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교와 영성/일상의 영성

+ 하나님의 뜻에 대한 해석

후앙리 2021. 4. 5. 05:03

그리스도인들은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지에 대해서 궁금해 하고 알고 싶어한다. 하나님의 뜻이 분명하면 좋겠다는 생각을 한다. 어떤 일을 하는데 정말 이 일이 하나님의 뜻인가, 혹은 아닌가에 대한 확신이 잘 서지 않기에 힘들어 하기도 한다.

예를 들면, 선교사로 가는 것이 하나님의 뜻인가? 아니면 하나님의 뜻이 아닌가? 하는 것이다. 또 다른 예는 저 사람과 결혼하는 것이 하나님의 뜻인가? 아니면 하나님의 뜻이 아닌가? 에 대해 확실한 하나님의 뜻을 알았으면 좋겠다고 한다. 그것은 어떤 대학 혹은 어떤 직장을 갈 것인가? 여행을 할 것인가, 말것인가? 집을 살 것인가, 말 것인가? 심지어는 주식을 살 것인가, 말 것인가? 등등 일상의 대부분의 일에서 하나님의 뜻을 알면 살기에 더 편할 것으로 생각한다.

이에 대해 하나님의 뜻에 대한 몇 가지 바른 이해가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첫째, 하나님의 뜻의 대부분은 우리가 알고 있다는 사실이다. 하나님의 뜻을 알면서도 하나님의 뜻을 모른다고 하는 것은 바로 그 하나님의 뜻을 받아들일 때 힘듦을 감수하기 싫기 때문이다. 선교사로 나갈 것인가? 말 것인가에 대한 하나님의 뜻은 무엇인가? 물론 선교사로 나가지 않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 아닌 사람이 많지만 그런 물음을 하는 사람들에게는 이미 선교사로 나가는 하나님의 뜻이다. 그런데 하나님의 뜻을 확신하지 못하는 것은 선교사로 나갈 때 감수해야 하는 어려움 때문에 그것을 회피하고 싶어서 하나님의 뜻을 모른다고 핑계(?)를 대고 있는 것이다. 어쩌면 하나님의 뜻은 이미 선교사로 나가는 것으로 보여졌고 주어졌다. 하나님의 뜻을 몰라서가 아니라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지 않고자 하는 마음이 크기 때문이다.

둘째, 하나님의 세밀한 뜻을 안다고 해서 그것이 우리에게 유익하지 않기 때문에 하나님의 뜻을 모르고 사는 것이 좋다는 것이다. 대부분의 하나님의 뜻은 그 시간이 지나야 알 수 있다. 하나님의 뜻을 미리 아는 것은 사는데 별 도움이 안 된다. 만약 내일 죽는다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라면 오늘 어떻게 살 것인가? 내일 죽더라도 오늘 성실하게 하나님을 섬기며 기쁨으로 사는 것이 하나님의 온전한 뜻임에도 불구하고 내일 죽는다는 것을 미리 안다면 오늘 어떻게 살 것인가? 오늘 해야 할 하나님의 뜻을 이루지 못하고 살 것이다. 내일 죽는 것을 안다면 절망하거나 포기하거나 원망으로 오늘 하루를 보낼 것이다. 그리고 미리 안다면, 그래서 우리 인생의 모든 것을 알고 산다면 우리는 우리의 의지가 아니라 하나의 아바타에 불과하다. 즉 결정하고 판단할 자유의지가 사라지는 것이다. 인격적인 존재이기보다는 하나의 기계에 불과하다. 이성의 작동이 안 되는 로봇이 되는 것이다. 그러기에 내일 어떤 일을 해야 할 것인지에 대해 구체적으로 모르는 것이 큰 그림에서 하나님의 뜻이다.

세 번째, 우리가 일상의 삶에서 행해야 할 대부분의 하나님의 뜻은 이미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알려주셨다. 그것은 사랑하고 용서하며 성실하고 정직하게 사는 것이다. 그런 세밀한 것은 십계명에, 복음서에, 온 성경에 분명하게 드러나 있다. 성경이 곧 하나님의 뜻이다. 그러기에 그 하나님의 뜻을 행하고자 하는 의지가 중요하다. 때로 하나님의 뜻은 고난을 가져오는 것이기도 하다. 양보하라는 주님의 뜻을 실천하다 보면 손해 볼 일도 있다. 그럴 때 손해보는 것으로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는 것이다. 우리가 하나님의 뜻을 모른다고, 알려달라고 고민하는 것은 바로 하나님의 뜻을 실천하는데 있어서 고난과 손해와 아픔을 감수하기 싫어서가 대부분이다.

주님께서 하나님의 뜻이 이 땅에 이루어지기를 기도한다면 지금 내가 알고 있는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면 된다. 그러기에 하나님의 뜻을 알고자 하는 마음은 어쩌면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려는 믿음이 부족한 것은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