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의 말씀 2016년 1월 19일(화)
이로써 보배롭고 지극히 큰 약속을 우리에게 주사 이 약속으로 말미암아 너희가 정욕 때문에 세상에서 썩어질 것을 피하여 신성한 성품에 참여하는 자가 되게 하려 하셨느니라(벧후 1:4)
+ 말씀설명
베드로는 보배로운 믿음을 가진 자들에게 편지한다(1절). 예수 그리스도를 앎으로 은혜와 평강이 있기를 바란다(2절). 성도는 부르신 이, 곧 하나님을 앎으로 생명을 얻게 되었다(3절). 하나님의 자녀가 된 이 약속을 받은 성도는 정욕으로 썩어질 세상의 것들을 피해야 한다. 그리고 신성한 성품에 참여해야 한다. 하나님을 알고 믿는 것은 바로 하나님의 성품을 닮아가는 것이다. 그 성품들은 믿음, 덕, 지식, 절제, 인내, 경건, 형제우애, 사랑이다(5-6절). 이런 성품을 갖지 않는 자들은 맹인과 같다. 죄가 깨끗하게 된 것을 잊어버린 것과 같다(9절). 그럼으로 성도는 부르심과 택하심을 더욱 굳게 해야 하는데(10절), 그것이 바로 신의 성품에 참예하는 것이다.
+ 적용
베드로가 말한 신의 성품, 즉 믿음, 덕, 지식, 절제, 인내, 경건, 형제우애, 사랑의 덕목중에 내게 부족한 것은 무엇인가?
그 부족함을 채우기 위해 실천할 수 있는 것은 무엇인가?
+ 묵상
기독교는 믿음의 종교이다. 하나님을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는 것이다. 성경 전체를 보면 이 믿음이 일괄적인 핵심으로 말씀한다. 그러나 또 하나 그에 대한 합당한 행위, 선한 삶에 대해서도 성경은 또 다른 핵심으로 말씀을 한다. 한국 기독교는 어쩌면 믿음만을 강조하는 기독교는 아닌지 모르겠다. 종교 개혁은 가톨릭의 선한 행위 강조에 대한 반발로 일어나 개신교가 탄생되었다. 그래서인지 개신교는 행위보다 믿음을 강조하는 경향이 많다.
그래서 기독교는 믿음의 종교이고 다른 종교는 행위의 종교라고 구분을 짓는다. 그러나 문제는 믿음만이 강조되는 것이 문제다. 믿음을 강조하다보니 행위에 대한 강조가 약해졌다. 제가 이해하는 성경은 믿음과 행위에 대해 똑같이 강조를 한다는 사실이다. 그러기에 기독교는 믿음의 종교요, 다른 종교는 행위의 종교라는 말이 사실은 잘못된 표현이다. 기독교는 믿음과 행위의 종교라는 말이 더 정확하다고 생각한다. 오늘 말씀도 하나님을 아는 것(믿는 것)은 신의 성품에 참여하기 위한 것이라고 분명히 말한다. 하나님의 성품에 참여하는 선한 행위를 보이라는 것이다. 그것이 7절에서 말하는 결국은 사랑(의 행위)이다. 하나님의 사랑의 성품이 성도들을 통해 이 땅에 나타날 때 그것이 복음이 전해지는 것이고, 선교가 이루어지는 것이고, 세상이 하나님의 나라가 되는 것이고, 어렵고 소외된 죄인들을 살리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