급해야 할 이유가 여기에 있다.
선교사 재배치의 문제
1. 성경적 관점
선교사 재배치는 성경적 관점에서 문제가 있다. 성경은 온 세계에 복음을 전해야 한다고 명령하고 있다. 온 세계에 복음을 전한다는 것은 복음을 들어보지 못한 사람이 한 사람이라도 있다면 그곳에 가서 복음을 전하라는 뜻이다. 우리가 선교해야 할 대상, 복음을 전해야 할 대상은 이 세계 모든 사람들이다. 이것이 하나님이 말씀하시는 성경적인 견해이다. 전략이 중요하지만 그 전략이 하나님의 전체 인류를 향한 구원 계획에 앞서서는 안 된다. 만약 어떤 전략이 하나님의 인류 구원에 대치된다면 그것은 하나님을 대적하는 것과 같다. 이 전략을 세운 사람들이 주장하는 원리는 복음화 효율이 높은 곳에는 선교사를 보내지 말아야 한다는 것이다. 그 주장이 성경에서 말하는 진정한 하나님의 계획인가 아니면 인간의 전략인가를 살펴 볼 필요가 있다.
선교는 성경의 원리대로 해야 하고 성경에서 말하는 것과 같이 “예루살렘과 유다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행1:8)” 동시에 복음을 전해야 한다. 하나님은 전 세계에 관심이 있다. 복음화가 덜된 곳에만 관심이 있는 것이 아니다. 우리가 선교를 해야 할 곳에서 제외시킬 곳은 이 지구상에 하나도 없다. 그러기에 선교사가 일정 지역에 편중되었다는 지나친 주장은 오히려 하나님의 구속 계획을 반대하는 결과가 되는 것이다.
2. 선교적인 관점
(1) 선교에 대한 정의를 내리는데 있어서 선교사 재배치 전략은 모순이 있다. 선교란 무엇인가? 선교를 한마디로 정의한다면 타 문화권에서 복음을 전하고 그리스도인을 양육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타 문화권에서 복음을 위해 일하는 모든 것이 선교이다. 만약 선교사 재배치 전략을 말하는 사람들의 주장대로라면 선교는 복음화 율이 덜된 지역에 선교사를 파송하는 것이라고 정의를 내려야 할 것이다. 그러나 선교적인 관점에서 선교는 모든 타 문화권에서의 복음전도 활동이다. 한국교회는 한국에 있는 외국인 근로자들을 위해서 선교사를 파송하고 있다. 외국인 근로자를 위해 일하는 사람도 타 문화권을 향해 일하기에 이들도 선교사이다. 그러나 재배치 전략대로라면 선교는 한정된 지역에서 하는 전도 활동에 불과한 것이 된다. 복음화가 덜 된 지역에서 전도하는 것으로 선교의 정의를 축소하게 되는 것이다. 선교란 어느 타 문화권일지라도 그곳에서 복음을 위해 일하는 모든 활동이다.
(2) 선교의 범위에 있어서도 재배치 전략은 문제가 있다. 선교사역을 하는 범위는 전도와 신자들을 양육하는 두 가지 차원이 있다. 이 두 가지는 선교지에서 동시에 균형 있게 이루어져야 할 일이다. 선교는 단순히 복음을 전하는 것(전도) 그 이상이다. 현지인을 양육하고 제자를 삼는 것도 포함된다. 그러나 선교사 배치 전략대로라면 선교는 단순히 전도하는 것일 뿐이다. 그들에게 있어서 선교는 전도를 위해서 존재하는 것이다. 그러나 선교는 단순히 전도하는 차원 그 이상이다. 선교도 다양한 지역에서 다양한 방법으로 이루어지고 있는 것이 선교다. 전도만 하는 선교사는 없다. 선교사는 전도한 사람을 양육하고 지도하고 전략을 세우는 일을 동시에 감당한다. 모든 선교사가 전도와 양육을 위해서 함께 일하는 것이다. 선교사 배치 전략에서 주장 한대로라면 선교에 있어서 양육은 포함되지 않는다. 우리는 복음화 된 지역일지라도 양육과 제자 삼는 일을 위해 선교사를 파송해야 한다.
(3) 선교의 목표차원에서도 문제가 있다. 선교의 목표는 현지인들을 재생산하는 단계까지 가야 하는 일이다. 현지인들을 재생산한다는 의미는 그들이 완전히 자립하고 선교사를 파송하는 나라가 되는 때까지이다. 이것이 선교의 목표이다. 이것이 선교의 목표라면 우리는 복음화가 되었을지라도 아직 재생산을 하지 못하는 지역에도 선교사를 계속 파송해야 한다. 현재 교회가 자립을 해서 선교사를 스스로 파송할 수 있는 나라가 얼마나 있는가? 심지어 선교사를 두 번째로 많이 파송한 한국도 지금 서구 선교사들이 필요하다. 그렇다면 우리는 모든 나라에 복음을 전해야 할 책임이 있다. 선교사 재배치 전략을 내세우는 사람들의 주장대로 복음화 율에 따라서만 선교사를 파송해서는 안 된다.
3. 전략적인 관점
3.1 선교사 배치 전략에서 조사한 자료에서 숫자상에 나타난 그리스도인의 비율을 보면 명목상 그리스도인이 포함되어 있다. 명목상 그리스도인은 겉으로는 그리스도인이지만 진실 된 그리스도인이 아니라는 말이다. 자료들에는 진실 된 그리스도인이 아닌 많은 사람들이 그리스도인으로 나타나는 허구가 있다. 참된 복음주의자가 아닌 가톨릭이나 다른 비슷한 종교도 이들의 조사에 그리스도인으로 인정하고 있다. 가톨릭을 기독교로 분류하는 관점에서 선교 전략을 만든다면 이 전략이야말로 문제가 있는 전략이다. 그것은 가톨릭교회에도 구원받지 못한 사람들이 많이 있기 때문이다. 가톨릭 국가에서 태어났다고 해서 미전도 지역보다 복음을 들을 기회가 적어진다면 그것은 하나님의 인류를 향한 계획과는 상반된다. 모슬렘 국가에 태어났던지, 불교 국가에서 태어났던지, 가톨릭 국가에서 태어났던지 간에 복음을 듣지 않았다면 차별 없이 복음을 들을 권한이 있다.
특정한 국가에 태어난 것으로 인해 복음을 듣지 못한다면 그것은 전 인류를 사랑하신 하나님의 원리에 반대되는 것이다. 재배치 전략은 기독교를 편협한 종교로 만드는 전략이다. 기독교는 사랑의 종교이고 그 사랑은 모든 인류에게 동일하게 주어져야 한다. 어느 지역도 재배치 전략에서 주장하는 것으로 영향을 받아 역차별을 당하면 안 되는 것이 기독교의 기본 정신이다. 재배치 전략을 논하는 사람들은 전략에 앞서 기독교의 기본 정신을 되새겼으면 한다. 오히려 세계 선교를 위해 더 많은 선교사를 동원시켜야 한다. 지금은 차별성을 두고 전략을 내세우는 것이 우리의 할 일이 아니다. 재배치 전략으로 지역의 차별성을 내세우는 시간에 오히려 더 많은 사람이 선교에 동참하도록 부르는 일을 하는 것이 우리가 급하게 해야 할 일이다.
3.2 복음화 되었다고 하더라도 신자들의 구성은 다양하다. 영적으로 더 많은 보호와 도움을 필요로 하는 어린 신자도 있다. 아울러 성숙한 그리스도인도 있다. 안타깝게도 선교사 배치 전략의 통계는 영적으로 어린 신자가 성숙한 그리스도인으로 포함되고 있다. 그들의 숫자가 성숙한 신자보다 훨씬 더 많다. 영적으로 어린 신자는 신체적으로 막 태어난 어린 아이와 같이 비교될 수 있다. 어린아이를 낳았으면 부모가 그 아이를 양육해야 한다. 수십 년에 걸쳐서 아이를 양육하는 것이 부모의 책임이다. 어린 아이와 같은 그리스도인을 누군가 양육해 주지 않으면 그들은 스스로 자랄 수가 없다. 전도 하여 어린 신자를 만들어 놓기만 한다면 그 어린 신자는 죽을 가능성이 많다. 다시 믿음에서 떠날 수 있다. 그러기에 선교사는 이 어린신자에게 양육할 책임이 있다. 선교사 재배치 전략을 주장하는 사람들의 원리를 따라서 어린 신자를 놓아 둔 채 다른 지역으로 선교사를 재배치한다면 그 어린 신자는 더 이상 그리스도인으로 살아갈 수 없기 때문이다.
3.3 선교지에는 교회 지도자가 부족한 형편이다. 지도자를 누가 배출하고 양육할 것인가? 선교사들이다. 지도자를 교육하고 현지인을 지도자로 세우는 사역이 선교사에게 있어서 무엇보다도 중요한 사역이다. 세계의 거의 모든 나라가 다 교회 지도자가 부족하다. 현지인 지도자가 거의 모든 나라에 필요하다면 우리는 모든 나라에 선교사를 파송해야 한다.
3.4 전략은 전략일 뿐이다. 인간의 전략이 성경을 대치할 수 없다. 지금까지 선교역사상 700개의 전략이 있었다. 어떤 전략도 완전한 것이 아니며, 모든 전략은 지역과 시대에 따라서 한계가 있다. 그러나 선교사 재배치 전략을 주장하는 사람들은 “어떤 나라들에는 선교사를 보내지 말아야 한다” 고 강하게 못을 박고 있다. 자신의 선교 전략이 중요하고 필요하고 효율성이 있다면 다른 선교 전략도 인정해야 한다. 그리고 반대되는 입장도 고려해야 한다. 다른 전략의 다양성을 고려하지 않는다면 문제가 있는 것이다. 하나의 전략을 필요한 복음처럼 주장해서는 안 된다. 전략은 더 효과적인 일을 하도록 하는 방법이다. 다른 방법을 무시해도 되는 전략은 없다.
3.5 재배치 전략은 선교사의 소명을 고려하지 않은 전략이다. 한 사람이 선교사가 되기까지, 한 선교사가 선교지를 결정하기 까지 단순히 결정되지 않는다. 선교사는 하나님으로부터 분명한 소명이 있어서 선교지를 결정한다. 선교사에게 있어서 소명은 무엇보다도 중요하다. 그러나 재배치 전략은 하나님의 개인적인 소명에 대해서 전혀 고려하지 않고 있다. 전략이 각 개인을 향한 하나님의 부르심을 앞설 수 없다. 하나님이 택해서 하나님이 보내신 귀중한 선교사를 전략이라는 구실로 다른 나라로 보낸다는 것은 위험한 일이다. 현재 한국 선교사들이 많이 있는 나라는 주로 동남아 지역으로 필리핀이나 태국이 대표적인 예이다. 이 두 나라는 한국 선교사들이 이전부터 사역한 지역이다. 많은 선교사들이 사역을 해 오고 있다. 그런데 어느 날 갑자기 선교사 재배치 이야기가 나왔다. 그리고 이 두 나라가 재배치를 해야 할 대표적인 나라가 되었다. 선교사 재배치의 소리가 들릴 때마다 이 지역 선교사들은 마음을 졸이게 된다. 소명에 따라 이 나라에 왔는데 이 지역이 우선 선교지가 아니라는 주장에 정체감에 심각한 타격을 받고 있다. 재배치를 주장하는 사람들 때문에 한국 교회는 이 지역 선교에 대한 관심이 식어진다. 그 결과로 이 지역 선교사들은 후원금도 줄어들지 않을까 염려한다. 그러나 필리핀 같은 지역은 개신교 인구가 전체 인구 9,700만 명 중에 5%도 정도이다. 필리핀은 아직도 9천 만 명 이상의 인구가 복음이 필요한 지역이다. 필리핀에 선교사가 너무 많이 있다고 생각하는 것은 오해이다. 지금 우리의 문제는 재배치 문제가 아니다. 더 많은 지역에 더 많은 선교사를 보내는 것이 문제다. 하나님이 부르신 소명에 따라 각자가 선교지에 와서 청춘을 바쳐 일하는 선교사들을 격려는 못하더라도 사기는 떨어뜨리지 말아야 한다. 논리와 현실에 맞지 않는 전략을 주장하며 오히려 선교사들을 혼란스럽게 만드는 일들을 중단해야 한다.
3.6 선교사는 은사에 따라서 일해야 한다. 모든 그리스도인의 은사가 다 다르다. 가르침의 은사가 있는 사람이 전도만 할 수는 없다. 선교사가 전도만 해야 한다면, 전도에 은사가 없는 선교사는 선교사가 될 자격이 없는 것인가? 가르침에 은사가 있는 사람은 선교사는 교육과 양육을 집중적으로 할 수도 있다. 물론 전혀 전도를 안한다는 의미는 아니다. 전도 안하는 선교사는 없을 것이다. 전도를 하지만 교육에 은사가 있는 사람은 교육을 하는 일에 집중을 하는 것이다. 교육은 복음화 된 지역일지라도 필요하다. 이런 관점에서 선교사 재배치 전략은 개인의 은사를 고려하지 않는 전략이다. 선교사가 은사에 따라 사역을 하는 것이 무엇보다도 효과적이다.
3.7 선교사의 현실적인 면이다. 선교사가 한 곳에 정착하기 위해서는 많은 어려운 과정과 스트레스를 겪어야 한다. 한국 내에서 다른 곳으로 이사하는 것도 쉬운 일이 아니다. 그런 입장에서 책상에 앉아서 통계자료를 가지고 선교사를 다른 나라로 옮기라고 하는 전략은 문제가 있다. 지금까지 기반을 잡고 이루어놓은 사역을 뒤로 하고 쉽게 다른 나라로 옮기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옮기는 것이 진정 효율적인가 하는 것은 아무도 모른다. 선교사가 선교지를 한번 옮기기 위해서는 적어도 한 텀은 더 소요가 된다. 그런 효율성을 따진다면 오히려 정착한 곳에서 더 발전적이고 전략적인 사역으로 나아가는 것이 낫다. 오히려 재배치가 시간과 재정을 낭비하는 비효율적인 전략이 될 수 있다.
추수 지역 선교
선교사의 재배치를 논하면서 재배치 지역에서 제외되는 추수지역의 필요성을 찾아보고자 한다. 추수지역은 정말 선교사가 필요한 지역이 아닌가? 정말 집중적으로 선교해야 할 지역은 미전도 지역인가? 추수지역을 외면하지 말아야 할 이유들이 있다. 그것은 오히려 전략적인 면에서 추수지역 선교가 효과적일 수 있기 때문이다.
1. 교회 성장학적인 면
교회 성장학적인 면을 고려할 때 추수지역은 선교의 우선지역이 될 수 있다. 교회 성장이론에서 교회 성장이 잘 되는 지역은 복음의 수용성이 높은 곳이다. 복음의 수용성이 높은 지역은 열린 지역이고 추수지역이다. 추수지역은 이미 복음에 대한 문이 활짝 열려 있다. 특별히 가톨릭 국가는 정확한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복음의 이해가 부족하지만 하나님이나 기본적인 신앙에 대한 문이 열려 있다. 이미 열려 있는 그들에게 정확한 복음 전파는 그들을 구원하는데 꼭 필요한 요소가 된다. 그들이 복음을 받아들이는 수용도가 다른 지역에 비해 훨씬 높다. 이는 같은 노력을 가지고 더 많은 영혼을 구원하는 장점이 있다.
2. 재생산의 전략
재생산이라 함은 현지인들을 양육해서 그들이 또 다른 선교지로 나가도록 하는 것을 말한다. 한국만이 세계 선교를 다 감당할 수 없다. 그러기에 선교지 그리스도인들을 선교사가 되도록 해서 그들도 세계 선교를 감당하도록 해야 한다. 그것이 바로 선교이다. 한국 교회의 초창기 역사를 보면 한국 교회는 처음부터 선교하는 교회였다. 1907년 장로교에서 첫 목사 안수를 받은 일곱 사람 중의 한 사람인 이기풍 목사님이 그 때 당시에 타문화권인 제주도로 선교사로 나갔다. 19012년에 장로회 총회가 세워질 때도 선교사를 파송하였고, 총회의 이슈가 선교에 대한 것이었다. 일제하에서 한국 교회가 자립이 안 된 상황에서도 한국 교회는 수많은 선교사를 보냈다. 한국 교회는 처음부터 선교사를 파송했기에 교회가 성장할 수 있었다. 이는 현재의 선교지들이 선교를 하는 재생산하는 교회가 되는 것이 그 나라의 복음화에 중요한 역할을 한다는 것을 알 수 있는 증거이다. 그래서 재생산하도록 만드는 작업이 선교사들의 선교 사업이 되어야 한다. 그런 면에서 열린 지역은 재생산할 수 있는 우선적인 선교지이다.
한 선교사가 미전도 지역에서 10명의 사람들을 전도할 수 있다고 가정해 본다. 대신해서 추수지역 선교사가 10명의 사람들을 양육해서 그들을 선교사로 보낸다면 그 사람들이 또 다른 10명을 전도할 수 있다. 이런 계산이라면 미전도 지역의 선교사가 10명의 사람을 전도할 때 추수지역 선교사는 10명을 양육하여 선교사로 보내 100명의 사람들을 전도하는 결실을 맺게 된다. 숫자적으로 꼭 그렇게 된다는 것은 아니지만 이런 면에서 오히려 양육하는 선교 전략이 더 효과적일수도 있다. 이런 가능성이 있는 선교지로서 추수지역을 우선순위에서 제외시킨다면 그것은 지혜롭지 못한 것이다. 빠른 세계 복음화의 전략을 생각한다면 오히려 추수지역이 선교지의 우선 지역이 되어야 한다.
3. 투자의 효율성
이제 막 열린 추수지역을 두고 미전도 지역으로 다시 옮긴다면 지금까지의 투자가 헛되게 된다. 추수지역은 얼마 전 까지만 해도 미전도 지역이었다. 미전도 지역이 열릴 때까지 많은 선교사들이 씨를 뿌리는 사역을 했다. 참고 기다리고 그렇게 해서 문이 열렸는데, 문이 열렸다고 해서 그 지역을 내버려 두고 또 다른 지역으로 옮긴다면 그 동안의 수고가 다 헛되게 돌아간다. 뿐만 아니라 또다시 그 지역이 미전도 지역이 될 수 있는 많은 가능성이 있다.
일본이 그 대표적인 예이다. 제 2차 대전이 끝났을 때 일본은 폐허가 되었고 모든
국민들은 절망 가운데 빠져 있었다. 그 때 맥아더 장군은 미국에 1,000명의 선교사를 보내달라고 요청하였다. 미국은 적대적인 일본에 그렇게 많은 선교사를 보낼 수 없다고 하였다. 그 때 일본의 추수시기를 놓쳤고 지금에 와서는 세계에서 전도하기에 가장 어려운 나라가 되었다.
유럽도 마찬가지이다. 영국은 얼마 전까지만 해도 세계 선교사 파송 2위국이었다. 그러나 지금은 그리스도인 인구가 2%정도 밖에 안 된다. 지금 영국이 바로 미전도 지역이 되었다. 유럽의 많은 나라들이 영국과 비슷하다. 한국 교회는 90%의 그리스도인이 있는 르완다에 선교사로 간다고 하면 박수를 치고 보낸다. 그러나 그리스도인이 1%도 안 되는 프랑스에 선교사로 간다고 하면 부자 나라에 갈 필요가 없다고 말한다. 지금도 새로 태어나는 추수 지역의 어린이들은 복음을 접할 기회가 없다. 많은 선교사들을 미전도 지역으로만 보낸다면 그 어린이들을 누가 전도할 것인가? 새로 태어나는 추수지역의 어린이들이 바로 미전도 종족이다.
우리는 지금 시간이 급하다. 씨는 언제든지 다시 뿌릴 수 있다. 그러나 이미 씨를 뿌려 자란 곳에 열매를 맺었을 때는 그 열매를 거둘 시기가 지나면 열매를 거둘 수가 없다. 열매를 다시 거두기 위해서는 씨를 뿌리는 것에서부터 다시 시작해야 한다. 추수 때를 놓치면 많은 시간과 노력이 다시 투자 되어야 한다. 필자는 어렸을 때 시골에서 자라면서 추수 때가 되면 유난히도 더 바빴던 기억이 있다. 추수 때가 씨 뿌리는 때보다 더 바빴다. 이와 같이 추수지역이 닫힌 지역보다 더 급하다. 열매를 거두기 위해서는 바로 그 시기에 일을 해야 한다. 그 시기를 놓치면 다시는 추수할 수 없기 때문이다.
4. 은사적인 면
우리는 은사에 따라 선교를 해야 한다. 하나님은 은사에 따라 각 사람을 부르신다. 추수지역에 은사를 받은 사람이 미전도 지역에 간다면 그것은 효과적이지 않다. 음악을 전혀 배우지 못한 운동선수가 음악을 위해 일하는 것과 같이 은사가 추수지역에 있는 사람이 미전도 지역으로 가면 비효율적이다. 전도가 은사인 사람은 미전도 지역으로 가고 가르치고 양육하는 은사가 있는 사람은 추수지역으로 가는 것이 좋다. 이것이 하나님이 주신 은사의 원리이다. 선교지를 결정할 때 자신의 은사에 따라 결정하는 것이 우선순위가 되어야 한다.
한국인의 일반적인 성품과 기질과 은사는 추수지역에 더 가깝다고 불 수 있다. 한국인의 성품은 다른 나라 사람보다도 더 급하다. 일을 많이 한다. 일을 하지 않으면 못 견디는 성품을 지녔다. 그런 의미에서 한국 사람들의 특성은 개척자보다는 추수자에 가깝다고 볼 수 있다. 추수지역은 마음껏 일할 수 있는 곳이다. 복음을 위해서 열심히 뛸 수 있는 곳이다. 복음을 위해 일하는데 방해받지 않는다. 중국과 같은 닫힌 지역에서 공안원의 눈치를 볼 필요도 없다. 모슬렘 지역에서 사람들에게 몰래 전도하지 않아도 된다. 그저 한국인의 본래의 모습처럼 열심히 일하면 된다. 전도, 양육, 훈련, 재교육 등 추수지역에는 할 일이 많이 있다. 바로 이곳이 한국 사람이 우선적으로 가야 하는 지역이다. 한국 사람들은 기술을 배워도 다른 사람이 하는 것을 보고 모방은 잘한다. 그러나 창의력을 가지고 새로운 기술을 개발하는 것은 모방보다는 뒤 떨어진다. 닫힌 지역에서 선교하는 것은 새로운 것에 대한 도전이고 창의력을 필요로 한다. 추수지역에서의 사역은 모방적인 사역의 형태라고 할 수 있다. 한국 사람들의 일반적인 성향은 추수지역 선교를 하기에 적합하다.
현재 한국 선교사의 70% 정도가 목회자 선교사(부인 선교사를 포함)들이다. 목회자 선교사들이 닫힌 지역에도 가야 하지만 목회자들의 전공이나 은사는 열린 지역에 적합하다. 닫힌 지역은 전문인 선교사들이 더 필요하다. 닫힌 지역에서는 전문 직업을 가지고 들어가 복음의 씨를 뿌리는 작업이 적합하다. 목회자 선교사는 열린 지역에서 가르치고 훈련하고 사람을 세우는 사역이 적합하다고 볼 수 있다. 그런 면에서 한국 선교사들의 은사와 전공은 열린 지역에 더 어울리는 것이다.
결론
때로 선교 전략들이 하나님을 위한다고 하면서도 하나님의 나라를 방해하기도 한다. 그것은 인간 중심의 사고와 감정으로 전략을 구상하기 때문이다. 한 쪽에 치우친 왜곡된 전략들은 많은 선교사들을 절망하게 하고 오히려 적합한 세계 복음화 방법을 가로막고 있다. 이것이 한국 교회 선교의 현실이다. 재배치 전략이나 미전도 종족 중심의 선교 전략이 이 부류에 속하지 않기를 바랄 뿐이다. 감정적이고 한쪽에 치우친 선교 전략들로 인해 한국 교회 선교가 뒷걸음치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한국 교회 선교가 이성적이고 균형 잡힌 선교 전략들로 계속 발전했으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