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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교교육 연구원(IM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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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교와 영성/일상의 영성

+ 배설물의 쓰임

후앙리 2021. 5. 4. 05:54

바울은 세상에서 자랑할 만한 것, 세상에서 유익한 것(조건)들이 많이 있었다. 그는 유대인이었고 히브리인이었다. 그때 당시에 나면서부터 할례를 받으면 참다운 유대인이라는 표증이고 이것이 굉장한 자부심이었다. 그것도 한쪽 부모가 아니라 부모 모두가 유대인이었다는 것은 큰 자부심을 가질만한 조건이었다. 또한 그는 로마 시민권을 가졌다. 나면서부터 로마 시민권은 대단한 권리였다. 어디서 태어났으며, 어느 가문인가가 인간 생활에서는 참으로 중요하다.

내가 살았던 에콰도르 수도는 뀌또(Quito). 뀌또에서 태어난 사람을 뀌떼뇨, 혹은 뀌떼냐로 부른다. 뀌떼뇨, 뀌떼냐는 굉장한 특권을 가진 사람들이다. 지방에서 올라온 사람들에게 뀌또 출신들은 엄청난 텃세를 부린다. 미국 뉴욕에도 뉴욕커라는 말이 있다. 그들은 출생지 하나로도 엄청난 자부심을 갖고 산다. 얼마 전에 나의 고향 전라도 영광에 가서 들은 이야기다. 영광읍에서 태어난 사람들과 다른 면에서 태어난 사람들과의 차이가 많다는 것이다. 읍내에 살면 읍내 출신이 다른 면에서 올라온 사람들을 하찮게 생각한다는 것이다. 다른 면 출신의 사람들은 읍내 출신의 사람들 앞에서는 기죽어 산다는 것이다. 조그만 시골 군에도 이런 일이 일어나는데, 하물며 바울이 부모가 모두 정통 유대인이며, 로마 시민권을 가졌다는 것은 굉장한 자부심 거리다. 거기에다 바울은 율법에 열심이 있었다. 스데반을 죽이는데 동참하고 그리스도인들을 잡아 죽이는데 열심을 다했던 사람은 율법을 잘 아는 지식층이었으며, 그때 당시의 사회의 주류였던 유대교의 지도자였다. 이처럼 최고의 권위와 특권과 자랑거리를 가진 사람이었다. 오늘날 우리나라에서 서울대를 나오고 삼성이나 현대 등의 대기업에 다니는 사람들의 자부심은 대단하다. 강남에 산다면 그것 하나만으로도 으쓱대고 산다. 바울은 그런 사람이었다. 그런데 그는 그리스도를 만나고 나서 이런 세상에서의 좋은 조건을 다 해로 여겼다고 고백한다. 배설물로 여겼다. 배설물은 다시 처다보기는 커녕 피하고 생각조차 하지 않는 것이다. 배설물은 밥을 먹으면서 그에 대한 대화도 하면 안 되는 것이다. 바울은 자신이 가진 그때 당시의 최고의 특권들, 자랑거리들은 배설물로 여긴다고 하였다. 바울은 그런 것들을 잃어버린 것으로 인정하였다. 그것을 해로운 것으로 여긴다고 하였다. 세상에서는 자랑하며 유익하게 사용하던 것을 해로운 것으로 여긴 것이다. 오늘날도 서울대 나온 것이 지식이 많아 으쓱대는 조건이 아니라 오히려 인생에 해로운 것이 되는 것과 같다. 돈을 많이 가진 것이 편하게 살 수 있는 조건이 아니라 인생에서 해로운 것이 된다. 높은 자리에 앉는 것이 권력을 누리는 것이 아니라 해로운 것이 된다. 강남에 사는 것이 자랑이 아니라 해로운 것이 된다. 심지어 종교적인 열심이 구원을 가져다 주는 것이 아니라 해로운 것이 된다. 큰 교회 목회자라면 대교회를 목회한다는 자부심이 아니라 해로운 것이 되는 것과 같다. 이처럼 세상에 자랑스러운 것을 해로 여긴 것이다. 많은 사람이 없어서, 부족해서 불편한 것을 정반대로 해로 여긴 것이다.

그러나 오늘날 우리는 그런 것들을 갖지 못해서 얼마나 부끄러워 했는가? 그것이 없어서 얼마나 기가 죽었는가? 그것이 없어서 얼마나 불편했는가? 그것이 없어서 얼마나 혼자 외로이 살았는가? 그것이 없어서 얼마나 자존심 상하며 살았는가?

바울은 그런 것들을 해로 여김은 그리스도를 아는 지식 때문이라고 하였다. 그리스도가 의를 주시기 때문이라고 한다. 세상에서 자랑할 만한 것은 의와 생명을 주지 못하기 때문이라고 한다.

이스라엘 백성은 세상의 우상들, 즉 바울이 해로 여길만한 것들, 세상 사람들이 자랑삼아 사는 것들을 섬겼다. 자기 스스로의 노력으로 의를 이루며 살 수 있다고 생각하였다. 그것을 최고로 생각하며 살았다. 그것에 정체감을 주고 살았다. 그러나 바울의 고백에 의하면 그것이 하나님이 보시기에는 우상숭배였다.

바울은 우상숭배를 다 해로 여겼고, 잃어버렸고, 배설물로 여겼다. 그런데 얼마나 많은 그리스도인이 토한 것을 다시 먹는 개처럼 버려야 할 것을 자랑삼아 산다.

바울은 로마 시민권을 배설물로 여겼지만 그러나 그는 복음 전파하면서 꼭 필요할 때는 그것을 사용하였다. “로마 시민인 나를 재판도 없이 가둔다”( 22:19-29)며 로마 시민권을 사용하여 생명이 위태할 때 도구로 사용하였다.

바울은 세상의 유익하던 것들, 자랑스러운 것들을 다 해로 여기고 잃어버린 것처럼 생각한다고 하면서도 필요할 때는 그것을 사용하였다. 그것도 아주 필요한 도구로 사용한 것이다.

차이는 바로 여기에 있다. 세상의 것들을 다 버리라는 말이 아니다. 세상의 것들이 우상이며 우리의 자랑거리가 아니라 그것을 복음 전파의 도구로 사용하라는 말이다. 해로 여기라는 것은 그것을 우상 만들지 말라는 것이다. 우리가 가진 것들중에서 자랑할만한 세상적인 것이 있다면 그것을 완전히 버리라는 것이 아니라 복음 전파를 위해 사용하라는 것이다. 우리가 가진 재산, 재능, 경험, 건강, 권력, , 지식, 종교적인 열심히 있다면 그것은 섬길 대상이 아니라 복음을 위해 사용할 도구며 방법이다.

우리 그리스도인의 삶의 세계관은 바울처럼 세상의 것들을 섬기지 말고 그것으로 만족하지 말아야 하는 것이다. 그리고 세상의 것들은 주님 나라를 위해 사용할 수 있는 귀한 도구로 생각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