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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교교육 연구원(IMER)

선교지 문화에 대한 선교사의 태도 본문

선교와 영성/약함의 선교

선교지 문화에 대한 선교사의 태도

후앙리 2020. 6. 26. 22:32

 

선교지 문화를 경험하면서 갖는 갈등들을 정리한 1996112일의 일기 내용이다.

<오늘 나는 AIEP 임원 모임에 참석하였다. 오늘은 문득 사람들이 인사하는 모습이 내 눈에 띄었다. 회의를 하고 있는데 한 임원이 늦게 도착하였다. 회의를 한참 하고 있는데 늦게 와서 먼저 온 사람들에게 인사를 하느라 회의가 중단이 되었다. 이것이 이들의 인사 문화다. 아무리 늦게 와도 사람들에게 인사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내가 생각하기에는 그냥 전체에게 “Buenos Dias(좋은 날입니다)”라고 인사하면 될 것 같지만, 이들은 늦게 도착한 사람이 먼저 온 모든 사람에게 한 사람 한 사람씩 다 찾아가서 일일이 악수를 하고 안부를 묻는다. 때로는 악수만이 아니라 살짝 포옹하면서 볼에 볼을 맞대는 인사까지 한다. 물론 볼을 맞대는 인사는 남자와 여자, 그리고 여자끼리만 한다. 남자들끼리는 이 인사를 하지 않는다. 문득 이들의 인사 문화가 오늘 내게 참 어색하게 받아들여졌다. 무엇보다 회의 중간에 회의를 중단하고 5분 정도 인사를 해야 하고, 또 다른 사람이 늦으면 똑같은 일을 반복해야 하니 내 마음이 불편해졌다. 일의 합리성에 초점을 맞추는 문화 속에 살아왔던 선교사인 나로서 일이나 사역보다 관계가 중요한 문화의 사람들과 함께 일하는 것이 쉽지 않다.

회의를 할 때, 때로는 회의 주제나 안건을 토의하기보다는 이런 저런 자신들의 사는 얘기를 많이 한다. 거기다 많은 유머가 있어 함께 웃고 떠들고 그렇게 회의가 진행된다. 그러다 시간이 되어 안건을 제대로 결정하지 못해도 그냥 다음에 하자고 하면서 집으로 돌아가기도 한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회의 시간에 회의를 하지 않고 집으로 돌아간다고 해도 이들은 만족한다는 것이다. 서로 만나서 교제한 것만으로도 좋은 시간을 가졌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 한국식 회의가 아니라 사랑방 모임, 혹은 교제 모임인 것 같아 이런 회의 문화를 받아들이는 내 마음은 편치 않다.

요즈음은 내 언어 실력이 좀 늘어 회의하는 내용을 거의 알아듣게 되니 안타까울 때가 많이 있다. 그동안은 회의 분위기가 웃고 화기애애한 내용인 줄 알았는데 언어가 익숙해지면서 생각보다는 의견 대립이 많다는 것을 알게 되어 내게는 이것도 불편하다. 의견 충돌이 많고 서로 반대하는 것에 많은 시간을 허비하는 것 같은 것도 보게 된다. 서로 의견을 맞추어 나가기보다는 자기 의견을 굽히지 않는 고집스런 모습도 볼 수 있다. 그러다보니 회의를 좋은 결과로 맺을 때가 많지 않다. 그냥 회의답지 않은 항상 뭔가 아쉬운 상태로 끝난다. 그러기에 회의를 통해서 해야 하는 단체의 많은 일들이 진척이 잘 된다. 회의에서 통과되어 어떤 행사를 할 때도 그것을 진행하는 의사소통이 쉽지 않다. 그저 서로 안부를 묻고 사는 얘기를 할 때는 문제없어 보였지만, 실제로 단체의 일을 행하고 처리하는 것은 내가 보기에는 답답한 부분이 많이 있다.

이것이 이곳 에콰도르 인디헤나의 문화라 할 수 있다. 선교사로서 이방인인 나는 이런 문화 속에 어떻게 적응하고 어떻게 이들을 돕고 섬길 수 있을까? 이들의 문화를 바꾸는 것이 선교사의 역할이 아니고, 이들의 문화를 이해하고 존중하는 것이 선교사의 일일 것이다. 그래서 내 자신이 이들 문화에 익숙해져야 한다. 그러나 한편으로 이들 문화에 선교사가 동화되는 것은 필요하지만 그러다보면 선교사가 이들의 문화에 어떤 영향을 미쳐야 하는지에 대한 고민이 생기게 된다. 어디까지 이들의 문화에 간섭하고 바꾸어야 하는지? 아니면 문화는 그대로 놔두고 복음만을 전해야 하는지? 문화를 그대로 놔두고 복음만을 전할 방법은 무엇인지? 선교사가 가진 문화가 더 성경적인지? 아니면 현지인들의 문화가 더 성경적인지? 이런 고민들이 생긴다.

시간을 지키는 것에 대해 현지인이 제시간을 잘 지키도록 바꾸는 것이 선교사가 해야 할 일인지? 아니면 시간을 잘 안 지켜도 별 문제 없기에 그대로 놔두어야 하는지? 어떤 문화가 더 성경적인 문화인지? 중요한 것은 이곳에 사는 사람들은 자신들의 문화대로 사는 것이 불편하지 않다는 사실이다. 다만 불편한 것은 문화가 다른 선교사일 뿐이다. 그러므로 불편하지 않고 편안해 하는 이들의 문화를 굳이 바꿀 필요는 없는 것 같다. 시간을 잘 안 지키는 문화가 반드시 약점만 있는 것은 아니다. 시간을 잘 지키는 문화도 또 다른 약점이 많이 있다. 너무 시간 중심의 삶은 어쩌면 인간의 정을 찾기가 쉽지 않는 문화이다. 반대로 시간을 잘 안 지키는 문화에서는 삶에 여유가 있다. 시간에 쫓겨 살지 않는다. 그러기에 그들의 삶이 그렇게 메마르지 않다. 시간에 얽매이지 않으니 마음이 편하다. 시간 되는대로, 시간이 흐르는 대로 살아가는 것이다.

현지인 문화에 대한 선교사의 태도에 대한 문제는 해답이 없는 것 같다. 해답이 없는 이 문제를 문제로 생각하고 괴로워하기보다는 문화의 차이를 오히려 즐기고, 서로의 차이를 인정하고 누릴 수 있는 여유를 갖는 것이 선교사로서 가장 중요한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