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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교교육 연구원(IMER)

제 4- 2강 선교와 협력사역 본문

선교 교육, 훈련 자료/선교학교 4학기

제 4- 2강 선교와 협력사역

후앙리 2020. 4. 21. 19:03

 

차례

I. 서론

II. 한국 선교사들의 협력사역의 장애 요소

III. 협력사역의 필요성

IV. 효과적인 팀 사역 원리

V. 결론

 

I. 서론

1. 죄수들의 딜레마 게임

ab라는 두 사람이 절도 혐의로 경찰에 체포되었다고 가정하자. 경찰은 이 두 사람의 범행에 대하여 심증은 가지고 있지만 이를 뒷받침할 만한 물증을 가지고 있지 않다. 그 혐의를 입증하기 위하여 자백이라는 방법을 사용하기로 하였다. 그래서 한 사람씩 다음과 같은 조건을 알려주고 심문을 하기로 하였다.

(1) 두 사람 모두 혐의 사실을 부인하면 1년이라는 최소한의 형을 살게 하기로 한다.

(2) 두 사람 다 혐의 사실을 자백하면 둘 다 8년이라는 형을 살기로 한다.

(3) 어느 한편만 자백하면 자백한 사람은 무혐의로 풀려나지만 부인한 사람은 15년의 형을 살기로 한다.

두 사람은 따로 심문을 받기 때문에 상대방의 행동을 볼 수 없지만, 자백과 부인에 따라 위와 같은 벌칙이 따른다는 것을 알고 있다. 이러한 구도에 따르면 두 사람은 자백하거나 부인하거나 두 가지 행동중의 한 가지를 선택할 수 있으며, 그 선택에 따라 각각 감옥에서 지내게 되는 기간이 결정된다. 당신이라면 어떤 선택을 할 것인가?

B는 이렇게 생각한다. BA가 부인할 경우와 자백할 경우 모두를 생각해보아야 한다. A가 부인을 할 경우에 B가 선택할 수 있는 행동은 부인을 하거나 자백하는 것뿐이다. A가 부인한다고 가정할 경우 B의 최선의 행동은 자백하는 것이다. A가 자백을 할 경우 B는 자백을 해야 한다. BA가 자백을 하든 안하든 간에 항상 자백하는 것이 자신의 이익을 극대화하는 것이다.

A는 이렇게 생각한다. B가 부인할 때 A의 최선의 행동은 자백을 하는 것이고 B가 자백할 때 A의 최선의 행동 역시 자백을 하는 것이다. A, B가 자백할 경우 두 사람 모두 8년을 살아야 한다. 이것이 합리적인가? 처음에 의도한 것은 무엇인가? 그러나 둘 다 범행을 부인한다면 그 결과는 두 사람 모두에게 그리고 두 사람으로 구성된 사회 전체적으로 더 좋게 된다. 이것이 사회적 합리성이다.

사람들은 왜 모두 부인하면 더 좋은 결과를 가져오는데 왜 부인을 하지 않고 범행을 자백하는가? 이것은 개인적으로 합리적이기 때문이다. 개인적으로 합리적일 때는 최고 16년을 소비하지만 사회적으로(공동체로 일하면) 최고 2년만 살면 된다. 서로 공동의 결과를 생각하면 2, 서로 자기만 생각하고, 자기가 희생하고자 하지 않으면 16년을 살아야 한다. 이것은 서로 믿지 못하기 때문이다. 이것이 문제이다. 사람들이 자신이 15년을 살 것을 다짐할 때 사회 전체적으로는 이익을 보게 된다. 그러나 그런 감수하는 마음이 없으면 사회는 전체적으로는 더 어려워진다.

전체를 생각할 때와 자신의 이익만을 생각하는 결과는 이처럼 다르다. 전 세상, 즉 상대를 생각하는 마음이 있을 때, 자신은 희생해야 한다. 자신이 희생할 때, 사회는 이익을 보게 되고 자신이 희생을 하지 않을 때는 사회(다른 사람)는 전체적으로 손해를 보게 된다. 모두가 희생을 감수하고자 사회는 엄청난 이익을 가져온다. 협력의 중요성을 생각해 볼 수 있는 부분이다.

2. 한국인의 협력사역의 어려움

한국 사람은 협력해서 일을 하는 것에는 약하다. 일대 일 대결에서는 일본사람을 앞서지만 몇 사람이 같이 팀으로 하는 일에는 일본사람보다는 떨어진다는 보고가 있다. 교회에서도 담임목사보다는 당회장 쓰기를 좋아하고 부목사라는 이름이 하나의 대 명사로 자리 잡을 만큼 협력에 약한 면을 보이고 있다. 한국교회는 몇 몇 교회가 팀 사역을 해 보려고 했지만 그때마다 실패를 거듭했다. 선교현장에서도 마찬가지 현상이 나타난다. 선교사 탈락의 이유 중 가장 큰 이유는 동료선교사와의 관계 혹은 팀 사역의 실패다. 선교협력 팀이 서로 어려운 관계있다는 소식은 어느 선교지에서나 쉽게 들려오는 소리다. 비록 뛰어나지는 않지만 열 사람이 마음만 제대로 맞으면 천하를 다스릴 수 있다는 말이 있는데, 한국 선교사에게 팀 사역은 도저히 안 되는 것인가?

 

 

II. 한국 선교사들의 협력사역의 장애 요소

 

1. 비전의 결핍이 장애요소다.

선교사가 왜 선교를 해야 하는가?”하는 궁극적인 질문이 부족하기에 협력을 못한다. 인간관계에서 오는 어려운 현실이 비전을 보지 못하게 한다. 비전을 보기 위해 선교사는 사역이 누구를 위한 것인가를 먼저 계산해보아야 한다. 선교사는 궁극적으로 하나님 나라의 확장을 위해서 일한다. 나와 스타일이 맞지 않은 사람, 내가 보기 싫은 사람, 함께 하기 싫은 사람도 하나님 나라를 위해서 일하고 있다는 큰 그림으로 보는 것이 필요하다.

세상에 단점이 없는 사람이 없다. 그러기에 동료의 단점을 어떻게 이해하고 처리하는가 하는 것이 중요하다. 서로가 단점을 가지지 않았다면 누구나 쉽게 협력사역을 할 것이다. 자기와 맞는 사람끼리만 일을 잘 할 수 있다면 그것은 그 누구도 할 수 있는 일이다. 실수하고 잘못하는 것 때문에 협력사역을 못한다면 그리스도의 용서는 필요 없게 된다. 그러기에 나와 다른 성품을 가진 사람도 하나님의 자녀요, 제사장이라는 사실을 인정하는 것이 필요하다. 상대의 단점은 내가 도와주기 위해서 필요하다는 생각을 해야 한다. 하나님의 나라를 위해서 함께 일하는 사람이라는 큰 비전을 볼 때 비전의 결핍으로 인한 단점을 이길 수 있다.

 

2. 영적, 인격적인 결핍이 협력을 방해한다.

선교사들은 영적전투의 장에서 사역을 하고 있다. 영적으로 민감하지 못하거나 영적능력이 결핍 되었을 때는 협력사역이 어렵게 된다. 사단은 협력사역의 중요성과 필요성을 알기에 선교사들이 협력사역을 하지 못하도록 공격하는 것이다. 사역보다는 인간관계를 공격하면 결국 사역을 못하게 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선교사는 사단이 사역보다는 협력, 즉 인간관계를 공격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 필요가 있다. 사단이 인격적인 부분과 영적인 부분으로 공격을 하여 협력사역을 하지 못하도록 한다는 사실을 인식하여 자신의 영성을 지켜나가야 한다. 한국사회는 사람의 인격적인 부분보다는 능력을 우선으로 삼는 사회다. 선교사들까지도 인격적인 면에 앞서서 능력으로 평가를 받아 왔다. 선교사를 허입할 때 인격에 대한 검증이 잘 안되었다는 뜻이다. 팀 사역을 잘 하도록 하는 것은 선교사를 허입 할 때부터 능력 보다는 인격과 영성을 기준으로 삼는 것이 기본이 되어야 한다.

 

3. 한국인의 성품이 협력을 방해한다.

한국인의 공통적인 의식구조와 사회적인 성격으로는 협력사역을 하기에는 어려운 면이 있다. 협력선교를 못하게 하는 한국인의 성품은 무엇인가?

 

1) 한국인은 기질상 서두르는 편이다. 외국인이 제일 먼저 배우는 한국말은 빨리, 빨리. 그러나 선교는 인내하는 것이다. 언어습득부터 시작해서 빨리 할 수 있는 것은 거의 없다. 선교사가 긴장감을 가져야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 느긋한 마음으로 예수님이 오실 때까지 지속적으로 끈기 있게 해야 할 필요가 있다. 빨리 빨리 무엇인가 하려고 하는 한국인 선교사의 성품은 협력사역을 방해하는 요소가 된다.

 

2) 가족주의를 근간으로 하는 뿌리 깊은 서열의식이다. 협력사역의 본질은 은사와 역할을 합리적으로 인정하고 서로 보완적인 관계를 유지하는 것이다. 그러나 한국의 전통적인 관계는 가정, 직장, 사회에서 서열을 정하는 것이다. 한국 사람들은 처음 만나는 사람에게 나이를 먼저 물어보는 습관이 있다. 서열을 짓기 위해서다. 한국인은 무의식적으로 서열의식을 따진다. 한국 사회에서는 수평적인 관계보다는 수직적인 관계가 오히려 자연스럽다. 그러기에 은사와 역할과 관계없이 누가 더 선임자이고 위에 있느냐 하는 서열의식이 한국 선교사들을 올무에 빠지게 하고 협력사역의 큰 함정이 되는 것이다.

어느 선교지에서는 같은 단체의 선교사들이 한국에서 오는 손님들을 맞이해야 할 상황에서 맞을 준비는 하지 않고 서로 싸우기만 하였다. 그 원인은 선임을 중심으로 손님을 맞으라는 선교 단체본부의 지시가 있었는데 선교사들이 각자 자신이 선임이라고 주장하며 싸우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한 선교사는 선임의 기준이 목사 안수를 누가 먼저 받았느냐 하는 것에 있다고 주장하였다. 그 선교사는 목사 안수를 제일 먼저 받은 선교사였다. 또 다른 선교사는 누가 선교지에 제일 먼저 왔느냐 하는 것으로 선임을 정하자고 하였다. 이 선교사는 선교지에 제일 먼저 도착한 사람이다. 또 다른 선교사는 목사 안수 받은 목사 선교사 중에서 누가 제일 먼저 왔느냐 하는 것을 따져야 한다고 했다. 손님들이 한국에서 현장에 도착하는 순간까지 그렇게 서로 주장하다가 손님들을 맞을 준비를 못하는 그런 일이 있었다.

역할이나 은사 차원이 아니고 이런 서열의식으로 생긴 내적인 불화가 협력사역을 와해시키는 요인이 된다. 당연히 조직과 팀에는 질서가 있어야 한다. 은사에 따라서 지도자가 세워 져야 한다. 그러나 서로 다른 은사를 가졌다는 것은 각기 다른 은사를 가졌다는 의미이지 더 나은 은사를 가졌다는 의미는 아니다. 지도자가 되는 것도 은사중의 하나로 보아야 한다. 섬기는 은사가 있고 가르치는 은사가 있으며, 다스리는 은사가 있다. 다스리는 은사를 가진 사람이 위에 있거나 더 우수하다는 의미가 아니라 다스림을 통해서 자신의 은사를 발휘한다는 뜻이다. 지도자가 있다면 그 지도자는 서로 다른 직분을 가진 사람들이 조화를 이루어 일을 잘 하도록 조정해주는 조정자의 위치에 있다. 선교사가 모두 다 지도자가 될 필요는 없다. 그러므로 성경적인 섬김의 지도력을 무시하고 한국인의 문화에 따라는 한국인의 수직적인 지도력은 협력 사역을 방해하는 하나의 요소이다. 서열의식은 선교사 자신이 좌우할 수 없는 체질화된 관계 문화로서 협력을 방해하는 요소인 것이다.

 

3) 한국인은 조력자보다는 지도자를 더 선호하는 기질이 있다. 한국인 선교사는 선교사 자신이 지도자가 되어 자기 교회나 자기 사역을 자신이 직접 하기를 원하는 성품이 있다. 본국의 지원교회, 교단, 단체에 번듯한 사역 내용을 보이고 싶은 욕심이 있다. 한국인의 선교사들은 선택된 사역자라는 소명의식과 함께 선교사로 인정됨으로 비로소 명실 공히 한 사람의 독립적인 사역자, 혹은 지도자가 되는 전기를 맞게 된다. 더구나 오랜 기간 공부하며 부교역자로서 교회 봉사를 해온 선교사나, 자기 분야의 전문가로서 이력을 쌓은 전문인 사역자들에게 이것은 특별한 의미와 기대치를 부여하는 것이다. 꼬리가 되지 말고 머리가 되라는 격려와 권면을 받으면서 남다른 추진력과 노력을 통해 이제 만인이 인정하는 선교사의 신분을 가지게 된 것이다. 이런 상태로 선교지에 도착하게 되는데, 막상 선교지에 도착하여 장이나 대표가 아닌 한 사람의 팀 구성원으로 일해야 한다는 것은 한국인 선교사를 곤욕스럽게 만드는 요인이 된다. 때로 팀 사역의 원리를 알고 자신은 기꺼이 팀원의 한사람으로 섬기고 따를 용의가 있다고 하더라도 가문과 후원교회와 후원자들, 그리고 가족들의 성원과 기대, 자신의 사회적인 체면과 입지를 생각하면서 협력사역의 중요성을 잃어버리게 된다.

 

4) 획일성과 불건전한 권위주의와 서열의식을 가지고 있다. 이것은 군사문화의 폐해가 낳은 것으로서 교회나 선교사역에 있어서는 다양성을 인정하고 각 지체가 은사에 따른 사역을 하는데 방해하는 요인이다. 우리나라 헌법에 보면 국민이 주인이고 대통령을 비롯한 정치인은 국민을 위한 사람들이라고 분명하게 기록되어 있음에도 불구하고 대통령이 국민 밑에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한국이 대통령 중심제가 잘 들어맞는 이유도 서열의식에 있고 한국 교회에서 유독 장로교가 성장하는 것은 이런 권위주의적인 문화 때문이기도 하다. 이것은 동등한 입장에서 협력사역을 하는 것에 대한 방해 요소가 된다.

 

5) 한국교육 제도의 문제점이다. 한국의 교육제도는 개인의 특성과 기질을 인정하여 자신의 은사를 자발적으로 발휘하도록 하는 수평적인 관계 구조가 아니라 결과적으로 최고와 꼴지 사이의 석차로 사람을 평가하는 수직적인 관계구조를 심화시킨다. 이것이 한국사회의 교육이라고 말할 수 있다. 입시철이 되면 서울대를 중심으로 상위권 대학에 대두분의 언론이 집중되어 있다. 그보다 숫자적으로 수십 배 많은 다른 학생들의 동태는 많이 찾아 볼 수 없다. 오직 상위 몇 사람을 위한 것으로 고등학교 교육의 결과는 마무리 짓게 된다. 일본인에게는 남에게 맞추는 것이 좌절하지 않는 길이라고 하는 반면 한국인에게는 남과는 달리 우뚝 서는 것이 살아남는 길이다. 군대에서도 선착순이 군대 규율이 되어 있다. 몸이 약해서 선착순에 들지 못하면 계속해서 고생을 해야 한다. 오히려 일등은 더 많은 훈련을 받아 더 많은 일을 할 수 있도록 해야 하는 것이 옳은 일이다. 그러기에 능력이 있고 체력이 좋으면 쉽게 살아 갈 수 있는 사회다. 군대의 선착순 예에서 보는 것처럼 약한 사람은 더욱 힘들게 살아야 하는 구조가 한국사회이다. 이런 교육구조 가운데서 자란 사람들이 협력한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뭔가 특출하지 않으면 그 존재조차 인정받지 못하는 살벌한 생존경쟁 사회와 교육 분위기는 이 땅의 젊은 엘리트 사역자이 어떻게 해서든지 홀로 서서 자신의 생존을 보장받아야 한다는 절박한 입장을 만들었다. 이런 홀로 서기와 서열의식과는 상반되는 것처럼 보이지만 뒤집어 보면 기존의 서열에 눌리지 않고 독자적인 위치와 힘을 확보하겠다는 서열의식의 표출이라고 볼 수 있다. 이것은 협력사역의 치명적인 장애물이다.

필자의 큰딸이 에콰도르에서 살다가 한국에 와서 중학교 3학년을 다녔는데, 시험 때가 되었다. 그 때 반의 한 친구가 시험 공부하는데 어렵다고 해서 노트를 빌려주었다. 큰 딸에게는 그것이 사람 사는 이치였고 기본 상식이었다. 그런데 그 말을 나중에 들은 다른 친구들이 큰 딸이 바보라고 했다. 시험 때 자기노트를 친구에게 보여주거나 빌려주는 것은 바보나 하는 짓이라는 것이다. 딸은 한동안 이 말을 이해하지 못했다. 공부를 못하는 아이를 도와주었는데 왜 그것이 바보짓인가? 나중에 알고 보니 학교에서 친구는 도와주어야 할 자가 아니라 경쟁자라는 것이다. 경쟁자를 도와주었으니 자연히 딸은 바보가 된 것이다.

요즈음 중, 고등학교에서 학생들에게 가장 어려운 과목이 도덕과목이라고 한다. 이전시대에는 도덕이 제일 쉬운 과목이었는데 지금은 제일 어려운 과목이 되었다. 도덕이 가장 어려운 과목이 된 이유는 아이들이 일상에서 가진 가치관과 생각이 도덕과목에서 가르치는 내용과 다르기 때문이다. 예를 들면 도덕 과목에서는 어렵고 가난한 사람을 도와주어야 한다고 가르친다. 내가 힘들더라도 다른 사람의 어려운 점을 이해하고 도와주어야 한다. 그러나 아이들이 가진 생각은 그것이 아니다. 어떻게든 다른 사람과 싸워 이겨야 한다는 것이다. 나보다 공부 못한 친구가 있으면 도와주는 것이 아니라 내가 열심히 공부하고 정보나 자료를 숨겨서라도 이겨야 한다. 이기는 것이 바로 잘 사는 길이라는 것이 아이들이 가진 생각이다. 그런 생각과 철학이 도덕 과목에서 요구하는 답과 다르니 이해가 안 가는 것이다. 그래서 도덕이 가장 어려운 과목이 된 것이다. 다른 말로 말하면 옛날의 미덕과 상식들이 오늘날의 세상과는 정반대라는 것이다. 내가 손해 보는 것은 안 되고 내가 일등 해야 하고 내가 돈을 더 벌어야 잘 사는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이 요즘 세상의 풍토라는 것이다. 이런 이유 때문에 다른 사람을 위해 내가 손해 본다는 것은 더욱 어려운 일이다.

선교협력이 어려운 이유는 자기 자신을 내려놓아야 하기 때문이다. 자기가 손해 보아야 하기 때문이다. 그 손해라는 것은 단순히 물질적인 손해만이 아니라 자신의 정체감에 대한 손해까지 포함하는 것이다. 다시 말하면 자신의 이름을 내지 못할 수도 있다. 그 손해라는 것은 자신만의 사역에 열매가 없을 수도 있는 것이다. 그 손해라는 것은 드러나는 것이 없이 일만 하는 것일 수도 있다. 한국 선교사들은 그 손해를 감수하려는 마음이 적어서 협력이 잘 안 되는 것이다.

 

6) 한국 선교사들은 조직 사회에 대한 인식과 경험이 비교적 약하다. 일반 직장이나 단체 속에서 일한 경험보다는 관계중심의 교회사역에 익숙한 사역자들이 관계와 조직의 조화가 필요한 팀 사역에 적응하기에 어려운 면이 있다. 그 결과 사역에 관련된 토의나 협의의 과정이 자칫 감정적인 관계 문제로 비화하기가 쉬운 것이다. 객관적인 사실과 주관적인 느낌을 동일시하는 것이 한국인의 일반적인 약점이라고 할 수 있다.

 

7) 한국인에게는 구시대적이며 불합리한 서열의식과 함께 체제와 권위의 붕괴로 인한 무질서 현상이 나타난다. 한국 사회는 군사 독재주의에 얽매여 있다가 민주화가 되면서 정당한 권위마저도 무시되는 가치관의 붕괴가 있다. 과도기적 상황에서 살아온 한국 선교사들은 질서보다는 무질서 쪽으로 더 나아가는 경향이 있다. 이처럼 선교지에서 진정한 질서마저도 무너지는 현상이 협력사역을 어렵게 만들고 있다.

 

4. 관계보다는 사역에 초점을 맞추어 팀을 형성하는 것이 방해 요소다.

사역을 잘 하기 위해서는 다른 선교사와 신뢰 관계가 먼저 이루어져야 한다. 그러나 신뢰에 초점을 맞추어 서로 관계를 지속하면서 사역을 하기 보다는 사역이 우선되기에 협력하는 것이 어렵다. 자기가 손해를 보아도 상대가 존경스럽고 신뢰가 되기에 양보할 수 있는 의식이 필요하다. 그렇지 못할 경우 신뢰 관계의 결여로 인한 팀 사역은 깨지게 되는 것이다.

 

5. 선교지 자체 상황이 어렵기 때문이다.

선교지는 영적 전투의 장으로써 삶에 있어서 치열한 전쟁지역이라고 할 수 있다. 사단은 선교지에서 선교사들에게 더 많은 영적인 공격을 하고 있다. 이런 결과로 많은 긴장과 스트레스를 가지고 사는 것이 선교지 상황이다. 때로는 선교지에서 아무 것도 안하고 가만있기만 해도 엄청난 스트레스가 있다. 선교사 자신도 스스로 제어할 수 없는 상황들이 많이 일어나고 이런 상황에서 상담이나 도움을 요청할 수 있는 사람이 한정되어 있는 곳이 선교지다. 선교지는 객관적인 판단보다는 주관적으로 흐르게 하는 분위기가 있다. 똑같은 문제가 한국에서 발생했을 때는 그냥 넘어갈 수도 있고 해결 받기도 쉽지만 선교지의 상황 그 자체가 작은 문제를 크게 만든다. 선교지에서는 선택의 여지가 적다. 한국이라면 조그만 일이나 감정적인 어려움이 있다고 하더라도 선택의 여지가 크기 때문에 크게 흔들리지 않는다. 그러나 선교지에서 산다는 것 자체만으로 사람의 감정을 좁게 만들고 결국 이것이 협력사역을 방해 하는 요소가 된다.

선교사는 이 장애 요소 때문에 언제까지 팀 사역을 보류하고 외면하고 혼자서만 사역할 것인가? 이런 방해 요소에도 불구하고 협력사역을 계속되어져야 한다.

 

 

III. 협력사역의 필요성

 

1. 협력사역은 성경의 요구 때문에 필요하다.

1) 예수님의 모델

예수님은 3년 동안 공생의 사역을 감당하셨다. 지상에서 하신 일을 다 기록하기에 세상에 둘 곳이 없을 정도로 많은 일을 하셨다(21:25). 예수님은 사람들을 향하여 전도, 교육, 치유의 사역을 하셨다. 그중에 가장 뚜렷한 사역은 12제자를 선택하신 것이었다. 예수님은 제자들과 동거하셨으며, 부활하신 후에는 사역을 위임하시고 승천하셨다. 그 후 12제자를 통해서 세계 복음화를 예비하시고 성취하셨다. 예수님께서 제자들을 선택하셔서 훈련하실 때, 훈련과정에서 2명을 한 조로 해서 6개의 전도 팀을 만들어 내 보내셨다(6:7-13). 제자들을 선택하여 훈련하는 과정에서 파송하실 때 사역을 분배하시고 둘씩 짝을 지어 보내셨다. 여기서 예수님의 협력사역에 대한 관심을 볼 수 있다. 제자들에게 전도를 위해 함께 보내셨던 주님은 최종적으로 세계 복음화를 제자들에게 위임하시고 승천하셨다. 협력사역의 중요한 부분인 위임을 하신 모습을 볼 수 있다. 제자들이 완벽하지 못하고 부족한 면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들에게 위임을 하시고 떠나셨다. 예수님은 혼자 사역하신 것이 아니라 제자들과 함께 하는 삶이었다는 사실에서 협력사역에 대한 주님의 모습을 볼 수 있다.

 

2) 사도 바울의 본보기

신약 성경의 최초의 선교사 바울은 다메섹 도상에서 예수님을 개인적으로 만난 후 아나니아를 통해서 선교의 개인적인 부르심과 사역에로의 부르심을 자각하게 된다(9:1-18). 바울은 구원에로의 부르심과 사역에로의 부르심이 동시에 있었음에도 선교지로 바로 출발하지 않았다. 선교사로서의 준비와 훈련이 부족해서가 아니었다. 당시 공용어인 언어, 로마 시민권, 헬라문화가 석권하던 시대의 문화 훈련, 장막 짓기로 자급자족함으로 재정 문제를 해결함, 가말리엘 신학교의 졸업생으로의 신학 훈련 등 어느 것 하나도 부족한 것이 없었으나 바울은 기다렸다. 그는 사도행전 13장에서 지역교회인 수리아 안디옥 교회가 성령의 음성을 듣고 바나바와 바울을 파송하라는 교회의 부르심이 있을 때까지 목회를 했다. 그의 목회는 팀으로서 지역 교회인 안디옥 교회와 더불어 시작을 했고 또 같은 팀원인 바나바와 수종자 마가 요한과 함께 제 1차 여행을 떠났다(12:1~5). 그 후에 디모데, 실라, 에바브로 디도, 브리스길라와 아굴라, 뵈뵈등 수많은 사람과 함께 사역을 하였다. 바울과 끝까지 동역했던 사람들에 대해서는 바울 서신에 잘 나타나 있다. 이런 바울의 모습을 통해서 보면, 바울은 팀원과 함께 사역을 시작했고 팀원들에게 사역을 분배했고 선교현장에서 현지인과 동역했고 현지 지도자에게 위임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3) 초대교회의 모습

초대교회는 일곱 집사를 선출해서 그들이 교회를 이끌어 나가도록 하였다. 여기서 장로들과 집사들의 팀워크를 볼 수 있다. 스데반은 집사였지만 설교를 하였고 순교를 하였다. 스데반을 통해서 평신도의 적극적인 사역 참여를 볼 수 있고, 팀 사역의 중요한 요소 중의 하나인 서로 인정해 주는 모습을 볼 수 있다.

 

4) 구약 시대의 선지자들과 사사들의 경우

구약의 많은 선지자들과 사사들은 혼자서 일하지 않았다. 사사기 710절에 보면, 기드온에게 네 명의 부하 부하를 데리고 그 진으로 가라는 명령을 볼 수 있다. 시편 133편에서는 형제가 연합하는 것이 영생이라고 말씀한다. 협력했을 때 구원의 역사가 일어난다고 강조를 하였다. 형제가 연합하여 동거함이 그리도 선하고 아름답기에 사단은 협력사역을 싫어하는 것이다.

 

2. 선교지가 갖는 어려운 특수 상황 때문에 협력 사역이 필요하다.

선교지에서의 많은 문화 장벽을 극복하기 위해서 팀으로 사역해야한다.

 

1) 언어 장벽

문화의 장벽 중에서 가장 큰 장벽은 언어장벽이라고 할 수 있다. 선교사 한 사람이 고국을 떠나 선교지에 도착하기까지 많은 훈련을 받으며 준비를 한다. 선교지 대부분의 사람들은 초등학교도 제대로 나오지 못한데 반해 한국 사람들은 정규 학교교육과 신학훈련을 받고, 교회사역 경험과 전공에 따른 세속 직업과 타문화 경험, 영어 훈련등 긴 훈련과정을 거쳐 선교지에 도착하게 된다. 그러나 소원하던 땅, 주님이 보내신 그 땅을 밟는 순간부터 복음을 전할 수 있는가?

선교지의 언어를 미리 배웠거나 선교지에서 태어났을 경우의 특별한 사람을 제외하고는 언어의 장벽 때문에 최소한 1~2년은 언어습득에 시간을 투자해야 한다. 이 기간에 선교사가 어떻게 혼자서 선교지에서 살 수 있을 것인가? 선교사가 처음 선교지에 도착하는 것은 말을 잘하던 사람이 갑자기 말 못하는 사람이 되는 것과 같다. 선교지에 도착했을 때 말을 못해 집밖으로 나갈 수 없을 만큼 두려움과 어려움이 있다. 시장도 못 가고, 사람들을 대하는 것도 두렵다. 은행에 갈 수도 없고, 전화도 할 수 없는 상황의 고립된 지역에서 혼자 사는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선교사가 혼자서 이 과정을 통과하기는 힘들다. 반드시 누군가의 도움이 필요하다. 그 도움은 협력하는 동역자가 주는 것이다. 동역자의 도움이 언어훈련 기간을 통과하게 하는 것이다.

 

2) 선교지 문화적응

선교사가 어느 곳에 집을 얻어야 하는가의 문제를 비롯해서 처음 도착할 때부터 인도해 주는 사람 없이 정착하기란 힘든 일이다. 만약 처음부터 팀을 이루어 협력으로 사역한다면 이런 어려움은 극복할 수 있다. 언어는 어디서, 어떤 선생님에게, 어떤 대학에서, 얼마동안 배워야 하는가, 사역은 어디서 해야 하는가 하는 것에 대한 도움을 받는다. 돈은 어떻게 바꾸며, 은행 이용은 어떻게 하며, 우체국은 어떻게 이용하며, 음식은 어떤 것이 있는지, 이웃은 어떻게 사귀어야 하는지, 등을 선임 선교사로부터 도움을 받을 수 있다. 팀으로 일한다면 미리 시행착오를 경험한 선임 선교사의 도움으로 필요 없는 경제적, 시간적 낭비를 줄일 수 있다.

 

3) 사회복지 보장

선교사가 외국인으로서 현지 사회 구조 속에서 함께 결속함의 혜택을 누릴 수 있어야 한다. 이 혜택을 누릴 수 있도록 팀 동료가 도와준다. 곧 자녀 교육, 거주 보장, 의료 보험, 신분 보장 등은 선교사 혼자 하는 것보다 팀이 함께 해결할 때 훨씬 더 쉬워진다.

 

3. 선교지의 토착화 문제가 협력사역을 필요로 한다.

선교사가 현지에 공헌하는 정신적, 영적, 물질적인 것들은 결국에는 선교 현지인의 것이 되고 그들 손에 의해서 운영되어지는 것이 바람직하다. 선교 현지의 필요에 따라 선교사역의 종류는 다양하다. 교회개척, 교육이나 의료 기관 설립, 신학교나 일반 기관 사역 혹은 특수 사역 등 이 모든 사역의 마지막은 선교 현지의 교회나 학교 기관이 되는 것이 건강한 선교다. 선교는 거저 받은 복음을 거저 주는 것이고 대가를 바라지 않은 그리스도의 희생적 사랑의 동기에서만이 끝까지 감당할 수 있는 사역이다. 이런 목표를 이루기 위해서 선교 현지 지도자들과 처음부터 동역과 협력계획을 가져야 한다. 그렇지 않고서는 현지인에게 위임하는 일이 어려워진다. 현지 위임이라는 측면에서 현지인들과의 협력이 필수적인 것이다.

 

4. 선교사역의 효과를 극대화시키기 위해서 팀 사역이 필요하다.

한국 목회에서 한 교회의 교인이 250명을 넘어서면 담임목사 한사람의 힘으로는 한계를 가진다. 행정 분야를 위해 행정사역자와 교육 분야를 위해 교육 전도사, 교육 목사가 필요하다. 음악을 위해 반주자와 지휘자 그리고 음악목사도 필요하다. 목회 분야를 위해 부목사, 여전도사, 교회 사찰의 동역도 필요하다. 이 모든 사역자들이 담임목사와 팀원이 되어 사역한다. 이런 다양한 사역이 필요한 선교지에서는 더더욱 개인 선교사 한 사람이 다 할 수는 없다. 한 사람이 은사를 다 가질 수도 없을 뿐 아니라 한 사람의 책임과 능력과 체력에 한계가 있다. 현대 사회는 전문화, 세분화, 분업화로 일을 하는 시대이다. 선교사역 역시 이와 같이 서로 나누고 협력해서 감당하는 것이 효과적이다. 각양 다른 은사를 가진 선교사들이 한 팀으로 한 목표를 세워 한 마음으로 최선을 다해 사역을 할 때 사역의 효과를 극대화 할 수 있다. 혼자 하는 것 보다 협력을 통해서 훨씬 더 많은 일을 할 수 있다. 혼자서는 일이 안 되는 것도 협력을 통해서 이룰 수 있는 경우가 많다. 일반 사업을 하는 경영자도 협력의 원리를 무시하거나 사용하지 않는 자는 뒤떨어진다. 하물며 하나님의 지혜를 가지고 하는 선교사들이 사역을 혼자서 다 하려는 것은 심각한 문제가 된다. 여러 사람의 동역은 한 사람의 일하는 것보다 더 좋은 결과와 상급을 누리게 되는 것은 성경의 원리이다(4:9-12). 두 사람이 일하면 두 배의 결과를 가져오는 것이 아니라 두 배 이상의 결실을 맺을 수 있다. 뿐만 아니라 어려움과 실패와 낙망 속에 있을 때 동역자가 있으면 그 위기 상황을 쉽게 극복할 수 있다. 서로 위로와 도움을 주고받는 것은 동역을 통해서만 이루어 질 수 있다. 팀으로 일한다는 것은 의사소통과 역할 분담에 있어서 일방적인 관계가 아니라 은사와 능력에 따라 서로 주고받는 쌍방관계를 이루는 원리이다. 아무리 어려운 과업이라고 해도 동역자가 있으면 과감하게 시도할 수 있고, 또 그 사역이 견고하고 안정성 있게 된다. 한 개인에게는 벅찬 것이지만 여러 사람이 같은 목표를 정하고 함께 일하면 그 일을 성취할 수 있고 그 사역이 쉽게 무너지거나 중단되지 않는다. 협력사역을 할 때 사역의 연속성과 안정성이 이루어지는 것이다.

 

5. 우주적 교회관을 생각할 때 팀 사역은 필수적이다.

자국 내에서의 국수주의는 어느 정도 인정되는 요소이다. 그러나 세계를 향해 나가서 선교사역을 하면서 국수주의를 주장하는 것은 위험하다. 선교에 있어서나 하나님 나라의 관점에 있어서 국수주의는 위험한 장애 요인이다. 교회는 우주적이다. 하나님은 전 세계를 똑같이 사랑하시고 평등하게 인정하신다. 우주적인 교회관을 가지고 미국인, 영국인, 유렵인, 남미인, 아프리카인, 아시아인 모두가 한 팀이 되어 일해야 한다. 이런 생각을 가지고 선교사역을 하는 것은 우주적인 교회의 당연한 모습이다. 모두가 한 팀이 되어 일한다면 그 모습이 곧 우주적인 교회를 맛볼 수 있는 모델이 될 수 있을 것이며, 이것은 선교에 참여하는 사람들이 누릴 수 있는 특권이 된다.

 

6. 교회적인 접근 방식에서 협력사역의 필요성이 있다.

세계선교의 지상명령은 교회에 주어졌다. , 머리가 되신 그리스도가 자기 몸인 교회에 내린 명령이다(28:19-20. 1:22-23). 몸의 지체끼리는 서로 유기적인 관계에 있다. 한 몸의 지체는 거의 무의식적으로 서로 협력할 수밖에 없게 되어 있다. 만약 지체끼리의 협력이 유지되지 못한다면 머리인 그리스도의 조종을 거부하는 병적인 상태가 된다(고전 12:12-27). 결과적으로 지체간의 협력 없이는 몸의 균형을 유지할 수 없고 기능도 제대로 수행할 수 없게 된다. 그리스도의 교회의 몸은 하나이고 많은 지체가 있다. 이 사실에 대해서 사람들은 두 가지 반응을 한다.

첫째는, ‘나는 아무 것도 아니야라고 하는 사람들이다. 이런 사람들은 교회의 일원이면서도 자신에 대해 당당함 보다는 열등감이 있다. 지도자가 혼자서 다하는데 굳이 내가 같이 일을 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나는 발처럼 더러워서 아무 것도 할 수 없을 뿐 아니라 나의 존재는 별 것 아니라는 생각을 한다. 그러나 한 몸에 손만 있고 발이 없으면 어떻게 될 것인가? 눈과 귀도 마찬가지다. 별 볼일 없다고 해서는 안 된다. 그리스도의 교회에서는 누구도 추종자가 아니다. 누가 잘나고 이끄는 것이 아니라 모두가 중요하고 모두가 주인이며, 모두가 리더가 되어야 한다. 교회 안에서도 중요하지 않은 사람은 하나도 없다. 교회에서의 지체들의 다름은 누가 더 중요한가 하는 문제가 아니라 역할의 문제다.

둘째는, ‘나는 교회 안에서 다른 사람보다 훨씬 중요하고 훌륭하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다. 교회에 내가 없으면 안 된다는 생각을 하는 것이다. 그러나 교회에서 누가 더 훌륭한가 하는 것을 따지면 안 된다. 다른 은사가 똑같이 필요하며, 똑같이 중요하다. 교회는 다른 지체들의 서로를 필요로 해야 한다. 서로 필요하지 않으면 한 몸을 이루지 못하게 된다. 선교에 있어서도 팀을 이루는 것은 이처럼 중요하다. 한 선교사의 리더도 은사중의 하나일 뿐이다. 리더가 조정자의 은사를 가지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교회와 선교에 있어서 지체들은 모두가 리더가 될 수 있다. 모두가 추종자이면서 모두가 지도자가 되어야 한다는 말이다. 에베소서 411~14절에서 하나님이 은사를 주셨는데, 이것은 몸 된 교회를 세워 나가기 위해서다. 은사는 개인을 위해서 주신 것이 아니라 교회를 위해 주셨다. 그러므로 사역을 할 때 경쟁을 하면서 일을 해서는 안 된다. 선교사는 교회의 본질적인 원리에 따라서 협력을 해야만 한다.

 

7. 윤리적인 접근 방법에 있어서도 그 필요성을 찾을 수 있다.

그리스도인의 윤리의 대 강령은 사람을 섬기는 것이다. 주님은 사람을 섬기러 이 땅에 오셨다. 이웃에게 사랑을 주지 않고 또 섬기지 않고 선교할 수는 없다(22:19-40). 동역자와 현지인을 무시하고서는 선교할 수 없다. 마치 전장에서 동료 전사를 무시하고 혼자서만 총을 쏘며 적을 향해 뛰어드는 행동은 참된 용기로 볼 수 없고 충성스럽다고 볼 수도 없다. 다른 사람을 생각하며 동역자와 함께 사랑의 원리로 사역을 해야 하는데 이는 그리스도인의 기본윤리다.

 

8. 하나님 자신이 보여 주신 모범에서 그 필요성을 찾을 수 있다.

하나님이 세상을 창조하실 때, 하나님의 신이 수면에 운행하셨고(1:2), 하나님의 형상으로(복수형) 사람을 창조하셨다(1:29). 구속사역에 있어서도 하늘이 열리고 하나님의 성령이 비둘기 같이 내려 자기 위에 임하심을 보더니”(3:16)라고 한 것처럼 삼위 하나님이 함께 사역하셨다. 하나님은 우리를 선택하셨고 성자께서는 우리를 구속하셨고 성령께서는 우리를 믿고 거듭나도록 인치셨다(1:3-14). 하나님께서는 직접 협력 사역을 감당하심으로 모범을 보이셨다.

이런 몇 가지 이유들은 우리가 협력을 어떻게 생각하고 준비해야 하는가를 가르쳐 준다. 이런 필요성 가운데서 협력사역을 효과적으로 잘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IV. 효과적인 팀 사역 원리

 

1. 비전을 생각한다.

모든 그리스도인의 비전은 하나님 나라의 확장에 있다. 이것은 우리의 최고의 비전이며, 유일한 비전이다. 모든 선교사와 그리스도인의 공동의 목표이다. 이를 위해서 우리 모두는 함께 일하는 것이다. 선교는 선교사 각자의 영역과 영광을 위해서 일하는 것은 아니다. 자기 교단이나 선교단체의 확장도 아니고 한국교회의 힘을 펼치는 것도 아니다. 개인 선교사의 욕심을 성취하는 것도 아니다. 선교사는 이 모든 것을 내려놓고 하나님 나라의 확장을 위해 협력해야 한다. 우리의 옆에 있는 다른 선교사는 같은 비전을 가진 사람이다. 같은 목표와 골을 향해 달리는 하나의 협력 팀원이다. 만약 경기를 하는데 팀 내에서 싸우고 서로 협력이 안 된다면 그 경기는 당연히 지게 될 것이다. 같은 비전과 목표를 가진 팀이 협력이 안 된다면 실패하는 것은 당연하다. 그러므로 서로 협력이 어려운 순간이 있을 때 비전을 생각해야 한다. 함께 비전을 나누고 그 비전을 품고 함께 기도할 때 협력은 가능하게 될 것이다. 우리는 사역 그 자체나 옆에 있는 동료를 바라보는 것보다도 비전을 바라보고 비전을 따라 함께 일해야 한다.

 

2. 한국적인 성품에서 성경적인 가치관으로 바꾸어 나간다.

한국인 선교사는 유교적인 명목주의를 성경적인 가치관으로 바꾸는 작업이 필요하다. 가족의 개념을 혈연적인 친척으로만 한정하지 말고 그리스도 안에서 한 형제, 자매된 선교의 동역자로 확대하는 것이다. 이것은 성경적으로는 너무나 당연한 것이지만 우리의 생리적인 가족주의의 감정은 그것을 거부해 왔다. 성경적인 문화와 가치관으로 인간적이고 전통적인 우리 문화의 체질과 관습을 극복하고 고치도록 하는 문화의 대 변혁만이 협력 사역의 기초가 된다. 내 모친과 동생들은 곧 하나님 말씀을 듣고 행하는 자들이라고 말씀하신 주님의 가족관이 우리에게 필요하다. 가족과 이웃이 함께 고락을 나누어 온 우리의 끈끈한 인정을 좀 더 성경적인 원리로 승화할 때 협력사역은 잘 될 수 있다. 언제 어떻게 위험을 당하고 고난에 빠질지 예측하기 어려운 치열한 영적전투의 현장에서 우리 고유의 공동체적인 상부상조의 품앗이와 가족적인 보살핌을 성경적인 원리와 접목시킬 때 한국인 선교사들은 협력을 잘 할 수 있을 것이다.

 

1) 자신의 정체감을 직위에 두는 것이 아니라 사역 그 자체에 둔다. 직위를 사역보다 더 중요하게 여길 때는 협력하기 어렵다. 대부분의 선교사들이 협력이 안 되는 것은 직위에 대한 욕심 때문이다. 많은 선교사들이 말로는 직위에 대한 욕심이 없다고 하지만 직위를 사역보다 더 중요하게 여기고 직위에서 자신의 정체감을 둔다. 그러나 자신의 정체감을 직위에서 찾지 말고 사역에서 찾아야 한다. 외형적인 직책보다는 사역의 내용을 더 중요시 여겨야 한다. 선교지에서 선교사들끼리 토론을 하다가 결국은 내용으로 지게 되면 당신, 언제 선교지에서 왔어라고 말한다. 선교지에 늦게 온 주제에 뭐 할 말 있느냐는 것이다. 내가 선배이니까 네가 실력이 있더라도 조용히 따르라는 말이다. 이처럼 직위와 권위를 사역의 내용보다 앞에 두면 안 된다. 자신의 사역에 만족하면 어떤 지위에 있든지 협력사역은 쉽게 이루어진다.

 

2) 자신의 전공을 계발하고 실력을 키운다. 자신의 전공이 확실하면 다른 사람과 구별되고 서로 부딪칠 일이 많지 않다. 자기 일만 열심히 하면 되기 때문이다. 자기 전공에 대한 실력이 있고 자신감이 있으면 외형적인 것은 그리 크게 문제가 되지 않는다. 협력을 못하거나 서로 사이가 좋지 않은 것은 각자가 자신이 가진 전공이 분명하지 않고 자기 영역을 다른 사람도 똑 같이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이민 사회에서 중국 사람들은 자기들끼리 잘 뭉치고 협력을 잘 한다는 소문이 나 있다. 그래서 같은 업종으로 서로 경쟁하지 않는다. 반면에 한국 사람은 잘 되는 품목이나 가게가 있으면 그 옆자리를 얻어서 장사를 한다. 한국 사람끼리 서로 똑 같은 품목으로 장사를 하면서 싸운다. 그러다가 두 사람이 다 망하게 된다. 그러나 상대의 은사와 다른 은사, 즉 자신만의 특별한 은사를 가지면 서로 싸우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함께 협력하게 된다. 선교사는 자기만이 할 수 있고 내세울 수 있는 전공을 개발하고 실력을 키워나가야 한다. 협력사역이 안 되는 문제는 다른 사람에게 있는 것이 아니라 바로 자신에게 있고 그 자신의 문제는 자신의 전공에 대한 부족한 실력 때문이라는 생각을 가져야 한다.

 

3) 자신의 은사를 이해한다. 자신의 은사를 인정하는 지혜로운 사람이 협력을 잘 할 수 있다. 자신의 은사가 2인자라면 2인자의 역할을 잘 감당하면 된다. 그러나 굳이 일인자가 되려고 하는 것이 문제다. 일인자의 리더가 되기에는 실력도 안 되고 하나님이 주신 은사는 보좌하고 섬기고 2인자의 역할을 하는 것인데 굳이 리더가 되려는 욕심이 협력을 못하게 만든다. 자신이 일인자의 은사를 받지 않았는데 일인자가 되려고 하는 것은 자신과 다른 사람까지도 손해를 끼치게 된다. 그래서 선교사는 일인자가 되려고 하는 권력에 대한 욕심을 버려야 한다. 권력에 대한 욕심을 버리는 것은 하나님이 자신에게 주신 은사를 잘 이해하고 받아들이는 것이다.

선교사가 협력사역을 하지 못하는 이유 중의 하나는 파송교회에 있다. 파송교회에서는 자신들이 파송한 선교사가 선교지에서 다른 사람을 돕고 있다는 것 자체를 인정하지 않으려고 한다. 우리가 파송한 선교사는 선교지에서 일인자로 사역을 감당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선교지에서 우리 선교사만의 자기 사역이 있어야 된다고 생각한다. 우리 선교사가 우두머리가 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우리가 기도하고 헌금해서 파송한 선교사가 다른 선교사 밑에 들어가 뒤치다꺼리나 해준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2인자 즉, 돕는 자는 뒤떨어진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부족한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우리 선교사가 무엇이 부족해서 다른 선교사를 돕느냐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자기 선교사가 드러나지 않는 사역은 소용이 없는 것이다. 그러나 협력이란 모두가 일인자가 되는 것이 아니다. 어떤 이는 일인지가 되어야 하고 어떤 이는 그를 도와주는 2인자가 되어야 한다. 모두가 우두머리가 되는 것이 아니라 더 많은 보조자가 있어야 한다.

 

3. 한국에서 팀 사역의 경험을 갖는다.

한국인 선교사가 협력사역을 못하는 이유는 그것을 경험해 보지 못했기 때문이다. 이를 극복하기 위해 한국에서 다양한 사역을 하면서 팀 사역의 원리를 배우고 경험하는 것이 도움이 된다. 현재 주위에 있는 사람들과 어떤 관계를 맺고 있으며, 서로 협력을 잘 하고 있는지에 대해서 스스로 점검해 볼 필요가 있다.

 

4. 의사 전달의 기술을 배운다.

아무리 좋은 사람일지라도 인간관계 기술이 부족하다면 다른 사람과 관계를 맺는 것이 쉽지 않다. 그러나 타인과의 관계는 노력으로 만들어 갈 수 있다. 상대를 인정하고 수용하며, 공과 사를 구분할 줄 알고 의견을 경청할 수 있는 의사소통의 훈련이 도움이 협력사역에 된다. 자신을 과감히 그리스도 안에서 드러낼 줄 알고 나눠줄 줄 아는 자기 노출의 훈련도 협력사역을 잘 하기 위한 요소 중의 하나이다.

 

5. 나누는 습관을 갖는다.

선교사들이 협력이 안 되고 서로 싸우는 경우는 중요한 문제가 아니라 작은 문제 때문에 일어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조그만 것을 나누지 않아 서로 서운하기도 한다. 그러나 선교사들이 자기 것을 자기 것으로 여기지 않고 나누기를 좋아하는 습관이 되어 있다면 협력을 잘 할 수 있다. 사람은 누구나 욕심이 있다. 주기 보다는 받는 것을 더 좋아한다. 특별히 선교사들은 받는 것에 익숙해 있다. 후원자들로부터 받다 보면 주는 습관을 잃어버릴 수 있다. 선교사들이 그저 많이 받았으니 많이 나누어 주면 하나님이 더 채워주시련만 오히려 더 인색한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자기 욕심을 버리고 나누려는 태도가 있을 때 협력은 이루어질 수 있다. 무엇이든지 나누고, 주는 습관을 갖고, 자기는 손해 보겠다는 마음을 가진 선교사들이 모인 팀은 협력이 잘 이루어질 수 있다.

 

6. 동역자간에 서로의 원칙을 세워 나간다.

동역자와 서로 합의하에 원칙들을 만들어 갈 때 협력사역에 많은 도움이 된다. 협력하는 동역자의 자녀와 문제가 생겼을 때 먼저 내 자녀를 야단치는 원칙을 만드는 것이 하나의 예다. 물건을 구입할 때도 자기 생각만 하는 것이 아니고 내가 물건을 샀을 때 동역자가 어떤 감정을 가질 것인가에 대해 생각할 줄 하는 마음을 갖는 것도 필요하다. 한국인은 공과 사를 구분하기 힘든 문화 구조를 가지고 있는데 그런 면에서 공과 사를 구분할 줄 아는 원칙과 습관을 만들어 가는 것이 필요하다. 선교사들의 협력을 방해하는 요소 중의 하나가 재정적인 면인데, 재정을 사용할 때 서로 존중하고 분명히 하는 원칙을 만들어 나갈 필요가 있다. 개인의 이익보다는 상대에게 초점을 맞추어서 상대가 잘 되게 하는 원칙을 세워나갈 때 협력사역은 가능할 것이다.

 

7. 다른 사람과 서로 비교하지 않는다.

하나님은 사람을 다 다르게 창조하셨고 다르게 사용하신다. 동역자간에 그것을 인정할 때 협력사역을 잘 할 수 있다. 상대가 나보다 많이 가질 수도 있고 능력이 더 클 수도 있다. 그것을 단순 비교해서 자신과 상대를 평가해서는 안 된다. 하나님이 보시는 관점으로 서로 다름을 인정하고 비교 의식을 없애도록 하는 것이다.

 

8. 자신이 먼저 손해를 보고 상대에게 양보하는 마음을 기른다.

협력 사역을 한다고 하더라도 항상 이익과 좋은 것만 있는 것은 아니다. 때로는 손해보고 희생해야 하는 부분이 많이 있다. 내가 손해를 보지 않겠다는 마음이 협력 사역을 방해한다는 사실을 알고 상대를 통해 무엇을 얻으려고 하는 것보다 오히려 손해보고 주어야 한다는 마음이 우선되어져야 할 것이다.

 

< 역지사지>

내가 침묵하면 생각이 깊은 것이고, 남이 침묵하면 생각이 없는 것이다.

내가 늦으면 사정 때문이고, 남이 늦으면 게으름 때문이다.

내가 자리를 비우면 바쁜 만큼 유능한 것이고, 남이 자리를 비우면 어디서 노는 것이다.

내가 화를 내면 소신이 뚜렷한 것이고, 남이 주장하면 고집불통이다.

내가 통화를 하면 업무상 급한 것이고, 남이 통화 중이면 사적인 일이 너무 많은 것이다.

내가 아프면 아픈 만큼 쉬어야 하고, 남이 아프면 체력마저 의심스러운 것이다.

내가 가족사진을 사무실에 걸어놓으면 가족의 화목이 자랑스러운 것이고, 남이 사무실에 가족사진을 걸어 놓으면 직장에서도 집 생각 만 하는 것이다.

내가 회의 중이면 남은 잠간 기다려야 하고, 남이 회의 중이면 나는 잠간 만나야 한다.

내가 남의 말을 들으면 폭이 넓은 사람이고, 남이 남의 말을 들으면 줏대가 없는 사람이다.

내가 이성과 사귀면 로맨스이고, 남이 이성과 사귀면 스켄들이다(이영, 2010).

 

9. 자신의 영성관리를 잘 한다.

협력사역을 하기 잘 위해서 십자가 앞에서 자신을 죽이고 나보다 남을 낫게 여기는 마음이 필요하다. 십자가 앞에서 자존심과 자아를 철저히 내놓을 수 있는 영성이 협력사역에서 가장 기본이 되는 요소이다. 협력사역을 하면서 같이 있는 동역자를 축복하고 서로의 관계를 위해 꾸준히 기도하는 것이 필요하다. 사단이 선교사들간의 관계 속에서 틈타지 못하도록 하기 위해 늘 기도하는 습관을 갖는 것이다.

 

10. 동역자들이 서로 신뢰하는 마음을 갖는다.

동역자를 신뢰하지 않으면 아무리 좋은 환경과 조건이라도 협력사역을 하기 힘들다. 상대를 존중하고 인정하는 신뢰관계가 지속되도록 하는 것이 협력사역에서 요구된다.

 

11. 자신의 내면의 상처를 치유한다.

협력을 방해하는 모든 원인들 가운데 가장 큰 것은 선교사 각자가 가지고 있는 내면의 상처들이다. 상처가 많은 사람은 협력사역을 하기 어렵다. 협력이 잘 안 되는 선교사가 있다면 다른 사람에게서 원인을 찾지 말고 자신의 상처를 점검해 볼 필요가 있다. 자신에게 남아 있는 상처가 크다면 그것이 팀 사역을 방해하는 가장 큰 요인이 된다. 그래서 자신의 상처를 솔직하게 인정할 필요가 있다. 그 상처를 치유하기 위해서 상담을 받거나 쉼을 가질 필요가 있다. 상처에 대해 회복이 되어야만 협력 사역을 잘 할 수 있다.

 

12. 팀 사역 전략이 한국선교의 열쇠임을 이해한다.

선교를 효과적으로 하기 위한 열쇠는 결국은 팀 사역이다. 선교에 있어서 많은 문제들이 있고 한계가 있는데 그것을 극복할 수 있는 대안은 바로 팀 사역이다. 팀 사역이 효과적으로 이루어질 때 경쟁으로 하는 선교가 없어질 것이고, 선교의 열매도 분명하게 드러나게 될 것이다. 팀 사역을 할 때 자신이 하지 못하는 부분을 함께 할 수 있고 자신의 한계를 극복할 수 있게 된다. 무엇보다도 팀 사역을 할 때, 현지인을 세우고 훈련하고 토착교회를 이루는데 효과를 볼 수 있다. 팀 사역이 앞으로 한국선교의 문제를 풀어가는 열쇠라고 볼 수 있다. 팀 사역이 이루어질 때 한국 선교는 비전이 있다. 그러나 팀 사역이 이루어지지 않을 때에 한국교회의 선교는 어둡다. 그래서 지금은 팀 사역이 어렵고 안 되는 부분이 있더라도 팀에 대해 포기하지 말고 끝가지 노력해야 할 것이다. 한편으로 팀은 하나의 전략일 뿐 아니라 팀을 이루는 것 자체도 하나의 사역이라 할 수 있다. 팀이 아름답게 이루어질 때 그 때 아름다운 선교의 열매가 나타난다. 협력의 열매는 구원을 이루는 것이다.

 

13. 협력사역은 하나님의 은혜 안에서만 가능하다는 것을 안다.

협력사역은 하나님의 은혜로 된다. 사람이 아무리 노력한다고 하더라도 하나님의 은혜가 함께 하지 않으면 불가능하다. 선교사는 하나님의 은혜 앞에 무릎 꿇고 그 은혜를 구하고 체험하도록 해야 한다.

 

 

V. 결론

 

협력사역을 하기 위해서는 넘어야 할 장벽이 많다. 한국 선교사들에게는 협력의 담이 넘기에는 너무 높아 보인다. 그래서 포기하고 주저앉고 싶을 때가 많다. 차라리 혼자 하는 것이 더 쉽고 부담이 없을 수도 있다. 그 많은 희생과 손해를 감수하면서까지 그 높은 벽을 넘는 것은 무리가 될 수도 있다. 그러나 그 높은 담 이면에 기다리고 있는 하나님의 축복들을 생각하면서 참고 반드시 헤쳐 나가야 한다. 그 축복의 열매는 그 높은 담을 넘을 때만이 주어진다. 그 많은 축복을 누릴 수 있는 협력 사역을 기대하는 것, 이것이 우리의 소망이 되도록 해야 한다. 이것이 하나님 나라 확장의 지름길이 되기 때문이다.

 

 

<토의를 위한 질문>

1. 한국 선교사들의 협력사역의 장애 요소는 무엇인가?

2. 선교사들이 왜 협력사역을 해야 하는가?

3. 선교사들이 협력사역을 할 때 어려움들은 무엇이 있는가?

4, 선교사가 협력사역을 잘 하기 위한 방안들은 무엇이 있는가?

 

<부록1> 협력사역의 어려움

허 선교사와 김 선교사 가정은 외로운 개척지에서 비슷한 시기에 도착하여 같은 팀에 속해 팀 사역을 하는 선교사들이다. 같이 사역하게 된 것만 해도 서로 얼마나 기뻤고 만족했는지 모른다. 그런데 함께 지내다 보니 서로 성격이 맞지 않음을 발견하게 되었다. 시간이 지나면서 성격이 맞지 않음으로 인해 마음이 상하는 일이 자주 생기게 되었다. 허 선교사는 무슨 일이던지 대충하는 성격이었다. 계획을 하는 것을 아주 싫어하고 오늘 할 일을 다 못하면 내일 해도 상관없었다. 그러나 컴퓨터 같은 자기가 좋아하는 분야가 있으면 밤을 새 가면서 그것에 매달린다. 주위 정리도 대충하고 살며 약속한 것을 쉽게 잊어버리는 스타일이다. 어떤 일을 하고 싶으면 그날로 결정하여 일을 진행하자고 한다. 이에 반해 김 선교사는 매사에 계획적이고 계획한 것은 어떠한 일이 있어도 지켜야 하는 성격이다. 서로 약속한 것은 자신의 모든 시간을 희생해서라도 꼭 이루어 놓는 스타일이다. 자신이 원하는 것 보다는 타인과의 관계를 더 중요시 여겨서 상대방의 입장을 많이 생각한다. 같이 사용하는 사무실도 늘 정리가 되어 있어야 하고 그날 일도 계획된 대로 진행되어져야만 한다. 시간이 지날수록 이런 문제로 인해 두 선교사는 서로가 많은 스트레스를 받게 되었다. 서로 맞지 않는 일이 지속되다 보니 같이 하는 일 자체보다는 서로의 다른 점과 단점이 먼저 눈에 들어와 더욱더 힘들어 갔다. 두 사람이 서로 떨어질 수는 없는데 어떻게 하면 좋을지?

1. 당신은 두 사람 중에 어떤 성격에 가까운 사람인가?

2. 당신이 허 선교사 혹은 김 선교사라면 상대를 어떻게 이해할 수 있겠는가?

3. 두 사람이 동역을 같이 하기 위해서는 해야 할 방안은 무엇이 있는가?

 

<부록 2> 갈등 처리

1. 교회에서 갈등이 생기는 이유

1) 성품의 차이가 갈등을 일으킨다.

2) 사역의 접근 방식의 차이가 갈등을 일으킨다. 세대 차이에서 오는 갈등이다.

3) 힘겨루기가 갈등을 일으킨다. 힘겨루기 하는 권력남용은 다음과 같다.

(1) 아랫사람들에게 요구하고 있는 규율들을 이행하지 않는다.

(2) 다른 사람들을 부릴 수 있다고 믿는다.

(3) 잘못된 일을 바로잡기보다는 임시 방편식으로 땜질만 한다.

(4) 자신이 포함되지 않을 가능성이 있는 모든 제안에 대해 마음을 닫는다.

(5) 우리에게 방해가 되는 사람들은 필요 없다고 믿는다.

4) 교회 사역이나 비전에 대한 목적을 상실할 때 갈등을 일으킨다.

5) 가치의 차이가 갈등을 일으킨다.

6) 신학적 불일치가 갈등을 일으킨다. 교회에서의 여성의 역할, 예배 스타일과 형태, 성령의 사역과 은사 사용, 이혼과 재혼, 교회의 리더십에 대한 불일치가 있다.

7) 어떤 사람들은 갈등을 잘 일으키는 성향을 가지고 있다.

 

2. 갈등해결을 위한 원리

1) 갈등에 대한 바른 관점에서부터 시작하라. 영적인 문제일 수도 있다.

2) 모임 중에 기도하는 시간을 따로 마련해 두라.

3) 가능하면 잠정적으로 안정되었을 때 갈등을 다루라.

4) 갈등의 문제에 대해 적절하고 가능한 자료들을 만들라.

5) 모든 사람이 갈등을 일으킨 문제에 초점을 맞추게 하라

(1) 사람들의 의견을 달리할 수 있음을 허용한다.

(2) 자신들의 견해를 명확하게 설명할 수 있는 시간을 준다.

(3) 사람들이 불필요하게 상처받지 않도록 한다. 개인적인 공격을 하지 않는다.

(4) 감정이 격해질 때도 공손한 태도로 대화를 인도한다.

6) 사람들이 갈등을 벗어날 수 있는 길을 제공하기 위하여 선택할 수 있는 것을 제안하라.

7) 실수를 인정하라.

8) 리더십 자원을 지혜롭게 사용하라. 신뢰하도록 하라

9) 모든 갈등이 해결되거나 적어도 곧바로 풀리지는 않을 것임을 인식하라.

 

<부록 3> 기러기 떼에게서 배우는 교훈

만약 우리가 친구와 동역자 사이에서 기러기 떼들과 같다면, 다음 시즌에 여러분들이 기러기들이 겨울을 보내기 위해서 따뜻한 곳으로 이동하는 것을 볼 때에 그들이 "v"자 형으로 날아가는 것을 주의 깊게 보라. 그러면 아마 왜 그들이 그렇게 V자형으로 가는지를 알게 되면 흥미로울 것이다.

기러기들이 V자형으로 날아간다. 기러기 떼게 V자형으로 날면, 전체 기러기 떼가 혼자 날아가는 것 보다 71%를 멀리 날 수 있게 된다.

공동 목표를 가지고 협동 정신을 가진 사람들이 함께 일하면 서로가 서로에게 힘이 되어 목표를 더 빠르게 달성할 수 있다. 같은 방향으로 나누면서 날아가고, 팀처럼 날아갈 때, 더 빠르고 더 쉽게 목적지에 도달할 수 있다. 같이 돕는 것에 따라 도달하는 것은 최상으로 된다. 한 마리의 기러기가 V자 형을 이탈하면 그는 공기의 저항을 느끼고 혼자 날아가는 것이 더 어렵게 된다. 그는 재빨리 다른 무리 떼에게로 돌아올 때 그 앞에 있는 무리의 힘과 도움의 이익을 얻게 된다.

같은 방향으로 가는 사람들과 옆에서 하나가 되고 조율(협력)하면 힘이 더 적게 든다. 목표에 도달하는 것이 더 쉬어지고 더 만족스러운 결과가 있다. 모두는 도움을 주고받고 싶어 하게 될 것이다. 기러기가 날아가다가 피곤하게 되면, 그는 V자형 끝에 서게 되고 다른 기러기가 앞에서 날아가게 된다.

리더십을 나누게 되면 모든 시간에 상호 존중을 하게 될 것이다. 어려운 일이나 문제를 나누고 우리의 능력이나 우리의 전공, 은사, 자원을 서로 협력하게 될 때, (서로 존중하게 될 것이다) 기러기들이 V자형으로 날 때 그들은 앞에 있는 다른 기러기들을 격려하기 위해 소리를 내어 울어준다. 그러면서 (그 길에서) 그들은 같은 스피드를 유지하게 된다.

서로 격려하고 위로할 때 진행하는 것은 최상이 된다. 용기와 짧은 말 한마디는 동기부여가 되고 서로 돕고 강하게 되는 것이다. 그러면 최상의 유익과 결과를 가져오게 된다. 기러기들이 부상당하거나 피곤하게 될 때, 무리()에서 떨어져 나가는 것이 분명하지만, 다른 기러기들이 함께 무리를 떠난다. 그리고 그들은 그 (아픈 기러기)를 보호하고 도우면서 함께 날게 된다. 그들이 그 (아픈 기러기)가 죽을 때까지 함께 남아 있거나 아니면 그가 다시 날 때 까지 같이 가게 된다. 그러면 그들의 무리에 도달하게 되거나 아니면 다른 V자 형을 또 만들게 된다.

서로 다르다는 것에 상관없이 다른 사람과 함께 각자 사이에 머물러 있으라. 특별히 어려운 시간이라고 하더라도 상관하지 말고 함께 있으라. 그리고 도전하라. 만약 우리가 함께 엮어지고 서로 지원해 준다면 , 만약 팀워크 진실로 만든다면 우리의 다르다는 생각은 적어질 것이요, 우리가 도전을 만났을 때 일어날 수 있을 것이다. 만약 친구애의 진실한 가치를 이해한다면, 만약 우리가 나눔의 느낌에 깨어있다면, 인생은 더 쉬어질 것이고, 해가 지나면서 더 완성되어질 것이다. 친구여, 동역자들이여, 기러기 때처럼 하십시오.

 

<부록 4> 필자의 사역보고 (협력 사역)

필자가 선교지에 있어보니 정말 선교사들이 제각기 사역을 하고 있는 것을 보았다. 각자가 모두 자기 사역을 가지고 우두머리로 사역하고 있었다. 거의 모든 선교사가 다른 선교사와 협력하여 돕는 자, 혹은 협력자로 일하지 않았다. 필자가 사역했던 필리핀 민다나오 다바오에서도 50 가정이 넘는 선교사들이 있다. 모두가 각기 자기 사역을 하고 있다. 다바오에 가보니 필자가 개척해서 혼자 일할 일이 별로 없었다. 그것은 바로 한국 선교사들이 이미 자리를 잡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나중에 보니 선교사들이 다 자기 사역이 있는데 자세히 들여다보면 한 선교사도 혼자서 제대로 사역을 하는 것 같지 않았다. 선교사들이 각자가 혼자서 일을 하니 그 큰일을 감당하는데 너무 어려워하고 있는 것이었다. 예를 들면 한국인 선교사가 세운 신학교가 다섯 개가 있다. 모두가 각자 하고 있었다. 한국인 선교사 한 사람이 자신이 세운 신학교를 운영하고 있었다. 서로가 협력하면 훨씬 더 잘할 텐데 모두가 자기의 신학교를 가지고 있었다. 만약 신학교에서 사역할 선교사가 있다면 신학교 교수가 은사라면 그 신학교에 가서 교수로 사역을 하면 되는데, 자기 은사가 신학교 교수라고 생각해서 자기가 직접 신학교를 세운 것이다. 이렇게 하다 보니 모든 신학교가 다 한국인 선교사가 교장이다. 그런데 한국인 다른 교수는 없다. 왜냐하면 교수 선교사들이 자기 신학교를 가졌기 때문이다. 그런데 만약 신학교들이 힘을 합하면 한두 가지의 장점이 있는 것이 아니다. 자기가 신학교를 세우지 않더라도 그곳에서 교수 사역을 하면 된다. 그런데 그것을 못한다. 아주 쉬운 협력을 못하는 것이다. 왜냐하면 파송 교회에서 우리 교회 선교사가 교장이 되어 신학교를 운영해야 한다고 생각해서이다. 신학교뿐만이 아니라 교회도 마찬가지다. 선교사들이 힘을 합해 교회 개척을 하면 더 효과적인데 각자가 다 자기 교회를 개척한다. 그리고 나중에 많은 교회를 개척하다 보니 교회를 바로 세울 여력이 없다. 교회를 세우기는 했는데 그것을 도와줄 선교사가 없으니 많은 교회들이 바로 서지 못하고 숫자만 늘어가고 있다. 교회의 내면은 계속 줄어들고 있다. 이것이 한국선교의 현실이다.

필자가 다바오에서 사역할 때 새로운 사역을 개척 하지 않고 다른 선교사들을 도울 수 있는 사역이 많이 있다는 것을 보았다. 필자가 새로운 일을 개척하거나 시작하면 필자가 그곳의 우두머리가 될 수는 있어도 사실은 효과는 하는 일에 비해 떨어지는 것을 알게 되었다. 예를 들면, 새로운 사역을 개척하게 되면 더 큰 투자를 해야 한다. 그러나 협력했을 때는 적은 투자로 많은 효과를 가져 오는 것이다. 그 대신 내가 하는 사역, 즉 내 사역, 내가 주도권을 가지고, 내가 주인이 되고, 재가 장이 되어 하는 내 사역은 없는 것이다. 그것이 내가 손해 보아야 할 일이었다. ‘내 것이 없다는 손해를 감수해야 한다. 내가 자랑할 만한 나만의 개인적인 사역은 없다. 그러나 나는 없지만 하나님 나라의 확장은 있다. 내가 없으므로 인해 하나님 나라는 더 크게 확장된다. 선교사는 내가 없는 것처럼 보일지라도 하나님 나라를 위해 협력해야 한다면 협력해야 한다.

성경에서 씨를 뿌리는 사람은 바울이고 물을 주는 사람은 아볼로다. 그러나 열매 맺게 하시는 분은 하나님이라고 말씀한다. 이 말씀은 우리 선교사들이 각자의 은사에 따라 일을 하지만 결국 그 열매는 하나님 나라의 확장에 있다는 것을 뜻한다. 선교사가 자기 사역을 통한 자기 열매를 맺는 것이 아니다. 자기가 스스로 열매를 맺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하나님 나라를 위해 열매를 맺으시는 것이다.

필자가 선교지에 가서 보고 다른 선교사와 협력해야겠다고 생각했다. 어떤 일을 새롭게 시작하는 것은 많은 의미가 없다고 생각했다. 왜냐하면 이미 시작된 많은 일들이 돕는 선교사가 없어서 열매를 맺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새롭게 할 수 있는 일도 많지 않았다. 새로운 일을 시작하는 것은 훨씬 더 힘들면서도 열매는 더 적은 것이다. 그래서 필자의 이름을 내지 않고 하나님 나라 확장을 위해 필자 자신을 포기하기로 했다.

필자가 일했던 신학교가 있다. 처음 시작할 때 한국인 선교사 몇 명이 같이 협력해서 시작된 신학교다. 그런데 일 년 만에 모두들 자기 사역을 해야 한다고 포기하고 갔다. 결국 지금 하고 있는 선교사님 한분만 남았다. 이 분이 전체를 운영하는데 교수가 부족하다. 힘들어 하고 있기에 필자가 그곳에서 가르치기로 하였다. 필자는 그곳에서 교수로 가르치는 일을 하였다. 만약 필자가 신학교를 운영한다면 운영하느라 힘이 들 것이다. 그러나 지금은 운영에는 신경 쓸 필요 없었고 가르치기만 하니 학생들에게 더 많은 영향력을 끼칠 수 있었다. 이 신학교에서 가르칠 때 개인적으로는 열매가 눈에 보이지 않았다. 신학생이 졸업을 해도 그저 교수일 뿐 이 신학교를 운영하는 선교사님이 그 영광을 얻게 된다. 그러나 하나님 나라의 관점으로 볼 때 이름이 안 나고, 공적이 안 나와도 그 열매는 하나님이 맺어주시는 것이다. 하나님 나라에서 혼자 하는 것보다 더 큰 효과가 있게 되는 것이다. 하나님 나라를 위해 일하지 개인 일을 위해 일하지 않기 때문이다. 개인 일은 없지만 하나님 나라에는 이보다 더 큰 이익은 없다. 그래서 필자는 그 일을 선택하였다.

사람은 제 일인자가 되고 최고가 되는 것을 원하지만 하나님은 협력을 원하고 계신다. 서로가 협력하는 것이 최고의 아름다움이요, 효과적이다. 제자들이 누가 크냐고 했을 때 예수님은 나중 된 자가 먼저 된 자가 될 것이라고 말씀하셨다. 세상의 관심은 섬김을 받는 것에 있지만 하나님의 자녀들은 섬기는 것에 있어야 한다. 세상은 일인자이지만 성경은 이인자의 가치를 말한다. 삼겹줄이 더 강하다. 함께 협력하는 것이 최고의 사역이다. 예수님도 제자들을 보낼 때 혼자 보내지 않으셨다. 두 사람씩 협력해서 하도록 보내셨다. 그러기에 자기 이름 내지 않고 당장 자기 영광이 없더라도 협력해서 사역할 때 자라게 하시는 일은 하나님이시다. 하나님 나라를 위해 일한다는 것은 자기를 위해 일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위해 일하는 것이다.

 

<부록 5> 선교에 팀 사역이 필요한 이유(심재두: 2016)

1. 선교는 결코 한 사람의 힘으로는 다 이룰 수 없는 크고도 넓은 일이다.

2. 사역의 시너지를 내기 위해서다.

3. 선교사의 성숙과 리더십을 위해서다.

4. 한 선교사의 부재에 영향을 받지 않기 위해서다.

5. 선교의 연속성을 유지하기 위해서다.

6. 투명성과 객관성을 지키기 위해서다.

7. 현지인 신자들을 더 성숙한 제자들로 양육하기 위해서다.

 

<부록 6> 작은 실천이 팀을 윤기 있게 만든다(심재두: 2016)

1. 좋은 식사: 선교지는 스트레스가 많은 곳이다. 그로 인한 짜증을 가족들에게 풀기도 하여 가족이 받는 스트레스도 만만치 않다. 그렇다면 주일 오후 주변의 식당에 가서 푸짐한 식사를 하고 대화하는 가운데 재충전하는 시간을 가져보자.

2. 칭찬: 팀원의 제안이나 어떤 식의 도움이든 칭찬을 아끼지 말라. 돌아보면 그것은 맞고 틀림을 떠나 거의 모든 상황에서 좋은 결과를 가져왔다. 잘한 것은 당연한 것이고 못한 것은 나무라는 분위기보다는 작은 일도 인정하고 칭찬하는 분위기가 팀의 사기를 높인다.

3. 간섭하지 않음: 후임 선교사가 정착할 때 선임 선교사가 개입하여 도움을 줄 수 있으나 일단 책임을 맡아 사역을 시작하면 간섭하지 않는 것이 좋다. 혹 실수하고 실패하더라도 그것을 통해 배우고 성령을 의지하며 믿음이 자랄 것이다.

4. 사생활 존중: 약속 없는 가정 방문 자제하기, 개인 시간 사용에 대해 지적하지 않기, 자녀 교육에 참견하지 않기 등이 이에 해당한다. 사생활을 존중받는 선교사는 팀에서 다른 부분도 존중하는 법을 배운다. 혹시 객관적으로 조정 받아야 하는 사생활일지라도 되도록 간섭을 절제하고 상대가 자연스럽게 팀의 전체 분위기를 따라오도록 유도한다.

5. 비밀 유지: 팀 구성방법에 따라 차이는 있지만 각 선교사의 개인 신상과 사적인 일들, 둘의 대화 그리고 자녀들에 관한 이야기 등은 비밀을 철저히 지켜야 한다. 이는 신뢰의 기본이다.

6. 쉬지 않는 배려와 지원: 팀 사역에는 끈끈한 정이 동반되어야 한다. 선후배, 같은 교회나 같은 단체 출신 및 같은 배경 같은 공통점이 있는 경우 팀 구성에 유리하다. 일상은 작은 일들, 식사대접, 선물, 자녀 등 관계 형성에 도움이 되는 일에 신경 써야 한다.

7. 좋은 정보와 자료 공유: 자신이 가진 귀한 것들을 풍성하게 나눌 때 다른 팀원들에게 진심이 전달되는 법이다. 사역하면서, 공부하면서 그리고 다른 사람들로부터 얻게 된 좋은 것들을 나누도록 노력한다.

 

<부록 7> 선교사 갈등의 종류(심재두: 2016)

1. 인간적 갈등

서로 다른 배경을 가진 선교사들이 만났을 때 서로를 이해하는데 오랜 시간이 걸린다. 기질, 성격, 개성, 기호, 말 표현법 등이 달라서 생기는 갈등이 많다.

1) A 선교사는 목소리라 유난히 큰데다 말투도 거칠다. 행동도 크고 요란해 그가 나타나면 정신이 하나도 없다.

2) B 선교사는 나와 한 말을 자꾸 다른 사람에게 옮긴다. 어느 날 생각지 못한 사람이 나를 찾아와 내가 전에 왜 그런 말을 했는지 따지기에 B선교사가 그랬다는 것을 알았다.

3) C 선교사는 툭하면 화를 낸다. 그러고 나서는 아무 일 없다는 듯이 행동한다. 그러면 자신은 뒤끝 없는 사람이라고 자랑한다.

4) D 선교사는 앞에 나서길 좋아하고 모든 일을 자신이 알아서 한 것처럼 포장한다. 평소 손에 물 한 방울 묻히지 않다가 단기 선교팀이 오면 얼마나 열심히 설거지를 하는지 모른다.

5) E 선교사는 분위기를 잘 파악하지 못하고 엉뚱한 얘기로 대화의 맥을 자주 끊는다.

6) F 선교사는 약속을 잘 지키지 않는다.

7) G 선교사는 학벌, 집안 같은 배경으로 사람을 차별한다.

8) H 선교사는 팀장에게 알리지 않고 단독으로 일을 처리하다가 문제가 생기면 그제서야 팀장을 찾아간다.

9) I 선교사는 요구하는게 많다. 특히 자기 이익을 챙기는 일에 아주 적극적이다.

10) J 선교사는 다른 사람의 사생활에 관심이 많다. 마당발, 소식통임을 자처하며 남 애기를 하고 다닌다.

11) K 선교사의 자녀들은 다른 선교사의 집에 가서 방문이나 서랍 등을 잘 열어본다.

12) L 선교사는 확인되지 않은 일을 섣불리 판단하고 보고한다.

13) M 선교사는 주변 사람들이 뭐라 하든 아랑곳하지 않고 하던 일을 끝장 봐야 직성이 풀린다.

14) N 팀의 팀장은 자기관리나 정리정돈 면에서 팀원들에게 전혀 신뢰를 받지 못한다. 집과 사무실이 정리정돈이 되어 있지 않아서 방문하는 선교사들이 시험에 들기도 했다. 후에 팀장에 대한 보고서에서도 이 점이 중요한 지적이 되었다.

 

2. 제도적 갈등

선교사들이 속한 단체와 팀에는 정관과 내규, 운영 규정 등이 있고, 현지 선교사들 사이에 필요한 개별적 사항을 담은 지침이 있다. 이 규정과 지침들이 선교사들의 이해관계에 다르게 작용하여 때로 갈등이 일어난다.

1) A 팀은 현지 디렉터나 팀장의 권한이 어디까지 인가를 놓고 갈등을 겪는다.

2) B 팀은 현지 선교사들이 생활비를 무조건 동일하게 정해야 한다면 이를 규정에 넣었다. 반대 의견이 있었지만 다수결로 결정된 일이니 무조건 따를 것을 강요한다.

3) C 팀은 안전상의 이유로 선교사가 밤에 혼자 다니는 것을 제한한다. 한 독신 선교사가 몇 차례 이를 어겨 경고를 들었다. 하지만 그는 이규정이 사역을 제한하고 있다는 생각이 자꾸 든다.

4) D 팀에서는 선교사들이 휴가를 미국으로 간다고 해서 문제가 된 적이 있다.

5) E 팀은 안식년이나 휴가를 정한 날만큼 정확히 가질 것을 요구하지만 팀원들은 좀더 융통성 있게 규정을 적용해야 한다고 말한다.

6) F 팀은 선교사역 보고를 팀장의 일로 규정하고 있지만, 팀원들은 자신이 직접 보내고 싶어한다.

7) G 팀 선교사들은 다른 팀에 비해 자신들이 자율적으로 할 수 있는 일이 적다고 불평한다.

8) H 팀은 팀 내에 팀장과 관련된 갈들이 일어나면 당사자인 팀장이 직무를 정지시켜야 한다고 규정한다. 한편 팀장에게 갈등을 풀어갈 우선적 권한을 주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선교사들도 있다.

9) I 팀은 갈등을 겪고 선교지를 떠난 선교사가 복귀하려고 할 때 어느 소속으로 갈 것인가 하는 문제를 놓고 의견이 대립되었다.

10) J 팀에 새로운 선교사는 별 생각 없이 다른 팀의 모임에 참석했다가 팀장에게 질책을 들었다. 팀장의 용인 없이 다른 팀과 접촉하는 것을 금한다는 규정을 그는 도무지 이해할 수 없다.

11) K 팀 팀장은 다른 팀장이 자기 팀원에게 이런저런 조언을 주었다는 얘기를 듣고 기분이 썩 좋지 않았다.

12) L 선교사는 자꾸 새로운 사역을 시도해보려고 하지만 다른 선교사들은 이를 탐탁지 않게 여긴다.

13) M 선교사는 이웃 국가의 선교사들이 그의 지역에 와서 사역하는 것이 영 못 마땅하다.

14) N 팀의 팀장은 팀원들에게 의견을 한 번 묻고는 더 이상 토론 없이 혼자 일을 결정하고 추진한다.

15) O 팀에 현지에서 오랫동안 사역한 한 선교사의 후임으로 젊은 선교사가 팀장으로 왔다. 팀원들은 선교본부의 결정을 존중하기로 했지만 사전논의 없이 결정된 일에 적잖이 당황했다.

16) P 팀은 팀장과 팀원 사이에 갈등을 겪다가 결국 새로 선거를 하여 다른 팀장을 세우고 문제를 마무리 지었다. 하지만 새 팀장은 여전히 한 팀에 남아 있는 전임 팀장의 눈치를 보고 팀의 분위기도 예전처럼 편하지 않았다.

 

3. 사역적 갈등

어느 선교 팀이 교회를 개척하고 있었다. 팀장은 팀원 전원이 교회개척에 우선순위를 두고 애써주기를 바랐다. 그러나 병원에서 전문인으로 일하던 한 독신 선교사는 자신이 전도한 사람들 중에 무슬림이 있어 그를 당장 교회에 데려오면 오히려 반감이 생길 수 있다고 보았다. 그래서 일대일 또는 일대다수 식으로 여러 성경 공부반을 만들어 운영했다. 팀장은 팀 사역인 교회 개척을 우선하지 않는 독신 선교사에게 선택과 집중을 하라며 스트레스를 주었다. 독신 선교사는 팀의 정책을 이해하지만 교인 수를 늘리는 일에만 열중하는 팀장이 영 불만이다. 팀 사역에 대한 해석의 차이, 애매한 역할 분담, 충분한 토론과 합의 없이 시작한 팀 사역, 사역의 소유화, 과다한 업무량, 공사 분리의 어려움, 비전 차이 등이 사역적 갈등을 만들어 낸다.

1) A 팀은 교회 개척을 하면서 누가 어떤 역할을 맡아야 하는가를 놓고 의견이 분분하다.

2) B 팀의 한 선교사는 다른 팀원 선교사와 함께 교회를 개척했지만 자기를 통해 현지인들이 더 많이 교회에 오게 되자 다른 선교사와 같이 일하고 싶지가 않다.

3) C 팀의 한 선교사는 자기가 전도한 사람이 다른 선교사와 성경공부하는 것이 못마땅하다.

4) D 팀의 팀장은 현지인 리더가 교회 청년들을 모아서 성경공부하는 것을 금한다.

5) E 선교사는 팀원이 개인 성경공부 반을 만들기보다는 나가서 전도해오는 일만 하기를 바란다.

6) F 선교사는 교회에서 맡은 일을 본인의 사역이라 생각하고 열심히 했는데, 팀장은 이에 동의하지 않는 것 같다.

7) G 선교사는 자신이 프로젝트 사역의 중심이 되어야 한다고 주장하며, 협력하는 사람들을 오히려 경쟁과 견제의 대상으로 본다.

8) H 선교사는 계속 접촉해 오던 팀으로 가지 않고 갑자기 다른 팀으로 가버려 팀 사이에 불편한 상황을 만들었다.

 

4. 신학적 갈등

특정한 교단에서 파송한 선교사를 제외하고는 거의 초교파적으로 팀이 이루어진다. 이것은 선교사들의 신학적 배경이 다양하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그래서 예민한 문제가 생긴다.

1) A 팀은 현지 여성 리더에게 목사 안수하는 일에 매우 보수적이다.

2) B 팀은 목사 안수 받지 않은 선교사가 교회 개척하는 것을 좋지 않게 본다. 선교본부에서 교회를 개척해도 된다고 상황을 정리해주었는데도, 일부 목사 출신의 선교사들은 이를 받아들이지 못한다.

3) C 팀은 선교지에서 일어나는 기적에 대해 팀원들 간에 생각이 서로 다르다.

4) D 선교연합체 정기총회에 매우 예민한 안건이 올라왔다. 많은 교단에서 이단으로 여기는 한 교단이 회원 신청을 했는데 이를 받아들일 것인가에 대한 찬반의견이 팽팽했다. 미국 복음주의 신학교 교수에게 문의하여, 한 때 이단성이 있었으나 지도부가 바뀌면서 복음적으로 돌아왔다는 설명을 들었으나 이단에 특히 예민한 한국의 상황상 그들을 받아들이기가 쉽지 않았다. 오랜 격론 끝에 투표를 했고 그 결과 그 교단이 회원으로 들어오게 되자 이에 반대한 단체들이 연합회에서 상당수 탈퇴하는 일이 벌어졌다.

 

5. 재정적 갈등

재정적 갈등은 선교사의 정직, 도덕성과 관련된 매우 민감한 문제다. 재정적 갈등이 발생하면 팀의 모든 상황이 악화되며 분리의 길로 가게 될 위험이 크다.

 

1) 선교사 개인의 후원비에 관한 문제

팀으로 있다 보면 각 선교사가 어느 정도 후원금을 받는지 알게 된다. 후원금을 적게 받는 선교사는 비교의식에 스트레스를 받을 수 있다. 공동 기금을 마련해야 하는 경우 형편상 재정을 감당할 수 없을 때 받는 부담은 더욱 크다. 선교사마다 형편에 따라 부담하게 할 때 오히려 이런 배려를 부담스러워하는 경우도 있다. 다른 선교사가 재정을 도와주었을 때나, 후원자를 연결시켜 줄 때도 부담스러워 오히려 관계가 멀어질 수도 있다.

 

2) 팀 사역에 쓰는 재정에 관한 문제

교회 사역, 의료 사역, 대학생 사역, 어린이 사역 등 분야별 사역에 재정 할당, 단기 선교 팀이나 방문자들의 헌금과 선물 외부 상금 등의 비정기적인 재정, 의료행위나 이자 등으로 생기는 기타 수익을 어떻게 처리하느냐의 문제가 있다. 개인 재정을 연합하여 한 은행의 계좌로 받을 경우 이를 각 선교사에게 나누는 방식이나 수수료를 지불하는 등의 문제가 생길 수도 있다. 단기 선교 팀이 왔을 때 주는 선물을 나누는 과정에서도 불화가 있을 수 있다.

 

3) 방문자와 관계를 맺고 후원받는 일에 관한 문제

A 선교사에게 온 단기 선교 팀이 있었다. 이 팀을 B선교사가 도와주었다. 나중에 B 선교사는 단기 팀원들에게 자신의 기도편지를 보내게 되었고 한 사람이 B선교사를 후원하게 되었다. 이 경우 A 선교사는 기분이 나쁠 수 있고 좀 심하게 되면 팀이 깨질 수도 있다.

 

4) 팀이 분리될 때 재정 정리에 대한 문제

팀에서 나올 때는 그 팀에서 사용했던 재정을 그대로 두고 나오는 것이 옳다. 그러나 선교사중에는 자기 이름으로 팀 사역에 모금했던 돈을 찾아가려는 선교사도 있다. 이런 경우도 팀 전체가 어려워지기도 한다.

 

<부록 8> 갈등을 해결하는 방법(심재두: 2016)

1. 가져야 할 자세

1) 문제보다는 사람을 본다.

2) 문제 해결보다는 화평과 화목에 무게를 둔다.

3) 잘잘못의 지적보다는 형평성과 상황성을 이해한다.

4) 진실을 따져야 하지만 거품은 배제한다.

5) 상호 양보 같은 노력 없이는 아무것도 해결되지 않음을 안다.

6) 무조건 피하기보다는 갈등에 직면한다.

7) 갈등의 양측이 존경하는 인물을 중재인으로 두고 상의한다.

8) 감정을 배제하고 냉정하게 사태를 바라본다.

9) 결과가 예상과 달라도 당황하지 않는다.

10) 손해를 보아도 사람은 잃지 않는 방향으로 결정한다.

11) 가능한 한 팀이 해체되지 않도록 한다.

 

2. 선교사 갈등의 치료

1) 정확한 원인을 규명한다.

2) 믿음과 사랑을 회복한다. 믿음과 사랑을 묵상하고 회복하도록 한다.

3) 비전과 소망을 재발견한다.

4) 팀과 가정을 회복시키고 사역에 복귀한다. 가정을 우선 회복하도록 한다.

5) 분리도 하나의 방법이다. 일정기간 서로 떠나있도록 한다. 휴가나 안식년을 가는 방법도 있다. 선교지 변경도 가능하다. 그러지 않도록 해야 하지만 차선으로 택할 수도 있다는 문을 열어둔다.

6) 대립이 평행선을 그을 때는 제비뽑기도 하나의 방법이다.

 

3. 부정적으로 보일 수 있는 선교사의 유형: 이런 유형이 있음을 이해하고 자신의 약점도 이해하도록 한다.

1) 마이동품형: 내길을 간다. 남의 말을 귓등으로 흘리며 자기가 옳다고 생각한 대로 밀고 나가는 유형이다. 자기 의욕은 넘칠지 모르나 동료들의 의욕을 꺾기 쉽다.

2) 독재형: 나만 따르라. 주로 경험이 많고 다양한 사역을 오래한 선임 선교사에게서 많이 찾아볼 수 있는 유형이다. ‘내가 해봐서 아는데라는 말을 달고 산다.

3) 지시형: 내일까지, 다음 주까지. 주변 사람들에게 일일이 지시하는 유형이다. 교사가 학생들을 지도하듯이 팀을 운영한다. 사역 초기에는 그러지 않다가 차츰 지시형으로 바뀌는 경우가 있다.

4) 회의형: 회의해야지 회의. 간단히 대화하거나 즉석에서 결정할 수 있는 문제도 정식으로 회의해서 정하려 한다. 시간과 에너지 소모가 많아 팀원들이 힘들어 한다.

5) 유행형: 이런 게 최신식 선교인데 말이야. 본국에서 오는 선교 관련 도서나 간행물을 내밀면서 늘 새로운 형태의 사역을 주장한다.

6) 신토불이형: 나 한국 사람이야. 국제 모임에 가도 한국 선교사들끼리 식사하고 한국식이 최고지하며 서구 선교사들의 방식에 비판의 날을 세운다. 정작 자신이 아는 좋은 방법은 제안하지 못한다. 영어에 약하기도 하고 서구 문화에 익숙하지 않아서이기도 하다.

7) 변화 기피형: 구관이 명관이야, 사역 초기에는 대개 갈렙처럼 도전적이고 개척 의식이 강하지만, 사역이 어느 정도 안정기에 들어서면 변화를 기피하게 된다. 그 동안 얻은 경험과 결과에 만족하고 안주하려 한다.

8) 소극적 수동형: 거기서는 이렇게 하는데. 예전에 선교훈련원에서 이렇게 교육받았고, 선교분부에서는 이렇게 일하니 그대로 해야 한다는 얘기를 반복한다.

9) 무감각형: 다 잘 될거야. 누군가가 문제 제기를 해도 무시하거나 귀담아 듣지 않는다. 괜한 불평이라 생각하며 응답과 변화를 기피한다. 그러다가 사람들에게 자신이 기피당하는 일이 생긴다.

10) 독립형: 내가 다 감당할게. 정보를 독점하고 일도 혼자 처리하는 것을 선호한다. 파트너십보다는 자신의 능력을 더 높게 평가하는 경향이 있다. 책임감이 강해 좋아 보이지만 독단으로 행동하다가 일을 그르치거나 좌절할 수 있다.

11) 규정형: 규정대로 하자고, 규정, 선교 현장은 변수가 많은 곳이다. 원칙에 입각해 공통된 핵심 내용만 담은 선교분부의 규정만으로 현지의 변화에 발맞추기 힘들 때가 있다. 본부의 정관과 내규에 입각해 현장의 실정을 반영한 내규를 팀원과 함께 만들고 유연하게 적용하는 것이 바른 방향이다.

12) 병 주고 약 주는 유형: 선교사 중에는 다른 사람들에게 병 주고 나서 이를 깨닫고 나중에 약을 주는 형이 있다. 이런 유형은 태도에 변화를 보이는데 처음에 갈등을 일으키기는 하지만 나중에 상대방에게 사과하거나 위로를 전하며 관계를 이어나가려고 노력한다. A 선교사는 종종 아내나 팀원들에게 큰 소리를 내고 핀잔을 주기 일쑤지만 곧 잘못을 깨닫고 불편한 분위기를 풀기 위해 맛있는 식사 자리를 마련하거나 깜짝 이벤트를 준비한다. 하지만 이와 같은 일이 반복된다면 약은 점차 효력을 잃을 것이고 약을 주지 않은 것보다 못한 상황이 생길 수 있다.

13) 병 주고 약 안주는 유형: 병을 주면서 약은 전혀 주지 않는 유형이다. 애당초 상대방에게 병을 준 적이 없다고 생각하기에 약을 안 주는 유형도 있다. B선교사는 회의할 때 뜻대로 되지 않으면 자기도 모르게 표정이 굳거나 언성이 높아진다. 상대방에게 상처 주는 말도 서슴지 않는다. 그러고 나서 회의가 끝나면 아무 일 없었다는 듯이 행동한다. 그에 관해 조언을 해주어도 대수롭지 않게 여긴다. 주변 사람들만 답답해한다. 원래 그런 사람이라 생각하며 포기하기도 한다.

14) 병도 안주고 약도 안주는 유형: 일반적으로 무난해 보디는 유형이다. 재미도 없고 변화도 없다. 그러나 전혀 상환 없는 사람이라면 모를까 실제로 교류하는 관계에서 이렇게 되기가 쉽지 않다. 병을 주는 게 정상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상대에게 약을 주는 법도 배워야 한다. C 선교사는 사람 사이에 늘 거리를 둔다. 다른 사람의 일에 간섭하지 않는다. 과거의 경험상 그렇게 하는 것이 관계를 오래 유지할 수 있는 방법이라고 생각한다. 상처를 주는 일도, 받는 일도 없다. 병을 안 주니 약을 줄 필요도 없다. 하지만 무미건조한 관계가 공허하게 느껴지고 속 깊은 얘기를 털어놓을 누군가가 그리워질 때가 있다. 본의 아니게 다른 사람에게 상처를 주는 일이 생겨도 어떻게 약을 줘야 할지 몰라 힘들어 한다.

15) 병 주고 다른 약 주는 유형: 이런 사람은 약을 잘 주지도 않을뿐더러 어쩌다 주더라도 어떠한 약을 주어 치료에 전혀 도움이 안 된다. D 선교사의 언행에 상처를 입고 힘들어 하는 사람이 있었다. 어느 날 D 선교사는 그를 부르더니 요새 힘들어 하는 것 같은데 이 목사님 설교 한번 들어보게, 아마 도움이 될 걸세라고 했다. 자기 때문에 힘들어하는 줄 모르고 엉뚱한 데서 원인을 찾은 것이다. 자신의 문제가 뭔지 모른다는 점에서 병 주고 약 안주는 형과 비슷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