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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교교육 연구원(IMER)

제 1-2강 선교에 어떻게 참여할 수 있는가? 본문

선교 교육, 훈련 자료/선교학교 1힉기

제 1-2강 선교에 어떻게 참여할 수 있는가?

후앙리 2020. 4. 7. 21:52

 

 

선교학교 훈련생 중에 다큐멘터리를 제작하여 TV 방송국에 제공하는 감독(PD)이 있었다. 교회에서는 집사로 섬기고 있고 선교에 대한 비전을 가지고 있었다. 어떤 모습으로든지 세계 선교에 동참하기를 원하고 있는 선교 헌신자였다. 자신이 할 수 있는 은사를 가지고 선교에 참여할 수 있는 구체적인 방법을 나누기 위해 필자와 얘기를 나누었다. 함께 이야기하면서 동영상 만드는 것을 통해서도 선교에 참여할 수 있다는 것이 의외로 많이 있음을 알게 되었다. 선교사들의 사역을 동영상으로 만들어 선교 홍보와 동원을 위해 활용하는 방법이 있고, 성경 이야기를 동영상으로 만들어 선교지의 교육 재료로 사용할 수 있는 방법도 있는 것이다. 선교사로 직접 선교지에 나가 현지인들에게 동영상을 만드는 기술을 가르쳐주는 것도 전문인 선교사로 할 수 있는 분야이다. 이 집사는 선교지에 장기 선교사로 나가기에는 현실적으로 어려움이 있었기에 한국에 있으면서 비거주 선교사로 임명을 받아 사역을 하고 싶어 했다. 비거주 선교사로 사역을 하는 것이 가능한 일이어서 비거주 선교사가 되기 위해 함께 길을 찾아보기도 하였다.

장년 약 150명 정도 출석하는 교회가 교회 부목사를 처음으로 P국의 선교사로 파송하였다. 교인들은 정들었던 목사를 파송하고 나서 매일 기도하고 헌금하면서 지원하고 있다. 이 교회는 선교사를 파송하고 처음 선교에 참여하면서 성도들의 선교에 대한 열정이 컸지만 선교를 하는 것이 처음이기에 어떻게 성도들이 구체적으로 선교에 참여해야 할지에 대해 방법을 잘 모르고 있는 상황이다. 이런 교회는 어떻게 선교에 참여할 수 있을까?

성도와 교회가 선교에 참여하는 방법에는 두 가지가 있다. 하나는 해외 선교사를 도움으로써 선교에 참여하는 간접적인 방법이고 또 다른 방법은 성도들이 직접 선교사가 되어 사역할 수 있는 방법이다. 모든 성도들은 두 가지 방법 중에 한 가지만이라도 참여해야 할 사명이 있다.

I. 교회의 간접적인 선교참여

해외 선교에 간접적으로 참여한다고 해서 직접적으로 선교사가 되는 것보다 그 사역이 열등하거나 부족한 것은 아니다. 다만 하나님이 주신 은사가 다를 뿐이다. 모두가 하나님의 일인 선교를 위해 참여하는 것이고 동일한 가치와 의미가 있으며, 방법만 다를 뿐이다. 간접적인 선교와 직접적인 선교는 상호 보완적이다. 하나님은 함께 협력하여 선교사역을 이루도록 각자 다른 은사와 재능을 주신다. 그런 의미에서서 간접적인 선교 참여도 직접적인 선교사역이라 할 수 있다. 선교참여 방법에 대해 이해를 돕기 위하여 두 부분으로 나누어서 설명을 하고자 한다.

1. 교회의 선교 구조 형성

1) 선교적 교회에 대한 인식과 훈련

교회가 선교에 참여하기 위해서 먼저 필요한 것은 교인들의 선교의식이다. 평신도들로부터 선교의식이 일어나서 선교적 교회가 될 수도 있지만 담임 목회자가 먼저 선교의식을 가질 때 교회 전체가 선교적 교회로서의 역할을 쉽고도 효과적으로 감당할 수 있다고 본다. 누구를 통해서든지 교회가 선교적 사명을 가진 공동체임을 깨달을 때 교회의 선교는 활성화될 수 있다. 그러면 교회가 어떻게 선교적 의식을 가질 수 있는가?

교회가 선교적 의식을 가질 수 있도록 하는 좋은 방법은 선교 교육이다. 선교 교육을 통해서 선교의 필요성에서부터 선교에 참여하는 방법과 선교사들의 구체적인 생활과 사역까지를 배울 수 있다. 선교교육은 주일학교 학생뿐 아니라 장년에 이르기까지 전교회적으로 이루어 질수 있다. 선교교육이 잘 이루어질 때 교회가 선교적 교회로서의 체질을 가질 수 있다.

. 장년을 위한 효과적인 선교교육 방법 중의 하나는 선교학교개설이다. 선교단체의 도움을 받을 수 있는 선교학교는 성도들에게 선교의식을 고취시킬 수 있는 좋은 선교교육의 도구이다. 선교학교는 교회의 형편과 사정에 따라 다양한 방법으로 실시할 수 있다. 4~10주 정도의 기간 동안 매주 한번 씩 강사들을 초청하여 선교강의를 듣는 선교 학교를 개최할 수 있다. 이때는 가능하면 전교인들이 참여할 수 있도록 홍보하여 격려하는 것이 필요하다. 매달 한 번씩 선교특강으로 수요예배나 주일 오후예배를 이용하여 일 년 동안 12번의 선교에 대한 교육을 실시할 수도 있다. 기존에 교회에서 하는 부흥집회 대신에 3-6회 정도의 선교집회로 구성하여 선교에 대한 강의를 들을 수도 있다. 많은 교회들이 단기 선교여행을 가기 전에 준비모임을 하면서 선교에 대한 강의를 들을 수 있다. 이것도 또 하나의 선교학교다. 이처럼 다양한 방법으로 교회의 형편에 맞는 맞춤형 선교학교를 통해서 선교적 교회로서의 기본적인 교육을 할 수 있다.

선교적 교회의 체질로 바꾸기 위해서는 모든 교회 사역의 최종 목적을 선교에 맞추는 것이 필요하다. 예를 들면, 교회에서 실시하는 제자훈련의 목적이 바로 선교를 하기 위한 것이 되도록 하는 것이다. 궁극적으로 무엇을 위해 제자훈련을 하는가 하는 것은 바로 선교를 위해서 하는 것이어야 한다.

필자는 선교사로 나가기 전에 오랫동안 교회에서 교육 전도사로 교회 학교 학생들을 지도한 경험이 있다. 제자훈련을 통해 선교사가 되기로 한 후에 필자의 교회학교 학생들에게 한 모든 가르침의 핵심은 선교였다. 거의 모든 설교시간에 선교에 대한 이야기를 하였고 교회학교 프로그램을 진행하는데 있어서 대부분 선교와 연결시키는 행사들을 하였다. 이런 여러 가지 방법들을 통해서 선교에 대한 교육을 하였다. 이처럼 선교교육은 단회적으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교회 교육과 교회 행사 프로그램 안에서 계속해서 다양하게 이루어져야 할 일이다.

선교 교육을 통해 교회 교인들은 선교에 대한 인식을 갖는 것만이 아니라 모든 것이 선교와 연결되도록 하는 것이 필요하다. 교인들이 선교에 참여하는 것에 대해 의미를 갖고 자랑스럽게 생각할 수 있도록 격려하는 것이다. 교회의 선교 참여가 의무나 책임이기 전에 교회의 자랑이요, 교인들의 기쁨으로 자부심을 갖게 하는 것이다. 전장에서 언급한 것처럼 교회에서 선교사를 파송한다면 교회 행사 중에 가장 큰 행사가 되게 하는 것도 선교를 일깨우는 좋은 방법이다. 보통 교회에서는 직분자 안수식과 교회 창립일 행사를 할 때 전교인이 적극적으로 참여한다. 안수식이 있을 때는 믿지 않는 가족들까지 초청한다. 이처럼 선교사 파송도 교회의 핵심적인 행사로 진행할 때 교회가 선교적인 교회로 체질화되는 과정이 될 수 있다.

무엇보다도 성도들로 하여금 선교에 대한 구체적인 경험을 하게 하는 것이 선교교육의 효과를 갖게 한다. 다음과 같은 일들을 통해 교인들이 선교를 경험할 수 있다.

(1) 선교 도서를 통해 선교를 경험 한다.

(2) 선교 저금통을 만들어 저축을 한다.

(3) 선교 신문이나 포스터를 만든다.

(4) 선교사 멤버케어에 참여 한다.

(5) 선교헌금을 한다.

(6) 선교를 위해 기도 한다.

(7) 선교사에게 선교편지를 쓰고 선물을 보낸다.

(8) 선교지를 직접 방문하거나 단기 선교에 참여 한다.

안양에 있는 한 교회는 장년 성도들이 60여명 출석하는 작은 교회다. 이 교회에서 선교사 한 가정을 파송하고 세 가정을 후원한다. 이 교회는 교인들에게 계속해서 선교교육을 시킬 뿐 아니라 선교에 대한 비전을 심어준다. 이 교회의 비전은 200명의 선교사를 파송하는 것이다. 이 목표를 이루기 위해 기도하면서 준비한다. 비록 교회 출석 숫자는 많지 않지만 선교 비전을 따라 교회가 나아간다. 비전을 성취하시는 분은 하나님이시다. 다만 비전을 가진 사람과 교회를 통해 하나님은 비전을 성취하신다.

필자의 파송 교회의 유치부에서는 매년 선교 저금통을 만들어서 유치부 어린이들에게 저금통에 동전을 모으도록 한다. 어린이들은 일 년 동안 저금통에 동전을 모아 교회에 가지고 온다. 그 동전을 모두 모아 필자에게 전달해준다. 필자는 일 년에 한 차례씩 유치부에 가서 선교에 대한 이야기를 한다. 어린 아이들의 마음과 손으로 정성껏 모아진 헌금이 어떻게 선교에 쓰이는 지에 대해 설명을 해 준다. 필자는 그 동전을 은행에서 바꾸어 필요한 선교지에 송금을 한다. 필자는 유치부 뿐 만이 아니라 매년 유초등부와 중고등부에서 선교에 대한 교육을 하고 있다. 주일학교 학생들에게 어렸을 때부터 심어주는 선교에 대한 교육은 어쩌면 그들 인생에서 가장 소중한 것을 배울 수 있는 시간이라 생각한다.

2) 선교 정책과 구조 실행

지역교회가 선교구조를 형성하기 위해서는 선교 교육과 더불어 선교 정책을 만들고 실행하기 위한 구체적인 계획이 필요하다. 선교정책을 세우는 것은 교회의 선교철학과 방향이 우선되어야 한다. 교회가 선교에 참여할 수 있는 방법은 다양하다. 한 교회가 선교에 대한 모든 일을 다 할 수는 없다. 그러기에 교회 형편에 맞는 정책들을 펼치기 위한 철학과 방향을 먼저 세워야 한다. 선교사를 파송하여 사역에 집중하는 것을 선교 방향으로 삼을 수 있다. 선교사를 멤버케어 하는 일에 집중하는 선교사역 철학을 가질 수도 있다. 300여명의 장년이 출석하는 한 교회는 선교사들이 위기상황에 처했을 때 위기상황에 필요한 기도와 재정적인 도움을 주는 것을 교회의 핵심적인 선교사역으로 삼았다. 선교사 파송이나 사역보다는 선교사들이 선교지에서 사역을 하다가 위기에 처했을 때 잘 이겨나갈 수 있도록 도와주는 일에 집중하는 것이다. 군인들이 전쟁터에서 부상을 당했을 때 의사나 간호사는 부상군인을 치료함으로 전쟁에 참여하는 것과 같이 교회의 선교참여 방향은 의사나 간호사의 역할을 하는 것에 집중하는 것이다.

선교 사역 중에는 주로 미전도 족속을 위해 사역을 할 수도 있고, 국내 외국인들을 위한 사역에 교인들이 집중하도록 할 수도 있다. 교인들이 직접 선교현장에 가서 사역할 수 있는 기회를 주기 위해 매년 동일한 곳으로 단기 선교여행을 가는 것에 집중할 수도 있다. 서울에 있는 한 교회는 매년 여섯 차례의 단기 선교 여행을 간다. 교인 출석인원이 300여명 되는 교회인데, 초등부 6학년, 중등부 3학년, 고등부 3학년, 대학청년부, 여전도회, 남전도회 이렇게 여섯 그룹이 단기 선교 여행을 간다. 각 그룹마다 매년 같은 곳으로 가는데, 남전도회의 경우에는 중국 조선족 교회로 가서 23일 동안 성경공부를 인도한다. 매년 같은 지역으로 가기에 조선족 교회와 좋은 관계를 맺을 수 있다. 남전도회 회원들은 이를 준비하기 위해서 일 년 동안 성경을 연구하고 공부하면서 준비한다. 남 전도회원들은 이 사역에 모든 역량을 다 쏟음으로 각자의 신앙에도 도움이 될 뿐 아니라 남전도회 자체도 더욱 활성화된다. 다른 부서들도 동일한 방법으로 단기 선교에 참여하는데 이 교회의 선교 사역의 핵심과 방향은 단기 선교에 있다. 이처럼 한 교회가 선교의 모든 영역에서 사역을 하기는 어렵기에 선택과 집중을 할 수 있는 선교참여에 대한 철학이 필요하다.

선교철학과 방향이 정해지면 선교위원회를 조직하고 그 선교위원회를 통해 선교사역에 구체적인 참여가 이루어질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선교위원회에서는 교인들에게 선교에 대한 꾸준한 홍보를 해야 한다. 선교게시판을 운영하고, 선교사 기도편지를 제작하여 배포하며, 주보에 선교사 소식을 실으며, 선교회보를 작성하는 일을 할 수 있다. 선교 기도회를 운영하기도 하고 선교 교육에 관련된 모든 일을 진행한다. 선교사들을 돌보는 일에도 구체적인 계획을 세워 진행한다. 선교위원회 규정(매뉴얼)을 만들어 교회의 선교에 대한 일들을 일괄성 있게 진행할 수 있다. 교회의 선교위위원회 규정의 샘플은 선교단체나 주위의 교회를 통해 구할 수 있다. 선교위원회가 활성화되는 것만으로도 교회의 선교참여는 많은 성과를 거둘 수 있다. 담임 목사나 일부 선교에 헌신된 사람들에 의해 운영되고 참여하는 선교가 아니라 전 교인이 함께 하는 선교를 하기 위해서는 선교위원회의 역할이 중요하다.

2. 선교를 위한 기도

선교는 성령께서 그의 자녀들에게 위임한 것이다. 선교의 주인은 성령이시고 성령에 순종하는 자들이 선교에 쓰임을 받는다. 선교 현장에서 몸으로 뛰는 주체는 선교사이지만 그 선교사를 보내고 가르치고 도우시고 열매 맺는 분은 성령님이시다. 성령님이 아니시면 아무도 선교할 수 없다. 성령님의 능력이 아니시면 선교의 마음을 가질 수 없다. 성령님은 세상이 볼 수 없는 분이시고 그의 증거가 가시화되는 것은 제자들의 증거를 통한 방법뿐이다. 그러므로 성령님이 함께 하심을 경험하는 교회와 성도는 자연스럽게 선교에 참여할 수밖에 없다. 따라서 선교에 참여하지 않는 교회는 성령님의 역사를 온전히 경험하기 어렵다고 볼 수 있다. 교회에서 성령론에 대한 이슈는 주로 방언이나 병 고침의 은사에 관한 것이다. 그 능력과 그의 기적이 오늘날에도 일어나느냐에 대한 것이다. 그러나 성령론에 대한 이슈는 선교에서 찾을 수 있다. 선교에 참여하고 쓰임 받는 교회는 성령이 함께 하는 교회이다. 성령의 역사는 선교 사역에서 나타난다.

그러면 어떻게 성령이 선교에 있어서 주인과 주관자가 되도록 할 수 있는가? 그것은 기도이다. 선교는 성령의 역사이고 기도를 통해 성령님이 역사하시도록 하기에 선교의 중심에는 기도가 있다. 기도는 단순히 선교를 지원하기 위한 도구가 아니라 선교사역 자체라고 할 수 있다. 왜냐하면 기도 없이는 선교가 온전히 이루어지기 어렵기 때문이다. 선교의 열매 사람이 맺는 것이 아니라 성령께서 맺으시는 것이기에 성령께서 하실 수 있도록 하는 것이 기도다. 선교에서 인간이 해야 할 가장 중요한 일은 기도하는 것이다. 기도는 단순한 캠페인이 아니라 사역 그 자체다. 기도 하지 않으면 선교사가 힘들 것이라는 차원이 아니라 선교사의 사역과 생명과 안전이 기도에 달려 있다. 기도 하지 않으면 선교사역이 어려워질 것이라는 차원이 아니라 기도 없이는 사역 자체가 불가능한 것이다.

지금부터 약 1세기 전에 영국에서 한 선교사가 아프리카의 선교지로 나가게 되었다. 이 선교사가 아프리카로 가게 되었을 때 그는 성도들에게 우리를 위해 꼭 기도해주십시오라고 부탁을 하였다. 그러자 성도들은 아 그럼요, 당연히 기도해야지요. 걱정하지 마세요. 우리가 매일 매일 기도할께요라고 성도들은 선교사를 안심을 시키고, 응원하고 위로하고 격려하면서 파송하였다. 선교사는 기도해주겠다는 성도들의 얘기를 듣고 기쁜 마음으로 선교지로 출발 하였다. 선교지에 도착하여 꿈에 그리던 사역을 하게 되었는데, 안타깝게도 어려운 일이 일어났다. 선교지에 도착한지 1년 만에 자녀 1명이 아프리카의 풍토병으로 세상을 떠나게 되었다. 자식을 잃은 선교사의 마음이 어떠했겠는가? 너무나 아픈 마음으로 견디는 중, 2년 째 되는 해에 사랑하는 아내도 똑 같은 병으로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게 되었다. 이 선교사는 너무나 실망한 마음으로 고국인 영국으로 돌아오게 되었다. 그 때 당시에 통신이나 교통수단이 열악하여 파송 교회에 아무런 연락을 하지 못하고 고국으로 돌아왔다. 선교에 실패를 하고 처절한 마음으로 영국으로 돌아오면서 선교사는 이런 생각을 하였다. “내 가족이 왜 다 목숨을 잃었는가? 분명히 성도들이 기도한다고 약속 했는데, 기도했다면 내가 선교에 실패하지 않았을 텐데, 나는 기도의 능력을 믿고 하나님의 역사하심을 믿고 갔는데 왜 내가 실패했을까라는 의문을 가졌다. 이 선교사는 실망과 좌절감으로 어느 날 밤 파송교회에 갔다. 마침 성도들은 기도회로 모여 기도하고 있는 중이었다. 기도 모임에 선교사는 아무도 모르게 뒤에 가서 참석을 하였다. 성도들은 열심히 기도하고 있었다. 선교사는 이렇게 기도하는데 내가 왜 실패했을까?” 라는 생각을 하였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기도회가 끝날 때까지 성도들은 성도들 자신들만을 위해 기도할 뿐 선교사를 위해서는 기도하지 않았다. 그 때야 이 선교사는 자기가 실패한 이유를 알게 되었다. “선교사를 위해 기도하겠다고 했던 성도들이 자신들의 문제만을 위해 기도하는 것이 바로 내가 실패한 이유였다라고 생각하게 되었다. 이 선교사는 안타까움으로 한 없이 울었다. 선교사는 성도들이 기도한다고 해 놓고 기도하지 않았기에 자신이 실패했다고 믿었던 것이다.

우리는 기도의 응답에 대해 정확한 것을 다 알 수는 없다. 진정한 기도의 응답이 무엇이며, 기도의 책임이 정확히 산술적으로 나오는 것은 아니지만 우리는 기도의 응답을 믿고 사는 신앙인들이다. 기도하지 않아서 선교사가 실패했다고 단정 지을 수는 없다고 하더라도 교회가 기도하지 않는 것은 선교사가 실패하는 결과를 가져오는 이유임에 분명하다. 이것이 기도의 원리이기 때문이다. 이 선교사의 이야기는 기도에 대한 응답을 믿고 사는 그리스도인들에게 선교사를 위한 기도가 얼마나 중요한 것인가를 가르쳐주고 있는 것이다. 기도는 선교의 성공과 실패를 좌우하는 가장 중요한 요소 중의 하나이다. 기도는 선교 뿐 아니라 우리 인생 삶에서도 마찬가지로 적용된다. 기도의 인생은 성공한 삶이고 기도하지 않는 인생은 실패하는 삶이다. 이것은 세상적인 기준이 아니고 하나님이 보시는 기준이다. 하나님이 보실 때 정말 성공한 인생은 기도하는 사람이다. 비록 세상의 기준으로는 실패했을지라도 기도하는 사람이었다면 기도 자체만으로도 성공한 인생을 산 사람이라는 것이다.

필자가 신학생이었을 때 필자가 잘 알고 있는 독신 여성이 선교사로 나가고자 하였다. 교회로부터 선교사 파송을 받고자 하였는데, 그 때 당시에 여성 싱글 선교사를 파송할 교회가 없었다. 교회에 선교사를 파송해달라고 요청을 하면 어떻게 젊은 자매를 믿고 선교사로 파송할 수 있겠는가? 최종적인 책임을 교회가 지는 것은 무리다라는 답변만 듣게 되었다. 결국 이 여성 선교사는 파송교회를 찾을 수가 없었다. 교회를 찾을 수 없었기에 필자는 이 선교사님을 위해 후원회를 만들었다. 신학생인 필자가 후원회를 만들어서 파송하기로 하고 후원자들을 모집하였다. 후원자를 모집하면서 후원 신청 카드를 만들었다. 그 후원 카드에는 기도 후원을 하겠습니다. 재정 후원 하겠습니다. 둘 다 하겠습니다.”라는 세 항목을 넣어 자신이 할 수 있는 곳에 표시를 하게 하였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재정에는 체크를 하지 않고 기도하는 것에는 체크를 하였다. 그런데 교회의 한 자매는 재정에는 후원하겠다고 표시를 하고 기도후원에는 하지 않았다. 필자가 잘 아는 자매였기에 기도는 못하고 재정은 할 수 있다고 표시한 이유를 물었다. 이 자매는 자신에게는 재정 후원보다 기도하는 것이 더 어렵다고 하였다. 어쩌면 이 고백이 솔직하고 정직한 고백이다. 사람들은 재정보다 기도 후원하는 것이 더 쉽다고 생각하지만 기도를 하는 것이 재정 후원하는 것보다 실제로는 더 어렵다. 기도하는 것이 재정후원보다 더 어려울 뿐 아니라 선교사에게 있어서도 재정후원보다 기도가 더 필요하다.

기도는 개인 기도뿐 만 아니라 교회가 선교를 위해 함께 모여 합심으로 기도하는 것이 필요하다. 서울의 한 교회는 매주 토요일마다 200여명의 성도들이 모여 1-2시간씩 세계 선교만을 위해 기도한다. 어떤 교회는 매달 한 번씩 선교사를 위해 기도하기도 한다. 이를 위해 교회는 선교 기도제목을 주보에 싣기도 하며, 선교사 기도제목을 모아 따로 기도지를 만들기도 한다. 기도할 때는 파송과 협력하는 선교사 뿐 아니라 복음이 필요한 곳을 위해, 한국교회의 선교를 위해서도 기도할 수 있다. 선교사별, 나라별로 집중적으로 기도하고 기도 정보지를 사용해서 선교를 위해 필요한 모든 것을 기도 할 수 있다. 무엇보다도 선교를 위해 기도하는 것은 단회적이 아니고 지속적으로 기도하는 것이 중요하다.

성도들은 모두가 다 재정적인 후원을 할 수는 없지만 누구나 기도는 할 수 있다. 선교 참여를 위해 다른 것은 하지 못해도 모두가 기도는 할 수 있는데, 실제로는 그 기도가 가장 중요한 선교의 방법이며, 참여라는 사실이다.

3. 선교사 파송

교회의 선교 핵심은 선교사 파송이라고 할 수 있다. 선교사를 파송하지 않으면 선교에 직접적으로 참여할 방법이 많지 않다. 선교사 파송을 위해서는 선교사 후보생을 배출해야 하는데 그 일이 바로 지역교회가 해야 할 일이다. 교회는 선교사 파송을 위하여 선교 헌신자와 후보자의 양육과 선발을 하며 후보자들이 선교훈련을 받을 수 있도록 지원을 할 수 있다. 선교 후보생에게는 개인적인 헌신과 자원하는 마음, 교회적인 평가와 인정이 필요하다. 선교사 후보생들이 많이 일어날 수 있도록 전 교회적으로 격려하는 분위기가 되어야 한다. 교회 청년들, 집사들, 장로들이 직접 선교사가 될 수 있는 분위기를 만들어 가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선교사 파송은 하나님께서 교회에 주신 명령을 이행하는 것이다. 선교사 파송은 한 개인이 선교 비전에 따라 선교사로 나가고 교회는 그 사람을 후원하는 차원을 넘어서는 일이다. 선교사 파송은 선교사로 나가는 한 개인의 일이 아니라 교회 전체의 일이다. 선교사 파송은 한 국가가 다른 나라에 대사를 파견하는 것과 같다. 대사 파견이 대사 한 개인의 일이 아닌 것처럼, 선교사 파송도 한 개인의 선교비전을 충족하는 일이 아니라 교회의 일을 대신하여 교회의 위임을 받아 교회의 대표로 파송 받는 것이다. 그러기에 선교사 파송은 한 개인의 일이 아니라 교회 전체의 일이며, 선교적 교회로서 해야 하는 가장 중요한 일이다.

그러기에 선교사 파송은 단지 교회의 짐이 아니다. 어떤 교회는 선교사를 파송하는 것에 대해 교회의 책임과 의무로만 생각한다. 교회에 직접적인 유익이 없는 일로도 생각한다. 그러나 선교사 파송은 교회가 하나님으로부터 위임받은 땅 끝까지 복음을 전하라는 귀한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일이다.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것은 교회의 의무와 책임이기 전에 교회에 주신 하나님의 복이며, 특권이다. 하나님의 선교에 동참할 수 있는 책임을 주시는 것은 교회를 사랑하시는 하나님의 은혜다. 선교사 파송이 교회에 주어진 특권이기에 교회와 선교사는 축복의 통로가 되는 것이다. 아브라함을 부르신 것은 그에게 복의 통로가 되게 하신 것처럼 교회가 선교에로 부르신 것은 그 교회가 하나님의 복을 나누어주는 통로가 되는 것이다. 그러기에 교회는 선교사 파송을 짐이나 책임으로 생각하기 전에 교회에 주신 복과 특권으로 생각하여 기쁨으로 이 일에 참여해야 한다. 그것이 하나님이 주신 가장 귀한 특권을 누리는 것이다.

선교사를 파송하는 것을 교회의 특권으로 생각한다면 교회는 선교사를 파송하고 나서 한 국가의 대사처럼 지원을 해야 한다. 선교사의 필요를 채워주고 선교사와 연합하고 고난과 기쁨도 함께 나누어야 하는 것이다. 교회라는 몸의 일부분인 파송 선교사를 자신의 자녀처럼, 자신의 일처럼 지원하고 격려해야 한다. 어떤 교회는 이런 의식이 없기에 선교사 파송을 쉽게 중단하고 선교사를 교회의 직원처럼 다루기도 한다.

필자가 아는 한 선교사는 미국에서 공부하고 선교사로 파송 받게 되어 한 미국인 교회에서 협력으로 후원을 받게 되었다. 미국인 교회에 가서 선교보고를 하고 교제할 때, 그 교회에서 협력 선교사로 후원을 하겠다고 결정을 하였다. 그 결정하는 순간에 교회의 지도자가 선교사에게 질문을 하였다. “우리 교회가 언제까지 선교사님을 지원하기 원하십니까?” 이 선교사는 감사한 마음으로 넉넉잡고 사역하는 동안만이라도 후원을 해주시면 좋겠다고 대답하였다. 이에 그 교회지도자는 선교사님이 은퇴하시고 하나님이 부르시는 그날 까지 후원 할 것을 약정 합니다.” 라고 하였다. 이 선교사는 그 말 한마디가 무엇보다도 큰 위로와 격려가 되었다. 평생을 후원하겠다는 이 정신이 교회가 선교사를 파송하는 기본자세가 되어야 한다. 국가가 대사를 다른 나라에 파송하면서 대사의 모든 생활을 국가가 책임을 지는 것처럼 선교사도 하나님이 교회에 주신 대 위임령을 감당하는 대사이기에 교회는 선교사에 대한 모든 책임을 지고 선교사와 함께 연합하고 한 지체로 여겨 지원해야 할 것이다.

4. 재정후원(헌금)

많은 성도들은 선교사가 선교단체에서 월급을 받고 생활을 한다는 오해를 하기도 한다. 그러나 선교사는 월급을 받는 것이 아니라 자원하는 교회와 성도들의 후원금으로 생활하고 사역을 한다. 선교사의 후원은 교회와 성도들의 자원함으로 이루어지지만 동시에 교회가 감당해야 할 책임이다. 자신의 인생을 헌신해서 선교하는 선교사가 재정까지 책임을 지는 것은 하나님이 원하시는 뜻이 아니다(물론 자비량 선교는 다른 차원에서 다루어야 한다. 자비량 선교를 부정하는 것이 아니라 교회의 책임을 강조하는 표현이다). 교회가 재정 후원에 대한 책임을 감당할 뿐 아니라 재정적인 원리를 이해할 필요가 있다.

교회가 선교사를 재정적으로 후원하는 것은 선교사의 생활에 직접적으로 관계되는 지원을 하는 것이다. 군인이 무기 없이 싸울 수 없는 것처럼 양식(재정) 없이 영적인 싸움(선교사역)을 할 수 없다. 하나님은 재정이 없어서 선교 못하시는 것은 아니지만 하나님은 후원자들의 자발적인 후원인 재정을 통해 선교하신다. 선교사에게 재정이 필요하다면 하나님은 누군가를 통해 분명히 재정을 공급해주신다. 하나님은 직접 재정 공급을 하실 수도 있지만 하나님의 자녀들을 통해서 선교사들에게 공급하시기를 원하신다. 물질을 헌금하는 사람들은 하나님께 특별한 선택을 받아서 하나님의 선교에 동참하는 특권을 받은 것이다. 재정을 후원할 수 있다는 것은 그 사람에게는 무엇보다 큰 축복이다. 그러므로 선교사 후원에 동참하는 것은 하나님이 주신 복을 누리는 것이다. 선교후원은 손해가 아니라 축복을 누리는 통로이다. 하나님이 갚아주시고 안 갚아주시는 것은 나중의 일이다. 드리는 그 순간이 가장 복된 순간이고 드리는 사람은 하나님이 주시는 복을 경험하는 것이다.

사도 바울은 예수님이 하신 말씀을 직접 인용하여 말씀하기를 주는 것이 받는 것보다 복이 있다(20:35).”라고 하였다. 사람들은 많이 가진 사람이 복이 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예수님의 기준에서는 많이 주는 사람이 복이 있다. 교회에서 헌금 얘기하면 기분 나빠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러나 헌금과 선교사 후원하라는 말은 하나님의 복을 누리라는 의미다. 하나님은 돈이 없어서 헌금하고 후원하라는 것이 아니라 헌금에 동참함으로 하나님 나라를 위해 하나님께 쓰임 받는 복을 누리라는 것이다. 하나님은 은도 내 것이요 금도 내 것이니라”(2:8)고 하셨다. 하나님은 모든 것을 가지고 계시지만 특별히 하나님 나라를 위해 헌금하고 후원하는 사람들을 선택하셔서 그들을 복주시기 위해 후원하는 일에 참여시키시는 것이다.

선교를 위해 헌금하는 것은 씨 뿌리는 것과 같다. 옛날에 보리 고개가 있었던 시절에 온 가족이 굶어도 종자 씨는 먹지 않았다. 씨를 먹어버리면 모두가 죽을 수도 있는 어려움에 처할 수 있기 때문이다. 헌금과 후원이 종자 씨를 뿌리는 것과 같다는 의미는 종자 씨를 남겨두듯 종자 씨만큼 생명과 연관되어 있는 것이 바로 우리가 드리는 선교헌금이라는 의미다. 하나님은 하나님의 일에 동참하는 통로로 후원하는 그리스도인들을 사용하시는 것이기에 선교헌금을 하는 것은 그 어떤 것보다 영광스러운 일이다. 선교헌금의 씨를 뿌린다는 것은 내가 그 열매를 먹는 것이 아니라 다른 사람이 열매를 맺는다는 의미이다. 하나님 나라를 위해 후원자들이 씨를 뿌리고 선교사들과 함께 열매를 거두는 것이다.

후원자가 선교헌금을 하는 것은 하나님이 돈이 필요해서가 아니다. 후원하는 그 사람의 헌신과 하나님에 대한 사랑이 필요해서 후원을 하라는 것이다. 없는 중에서 바치는 삶, 주는 삶이 아름답기에 후원하라고 가르치는 것이다. 예수님이 과부의 두 렙돈을 칭찬하신 것처럼 주님은 양()이 아니라 마음을 받으시는 것이다.

가난한 한 사람이 있었다. 이 사람은 경제적인 여유가 조금만 있으면, 다른 사람에게 나누어주는 일을 하고 싶었다. 그런데 하는 사업이 잘 안 되어 늘 빚을 지는 삶을 살았기에 다른 사람을 도와주는 것은 생각조차 할 수 없었다. 어느 날, 이 사람은 특별한 생각을 하게 되었다. “내가 가난하게 사는 것은 정말 부끄럽고 비참한 일이다. 그런데 정말 가난한 사람은 돈이 없는 사람이 아니라 다른 사람을 도와주지 않는 사람이다. 그래서 정말 가난한 사람은 바로 나 자신이다.” 라는 것을 생각하게 되었다. 이 사람은 그 후로 재정적으로 어렵더라도 자신보다 더 어려운 사람을 도우면서 살았다. 사람은 자신이 재정적인 어려움에 처하면 다른 사람을 돌아볼 여유가 없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그러나 가난해서 다른 사람을 도와주지 못한다면 그것이 더 가난한 것이라는 사실이다. 진정한 가난은 돈이 없어서가 아니고 가난하다고 생각해서 다른 사람을 돕지 못하는 것이다. 가난한데 다른 사람을 돕지 못하면 두 배로 가난한 사람이 되는 것이다. 선교사 후원과 헌금하는 것도 마찬가지로 가난하고 어렵다고 하지 않으면 두 배로 가난하고 불쌍한 사람이 되는 것이다. 그렇지만 가난해도 부자로 살 수 있는 방법은 선교를 위해 후원하고 헌금하는 것이다. 부자가 되는 두 가지 방법이 있다. 그것은 돈을 많이 벌든지 아니면 적은 가운데서 헌금하든지 하는 것이다. 헌금하거나 다른 사람에게 나누어주는 일을 한다면 돈을 많이 벌지 못해도 부자가 되는 것이다.

하나님이 그의 자녀 모두를 선교사로 내 보내지 않으시는 것은 누군가 재정을 후원 하도록 하기 위해서다. 우리는 하나님이 나를 선교사로 부르시지 않으셨다면 재정적으로 선교에 동참하도록 하시기 때문이라고 생각해야 한다. 어떤 선교사는 이런 말을 하였다. “당신이 재정으로 후원하기 싫으면 선교사로 나가면 된다. 재정 후원을 적극적으로 하시든지 아니면 선교사로 나가시든지 둘 중 하나만 하면 된다.” 농담 같은 말이지만 이 말은 맞는 말이다. 하나님은 그의 자녀들이 어떤 모양으로든지 선교에 동참하기를 원하시기 때문이다. 선교사로 나가지 않는다면 선교사를 후원하도록 하시는 하나님의 뜻이 있는 것이다.

이런 관점에서 교회는 믿음으로 선교사 재정 지원을 약정하고 예산을 책정하여 선교헌금을 해야 한다. 교회가 선교사 후원을 잘하기 위해서는 전문 선교 기관의 도움과 자문을 구할 필요가 있다. 대구의 한 교회는 한 선교사에게 과다한 선교비를 지출함으로 인해서 나중에야 그것을 깨닫고 선교부에 재정 사용에 대한 정책을 자문했다. 자문을 듣고 보니 한 선교사에게 너무 과다한 선교비를 지출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 후에 교회가 선교비를 적절하게 조정하여 이 선교사에게 가는 선교비가 줄게 되었다. 이 선교사는 기분이 나빴지만 이는 처음부터 잘못된 재정 정책을 늦게나마 바로 잡은 것이지 선교비가 줄어든 것이 아니었다. 선교사를 후원할 때, 처음부터 선교사를 위해 지출을 잘 하지 않으면 나중에 교회와 선교사가 모두 상처를 받게 된다. 그럼으로 선교사 재정 지원을 적절하게 할 수 있도록 선교단체의 도움을 받는 것이 필요하다. 선교사의 사역비, 생활비, 자녀 교육비, 여행비, 보험료, 퇴직 연금비등의 규약들이 선교단체마다 세워져 있기에 자세한 것은 공신력 있는 선교부의 도움을 구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선교비의 관리 주체는 선교사가 아니라 교회와 선교부가 되어야 한다. 교회와 선교부는 선교사가 재정을 바로 사용할 수 있도록 재정 정책을 마련하고 관리를 해야 할 책임이 있다. 선교사의 재산은 선교사 개인의 것이 아니라 선교부(혹은 교회)에 속해있다. 이렇게 선교부와 교회가 선교사 재정 관리의 주체가 되어야 하는 것은 선교사도 인간이기에 돈을 잘못 사용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럼으로 교회는 선교사를 후원할 책임뿐 아니라 재정 사용에 대한 감독의 책임도 있다. 선교사가 프로젝트성 사역을 할 경우 교회와 선교단체가 책임을 지고 철저하게 검토하고 관리를 해야 한다. 선교사가 무리하게 선교 프로젝트를 위해 재정을 요구할 때는 타당성의 여부를 확실하게 확인하고 지원을 해야 한다. 이 말은 선교사에게 선교사역을 위임하지 말라는 것이 아니다. 교회가 선교사를 종처럼 다루라는 것도 아니다. 선교사가 때로는 잘못된 재정 사용을 할 경우를 생각해서 교회가 책임감을 가지고 도와야 한다는 뜻이다. 선교사를 믿기에 오히려 선교 재정을 투명하게 하고 사역을 바르게 하도록 관리해야 한다.

교회 내에서도 선교 재정에 대해서는 항상 공정성과 투명성이 있어야 한다. 적잖은 교회에서 선교 재정의 불투명성 때문에 어려움을 당하기도 한다. 돈은 죄성이 있는 인간을 항상 유혹한다. 교회가 재정에 대한 관리를 투명하고 정직하게 하지 않을 경우 선교 때문에 교회가 시험에 들 수 있다. 선교는 믿음으로 하는 일이지만 재정 사용은 선교사나 교회 모두가 책임을 가지고 관리해야 하는 일이다.

선교비는 선교사뿐 만 아니라 선교에 관련된 모든 기관에도 필요하다. 일반적으로 선교비를 해외에 있는 선교사들을 지원하는 것으로 한계를 짓는 경우가 많이 있다. 그러나 선교비는 선교사를 관리하는 선교단체의 행정비까지 포함하는 것이다. 선교단체도 후원금으로 운영된다. 선교단체의 도움 없이 선교사가 사역하기란 불가능하다. 선교 단체에서는 선교사를 지원하기 위한 많은 인력들이 사역하고 있다. 때로는 선교 단체 본부에서 일하는 한 사람의 본부 선교사가 현지에서 일하는 많은 선교사가 하는 일보다 더 많은 일을 할 수도 있다. 한 사람의 본부 선교사가 많은 선교사들에게 바른 사역을 하도록 인도할 때 그 본부 선교사는 선교현장에 있지는 않지만 선교사역에서 또 다른 귀한 사역을 감당하는 것이다. 그럼으로 선교 단체의 본부 사역은 선교에 있어서 핵심적이고 중심적인 위치에 있다고 볼 수 있다.

교회가 선교사에게 재정 지원을 할 때에 계획성 있는 후원을 해야 한다. 선교사를 돕는데 있어서 일괄적인 규약과 계획에 따라 해야 한다. 장기적인 계획 가운데 선교사를 도와야 하고 그럴 때 선교사는 안정적으로 사역을 할 수 있다. 선교사는 평생 동안 선교에 헌신을 하는데 교회는 선교의 일부분인 재정 후원에 있어서 몇 년 만 지원한다는 것은 잘못된 것이다. 뿐만 아니라 국내선교와 해외 선교, 선교단체와, 선교사, 교회 내 선교비용과 교회 밖의 선교사역비등을 균형 있게 사용해야 한다. 교회가 선교 헌금을 바르게 사용하는 것이 무엇보다 교회가 감당해야 할 중요한 책임이다. 선교사나 교회나 하나님 앞에서 귀한 헌금을 부끄럽게 사용하지 않도록 두려움과 지혜로 잘 감당해야 할 책임이 있다.

5. 선교사 멤버케어(member care)

필자는 1997년에 중남미 선교대회인 꼬미밤(Comibam)대회에 참석하였다. 그 때에 선교사의 목회적 돌봄(member care)”에 대한 선택 강좌가 있었다. 선택 강좌 시간에 강사가 나와서 강의를 인도하기 전에 먼저 모인 선교사들에게 선교사로써 어려움을 나누도록 하였다. 몇몇 선교사가 앞으로 나와 선교사역을 하면서 어려웠던 일들을 나누었다. 청중들은 선교사들의 어려웠던 경험들을 들으면서 마음의 아픔을 함께 느꼈다. 예정되었던 강의는 하지 못하고 힘들고 지쳤던 선교사들의 이야기들을 들으면서 함께 기도하고 치유하는 시간으로 바뀌었다. 선교사와 청중들이 서로를 안고 기도하면서 강의실이 눈물바다가 되었다. 함께 눈물을 흘리고 격려하면서 진정한 선교사의 목회적 돌봄의 시간이 되었다. 필자는 이 시간을 통해서 선교사들의 많은 아픔들을 간접적으로 경험하였다. 선교는 참으로 위대한 일인데, 그 일에 참여하는 선교사들은 전쟁터의 패잔병처럼 지치고 쓰러져가고 있는 현실을 보면서 안타까움을 금할 수 없었다. 그 때부터 필자는 눈에 보이는 선교사의 사역보다 눈에 보이지는 않지만 선교사의 삶을 돕는 멤버케어에 많은 관심을 갖게 되었다. 선교사들은 누구에게도 말 못할 많은 어려움들을 가지고 살아간다. 이런 선교사에게 누군가 목회와 격려와 상담을 해주는 것이 바로 멤버케어다.

1) 선교사 멤버케어의 중요성

혹자는 선교사를 오해하기를 선교사는 강한 사람이라는 것이다. 강한 사람이기에 아무런 도움이 필요하지 않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선교사는 슈퍼맨이나 슈퍼우먼이 아니다. 어쩌면 보통 사람보다 건강도 약하고 용감하지도 않은 평범한 사람일 수 있다. 본국에 있는 사람들보다 더 어려운 환경 속에서 외롭고 상처받고 힘들게 살기 때문이다. 필자는 부모가 돌아가셔서 장례식에 가지 못해서 우는 선교사를 본적이 있다. 그 때 선교사의 아픔이 보통 사람보다 더 크다는 생각을 하였다. 어떤 선교사는 한국이 너무 그리워 비행기를 타고 인천 공항에 내려서 그 땅에 입만 한번 맞추고 다시 선교지로 돌아오고 싶다고 했다. 얼마나 고국이 그리우면 인천 공항의 땅이라도 한번 밟아보고 싶어 할까! 선교지는 용광로와 같은 곳이며, 압력 밥솥 같은 곳이기에 건강한 사람도 힘들 수밖에 없는 환경이다. 선교지는 사역에 상관없이 살아남는 것만으로도 선교라고 할 만큼 힘든 곳이다. 사역 때문에 너무 지치지 말고 선교지에서 살아만 오라고 하는 사람도 있다. 어떤 선교사는 너무 탈진해서 성경을 볼 여유조차 없을 만큼 영적으로나 정서적으로 힘들어 하는 선교사들도 있다.

무엇보다도 선교사는 정서적인 어려움이 많다. 사람은 정서적인 건강을 유지하기 위해서 하루에 2만 마디 말을 해야 한다고 한다. 가정에서 부부 대화가 잘 안 되는 이유가 있다고 한다. 남편은 밖에 나가서 2만 마디 말을 다 하고 들어와서 집에서는 말할 기운이 없다. 하루 종일 집에 있는 부인은 대화 하고 싶지만 남편이 대화할 힘이 없기에 부부대화가 어렵다는 것이다. 사람이 정서적인 건강을 유지하려면 매일 2만 마디 정도의 말을 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 것인가를 보여주는 이야기다. 선교사는 4년 동안 한국말을 할 기회가 많지 않다. 매일 2만 마디 말을 해야 정서도, 가정도 건강한데 선교사는 4년 동안 한국말을 거의 하지 않으니 얼마나 힘들겠는가?

(1) 멤버케어를 통해서 선교사들이 건강한 사역을 할 수 있다.

많은 선교사들이 마음이 치유되지 않은 깊은 상처를 안고 사역에 임하고 있다. 선교사역은 탁월하게 잘할 수 있지만, 정작 자신의 문제에 대해서는 돌아 볼 겨를이 없을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선교사는 자신의 내면적 갈등과 가족 내에서의 건강한 자신의 역할을 감당하기 위해서 전문가의 도움이나 돌봄이 필요하다.

어린 시절 역기능적 가정에서 성장한 선교사가 있다. 이런 선교사는 좋은 부모가 되는 것에 있어서 어려움을 겪을 수 있다. 이런 선교사들은 선교지에서 현지인들과 동료 선교사들과의 대인관계에 있어서도 상당한 갈등을 경험하기도 한다.

선교사 자신을 목양해 줄 목회자가 없는 가운데서 선교사 스스로 건강한 영성을 유지하는 것이 어려울 수 있다. 이런 선교사는 누군가의 전문적인 도움이 필요하다.

선교사가 겪는 스트레스 수준은 이전보다 훨씬 더 높다고 볼 수 있다. 국제정세에 있어서도 지금은 과거 어느 때 보다 불안정과 위험과 불확실성이 높은 시대를 살아가고 있다. 선교지의 정치적 불안정은 때때로 선교사에게 두려움으로 다가오고, 두려운 환경 가운데서는 생산적으로 일하기가 쉽지 않다.

조절, 통제되지 않는 좌절과 분노, 혹은 가정폭력과 학대, 그리고 인터넷 포르노중독, 게임 중독 등의 각종 중독, 또 다른 형태의 부도덕이나 우울증이 선교사들에게 갈수록 심해지고 있다.

선교사들은 가족과 친구, 동료들로부터 멀리 떨어져 있기 때문에 오는 외로움이 크다. 모든 선교사는 누군가의 사려 깊은 경청과 격려를 필요로 하고 있다.

멤버케어에 대한 자료를 보면 온전한 돌봄을 받는 선교사들이 훨씬 건강하게 오랫동안 사역을 한다고 한다. 좋은 돌봄이 있을 때 선교사의 높은 도덕성이 유지 되고 팀 사역에 있어서도 서로가 긴밀하게 돌보아 줄 때 더 많은 행복감을 누리면서 자신의 역량을 충분히 발휘할 수 있다. 선교사들에게 멤버케어는 필수적이며, 적절한 멤버케어의 도움을 받을 때 건강한 사역을 할 수 있다.

(2) 선교사 멤버케어가 곧 선교 사역이라 할 수 있다.

필자는 신임 선교사들에게 부탁하는 것이 있다. 사역을 하기 위해 애쓰는 만큼 다른 선교사들을 돌보는 멤버케어를 하는데도 집중하는 사역자가 되라는 것이다. 다른 선교사를 도움으로 그 선교사가 회복된다면 그것이 바로 그 선교사를 도운 사람의 몫이 된다. 선교사의 건강성의 최고의 정도를 100%로 본다면, 어떤 선교사들은 50%70%, 혹은 90%의 건강성을 가지고 있을 수 있다. 단지 육체적인 건강성만이 아니라 영적, 지적, 정서적인 건강성, 자녀나 부부 관계 등 가족의 건강성, 그리고 사람관계의 건강성을 100% 유지하고 있다면 100%의 사역을 감당할 수 있다. 만약 어떤 선교사가 육체적인 영역에서 건강성이 50% 밖에 되지 않는다면 사역도 50%밖에 할 수 없다. 그런데 어떤 의사가 이 선교사를 치료해 주어 100%의 육체의 건강성을 되찾도록 해준다면 그 선교사는 100%의 사역을 할 수 있게 된다. 그러면 상승된 50%의 사역은 그 선교사를 도운 의사가 한 사역이고 열매가 되는 것이다. 선교사가 자녀에게 문제가 있어서 100%의 사역을 못하고 자녀를 돌보거나 치료하기 위해서 70% 밖에 사역을 할 수 없다면, 누군가가 그 자녀를 도와 문제를 해결해 줄 수 있다. 누군가의 도움으로 자녀 문제가 해결된다면 그 선교사는 자녀문제를 해결함으로 100% 의 사역을 할 수 있다. 100%의 사역을 할 수 있도록 도와 30%의 건강성을 상승시켜 준 사람이 사역의 30%의 역할을 하게 된 것이다. 그러기에 선교사 멤버 케어는 단순히 선교사 개인을 돕는 차원을 넘어 멤버 케어 자체가 사역이 되는 것이다. 만약 누군가 선교사들의 부족한 부분, 부족한 건강성을 상승시키는 사역만 한다면 그 사람은 오히려 어떤 선교사보다도 더 많은 사역을 하는 것이 될 것이고 사역의 열매를 거두는 것이 된다. 그런 면에서 선교사들이 안식년 때 회복하고 재충전할 수 있도록 돕는 것은 선교사 한 개인을 돕는 것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고 선교사역을 직접적으로 하게 되는 효과를 가져 오게 되는 것이다. 필자는 신임 선교사들에게 자신의 사역을 하기 전에 다른 선교사들을 멤버 케어하고 도와주는 것이 또 다른 귀중한 사역이 될 수 있다고 권면을 한다.

2) 은사를 통한 멤버케어

선교사 멤버케어는 한 사람이 모든 영역을 다 담당할 수 없다. 교회와 교인들은 하나님이 주신 은사를 가지고 자신이 할 수 있는 영역에서 선교사를 케어 할 수 있다. 예를 들면, 직업이 의사라면 의료를 통해서 선교사를 멤버케어 할 수 있다. 누군가 학교 교사라면 교육을 통해서 선교사 자녀들을 도울 수 있다.

(1) 선교사의 아픔을 이해한다.

선교사들에게 있어서 가장 필요한 것은 선교사들이 한 일을 누군가 알아주는 것이다. 필자가 잘 아는 선교사는 25년 동안 선교지에서 했던 사역을 파송교회에 보고할 기회를 찾지 못하였다. 이 선교사는 25년 동안 자신의 사역을 파송교회에 보고하고 보여주고 싶었다. 감사하게도 25년 만에 파송교회에서 그 선교사가의 사역을 소개할 수 있는 기회를 주었다. 이 선교사는 자신의 사역을 소개하면서 감격의 눈물을 흘렸다.

선교사는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 곳에서 외롭게 사역을 하고 있다. 인간이기에 자신의 사역과 삶을 누군가에게 나누고 싶고 또한 나누어야만 한다. 선교사도 슬픔과 기쁨을 나누어야 하는 감정이 있다. 누군가 알아주었으면 하는 바람도 있다. 물론 하나님이 다 알아주시지만 하나님은 주위에 함께 있는 동역자들을 통해서 위로하고 격려하기를 원하신다. 그런 면에서 선교사들의 이야기를 들어주는 것이 중요한 멤버케어가 된다.

사람들은 선교사 멤버케어를 하려면 시간과 재능과 물질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선교사를 만나려면 무언가 도움이 될 만한 것을 줄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굳이 도움을 줄 수 있는 것이 없어도 된다. 선교사를 만나 밥한 끼 대접하고 선교사의 얘기를 들어주는 것도 아주 좋은 멤버케어가 될 수 있다. 밥한 끼 살 수 있는 능력만 있다면 누구든지 효과적인 멤버케어를 할 수 있다. 개인적으로 그렇게 할 수 있지만 교회적으로도 선교사들을 초청하여 사역보고를 하게 하는 것도 중요한 멤버케어이다. 요즈음 필자는 지역 교회들이 선교사를 초청하여 선교 보고하는 것을 부담스러워한다는 말들 자주 듣는다. 선교사를 초청하기 어려운 교회의 사정도 있겠지만 선교사에게 그런 기회를 주어야 한다. 보고할 기회를 주지 않는다면 중요한 멤버케어를 외면하는 것이다.

(2) 선교사에게 선물을 보낸다.

선교사는 가능하면 선교지에서 물품을 구입하여 사용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생활수준도 선교지 현지인의 수준을 유지하는 것이 좋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불가피하게 한국에서 공수해야 할 필요한 물건들이 있다. 선교사가 외국에 살지만 한국인이기에 한국인으로서 필요한 물건을 사용해야 할 때가 있다. 한국인의 문화는 김치를 먹는 문화이기에, 한국인 선교사에게도 필요한 음식이다. 김치를 만들기 위해 선교지에서 구할 수 없는 고춧가루 같은 것을 보내주는 것은 선교사에게 무엇보다도 귀한 선물이 된다. 감정적인 부분에서도 선교사가 선물이나 필요한 물건을 받을 때 많은 도움이 된다.

필자가 선교지에 있을 때 후원하는 한 교회의 초등부에서 많은 학용품을 보내왔다. 그 교회 초등부에서는 년 말에 다른 교회처럼 달란트 잔치를 하였다. 일 년 동안 교회 생활을 잘 한 어린이들을 격려하기 위해 달란트 잔치를 베풀어 상을 줄 때. 이 교회에서는 교사들이 어린이들에게 학용품이 더 필요한 선교지에 보낼 것을 제안하여 어린이들이 동의하였다. 자신들이 받아야 할 상품들을 모두 모아서 선교지에 있는 필자에게 보냈던 것이다. 필자는 귀한 선물을 받으면서 말할 수 없는 기쁨과 감동을 느꼈다. 그 상품들은 현지인 교회 주일학교 어린이들에게 귀하게 사용되었다.

어떤 교회는 연말이 되면 한국 식품들, 곧 라면, 미역, 고추장, 믹스커피 등 선교지에서 구하기 어려운 것들을 모아 선교사들에게 보내기도 한다. 어떤 교회는 선교사의 지적인 성장을 계속하도록 책을 선물로 보내기도 한다. 선교사들의 생일이나 어린이날을 기억하여 특별한 선물을 보내는 후원자들도 있다. 이처럼 선교지에 귀한 선물을 보내는 것은 선교사들에게 큰 위로와 격려가 되고 효과적인 멤버케어가 된다.

(3) 교회는 선교사와 서신이나 전화나 이메일을 통해서 자주 연락하고 격려한다.

교회와 성도들은 선교지에 처음 나간 선교사를 위해서 첫 2-3년 동안은 신경을 많이 써야 한다. 선교사가 문화적 충격으로 인해 외로움과 좌절감, 그리고 상실감을 가질 수 있는 기간이다. 한국에서 활발한 사역을 하다가 선교지 언어를 모르기에 사역을 할 수가 없다. 언어 습득은 긴 시간과 인내를 필요로 하며, 언어 습득 기간에는 어린아이가 된다. 사역은 커녕 현지어로 예배드리는 것도 부담이 되고 영적인 충만함을 유지하기 어렵다. 외딴 곳, 타국에서 혼자 떨어져 있다는 불안감은 선교사 혼자의 힘으로 헤쳐 나가기에는 많은 어려움이 있기에 후원자들이 세밀한 관심을 가져야 한다. 그러기에 후원자들은 선교사가 외로움과 새로운 문화 적응을 잘 극복할 수 있도록 이메일이나 전화를 통해서 자주 연락하는 것이 필요하다. 후원자들의 소식은 선교사들의 정서적 안정 가운데 선교지에서 적응하는데 큰 도움이 된다. 사실 후원자들은 선교사들의 소식을 기다리지만 선교사들 또한 후원자들의 소식을 듣고 싶어 한다. 선교의 동역자로서의 삶과 사역을 나누고 소통하는 것은 선교사들로 하여금 홀로 있지 않음을 인식시켜 안정적으로 사역하는데 도움을 주는 것이다. 잠시 멈춰 나의 소식을 기다릴 것 같은 선교사들에게 안부 전화나 메일을 나누면 어떻겠는가?

(4) 선교지 방문을 통해 격려한다.

후원자들이 선교지를 직접 방문하는 것은 선교사들에게는 사막의 오하시스와 같은 신선한 감동과 위로가 된다. 후원자들이 선교지를 직접 방문함으로써 선교사가 처해있는 상황을 파악하고 선교사의 필요를 알아 적절한 도움을 제공해 줄 수 있다. 선교지를 방문할 때는 선교사들의 사역을 감독하고 감시하려는 자세보다는 선교사들의 아픔과 필요들을 나누고 사랑과 위로의 교제를 가지려는 마음으로 방문하는 것이 좋다. 방문 대상 선교사가 교회의 파송 선교사라고 생각하기보다는 내 가족이라는 생각으로 대해야 한다. 내 가족 중의 한 사람, 즉 선교사가 나의 형제요, 내 자녀라면 그들과 어떤 시간을 가질 수 있겠는가를 생각하여 방문할 때는 사역보다는 삶을 나누는 시간을 가질 필요가 있다.

3) 안식년 선교사 돌봄(안식관)

오랜 전에 아프리카에서 사역하던 필자의 친구 선교사가 안식년으로 한국에 들어왔다. 이 친구에게 문제가 하나 있었는데 그것은 안식년 동안 거처할 마땅한 집을 구할 수 없다는 것이었다. 세 명의 자녀와 부부가 함께 있을 곳이 없어 경기도 화성의 어느 지하 월세 방을 얻었다. 일 년 동안 안식년을 보내야 할 곳으로는 선교사와 아이들의 건강에 좋지 않은 환경이었다. 추운 겨울에 한국에 도착하여 추위에 입을 옷도 구하기 어려웠다. 필자는 그 선교사들의 자녀들의 구멍 난 양말을 보고 마음이 많이 아팠다. 그 때 친구 선교사는 울면서 이런 말을 하였다. “선교지에서 고생하다가 한국에 들어가면 누군가 잘 맞이 해주며 잘 쉴 줄 알았어요. 천국과 같은 곳 일거라고 기대하고 왔는데 한국은 저희들에게는 천국이 아니고 지옥이네요. 차라리 빨리 선교지에 가는 것이 더 좋을 것 같아요이 말을 들으면서 아픈 마음으로 함께 울며 위로하며 기도했던 기억이 있다. 필자는 약간의 겨울옷과 양말을 챙겨 주었지만 그 선교사 가정은 일 년의 안식년을 다 채우지 못한 채 다시 선교지로 돌아갔다.

선교사들이 안식년을 가져야 하는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다. 지치고 약해진 몸과 마음을 회복하고 재충전하기 위해서다. 누군가는 선교사들이 선교지에서 사는 것만 해도 선교다.” 라는 말을 하였다. 그만큼 선교지에서는 힘들고 어려운 일이 많아 쉼과 회복이 필요하다는 뜻이다. 안식년에 온 선교사들이 가족들, 후원하는 교회와 성도들을 만나는 일도 중요한 일이다. 그 동안 선교사를 위해 기도하고 후원하는 분들을 찾아 감사하며, 그들이 계속해서 선교에 동참할 수 있도록 격려하는 일은 안식년 동안 선교사가 해야 할 중요한 일이다. 하나님의 선교는 계속 되어야 하기에 누군가 한국 교회에 선교를 외치고 선교에 동참할 사람들을 찾아 선교사로 혹은 후원자가 되도록 선교 동원을 해야 한다. 선교사가 이일을 하기에 가장 적합한 사람이다. 선교 동원의 사역은 선교사가 안식년 동안 할 수 있는 중요한 사역 중의 하나이다. 그러기에 안식년이라는 용어를 사용하지 않고 본국 사역이라는 용어로 대체하여 사용하는 것이 적절한 표현이라고 생각된다. 아울러 선교사가 사역을 잘 하기 위해서 자기 성장이 필요한데 안식년을 통해서 더 발전된 사역을 준비할 수 있다. 안식년이 없다면 선교사는 병이 들거나 지쳐서 사역을 제대로 하기 어려운 경우도 생긴다. 그러기에 한국 선교사들은 안식년으로 한국에서 보낼 필요가 있으며, 할 수 있다면 일 년 정도의 충분한 안식의 기간을 갖는 것이 선교사들의 효과적인 멤버케어를 위해 필요한 것으로 보여진다.

이처럼 중요한 안식년을 정확하게 갖고 또한 안식년을 잘 보낼 수 있도록 선교단체나 파송 혹은 후원 교회는 격려하고 적절한 도움을 줄 책임이 있다. 선교단체는 선교사들이 안식년을 잘 활용하도록 여러 가지로 섬기고 있다. 먼저는 선교지로 나가기 전에 오리엔테이션을 통해 안식년을 꼭 가질 수 있도록 선교사들을 교육한다. 선교지에 도착하여 처음부터 안식년 계획을 세우도록 격려한다. 그것은 장기 계획이 없으면 사역 때문에 안식년을 갖지 못하게 되는 경우가 있기 때문이다. 선교지에서 4년차가 되면 안식년을 갖도록 선교본부는 선교사에게 통지를 하고 선교사는 자기 평가서와 함께 안식년 계획서를 선교본부에 보낸다. 선교사가 한국에 도착하면 선교 본부는 재입국 세미나를 실시하여 한국에서 어떻게 재정착하는지에 대해 도움을 주고 디브리핑(debriefing)을 통해 선교사들이 선교지에서 있었던 삶과 사역들을 돌아보고 평가하는 시간을 갖도록 한다. 선교사 가족 모두가 건강 검진을 받도록 하고 심리검사도 받게 하여 정서적인 상태를 점검한다. 필요하다면 상담 세미나에 참여하도록 하고 개인 상담을 통해 필요한 도움을 받게 한다. 선교 단체는 선교사들이 안식년 동안 다양한 선교사 회복 프로그램들을 연결해서 쉬고 재충전할 수 있도록 기회를 제공한다. 선교사들이 자기 성장을 위해서 공식적인 기관(학교)이나 비공식적 혹은 비형식적인 방법을 통한 연장교육을 받도록 격려하기도 한다. 가능하면 선교사들이 안식년을 한국에서 보내도록 하여 안식년을 통해 자녀들이 한국을 이해하고 한국 교육을 경험하게 하여 나중에 한국에서 대학에 진학하도록 도움을 주기도 한다.

이처럼 꼭 필요한 안식년을 잘 보내고 선교지에서 건강하게 사역을 잘 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는 안식년을 갖는 선교사들이 거할 선교관이 필요하다. 최근에는 많은 교회에서 교회를 건축할 때 선교관을 함께 건축하는 경우도 있고 선교관의 필요성을 이해한 성도들이 선교관을 운영하기도 한다. 어느 교회 장로님은 개인 회사 사무실의 2-3층을 선교관을 만들어 선교사들이 머물 수 있도록 제공하고 있다. 장로님이 직접 선교관을 관리하면서 직접 음식을 만들어 섬긴다. 어느 권사님은 부부만 사는 자신의 아파트에 남은 방을 선교관으로 내놓기도 한다.

필자 가족이 선교지 필리핀에서 2010년에 안식년으로 한국에 들어왔을 때, 감사하게도 한 선교사 지원 단체에서 운영하는 선교관에 6개월 동안 머물 수 있었다. 처음에 그 선교관에 입주할 때 선교관은 어둡고 낡은 집이 연상이 되고 먼저 청소를 해야 하는 곳으로 생각하였다. 선교관으로 입주아기 전에 먼저 청소도구를 가지고 가서 청소를 하고자 하였다. 그런데 이 선교관은 어느 호텔 못지않게 깨끗하게 청소가 되어 있었고 냉장고에는 2주 정도는 시장을 보지 않고서도 먹을 수 있는 기본 음식들이 준비되어 있었다. 선교지에서 돌아 올 때 너무나 지쳐 있었는데 그래도 알아주는 사람이 있다는 것과 잘 준비된 선교관을 통해서 우리가 소중한 사람인 것을 깨닫게 되면서 많은 위로와 격려를 받은 경험이 있었다.

선교사들이 안식년으로 한국에 돌아올 때 가장 중요한 것이 선교관인데 안식년 선교사들이 사용할 수 있는 선교관이 턱 없이 부족한 것이 현실이다. 선교사들이 일 년의 안식년 동안 지낼 선교관을 찾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 한국에서 단기간 제공하는 선교관은 어느 정도 준비되어 있지만 일 년 동안 머물 수 있는 선교관은 거의 찾을 수 없다. 한국에 단기로 방문한 선교사 중에는 몇 주 머물 선교관이 없어서 찜질방이나 고시원에서 머무는 경우도 있다. 선교관이 준비 되지 않으면 선교사가 안식년으로 들어오기가 어렵다. 안식년은 통상 4년 사역하고 5년째에 1년 정도 갖게 된다. 그런데 최근에는 선교사가 일 년 동안 안식년으로 들어오는 경우가 별로 없다. 길면 6개월에서 짧으면 한두 달을 안식월로 보내고 선교지로 귀임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선교사들이 정기적으로 본국에서 안식년을 갖지 못하는 요인들을 보면 자녀교육 문제, 파송교회의 안식년에 대한 이해 부족이나 중단하기 어려운 사역적 상황들이라 할 수 있는데 근본적인 문제는 선교관의 부족이라고 볼 수 있다.

부족한 선교관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몇 가지 방안을 제시한다. 파송교회와 성도들이 선교관을 당연히 준비해야 한다. 그러나 그러지 못할 경우 선교사들이 가능하다면 집을 소유하도록 도움을 줄 수 있다. 20년 전만 해도 선교사들이 선교지로 나갈 때는 소유한 주택이 있을 경우 집을 팔고 가는 경우가 대부분이었지만 이제는 안식년으로 혹은 은퇴 후에 한국에 돌아왔을 때 사용할 수 있도록 팔지 않고 가는 경우가 많다. 한국 교회는 은퇴 선교사들에 대한 대책이 무엇보다도 필요한 현실이지만 아직까지 뾰쪽한 대안이 없다. 가장 현실적인 대안은 선교사들이 주택 청약을 들도록 해서 은퇴 후에 임대나 분양을 받을 수 있도록 하는 방법이 있다. 은퇴 후를 생각해서 집을 가지고 있는 선교사들이 있다면 은퇴해서 돌아올 때까지 선교관으로 사용하는 것이 좋은 대안이 될 수 있다.

4) 선교사 자녀 케어

선교사 자녀를 케어하는 일도 교회와 성도가 해야 하는 중요한 멤버케어 사역이다. 선교사 자녀는 어렸을 때부터 선교지에서 자라면서 한국에서 자라는 아이들보다는 다양한 문화를 경험하고 많은 언어를 구사하고 선교에 열린 마음을 갖고 있다. 그들의 재능과 경험이 하나님 나라를 위해 효과적으로 사용될 수 있는 도구가 될 수 있다. 선교사 자녀를 케어 하는 것은 또 다른 미래의 세계 선교의 씨를 뿌리는 것과 같다. 선교사 자녀들이 필요로 하는 도움은 유치원 때부터 대학, 청년 시절에 이르기까지 다양하다. 교회와 후원자들은 선교사 자녀들이 안식년으로 한국에 들어왔을 때 학습지도를 할 수 있다. 직업이 교사라면 방학 때 단기로 선교지를 방문하여 선교사 자녀들의 부족한 학습을 도울 수 있다. 선교사 자녀들을 위해 때마다 잊지 않고 선물을 보내는 것도 적절한 도움이 된다. 파송 교회는 선교사 자녀를 위해 교육비를 제공할 수 있다. 어느 크리스천 기업은 한해에 70여명의 선교사 자녀들에게 장학금을 지급하고 있다. 선교사 자녀들이 한국으로 대학을 진학하였을 경우에 국내에서 머물 수 있는 공간을 마련해 주는 것도 꼭 필요한 일이다. 대학을 졸업하고 한국에 정착을 해야 한다면 많은 문화충격을 이길 수 있도록 옆에서 돌봐주고 격려할 수 있다.

지금부터 20여 년 전에 K 선교사 가정이 선교지에 갔다. 선교지에 도착했을 때 K 선교사 가정에는 유치원에 다니는 딸 하나가 있었다. 그 자녀를 위해 파송교회의 한 자매가 이 아이를 위해 비디오테이프(VTR)을 보냈다. 이 자매는 직장에 다니면서 텔레비전에 나오는 어린이 유치원 프로그램을 녹화해서 매달마다 한 개씩 보냈다. 2년이 넘도록 그 일은 계속되었다. K선교사 자녀는 매일 그 비디오를 즐겁게 보았고 그것을 통해서 한국말과 한국 풍습을 잊지 않고 배울 수 있었다. K선교사는 둘째 아이를 선교지에서 낳게 되었는데, 그 둘째 아이에게도 그 비디오테이프를 사용할 수 있었다. 뿐만 아니라 그것을 다른 선교사 자녀들과 한국인 자녀들과도 나누어 보면서 계산할 수 없는 엄청난 도움을 받았다. 이 자매의 헌신과 사랑이 얼마나 크고 귀중한 일인지 아마 본인도 잘 몰랐을 것이다. 선교사들은 이처럼 귀한 손길로 인해 위로와 도움을 받고 선교사역을 계속하고 있는 것이다.

4) 선교사 위기관리

선교사 멤버케어 영역 중에 가장 긴급한 분야가 위기관리다. 다른 멤버케어는 오늘 당장 케어가 되지 않아도 내일 보충하면 되지만 위기상황은 시간을 다투는 긴급한 영역이다. 선교사에게 있어서 발생한 위기상황을 적절한 시기에 효과적으로 처리하지 않으면 선교사역을 지속하기가 어려울 수도 있다.

15년 전 그라시아 번햄 선교사가 필리핀 남부에서 납치, 감금되어 1년 이상 기간 동안 억류된 상황 가운데서 외부 영상 메시지를 보낼 기회를 얻을 수 있었다. 그 영상을 통해 번햄은 외부의 세상을 향해 누구 듣는 사람 없어요? 아무도 도와줄 사람이 없습니까?” 라고 외쳤다. 이런 상황에서 누군가 들어주지 않고 도와주지 않으면 선교사는 죽는 것이다. 지금도 선교지에서 이렇게 외치는 선교사들의 부르짖음이 있다.

(1) 선교지는 위기와 어려운 환경이 많이 있다.

위기는 줄어드는 것이 아니라 시간이 갈수록 많아진다. 선교지는 예측할 수 없는 상황이 일어난다. 얼마 전에 필자는 그 동안 알고 지냈던 선교사를 주님의 품으로 먼저 보내는 가슴 아픈 시간이 있었다. 이 선교사는 선교지에서 기도회를 마치고 갑자기 쓰러져 병원으로 옮겼으나 병원에서 수술 중에 사망하였다. 폐암 종양이 심장을 압박한 상태였던 것이다. 한국 선교 역사가 길어지면서 오랫동안 사역하는 선교사들이 증가하는 가운데 건강상 문제로 어려움을 겪는 선교사들이 늘어가고 있는 현실이다. 건강에 이상이 생기는 선교사들이 증가한다. 위기 상황이 갈수록 많아지고 있는 것이다. 위기의 유형은 생각보다 많으며 심각한 문제도 많다. 한국교회와 후원자들은 선교사의 위기에 대한 심각성을 제대로 인지할 필요가 있다.

* 위기의 유형

자녀의 실종, 자살의 위험, 시도, 실행, 자녀의 학교 부적응, 문제를 일으키는 자녀

폭탄 위협이나 폭발

가족 내의 폭력

가족에 대한 폭력(강간, 강도 및 상해, 죽음, 질병-, 심장마비, 교통사고,)

유괴, 납치당함

부도덕한 행위의 폭로

풍토병(말라리아, 댕기열.) 전염병

사고나 재해로 인한 사망

팀 내의 심각한 갈등

해결되지 않은 과거의 문제들

전쟁과 혁명(내전), 집과 가정의 파괴

강제 출국(블랙리스트에 올라감, 더 이상 비자를 연장해 주지 않음, 철수), 입국거부

거짓 고소당함

공개적인 반대

친구의 배반(현지인, 한국인)

장기 사역의 취소

역할의 변화

영적 자녀의 회심 전으로 돌아감(무슬림지역)

동료의 부도덕

자연재해(태풍, 홍수, 지진, 화재)

예기치 않은 후원 중단

이런 다양한 선교사의 위기상황을 외면하는 것은 선교를 그만두는 것과 같다. 위기의 다양성과 심각성을 이해하고 교회가 위기를 도울 때 위기 속에서도 한국선교는 건강하게 계속될 수 있는 것이다.

(2) 위기관리의 방법

효과적인 위기관리가 되도록 파송교회와 선교단체는 특별한 준비와 대책을 세우는 것이 필요하다. 위기상황을 대처하는 다양한 방법이 있지만 다음은 선교사 위기관리의 기본적인 준비이다.

위기에 대한 평가는 선교사의 개인차를 인정한다.

선교사들에게 위기관리에 대한 오리엔테이션을 한다.

선교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사역이 아니라 선교사들(사람들)이라는 의식이 우선 된다.

선교사들이 개인적으로 안전 프로그램을 만들도록 한다.

선교지에서 믿음과 위험 사이에 갈등이 있음을 이해한다.

선교지의 위기상황을 가족과 교회도 함께 알아야 하고 대처하도록 한다.

위기관리 정책을 만들고 선교사들이 동의 하도록 한다.

파송교회와 타 선교단체와 협력으로 위기관리를 한다.

선교사들이 가족 간의 유대 관계를 잘 갖도록 하는 것이 기본이다.

위기상황에서 선교사들이 느낌을 표현하는 것은 위기를 극복하는데 필수적이다.

위기 시에 선교사가 갖는 감정의 과정이 매우 중요하다.

선교단체는 위기관리 위원회를 둔다.

선교사들은 위기상황을 준비하여 재정을 준비해 둔다(위기 탈출시 필요한 항공료등)

선교사는 평소에 공공정보(신문, 텔레비전, 잡지, 인터넷정보)에 유의하도록 한다.

(3) 위기관리에 있어서 교회가 도울 수 있는 영역

선교사가 위기상황에 직면할 때 반드시 누군가 도와주어야 한다. 선교단체가 위기관리 매뉴얼에 따라 도와주지만 선교단체는 교회와 후원자들의 도움이 없이 선교사의 위기를 극복하기 어렵다. 선교사가 위기상황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재정이 필수적이다. 재정은 선교단체가 선교사 위기관리기금을 만들어 준비하지만 그것만으로 부족하다. 한 국가가 갑작스런 자연재해(지진, 쓰나미, 태풍)나 안전사고로 위기에 처했을 때 정부가 특별지원을 하는 것처럼 교회도 선교사들의 위기상황에서 특별한 재정적인 도움을 주어야 한다. 위기를 경험한 선교사들은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PTSD)를 비롯하여 정신적 충격에 빠지게 된다. 교회는 이런 선교사들을 위해 상담과 치료를 받을 수 있도록 도움을 줄 수 있어야 한다.

선교사가 선교지에서 위기 상황에 처했을 때 파송하는 교회도 역시 위기상황에 처해 있음을 인식할 필요가 있다. 교회의 사명을 대신해서 나간 선교사가 위험에 처했다는 것은 교회가 위험에 처했다는 뜻이다. 선교사가 위험 중에 위기를 극복하지 못한다면 하나님 나라에 있어서 큰 손실일 뿐 아니라 파송하는 교회도 큰 타격을 입게 된다. 선교사가 위기상황에 처했을 때 전교회가 선교사를 위해 기도할 뿐 아니라 최선을 다해 위기를 극복할 수 있도록 지원을 해야 한다. 예를 들어 선교사가 납치를 당했을 때 납치당한 선교사 뿐 아니라 남아 있는 선교사 가족들이 안전하게 지낼 수 있도록 물적, 정신적 도움을 주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가족들은 납치에서 풀려나더라도 큰 상처로 인하여 다시 회복하기 어려울 수 있다.

교회는 선교사들이 위기상황이 오기 전에 예방할 수 있는 분야에도 도움을 주어야 한다. 그 중에 하나가 정기적으로 건강검진을 받도록 하는 것이다. 선교사들은 이런 저런 핑계로 정기 검진을 받지 않으려는 경향이 있다. 한국에서는 의료보험 공단에서 정기적으로 건강검진을 받도록 한다. 이런 정부의 노력으로 위암 사망률이 현저하게 줄어들었다고 한다. 선교사들은 정부의 이런 혜택을 누리기 어려운 사각지대에 있다. 왜냐하면 해외에 있을 동안에는 의료보험료를 내지 않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감사하게도 병원이나 선교사 멤버케어 하는 기관에서 선교사들이 건강검진을 받을 수 있도록 특별한 배려를 하고 있다.

위기를 예방하고 치유할 수 있는 또 다른 방법으로는 디브리핑(debriefing)이 있다. 선교단체에서는 선교사들이 안식년이나 일시적으로 한국에 귀국했을 때, 디브리핑을 실시한다. 디브리핑을 통해서 선교사들의 상태를 정확히 진단하고 판단하여 필요한 도움을 줄 수 있다. 위기 후 한국으로 철수했을 때 디브리핑을 실시함으로 정서적으로 위기에서 벗어날 수 있도록 도움을 준다. 선교사들이 위기에 처했을 때 성도들은 자신의 전문성을 가지고 다양하게 도울 수 있다. 의사는 선교사의 건강을 도울 수 있고 정부기관에 근무하는 성도는 선교사가 납치를 당하거나 국가 간의 문제가 있을 때 도움을 줄 수 있다. 상담가들은 상담을 통해 선교사들의 정서적인 안정을 위해 도울 수 있고 사업가는 재정적인 면에서 도움을 줄 수 있다. 하나님께서 성도 각자에게 주신 직업이나 전문성을 하나님 나라를 위해 활용하도록 주신 것이다. 하나님 나라의 확장을 위해 영적 전쟁터의 최전방에 나가 있는 선교사들을 위해 자신이 가진 전문성으로 위기를 도울 수 있다면 그것은 하나님 앞에 영광스러운 일이 될 것이다.

(4) 위기관리를 통한 선교사 탈락을 방지

최선과 최악

선교의 중요한 자원인 선교사가 지속적으로 건강하게 사역을 할 수 있는 것이야말로 선교에 있어서 가장 핵심적인 요소이다. 어떤 상황에서라도 선교사가 선교지에서 중도에 사역을 포기하고 선교사에서 탈락하게 된다면 하나님 나라에 이보다 큰 손실은 없다. 그러기에 선교사가 중도에 사역을 포기하고 귀국하는 것은 선교에 있어서 최악이며, 선교사들이 선교지에 머물면서 사역하는 것은 선교에 있어서 최선이 되는 것이다. 그래서 선교사들이 어떻게든 선교지에서 탈락을 하지 않도록 돌보는 책임이 교회와 선교단체에게 있는 것이다.

선교사들이 탈락하는 이유들

선교사들이 중도에 선교사역을 포기하는 것은 다양한 이유가 있다. 자녀들의 부적응, 교육, 건강 등의 문제로 선교지를 떠난다. 어떤 선교사는 과도한 정신적 압박과 스트레스, 그리고 신체적 건강과 관련된 문제로 중도탈락 한다. 현지 지도자들이나 동료 선교사들과의 인간관계의 문제와 파송 단체와의 불화가 원인이 되기도 한다. 현지문화와 생활에 적응하지 못하거나, 불충분 하거나 부적절한 훈련과 준비도 탈락의 이유이다. 선교사로서의 진정한 영적 사명의 부족 등으로 선교를 중도 포기하는 경우가 있다.

적절한 멤버케어의 중요성

위에서 언급한 선교사들이 탈락하는 다양한 이유들이 있지만 만약 이들에게 적절한 시기에 적절한 멤버 케어가 있었다면, 많은 선교사가 그들의 어려움을 극복하고 탈락하지 않았을 것이다. 계속해서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자신의 삶을 드릴 수 있었을 것이다.

실제적으로 좋은 돌봄은 비용절감의 효과도 가져올 수 있다. 예방이 사후 처리보다 비용이 덜 든다. 한 사람의 선교사가 선교사로서의 적합한 준비 과정과 선교사역을 진행하면서 소요되는 비용이 결코 적지 않다. 교회와 개인들이 오랫동안 재정적 지원을 계속해 왔는데, 뜻하지 않은 혹은 적절한 돌봄이 없어서 중도탈락을 하게 될 때 그 동안 사용된 시간적, 재정적 손실은 말할 것도 없다. 또 다시 누군가에게 재투자하려면 그 만큼의 노력과 재정을 필요로 한다. 무엇보다도 선교사 한 생명이 천하보다 귀하다. 그러기에 멤버케어를 통한 탈락 방지 예방이 필요하다.

 

II. 교회의 직접적인 선교참여

1. 선교사란 누구인가?

선교사란 타문화 사역을 위해 의도적으로 선교지에 파송된 사람을 뜻하지만 단순히 선교를 하는 사람 모두를 지칭하는 것은 아니다. “선교사라고 부르는 것은 상당이 중요한 문제다. 요즈음은 자칭 선교사라는 이름을 붙인 사람이 너무나 많다.

부산의 한 병원은 선교사들에게 진료비를 50%감면 혹은 전액 무료로 해준다. 이 병원에서 선교사가 진찰을 받기 위해서는 선교사라는 분명한 증명서를 제출해야 한다. 만약 선교단체나 공신력 있는 단체의 증명이 없을 때에 선교사로서의 혜택을 받을 수 없다. 선교지에서도 선교사 자녀학교를 보내고자 할 때 학교로부터 선교사라는 증명을 요구받는다. 선교사라는 것이 확실히 증명될 때 그의 자녀들에게 학비를 감면해준다. 어떤 사람은 선교지에서 비즈니스를 하면서 선교사라고 하고 학비 감면혜택을 받으려는 사람들이 있다. 그가 하는 일은 비즈니스가 우선인지, 선교가 우선인지에 대해 불분명하다. “선교사로써 분명한 정체성은 자신이 선언해서 되는 것이 아니라 공신력 있는 (선교)단체나 교회에서 증명을 해야 한다. 그러면 누구를 선교사라고 해야 하는가? 그것은 바로 재정과 사역의 책무를 감당하는 사람이다. 물론 하나님이 그의 모든 자녀에게 선교사라는 사명을 주신 것은 맞지만 이 세상에서 선교사로서 직함을 갖는다는 것은 그에 합당한 자격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그 자격은 바로 공신력 있는 기관과 교회에서 선교사로서 중요한 재정과 사역에 대한 책무를 감당하는 것이다. 책무를 감당한다는 말은 단체나 교회에 자신의 모든 재정과 사역에 대해 보고할 책임과 관리 받을 책임이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아무에게도 재정과 사역에 대해 보고하지 않고 관리를 받지도 않으면서 공식적인 선교사라고 할 수 없다. 이런 의미에서 공식적인 선교사는 선교사로서 직접적으로 사역을 감당하는 자 이기에 직접적인 선교참여라는 제목을 달았다.

2. 선교사적인 삶

공식적인 선교사가 되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이 있다. 그것은 현재 있는 곳에서 선교사적인 삶을 사는 것이다. 이것은 선교사라는 직함을 갖는 것보다 더 중요한 부분이다. 해외에 선교사로 나갔지만 선교사다운 삶을 살지 못하는 선교사도 있고 비록 선교사로 해외에 나가지는 않았지만 현재 살고 있는 삶의 터전에서 선교사로 사는 사람도 있다. 그리스도인들은 선교사라는 직함을 갖기 전에 선교사로서의 삶을 사는 것이 우선되어야 한다. 현재 사는 곳에서 해야 할 선교사적인 삶에는 가장 중요한 세 가지가 있다. 지금 가진 직업에 충실 하는 것과 살고 있는 자리에서 전도하는 것과 제자훈련을 하는 것이다.

1) 자신의 직업에 충실 한다.

직업은 하나님이 인간에게 주신 축복이며, 하나님이 인간을 사용하기 위해 부르신 장소이다. 직업은 인간이 먹고 살기위해 하는 일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나라를 이루기 위해 주신 곳이다. 하나님은 직업을 통해 하나님의 뜻을 이루기를 원하시기에 그리스도인들은 그 직업으로 파송 받은 사역자다. 하나님의 일을 위해 하나님은 그의 자녀들을 직업에 부르신 것이다. 선교사가 선교사역을 위해 부름을 받는 것처럼 모든 그리스도인을 그 직업을 통해 하나님이 주신 사명을 감당하는 사역자가 된다. 그럼으로 현재 가지고 있는 직업에 충실하는 것이 일차적으로 하나님이 부르신 사역자로서 선교적 사명을 감당하는 것이다.

2) 이웃을 전도한다.

(1) 전도는 여러 가지 방법이 있다. 그 중에 가장 중심된 전도는 이웃을 섬기는 것이다. 이웃을 사랑하는 것은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과 함께 성경의 가장 큰 계명 중의 하나이다. 이웃을 사랑하는 것이 바로 전도다. 이웃의 필요를 알고 그들에게 필요한 것들을 가지고 섬기는 것이 전도다. 특별히 성경의 요구대로 어려운 이웃을 사랑하고 도와주는 것이다. 독거노인, 소년 소녀 가장, 깨진 가정, 몸이 아픈 사람들, 외로운 사람들, 나그네, 이방인에 관심을 갖는 것이 이웃을 사랑하는 첫 걸음이다. 삶 가운데 자연스럽게 도울 수 있을 뿐 아니라 직업의 현장에서 도움이 필요한 이웃을 도울 수 있다. 이웃을 사랑하고 섬기고 돕는 것을 단순히 전도의 수단으로 삼기 보다는 그것이 그리스도인의 삶의 목적이 되도록 하는 것이다. 사랑을 이루고자 하는 목적이 성취될 때 전도는 자연스럽게 이루어지는 결과가 된다. 전도를 위해서 이웃을 사랑하는 것이 아니라 사랑할 때 전도가 이루어지는 것이다.

지금은 일방적인 축호전도나 거리 전도보다는 관계를 통한 이미지 전도를 해야 하는 시대이다. 길거리에서 일방적으로 복음을 선포하는 방식은 많은 거부반응을 일으키고 있기에 효과적인 전도방법이라 말하기 어렵다. 이제는 좀 더 사람들에게 지혜롭게 접근해야 할 필요가 있다. 옛날에는 교회 이미지가 좋았기에 길거리에서 예수 천당만 외쳐도 전도가 되었지만 지금은 이미지가 나쁘기에 오히려 전도에 방해가 될 수 있다. 그렇다고 말로 하는 전도를 하지 말라는 얘기는 아니다. 전도폭발, 방문 전도를 해야 하지만 더 집중해야 할 것은 삶을 통한 관계와 이미지 전도라는 것이다. 나의 삶이 전도 할 수 있는 거룩한 삶이 되지 않는다면 선교사적 삶을 살고 있다고 말하기 어려울 것이다.

(2) 교회와 성도들은 지역사회의 일에 참여함으로 전도를 할 수 있다. 교회와 성도들이 지역사회 행사와 지역 동호회에 참여하는 것 자체를 전도의 관점에서 이해할 필요가 있다. 교회 생활에서 하는 일만이 하나님의 일이 아니라 지역사회의 일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것도 하나님의 일이다. 사람들을 만나지 않고 사람들의 문화생활에 참여하지 않고는 전도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오늘날 성도들의 문제 중의 하나는 성도들이 자기들끼리만 교제하는 것이다. 취미생활도 교인들끼리 하는 모습을 본다. 그러나 교제권을 교회 안에서 세상으로 넓혀야 한다. 교회 안에서의 교제만이 아니라 세상 취미 생활하는 동호회에 가입하여 교제하는 것이 필요하다. 살고 있는 이나 모임 뿐 아니라 아파트 동 모임에도 관여하는 것이다. 이것이 전도요, 선교다. 선교사로 해외에 나가는 것만큼 지역사회에 선교적 삶을 살면서 선교에 참여하는 것이 중요하다.

 

3) 제자훈련을 한다.

그리스도인이 있는 곳에서 사람을 키우는 것이 제자훈련이다. 자기의 직업과 전문성을 다른 사람에게 전수하는 것이 곧 제자훈련이다. 하나님의 말씀만으로 훈련하는 제자훈련이 아니라 자신이 가진 은사를 가지고 그것을 다른 사람이 할 수 있도록 전수하고 교육하는 것 도 제자훈련 의 한 방법이다. 자기가 하는 일을 스스로 성실하게 하는 것도 필요하지만 그 일을 할 수 있는 또 다른 사람을 키우는 것이 필요하며 이것이 제자훈련이며, 또한 선교다. 어떤 분야에서건 간에 자신이 할 수 있는 영역에서 사람을 키우는 것이 선교라는 의식으로 살 때에 그리스도의 복음은 확장 될 것이다. 현재 있는 자리에게 제자를 양육하지 않는다면 해외에 선교사로 간다고 해도 별 의미가 없다. 선교지에서 해야 하는 일이 사람을 세우는 제자양육이기에 지금 있는 곳에서 그런 일을 감당한다면 선교사라는 신분에 상관없이 현재 선교사적 삶을 사는 것이다.

 

3. 단기 선교 여행

단기 선교 여행은 교회나 교인들이 해외 선교를 경험할 수 있는 소중한 기회가 된다. 선교사적인 삶이 무엇이며, 세상의 필요는 무엇이며, 하나님의 세상을 향한 뜻이 무엇이며, 그리스도인들은 어떤 비전을 가지고 살아야 하는지에 대해 생각하고 배울 수 있는 기회이다. 단기 선교 여행을 통해 교회는 새로운 영적 경험을 할 수 있으며, 교회의 사명을 깨달을 수 있다.

 

장년 출석 성도 300명 정도 되는 서울의 Y 교회는 매년 여섯 차례의 단기 선교 여행을 간다. 초등학교 6학년, 중학교 3학년, 고등학교 3학년, 청년부, 여전도회, 남전도회, 이렇게 여섯 그룹이다. 각 부서는 매년 동일한 장소로 단기 선교여행을 간다. 예를 들면 남전도회는 매년 중국의 조선족 교회에 가서 성경공부를 인도 한다. 성경공부를 인도하기 위해 일 년 내내 남 전도회원들은 성경을 자체적으로 연구하면서 단기 선교여행을 준비한다. 단기 선교 여행이 단순히 어떤 교회의 행사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교회의 방향과 목표가 되고 있다. 교회의 모든 구조나 행사가 단기선교 여행을 중심으로 운영되기에 이는 교인들을 훈련하는 도구가 됨과 동시에 교회와 교인들이 해야 할 선교사역이 된다. 물론 이 교회는 지역 사회를 위한 사역들도 다양하게 실행한다. 이처럼 교회는 복음이 필요한 세상에 관심을 가지고 세계와 교회 주변 이웃을 향한 사명을 감당하며, 늘 활력 있고 살아있는 교회의 모습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

4. 전문인 선교

한국교회에 오래 전부터 전문인 선교에 대한 관심과 이해가 증가하고 있다. 전문인 선교란 한 마디로 평신도 선교를 말한다. 평신도들이 선교사가 되었을 때 전문인 선교사가 되는 것이다. 물론 목회자도 목회의 전문인이지만 목회자와 대립된 개념으로 전문인 선교사가 이해되고 있다. 목회자 선교사는 목회자 선교사라 하고 평신도 선교사를 주로 전문인 선교사라고 하는 것이다. 그런 면에서 평신도가 선교사가 되면 전문인 선교사가 되는데, 한국교회는 아직도 전문인 선교에 대한 이해가 부족한 것이 사실이다. 교단 선교부는 주로 목회자 선교사를 중심으로 선교사 파송을 한다. 선교는 목회자가 해야 한다는 고정 관념이 강하기 때문이다. 영적인 일은 목회자들이 교회에서 사역하는 것처럼, 선교도 영적인 일만을 감당하는 것이라고 생각하여 목회자를 중심으로 선교사를 파송한다. 그러나 선교의 사명은 목회자에게만 주어진 것이 아니다. 하나님의 자녀들 모두에게 이 책임이 주어졌다. 또한 목회자만이 선교를 하는 것이 아니라 목회자는 선교의 한 영역을 감당할 뿐이다. 오히려 평신도 전문인 선교사가 훨씬 더 많은 영역에서 선교사역을 감당할 수 있으며, 한편으로는 더 효과적일 수 있다. 그러기에 전문인 선교는 목회자 선교사를 위한 보조 역할만을 감당하는 선교사가 아니다. 하나님이 평신도에게 주신 은사를 가지고 그것을 통해 자신의 영역에서 독립적으로 선교 사역을 감당하는 선교사이다. 평신도 선교사는 자기 일을 하고 남은 시간에 선교하는 파트 타임 선교사가 아니라 목회자 선교사와 동일하게 전임으로 자신의 전문성을 가지고 선교하는 선교사다. 평신도가 선교사로 나가는 것은 직접적으로 선교에 참여하는 중요한 일인 것이다.

1) 전문인 선교사의 장단점

전문인 선교사는 여러 가지 장점이 있다.

먼저는 자비량이 가능하다는 점이다. 자비량은 후원을 받지 않고 스스로 재정을 공급하고 생활하며 사역한다는 의미이다. 전문인들은 선교지에서 자기의 직업을 통해 생활비를 충당하여 자비량으로 사역할 수 있는 장점이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모든 전문인 선교사가 다 자비량을 하는 것은 아니다. 전문인 선교사도 목회자 선교사와 같이 후원을 모금해서 사역을 할 수 있다. 어쩌면 전문인일지라도 자비량보다는 모금하는 것이 더 효과적일 수 있다. 그것은 선교에 있어서 자비량만으로 부족한 것이 있기 때문이다. 선교는 선교사 개인에게만 주어진 사명이 아니다. 오히려 하나님께서 교회 공동체에 주신 사명이라 할 수 있다. 선교사는 개인의 일을 개인이 소명을 받아 가는 차원이 아니라 하나님이 교회에 주신 사명을 감당하기 위해서 교회의 대표로 가는 차원이다. 이것은 교회의 지원과 후원이 꼭 필요하다는 의미이다. 자비량으로 선교사로 갈 경우에는 선교가 교회에 주신 사명이 아니고 개인에게만 준 사명이 될 수 있다. 그리고 선교사는 혼자서 사역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자녀들이 함께 협력해야 해야 하는 일이다. 개인이 자비량으로 선교사역을 할 경우에는 함께라는 귀중한 자원을 잃을 수 있다. 어쩌면 선교사가 선교를 할 때 재정 후원보다 기도의 후원이 더 필요하다. 한국 사람들은 재정을 후원할 때 동시에 기도의 후원을 하는 경향이 있다. 물론 기도만 하는 경우도 있지만 그래도 재정 후원을 할 때 선교사를 위해 한 번이라고 더 기도하고 좀 더 간절히 기도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런 면에서 재정 후원을 받는 것이 선교사에게 좋을 뿐 아니라 성도(후원자)들이 선교에 동참할 수 있는 기회를 줄 수 있는 것이다.

다른 전문인 선교사의 또 다른 장점은 전문인 선교사는 어려운 지역에 들어가는 것이 용이하다는 점이다. 어려운 지역이란 목회자 선교사가 들어가기 어려운 닫친 닫힌지역이다. 선교사 비자로 들어갈 수 없는 모슬렘권이나 개신교를 인정하지 않는 많은 나라들이다. 그런 나라들은 목회자 선교사들이 비자를 받기도 어려울 뿐 아니라 목회자가 주로 하는 교회를 통해서 하는 사역에 제한을 받게 된다. 복음의 열매를 거두는 것이 아니라 복음의 씨를 뿌리는 곳이다. 이런 곳에는 목회자 선교사보다는 전문인 선교사가 자기 직업과 전문성을 가지고 들어가서 그것을 통해서 복음의 씨를 뿌리는 사역을 할 수 있다. 그런 면에서 목회자는 가능하면 복음이 열린 지역에 들어가서 사역을 하는 것이 좋고 전문인 선교사는 복음이 닫쳐있는 곳에 들어가서 복음의 터를 잡고 씨를 뿌리는 사역을 하는 것이 효과적이다. 그런 곳에는 목회자가 비자를 받기 어렵지만 전문인 선교사는 비자를 받는 것이 어렵지 않기 때문이다.

또한 선교의 명령은 목회자에게만 주어진 것이 아니라 모든 그리스도인들에게 주어졌다. 목회자는 교회 구성원의 5% 미만이고 평신도들이 교회의 95% 이상을 차지하기에 무엇보다 전문인 선교사가 많아지는 것이 선교에 있어서 더 많은 자원을 활용하는 것이 된다. 모든 그리스도인들이 함께 선교에 동참할 때 하나님의 선교는 더 빨리 계속해서 이루어질 수 있는 것이다.

전문인 선교사에게 장점만이 있는 것이 아니라 단점과 어려운 점도 공존한다. 그것은 전문인 선교사는 일이 많다는 점이다. 전문인 선교사는 영적인 일과 자신의 직업의 일, 두 가지를 다 감당해야 한다. 자신의 직업에 충실하면서 영적인 일에 많은 시간을 내기가 쉽지 않다.중국의 워치만 리는 42년 동안 제약회사 책임자로 일을 하였는데 그는 직장의 과중한 업무 때문에 전도에 대한 사역에 지장을 받았다고 고백하기도 했다. 전문인 선교사는 시간에 대한 어려움을 해결해야 하는 과제가 있다.

전문인 선교사는 아무래도 현지어를 배우기가 더딜 수 있다. 물론 전문인 선교사도 언어 훈련을 할 수 있는 시간이 주어진다면 문제가 없지만 아무래도 처음부터 전문인으로서 일을 해야 하는 경우에는 현지어를 배우는 시간적인 한계가 있을 수 있다. 선교사가 현지 언어를 배우기 위해서는 첫 1-2년을 풀타임으로 언어습득에만 시간을 투자해야 효과적이다. 그런데 전문인 선교사들에게 그런 시간이 주어지지 않을 때 언어 훈련의 한계가 있다.

전문인이라고 해서 오히려 생활비의 후원을 받지 못할 경우가 생긴다. 전문인을 선교사로 인정하기에 인색한 교회들은 목회자 선교사에게는 자연스럽게 후원을 하면서 전문인 선교사에게는 후원을 하지 않으려고 한다. 그럴 때 전문인 선교사가 자비량도 힘든 상황이라면 재정적인 어려움을 겪을 수 있다. 전문인 선교사들은 자신의 전문성을 가지고 사역을 해야 하기에 시간의 한계가 있을 수 있고 이는 가정생활에 좋지 않은 영향을 끼칠 수도 있다. 선교사도 건강한 가정을 이루기 위해서 적절한 시간을 가정에 투자해야 하는데 사역 때문에 충분한 시간을 내지 못할 때 어려움을 겪게 된다.

전문인 선교사는 때로 현지인과 분리된 생활을 할 수 있을 가능성이 있다. 선교사는 성육신의 정신으로 가능하다면 현지인과 동일한 생활수준에 사는 것이 좋다. 그러나 전문인 선교사가 때로 경제적인 사역(예를 들면 비즈니스 선교)을 하다보면 현지인과 같은 수준으로 살기 어려울 수 있다. 이것은 현지인과 다른 삶의 방식이기에 현지인과 동화되는 삶을 사는 것에 있어서 한계가 있을 수 밖에 없다. 또한 전문인 선교사는 장기적으로 사역하는 경우도 있지만 단기로 사역을 하는 경우도 많이 있다. 장기로 사역하는 것이 선교사로서 유익한 점이 많이 있는데, 단기 사역을 할 수 밖에 없는 상황에서는 장기 사역자로서의 유익한 점을 잃을 수 있다는 것이다. 전문인 선교사는 아무래도 교회 일이나 성경 공부를 인도하는 것에 있어서도 한계를 가지고 있다. 이것은 목회자 선교사가 아니기에 가질 수밖에 없는 한계 일 뿐 아니라 성례전을 인도하는 것에도 교단에 따라서는 제약이 되기도 한다. 이는 신학적인 지식이 부족함과도 연결되어 어려움이 될 수도 있다. 무엇보다도 전문인 선교사의 약점은 한국 교회가 후원하는 것에 인색하다는 것이다. 모금을 하는데 있어서도 교회 강단에서 선교보고를 할 기회도 주어지지 않는 경우가 많이 있다. 그럼으로 후원을 잘 받지 못할 수도 있는 단점이 있다. 그러나 이런 한계와 약점이 있지만 전문인 선교사도 분명히 목회자 선교사와 동일한 소명으로 하나님이 부르신 동등한 자격을 가진 선교사임을 인식할 필요가 있다.

2) 전문인 선교사의 영역

전문인 선교사는 흔히 특별한 전문성을 가져야만 한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목수, 도배공, 전기기술자, 건축 인부, 기관사, 농부, 목수, 의사, 교수, 운동선수, 예술가 등 단지 전문성을 가진 직업만이 아니라 어떤 직업이나 어떤 전문성으로도 전문인 선교사로서의 역할을 감당할 수 있다. 비록 전문성이 부족하더라도 하나님이 주신 은사를 활용하여 얼마든지 가지고 선교사로 사역을 할 수도 있다. 무엇보다도 선교는 혼자 하는 것이 아니기에 다른 선교사들과 동역하는 일에는 은사와 전문성으로 다양한 분야에서 협력할 수 있다. 그러나 한국 선교 문화는 유교의 권위주의적 영향으로 협력이나 다른 사람의 리더십 아래에서 사역하는 것보다 힘을 추구하고 자신이 주도권을 가지고 사역하기를 원하는 경우가 많다. 파송하는 교회 조차도 자신들이 파송한 선교사가 다른 선교사 밑에 들어가 사역하는 것을 원하지 않는 경우도 있다다. 가능하면 파송 선교사가 주도권을 갖고 사역에서 무언가 드러낼 수 있는 단독선교를 하기를 원한다. 그러기에 전문인 선교사가 다른 선교사들과 동역하는 것이 쉽지는 않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혼자 어떤 큰(?) 사역을 성취하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함께 협력하고 선교사들이 서로 사랑하는 것을 삶으로 보여주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이것이 선교다. 이렇게 협력할 수 있는 귀중한 모습을 보여줄 수 있는 선교사가 전문인 선교사다. 비록 한국 교회가 요구하지 않더라도 선교지에서 제 2인자로서 아름다운 역할을 감당할 수 있다면 그것이 진정한 선교가 될 것이다.

인도네시아의 한 선교센터에서 노부부가 선교사로 사역을 하였다. 그 선교사 부부는 다른 선교사가 운영하는 선교센터에서 아이들을 돌보는 일을 하였다. 어쩌면 자기 이름을 드러낼 것도 없고 자기 사역이랄 것도 없지만 그곳에 있는 아이들 하나하나를 그리스도의 사랑으로 돌보고 선교센터 구석구석에 필요한 일들을 말없이 감당하였다. 하나님이 보실 때 그 선교센터를 운영하는 선교사를 더 위대하게 보아주실 것인가? 하나님은 마음의 진심을 보실 것이며, 진정한 그리스도의 사랑의 척도로 선교사들을 판단하실 것이다. 그 일이 사람들이 알아주고 드러나는 일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주신 일을 얼마나 성실하게 감당하며, 다른 선교사들과 협력하는 그 모습을 칭찬하실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전문인 선교사는 2인자로 사역할 수 있는 특권(?)을 가진 것이다. 왜냐하면 목회자 선교사는 스스로나 파송교회나 1인자로 사역하기를 원하기 때문이다. 전문인 선교사는 그 일이 죄를 짓는 일이 아니라면 어떤 직업이든지, 어떤 은사든지 활용하여 사역을 할 수 있다. 그러기에 모든 평신도들에게 전문인 선교의 문은 열려 있다.

3) 전문인 선교사의 준비

전문인선교사는 목회자 선교사와 동일하게 반드시 공신력 있는 선교 기구나 교단 선교부에 의해 훈련을 받고 파송을 받아야 한다. 목회자 선교사들은 선교 단체에 소속되어 파송 받는 것이 당연시 됨에도 불구하고 전문인 선교사는 그러지 못하는 경향이 있어 왔다. 전문인 선교사는 목회자 선교사를 도와주는 보조자에 불과하다는 생각이 있어 왔기에 훈련을 받거나 선교 단체 소속 되는 것에 중요성을 두지 않았다. 그러나 전문인 선교사도 똑같은 선교사이기에 공신력 있는 선교 단체를 통해 훈련을 받고 파송도 받아야 한다.

전문인 선교사는 평신도들이기에 소정의 체계 있는 신학 훈련을 받을 필요가 있다. 굳이 신학교에 들어가서 목사가 될 필요는 없지만 성경학교 같은 곳에서 1, 혹은 2년 정도의 성경 공부를 하는 것이 도움이 된다. 적절한 성경학교가 없다면 교회에서 하는 다양한 성경공부 프로그램을 통해서 성경과 더불어 기본적인 신학훈련을 받는 것이 필요하다. 전문인 선교사의 선교의 목표가 단순히 기술을 통한 봉사에 있는 것이 아니라 말과 행실로 복음을 전해서 불신자를 변화시키는 데 있다. 그러기 위해서는 성경과 신학에 대한 기본적인 지식이 아울러 필요한 것이다. 성경에 대한 기본 지식뿐 아니라 소그룹 성경공부를 인도할 수 있는 훈련도 필요하다. 현재 출석하는 교회에서 봉사도 하고 교회생활을 하면서 제자 훈련이나 주일학교에서 가르치는 경험을 쌓는 훈련을 반드시 해야 한다. 주위에 있는 사람들을 향하여 전도하는 경험을 갖는 것도 필수적인 훈련이다.

전문인 선교사는 일(직업)을 하면서 선교를 수행하기에 개인적으로 깊은 경건 훈련이 필요하다. 인격적인 성숙함과 대인 관계에 있어서도 모범적인 관계가 요청된다. 전문인 선교사 스스로 개인적인 영성관리를 할 수 있는 능력을 키워야 하며, 삶으로서 복음을 전할 수 있을 만큼 복음에 합당한 인격적이고 성숙한 삶을 살 수 있는 자질을 키워야 한다. 전문인 선교사의 사역은 어려운 지역에서 선교의 교두보를 확보하고 현지인들에게 좋은 인상을 심어준다. 그럼으로 하나님 나라의 수족과 같은 귀한 역할을 감당한다는 자부심을 가질 필요가 있다. 전문인 선교사로 인준된 후에는 목회자 선교사와 같이 적절한 후원과 감독, 멤버 케어가 이루어져야 한다.

전문인 선교사도 선교사로 허입 될 때 선교의 동기를 살펴보는 것이 선행되어야 한다. 자신의 선교 동기가 전적으로 하나님께 일생을 헌신하는 마음으로 이루어져야 한다. 단지 외국 생활에 매력을 느끼거나 자신의 직업을 가지고 부분적으로 선교하고자 하는 마음에서 나온 것이라면 재고해 보아야 한다. 요즈음은 세계화로 인해 누구나 쉽게 해외에 갈 수 있다. 간혹 선교라는 명문을 가지고 해외에 나가 선교사역보다는 자녀교육과 비즈니스에 우선권을 두려는 불순한 동기가 드러나기도 한다. 선교가 주된 목적이 아니라 자신이 하고 싶은 일에 목적을 둔 선교사가 될 수 있다. 선교사의 선교 동기가 잘못되면 오히려 자신과 하나님 나라의 선교에 손해가 된다. 선교사가 되려는 근본적인 동기를 살펴보고 솔직한 그리스도인이 되는 것이 필요하다.

무엇보다도 전문인 선교사들은 먼저 영혼을 사랑하는 마음이 준비된 사람이어야 한다. 직업이나 자신의 일을 우선으로 생각하기보다는 사람을 구원하려는 마음이 앞서야 한다. 이런 부분에서 준비된 사람인가를 점검하는 것이 필요하다.

전문인 선교사는 자신의 전문 직업에 대해서 최고가 되도록 노력해야 한다. 전문인 선교사가 자신의 직업을 얼마나 잘 수행하느냐 하는 것은 사역과 밀접한 관계가 있다. 일처리가 뛰어나지 않으면 신앙이 훌륭해도 칭찬을 받지 못할 것이다. 일을 잘 하지 못하는 것은 현지인들의 하나님에 대한 존경심도 잃게 만드는 것이 될 것이다.

전문인 선교사가 되려고 한다면 일과 사역을 통합시키는 훈련을 받는 것도 필요하다. 일하는 시간과 쉬는 시간, 그리고 점심시간과 저녁시간, 주말 등 이 모든 시간을 잘 관리하는 능력을 키워야 한다. 시간을 조절하는 훈련을 통해서 청지기로서 하루 24시간을 잘 활용할 수 있는 능력이 전문인 선교사에게 요구된다.

무엇보다도 전문인 선교사는 교회 생활을 통해서 한국에서 사역의 기회를 가질 필요가 있다. 현재 출석하는 교회에서 봉사하는 것이다. 앞에서 이미 언급을 했지만 교회생활을 하면서 제자 훈련이나 주일학교에서 가르치는 경험을 쌓는 것도 필요하다. 주위에 있는 사람들을 향하여 전도하는 경험을 갖는 것도 필수적인 것이다.

가르치고 삶으로 보여주기 위해서는 자기 성장이 필요하다. 전문인이기에 자신의 일만 열심히 하면 된다는 생각은 잘못된 것이다. 오히려 전문인이기에 자기 발전을 위한 공부를 계속해야 한다. 자기 성장을 위해서 경건 서적이나 선교에 대한 책을 계속해서 읽는 습관을 갖는 것도 필요하다.

4) 전문인 선교사의 비전

필자가 알고 있는 전문인 선교사 중에는 자동차 정비 기술을 가지고 선교지에 자동차 정비학원을 차려서 선교하는 사람이 있다. 우리 주변에는 많은 의사들이 전문인 선교사로 나가 병원을 세우는 등 의료를 통한 선교사역을 감당하고 있다. 운동선수가 체육관을 세워, 교사가 학교에서 가르치는 일을 통해서, 컴퓨터 기술자가 컴퓨터를 가르침으로, 피아노 전공자가 피아노를 가르침을 통해서 선교사역을 감당하고 있다. 이는 하나님 나라를 위해서 아름다운 모습일 뿐 아니라 선교를 위해서 무엇보다도 효과적이다.

이미 언급한 것처럼 교회는 95%가 평신도들이다. 평신도들이 자기가 있는 곳에서 선교적인 사명을 감당할 때 복음은 더욱 빨리 전파될 것이다. 모슬렘들은 성직자 뿐 아니라 모든 모슬렘들 각자가 선교사라는 의식이 있다. 그들은 개신교처럼 선교사를 따로 구분하기보다는 모슬렘 신자들 모두가 선교사라는 의식을 가지고 살며 이런 개인들의 삶을 통해 그들의 종교가 확산되고 있다. 그런 의미에서 복음이 확장되기 위해서는 평신도들의 역할이 절대적이다. 필리핀 사람들은 100만 명이 해외로 나가서 일을 한다. 그 중에 5%만 그리스도인이라고 해도 5만 명이 해외에서 선교사로 살고 있는 것과 같다. 대한민국 국민들도 700만 명이 디아스포라로 해외에 살고 있다. 이 중에 30%가 그리스도인이라면, 평신도 전문인 선교사는 200만 명 이상이다. 이들이 해외에서 사역하는 선교사라고 할 수 있다. 그들이 있는 곳에서 선교사라는 의식을 가지고 산다면 하나님 나라를 위해 귀중한 자원이 될 것이다.

주재원으로 일하는 남편을 따라 M국에 간 한 자매는 남편이 교제하는 외국인 친구들에게 복음을 전했다. 그 친구들은 유학이나 영어 공부를 목적으로 M국에 와있었다. 이 친구들을 집에 초청하여 식사를 함께 하며 예수님을 전했다. 그리고 관심 있는 사람들과 성경을 공부했다. 중동 무슬렘 사람들에게도 예수님을 전했고 일부는 예수님을 영접하게 되었다. 이런 사례가 하나의 디아스포라 선교가 될 것이다. 다양한 직업과 다양한 나라에서 사는 그리스도인들이 전문인 선교사로서의 사명을 감당할 때 하나님 나라는 계속해서 확장될 것이다.

5. 비즈니스 선교

요즈음 한국 선교에서 가장 큰 이슈로 떠오르고 있는 것이 비즈니스 선교다. 비즈니스, 즉 사업을 통한 선교다. 비즈니스 선교가 주목을 받는 이유는 세계화가 되면서 비즈니스가 인간 삶의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기 때문이다. 과거에도 비즈니스는 중요했지만 현 시대 자체가 비즈니스 시대라고 할 만큼 비즈니스는 인간 삶에 있어서 중심에 있다.

비즈니스 선교는 전문인 선교의 영역 중의 하나라고 볼 수 있다. 수많은 전문인 선교의 영역에서 사업이라는 한 영역을 통한 선교이기 때문이다. 비즈니스 선교는 현 시대에 중요한 이슈이고 또한 효과적인 선교 방법임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논란이 되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그 논란은 선교의 정의와 관련된 논란이라고 할 수 있다. 그리스도인들이 모두가 선교사이지만 또한 전임 선교사를 구분할 필요가 있는 것처럼 비즈니스 자체가 선교이지만, 또한 기존의 해외 선교라는 영역과는 구분할 필요가 있기 때문이다.

이는 전도선교의 구분의 변화와도 연관이 있다. 과거에는 자국 내에서 하는 복음 전파행위를 전도로 보았고 해외에서 하는 전도행위를 선교로 보았다. 그러나 요즈음은 선교적 교회가 교회의 중요한 이슈로 떠오르면서 전도와 선교의 개념이 바뀌고 있다. 요즘 전도의 개념은 장소에 국한하지 않고 복음을 전하는 직접적인 행위를 전도로 본다. 이에 반해 직접 복음을 전하는 것을 포함한 이웃 전도를 위해 필요한 모든 수단(수단이라고 하지만 수단 자체가 목적임), , 사회참여나 복음 전파를 포함한 모든 그리스도인의 삶의 형태를 선교라고 한다. “전도를 위해 총체적으로 접근하여 하는 모든 사역을 선교라고 하는 것이다.

전도와 선교에 대한 개념의 변화처럼 비즈니스 선교도 전도의 개념에서 선교의 개념으로 변화되고 있다. 이전에는 비즈니스 선교를 일반적으로 전도를 위한 수단으로 여겼다. 이것을 Business for Mission(BFM) 이라고 한다. 비즈니스는 선교를 위한 수단이고 방법이다. 이런 전통적인 이해가 Business as Mission으로 바뀐 것이다. 그래서 약자로 이 개념의 비즈니스 선교를 “BAM”이라고 부른다. BAM의 개념은 비즈니스 자체가 선교가 된다. 굳이 비즈니스가 선교사역과 관련이 없더라도 비즈니스가 선교자체라는 것이다. 비즈니스만으로도 의미가 있다는 것으로 이는 그리스도인들의 직업관과도 연결된 개념이다. 그리스도인들이 가진 직업이 하나님이 부르신 소명에 의해 이루어지기 때문에 직업에 종사하는 것 자체도 선교라고 보는 것이다. 그래서 선교사로 파송 받지 않아도 모든 그리스도인들은 자기가 있는 곳에서 선교사적인 삶을 살아야 한다는 것이다. BAM은 이윤을 창출하는 것이 또 하나의 목표다. 이윤을 창출하는 비즈니스가 진정한 비즈니스이기에 이윤을 내야 한다는 것이고 이윤이 없이 비즈니스를 전도를 위한 수단으로 보는 BFM과는 구분하는 것이다. 그래서 BAM은 이윤을 내는 것 자체도 선교로 보는 것이다. 반면에 BFM은 이윤과 상관없이 복음전도가 목표가 되는 것이다.

이런 흐름들은 비즈니스를 하는 모든 그리스도인들이 사명감을 가지고 사업을 하는 측면에는 장점이지만 선교라는 특별한 영역을 구분하지 않음으로 선교의 특수성과 전문성을 약화시킬 수 있다. 이는 만일 모든 것이 선교이면 아무것도 선교가 아니다라는 스티븐 닐의 말이 사실이 되는 것이다.

이런 장단점을 이해하면서 BAM 운동을 활성화하는 것은 선교에 도움이 되지만 일방적인 BAM만을 주장하는 것은 또 다른 문제를 야기 시키게 된다. 필자는 BAMBFM의 균형을 유지하면서 BAMBFM의 개념을 구분하여 비즈니스 선교를 활성화시키는 것이 필요하다고 본다. 다시 말하면 모든 비즈니스를 하는 그리스도인들에게 BAM의 개념을 통해 그들이 사명을 가지고 사업을 하도록 격려하고 또한 전임 선교사로 헌신하는 비즈니스 선교사들에게는 재정과 사역의 책무를 가지고 선교단체의 훈련과 관리를 받도록 해야 한다. 재정과 사역의 책무를 이행하는 전임 선교사가 아니면서도 BAM을 한다는 명목으로 선교사라고 하면서 전임 선교사의 영역을 흐트러뜨리는 것은 주의해야 한다. 이런 구분이 되지 않는다면 모든 그리스도인들이 제사장의 직분을 가졌기에 목사의 직분이 따로 필요 없다는 논리와 같다. 이런 경우 목회자와 평신도의 구분이 없어지고 신학의 무용론을 주장하게 되는 결과를 가져온다. 이처럼 BAM을 주장하는 사람들은 BAM의 관점에서 사역을 하는 것으로 제한하고 선교의 영역에서는 BFM의 관점을 가지고 사역을 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교회의 선교 운동에서는 BAM의 개념으로, 전임 선교사로서 선교단체에서 파송 관리는 BFM으로 하는 것이다. 선교단체는 선교사를 훈련하고 허입을 관리하는 해외 선교전문기관이기에 비즈니스 자체가 목표가 아니라 직접적인 선교사역이 목표가 된다. 그럼으로 비즈니스가 곧 선교가 되는 BAM은 선교단체에서 적용하기에는 한계가 있는 것이다. BAM은 교회에서 성도들에게 비즈니스를 통해 하나님이 부르신 선교의 사명을 감당하도록 격려하는 데 사용되어야 할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BAMBFM은 반대되는 개념이기 보다는 서로 협력하고 보완하는 관계라고 이해할 필요가 있다.

BAM의 개념을 가진 평신도가 해외에 가서 사업을 할 때 사업을 잘 한다면 하나님 나라의 확장에 여러 가지로 도움이 될 것이다. 비즈니스를 통해 해외에 나가게 될 때 따로 선교사 비자를 받지 않아도 된다. 비즈니스맨으로 들어가게 되면 복음을 거부하는 현지인들에게 위협적인 존재가 되지도 않는다. 복음을 전하는 사람이 아니라 물건을 파는 사람으로 인식되기 때문이다. 비즈니스맨들은 현지 사람들과 쉽게 접촉할 수 있으며 인간의 삶에 대해 쉽게 나눌 수 있다. 비즈니스맨이 선교에 대한 의식이 있다면 굳이 파송을 받지 않아도 BAM의 개념으로 사역할 수 있고 상황에 따라 선교전략을 융통성 있게 활용할 수 있다.

그러므로 한국에서 비즈니스를 하는 그리스도인들이 먼저 BAM의 정신을 갖도록 하는 것이 필요하다. 교인들에게 있는 곳에서 선교적인 삶을 살 수 있도록 격려하고 인도하는 것이 교회의 사명이 되어야 한다. BAM의 개념이 교인들에게 잘 심어진다면 그들이 해외에 나갔을 때 선교의 중요한 일면을 감당하는 것이다. 한국에서 BAM의 정신으로 사업을 하지 않는 그리스도인이 해외에 나가서 BAM 선교사가 될 수는 없다. 사업을 하는 그리스도인이 사업하러 해외에 가게 된다면 여건이 허락하는 한 전문인 선교훈련을 받고 나가는 것이 좋다. 훈련을 통해서 선교사적인 삶에 대해 배우고, 타문화의 삶에 대해서도 배울 수 있기 때문이다. 비즈니스 선교가 필요한 시대에 왜곡된 비즈니스 선교의 개념은 오히려 많은 부작용을 낳을 수 있기에 교회와 성도들은 BAMBFM의 개념을 정확히 이해하고 자신에게 주어진 비즈니스의 은사를 잘 활용하는 것이 필요할 것이다.

6. 비거주 선교사

선교지에 장기적으로 거주하지 않지만 일정 기간 방문하여 사역하는 선교사를 비거주 선교사라고 한다. 선교지에서 살면서 장기 선교사로 사역할 수 없는 경우에 단기로 방문하여 필요한 사역을 감당하는 선교사다. 비거주 선교사의 유형은 다양하다. 1-2 주의 단기 선교 여행을 비롯하여 선교사들을 위한 다양한 멤버케어나 세미나 인도, 현지선교사 사역을 단기적으로 도와주는 다양한 형태의 사역이 있다.

한국에 복음이 처음 들어온 19세기 말에 중국 체푸에서 활동하던 네비우스(John L. Nevius)라는 선교사가 한국에 들어와 2주 동안 신임 선교사들에게 강의를 하였다. 그 때 당시에 한국에 온 선교사들은 대부분 신학교를 갓 졸업한 2,30대의 청년들로서 해외 선교에 대한 경험이 거의 없었고 이로 인해 그들은 한국 선교에 많은 시행착오와 갈등을 겪고 있을 때였다. 이들은 네비우스의 강의를 듣고 나서 그 때 당시에 한국에 필요한 선교 정책을 만들었다. 그 정책을 네비우스 정책이라고 한다. 네비우스 정책은 한국에 처음 들어온 새로운 선교사들에게 꼭 필요한 선교의 지침이 되었고 장차 한국교회의 성장에 지대한 영향력을 끼친 선교전략이 되었다. 네비우스 선교사의 입장에서는 중국에 거주하는 선교사로서 한국에 2주 동안 들어와 신임 선교사들을 교육한 것이다. 네비우스는 한국 입장에서는 비거주 선교사였지만, 그의 2주 동안의 비거주 사역은 초창기 선교사들의 사역 방향에 좋은 영향을 미쳤고 한국 교회 성장에도 결정적 역할을 한 것이다. 비거주 선교가 이처럼 선교지에 거주하지는 않지만 선교 현지에 결정적인 도움이 될 수도 있다.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선교사로 나가고 싶지만 가정 상황이나 여러 가지 이유로 선교지에 거주할 수 없는 경우가 있다. 이럴 경우에 비거주로 선교지에 단기간 방문하여 선교사역을 할 수 있다. 물론 선교의 효과적인 면에서도 비거주를 잘 활용할 경우에 좋은 결과를 맺을 수도 있다.

비거주 선교사의 사역 영역은 다양하다. K목사는 선교지에 있는 신학교에 정기적으로 방문하여 신학을 강의함으로 신학생들을 키운다. L목사는 미국의 한 주에서 인가를 받은 학교 자격을 가지고 교수 팀을 만들어 선교지에 직접 들어가 학생들을 모집하여 계절학기 형태의 신학교를 운영하기도 한다. G선교사는 1-2달에 한 번씩 1-2주 간격으로 요청하는 선교지에 방문하여 현지인에게 전도훈련을 시키고 직접 전도하는 사역을 한다. 또 다른 K선교사는 일 년에 몇 차례씩 선교사 모임에 참석하여 심리 상담 세미나를 개최하고 상담이 필요한 선교사들에게 상담을 통해 멤버케어를 한다. C집사는 평생 동안 자신이 하던 사업의 경험을 가지고 각 선교지를 방문하여 비즈니스 선교를 하는 선교사들에게 조언과 더불어 필요한 도움을 준다. J선교사는 직업이 교사였는데 한국에서의 학교 교사를 그만두고 선교단체에 비거주선교사로 허입을 받아 선교지에서 홈 스쿨을 하는 선교사 가정을 방문하여 1-3개월 동안 선교사 자녀들에게 보충 공부를 시켜준다. 이를 통해 홈 스쿨을 하느라 지쳐 있는 부모 선교사들에게 휴식과 재충전의 시간을 주며 선교사역에 집중할 수 있는 기회를 줄 뿐 아니라 선교사 자녀들의 미진했던 학습을 증진할 수 있도록 도움을 주고 있다. 선교사 한 가정의 자녀들만이 아니라 방문한 지역에 있는 선교사 자녀들을 모아 방과 후 학습 지도 등 다양한 도움을 주고 있다. 이 밖에도 영상, 사진, 건축, 의료 등을 통해서 비거주 선교를 할 수 있다. 이런 비 거주 선교사는 다양한 분야에서 필요할 뿐 아니라 거주하면서 하는 선교의 한계를 극복할 수 있는 장점이 있다. 특별히 현 시대는 교통이 발달되어 있기에 어디에나 쉽게 방문하여 꼭 필요한 것들을 적재적소에서 짧은 시간에 도울 수 있으며, 그 효과는 기대한 것 이상으로 크게 나타날 수 있다. 선교에 대한 부르심에 헌신하고 또한 기쁨으로 동참하고 싶지만 여건상 장기 선교사로 나갈 수 없는 사람들은 비거주를 통해 하나님의 선교에 얼마든지 동참할 수 있다. 비거주 선교야 말로 이 시대에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해외 선교에 자신의 은사와 직업을 가지고 동참할 수 있는 효과적인 선교방법이다.

7. 실버 선교사

실버 선교사란 지금까지 자신의 직업에서 은퇴하고 난 후에 선교사역에 동참하는 선교사를 말한다. ‘시니어 선교라는 단어를 사용하기도 하는데, 필자는 실버 선교라고 말하는 것이 좋다고 생각한다. 이는 젊었을 때부터 선교사역을 해 온 어느 정도 나이가 든 시니어 선교사와 자신의 직업에서 은퇴를 하고 선교에 새로 참여한 실버 선교사를 혼동하지 않게 하기 때문이다.

실버 선교사는 100세 시대에 조기 은퇴한 그리스도인들이 하나님 나라를 위해 의미 있는 인생을 살고자 하는 마음에서 시작되었다. 인생의 이모작, 혹은 인생의 하프타임의 의미가 부각되면서 많은 은퇴자들이 선교사로 가고자 하는 마음으로 실버 선교사가 된다. 실버 선교사는 지금까지는 세속적인 일, 혹은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을 해 왔지만 이제는 하나님의 나라를 위한 영적인 일에 직접적으로 참여하고자 하는 마음에서 실버 선교사가 되기를 원한다. 그러나 영적인 일과 세속적인 일을 쉽게 구분하는 것 보다는 하나님이 그리스도인들을 모든 직업에 부르셨다는 의미를 알고 선교지에서 선교를 위해 사역을 한다는 생각을 하는 것이 좋다. 그럼으로 목회자만이 아니라 비목회자, 즉 평신도들도 실버 선교사가 될 수 있다. 자신의 직업에서 은퇴하고 선교에 참여하는 사람은 모두가 실버 선교사가 될 수 있는 것이다.

실버 선교사의 장점으로는 사회 경험이 많음으로 대인 관계가 좋다는 것이다. 그러나 때로 사회생활의 경험이 오히려 다른 문화에서 적응하고 인간관계를 맺는데 단점이 될 수도 있다.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성공적인 경험을 한 사람들은 자신의 성공의 경험이 너무 강하여 다른 사람들의 사역이나 삶의 형태가 부족해 보일 수 있기 때문이다. 자신의 경험만을 고집할 수 있다는 것이다. 실버 선교사의 다른 장점은 자녀 양육의 부담이 적다는 것이다. 그러나 또 다른 관점에서 자녀 양육의 과정은 선교의 귀중한 도구가 될 수도 있다. 요즈음 선교후원이 줄어드는 상황에서 실버 선교사들은 재정적인 부담이 다른 선교사에 비해 적을 수 있다. 재정적인 부담을 안고 사는 것도 선교사의 또 다른 은혜라는 관점에서 본다면 재정적인 넉넉함이 완전한 장점이라고 할 수는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큰 장점은 선교자원이 많다는 것이다. 선교의 열기가 식어가는 한국 교회의 현 시대에 선교사 지망생들도 줄어들기에 선교가 계속되기 위해서는 실버 선교사를 활용하는 것이 하나의 대안이 될 수 있는 것이다.

실버 선교사는 장점만 있는 것이 아니라 또한 약점도 동시에 가지고 있다. 실버 선교사는 나이로 인해서 오랫동안 사역을 할 수는 없다는 단점이 있다. 나이가 들면 아무래도 건강이 점점 더 약해지기에 선교사역을 젊었을 때보다는 힘 있게 오랫동안 지속적으로 사역을 하기에는 한계가 있다. 나이가 들었다는 것은 좋은 경험이 장점이 되기도 하지만 성격이나 삶의 성향상 융통성이 적을 수도 있다. 실버 선교사는 타 문화에 대한 이해나 적응력이 떨어지는 것이 사실이다. 융통성이 부족함으로 인해 다른 선교사들과 협력하는데 한계가 있다. 협력하기 위해서는 넓은 마음으로 다른 사람을 이해하고 인정해야 하는데 실버들이 바라보는 젊은이들은 아무래도 미심쩍고 부족한 부분이 많이 보일 수밖에 없는 것이고 이는 협력사역을 방해하는 요소가 된다. 나이로 인해 현지 언어를 배우는 것에도 많은 한계가 있다. 선교사가 현지 언어가 안 되면 선교사의 가장 중요한 자질을 잃게 되는 것이다. 현지 언어를 통한 소통이 없는 선교는 선교사역에 결정적인 장애가 된다. 그런 면에서 실버 선교사는 언어를 통하지 않고도 전문 기술로 사역할 수 있는 사람이 선교지로 나가는 것이 바람직하다. 언어를 통하지 않고도 사역할 수 있는 전문 기술이 없다면 차라리 선교지로 나가지 않는 것이 좋다. 현재 현지에서 사역하고 있는 선교사들은 언어를 할 수 없는 실버 선교사들이 선교지에 오는 것을 부담스러워한다. 선교 사역에 언어의 한계가 있다면 후방에서 헌금이나 기도를 통해서, 혹은 가끔씩 선교지 방문하는 것을 통해(비거주) 선교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생각한다.

실버 선교가 필요한 시대인 것은 맞지만, 아무나 실버 선교사가 되는 것은 문제가 될 수 있다. 실버 선교에 대한 선교사 동원을 할 때에 실버 선교사의 장점과 유익한 것만으로 모집을 하는 것이 아니라 단점도 충분히 알려주어 꼭 필요한 사람들만이 실버 선교에 동참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필요하다.

8. 국내 외국인(이주민) 선교

해외 선교는 타문화권 선교이다. 선교는 단순히 지리적인 개념을 넘어서 문화적인 개념에서 이해되어야 한다. 해외에 있지만 디아스포라 한국인을 위하여 사역을 한다면 엄밀한 의미에서 해외 타문화권 선교라고 하기 어렵다. 반대로 한국에 들어온 다른 나라(문화권) 사람들을 대상으로 사역을 한다면 해외 선교라고 할 수 있다. 인도라는 나라는 한 나라이지만 인도 안에 많은 문화가 존재한다. 이들은 언어와 문화와 종족이 다르다. 바로 타문화권의 사람들이다. 그러기에 인도 사람이 다른 문화권에 들어가 사역한다는 것은 바로 해외 선교사로 사역하는 것을 의미한다. 그러기에 한국 내에 들어와 있는 외국인들을 위해 선교를 하는 것 또한 동일한 해외 선교가 되는 것이다. 이 경우 굳이 해외에 나가지 않아도 타문화의 사람들에게 선교하는 것이 된다.

현재 한국에는 170-180만 명의 외국인이 들어와 살고 있다. 유학생, 근로자, 다문화 결혼자. 영어교사, 연구원, 상사 주재원, 관광을 위한 여행자 등 다양한 직업과 종류의 사람들이 한국에 머물고 있다. 이들을 위해 그리스도인들이 사역을 할 때 해외 선교를 하는 것이다. 현재 자신이 학생이라면 학교에서 만난 외국인 학생들에게 친구가 되어줄 수 있다. 현재 자신이 학교 교사라면 다문화 가정의 자녀들을 돌봄으로 다문화 가정의 부모가 복음을 접할 수 있도록 할 수 있다. 노동자로 한국에 온 많은 사람들은 외로움과 열악한 직업 환경 가운데 살고 있다. 이들에게 찾아가서 필요를 채워주고 위로해주고 도움을 줄 수 있다. 현재 회사를 경영하는 그리스도인이라면, 노동자인 외국인들을 잘 섬김으로 선교를 할 수 있다. 현재 한국에 들어와 있는 이들의 필요를 채워주고 도와줌으로서 선교를 할 수 있는 것이다.

고향을 떠나 타국에서 산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정서적, 육체적, 문화적으로 힘든 일이 한 두 가지가 아니다. 그리스도인들이 그들의 필요를 도움으로 그들의 아픔을 나누고 복음을 전할 수 있는 기회를 찾게 된다. 타국에 나와 있는 사람들은 이런 어려운 상황으로 누군가 도움을 줄 때 마음을 쉽게 연다. 그러기에 이들에게 복음을 전하는 것은 해외에 선교사로 나가서 복음을 전하는 것보다 훨씬 더 쉽다. 그들이 한국에서 복음을 듣고 신앙인이 된다면 그들이 본국으로 돌아갔을 때, 그들은 그들의 나라에 들어가는 선교사가 된다. 국내 외국인들을 위해 사역을 하는 것은 타문화권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하는 선교일 뿐 아니라 동시에 그들을 선교사로 만들어 파송하는 일이 된다.

국내 외국인에 대한 선교에 이런 장점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한국교회가 아직도 국내 체류 외국인에 대한 관심이 적은 것은 사실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국 교회들 중에는 외국인들을 위한 다양한 언어의 예배를 드리면서 그들에게 복음을 전하는 일을 하고 있다. 무엇보다도 선교지에서 철수하는 선교사들이 전에 사역했던 나라 사람들을 찾아 선교하는 경우가 많아졌다. 선교사들이 사역하던 나라에서 철수하는 것은 힘든 일이지만 한국에 돌아와서 다시 그들을 위해 일할 수 있다면 그보다 더 좋은 것은 없다. 선교지를 철수하는 이유는 추방이나, 후원의 부족, 건강상의 문제, 가정적인 어려움 등 다양한 경우가 있다. 선교지에서 철수한 선교사들이 한국에서 외국인들에게 선교할 수 있는 기틀을 만들어 주는 것이 한국교회의 또 하나의 중요한 숙제이다.

전 집사님이라는 분이 있다. 전 집사님은 우리나라에 와 있는 외국인 근로자에게 그리스도를 전하는데 헌신하였다. 그들의 말을 하지 못하는 집사님은 처음에는 영어로 복음 전도지를 만들어 전했다. 러시아인과 우즈베키스탄인들을 만나게 되자 소련 선교회에 찾아가서 전도지를 번역해 달라고 부탁해 러시아판을 작성해서 직접 복사하여 나눠주고 다녔다. 중국어 베트남어, 스페인어, 프랑스어 등으로 점점 종류를 늘려갔다. 한번은 송우리에 있는 양계장에서 일하다가 감전되어 전신에 화상을 입고 병원에 버려진 사람이 있다는 이야기를 듣고 병원으로 달려갔다. 아무도 돌보는 사람이 없어서 방치되어 있던 사람인데 전 집사님이 날마다 찾아가서 상처를 닦아주고 의식이 흐린 환자에게 말을 걸어 고향과 가족에 대해 알아냈다. 집사님은 다른 우즈베키스탄 사람들에게 이 사람의 사정을 알리고 한국어를 알아듣는 사람에게 통역을 부탁했다. 통역을 통해서 하나님은 당신을 사랑하신다” “고향이 어디냐?” “가족에게 알려 주겠다라고 말했더니 통역하던 우즈베키스탄 사람이 눈물을 흘렸다고 한다.

그 후에 고향에 알려서 부친과 통화했으나 가난한 그들은 한국으로 올 수가 없었다. 결국 그 우즈베키스탄인 환자는 사망하였다. 그런데 그동안 밀린 치료비 때문에 병원에서 시신을 내줄 수 없다고 하자 이번에는 전 집사님이 우즈베키스탄 대사관을 찾아가서 이 사실을 알렸다. 그리고 자신이 다니는 교회에 지인들에게 모금하여 장례를 치르도록 도와주었다. 지금도 우즈베키스탄 노동자들이 머무는 숙소를 찾아다니면서 사랑을 전해주고 있다.”

선교사적인 삶을 사는 한 분을 소개하고자 한다. 필자를 몇 년 동안 후원했던 B집사님에 대한 이야기다. 필자가 1995년 선교지에 있을 때 한국 돈으로 매달 10만원씩 헌금을 하셨다. B 집사님은 필자가 아는 분이 아니었다. 선교사를 전혀 모르는 분이 어느 날 갑자기 헌금을 하는 일은 거의 없다. 필자는 안식년에 한국에 들어와 B 집사님을 만났다. 함께 식사를 하면서 B 집사님의 간증을 듣게 되었다. 선교사인 필자도 부끄러운 삶을 살았구나 하는 반성을 할 만큼 선교에 헌신된 분으로서 간증이 있었다. 필자는 집사님의 간증과 삶을 통해서 큰 은혜를 받았다. B 집사님 부부는 하나님의 은혜로 조그마한 공장을 운영하고 계셨다. 교회에 출석하면서 선교에 대한 비전을 듣고 자기도 동참해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어 필자를 후원한다고 하셨다. 필자만이 아니라 다른 선교사 10명을 후원하고 있다고 하셨다. 필자를 알게 된 것은 선교부에 재정이 부족한 선교사를 추천해달라고 해서 알게 되었다고 한다. B 집사님의 남편은 공장에서 밤새 일을 한다. 낮에 잠간 눈을 붙이시고 밤을 새면서 일을 하는 고생을 하신다. 그렇게 번 돈으로 선교 헌금을 하시는 것이었다. B 부부 집사님은 선교 헌금 하시는 것이 너무나 즐겁다고 하셨다. 그래서 힘들게 번 돈도 아깝지가 않다고 하셨다. 자녀가 넷이 있는데 자녀는 하나님이 책임져 주신다는 확신이 들어 과외를 하지 않고 그 돈이 있으면 선교 헌금을 한다고 하셨다. 집안에 커튼이 있는데 너무 낡아서 집에 오는 손님들마다 커튼을 교체하라고 해도 커튼을 갈 돈이 있으면 선교 헌금을 한다고 하셨다. 돈이 충분해서 선교 헌금을 하시는 것이 아니라 모든 생활에서 아끼면서 하는 것이었다. 선교사만 후원을 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어려운 목사님들과 개척교회도 여러 교회 돕고 있었다. 출석하고 있는 교회에도 충실하게 봉사하고 있었다. 이 집사님이 필자와 헤어지면서 인생사는 재미가 딱 하나 있다고 하셨다. 그 재미로 그 분들은 산다고 했다. 그 재미는 맛보지 않는 사람은 알 수 없다고 고백하셨다. 매달 우체통에 오는 선교부에서 보내는 선교 헌금 영수증을 받을 때 인생의 진정한 행복을 느낀다고 하셨다. 선교 헌금 영수증을 받는 순간 인생의 모든 고통이 사라지고 그렇게 기쁘고 즐겁고 만족할 수가 없다는 것이다. 그분의 마지막 말을 지금도 잊을 수가 없다. “저는 선교 헌금 영수증 받는 재미로 살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