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2장 선교의 본질과 새로운 방향
선교에 대한 새로운 관점
제 1장에서 선교의 목표는 세계 복음화이고 복음 전도라는 것을 언급하였다. 이 정의는 선교를 사회 참여적인 사역과 비교해서 말한 것이다. 그러면 세계 복음화를 위해 선교사는 전도만 해야 하는가? 이미 말한 것처럼 선교의 중심에는 제자 훈련과 교회 개척이 자리 잡고 있다. 제자훈련과 교회 개척은 세계 복음화를 위한 가장 중요한 사역이라고 볼 수 있다. 여기서는 좁은 의미의 전도를 양육이라는 차원과 비교하고자 한다. 좁은 의미의 전도는 사람들에게 예수 믿도록 전파하는 것이고 양육은 예수 믿은 사람을 신앙인으로 살아가도록 교육하고 지도하는 것이다. 제자 훈련과 교회 개척은 전도와 양육이라는 두 가지 측면을 포함하고 있다. 세계 복음화의 의미는 전도와 양육을 통해 하나님의 나라가 이 땅에 이루어지는 것을 의미한다. 선교사는 세계 복음화를 위해 전도와 양육을 동시에 사용하여 사역을 하는 것이다.
보통 사람들은 선교사를 생각할 때 선교사는 전도만하는 사람이라고 오해 하는 경우가 있다. 그러나 선교사는 전도만 하는 것이 아니라 동시에 양육을 하는 사람이다. 전도를 하기 위해 방법론적으로 전문인 선교사가 자기의 직업을 사용할 수 있다. 양육을 위해 선교사가 자신이 가진 가르치는 은사를 가지고 신학교에서 가르칠 수도 있다. 컴퓨터 기술자가 선교사가 되어 전도를 위해 영화나 동영상을 만들어 사용할 수 있다. 글이 없는 부족이 성경을 읽을 수 있도록 하기 위해 부족어로 성경을 번역하는 선교사가 있다. 그 성경 번역 선교사가 오지에서 생활할 수 있도록 매일 경비행기를 조종하여 생활 용품을 전달하는 선교사도 있다. 다른 선교사들이 사역을 잘 할 수 있도록 사무실에서 하루 종일 선교사들의 필요를 점검하고 행정적인 일로 사역을 하는 선교사도 있다. 선교사들이 자신의 사역을 잘 감당할 수 있도록 선교사 자녀들을 돌보고 교육을 담당하는 선교사도 있다. 전도와 양육을 위해 문서를 만드는 선교사도 있다. 이런 모든 종류의 선교사가 서로 협력하여 세계 복음화를 위해 사역을 한다. 선교사를 보면서 현지인들에게 몇 명이나 전도했느냐는 질문보다는 선교사의 전공이 무엇이며, 선교지에서 그 전공을 잘 활용하여 복음 전파에 기여하고 있는가에 대해 질문해야 한다. 모슬렘 지역에서는 선교사가 몇 십 년을 살아도 한 사람을 전도하기 어려울 수 있다. 그래서 선교사의 삶이 궁극적으로 세계 복음화를 위해 현재의 위치에서 최선을 다하고 있는가를 물어보아야 한다. 한 사람을 키우고 양육하기 위해 10년이 걸릴 수도 있다. 10년 동안 한 사람의 사람을 키웠는데 그 사람이 빌리 그래함 같은 전도자가 된다면 그 선교사의 노력과 사역은 그 어떤 다른 선교사보다 위대하다고 할 수 있다. 그런 차원에서 선교사의 사역의 열매를 쉽게 평가해서는 안 된다. 한국 사람은 성격이 급하다. 선교에 있어서도 바로 어떤 열매를 얻었는가를 질문한다. 그래서 당장 열매가 없어 보이면 그 자리에서 후원을 포기하기도 한다. 그러나 교회가 선교사를 선택할 때 선교의 열매보다는 그 선교사의 인격과 영성과 자질을 보고 성실하게 일할 것을 믿어야 한다. 그 선교사의 사역의 결과가 단기간에 좋을 것만을 기대하여 선택해서는 안 된다. 일반 사업도 실패 없이 성공을 거둘 수 없다. 선교사도 실패할 수 있다. 파송교회는 선교사의 실패도 참아줄 수 있는 여유를 가져야 한다.
선교사들은 선교지에 도착하여 먼저 언어를 배워야 한다. 한국 선교사들은 영어와 현지어를 배워야 한다. 그러기에 선교사가 1-2년 공부한다고 해서 언어를 유창하게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첫 4년은 언어를 배우고 사역의 기반을 마련하는 시간이 되어야 한다. 초임 선교사에게 무슨 사역을 하느냐고 다그쳐 묻는 것은 너무 성급한 요구이다. 대신에 문화 적응을 잘 하고 있는 가를 살펴보아야 한다. 첫 텀 때는 파송 교회가 이런 저런 사역을 해 달라고 선교사에게 요청하는 것을 주의해야 한다.
한국 사람들은 너무 급한 것이 문제다. 자주 바꾸는 것도 문제요, 끝까지 신뢰하지 못하는 것도 문제다. 한국인인 H선교사는 미국에서 공부를 마치고 파송을 받았다. 한 미국인 교회와 연결이 되어 후원을 받게 되었다. 그 교회를 방문했을 때 교회에서 H선교사에게 언제까지 후원해 주길 원하는가 물었다. H선교사는 한 텀 혹은 두 텀 정도 후원해주면 좋겠다 라는 대답을 하였다. 그런데 이 교회는 선교사가 은퇴하고 나서 죽을 때까지 후원하겠다는 약속을 하였다. 한국 교회에서 어떤 교회가 선교사를 믿고 그 선교사가 은퇴 후에 죽을 때까지 후원하겠다고 약속한 교회가 있는가?
한국 교회는 선교사의 사역의 다양성을 인정하고 좁은 의미로 선교사를 바라보고 말아야 한다. 파송 교회 입장으로만 선교사를 판단하는 것을 주의해야 한다. 선교사는 다양한 사역을 하면서 그 사역들이 전체 선교에 선을 이루는 것임을 이해해야 한다. 선교사를 믿고 세워주고 끝가지 기다려 주어야 한다. 만약 선교사가 실수했을 때에도 질책하기에 앞서서 그렇게 된 이유가 무엇인지를 알아보고 도울 수 있어야 한다.
G선교사는 선교지에서 순간의 실수를 하였다. 선교사에게 일어날 수 없는 실수였다. 파송 교회는 그 선교사를 철수 시켰고 그 뒤로 그 선교사는 사람들 앞에서 죄인이 되어 있었다. 그 선교사가 한국에 돌아왔을 때 아무도 돌보는 교회가 없었다. 있을 거처도 당장 먹고 살아야 할 생활비도 없었다. 다행히 소속 선교 단체에서 1년 동안 상담을 하며 치유와 회복을 할 수 있도록 도와주었다. 나중에 이 선교사는 선교에 좋은 영향력을 끼치며 훌롱한 사역하고 있다.
이처럼 실수나 실패한 선교사가 나올 때 교회는 너그럽게 맞아주어야 한다. 용서하고 참아주고 도와주는 분위기가 되어야 한다. 선교사의 다양성을 인정하는 열린 마음으로 선교사를 보아야 한다. 선교사가 아무리 작은 일을 하고 눈으로 볼 때 보잘 것 없는 일을 할지라도 그 선교사는 하나님 나라의 관점에서 하나의 톱니바퀴처럼, 작은 나사처럼 일을 하고 있는 것이다. 하나님이 선교사를 선택하여 선교지에 보내셨고 하나님이 참고 그를 인도하고 사용하고 계신다. 열린 마음으로 선교사와 그의 사역을 바라보고 그들이 하나님 나라에서 소중한 존재임을 인정해야 한다.
가끔 선교사를 무조건 비판하는 사람들을 보면서 속으로 이런 질문을 하고 싶을 때가 있다. “당신이라면 그 선교지에 나가 사역을 할 수 있습니까?” 물론 격려성 비판은 좋지만 비판을 위한 비판은 선교사를 낙심되게 할 뿐 아니라 하나님 나라의 확장에 방해가 된다.
전략의 시대
어떤 일을 할 때 하던 일을 잠시 멈추고 가끔씩 전후 좌우를 보아야 할 때가 있다. 운동 경기를 할 때도 자신만 열심히 하는 것이 아니라 상대의 움직임도 함께 파악해야 좋은 결과를 얻을 수 있다.
한국 교회 선교도 마찬가지로 현재 한국 선교가 어느 위치에 서 있으며, 선교지 상황은 어떠하며, 세계 선교 동향은 어떤지를 돌아보아야 한다. 한국 선교는 지금 중요한 기로에 서 있다. 서구 선교 시대가 서서히 후퇴하는 길목에 제 삼 세계로 선교의 바톤이 넘어가는 시대에 있다. 한국 교회 선교는 제 3세계 선교의 선두 주자로 나서고 있다. 세계는 모든 방면에서 갈수록 다양해지고 복잡해져 가고 빈부의 격차는 더욱 심화되어 가고 있다. 정치적으로 불안한 나라들이 갈수록 많아진다. 매스 미디어는 더욱 발달되어 가고 있고 각 나라는 더욱 가까워졌다. 종교적으로는 모슬렘이 더욱 확장되어 가고 있으며, 뉴 에이지 사상은 모든 나라에 깊숙이 들어가 있다. 한국 국내적으로는 교회가 정체 혹은 쇠퇴의 길로 들어서고 있고 젊은이들의 주님에 대한 헌신은 점점 줄어들고 있는 형편이다. 한국 교회의 본격적인 선교 역사는 이제 20년을 넘어선 청년의 시대에 들어섰다(1988년 올림픽을 기점으로 해외여행이 자유로워짐으로 그 때부터 한국 선교가 본격적으로 시작된 것으로 봄). 이제는 한국 교회 선교가 어디로 가야하는지에 대해서 심각하게 진단해 보아야 할 때가 되었다.
한국은 정치, 경제, 스포츠, 문화적인 면에서 세계 어디에서나 인정을 받는 나라가 되었다. 특별히 경제적인 면에서 국민 소득 년 간 일인당 2만 불 시대에 이르렀다. 반면에 대부분의 선교지는 아주 가난하다. 국민 소득 2만 불이 되는 나라 사람이 1,000불정도 되는 나라에 가는 것은 엄청난 경제적인 차이를 가지고 가는 것이다. 이제 한국 선교사가 가난한 나라에 현지인과 같은 생활을 하려면 생활비를 20배 정도 줄여야 같은 수준으로 살게 된다. 교육적으로도 한국 교육은 세계 어느 나라에 내놓더라도 뒤떨어지지 않는다. 가난한 선교지에서 한국 선교사들의 교육 수준은 최상위에 속한다. 경제적으로나 교육적으로 한국 선교사들은 현지인들과 너무나 큰 간격의 차이를 가지고 있다. 성육신적인 차원에서 본다면 한국 선교사는 이미 선교사로서의 자격이 부족하다고 말할 수 있다. 현지인과 경제적으로 많은 차이를 가지고 있으면서 그들과 함께 공존하며 같은 수준에서 사는 선교사가 되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그래서 이제는 선교사가 직접 발로 뛰고 선교지 사람들과 함께 동화되어 선교하기는 어려운 시대가 되었다.
현지인들은 선교사에게 자기들과 같은 수준에서 살아주기를 바란다. 만약 선교사가 그들과 같은 수준으로 살지 않으면 현지인들은 마음의 문을 열려고 하지 않을 것이다. 선교사가 경제적인 수준을 낮추어 현지인들과 같은 수준에서 최대한으로 노력해서 산다고 해도 현지인들은 선교사에게 60% 정도의 마음의 문을 연다고 한다. 만약 그들과 같아지지 않고 많은 경제적인 수준 차이가 있다면 그보다 훨씬 더 적게 마음을 열 것이다. 이런 이유로 현지인의 마음을 얻지 못한다면 효과적인 선교를 하기 어렵다.
그러면 한국 선교를 멈추어야 하는가? 그럴 수는 없다. 하나님이 명령하신 선교를 멈출 수는 없다면 다른 대안을 찾아야 한다. 현지인과 함께 살면서 그들의 삶속에서 복음을 전할 수 없다면 다른 방안을 찾아야 한다. 다른 방안은 무엇이 있는가? 바로 전략적인 선교를 하는 것이다. 이제는 무조건 교회 개척을 하거나 무조건 가난한 사람들을 돕는 사역을 할 수는 없다. 지금까지는 현지인들과 함께 살면서 발로 뛰면서 선교를 해 왔지만 이제는 전략적인 선교를 해야 한다. 전략적인 선교란 은사와 상황에 맞는 선교를 말한다. 계획과 연구를 통해 하는 선교를 말한다. 현지인들이 스스로 복음을 전하고 교회를 개척할 수 있도록 계획을 짜고 옆에서 도움을 주는 선교를 말한다. 어떻게 하는 것이 현지 교회가 성장할 수 있는지에 대해 전략을 세우는 사역을 하는 것이다. 현지 지도자들을 중심으로 가르치고 훈련하는 사역을 말한다. 현지 지도자 교육에 초점을 두고 사역을 할 수 있도록 다른 나라 선교사들과도 긴밀한 협력을 하는 것을 말한다.
그래서 이제는 선교사는 무조건 현장에서 몸과 발로 복음을 전하는 사람이라는 인식을 고칠 필요가 있다. 몸으로 보여주는 선교가 가장 바람직하지만 그렇게 하기는 이미 선교지 상황과 선교사간의 간격이 크다. 선교사들의 은사도 이제는 연구와 가르침에 더 가깝다. 현재는 정보와 전략이 효과적인 시대가 되었다. 전쟁을 할 때 무기가 없는 옛날에는 몸으로 싸움을 잘하는 군대가 이겼다. 총과 대포를 쏘는 시대에는 그런 무기를 잘 활용하는 것이 필요했다. 그러나 지금은 로켓이나 최첨단 컴퓨터로 연구해서 앉아서 전쟁을 하는 시대이다. 선교도 전략적으로 해야 한다. 물론 성육신의 원리는 사라지지 않지만 주님이 주신 은사와 자연 은총을 최대한 활용하는 것도 지혜로운 방법이다. 선교도 새로운 시대에 맞는 전략을 개발해야 한다.
그런 차원에서 한국 선교사는 리더 선교사가 필요하다. 전체를 어우르고 통합할 수 있는 지도자가 요청된다. 지금까지는 자기 선교지에서 사역하고 자기 지역에서 영향력을 행사하는 선교사가 대부분이었다. 이제는 선교사들 중에서 세계 선교의 지도자들이 나오는 시대가 되어야 한다. 군대 시스템은 피라미드 형태의 시스템이다. 군대 뿐 아니라 모든 조직체가 다 마찬가지다. 일반 병사가 많고 위관급 장교와 영관급 장교, 스타급으로 올라 갈수록 그 숫자는 줄어든다. 선교도 마찬가지인데 지금까지는 일반 병사와 같은 선교사가 너무 많았다. 이미 언급한 것처럼 일반 병사와 같은 선교사로 선교지에서 살기에는 한국 선교사들이 교육적이나 경제적인 면에서 많은 수준이 올라갔다. 군대에서의 위관급, 영관급과 같은 더 많은 중간 리더가 생기는 구조가 되어야 한다. 또한 리더가 되어 조직을 이끌고 비전을 제시할 지도자들도 나와야 한다. 일반 회사가 구조 조정을 하는 것처럼 선교도 구조조정이 필요하다. 다양하게 밀려오는 요구들과 변화 속에서 계속해서 발전하고 하나님 나라를 위한 복음을 효과적으로 전하기 위해서 기존의 방식을 바꿀 필요가 있다. 200년 전의 선교 형태를 그대로 답습하는 시대는 지났다. 효과적인 대안을 찾고 전략을 구상해 나가지 않으면 안 되는 시대에 와 있다.
한국 선교에 요구되는 세 가지 영역
1. 다양성
한국 교회 선교는 그 동안 여러 영역에서 너무 편협 적으로 이루어져 왔던 것이 사실이다. 지나친 평가일지는 모르지만 다양성을 인정하지 않았다. 내가 아니면 다른 사람도 아니어야 하고 나의 방법이 아니면 다른 사람의 방법은 잘못 되었다고 생각해 왔다. 내가 주도권을 가지고 해야 하고 내가 하는 것이 최고였다. 이것 아니면 저것이라는 식의 사고로 선교를 해 왔다. 너무 자신의 것만을 옳다고 주장해 왔다. 선교지를 선택할 때나 어떤 사역을 위해서 자기 단체는 꼭 이 지역만을 해야 하고 이 지역 선교는 자기 단체가 최고라는 생각으로 해 왔다. 각자가 각개전투 식으로 자기주장만 해 왔다는 것이다. 전략적인 선교를 하기 위해서는 선교의 다양성을 인정하는데 부터 시작해야 한다. 선교의 방법은 다양하고 하나님이 주신 은사도 다양하다. 나의 영역과 방법이 아니라고 하더라도 가능하고 필요한 영역과 방법이 많이 있다는 것을 인정해야 한다. 나와 다름을 인정하는 열린 마음에서부터 새롭게 출발해야 한다. 다양성을 인정하는 것이 다른 은사를 가진 사람들과 협력할 수 있는 기본이 된다. 다양성을 인정할 때 효과적인 선교의 열매를 거둘 수 있다. 다양성이 살아날 때 발전의 속도가 빨라진다. 우리 교회는 이것에 집중하겠지만 그러나 다른 교회의 사역도 가치가 있다는 것을 인정하는 풍토가 일어날 때 효과적인 선교를 할 수 있다.
다양성을 키우는 방법은 배우는 자세를 갖는 것이다. 다른 방법이나 다른 사람들의 것을 배우려고 할 때 다름을 인정하게 되고 그것은 자신의 사역에도 도움이 된다. 선교사도 다양하고 세상도 다양하고 선교 방법과 전략도 다양하고 하나님이 주신 은사도 다양하다는 것을 인정해야 한다. 다양성을 인정하는 가운데 서로 협력해 나가는 풍토가 필요하다. 다양성을 인정하는 것이 깨지면 협력이 깨지게 된다. 협력이 깨지게 되면 하나님 나라의 확장은 더디게 된다. 사역하는데 있어서 협력은 하나님의 방법이다. 다양성을 인정하면 시너지 효과가 일어난다.
2. 전문성
다양성 속에 전문성을 키워 나가는 것도 중요하다. 한국 교회는 다양성을 인정하는데 부족했을 뿐 아니라 전문성을 키우는데 있어서도 소홀했다. 특별히 선교사들의 사역 영역이나 선교사 자기 계발 분야에서 전문성이 부족했다. 선교사 각 개인이 이것만큼은 자신이 최고라는 영역을 만들어 가는 것이 전문성이다. 선교 단체도 이 분야만은 세계 어떤 단체에 내 놓아도 최고의 수준이 되는 것이 전문성이다. 전 세계에 있는 선교 지도자들이 한 분야를 배우기 위해 찾아 갈 수 있는 그런 선교 단체의 전문성을 갖는 것이 필요하다. 이를 위해 선교사의 입장에서는 배우는 자세가 있어야 한다. 사역만 하는 것이 아니라 더 배우고 발전해 나갈 수 있도록 노력하는 것이다. 선교사가 선교지에서도 전문성이 없이는 환영받지 못한다.
선교 모라토리움(A Moratorium on Missionaries: 선교 유예)을 주장하는 선교지가 늘어나고 있다. 선교 모라토리움은 선교를 잠시 중단하고 철수해 달라는 선교 현지인들의 요구이다. 이런 요구가 왜 나오는가? 선교사들의 전문성의 결여가 한 요인이다. 이 분야에서는 자신의 나라에 꼭 필요하다고 선교사를 붙잡을 만큼 선교사에게 전문성이 있어야 하는데 그렇지 않기에 철수해 달라는 것이다. 전문인 선교사 뿐 아니라 목회자 선교사도 전문성이 요구된다. 필자가 현재 사역하고 있는 필리핀에서도 한국 선교사들에게 가끔씩 철수할 것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있다. 심지어는 만약 필리핀에 머물고 싶으면 돈을 내라는 요구를 하기도 한다. 필리핀 교회 스스로 할 수 있고 한국 선교사에게 도움을 받을 것은 재정뿐이라고 노골적(?)인 말을 한다. 이들의 요구가 한국 선교사들에게는 가슴 아픈 말이지만 새겨들을 필요가 있다. 이런 말을 듣지 않기 위해서는 선교사들이 전문성을 키워나가야 한다.
군대에서는 영관급의 장교들에게 외국에 유학을 가서 공부할 기회를 준다. 외국에서 공부하지 않으면 장군의 자리에 진급하기 어렵다. 전쟁을 위해 준비하는 군인 리더들의 모습을 보면서 한국 교회 선교사들이 배울 것은 전문성을 키우는 것이다. 선교사들도 계속 공부해서 전문성을 가져야 한다. 한 선교사가 여러 가지를 다 할 수는 없지만 한 가지는 탁월하게 할 수 있어야 한다. 그러기에 단 한 가지라도 탁월하게 할 수 있는 전문성이 없다면 처음부터 선교사가 되지 않는 것이 좋다. 선교사가 특별한 전문성이 없기 때문에 선교지에서 무시를 당할 뿐 아니라 선교사간에 서로 필요 없는 경쟁과 싸움을 하게 된다. 그래서 한국 교회는 선교사가 전문성을 키우기 위해 지원해야 한다. 할 수만 있다면 처음부터 전문성이 탁월한 선교사를 선교지에 파송하도록 하는 것이 좋다. 시대와 상황이 변해도 선교사에게 요구되는 것은 전문성이다.
선교 단체도 선교 단체만의 전문성을 가져야 한다. 선교 연구, 선교 훈련, 선교 동원, 멤버 케어 분야에서 전문성이 필요하다. 선교 단체가 전문성을 가져야 한다. 선교를 모르는 사람들이 선교의 주인인 양 앞서서 하는 것을 막을 수 있는 것이다. 선교 전문가가 아닌 사람들이 선교는 아무나 할 수 있다고 말하는 것을 잠재울 수 있는 것은 전문성을 가질 때 가능하다. 선교 단체는 선교는 모두가 할 수 있다는 전제하에 선교의 수준을 낮추려고 하는 사람들을 깨우칠 수 있는 전문성이 필요하다. 전문성을 가진 사람만이 선교사가 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선교 단체가 되도록 해야 한다. 선교 단체는 전문성 없이 선교하려는 한국 교회의 분위기를 바꿀 책임이 있다. 선교 단체는 선교가 전문 분야라는 것을 한국 교회에 가르쳐 주어야 한다. 분명한 사명감과 탁월한 전문성을 가진 사람들만이 직접적인 선교에 참여할 수 있는 분위기를 만들어야 한다. 세상을 살아가는 데도 전문성이 없이 살아남기 힘든 시대이다. 선교는 다른 어떤 영역보다 전문성을 가진 사람들이 해야 하는 일이다. 선교의 전문성을 갖지 않는 사람들이 선교에 무작정 참여하는 무질서한 한국 선교의 체질을 바꾸어야 한다. 지금 바로 잡지 않으면 선교의 질서는 깨어질 것이요, 하나님께서 한국 교회에 주신 선교의 사명이 다른 나라로 옮겨 질 수도 있다. 선교는 전문성을 요하는 일로서 21세기에 하나님이 선교 지도자들에 주신 사명이 바로 전문성이다. 한국 교회가 전문성을 키우는 것만이 변화하는 시대를 대처해 나가는 방법이다.
3. 통합성
한국 선교에 요구되는 또 하나의 영역은 통합성이다. 통합성이란 어떤 사건이나 사물을 볼 때 한 가지 시각에서만이 아니라 전체적인 시각에서 평가하고 융합하는 성격을 말한다. 퍼즐을 맞추는 것과 같이 서로 다른 것들을 조화롭고 균형 있게 짜 맞추는 것이 통합성이다. 예를 들어 통합 능력이 있는 선교(사) 지도자라면 미래를 볼 줄 아는 사람을 말한다. 미래를 볼 뿐 아니라 창조적인 능력을 가진 자여야 한다. 균형을 잡을 줄 알고 좌우를 분별할 줄 아는 지도자가 통합성이 있는 지도자다. 통합성을 가진 지도자는 원칙과 상황을 잘 적용하는 능력이 있어야 한다. 통합성을 갖기 위해서는 선교 동향을 알아야 한다. 한국 교회 후원자들과 선교지 현지인들의 요구와 필요를 읽을 줄 알아야 한다. 감성과 이성의 조화를 이루는 능력이 있어야 한다. 다변화되는 시대를 대처하는 선교 전략을 만들 수 있어야 한다. 민첩성과 유동성이 있어야 한다. 원인을 파악하고 해결하는 방법을 제시할 수 있어야 한다. 일의 경중을 알아야 한다. 사람을 세우는 것과 사역을 하는 것 사이의 조화를 이룰 줄 알아야 한다. 본질과 비본질을 구분할 줄 알아야 한다. 복음과 문화를 구별할 줄 알아야 한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이런 것을 모두 갖춘 선교 지도자는 드물다. 완벽한 지도자는 드물지만 최소한 통합 능력을 키워나가도록 노력하는 모습은 있어야 한다. 통합 능력이 뛰어난 선교 지도자가 많을 때 한국 교회 선교는 소망이 있다. 특별히 선교 본부에서 사역하는 선교사에게 요구되는 능력은 바로 통합 능력이다. 선교사를 관리 감독할 때 선교부 정책의 원칙을 잃지 않으면서도 각 선교사의 상황을 고려하는 능력이 필요하다. 잘못하면 원칙을 강조하다 사람을 잃게 되고 사람을 얻으려다 선교부의 원칙을 무너뜨리는 결과를 가져올 수도 있다. 이런 상황에서 선교부를 이끌어 나가는 능력이 바로 통합 능력이다. 통합 능력을 키워 나가는 것이 선교사와 한국 선교의 과제 중의 하나이다.
다양성 속에 전문성을 키워 나가는 것도 통합 능력이 있을 때 가능하다. 다양성만 강조하다 보면 전문성에서 약해질 수 있고 전문성만을 강조하다 보면 다양성을 해칠 수 있다. 다양성속에 전문성을 키워 나갈 수 있는 능력은 통합 능력에서 나온다. 한국교회 선교는 다양성 속에서 전문성을 적절하게 키워나가야 할 때다. 요즈음 한국에서 살아남는 기업은 대기업이다. 대 기업은 다양한 분야에서 사업을 한다. 다양하지만 전문성이 뒤 떨어지지 않는다. 대기업은 다양성과 전문성을 동시에 갖춘 집단이다. 그래서 대기업이 될 수 있었다. 동네의 조그만 슈퍼는 점점 문을 닫고 있다. 대 기업의 백화점이나 대형 마트 때문이다. 백화점이나 대형 마트는 각 상품마다 최고의 질(전문성)을 자랑하는 다양한 상품(다양성)을 가지고 물건을 팔기 때문에 동네 슈퍼를 이길 수 있다. 여기서 필자는 기업의 도덕성을 언급하는 것이 아니라 세상의 경쟁에서 살아남고 이겨 나가기 위한 측면에서 말하고 있다. 선교도 마찬가지다. 우선 선교가 살아남아야 뭔가 할 수 있다. 필자의 요구들은 한국 교회 선교가 지속되고 살아남기 위한 최소한의 조건들이다. 살아남아야 과업을 완수할 수 있다. 살아남기 위해서는 새로운 변화에 대처해 나가는 통합 능력을 키워야 한다는 것이다. 우물안 개구리 식의 생각에서 벗어나 세계를 볼 줄 알고 하나님의 핵심적인 뜻을 알 수 있는 통합 능력이 요구된다. 통합 능력이 부족하면 협력이 안 된다. 통합 능력이 안 되면 선교 단체와 선교사들이 힘을 합하지 못한다. 통합 능력이 안 되면 선교는 점점 힘을 잃어갈 것이다. 누구도 혼자서는 안 된다. 한 사람만이 위대한 사람이 되어서도 안 된다. 이 모든 것을 어우를 수 있는 통합 능력을 가진 사람들이 힘을 합해야 한다.
선교의 본질: 가는 것과 사는 것
다변화되는 세상을 대처해 나가기 위해서 역동적인 변화를 추구하는 것이 필요하다. 역동적인 변화 없이는 새로운 세상에서 살아남기도 힘들다. 한국 교회 선교에 있어서도 마찬가지로 이제는 생존 경쟁 시대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선교가 언제까지 상승 곡선을 타고 갈 것인가에 대해서는 아무도 모른다. 예측할 수 있는 미래의 상황은 긍정적인 면보다는 부정적인 면이 더 많다. 한국 교회의 성장이 멈추는 분위기이고 젊은 헌신자들이 줄어가고 있는 현실이다. 이런 현실에 있어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각 선교 단체마다, 각 선교사 마다 역동적인 변화를 감수해야 한다. 민감하고도 창의적으로 대처해 나가지 않으면 안 되는 시대다.
그런데 문제는 이런 대처 방안들이 선교의 본질적인 부분까지 변하게 하는 데에 있다. 아무리 세상이 변해도 변하지 않아야 할 본질적인 부분이 있다. 전략이 아무리 중요하다고 해도 본질을 바꾸는 전략은 안 된다. 전략은 시대와 상황과 지역에 맞게 효과적으로 선교를 하기 위해 만든 방법론적인 것일 뿐이다. 그런데 전략이 선교의 본질을 흐리게 만들고 있다. 방법이 목표를 뒤흔들고 있다. 상황과 전략은 바뀌어도 중심은 지켜나가야 하는 것이 우리의 사명이다.
1. 선교는 가는 것이다.
선교에 있어서 혼동하지 말아야 할 부분이 선교는 ‘가는 것’이라는 사실이다. 주님은 이 세상에 사람의 몸으로 오셨다. 주님이 이 세상에 오심으로 인해 하나님의 구원 역사는 시작되었다. 예수님은 승천하시기 전에 모든 족속으로“가라”고 하셨다(마28:18). 이 구절은 주님의 비유적인 명령이 아니라 직접적인 명령이다. 문자적으로 해석하여 적용해야 할 구절이다. 예수님의 공생애 기간 동안 전도를 위해 예수님은 제자들을 각 성에 둘 씩 짝을 지어 보내셨다. 가서 해야 할 일과 자세를 가르치셨다. 그리고 갔던 무리들을 다시 모아 보고를 들으셨다. 사도 바울은 세계 곳곳을 다니면서 말씀을 가르치는 사역을 하였다. 선교는 직접 가는 것에서부터 출발한다.
지금은 안방에서 세계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순간마다 다 알 수 있는 시대이다. 영국에서 벌어지는 축구 경기를 직접 TV를 통해 볼 수 있는 것은 사실 따지고 보면 엄청난 일이지만 그것은 이제 우리 삶 가운데 전혀 특별한 것이 아니다. 요즘 시대는 집에 앉아서 인터넷을 통해 자기가 사려는 집과 온 동네를 구경할 수 있다. 직접 가서 보는 것보다 더 자세히 동네의 구조나 가게나 집의 위치나 모양을 알 수 있는 시대다. 심지어는 예배도 교회에 가지 않고 인터넷으로 드리는 시대이다. 이런 시대에 혹자는 선교도 꼭 사람이 가서 해야 하느냐고 반문한다. 선교를 위한 좋은 방법들이 많이 있는데 굳이 많은 돈을 들여 선교사를 보낼 필요가 있느냐고 질문한다.
라디오 방송으로 선교를 하는 분은 방송 선교의 중요성을 알리기 위해 이제는 방송으로 모든 지역에 선교가 가능하기에 방송으로 선교가 충분하다고 한다. 북한과 같이 선교사가 직접 들어갈 수 없는 지역은 방송을 통해 선교할 수 있는 장점이 있다. 그러나 방송으로 할 수 없는 사역이 있다. 제자를 양육하고 교회를 개척하는 것은 할 수 없다. 중국의 문이 열리기 전에 방송으로 선교를 하면서 그 열매가 많이 있었다. 그러나 이제는 중국에도 선교사가 들어가서 그동안 하지 못했던 일들을 해야 만 했고 그 일들은 선교사들이 직접 가서 할 수 있는 일들이었다.
문서 선교하는 사람들은 문서의 필요성을 언급하면서 문서로 모든 선교사 가능하다고 말한다. 그러나 문서 선교는 방법론적으로 필요한 사역이지만 그것이 가는 선교를 막을 수는 없다. 요즈음 소수의 한국 교회에서 현지인 지도자들을 직접 지원함으로 선교 사역을 하고 있다. 선교사를 한 사람 파송 할 때 매달 수천 불씩의 재정이 소모 되는데 그 금액이면 현지인 목회자들 10-20명의 월급을 줄 수 있고 그들로 하여금 선교를 하게 하면 된다는 생각이다. 선교사를 파송하는 것을 중단하고 현지인 목회자에게 직접 돈을 보내는 교회가 생기고 있다. 이것은 몇 가지 면에서 문제가 있다. 첫째는 선교는 가는 것이고 보내는 것이라는 기본을 무시한 전략이다. 두 번째는 현지인 목회자들의 자립 의지를 꺾는 행위이다. 현지인 목회자의 자립 의지를 꺾을 때 현지 교회 독립과 성장에 방해가 된다. 세 번째는 직접 지원을 받는 현지인 목회자와 그렇지 못한 목회자 사이에 문제가 생긴다. 결국은 목회자들 간에 서로 협력하는 것이 아니라 적대 관계를 만드는 요인이 된다. 네 번째는 돈이 사람보다 중요하다는 사상이 내면이 들어 있다. 돈이면 다 된다는 생각으로 선교할 때 그 결과는 보지 않아도 알 수 있다. 선교는 돈으로 하는 것이 아니라 선교사의 삶을 나누고 사랆을 사랑하는 것이다.
한국에서 지인이나 그 가족의 결혼식이 있을 때 직접 가서 축하하는 것과 전화로 축하하는 것은 다르다. 은행으로 부조금을 보내는 것과 직접 가서 얼굴을 보고 결혼 예식에 참여하는 것과는 다르다. 결혼식에 직접 가지 않는 것은 피치 못할 사정이 있는 경우나 서로 관계가 가지 않아도 될 만한 관계일 때만 가능하다. 가까운 사람은 특별한 일이 없는 한 직접 가서 참석하는 것이 당연한 것이다. 그것이 예의요, 도리이고 관계를 형성하는 기본이다. 선교도 마찬가지다. 그저 돈만 주고 사람이 가지 않는 것은 선교의 중요성을 모르고 하는 방법이다. 선교가 중요할수록, 선교가 인격적인 관계에서 이루어지는 것일수록 선교사가 직접 가야 한다. 가서 사람들과 함께 생활하면서 복음을 전하는 것이 선교의 기본이요, 본질이다. 다양한 전략으로 선교하는 것은 좋지만 선교사를 직접 파송하는 본질적인 것까지 무시해서는 안 된다.
집에 앉아서 모든 것을 다 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은 무리다. 인터넷이 아무리 발달된다 하더라도 모두가 재택근무를 할 수는 없다. 함께 만나서 이야기 하고 직접 일을 같이 해야 더 효과적인 경우가 대부분이다. 선교에 있어서도 재택근무와 같이 특수한 경우도 있을 수 있지만 이것을 일반화 시킬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전략은 부분적인 것이고 한시적인 것이다.
요즈음 인터넷을 통해 물건을 판매한다. 그래서 매장이 차츰 사라질 것이라는 예견을 한다. 그러나 인터넷을 통한 매매가 활발해지긴 하겠지만 전문가들이 볼 때는 매장이 계속해서 필요하고 증가하리라 본다. 소비자들이 인터넷을 통해 물건을 사더라도 매장에 가서 직접 확인해보고 난 후 인터넷으로 산다고 하지 않는가. 이와 같이 시대가 아무리 변해도 선교사는 직접 가야 한다. 교회는 선교사를 파송해야 한다.
2. 선교는 삶이다.
선교는 현지인들과 함께 살면서 복음을 전하는 것이다. 단지 말씀만을 전하는 것이 아니라 삶을 통해서 그리스도의 사랑을 나타내는 것이다. 삶을 통한 선교는 장기적으로 거주하면서 하는 것이다. 장기적이란 적어도 4년의 한 텀을 말한다. 어떤 사역을 하더라도 장기 계획을 가지고 해야 효과를 거둘 수 있다. 단기적으로는 많은 효과를 거두기 어렵다. 그래서 선교는 장기 선교사를 중심으로 이루어져야 한다. 현지에 체류하면서 현지인들과 함께 사는 장기 선교사가 선교의 중심이 되어야 한다. 그리고 나서 다른 전략들을 구상하고 사용해야 한다. 장기 선교사를 무시하는 전략들은 위험하다. 장기 선교가 아니라도 선교 할 수 있다고 해서는 안 된다. 장기 선교사가 아닌 대안이 될 만한 전략이 있다고 말해서도 안 된다. 거듭 말하지만 전략은 전략이지 본질이 아니다. 장기 선교사가 거주하면서 하는 사역은 본질적인 부분이지 전략이 아니다.
오래전부터 비거주 선교 전략이 있어 왔다. 직접 거주하지 않고 주기적으로 혹은 필요할 때 방문하여 단기적으로 선교하는 것을 비거주 선교라고 한다. 분명히 비거주 선교가 필요한 시기가 있다. 비거주 선교가 필요한 곳도 있다. 비거주 선교를 통해 좋은 열매를 거둘 수도 있다. 그러나 비거주 선교가 장기 선교사를 대치하는 대안적인 전략은 아니다. 비거주 선교는 특수한 경우에 사용하는 하나의 전략일 뿐이다. 장기 선교사가 들어갈 수 없는 지역에서는 비거주로 사역하는 것은 바람직한 일이다. 그런 지역일지라도 장기 선교사가 들어가서 할 수 있다면 그것이 더 효과적이다.
단기 선교(6개월에서 3년 정도의 기간으로 선교지에 머물면서 사역을 하는 선교)도 마찬가지이다. 요즈음은 장기 선교사 지망생들이 점점 줄어들고 있기에 단기 선교를 대안으로 제시하기도 한다. 그러나 단기는 장기 선교사를 대치하는 대안이 아니다. 비거주 선교와 마찬가지 논리이다. 단기 선교를 할 때도 장기 선교사를 중심으로 해야 한다. 단기가 선교의 중심에 있는 것이 아니라 단기 선교사는 장기 선교사를 돕는 위치에서 사역하는 것일 뿐이다. 일주일이나 열흘 정도의 비전 트립(단기 봉사 혹은 단기 선교)도 마찬가지로 장기 선교사의 사역을 돕는 차원에서 이루어져야 한다. 비전 트립을 장기 선교사를 대치 할 수 있는 대안으로 생각해서는 안 된다.
요즈음 한국 교회에서 전략적인 몇 가지 방법들이 시도되고 있다. 그것은 비즈니스 선교, 실버 선교, 디아스포라 선교이다. 이 시대에 이런 선교 방법들은 좋은 전략들이다. 장기 선교사가 줄어드는 상황에서 실버 선교사를 보내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다. 경제적으로 여유가 있고 남은 생을 의미 있게 살기 위해 선교사로 나가는 것은 선교적인 측면에서 좋은 전략이다. 그리스도인이 비즈니스를 하기 위해 세계로 많은 진출을 한다. 그들이 단지 사업만 하는 것이 아니라 사업을 통해 선교를 하는 것도 효과적인 전략이다. 디아스포라 선교도 선교 현지에서 살고 있는 그리스도인들을 활용하여 선교를 한다면 좋은 전략이 될 것이다. 한국 교회는 지금 100만 명 자비량 선교사를 파송하자고 부르짖는다. 대단한 비전을 가진 것처럼 캠페인을 하고 있다. 100만 명을 파송한다는 것은 바로 평신도가 해외에 갈 때 선교의 사명을 불어 넣겠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들을 선교사로 임명하겠다는 것이다. 해외에만 나가면 누구나 선교사가 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런 여러 가지 전략들은 하나의 전략이지 장기 선교사를 대치할 수 있는 대안은 아니라는 사실이다. 아무리 시대가 요구 하더라도 선교는 장기 선교사를 중심으로 이루어져야 하고 장기 선교는 계속 되어져야 한다. 필자가 염려하는 것은 이런 전략들을 가지고 장기적으로 선교하는 장기 선교를 방해하거나 무시할 수 있다는 것이다. 아무리 좋은 것일지라도 너무 강조하다보면 다른 것을 무시하게 된다. 이런 전략들의 장점을 강조하다가 장기 선교사 중심이라는 선교의 본질을 변질시킬 위험이 있다는 점이다. 필자는 이런 모든 전략들이 장기 선교사를 돕고 함께 협력해서 사역하는 것에 사용되기를 바란다. 주된 것과 부수적인 것이 서로 뒤바뀌지 않았으면 한다. 그렇지 않으면 선교의 본질적인 부분까지 해치는 결과를 가져올 수 있다. 아무리 유행을 따라 옷을 잘 입어도 그 사람의 원래 모습은 변하는 것이 아니다. 이처럼 전략은 전략이지 본질을 대치하는 것이 아니다. 장기 선교사 중심으로 선교는 계속 되어져야 한다.
3. 선교는 집중성을 가지고 지속하는 것이다.
선교는 장기 선교사를 중심으로 해야 한다고 해서 장기 선교사만 되면 모든 것이 용납된다는 말은 아니다. 장기 선교사가 선교에 있어서 중심을 지켜주는 역할을 하는 것은 분명하지만 그것은 자기 사명을 잘 감당할 때 하는 이야기다. 장기 선교사가 자기 자리 없이 겉모양으로만 장기 선교를 하는 것은 아무 소용없다. 자기 자리를 찾아 하는 선교사란 자기가 해야 할 일을 집중적으로 지속성을 가지고 해 나가는 선교사를 말한다.
장기 선교사들 중에는 자기 자리를 지키지 않는 선교사들이 많이 있다. 이런 선교사는 자신의 안정된 사역이 없다. 대신에 선교 브로커처럼 여기 저기 간섭하고 돌아다닌다. 한국에서 단기 선교 팀이 많이 오지만 정작 그 선교사의 자기 사역은 변변치 않다. 이런 선교사들의 사역은 바로 사람들을 안내하고 사람들 사이에 간섭하는 것이 주된 것이다. 두 텀이 지났는데도 자기가 양육한 사람이 별로 없다. 이들에게 있어서의 사람 관계란 돈과 계약에 의해 이루어진다. 이런 선교사 일수록 바쁘고 선교에 대해 할 말도 많다. 이런 선교사들은 주변에 알고 지내는 사람들이 많다. 자신이 많은 사람들을 움직이는 것처럼 생각한다. 어느 장소에나 어느 모임이나 얼굴을 내미는 약방의 감초와 같은 선교사다.
자기 사역이 있다면 그 사역에 집중하기 위해서 다른 사람을 만날 시간이 없다. 자기 일 하기도 바쁜데 다른 사람 일까지 참견하는 사람은 뭔가 문제가 있는 사람이다. 선교사가 너무 유명하거나 너무 많은 사람을 많이 알고 지낸다면 자신의 사역을 잘 감당하지 못할 가능성이 많이 있다. 겉으로는 위대한 선교사처럼 보이지만 내면으로는 별 것 없고 한 가지라도 충실하게 하는 사역이 없을 가능성이 높다. 사역을 시작하기는 하지만 끝맺는 사역이 별로 없다. 우리는 이런 선교사를 경계해야 한다. 인간관계의 폭이 깊지 않으면서 넓은 선교사, 여러 가지 일 때문에 늘 분주한 선교사, 선교는 자기 혼자 다 하는 것처럼 선교에 대해 할 말이 많은 사람, 사역이 자꾸 바뀌는 선교사는 위험한 선교사다. 이런 선교사는 장기 선교사라고 할지라도 선교의 중심 역할을 하는 존재가 되어서는 안 된다.
선교사가 집중성과 지속성을 이루어 나가기 위해서는 장기적인 계획이 전제되어야 한다. 장기적인 계획 없이 어떤 일을 지속해 나갈 수 없다. 시스템을 구축하고 계획을 세워야 한다. 계획을 하되 장기적인 안목을 가지고 계획을 세워야 한다. 최소한 10년 앞은 예상하며 계획을 세우는 것이다. 계획 할 줄 모르는 선교사는 장기적으로 사역하기 어렵다. 이런 선교사는 모든 일이 주먹구구식이다. 하는 일이 수시로 바뀐다. 선교사역에 안정감이 없다. 지속성이 없다. 한 가지도 제대로 하는 것이 없다. 우리는 이런 선교사가 되지 말아야 한다. 장기적인 계획을 세울 줄 알아야 하고 미래를 예견하는 능력을 키우는 선교사가 되어야 한다.
한국 선교사들은 순발력은 뛰어나지만 시스템을 구축하고 계획을 세우는 것은 약하다. 일의 추진력은 있는데 집중하고 지속하는 것에는 약한 것이다. 그래서 한국 선교사는 집중성과 지속성을 키워나가도록 노력해야 한다. 선교사 각자는 먼저 자신에게 집중성과 지속성이 있는가를 질문해보아야 한다. 쉽기 포기하는지 아니면 끝까지 참고 나가는지를 살펴보아야 한다. 그래서 한 가지라도 해 보겠다는 결심 가운데 한 가지 일에 집중해서 지속한다면 그 결과로 당연히 좋은 열매를 맺을 수 있는 것이다. 집중성과 지속성 가운데서 장인(匠人)이 나온다. 집중성과 지속성 가운데서 전문성이 나온다. 선교사가 전문성이 떨어지면 선교를 지속할 수 없다. 이전 선교사들은 선교지에 가는 것만으로 현지인들에게 영향력을 끼칠 수 있는 위치에 있었지만 지금은 전문성이 없이는 선교지에서 살아남기조차도 힘들다. 전문성을 기르기 위해 한 가지 일이라도 지속하고 집중하는데 투자해야 한다. 한국 선교사들의 기본 장점인 순발력에 집중성과 지속성을 보충한다면 한국 선교사는 계속해서 세계 선교를 이끌어가는 주인공이 될 수 있을 것이다.
결론
선교는 다양하다. 넓은 시각으로 선교사와 선교를 이해하려는 자세가 요구된다. 또한 이제는 전략적인 선교를 해야 한다. 이전의 방법들이 새로운 시대에 맞지 않는다면 과감한 체질 개선이 필요하다. 새로운 시대에 요청되는 선교의 패러다임은 다양성과 전문성과 통합성이다. 다양성은 다변화되는 세상을 대처하는데 필요하다. 전문성은 선교를 계속할 수 있는 기본이다. 통합성은 과거와 미래 속에서 전체 종합할 수 있는 이 시대에 꼭 필요한 요소이다. 그러나 시대는 변해도 선교의 중심은 지켜야 한다. 이 시대에 한국인 장기 선교사들에게 요청되는 요인은 지속성과 집중성이다. 한국인에게 부족한 지속성과 집중성을 키워나갈 때 한국 선교는 튼튼한 기초위에 발전되어 나갈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