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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교교육 연구원(IMER)

제 1-3강 현대 선교 동향 본문

선교 교육, 훈련 자료/선교학교 1힉기

제 1-3강 현대 선교 동향

후앙리 2020. 4. 8. 21:24

 

 

I. 선교동향을 왜 알아야 하는가?

 

선교지에서는 종이 한 장, 비닐봉지 한 장이 귀하다. 포장지가 내용물 보다 비싸기에 포장에는 신경을 쓰기 어렵다. 자연히 내용 자체에만 관심을 갖게 된다. 선교지에서 살다가 한국에 와 보면 물건을 포장하는 것에 놀랄 때가 많이 있다. 한국에서는 포장이 내용물보다 더 중요한 것처럼 느껴진다. 포장이 내용물보다 가격이 더 비싼 경우도 가끔은 있다. 꽃다발을 살 때 꽃 보다 더 아름다운 것이 포장지일 때도 있다. 꽃은 한 송이인데 꽃을 싼 장식품들은 얼마나 크고 화려한지 모른다.

 

요즘 젊은이들은 눈에 보이는 겉이 속 내용보다 중요한 것처럼 보인다. 그래서인지 젊은이들은 실력이나, 내실을 키우는 대신에 외모에 많은 신경을 쓴다. 입는 옷, 얼굴에 하는 화장, 머리 스타일 등이 젊은이들에게는 너무도 중요하다. 이처럼 이 시대는 내용물도 중요하지만 그에 못지않게 그것을 감싸고 있는 외형과 포장도 중요한 시대이다.

 

선교란 복음을 전하는 것이다. 복음은 내용이다. 내용인 복음을 전하기 위해서 현시대의 환경이라는 포장이 필요하다. 내용물인 복음을 잘 전하기 위해서 상황과 시대 환경을 잘 활용해야 한다. 선교 전략을 세울 때도 고려하는 것이 바로 시대 환경과 그 시대의 문화적인 요소이다. “선교 전략은 그 시대에 맞는 선교 방법이라고 정의 할 수 있다. 선교 전략을 세운다는 것은 시대가 요구하는 복음 전도의 방법을 준비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좋은 전략을 세우기 위해서 먼저 시대의 흐름을 파악하는 것이 필요하다. 좋은 전략으로 선교를 잘 하기 위해서는 시대와 상황을 파악하는 것이 우선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예수님이 말씀하기를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너희가 저녁에 하늘이 붉으면 날이 좋겠다 하고 아침에 하늘이 붉고 흐리면 오늘은 날이 굳겠다 하나니, 너희가 날씨는 분별할 줄 알면서 시대의 표적은 분별할 수 없느냐(162)” 고 하셨다. 날씨는 분별할 줄 알면서 세상을 파악하고 판단하는 능력이 부족한 사람들에게 예수님은 시대의 표적을 분별할 줄 아는 영적인 능력을 요구하셨다. 이처럼 오늘날 우리도 이 세상을 파악할 수 있는 능력이 필요하다. 선교를 하기 위해서 세상이 어떤 세상인가를 알아야 하며, 이 시대 상황에서 어떤 전략들이 필요한가를 살펴보아야 한다.

 

 

II. 세계와 선교 환경

 

1. 변화하고 있는 세상

과거에는 정보 하나를 찾는 것이 쉬운 일이 아니었다. 그러나 지금은 인터넷 포털 사이트를 열고 클릭만 하면 어떤 정보든지 그 자리에서 얻을 수 있다. 과거에는 배를 타고 선교지에 갔지만 지금은 비행기를 타고 하루 만에 세계 어디에나 갈 수 있다. 과거의 선교 도구는 단파 방송과 타자기였지만 지금은 컴퓨터와 영상 장비다. 컴퓨터 하나만 있으면 세상이 돌아가는 것을 세계 어느 곳에서나 알 수 있는 세상이다.

 

과거에는 선교지 소식을 선교지에서 보내주지 않으면 알기 어려웠지만 지금은 한국에서 오히려 선교지 소식을 더 빨리 알 수 있다. 반대로 한국에서 일어나는 소식을 한국 사람보다 선교지에서 더 빨리 아는 경우도 있다.

 

선교지 사람들은 전화선이 있는 전화기를 사용해보지도 않고 핸드폰을 사용하게 되었다. 전기가 없어 핸드폰 충전을 할 수 없는 지역도 있다. 물론 요즈음은 전기가 없는 지역에서도 핸드폰을 충전하는 방법을 가지고 있어서 핸드폰을 무리 없이 사용한다. 과거에 음성 녹음을 듣기 위해 카세트 테이프(cassette tape)가 있었다. 그 뒤로 영상 오디오 시스템인 비디오 테이프(VTR)가 나왔다. 그 다음은 CD(compact disk)가 사용되었다. 중국에서는 카세트테이프에서 바로 CD의 시대로 바뀌었다. VTR이 공급되기도 전에 더 빠른 시스템이 나온 것이다. 요즈음에는 스마트 폰이 나오면서 그동안 사용되었던 디지털 카메라, DMB(digital multimedia broadcasting), MP3 플레이어 등이 따로 필요 없게 되었다. 1-2년 후에는 또 어떤 변화된 IT 기술이 나올지 아무도 예측할 수 없는 시대다.

 

필자가 선교지에 처음 나간 1995년은 인터넷과 이메일이 존재하지 않은 시대였다. 필자가 사역했던 지구 정반대인 에콰도르에서 한국으로 전화를 하려면 양국 교환원에게 부탁을 해야 했다. 전화가 연결되어도 음성이 잘 들리지 않았다. 전화비용도 만만치 않았기에 가족들에게 전화를 자주할 수 없었다. 요즈음은 기도편지를 써서 이메일로 보내면, 보내는 동시에 한국에서 받아볼 수 있지만 그 때는 손으로 직접 써서 특급 우편인 DHL로 부쳤다. 후원자들이 필자가 보낸 기도편지를 받아 보려면 빠르면 2주일 혹은 한두 달 정도 걸렸다. 이런 시대였기에 필자는 선교지에서 한국의 소식을 들을 수가 없었다. 해외 토픽에나 나올 수 있는 그런 뉴스들만 에콰도르 현지 방송으로 통해서 한국의 중요한 소식을 들을 수 있었다. 한국 소식이 너무나 궁금할 때는 일 년에 몇 차례 정도 한국 대사관을 방문하여 그곳으로 보내온 신문들을 들춰보았다.

 

선교지에서 그런 시절이 있었던 때를 회상하면서 불과 몇 년 사이에 세상은 참으로 빨리 변해간다는 것을 느끼게 된다. 세상의 기술 변화는 아주 빠르게 바뀌고 있고 그 결과 사람들의 행동 양식과 삶의 방식도 바뀌어 가고 있다. 아울러 이런 정보와 기술의 발달은 미래가 어떤 시대로 변할 것인지에 대해 예측할 수 없게 만든다. 영적인 부분에서도 마찬가지로 우리는 예상할 수 없는 시대에 살고 있다. 이처럼 예상 할 수 없는 시대, 빠르게 변하는 시대에 선교도 빠른 변화를 가져와야 하는 것은 당연한 것이다. 빠른 변화에 대처하지 않고 과거의 방법이나 전략을 고집하는 선교는 좋은 열매를 기대하기 어렵다. 오늘날 선교에 있어서 중요한 것 중에 하나가 변화를 두려워해서는 안 되고 과거를 고집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변화하는 세상을 인지하고 빠르게 대처하는 선교를 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 시대의 특징은 세상의 모든 영역이 전문화되고 세분화되는 것이다. 이는 다른 사람과의 협력이 필요한 시대라는 뜻이다. 선교에 있어서도 전문성이 요구될 뿐 아니라 협력을 해야만 하는 시대인 것이다. 여기서 전문성이란, 선교라는 영역의 전문성 뿐 아니라 선교를 하기 위해 각자가 가진 전문성을 활용해야 한다는 의미이다. 100년 전의 선교사는 혼자 모든 일을 다 했다. 선교사가 직접 집을 짓고 생선을 먹기 위해 그물을 치고 고기를 먹기 위해 닭을 직접 키우고 잡아야 했다. 그러면서 성경 번역도 하고 교회도 세우고 아이들을 가르치고 어려운 사람들을 도왔다. 선교사 혼자서 그 지역에 필요한 모든 일을 다 해야만 했다. 그러나 지금은 혼자 다 하는 시대가 아니라 각자 자기의 전문성을 가지고 다른 은사와 전문성을 가진 사람들과 협력해야 하는 시대이다.

 

선교는 큰 항공모함을 움직이는 것과 같다. 항공모함이 제 역할을 감당하기 위해서는 항공모함에 탄 사람들 각자가 해야 할 영역이 분명히 있다. 기계를 다루고 고장 난 부분을 고치는 기술자 정비공이 있고 항공모함의 비행기 조종사도 있고, 선장도 있다. 포를 쏘는 군인도 있고 배를 관리하는 사람도 있고 작전을 짜는 리더도 있다. 식당에서 일하는 조리사, 빨래하고 청소하는 사람, 짐을 나르는 사람도 있으며, 나침반과 항해를 하는 사람도 있다. 이런 모든 사람들이 항공모함을 움직이기 위해서 다 필요하다. 선교도 마찬가지다. 선교는 총체적 선교이다. 각자 자신의 전문성을 가지고 서로 협력해야 한다. 항공모함이 존재하는 목적은 분명하다. 적과 싸움을 잘 싸워 이기는 것이다. 각자가 자기 영역을 잘 지킬 때 싸움에서 이길 수 있다. 선교의 목적도 분명하다. 선교를 통해 결국 사람을 구원하고 양육하여 세계 복음화를 이루는 것이다. 이를 위해 자신에게 맡겨진 일을 잘 감당하며 다른 사람들과 협력해야 한다. 모든 것이 빠르게 변하는 시대에 변화와 다양성의 필요를 인지하고 전문성을 키우는 선교가 필요 한 것이다.

 

이런 변화하는 세상 속에서 하나님은 선교를 계속하신다는 사실을 인지하는 것이 필요하다. 중국의 과거 선교 역사는 선교사가 없는 지역에서 선교의 결실이 이루어진 하나님의 하시는 방법에 대해 새로운 도전을 주었다. 1951, 중국이 공산화되면서 그 때 당시에 중국에 있었던 약 3,000명의 선교사들이 거의 다 추방을 당하였다. 중국 교회 신자들은 교도소에 갇히거나 순교를 당하였다. 그 때 철수했던 선교사들은 중국 선교는 더 이상 불가능할 것이며, 중국 교회는 문을 닫게 될 것이라고 예상하였다. 그러나 40년이 지난 후에 중국이 개방되면서 중국 교회 상황이 외부에 알려지게 되었다. 지금 중국 그리스도인의 숫자는 추정해서 약 1억 명 정도라고 한다. 지난 40-50년 동안 중국교회는 선교사가 없이 이처럼 부흥을 한 것이다. 이는 하나님의 역사이며, 비록 중국 정부에 의해 선교사가 추방을 당하였어도 하나님은 여전히 중국에서 선교를 계속하셨던 것이다. 중국 뿐 아니라 선교사를 제한하는 이란 같은 나라도 복음이 급속도로 확장되고 있다. 선교지 상황이 바뀌고 어려워도 하나님의 선교는 하나님이 주인이 되셔서 계속된다는 것이다. 비록 세상은 하루가 다르게 바뀌고 선교의 현실은 어렵지만 선교하시는 하나님에 대한 믿음을 가지고 선교를 계속해야 한다는 것이다.

 

변화하는 세상 가운데서 선교의 주인이 하나님인 것을 인정하는 것이 우선되어야 한다. 변화하는 세상으로 불안해하기 보다는 선교하시는 하나님을 바라보고 의지하는 영성이 더욱 필요하다. 새로운 변화된 전략도 필요하지만 그 전에 선교하시는 하나님을 인정하고 선교의 말씀과 기도를 통한 기본을 유지하는 것이 우선되어야 할 것이다. 새로운 전략을 계획할 때도 하나님의 방법을 기다리고 하나님의 뜻을 찾는 자세가 우선 필요한 것이다. 변화하는 시대에 하나님에 대한 우리의 신앙을 지키고 모든 방향과 방법으로 하나님께 집중해야 할 것이다.

 

오늘날 또 다른 선교의 특징은 선교가 모든 나라에서 모든 나라로 가고 있다는 것이다. 선교는 특정한 나라만 하는 일이 아니라 모든 나라가 하는 일이다. 선교사를 파송하는 국가 따로 있고 선교사를 받아들이는 나라가 따로 있는 것이 아니다. 비록 선교지 교회가 열악하더라도 그 교회도 선교하는 교회가 되는 것이다. 선교의 목표는 우리가 선교하는 선교지의 교회가 선교하는 교회가 되게 하는 것에 있다. 그럼으로 복음을 전하는 목적을 가지고 현지 교회가 선교하는 교회가 되도록 하는 것에 선교의 초점을 맞추어야 한다. 복음을 전하는 선교하면서 현지인들이 선교할 수 있도록 선교를 가르치는 선교가 되어야 한다. 현지 교회를 개척한다는 의미는 처음부터 그 교회가 선교하는 교회가 되도록 하는데 의미를 두는 것이다. 불과 30-40년 전만 해도 한국은 선교사 파송국가라기보다는 선교사를 받는 나라였다. 오늘날 한국이 선교사 파송 국가가 된 것처럼 선교지도 선교사 파송국가가 되는 목표를 정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중남미 지역은 아직도 선교사를 받는 선교지다. 한편으로 중남미도 많은 선교사를 세계 곳곳으로 파송하는 대륙이다. 아프리카도 선교사를 받는 대륙으로 생각하지만 우리가 생각하는 숫자보다 훨씬 많은 선교사를 다른 나라에 파송하고 있다. 세계에서 선교사를 가장 많이 파송한 그룹에 속한 선교단체인 SIM(serving in mission)의 국제 총제가 아프리카 나이지리아 사람인 조슈아 보군조코(Joshua Bogunjoko)박사이다. 필자가 아는 범위에서 한국 사람으로는 이런 국제적인 선교단체의 단체장을 맡지 못했지만 나이지리아 사람은 이미 유수한 선교단체의 지도자로 일하고 있다는 것은 우리의 선교에 대한 관점이 온 나라에서 온 나라로 넓혀야 한다는 것을 확인시켜 준다. 한국이 선교사를 2만 명 이상 파송했다고 선교대국이며, 오늘날 한국이 세계 선교의 주도권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하는 것은 위험한 생각인 것이다. 현재는 선교사를 받는 선교지이지만 그런 나라들도 앞으로 한국과 동일한 선교 파송국가의 역할을 감당할 수 있다는 생각을 갖는 것이 필요하다. 한국이 선교사 파송이 숫자가 많고 경제적으로 좀 잘 사는 나라가 되었다고 선교지 사람들을 무시하거나 교만해서는 안 된다는 의미이다. 선교는 선교지 사람들과 함께 하는 것이고 선교지 사람들을 섬기는 것이며, 그들도 세계 선교에 함께 동참하도록 하는 것이 오늘날의 선교다.

 

인도의 한 교회 지도자가 한국의 선교 모델을 가르쳐 달라고 요청하였다. 인도는 제3세계로서 선교하는 국가가 될 수 있도록 한국이 그 모델을 만들어 달라고 한 것이다. 그러나 이 인도 지도자가 한국으로부터 선교를 배우려고 보니 한국도 역시 서구 선교와 같은 모습으로 선교하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다시 말하면 한국도 제국주의적인 선교를 하고 있다는 것이다. 어떤 사람은 한국은 서구선교사보다 더 제국적이라는 말을 하기도 한다. 돈과 권위와 힘으로 선교하면서 선교지 사람들을 종처럼 다루는 제왕 주의적 태도를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한국 선교는 겉모습만 화려하고 속으로 들어가면 교만한 선교를 하고 있다는 것이다. 예수님처럼 성육신하는 선교를 하지 않고 있다는 것이다. 한국 선교는 인도 지도자의 요청을 들어 줄 수 있는 성육신의 선교의 모델을 보여줄 수 있는 선교를 해야 한다. 25천명을 파송했다고 숫자만 자랑하는 선교가 아니라 선교지 사람들도 동일하게 하나님의 선교를 감당해야 하는 귀중한 동역자라는 생각으로 그들과 함께 하는 겸손한 선교를 해야 한다는 것이다. 25천 명이라는 숫자는 하루아침에 물거품이 될 수 있다. 선교지는 변화되고 있으며 선교지가 바로 선교하는 국가로 변하고 있다. 온 세계 모든 국가와 족속이 함께 가야 하는 선교를 해야 하는 시대이다.

 

2. 평평한 세계

지금은 세계가 평평한 세계이다. 세계의 담이 무너지고 있다. 모든 영역에서 세계는 하나로 연결되어 있다. 혼자 독불장군처럼 살아갈 수 없는 시대가 되었다. 개인이나 한국만의 담을 쌓고 다른 세상과 불통하며 살 수 없는 세상이다. 한 나라의 경제 위기는 온 세계 모든 나라에 영향을 미친다. 유럽의 경제 위기와 미국의 2008년 경제의 어려움으로 세계가 함께 휘청거린 것을 경험하였다. 자연재해와 지구 온난화, 그리고 환경의 문제는 한 나라의 문제가 아니라 전 세계 공동의 과제가 되었다. 우리나라만 잘 살아보겠다고 해서는 살 수 없는 시대이고 그렇게 살아서도 안 되는 세상이다.

 

사람들의 이주는 특정한 지역에서 특정한 지역으로가 아닌 전 지역에서 전 지역으로의 이주가 이루어진다. 요즈음 해외에 나가 일하는 것은 과거 십년 전에 한국의 지방 도시로 가서 일하는 것과 같이 그렇게 어렵지 않은 일이다. 이제는 해외에 나가 하는 사업도 한국에 관련된 사업을 하는 것이 아니다. 한국으로 취항이 거의 없는 중동 지역의 항공사 승무원의 거의 절반이 한국 사람이다. 글로벌(global)이라는 의미는 지리적이고 물리적으로 한국과 연결이 없이 세계로 가는 것을 의미한다. 한국의 자원을 가지고 가는 것이 아니고 기술과 실력만을 가지고 세계로 가는 것이다. 어떤 사람이 무역을 하고 회사를 차리는 것도 한국과 연관 있는 것만은 아니다. 한국인이 해외 지사로 가는 것은 한국 기업에서 해외 시장을 개척하기 위해서만이 아니다. 해외에 한국 공장을 설립하기 위해서 가는 것만도 아니다. 해외로 나가 사업을 한다는 것은 한국과 직접적인 관계없이 나가는 경우가 많이 있다. 해외에 회사를 세운 사람은 분명 한국인이지만 그 회사가 일하는 내용은 한국과 전혀 상관이 없는 것이다. 해운 회사는 여러 회사로부터 물건을 모아서 비행기나 선박에 실어주고 도착해서 필요한 곳 까지 배달해주는 이삿짐을 나르는 회사라고 할 수 있다. 예를 들어, 한국인이 세운 한 해운 회사가 필리핀에 지사를 세운다면 필리핀에서 하는 일은 필리핀 원자재를 중국으로 보내는 일을 한다. 중국에 있는 이 회사의 다른 지점은 필리핀에서 온 원자재를 중국 공장에 배달을 한다. 이 회사는 중국 공장에서 나온 물건을 다시 일본이나 미국으로 가는 운송을 담당하는 것이다. 그 회사를 운영하는 사람은 한국 사람이지만 한국과는 전혀 상관없는 일을 하는 하나의 예이다. 이것이 국경의 담이 무너진 글로벌 시대의 평평한 시대의 한 모습이다.

 

이런 시대에 우리는 어떻게 선교를 할 것인가? 선교 현지에서 직접 현지의 필요를 채워주는 선교를 해야 한다. 한국에서 어떤 물적 자원을 가지고 가는 것이 아니라 현지에서 필요한 자원을 공급해서 그곳에서 그들의 필요를 채워주는 일을 하는 것이다. 다시 말하면, 한국에서 지원 받아서 그것으로 무엇을 나누어 주고 한국과 관련 있는 사역을 하는 것이 아니라 선교사가 현지에서 자원을 가지고 선교지 사람들이 직접 선교의 일을 하도록 하는 것이다. 예를 들면, 현지에서 자비량을 하면서 현지 사람들이 자립하여 살도록 하는 것이 하나의 예이다. 선교사는 현지에 필요한 선교 전략을 세우고 노하우나 지적 자원을 공급해주는 역할만을 하는 것이다. 현지 교회가 어떻게 자립하고 부흥할 수 있는지를 연구하고 전략을 세워주는 역할을 선교사가 하는 것이다. 선교사가 비즈니스선교를 한다면 그 비즈니스를 통해 현지인을 고용하고 그들이 스스로 설 수 있게 만들어 주어야 하는 것이다. 물적 자원을 한국에서 가져가는 것이 아니라 선교사가 가진 전문성을 가지고 현지에서 선교사 스스로 살아남을 뿐만 아니라 현지에 도움을 줄 수 있는 선교의 방향을 세우는 것이다. 한국만이 선교 할 수 있는 나라라는 자만심을 버리고 한국의 것을 선교지에 전해주는 것이 아니라 지금 열악한 선교지가 스스로 독립하고 선교를 할 수 있도록 다리역할을 하는 것이 한국교회가 해야 할 사명이다.

 

하나님 나라는 원래부터 평평한 세상 가운데 이루어지는 나라다.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차별이 없음이라 한 분 이신 주께서 모든 사람의 주가 되사 그를 부르는 모든 사람에게 부요하시도다”(10:12). 하나님은 모든 사람의 주가 되시고 그를 부르는 모든 사람에게 부요하신 분이시다. 차별과 구별이 없으신 하나님이시며, 그분의 나라도 차별이 없다. 인간 세상은 나라와 족속과 언어로 구분되어 있지만 하나님은 인류의 모든 족속을 한 혈통으로 만드시고 온 땅에 살게 하셨다(17:26). 하나님 나라에 속한 온 세상의 백성들을 하나님은 동일하게 사랑하시며, 모든 민족이 구원받기를 원하신다. 선교지와 피선교지의 구분을 없애고 모든 곳에서 모든 곳으로의 선교를 이루어가야 하는 것이다.

 

 

평평한 시대의 하나의 특징은 도시가 팽창하고 있는 것이다. 평평한 시대에서는 도시 선교에 집중할 필요가 있다. 전통적으로 선교의 대상을 정글이나 개방되지 않은 부족, 미전도 족속, 혹은 인디언을 우선으로 생각하였다. 특별히 미전도 지역을 선교의 우선지역으로 주장하는 사람들은 복음을 한 번도 들어보지 못한 사람들이 복음을 들을 우선권을 갖는다고 주장한다. 이런 이유로 복음이 이미 들어간 지역에는 선교의 우선순위에서 밀려난다. 그러나 성경에는 복음을 듣지 않는 사람과 들었지만 안 믿는 사람을 구분하지는 않는다. 복음을 믿는 사람과 믿지 않는 사람, 두 종류만이 존재할 뿐이다. 복음을 믿는 사람은 믿지 않는 사람에 대한 전도의 책임이 있을 뿐이다. 도시에는 복음을 이미 들었던지 듣지 않았던지 간에 믿지 않는 사람들이 몰려 있는 곳이다. 물고기를 잡으려면 물고기가 있는 곳으로 가야 한다. 이처럼 복음을 들을 수 있는 사람이 어디 있는가를 보고 그곳으로 가야 한다. 바로 도시에 사람들이 몰려 살고 있다는 것이다.

 

1920년대에는 도시 인구가 7%였으나 1980년대에는 30%, 2000년대 초에는 40%, 2015년에는 50% 이상이 인구가 도시에 살고 있다. 2025년에는 도시 인구가 59%에 달할 것이라는 예상이 있다. 중남미는 전체 인구의 75%가 도시 거주자다. 20세기 말에는 100만 이상의 도시가 405개였다. 중국에만도 인구 100만 명 이상의 도시는 40개나 존재한다. 이러한 도시화는 세계 선교에 기회를 준다.

 

도시지역(%)

1990 2000 2025

도시인구( )

1990 2000 2025

전 세계

45 51 65

24 32 55

3세계

37 45 61

15 23 44

 

도시는 다인종, 다언어의 사회 특징을 가지고 있다. 사람들은 거대한 도시 군중들 속에서 고독과 외로움을 느끼며 산다. 도시는 복음의 수용성이 높다. 시골에서는 자신의 정체성을 포기하고 종교를 바꾸는 것은 어려운 일이지만 도시에서는 인간관계망에서 자유롭기에 수용성이 높다. 도시는 물질주의와 세속적주의적 성향이 있다. 물질주의는 도시가 제공하는 온갖 물건들을 소유하려는 욕심이 있다. 이런 가운데 도시 빈민의 문제는 심각하다.

 

도시에 인구가 많고 인간 삶의 문제가 많다는 것은 도시 선교의 중요성을 말해준다. 도시 중심의 선교는 부족이나 농촌지역에 복음이 들어가는 교두보가 된다. 그러기에 선교는 부족 선교라고 생각해서 정글로 들어가는 선교사가 훌륭한 선교사이고 도시에 있는 선교사는 문제가 있는 선교사처럼 비판하는 것은 잘못된 비판이다. 도시로만 가는 것도 문제이지만 많은 사람들이 몰려 있는 도시에 복음을 전하러 가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며, 이것이 평평한 시대에 전략적인 선교가 될 수 있다.

 

평평한 세상의 또 다른 특징은 세계 인구의 무게가 북반구에서 남반구로 옮겨지고 있다는 것이다. 남반구 도시에는 비기독교적, 반기독교적인 인구가 늘어나고 도시의 슬럼과 판자촌에 많은 빈민들이 거주한다. 인구가 남반구로 간다는 것은 앞으로 남반구가 세계 중심이 될 것이라는 뜻이다. 이 세상의 어떤 영역에서건 가장 큰 자원은 사람이다. 사람이 힘이고 사람이 많은 곳이 승리할 가능성이 높다. 한국도 발전하기 위해서는 인구를 늘려야 한다고 한다. 평평한 시대의 선교의 중심도 남반구로 옮겨져야 한다는 것이다. 남반구, 즉 가난한 나라들, 지금까지 선교를 받았던 나라들이 이제는 선교의 주체와 주인이 되어 세계 선교를 이끌어 가야 한다는 것이다.

 

그런 면에서 기독교 중심은 이미 북반구에서 남반구로 이동이 되었다고 할 수 있다. 기독교의 중심이 남반구가 될 때 기독교가 마침내 진정한 세계종교가 된다. 세계 복음화의 영적 부담이 이제는 서구에서 2/3세계로 옮겨졌다는 것이다. 지금까지 선교란 서구에서 비서구로, 백인에서 유색인족으로 가는 전통적인 개념이었고 2/3세계 교회들도 서구교회에 미국과 유럽 교회들은 우리들에게 왜 선교사들을 보내주지 않느냐고 했었지만 이제는 선교의 책임이 2/3세계로 넘어가서 한국을 비롯한 2/3세계 교회는 이런 시대적 사명을 깨닫고 선교의 책임을 다해야 할 때라는 것이다. 이제는 2/3세계 선교사 숫자가 서구의 선교사 숫자를 넘어섰다. 그렇다고 해서 서구 선교를 무시하거나 21세기 선교를 서구, 비서구를 비교해서 서구 선교를 폄하해서는 안 될 것이다. 서로 협력하는 동반자적 관계를 유지하는 것이 필요하다. 비록 서구 교회의 인적 자원은 줄어들고 부족할지라도 아직은 선교의 경험, 훈련 능력, 행정능력, 관리 능력, 재정, 전략 활용 면에서는 2/3세계 선교에 계속 도움이 필요할 것이다. 2/3세계 교회가 서구 교회보다 선교하는데 있어서 장점도 있기에 서로의 장점을 인정하고 함께 협력할 때 21세기 선교는 희망이 있다.

 

폴 피어슨은 2/3세계 선교의 장단점을 다음과 같이 말한다.

 

장점

전체 선교사 숫자가 급증하였다. 50년 동안 선교사는 네 배로 늘어났다.

선교운동의 국제화는 기독교는 서양 종교라는 부정적 이미지를 바꾸어 놓았다.

비서구권 선교사들은 선교현지와 정치 문화적 장벽을 덜 느낀다.

아시아나 아프리카 출신 선교사들은 다원화된 사회에 사는 것에 익숙하며 교회는 언제나 선교적 상황에 노출되어 있다는 것을 인식하고 있다.

비서구원 교회들의 신학은 대부분 철저하게 복음적이다.

비서구권 선교사들의 생활은 그들이 사역하는 현지인들의 생활과 가깝다.

비서구권 선교사들은 과감하게 새로운 선교 패턴과 새로운 교회 패턴을 시도한다.

비서구 선교단체들은 성령의 사역과 은사에 대해 열려있고 교회 지도자를 선택하고 훈련하는 방법에 있어서도 융통성을 발휘한다.

 

단점

역사의 교훈을 잘 배우지 않는다.

협력보다는 경쟁을 많이 한다.

선교 훈련이 부족하다.

선교자원이 지속적이지 못한다.

자문화 중심주의를 극복하기 어렵다.

비서구 선교사들은 복음 전도를 강조하고 교육과 의료기관을 통한 선교를 중시하지 않는다.

 

이런 평평한 세상에서 한국 교회는 어떤 전략으로 선교해야 하는가? 한국은 위치상 북반구에 속해 있지만 동시에 비서구인 2/3세계에 속해 있다. 경제적으로는 서구와 비슷한 수준을 유지하고 있으나 불과 30년 전까지만 해도 선교사를 받는 선교지였다. 선교사 파송 국가가 된 기간은 짧으면서도 경제적으로는 부유해졌기에 한국 교회만이 가져야 할 선교철학이나 방향이 부족하여 서구 선교를 여과 없이 그대로 받아들이는 오류를 범할 수 있다. 그 대표적인 것인 서구 선교의 제국주의적인 선교 태도이다. 제국적인 선교는 선교사들이 자신이 가진 물적, 인적 자원을 가지고 선교지에 무언가를 심어주고, 가르쳐주고, 도와주고, 개발해주는 것이다. 하나님 나라를 위해 선교지 사람들과 협력하여 세계 선교를 함께 이루어 가는 차원의 선교가 아니라 주는 자와 받는 자, 지배자와 피지배자를 구분하여 일방적으로 시혜를 베푸는 것으로 생각하는 것이 제국주의적인 선교라 할 수 있다. 한국 교회는 제국적인 선교를 벗어나 늦게 부름 받아 일터에 온 일군의 태도로 더욱 겸손하게 선교지 사람들을 존중하고 사랑하고 평등한 동역자로 여기는 것이 필요하다. 선교지를 변화시키는 것보다는 먼저 선교사가 스스로 변화되어 그 변화된 모습을 보여주는 삶의 선교를 해야 하는 것이다. 선교지에 있는 사람이 수단이 아니라 목적이 되며, 사역이 수단이 되는 그런 선교가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선교를 하러 가는 것이 아니라 선교적인 삶을 살기 위해 가는 것이다. 사람을 도와주기 위해서 가는 것이 아니라 선교지 사람들과 함께 살기 위해서 가는 것이다.

 

3. 포스트모던 시대 (post modernity)

21세기를 포스트모던 시대라고 한다. 포스트모더니즘은 복음과 선교에 밀접한 연관성이 있다. 과거의 모더니즘(근대주의:modernity)은 인간의 이성을 모든 지식의 근간으로 보았다. 모더니즘은 과학적 객관성, 귀납법적 논증, 물질세계의 조작이 강조되었다. 과학적 지식은 사실로 간주되었고 가치 판단은 배제되었다. 이 시대의 종교는 사적인 영역으로 국한되었고 공적 세계에서는 배제되었다. 이성이 지배하는 이런 모더니즘 시대에 선교는 헌신된 사람들에 의해서 이루어졌다. 인간의 이성이 우선되고 우상화되며, 이성이 판을 치는 속에서도 하나님이 선택한 사람들이 있었고 이들은 선교사로 헌신하였다. 그 시대는 이성이 우세했을지라도 일정한 기준은 있었고 복음도 하나의 기준이 되었으며, 복음을 인정하는 사람들은 신앙을 전하는 사람들이 되었다.

 

지금은 모더니즘이 끝나는 포스트모던시대(탈근대주의)이다. 포스트모더니즘에서 진리는 상대적이고 주관적이라고 본다. 다른 사람이 믿는 것과 내가 믿는 것이 동등하게 정당하다고 간주된다. 인간 자신의 감정과 다양한 견해가 존중되고 인간의 관계와 경험을 통해 의사소통을 한다. 한마디로 포스트모더니즘은 특정한 기준이 없다. 사람마다 기준이 다르고 그 다름을 존중해야 하기에 그 어떤 기준도 있을 수 없는 것이다. 그러기에 모두가 진리일 수 있다. 한편으로 이 시대는 모두가 진리이기에 그 어떤 것도 진리일 수가 없는 시대이다.

 

포스트모던 사회의 성격은 허무주의, 상대주의, 다원주의, 진리와 목적이라는 개념의 상실이다. 이 시대에 종교의 진리는 무시된다. 기독교의 유일한 진리인 복음의 가치를 인정하지 않는 것은 당연하다. 복음의 가치와 기준보다는 각자 개인의 생각과 주관적인 것을 존중함으로 복음의 기준은 없어지는 것이다. 이 시대가 말하는 기준은 사사기에서 말하는 각자 소견에 옳은 대로 행하는 것이다(21:25). 그러면 복음의 진리를 부정하는 이 시대의 선교사는 복음을 어떻게 전할 수 있는가?

 

포스트모던 시대 선교는 영적인 전쟁이 중요하다. 성령과 그분의 사역을 인정하는 태도, 그래서 성령을 의지하고 성령이 먼저 일하시도록 하는 영성이 요청되는 시대이다. 포스트모던 시대에 생각해 볼 수 있는 것은 중국의 선교역사다. 중국의 선교 역사는 하나님의 하시는 방법에 대해 새로운 시각을 갖게 한다. 하나님은 환경과 시대의 어려움 속에서도 선교를 계속하신다는 교훈을 준다. 중국을 통해서 식민지적 혹은 제국주의적 서양 선교 방식의 종식의 원인을 찾아 볼 수 있다. 중국은 선교사가 없는 지역으로서 선교의 결실이 이루어진 나라다. 현재 선교사를 지극히 제한하는 국가인 이란은 급속하게 복음이 확장되고 있다. 이는 선교의 주체와 주인은 선교사가 아니라 성령이심을 다시 한 번 일깨워준다. 철저하게 성령께서 일하게 하시는 태도가 선교사와 선교에 참여하는 사람들이 해야 할 기본적인 자세이다. 포스트모더니티 사회 환경에서 선교의 본질이란 성령을 의지하는 것이다. 성령이 선교사에 앞서서 먼저 일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성령이 주도권을 가지고 활동하시는 가운데 인간이 할 수 있는 영역을 찾는 것이다. 인간이 중심이 아니라 성령이 중심이 되는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 현 시대의 선교사는 영성이 있는 선교사여야만 한다. 영성이란, 성령을 의지하고 성령에 인도하심을 인정하는 믿음을 갖는 것이다. 영성은 기도를 통해 하나님과 깊은 교제를 하는 것이다. 영성은 말씀에 순전히 사로잡히는 것이다. 전략보다는 하나님의 역사를 기다리고 하나님의 뜻을 찾는 것이다.

 

4. 타종교의 부흥 시대

선교지 필리핀에서 사역할 때 필자의 둘째 딸이 어느 날 학교에서 숙제를 하다가 모르는 것이 있어 물어온 적이 있다. 그 때 숙제의 내용은 이슬람 종교가 왜 빨리 전파되었는가?, 왜 이슬람 신자가 세계에 많은가?” 하는 것이었다. 딸과 함께 그 이유를 찾아보면서 가장 중요한 이유는 이슬람 신자들의 모슬렘 선교에 대한 선교 의식이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무슬림들은 자신들의 종교를 전파하는 것이 그들의 인생의 최종 목표라는 것이다. 이를 위해 그들은 자신의 인생을 헌신하거나 자신의 재산을 드린다. 이 사실을 확인하면서 이런 생각을 하였다. “무슬림들은 진리가 아닌 것을 위해 헌신과 열정을 이처럼 뜨겁게 가지고 있는데 반해 그리스도인은 구원의 소식을 전하는 선교를 위해 어떤 생각을 하고 있으며, 얼마만한 희생이 있는가?” 하는 것이었다. 무슬림들의 열정적인 선교의 결과 무슬림 인구는 현재 약 14억 쯤 된다. 그 때 필자는 기독교 인구가 얼마인가를 확인하면서 깜짝 놀랐다. 복음적인 기독교인은 5억이 채 안 된다는 사실이다. 세계의 가톨릭 인구가 12억 정도이고 힌두교가 9, 불교가 3억인 것에 비하면 기독교인 숫자는 별로 안 된다는 것이다. 필자는 어렸을 때부터 기독교인으로서 기독교의 문화 속에서 살아오면서 기독교가 진리이고 참된 종교이기에 종교 중에서 가장 많은 기독교인 숫자를 가지고 있을 것이라는 생각이 있었다. 그러나 실제로 참된 복음의 힘이 너무나 미약하다는 사실을 확인하면서 충격과 함께 잠시 혼란 속에 잠겼었다. 참다운 진리인 복음이 왜 이렇게 힘이 없을까? 복음의 진리를 모르는 사람이 이렇게도 많을까? 왜 그리스도인들은 복음을 전하는 것에 대해 그토록 주저하며 머뭇거리는가? 이런 생각을 하였던 기억이 있다.

 

21세기의 이슬람은 전 세계 인구의 20%를 차지한다. 그 성장 속도는 기독교의 2배를 넘어서고 있다. 가톨릭과 개신교를 분리하면 이슬람이 가장 큰 종교이다. 일부 선교사들은 이슬람은 현대사회에 어울리지 않는 종교라고 하지만 이슬람 국가들은 석유자원을 토대로 1970년부터 전 세계에 급속도로 확장하고 있다. 오늘날은 이슬람의 르네상스 시대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기독교의 뿌리라고 할 수 있는 유럽도 이슬람의 세력으로 위기를 느끼고 있다. 점차 서구화 되었던 일부 이슬람 국가들의 여성들은 미니스커트를 벗어버리고 다시 차도르(chador)를 입는 시대가 되었다. 힌두교와 불교의 성장은 위협적이지는 않지만 그래도 인구 증가율에 따른 자연 증가가 꾸준히 이루어지고 있다. 한 마디로 이 시대를 타 종교의 부흥시대라고 할 수 있다. 이처럼 타종교의 성장은 선교의 과제인 회심과 개종을 어렵게 만드는 중요한 요인 중의 하나다. 타 종교가 확장되는 요인은 그들의 종교를 전파하는 삶의 양식에 있다. 이미 언급한 것처럼 이슬람이 팽창하고 있는 요인 중에는 그들의 이슬람 전파에 대한 의식이 가장 중요한 요인이라는 것이다. 기독교 선교도 결국은 물질이나 힘을 내세우는 어떤 사역이기 이전에 모든 그리스도인들이 선교에 대한 의식이 있어야한다. “선교 사역에 대한 헌신이 아니라 선교에 대한 헌신이다. 선교는 사역에 의해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인의 선교적인 삶에서 이루어지는 것이다. 선교가 인생의 목표가 되는 것이 바로 선교적인 삶이다. 선교사의 직함을 가지고 사역을 하는 것보다 우선되어야 할 것은 그리스도인 각자가 선교가 삶의 목표요, 삶의 방식이요, 삶의 근원이 되는 것이다. 선교를 위해 사는 그리스도인이 되는 것이다. , 선교는 그리스도인이 해야 할 하나의 선택 사항이 아니라 그리스도인의 삶 자체가 선교가 되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선교사를 얼마나 보냈느냐, 얼마나 사역을 했느냐 하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모든 그리스도인이 선교를 위해, 선교에 의해, 선교의 삶을 사느냐 하는 것이 중요하다. 그리스도인들이 무엇을 하든지 선교를 위해 한다는 의식으로 살아야 한다는 것이다. 그것만이 타 종교가 부흥하는 시대에 복음에 대한 선교가 이루어질 수 있는 것이다.

 

5. 물질주의와 빈부의 격차

20세기 들어서서 전 세계 경제는 눈부신 성장을 하였지만 이는 심한 부익부 빈익빈의 편중 현상을 낳았다. 세계는 빈부의 격차가 점점 더 심해지고 있다. 전 세계 부유한 20%의 사람들이 전 세계 총생산(WGP: gross world product)74.2%를 취하고 가난한 자 20%는 단 1.6% 밖에 얻지 못하고 있다. 월 소득 100불 이하의 절대 빈곤층은 18%를 차지하며, 이중 월 소득이 10불 이하인 극 절대 빈곤층도 2%나 된다.

 

이러한 빈부 격차는 선교하는데 어려운 장애가 된다. 부유층은 소비재의 범람과 물질 중심적인 사상으로 살기에 영적인 문제에 관심이 많지 않다. 반면에 빈곤층은 생존을 위한 극한 상황으로 밀려 물질적 구호와 생존에 매달리게 되기에 영적 관심이 적을 수밖에 없다. 매년 2,200만 명 이상의 사람들이 지금도 굶어 죽어가고 있다. 이들 중 5분의 45세 미만의 어린이들이다. 매일 5만 명의 어린이들이 소리 없이 죽어가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살기에는 한국은 너무나 부유하다. 매일 전 세계의 사람 중 12억의 사람들이 배를 채우지 못하고 잠자리에 들고 있다. 이처럼 빈곤한 사람들은 영적 관심보다는 빵을 원하는 사람들이기에 이는 오히려 선교의 장애가 된다.

 

특별히 남반구의 나라들은 빈부의 양극화가 가속화되고 있다. 이런 결과로 남반구는 북반구의 경제적인 지배를 받아 경제적인 식민지가 되어 간다. 계속해서 빈부의 격차가 커진다는 것은 가난한 사람들은 앞으로도 발전을 못 할 가능성이 많다는 것이다. 그들이 발전할 수 있는 것은 근본적으로 복음이다. 그 복음만이 그들의 가난과 열악함을 해결할 수 있다. 그런데 그 복음은 어떻게 전해지고 있으며, 어떤 힘을 발휘하는가? 바로 교육이다. 필자는 교육을 통해서만이 복음이 전해지고 선교지가 변화될 수 있다고 본다. 그 교육은 영적인 교육과 세상의 교육을 포함한다. 한국이 경제적으로 발전한 것은 교육이 주된 원인이었다. 교회가 발전한 것도 영적인 교육이 주된 이유였다. 이 시대에 선교사가 할 수 있는 일은 바로 현지인들의 교육을 위해 사역하는 것이다. 평평한 시대의 빈부의 격차가 심한 이 시대에 선교사가 할 수 있는 전략적인 방법은 바로 물질로 그 지역을 개발하는 것이 아니라 사람을 세우는 교육을 중심으로 사역을 하는 것이다. 현지인에 맞는 선교는 물질을 주는 선교가 아니라 교육하는 선교다. 물질주의가 만연해가고 빈부의 격차가 심해지는 이 시대의 해결책은 인간의 노력이 아니라 복음이며, 복음만이 인간이 영적인 필요뿐 아니라 물질적인 필요까지도 해결해주는 길임을 인식하는 선교를 해야 한다.

 

 

6. 테러와 대형 자연재해와 새로운 전염병의 위험

21세기의 또 다른 특징은 위험이 증가된 세상이라는 것이다. 오늘날은 환경의 오염, 에이즈 같은 유행병, 테러, 강간, 살해, 폭력이 횡행하고 있는 시대이다. 과거에도 테러가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특히 21세기 들어서면서 테러는 범세계적인 이슈가 되었다. 오늘날 선교지는 내전과 납치가 더 빈번히 일어나고 있으며 정신적인 압박이 어느 때보다 심하다. 옛날에는 몸의 건강을 유지하는 일이 선교사에게 가장 큰 숙제였다. 그러나 이제는 테러나 내전 등 현대 무기로 인한 위험이 더 큰 문제가 되고 있다. 선교사들은 언제나 테러와 핍박의 위험이 있고 인터넷으로 연결된 세상은 비밀이 없기에 선교사의 쉽게 신분이 드러나는 위험 속에 있다.

 

아직도 일부 한국 사람들은 전염병이 있었던 옛날이 더 위험했다고 생각하지만 테러 같은 인간의 공격이 더 심한 지금이 훨씬 어렵고 위험한 시대다. 그래서 선교사는 핍박을 각오해야 하고, 스트레스 속에서 사역을 감당해야 한다. 이런 시대에 어떻게 안전하게 사역을 할 수 있느냐가 또 하나의 선교사들의 숙제이기도 하다. 이런 세상 가운데서 선교사들은 위기 상황을 줄일 수 있는 삶을 살아야 하고 위기관리 차원의 선교를 해야 한다.

 

선교사들은 위기를 극복할 뿐 아니라 위기를 넘어서야 한다. 위기는 말 그대로 위험과 기회이다. 이슬람의 팽창은 미국이나 유럽에 위협요소가 되고 있지만 한국이나 3분의 2세계 선교사들에게는 오히려 기회가 되기도 한다. 이슬람권의 선교가 서구 중심이 아니라 3분의 2 세계 중심으로 흘러가는 것은 분명히 선교에 긍정적인 요인이 된다.

 

자연재해나 전염병들도 선교의 장해도 되고 때에 따라서는 기회도 될 수 있다. 네팔과 중국을 비롯한 동서남아 지역의 지진과 일본의 대형 지진으로 일어난 쓰나미가 선교의 좋은 기회가 되었다. 선교사들에게는 선교지가 보다 위험해지고 있는가 하면 또 다른 한편 평상시에 들어가기 힘이 들던 곳까지 구제나 개발 목적으로 들어갈 수 있는 기회를 얻게 된 것이다. 최근 몇 년 사이에 발생하고 있는 조류독감, 사스, 메르스, 지카 바이러스 등 새로운 종류의 전염병은 선교사들에게도 큰 위협이 되고 있다. 그러나 이런 전염병들은 선교사들에게 위협이 되기도 하지만 또 다른 사람들의 영적 필요를 위한 요인이 될 수도 있다. 초대교회 시대에 일어났던 전염병이 복음 전파의 기회가 된 것처럼 오늘날도 가난과, 재해와 질병은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일 수 있는 기회가 될 수 있다.

 

현재 세계는 혼란스러운 상황(disturbing situation)"에 있다. 그러기에 현 시대는 한마디로 혼란스러운 시대이다. 그러나 복음은 혼란한 사람들에게 찾아가 평화를 주는 소식이다. 세상이 어둡고 길과 소망이 없어 보일 때, 오히려 복음은 그 가운데서 빛이 되는 것이다. 선교는 복음의 빛을 어두운 세상에 비추는 것으로써 어둡고 혼란한 시대에 소망이 있다면 그것은 오직 선교를 통한 복음의 빛을 이 세상에 밝히 비추는 것이다.

 

 

III. 21세기 선교 이슈들

21세기의 세계와 선교 상황에 대한 이해는 시대에 맞는 선교전략을 세우는데 필수적인 요소다. 선교전략은 그 시대 가운데 세워지는 한시적인 방법이기 때문이다. 선교전략은 세계의 상황에 따라 융통성 있게 적용되어야 한다. 그리고 그 전략들이 현 시대의 선교 이슈들이 된다. 다음에서 열거하는 선교이슈들은 본서의 전 장에서 언급된 것들도 있지만 이 장에서 선교 이슈라는 영역으로 다시 정리하고자 한다. 이 이슈들은 지금 한국과 전 세계에서 일어나고 있는 선교의 현상들이다.

 

1. 다양화된 선교

세상과 시대는 변한다고 하였다. 세상이 다변화, 다양화 되는 시대에 전통적인 선교만을 고집할 수는 없다. 선교 방법은 상황에 맞는 과감한 전략을 사용해야 한다. 변화가 빠르고 다양화되는 세상에서는 어떤 특정한 선교 전략이 최상이라고 할 수 없다. 이것만이 시대를 변화시킬 수 있는 유일한 전략이라고 주장할 수 없는 것이다. 이 시대에는 다양한 선교 전략이 있음을 인정하고 최상의 선교 전략이 아니라 주어진 환경에서 적절한 전략을 세워 최선을 다해야 한다. 다양한 선교 전략을 이해하고 서로 다른 전략을 인정하며 협력하는 선교가 필요한 시대이다. 21세기에는 많은 선교전략과 더불어 다양한 사역의 기회가 생길 것이다. 하나님이 주신 다양한 은사와 경험들을 가지고 서로 협력하는 것이 효과적인 선교이다. 독불 장군식의 선교나 자신의 선교방법이 가장 효과적이며, 최고라고 주장하는 독선적이고 편협한 태도는 오히려 협력의 시대에 가장 뒤떨어진 선교일 수 있다. 스스로 자신의 사역에 대한 자부심을 갖는 것에 대해서는 자유이지만 그 생각을 다른 사람에게 주입시키려는 태도는 바람직한 태도가 아니다.

얼마 전에 필자는 선교사들이 모여 리더십 세미나를 하는 모임에 참석하였다. 그곳에서 유독 눈에 띄는 한 선교사가 있었다. 그곳에 모인 사람들은 모두가 동료선교사들이었다. 이 선교사는 만나는 선교사들에게 자기가 하는 사역을 소개하였다. 문제는 단순히 자신의 선교사역을 소개하는 것으로 끝내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선교사역이 가장 중요하며, 가장 효과적이라고 끈질기게 설명을 하는 것이다. 자신의 사역을 소개하려는 그 선교사의 노력과 열정은 귀하지만, 현장에서 자기 나름대로의 생각과 전략으로 선교를 하고 있는 상대 선교사들로 하여금 지치게 한다. 자기 사역만을 지나치게 강조하고 주장하는 것은 오히려 편협한 시각을 가진 선교사의 모습이다. 필자는 그 선교사를 보면서 자신만이 최고와 최상의 전략으로 선교를 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좀 이해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였다. 모든 선교사들은 자신의 사역에 자부심을 가지고 선교사역을 잘 감당하고 있다. 선교사들이 처한 상황을 경험해보지 않고서는 왜 그런 사역을 하는지에 대해서 옆에서는 자세히 알 수 없을 정도로 각자의 사역은 가치가 있다. 그러기에 주어진 상황 가운데 최선을 다해 사역을 하고 있음을 서로가 인정하는 태도를 갖는 것이 필요하다. 왜냐하면 이 시대는 빠르게 변화되는 시대이며, 각자가 다른 환경과 상황에 맞게 선교사역을 잘하고 있기 때문이다.

 

2. 단기 선교

오늘날은 옛날과 달리 한 직장에서 평생 일하는 시대는 아니다. 이 시대는 영원한 직장은 없으며, 같은 일을 가지고 직장을 옮기는 것을 어렵게 생각하지 않는 시대다. 또한 각자의 삶의 형태와 변화와 이동이 많은 시대다. 선교도 마찬가지로 이전처럼 한곳에서 평생을 바쳐 일하는 것이 능사가 아니다. 많은 사람들이 선교사가 되는 데 있어서 전 생애를 바치기 보다는 일생 중의 일부를 드려 헌신하기를 원한다. 물론 평생 동안 전 생애를 통해 선교에 헌신하여 사역하는 것이 잘못되었다는 말이 아니다. 오히려 평생 선교에 헌신하는 사람들이 줄어들고 있는 것은 안타까운 현상이다. 그러나 현실은 사람들이 직장을 자주 옮기는 것처럼 선교도 한정된 시간을 가지고 참여 하기를 원하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다는 것이다.

 

미국 선교사의 50%는 단기 선교사다. 이처럼 이 시대에 단기 선교도 장점이 많은 선교라는 것이다. , 단기 선교는 장기 선교사와 긴밀한 협력 관계를 통해서 사역을 할 때 효과적이다. 그러기에 단기 선교사는 선교지에서 선교사역을 할 수 있는 필요한 것을 본국에서 준비해 가야 한다. 선교지에서 배워가면서 필요에 따라 사역을 하는 것이 아니라 선교지에 필요한 것을 미리 준비해서 단기간에 사역의 목표를 성취하도록 해야 한다. 또한 단기이기 때문에 훈련이나 사역에서 장기보다 덜 준비하는 것은 아니다. 단기 사역은 단회적으로 끝나지 않도록 훈련을 철저히 받을 뿐 아니라 지속적이고 후속적인 사역으로 연결되도록 해야 한다. 현 시대는 단기 선교에 대한 관심과 전략이 필요한 시대이며, 장기 선교사가 줄어드는 시대이기에 성도들이 단기로라도 선교사로 헌신하는 것이 요청되는 시대이다.

 

3. 도시 선교

앞 장에서 이미 언급한 것처럼 이 세상의 인간 삶의 중심은 시골에서 도시로 변하고 있다. 도시는 단지 사람이 몰리는 곳일 뿐 아니라 인간 삶의 모든 역사와 형태가 통합적으로 이루어지는 곳이다. 이런 시대에 도시선교는 선교에 있어서 중요한 이슈이며, 도시에 집중하는 선교는 계속 활성화될 것이다.

 

4. 비즈니스 선교

현 시대는 비즈니스 시대라 할 수 있다. 수많은 그리스도인들도 비즈니스를 하기 위해 해외로 나간다. 이들이 선교의 비전을 가지고 선교하는 비즈니스맨으로 살아가는 것이 선교의 중요한 축을 이루게 될 것이다. 그리스도인들의 비즈니스는 단순히 이윤추구만을 위한 사업이 아니라 사업을 통해서 현지인들에게 선교하는 과정과 수단이 되는 사업이 되어야 하며, 비즈니스 선교를 잘 활용할 때 세계 복음화는 효과적으로 이루어질 수 있을 것이다.

 

5. 디아스포라 선교

지금은 전 세계에 한국인들이 살지 않는 나라가 거의 없다. 한국인들은 해외에 나가면 먼저 교회를 세우고 교회를 중심으로 공동체를 형성한다. 현재 한국에서는 전도가 잘 안 된다고 하지만, 해외에서는 그곳에 살고 있는 한국인들에게 전도가 잘 되고 있다. 한국인들이 해외에서 신앙생활을 하면서 선교적인 마음을 품고 선교적인 삶을 산다면 무엇보다도 효과적인 선교가 이루어질 것이다.

 

한국인 디아스포라 뿐 아니라 전 세계에 흩어져 있는 중국 화교들과 이슬람교, 힌두교의 디아스포라는 기독교 선교에 있어서 기회와 동시에 도전도 되고 있다. 디아스포라가 가는 곳에는 그들의 문화만이 아니라 종교도 함께 따라간다. 그들이 거주하고 있는 곳이 그들이 가진 종교를 위한 선교기지가 될 것이다. 그들이 있는 곳에서 그들은 선교의 중요한 인력 자원이 될 것이다. 디아스포라 선교가 21세기에 중요한 선교의 이슈가 될 것이다.

 

6. 실버 선교

현 시대는 직장인들이 일찍 퇴직을 하는 시대다. 이런 상황에서 일할 수 있는 나이에 퇴직을 하는 그리스도인들이 새로운 일자리를 찾기 보다는 선교에 관심을 가지고 참여하는 비율이 늘어나고 있다. 실버들은 평생 동안 하나의 전문성을 키워온 사람들이다. 그 전문성을 선교에 활용하는 것은 세계 선교에 있어서 무엇보다도 중요한 자원이다. 전장에서 언급한 것처럼 직장에서 은퇴한 사람들은 경제적으로도 여유가 있고 자녀를 양육해야 하는 부담도 적고 아직은 일할 수 있는 건강이 있다. 이들이 선교에 참여하는 비율이 늘어나면서 한국 선교는 또 다른 방향으로 선교를 계속 이어갈 수 있는 소망이 있다.

 

7. 다문화권 선교

평평한 세상은 국경의 담을 허물었다. 단일 민족이었던 한국도 예외는 아니다. 한국은 단일민족이라는 자부심으로 살아왔지만 이제는 외국인을 받아들이지 않으면 안 되는 상황에 처해 있다. 지금까지 약 200만 명에 가까운 외국인이 한국에 들어와 살고 있지만 앞으로는 더 많은 외국인들이 들어올 것이다. 이들은 사업가나 근로자, 유학생, 혹은 결혼을 해서 가정을 이루는 사람들이다. 이들이 한국 선교가 감당해야 할 또 하나의 선교의 대상이다. 이들이 한국에서 신앙을 갖게 되었을 때, 단순한 신앙인을 만드는 차원을 넘어 또 하나의 선교의 자원이 된다는 사실이다. 한국에 정착해서 살기도 하지만 많은 사람들이 그들의 본국으로 되돌아가기 때문이다. 선교를 단지 지역적인 한계를 뛰어 넘는 영역으로만이 아니라 타문화를 대상으로 하는 영역으로 볼 때 한국 내의 다문화권 선교는 그 어떤 선교보다도 중요한 이슈가 된다.

 

8. 구제와 지역 개발 사역

이 세계는 평평한 세상이 되었지만 빈부의 격차는 심화되고 있다는 것을 언급하였다. 한국의 경제는 날로 성장하고 있으며, 한국은 원조를 받는 나라에서 주는 나라로 변했다. 경제적으로 발전한 한국 사람들은 가난한 나라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고 구제와 개발을 주 사역으로 하는 NGO 단체들은 계속 발전하고 있다. 선교의 영역에 있어서 앞으로도 계속해서 구제와 지역 개발을 통한 선교 사역이 발전할 것으로 예상된다. 구제 사역을 통한 선교가 또 하나의 중요한 선교의 역할을 감당할 것이다.

 

 

9. 멤버케어(선교사 돌봄)

선교는 혼자 하는 것이 아니라 서로 돕는 것이다. 선교사를 돕는 것도 또 하나의 귀중한 사역이다. 한 선교사를 잘 도우면 그것이 바로 선교다. 그 선교사를 도움으로써 내가 해야 할 선교를 그 선교사가 대신 하는 것이 됨으로 선교사를 돕는 것이 바로 내가 해야 할 선교를 하는 것이다. 한 선교사가 탈진해서 더 이상 사역을 못할 경우, 멤버케어를 통해 탈진한 선교사가 회복된다면 그 선교사가 사역을 계속할 수 있게 될 것이다. 그러기에 멤버케어 자체가 선교 사역이다. 현재 2만 명이 넘는 선교사가 멤버케어를 통해 도움을 잘 받는다면 한국 선교는 계속해서 발전해 나갈 수 있을 것이다.

 

오늘날 선교사를 보살피는 좋은 수단 중의 하나는 전자 매체(E-care)이다. 현지 방문이나 직접 선교사를 만나서 케어하는 것이 가장 효과적이지만 전자 매체를 통해서도 지속적으로 선교사들과 대화하며 케어를 할 수 있다. 인터넷을 통한 화상 전화가 가능하게 되었기에 과거처럼 선교사가 연락을 신속히 할 방법이 없어서 당하는 어려움은 사라지고 있다.

 

10. 아동 사역

오늘날 세계 아동 인구의 6분의 1이 위험 속에 있다. 아동들은 에이즈로 희생되고 버림받고 성매매의 도구가 된다. 군대에 끌려가고 자살하고 7초마다 굶주림으로 아이들이 죽어가고 있다. 어린이들에 대해서는 예수님이 특별한 관심을 가지셨는데, 이는 어린아이들에 대한 사역의 중요성을 말해준다. 4세에서부터 14세까지의 어린이와 청소년에 초점을 맞추는 4-14 창문 운동사역이 활성화 될 것이며, 아동 사역이 더욱 증가할 것이다. 어린이 사역의 장점은 적은 투자에 비해 큰 성과가 있고 거시적인 안목을 가진 사람들이 미래를 준비할 수 있는 사역이다. 어린이 사역은 예수님시대부터 지금까지 여전히 선교에 중요한 부분을 차지한다.

 

 

11. 파송과 후원 구조의 변화

한국 교회의 성장속도는 주춤한 상태이다. 선교에 대한 열기도 예전 같지는 않다. 그렇다고 선교하는 교회가 줄어든다는 의미는 아니다. 지금까지는 감정적, 혹은 유행을 따라 선교에 동참한 경우도 있지만 이제는 그런 거품들이 빠지게 될 것이다. 자신을 드러내기 위해 참여한 교회나 성도들은 차츰 그 열기가 식어가겠지만 진정으로 선교의 필요성과 하나님의 부르심에 따라 선교에 동참하는 사람들은 더욱 늘어갈 것이다. 다만 한국 교회 교인들의 감소가 선교에 대한 참여 감소로 이어질 것은 확실하다. 장기 선교사를 위한 후원금이 줄어들 가능성이 많다. 그러나 단기 선교나 자신의 은사와 직업을 가지고 다양한 방법으로 선교에 참여하는 사람들은 계속해서 늘어날 것이다.

 

12. 남북통일

남북통일은 선교에 지각 변동을 가져오게 될 것이다. 통일이 어떤 형태로 이루어질지, 언제 이루어질지 아무도 알 수 없지만 남북관계는 선교에 결정적인 영향을 끼치게 될 것이다. 남북통일이 남한의 경제적인 부담이 있는 방향으로 이루어질 때 교회의 해외 선교가 대한 관심과 참여가 줄어들 가능성이 있다. 현재 한국에서 사역지가 없는 많은 전임 사역자(목회자)들의 향방도 남북관계에 많은 영향을 받을 것이다. 그들은 해외 선교보다는 북한 선교에 투입될 가능성이 많다. 남북통일이 되면 세계 선교는 어떻게 될까? 세계 선교에 참여하는 사람들은 이 부분에 질문하고 미리 대처해야 할 것이다.

 

13. 교회 개척과 제자훈련

총체적이고 다양한 선교 방법은 복음의 본질에 대한 질문을 하게 한다. 다양화되고 전문화되는 선교는 한 생명을 구원하는 선교의 본질적인 부분과 어떤 연관을 가져야 하는지에 대한 질문을 해야 한다. 세상은 다양한 필요에 대한 요구를 하지만 결국 세상의 변화는 한 생명의 변화에서부터 시작된다. 그럼으로 복음 전도의 직접적인 사역인 교회 개척과 제자훈련을 통한 사역에 더 많은 집중이 일어날 가능성이 있다. 교회개척과 제자훈련 사역이 총체적 선교로 인해 선교의 중심에서 밀려나는 것처럼 보이지만 교회개척과 제자훈련 사역은 계속해서 선교의 중심에 있어야 할 것이다.

 

제자훈련 사역은 또 다른 의미에서 현지인 지도자를 세우는 사역이다. 예수님께서 세계를 복음화하기 위해 수많은 사람들을 선택하여 그들로 하여금 복음 전파의 사명을 감당하도록 하는 인해전술을 사용하지 않으시고 많은 사람들의 지도자가 될 수 있는 소수의 제자들을 세우셨다는 것은 오늘날 선교사들이 선교지의 복음화를 위해 무엇을 해야 하는지를 가르쳐준다. 그것은 현지인 지도자들을 세워 그들로 하여금 현지복음화를 위한 일군이 되게 하는 것이다. 선교는 선교사가 혼자서 모든 일을 다 감당하는 것이 아니며, 그렇게 할 수도 없다. 선교사는 현지 복음화라는 거대한(?) 꿈을 가지고 선교지에 가지만 진정 그것을 이룰 수 있는 방법은 현지인 한 사람의 지도자를 세우는 것에 있다. 현지 복음화는 현지인들에 의해 이루어지며, 선교사는 그 과정 가운데 현지 지도자들을 세우는 역할을 감당하고 잠시 있다가 다시 떠나는 나그네다. 그러기에 선교사가 최선을 다해 해야 할 선교 사역은 바로 현지인 지도자를 세우는 것이다. 현지인 지도자를 세우는 결과에 따라 선교사의 사역의 평가가 이루어질 것이다.

 

14. 이미지화된 복음의 사용

복음 전도의 방법에서 이야기 방식과 상징의 사용이 증가 될 것이다. 이야기 방식은 전 세계적으로 선교 사역에 두루 사용되는 수단이 될 것이다. 누구든지 비싸지 않은 카메라를 사용해서 영상을 만들 수 있는 시대이기에 상징의 사용은 활발해 질 것이다. 영상물 뿐 아니라 그림, 조각, 만화, 조경, 예술, 건축, 소셜 네트워크 등 다양한 방법이 사용될 것이다. IT 기술은 현지인의 문화와 필요에 따라 복음을 전하는데 중요한 역할을 감당할 것이다.

 

15. 선교 교육(훈련)

선교 교육(훈련)은 상당부분 공식 교육에서 비공식 교육의 형태로 바꾸어질 것이다. 선교훈련은 배운 것을 적용할 수 있는 훈련으로, 원거리 중심의 교육과 평생 교육으로 바뀔 것이다. 이 시대에 선교사들은 스스로 자신을 계발하고 성장시켜 나갈 수 있어야 할 것이다. 선교사의 자기관리 능력이 선교의 성패를 가져올 중요한 자질이 되는 시대이다. 다양한 정보와 다양한 사역의 형태 가운데서 선교사는 성경을 더 잘 알고 잘 활용할 수 있어야 할 것이다.

 

16. 장기 선교사들의 역할

현상적으로는 장기 선교사들의 숫자가 줄어들고 단기 선교사가 늘어가는 시대임에도 불구하고 장기 선교사는 여전히 해외 선교의 중심에 있으며, 중요한 역할을 감당해야 한다. 장기 선교사들은 모든 민족에게 가서 말씀을 전하고 교회를 세우고 신자를 양육하고 교회 지도자를 양성하고 있다. 복음을 전하고 양육하는 일은 하루아침에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시간이 걸리는 일이기 때문에 단기 선교사가 장기 선교사를 대체할 수 없다.

 

17. 각자의 은사에 따른 협력 사역

하나님은 모든 사람들에게 각자 다른 은사를 주셨다. 하나님이 각자에게 은사를 주신 것은 자신과 다른 은사를 가진 사람들과 협력하도록 하기 위해서다. 그러기위해서는 자신이 가진 은사를 잘 계발하여 자신의 은사를 가지고 사역하는 것이 우선되어야 한다. 자신만이 할 수 있는 특별한 은사가 없이 선교사로 가는 것은 다른 사람과 협력하기도 어려울 뿐 아니라 오히려 다른 사람과 경쟁을 해야 한다. 왜냐하면 자신이 가진 은사가 개발되지 않았기에 다른 사람의 사역이나 은사와 구분이 없어지고 이는 다른 사람의 영역에 침범하여 사역하는 결과를 가져오기 때문이다. 자신의 은사와 경험을 살려 활용하는 사역을 할 수 있도록 선교사로 나가기 전에 미리 준비하고 은사를 계발하는 것이 선행되어야 할 것이다.

 

18. 문화를 통한 사역

한류가 동남아 뿐 아니라 전 세계적으로 퍼져가고 있다. 한류는 한국의 경제적인 발전으로 인한 국가적인 위상도 한 몫을 하고 있다. 한류의 중심에는 문화, 예술, 음식의 영역이 자리하고 있다. 한류의 영향으로 한국인 선교사들은 한글을 가르칠 수 있는 기회가 많이 생겼다. 음악을 통한 선교도 좋은 방법이 되고 있다. 한국 음식을 통해서도 선교할 수 있다. 기존에 한국 선교사들이 많이 하던 스포츠를 통한 선교도 효과적인 방법이 될 수 있다.

 

19. 비거주 선교사

본국에서 직업인으로 일하면서 휴가나 안식기간을 내서 선교 사역을 하는 비거주 선교사들은 다양한 사역을 통해 선교사역에 동참할 수 있다. 어떤 직업이나 전문성을 통해서도 비거주를 통한 사역을 할 수 있을 뿐 아니라 특별한 전문성이 부족하다고 하더라도 시간과 재정이 허락한다면 거주하지 않고 사역할 수 있는 길이 많이 열려 있다. 비거주 선교는 단기 선교의 한 영역으로도 볼 수 있다.

 

20. 자비량 선교

현 시대는 선교의 문이 닫힌 지역이 많기 때문에 직업을 가진 자비량 선교사가 중요한 위치를 차지한다. 영어 교사, 대학교수, 의료인, 다국적 회사의 직원, 지역 비즈니스계발, 스포츠 등 다양한 직업을 통해 어려운 지역에서 자비량으로 선교를 할 수 있다. 자비량 선교사들은 자신들의 직업에 충실하면서 함께 일하는 사람들과 우정을 쌓아가고 신뢰가 형성되면 복음을 나눌 수 있다.

 

21. 현지교회의 선교활성화를 위한 동반자적 선교

앞부분에서 이미 언급한 것처럼 선교사들의 일차적인 목표는 현지교회가 재생산 하는 교회, 즉 선교하는 교회가 되도록 하는 것이다. 단순한 복음전파가 아니라 현지 교회로 하여금 선교하는 교회가 되도록 하는 것이다. 현지 교회가 선교하는 교회가 될 때 재생산하는 교회가 되는 것이며, 재생산하는 교회가 되면 선교사는 더 이상 그 선교지에 머물 필요가 없게 되는 것이다. 재생산하는 교회가 되면 현지교회 스스로 독립할 뿐 아니라 다른 나라와 사람들을 위해 선교할 수 있는 능력이 생기기 때문이다. 그런 면에서 선교지의 교회가 재생산하는 교회가 되지 못하면, 선교사는 그 선교지가 선교하는 재생산의 교회가 될 때까지 남아 사역을 해야 한다.

 

이런 관점에서 현대 선교의 또 다른 이슈는 토착교회를 설립하는 것이다. 지금까지의 전통적인 선교는 토착교회를 세우는 것 대신에 선교사를 의존하고 선교사를 중심으로 하는 교회를 세워왔다. 이런 선교의 흐름을 바꾸고 현지인 스스로 설 수 있는 토착교회를 세우는 것이 21세기의 중요한 이슈가 되어야 한다. 선교사들이 자신들 중심의 교회를 세우고 토착교회를 세우는 것을 간과한다면 선교의 모든 수고가 수포로 돌아갈 수 있기 때문이다. 토착교회를 통한 현지 교회의 재생산만이 이 시대에 선교의 사명을 완수하는 바로미터(barometer)가 될 수 있다.

 

22. 장기 선교사를 위한 재정 고갈

지금까지는 현대 선교의 이슈 중에서 긍정적인 측면에서 다루었지만 부정적인 이슈도 선교에 중요한 부분이기에 다루고자 한다. 그것은 선교의 열기가 점차 식어간다는 것이다. 선교의 열기가 식어감으로 인해 자연히 신임 선교사는 감소하게 된다. 그나마 단기 선교가 활성화될 수도 있지만 장기 선교사는 계속해서 줄어들 가능성이 많이 있다. 무엇보다도 장기 선교사들의 재정이 급격하게 줄어들고 있다. 장기선교사들이 재정에 영향을 받는다는 것은 지속해서 사역을 감당할 수 없다는 것을 의미한다. 장기 선교사들 중에는 재정 때문에 사역을 다 마치지 못하고 중간에 한국으로 돌아오는 경우가 많아질 것이다. 이는 한국 선교의 퇴보를 의미하는 것이고 미래 한국 선교의 어두운 부분을 예상하는 것이다.

 

23. 난민 디아스포라 현상

디아스포라가 발생하는 요인은 하나는 정치와 경제적인 이유이고, 다른 하나는 종교적인 이유이다. 민족이 집단으로 이주하는 현상이 최근에 더욱더 벌어지고 있다. 요즈음 난민에 대한 문제가 전 세계의 이슈이다. 아프간 전쟁이나 이라크 전쟁으로 기독교인 다수가 이라크를 떠나서 주변 나라에 디아스포라가 되었다. 터키의 투르크 족들이 유럽 곳곳으로 흩어져 난민으로 살아간다. 중동과 아프리카에서 내전을 피해 탈출하는 사람들이 유럽의 난민이 되었고 유럽은 이것이 심각한 사회문제가 되었다. 이런 난민을 위한 선교는 어떻게 이루어져야 하느냐가 또 하나의 선교 이슈다.

 

24. 글로벌 동반자적 선교의 필연성

글로벌 동반자적 선교는 이미 세계 각처에서 일어나고 있는 현상이다. 21세기에는 보다 더 활발하게 동반자적 사역이 일어날 것이다. 성경번역 선교회인 WBT(SIL)의 경우 2025년까지는 그 누구와도 협력하면서 대부분 필요한 언어그룹에서 성경번역사역을 시작한다는 정책을 마련한 바 있다. 21세기는 모든 단체들과 모든 국가들 사이에 동반자적 선교가 활발하게 이루어질 것이다. 한국 교회 선교도 한국인들끼리 만의 선교가 아니라 세계 다른 나라 교회와 선교사들, 그리고 선교단체들과 협력하는 선교를 해야 할 것이다. 서구교회와 선교단체만이 아니라 3분의 2세계의 나라들과도 동반자적인 생각을 가지고 협력해야 할 숙제를 가지고 있다.

 

진정한 사역이란 하나님이 주신 은사와 재능을 사용하여 성령의 권능을 통하여 세상 가운데에 변화를 일으키는 사역을 의미한다. 따라서 21세기에는 다양한 배경을 가진 사람들이 사역에 참여하고 사역기간도 다양할 것이다. 어떻게 하면 선교사들이 제자 삼기를 중심으로 해서 통합하는 사역을 전략적으로 할 것인가? 사회적 변화를 위해 힘쓰는 만큼 영적 변화를 위해 어떤 힘을 기울일 것인가? 선교에 모든 그리스도인이 참여하는 것은 당연한 것이지만 전임 선교사와의 협력을 어떻게 해 나갈 것인가? 전임 선교사의 영역이 인정받고 활용되어 어떻게 잘 발휘되도록 할 수 있을 것인가? 등의 질문들이 21세기의 중요한 선교의 과제가 될 것이다.

 

IV. 한국 교회의 선교현황과 과제

요즈음 신학교마다 선교학과를 지원하는 학생들의 숫자가 줄어든다고 한다. 비공식적이기는 하지만 요즈음 대학생들의 그리스도인 비율이 4-5%에 불과하다고 한다. “선교한국같은 선교 대회에 참여하는 숫자도 매 대회마다 줄어들고 있다. 선교부마다 선교사를 지망하는 후보자들의 숫자는 줄어들고 연령대는 높아가고 있다. 2005년 이후에는 선교사 증가 비율이 감소하고 있다. 영국은 30년 전에 선교사 파송 2위국이었지만 지금은 그리스도인 인구가 2% 내외가 되었다. 200년 이상의 선교사 파송 역사를 가진 영국이 30년 만에 이런 상황에 처했다면 30년의 짧은 선교역사를 가진 한국 선교는 어떻게 될 것인가? 벌써부터 한국은 선교사나 후원자들의 감소가 피부로 느껴지고 있는데, 이런 추세라면 어느 날 갑자기 선교사를 파송하는 많은 선교 단체들이 문을 닫을 수 있다는 것을 예상해 볼 수 있다. 작금의 한국 선교는 분명히 위기에 처해있다. 한국교회와 선교의 출구는 없어 보인다. 한국 교회 선교는 석양의 지는 해인가?

 

1980년대까지 한국의 목욕탕은 떼미는 기능을 감당하였다. 그 후로 아파트 문화가 됨으로 떼미는 기능이 자연스럽게 없어지게 됨으로 목욕탕은 문을 닫을 위기에 처하게 되었다. 목욕탕이 망하는 상황에서 목욕탕 주인들은 가만 보고만 있지 않았다. 목욕탕의 씻고 떼미는 것에서 재빨리 사우나 기능을 추가하였다. 떼미는 기능에서 건강을 얻을 수 있는 기능으로 바꾸어 위기를 극복하였다. 그러다가 다시 변화를 시도했는데 그것이 가족과 친구들과 쉬고 즐길 수 있는 찜질방 기능을 더한 것이다. 지금은 찜질방에서 헬스장과 수영장까지 확대시킨 대형 리조트 형식으로 바꾸어지고 있다. 새로운 시대와 문화에 살아남기 위해서 변신을 거듭한 것이다.

 

일본의 기저귀 회사인 유니참이라는 기업은 출산율 저하로 인한 위기상황에 처하게 되었다. 이런 위기를 성인용 기저귀를 만듬으로 헤쳐 나갔고 지금은 출산이 많은 동남아 시장으로 눈을 돌려 위기를 헤쳐 나갔다.

 

한국 교회 선교도 위기의 때이지만 새로운 시대에 맞게 대응하고 변화할 때 성장할 가능성은 얼마든지 있다. 그런 의미에서 선교는 상황과 현실의 문제라기보다는 어려움을 어떻게 극복하느냐 하는 대처에 달려 있다고 볼 수 있다. 한국 선교가 위기에 처한 상황에서 바른 대처를 찾는다면 지금의 어려움은 오히려 기회가 될 수 있다는 것이다. 한국 교회가 선교에 참여하는 비율을 10% 내외로 볼 때, 그래서 한국교회는 선교하지 않고 있으며, 한국교회의 선교의 참여는 줄어든다고 부정적으로 보기 전에 정 반대로 긍정적으로 볼 수 있는 요인이 있다. 그것은 10%만이 선교한다면 아직도 선교에 동참할 수 있는 가능성이 있는 교회는 90%가 되는 것이다. 90%의 교회들을 선교에 동원할 수 있는 긍정적인 가능성이 한국교회 선교의 기회인 것이다.

 

2011년에 서울에 폭우가 쏟아져 많은 피해를 본 적이 있다. 특별히 강남 지역의 피해가 컸고 우면산 자락에서 산사태가 일어났다. 서울에 폭우가 쏟아졌던 일 년 전, 바로 201010월에 태풍 곤파스로 많은 피해를 당한 적이 있다. 그 때 서울시는 2,281억의 예산을 들여 태풍이나 홍수를 대비하여 위험지역을 특별 정비하겠다고 선포했다. 문제는 예산을 세웠지만 이 예산을 바로 집행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이 예산을 바로 집행했으면 우면산 사태는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다. 서울시가 홍수를 대비하기 위해 큰 예산을 책정했지만 2011년 예산은 285억원(12.5%)에 불과했고 그해에 실제로 실행된 것은 60억도 안 되었다. 태풍 피해를 입어 대책을 세웠으면 곧 바로 실행했어야 했다. 실행해야 할 때를 놓쳐서 우면산 사태의 엄청난 피해를 본 것이다.

 

선교도 때를 알아야 하고 분석할 줄 알아야 한다. 한국교회와 선교 상황이 어떻게 되는지, 10년 전에는 어떠한 선교 전략이 있었으며, 10년 후에는 또 어떤 전략이 필요한지에 대해 시기에 적절한 계획이 필요하다. 우면산 사태처럼 이미 실행되어져야 할 전략에 대한 적절한 시기가 끝나 버리면 이 계획은 별 소용이 없게 된다. 도시 선교 전략을 얘기해야 하는 때에 농촌, 혹은 부족 선교에 대해서 말하는 것은 이미 그 시대에 적절한 대응이 아니다. 미전도 종족 선교나 전방개척 선교의 때가 지나 이제는 유럽에 선교를 집중해야 할 시대에 여전히 종족 중심의 선교를 주장하는 것은 적절한 대응이 아니다. 성경 번역 선교도 이제는 번역에 초점을 맞추는 것만이 아니라 오히려 문맹 퇴치나 교육을 통한 복음 전도, 혹은 미디어를 통한 복음 전도에 초점을 맞추는 것이 효과적일 수 있다. 선교 센터를 짓고 건물을 세우는 등 프로젝트성 사역을 하는 것은 이미 서구에서는 지나간 전략임에도 불구하고 이 전략들이 계속해서 한국 선교사들에 의해 사용되고 있는 것은 안타까운 현실이다. 선교 전략이 시기에 적절치 않거나 시기를 놓쳤을 때는 합당한 전략이라고 할 수 없다.

 

일본 정부는 20년 전에 아파트 활성화 정책을 만들어 시행했는데 지금은 800만 채의 아파트가 빈 집이 되어있다. 장기적인 예상을 잘못했을 때 이런 결과가 발생한 것이다. 한국 사람들은 안타깝게도 장기적인 계획을 세우는데 약하다고 볼 수 있다. 일을 할 때 일단 시작하고 보는 주먹구구식 계획들이 많다. 그것은 시작은 했는데 끝이 없는 결과를 가져오게 된다. 한국 선교사들의 기도편지를 보면 사역에 대한 많은 보고가 들어있다. 유심히 살펴보면 시작하는 사역에 대한 소개는 많은데 그 사역을 어떻게 마무리했는지에 대해서는 별 언급이 없다. 장기적인 계획 가운데 합리적인 상황파악과 연구에 따라 되지 않기에 시작은 했지만 끝이 잘 맺어지지 않는 사역을 하는 것이다. 한국 선교의 동원 전략 중에 2030년까지 10만 명의 선교사를 파송하자는 동원운동이 있었다. 거대한 목표는 좋았지만 선교사 10만 명을 파송한다는 전략이 현실적으로 얼마나 가능한지에 대한 연구가 우선되지 않았다. 필자가 볼 때는 10만 명 선교사 파송은 선교사를 동원하기위한 표어에 불과한 전략이다. 또한 10만 명을 동원하는 것보다 효과적인 선교 전략과 양질의 선교사를 파송하고 관리하는 것이 오히려 현 시점에 한국 선교가 해야 할 중요한 일이다. 어떤 선교 전략이던지 구체적인 연구와 중요도에 대한 판단, 그리고 적절한 미래 가능성에 대한 예상이 있을 때 시작은 있지만 끝은 없는 용두사미의 전략을 벗어날 수 있을 것이다.

 

안타깝게도 한국 사람은 장기적인 계획에 미흡하다. 이성보다는 감정적인 부분이 강하다. 일을 하는데 계획적이기 보다는 주먹구구식이다. 시작이 반이라는 말을 하면서 일단 일을 시작하고 본다. 그러기에 끝맺는 것이 어렵게 된다. 그 결과로 필요 없는 투자와 계획이 많을 수밖에 없다. 이루지 못한 시작이 너무나 많이 있는 것이다. 또한 후속 처리(Follow up)가 부족하다. 어떤 일을 하면서 끝까지 가지 못하는 것은 바로 장기적인 안목과 계획이 부족하기 때문이고 이렇게 해서는 기본이 튼튼한 발전을 이룰 수 없다. 앞으로 10, 혹은 20년을 내다보고 선교 환경이 어떻게 변할 것인가에 대해 예측하면서 선교 전략을 세우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미래학자 최윤식 박사는 한국 교회가 2050년이 되면 그리스도인이 400만 명 정도 될 것이고 주일학교 학생은 30-40만 명이 될 것이라고 예상했다. 400만 명 중에서도 80%가 은퇴자들로 구성된다고 하였다. 이런 예측 가운데 앞으로 한국 교회는 어떻게 될 것인가?

 

개척교회 상황은 점점 더 어려워질 것으로 보인다. 한국 사회에서 한국 교회는 좋지 않은 이미지가 더 강하다. 좋은 일을 많이 하면서도 일부 교회 지도자들의 부정과 부패로 인해 한국사회로부터 교회는 부정적으로 비춰지고 있다. 교회에 다니는 사람들조차도 예수는 따르고 싶지만 교회는 나가기 싫은 가나안 교인들이 늘어가고 있다. 이런 상황으로 인해 문을 닫는 개척교회는 점점 더 늘어갈 것이다.

 

이는 교회 목회의 생태계의 교란으로 이어질 것이다. 교회는 대형, 중형, 소형, 개척교회가 서로 연관을 가지고 있다. 서로 자신의 역할이 있으며 상호 협력하고 의존해야 한다. 그런데 대형교회는 개척, 중소형 교회를 어렵게 하는 현상이 많아지고 있다. 이는 사자가 자신의 개채수를 늘리기 위해 자신의 몸집을 불리는 것과 같다. 자신의 몸집을 불리기 위해 마구잡이로 사냥해 버리면 결국 사자도 굶어죽게 된다. 그래서 맹수들은 생태계의 균형을 유지하며 산다. 이것이 동물에게도 자기가 살 수 있는 길이며, 본능이다. 그러나 한국 교회는 생태계의 균형과 조화를 스스로 깨고 있다. 대형교회만의 문제는 아니지만 대형교회의 비리가 상당한 영향을 미쳤고 이는 대형교회가 살기 위해 중소형교회를 어렵게 만드는 요인이 되고 있다. 성경에서 말하는 교회는 철저히 지역교회이다. 물론 현대 사회는 교통의 발달로 어느 정도의 지역성이 무너졌지만 그래도 교회는 교회가 존재하는 지역에 사명을 감당하는 역할이 중요하다. 교회가 서 있는 지역 중심으로 교회가 사명을 감당해야 하는데 대형교회 중에 교인들의 교회 참석을 위해 교회 셔틀버스를 운영하지 않는 교회가 얼마나 되는가? 이는 대형교회가 스스로 자멸하는 길을 걷고 있는 하나의 예이며, 이는 한국교회 전체가 위기의 길로 들어서게 하는 원인이 된다.

 

이미 언급한 것처럼 한국교회는 전도가 잘 되지 않는다. 전도가 안 되고 출산율이 줄어듦으로 인해 주일학교가 점점 더 줄어간다. 무엇보다 신앙인 부모들이 자녀들에게 신앙을 물려주지 못하는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대학에 가기 위해 학원에 가고 공부해야 하는 것 때문에 자녀들이 주일학교에 빠지는 것을 대수롭지 않게 생각한다. 자녀들이 대학에 가면 신앙생활을 잘 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지만 중고등학교 시절에 교회에 참석하지 않은 학생들이 대학에 진학해서 교회로 돌아올 확률은 많지 않다.

 

이런 현실 속에서 한국 교회는 출구가 없어 보인다. 최근 20년 동안 4-500만 명의 교인들이 교회를 빠져나갔다는 말도 있다. 이런 상황에서 한번 교회를 나간 사람들이 다시 교회에 돌아오고 믿지 않는 사람들에 대한 전도가 잘 되어 한국 교회가 다시 성장할 가능성은 많지 않다. 하나님의 은혜로 한국이 다시 부흥의 역사를 일으킬 수 있을 것이라는 막연한 기대를 갖는 사람들도 있지만 상황적으로는 그런 확률이 적어 보인다.

 

이사야 선지자와 예레미야 선지자는 이스라엘이 죄악으로 멸망할 것이라고 외쳤다. 그러나 거짓 선지자들은 절대로 이스라엘은 멸망하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 하나님이 이스라엘을 사랑하시기 때문에 이스라엘을 보호하실 것이고 망하지 않을 것이라고 예언하였다. 오히려 거짓 선지자들은 이스라엘이 멸망한다고 외치는 참 선지자들을 핍박하였다. 이스라엘은 참 선지자들의 멸망한다는 소리를 들으려고 하지 않았다. 결과는 어떻게 되었는가? 참된 선지자의 말대로 이스라엘은 바벨론에 포로로 잡혀가 멸망했다. 처음에 이스라엘이 포로로 잡혀갔을 때 거짓 선지자들은 이스라엘이 본국으로 곧 돌아올 것이라고 했다. 대신에 예레미야 선지자는 하나님이 정하신 하나님의 때에 돌아갈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고 70년 동안 이스라엘은 본국으로 돌아오지 못했다. 예레미야는 멸망을 인정했지만 한편으로 하나님의 때에 다시 회복할 것도 알았다. 하지만 거짓 선지자들은 하나님의 때를 모르고 오직 소망은 하나님의 손에 달렸다고 거짓 확신 속에서 외쳤다. 예레미야 선지자의 예언이 한국교회에서도 적용될 것이라고 말하는 것이 아니다. 인간의 생사화복을 주장하시는 분은 하나님이시다. 그 하나님은 기적과 초월적인 능력으로 세상을 다스리시지만 한편으로 이 세상의 인간의 반응과 책임 가운데서 다스리신다. 하나님이 택한 백성들이 잘못을 할 때는 그에 상응한 대가를 치르게 하신다. 한국 교회가 지금까지 한국 사회에 빛 된 모습을 보이지 않은 것은 사실이다. 그래서 지금 한국교회 숫자가 줄어들고 있지만 하나님이 축복하시면 다시 부흥할 수 있다는 말은 우리의 잘못된 책임을 하나님께 떠넘기는 꼴이 된다. 공의로 다스리시는 하나님은 반드시 한국에 책임을 물으실 것이다. 지금 한국 교회가 해야 하는 일은 교회로써 책임을 잘 감당하지 못한 사실을 인정해야 하는 것이다. 그냥 하나님이 지켜주시기 때문에 괜찮아 질것이라고만 할 것이 아니라 지금 이 순간에 하나님 앞에서 어떤 책임을 질 것인가에 대한 해답을 찾아야 한다. 점점 힘을 잃어가는 한국 교회의 상황에서 교회와 성도가 감당해야 할 책임이 무엇인지 인식하고 회복을 위한 대안도 모색해야 할 것이다. 필자가 제시하는 대안은 다음과 같다.

 

먼저는 회개해야 한다. 하나님의 긍휼을 구하면서 잘못한 것에 대한 회개가 첫 번째 답이다. 회개는 단순히 입술의 고백만이 아니라 회개에 합당한 삶을 동반한 태도를 보이는 것이다. 삭개오가 그랬던 것처럼 잘못한 것에 대해 바로 잡고, 되돌려주고, 재를 뒤집어쓰는 회개의 기도를 해야 한다. 내가 거룩하니 너희도 거룩하라(19:2)는 하나님의 말씀처럼 하나님의 자녀로서의 거룩한 삶을 회복해야 한다. 삶이 변화될 때 복음의 힘을 찾을 수 있고 세상을 향한 전도가 되며 교회는 다시 소망을 갖게 되는 것이다. 너희 몸을 거룩한 산제사로 드리라고 하신 하나님은 그의 자녀들의 거룩한 삶을 원하신다. 이것이 철저한 회개이며, 회개가 하나님 앞에 일어날 때에 소망을 찾을 수 있다.

 

두 번째는 한국 교회의 상황, 즉 침체의 원인을 분석하고 진단하는 지혜가 있어야 한다. 한국 교회의 문제의 원인을 찾을 뿐 아니라 그것을 인정해야 한다. 구약 시대에 거짓 선지자들처럼 별 문제가 없고 다 잘될 것이라고는 거짓 확신에 빠져서는 안되며 잘못한 일들에 대해 인정하고 잘못한 것에 대한 대가를 치를 각오를 해야 하는 것이다. 한국교회의 쇠퇴와 위기에 대해 겸허하게 인정하고 인식하면서 회복을 위한 공동의 책임의식을 가져야 하는 것이다. 또한 세상의 교회를 향한 비판의 쓴 소리도 경청하면서 교회의 갱신을 위한 노력을 기울여야 할 것이다. 세상이 교회를 비난할 때 그 소리가 바로 교회가 들어야 하는 바른 소리라고 생각해야 한다.

 

필자는 1996년에 멕시코 꼬미밤(comibam)이라는 중남미 선교대회에 참석하였을 때, 한 한국인 선교사를 만났다. 이 선교사는 한국의 경제가 어려워져서 나라가 위태로운 상황에 처해있다고 하였다. 필자는 그 때 당시에 한국 소식을 듣지 못해 한국의 경제상황에 대해 잘 알지 못하였지만 이 말을 들으면서 파송 받은 한국 선교사들이 지구촌 곳곳에서 수천 명이 사역을 하고 있기에 한국이 경제적으로 망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한국이 망한다면 한국 선교사들은 철수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라는 생각을 한 것이다. 그 선교사는 필자에게 자신의 말을 왜 믿지 못하느냐고 반문하였다. 그런데 그해 말에 한국은 IMF 사태를 맞이하게 되었고 적잖은 선교사들이 철수를 해야만 했다. 필자는 필자의 생각이 잘못되었다는 것을 그 때야 깨달았다. 위기의 현실, 좋지 않는 상황을 받아들이고 인정하는 것이 필요하다는 것을 경험하였다. 현재 한국 선교사는 약 25천명인데, 이들 때문에라도 한국 교회는 망하지 않을 것이라는 생각을 한다면 그것은 잘못된 생각일 수 있다. 현재 선교사들은 선교후원비의 감소로 인하여 경제적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선교사들이 많이 있다. 이런 현실을 냉정하게 판단하고 인정하는 자리에서 다시 방향을 찾아 일어서야 한다.

 

세 번째는 현재 한국 교회에 맡겨진 사명을 잘 감당하는 것이다. 혹시라도 계속해서 한국교회가 쇠퇴한다면 그것에 대한 준비를 해야 한다. 인간에게 있어서 가장 아름다운 죽음은 죽음을 맞을 준비를 하는 것이다. 지금 죽더라도 죽음을 인정하고 거룩하고 아름답게 죽는 것이다. 한국교회는 현 상황에서 어떻게 사명을 감당할 것인가에 대한 준비를 해야 한다. 가장 중요한 것은 교회의 상황에 상관하지 말고 계속해서 선교의 사명을 감당하는 것이다. 교인 수가 줄어들고 재정이 어려워도 하나님이 교회에 주신 선교의 사명을 감당해야 한다. 상황이 어렵다고 위축되고 선교예산을 줄이는 대신에 믿음으로 현재 할 수 있는 선교의 사명을 담대하게 감당해야 하는 것이 해답이다. 교회가 어려워졌다고 선교참여를 줄이는 것은 상황을 더욱 악화시키는 것이다. 한 선교사가 자신이 알고 있는 중국인 목사에 대한 얘기를 필자에게 해 주었다. 이 중국인 목사는 20년 전에 한국 교회 목사들을 만났을 때 선교를 말하지 않는 목사가 없었다고 했다. 한국 목사들의 선교의 열정을 보고 자신이 목회자로 헌신하였다고 하였다. 그런데 20년이 지난 지금 한국 교회 목사들 중에 선교를 말하는 목사는 만나보지 못했다고 한다. 이것이 한국교회 목회자들의 안타까운 현실이다. 상황이 어려울수록 하나님이 주신 선교의 사명을 감당하는 것이 지금 한국교회가 해야 할 일이다.

 

교회는 전통적인 교회에서 탈피해서 선교적 교회로 나가야 한다. 전통적인 교회는 교회의 존재론적인 면을 강조하였다. 교회는 모여서 예배하는 곳이라는 의미가 강했다. 잘 모여 예배를 드리면 교회의 사명을 잘 감당하였다고 생각하였다. 그러나 선교적인 교회는 교회의 목적이 존재 자체에 있는 것이 아니라 선교를 행하는 것에 교회의 목적이 있다. 십자가를 달고 사람들이 모여서 예배하는 것이 교회가 해야 할 목적이 아니라 예배드리는 그 사람들이 세상으로 나가 선교적 사명을 감당할 때 진정한 교회가 되는 것이다.

 

전통적인 교회는 이 세상에 선교적 사명을 감당하지 않음으로 교회의 기능을 제대로 감당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그 결과 한국교회는 세상에 복음의 빛을 비추지 못하고 있다. 전통적인 교회가 선교적인 교회가 될 때 교회는 새로운 도약을 할 수 있고 소망을 가질 수 있다. 비록 전통적 교회로서 지금까지 빛의 사명을 감당하지 못함으로 한국교회가 침체상황으로 가고 있을지라도 지금 교회가 다시 일어설 수 있는 것은 선교적 사명을 감당하는 것이다. 그 선교적 사명을 감당하다가 교회가 더 큰 어려움을 당한다고 하더라도 사명을 완수한 것으로 하나님께 칭찬을 받을 것이다. 선교적 사명을 감당하는 것을 교회가 다시 일어서고 부흥하려는 수단으로 삼을 필요는 없다. 교회가 흥왕하거나 망하거나 하는 것은 하나님의 손에 달려 있고 교회가 해야 할 일은 결과에 상관없이 사명을 감당하는 것이다. 의롭게 바르게 살고 있는 사람이 세상에서 반드시 잘 사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바르게 살지 않는 사람이 세상에서 잘살고 성공하는 경우가 많다. 교회가 선교적 사명을 감당하는 것도 마찬가지로 그 결과는 하나님의 손에 있으며, 오히려 사명을 감당함으로 교회가 더 어려워질 수 있다. 그러나 그 어려움 자체가 영광이고 상급이다. 한국교회의 상황에 점점 어려워지는 이때에 교회가 해야 하는 일은 부흥을 기다리고 다시 일어서기 위해 갖은 수단과 방법을 동원해서 몸부림치는 것이 아니라 지금 주어진 상황에서 사명을 감당하기 위해 최선을 다하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한국교회에 위기를 주신 것에 대해 오히려 한국교회가 선교적 사명을 감당하는 기회로 삼아야 한다.

 

교회 지도자들은 어려운 상황일수록 비전을 제시할 줄 알아야 한다. 어떻게든 살아남으려고 몸부림치기 보다는 하나님이 주신 사명을 감당하도록 비전과 열정을 회복하고 복음의 본질로 돌아가야 한다. 점점 악화되는 교회의 상황에서 점점 위축되거나 어려움 속에서 살아남으려고 인간적인 구조조정을 하는 것은 오히려 선교적 교회로서의 역할을 감당하지 못하게 하는 요인이 된다. 교회가 어려울수록 선교사 파송이나 참여 혹은 선교 후원금을 줄이지 말아야 한다. 모든 결과는 하나님께 맡기고 하나님이 주신 선교적 사명만을 생각하며 그 사명을 이루기 위해 교회가 다시 일어서야 한다. 목회자는 이런 방향과 비전을 교회에 제시하고 교인들은 선교적 교회를 이루기 위해 함께 일어서야 하고 교인들이 선교적 사명을 감당하기 위해 앞장서야 한다. 전교인이 함께 선교적 교회를 이루도록 협력하고 모든 힘을 이 일에 쏟는 것만이 현재 한국교회가 해야 할 일이다.

 

선교적 사명을 다하는 교회가 되기 위해서는 개교회 중심주의를 내려놓아야 한다. 우리 교회만 안전하면 되고 문제가 없으면 된다는 생각에서 벗어나서 하나님 나라의 관점에서 모든 교회가 함께 일어서도록 자신이 먼저 희생하고 양보하는 태도를 가져야 한다. 다른 교회를 희생해 가면서 우리 교회만 부흥하면 된다는 이기적인 생각과 태도에서 벗어나지 않으면 한국교회는 모두가 함께 무너질 수 있다. 어떤 교회는 수평 이동을 해서 오는 교인들은 새롭게 등록을 받지 않는다고 한다. 자기 교회만 잘 되면 된다는 생각에서 벗어난 하나님 나라의 관점에서 희생하는 아름다운 교회의 모습이다.

 

한국교회의 위기의 상황에서 교회는 오히려 교회의 본질적인 부분에 초점을 맞출 필요가 있다. 그것 중의 하나가 바로 하나님 말씀으로 다시 돌아가는 것이다. 교회가 어떤 프로그램이나 행사를 통한 운영이 아니라 모든 교인들이 말씀을 가까이 하고 말씀을 삶에서 제대로 적용하며 살 수 있는 터전을 마련해주는 것이다. “말씀으로 돌아가자는 종교개혁의 기치가 다시 한 번 한국교회에 일어날 때 그것이 진정한 부흥을 가져올 수 있는 기초가 된다. 무엇보다 주일학교의 회복을 위해 교회가 투자를 해야 한다. 오늘 죽어도 사과나무를 심겠다는 심정으로 미래의 주인공들을 준비해야 한다. 주일학교 부흥이 안 된다고 말만 하는 것이 아니라 주일학교에 재정과 인력을 투자하고 과감히 교회의 조직을 주일학교 중심으로 바꾸는 노력이 필요하다.

 

한국교회의 위기 상황이 선교에도 영향을 미치는 것은 당연하다. 앞으로 해외 선교는 어떻게 될 것인가? 현재 선교지에서 들려오는 선교사들의 소리는 재정적으로 점점 더 어려워진다는 소식이다. 선교단체들마다 선교사 후원금이 감소한다고 한다. 어쩌면 당연한 현상이다. 한국교회가 어려운 상황이기에 선교에도 직접적인 영향을 받는 것이다. 교회들이 재정적인 어려움에 봉착할 때 선교비를 가장 먼저 삭감한다고 한다. 교회의 재정적인 어려움에 봉착하는 중요한 요인이 교회 건축 때문이라 할 수 있다. 한국교회의 문제 중의 하나는 교회 건축에 많은 집중을 해 왔다는 것이다. 교회 건축을 하면서 성전건축이라는 낱말을 사용한다. 성전은 예수님 자신이 성전이고, 또한 하나님이 임재 하는 곳, 예수님을 따르는 무리들이 성전이라 할 수 있다. 예수님이 오심으로 구약의 성전의 개념은 사라졌음에도 불구하고 현대의 교회(건물)가 바로 성전인 것처럼 목회자들이 왜곡하면서 교회건축에 매진하고 있다. 그것은 바로 교회 건축을 목회의 성공의 잣대로 보는 풍토가 있기 때문이고, 교회 건물만 지으면 교인들이 몰려올 것이라는 생각이 있기 때문이다. 이런 생각으로 무리하게 교회 건축을 하다가 부도가 나는 등 재정의 어려움을 당하는 교회가 많아지고 있다. 건축을 하다가 재정적인 어려움이 생기면 제일 먼저 선교비로 지출되는 금액을 감소시키는 것이다. 선교가 교회의 사명인 것을 망각하는 교회가 되는 것이다. 교회의 참된 사명을 망각하게 되면 개 교회 뿐 아니라 선교에 헌신한 선교사들이 직접적인 영향을 받게 된다. 사명을 잃은 교회는 쇠퇴의 길로 들어설 것이고, 결국은 한국도 영국이나 유럽처럼 교회의 문이 닫히는 현상이 일어나게 될 것이다. 오늘날 유럽은 이슬람의 팽창으로 테러 등 각종 사회문제가 발생하고 있는데 그 이면에는 종교분쟁이 문제의 근원이 되고 있다. 한국교회도 교회가 고령화되고 주일학교가 줄어들게 되면 그 동안 지었던 교회건물들이 텅텅 비어가게 될 것이다. 교회가 힘을 잃는다는 것은 이슬람에 종교분쟁의 실마리를 제공하는 결과를 가져올 수 있다. 이슬람이 유럽처럼 팽창하게 되면, 한국은 선교사 파송국가에서 선교의 대상국가가 될 수 있다. 200년 선교 파송의 역사를 가진 유럽대륙이 30년 만에 선교 대상국가가 되었다면 한국은 더 빠른 시기에 선교 대상국가가 되지 않겠는가!

한국교회의 상황이 계속해서 어려워지면 지금 사역하고 있는 선교사들의 상황도 멀지 않아 여러 갈래로 갈릴 것이다. 한국 선교사가 25천명이 될 때까지 선교지에서는 긍정적인 것만 있었던 것이 아니라 부정적인 상황도 많이 있었다. 1997년 한국 경제가 IMF로 휘청거릴 때, 적잖은 선교사들이 선교지에서 철수를 했어야만 했다. 지나치게 한국경제에 의존하고 있는 선교의 현실을 경험하면서도 아무런 고민이나 대책이 없었다. 2007년에 아프카니스탄에서 샘물 교회 단기 팀의 납치 사건은 한국교회의 선교를 재점검할 수 있는 메시지였다고 생각한다. 이 사건은 단지 한 교회의 단기 선교 팀의 문제만이 아니라 한국 사회와 한국 선교에 크나큰 충격을 준 사건으로서 한국 교회 선교를 되돌아보고 중간 점검을 할 수 있는 기회였는데 그런 노력이 없이 지나갔다. 이는 한국 선교의 방향을 찾을 수 있는 기회를 놓치는 안타까운 사건이 되었다. 이런 큰 사건 만이 아니라 25천 명의 선교사들 중에 여기저기에서 크고 작은 문제를 일으키는 경우가 있어 왔다. 위기상황을 잘 대비하지 못하거나 위기발생 후에 대처를 잘못하여 선교에 대한 이미지가 나빠지는 사건들이 있었다. 선교사 개인의 도덕적인 타락으로 인해 직접 관련이 있는 파송교회와 선교단체들은 심각한 후유증을 경험하기도 하였다. 이런 사실들이 한국교회와 사회에 알려지게 되면서 선교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이 조금씩 퍼져가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어쩌면 이런 사건들은 하나님이 한국교회와 선교에 주시는 경고의 메시지가 될 수도 있다.

 

한국교회 선교는 선교의 모체인 한국교회의 어려움으로 인한 압박과 일부 선교사들의 도덕적 타락으로 인한 내부적인 두 가지 문제를 안고 있다. 이런 내외적인 문제만이 아니라 선교사 각자가 직면한 현실적인 문제들 또한 선교사들을 위험에 처하게 한다. 무엇보다도 잘못된 선교 방향, , 선교철학의 부재로 인한 무계획적이고 외형 중심적인 과시형 사역 중심의 선교사들을 보면서 이런 문제들을 어떻게 대처해나가야 하는지 심각한 과제 가운데 서있다.

이처럼 한국교회의 어려운 현실 가운데 선교적 위기를 극복할 수 있는 최선의 해법은 한국교회가 선교적인 교회로 거듭나는 것이다. 또한 선교사들은 삶에서의 거룩성을 회복하고 사역 철학을 재정립하며 사역을 방향을 바로 잡는 것이다. 하지만 한국교회의 선교적 회복을 위한 좋은 대안이 있다 할지라도 한국교회의 선교사들을 위한 재정적 지원이 원활하게 이루어지지 않으면 여전히 선교에 걸릴 돌이 될 수 있다는 점도 고려해야 할 것이다. 멀지 않은 장래에 재정지원과 관련하여 두 부류의 선교사로 나눠질 것이라 예상한다.

 

첫 번째 부류는 선교 후원금의 감소로 인하여 한국으로 철수하게 될 것이다. 얼마나 많은 선교사들이 이 부류에 속하게 될지는 모르지만 한국교회의 선교에 대한 관심과 참여가 줄어들 때 한국으로 철수하는 선교사들이 있을 것이다. 한국교회의 선교지원 상황에 따라 그 숫자는 정해지겠지만 분명히 조만간 이런 현상이 나타나게 될 것이다. 한국으로 돌아온다면 그들은 무엇을 하면서 살 것인가? 지금으로서는 특별한 대안이 없다. 한국에도 목회자들(전문인 선교사들은 자신의 직업을 찾아갈 수도 있지만 목회자 선교사들의 경우는 다르다)이 사역지가 없어서 어려움을 당하고 있는 현실이다. 북한과 통일이 된다면 사역에 대한 가능성이 열릴 것으로 보기도 한다. 현재로서는 통일에 대한 전망은 누구도 예상할 수 없는 문제이다. 만약 통일이 된다고 하더라도 선교지에서 철수한 선교사들이 사역을 할 수 있는 길이 열리리라는 보장은 없다. 현재 탈북을 해서 한국에 정착한 새터민이 25천 명 정도 된다. 안타깝게도 현재 한국에 있는 새터민들도 한국교회가 많은 관심을 갖지 않고 있으며, 새터민들이 교회의 도움을 피부로 느끼지 못하고 있을 만큼 그들에 대한 지원이 부족하다. 어떤 사람들은 25천명의 새터민도 돌보지 못한 한국교회가 통일이 된다고 북한에 대한 지원과 선교사역을 할 수 있겠느냐고 부정적으로 보는 사람도 있다. 한국에 철수하는 선교사들 뿐 아니라 은퇴를 해서 한국으로 돌아오는 선교사들에 대한 대책도 일부 대형교회를 제외하고는 거의 없는 상황이다.

 

두 번째 부류는 한국교회의 지원이 줄어들어도 선교지에서 계속 남아서 사역을 하는 선교사들이다. 이 선교사들은 지금까지 보다는 훨씬 더 생활비나 사역비를 줄여 가면서 작은 선교비로 살아야 할 것이다. 프로젝트성 사역을 하는 선교사들은 제일 먼저 심각한 타격을 입게 될 것이다. 현지에서 자립하지 않는 프로젝트 사역은 대부분 문을 닫을 것으로 보인다. 선교지에서 계속 남아 있는 선교사들의 종류도 다르다. 선교를 지속하는 교회에서 파송 받은 선교사나 후원이 대체적으로 잘되는 선교사는 어려움 가운데서도 재정을 절약하며 사역을 이어나갈 것이다. 이들 중에는 NGO 사역을 하거나 NGO선교단체에서 후원을 받는 선교사들도 포함된다. 앞으로 한국은 교회의 선교 참여는 줄어든다고 할지라도 NGO를 통한 해외 지원은 계속해서 늘어갈 것으로 보인다. 정부 산하기관이나 국제단체를 통해 NGO로 나가는 그리스도인들이 선교사로서의 역할을 감당하기도 할 것이다. 선교후원금이 부족함에도 남아있는 선교사들은 자비량을 하는 선교사들이다. 지금도 선교지에서는 자비량을 하는 사역으로 변화시키고자 하는 선교사들이 있다. 이런 현실이 비즈니스 선교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는 이유이기도 하다.

 

한국 교회 상황이 어려워지고 선교적 참여가 줄어들 때 한국 선교는 이대로 주저앉을 것인가? 하나님의 계획을 아무도 알 수 없다. 분명히 하나님의 계획과 뜻 가운데 한국교회가 쓰임을 받고 있지만 앞으로 어떤 상황이 펼쳐질 것에 대해서는 정확히 예상하기 어렵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요셉에게 7년의 풍년과 7년의 흉년을 보여주셨던 하나님의 일하심을 기억하면서 7년의 풍년의 날에 7년의 흉년의 날을 준비해야 한다. 지금 추세로 미루어볼 때 한국교회의 전망은 그리 밝지 않다고 언급을 한 것처럼 상황이 더욱 악화될 것을 미리 예측하면서 준비를 하는 것은 대단히 중요한 일이다.

 

오늘날 현실을 직시하고 받아들이고 준비하고 예상하는 것이 하나님이 주신 메시지다. 하나님의 일은 하나님께서 그 분의 계획에 따라 이루어 가신다. 그러기에 세계 선교는 계속된다. 우리가 그 시대에 쓰임 받는 것은 축복이다. 이것은 우리가 쓰임을 받는 것이지 세계 선교가 우리의 손으로 이루어진다는 뜻이 아니다. 쓰임 받는 사람이 되도록 준비하고 노력하고 거룩한 사람이 되도록 하는 것이 우리가 해야 할 일이다.

 

급변하는 세상에서 몸부림을 치며 하나님의 일을 하다 보면 진정 그 일을 맡기신 하나님의 관점을 잃을 때가 있다. 어떤 상황에서도 하나님을 바라보는 믿음이 필요하다. 하나님의 약속을 믿으며 변화하는 시대에 선교에 동참하면서 페트릭 존스톤이 말하는 세계 선교를 원하시는 하나님의 약속을 되새겨본다

 

1. 두려움으로부터 해방되어야 한다(54:4).

2. 그리스도와 연합되어야 한다(54:5).

3. 우리는 하나님의 영원한 목적을 가지고 있다(54:6).

1) 우리의 몸을 산제사로 드린다.

2) 이 세대를 본받지 말아야 한다. 이 세대를 바로 알아야 이 세대를 본받지 않는다.

3) 마음을 새롭게 하여 변화를 받는다.

4. 모든 실패로부터 구속하신다(54:7-10).

5. 영원한 열매를 맺으신다(54:11-13).

6. 하나님은 초자연적으로 보호하신다(54:15-17).

 

선교는 하나님께서 세상을 구원하시는 방법이요, 하나님의 자녀들이 해야 할 지상 대 명령이기에 그 분의 자녀들은 이 일에 최우선권을 두고 순종해야 하는 일이다. 이 일을 위해서 하나님은 선교의 대상인 세상을 주셨고 하나님의 자녀들에게 믿음과 성령의 능력과 이 일을 잘 감당할 수 있는 지혜를 주셨다. 그러기에 그리스도인들은 하나님이 주신 지혜로 세상과 앞으로 되어 질 일들을 예상하면서 최선을 다해야 할 것이며, 그 일을 통해 하나님의 나라가 이 땅에 이루어지며, 하나님께 영광이 되도록 해야 할 것이다. 복음이 땅 끝까지 전파되었을 때 주님께서 재림하신다는 믿음과 주 예수여 오시옵소서(22:20)’라는 기대와 소망으로 이 일에 동참하는 아름다운 성도들이 많아 질 수 있기를 기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