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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교교육 연구원(IMER)

알파와 오메가 교회(Iglesia A y Ω)의 헌당예배 본문

선교와 영성/약함의 선교

알파와 오메가 교회(Iglesia A y Ω)의 헌당예배

후앙리 2020. 7. 14. 19:24

 

교회 헌당예배 때 있었던 마음을 기록한 199882일의 일기 내용이다.

 

<오늘 알파와 오메가 교회 헌당예배를 드렸다. 교회 본당 건물을 지난 2년 동안 온 교인들이 힘을 합해 완공하여 헌당예배를 드린 것이다. 헌당식을 드리면서 앙헬(Angel) 목사님께 서운한 마음이 들었다. 헌당 예배의 그 많은 순서 중에 나를 단 하나의 순서자로도 넣지 않았다. 그리고 앙헬 목사님은 헌당식 도중에 헌당을 위해 도와준 사람들에게 감사패와 더불어 이름을 불러가면서 감사 인사를 하였다. 그런데 나의 이름은 끝까지 부르지 않았다. 교회 건축에 전혀 도움을 주지 않았던 사람들까지 모두에게 감사해하면서도 나에게는 아무런 감사가 없었다. 그런 목사님의 태도를 나는 이해할 수 없었다. 사실 나는 교회 건축을 위해 정말 많은 도움을 주었다. 헌금도 많이 했다. 내가 아니었다면 완공을 못했을 만큼 크나큰 도움을 주었다. 내가 직접 건축헌금을 하기도 하였지만 나를 아는 한국 사람들이 이 교회에 많은 도움을 주었다. 지붕 스레트, 창문 등 돈이 가장 많이 들어가는 부분은 나를 통해 이루어졌다. 뿐만 아니라 미국에서 단기선교 팀이 왔을 때 그들이 건축 자재를 다 사와서 일주일 동안 건축 공사를 해 주었는데, 그 단기 팀을 내가 연결시켰었다. 나는 건축을 위해 중간에서 많은 역할을 하였다. 다 열거하지 않아도 하나님은 내가 했던 건축에 대한 도움을 다 이해하실 것이다. 그리고 앙헬 목사님은 누구보다도 내가 얼마나 큰 도움을 주었는지를 알고 있었을 텐데도 모든 사람들에게 감사하다고 인사하면서 내 이름이나 나에 대한 이야기는 단 한마디도 없었다. 어떻게 그럴 수 있을까? 이해할 수가 없었다. 마음이 한없이 쓸쓸해졌다. 그 동안 나의 존재가 겨우 이런 존재였는가에 대한 생각을 하였다. 서운한 생각을 넘어 내가 이들에게는 이방인이라는 것을 다시 한 번 확인하는 것 같아 마음이 정말 힘들었다. 어찌 보면 나는 이제 한국인도 아니다. 한국을 떠나 한국 사람들과 함께 살지 못하는 존재다. 그렇다고 나는 에콰도르 사람도 아니다. 이들에게도 여전히 나는 이방인이다. 나는 누구인가? 하는 생각을 다시 하게 된다. 선교사라는 정체감은 이토록 외로움과 쓸쓸함과 어디에서도 현지인과 같은 존재로 살지 못하는 사람인가?

나는 내 이름을 부르지도 않고 감사하지도 않은 그 자리에 화가 나서 오래 앉아 있을 수가 없었다. 푸짐한 헌당식의 점심만찬에 함께 참석 할 수 없을 만큼 내 마음이 상했다. 그래서 아내와 아이들을 데리고 예배가 끝나자마자 교회에서 나왔다. 마음의 화를 풀기 위해 가족들을 데리고 가장 비싸고 좋은 시내 음식점에 가서 점심을 먹었다. 그렇게라도 하지 않고서는 마음의 서운함과 허전함을 달랠 수 없었기 때문이다.

나는 오늘의 감정을 누구에게도 털어놓을 수 없다. 선교사로서 나를 알아주지 않아 화가 난 것을 누구에게도 말할 수 없다. 참 속 좁고 부끄러운 모습이다. 하나님은 내 마음을 알고 계실 것이다. 화가 난 내 마음을 알고 계실 것이다. 그리고 단 한 사람, 나의 아내는 내 마음을 이해하였다. 그래도 나의 부족한 것까지 이해하는 아내가 옆에 있어서 많은 위로가 된다.

오늘은 참 슬프다. 그래도 나는 이 곳, 이 땅, 에콰도르에 있어야 한다. 이곳 사람들이 나를 알아주지 않고 이해하지도 않아도, 그리고 한국의 사랑하는 사람들에게도 점점 잊혀져 간다 해도 나는 이곳에 있어야 한다. 그것은 하나님이 나를 이곳에 보내셨기 때문이다. 사람들에게 소망을 찾을 수 없어도 하나님이 소망이 되시기에 그분의 일을 위해 이곳에 있어야 한다. 예레미야 선지자가 사역의 열매가 없었어도, 사람들이 그를 알아주기는커녕 오히려 핍박하고 죽이려 해도 사명을 잘 감당한 것처럼 나도 하나님만을 바라보고 이곳에 있어야 한다. 비록 내 마음이 슬프고 아프더라도, 세상이 나를 아무도 알아주지 않더라도, 세상 사람들이 박수칠만한 위대한 일을 하지 못할지라도, 때로는 내가 이곳에 있는 것이 아무 의미 없이 보일지라도 하나님이 있으라 하셨기에 이곳에 있어야 한다. 이 자리를 지켜야 한다. 하나님이 보내셨기에, 그 하나님의 음성에 응답하여 묵묵히 이곳에 있으련다. 오늘 나는 아무도 없는 외로운 사막 가운데서 사랑하는 아내와 아이들과만 홀로 있는 느낌이지만 하나님만을 바라보는 자리에 있는 것 같다. 우리 가족과 하나님, 내게는 이것이 소망이고 오늘도 버티고 나갈 수 있는 힘이 된다.>

 

그 날을 나는 지금도 잊지 못한다. 정말 내가 교회 건축을 위해 했던 그 많은 일들에 대해 전혀 감사가 없는 사람들이라는 생각으로 참 많이 힘들었다. 스스로의 마음을 달래기 위해 비싼 식당에서 고기를 먹었던 기억이 생생하다. 그런데 이야기는 여기서 끝난 것이 아니다. 헌당예배를 드리고 4달 후에 한국으로 안식년을 맞아서 돌아갈 때, 교회에서 송별식을 해 주었었다. 송별식을 마치고 나서 앙헬 목사님이 나를 따로 불러 얘기를 하자고 하였다. 앙헬 목사님은 4달 전 헌당예배를 드리던 날에 있었던 일을 얘기하였다. 헌당 예배 중의 감사의 시간에 내 이름을 부르지 않았다는 것에 대해 설명을 하였다. 앙헬 목사님은 그 시간에 내 이름을 부르고 내게 감사하고 싶었다고 했다. 그러나 일부러 하지 않았다고 했다. 이유는 이름을 드러내지 않고, 자랑하지도 않고, 항상 뒤에서 묵묵히 일하는 나를 배려해서 그랬다는 것이다. 나를 드러내지 않고 조용히 일하기를 원하는 내가 그 시간에 이름이 불려서 속상해 할 수도 있다는 걱정을 하셔서 일부러 나를 사람들에게 드러내지 않으셨다는 것이다. 내 이름을 부르는 것이 나를 욕되게 하는 것이라는 여겨 나를 배려해서 그랬다는 것이다.

그 순간 나는 쥐구멍에라도 들어가고 싶었다. 앙헬 목사님은 나의 마음까지 다 알고, 나를 배려하고 나를 존중해서 내 입장에서 내 이름을 부르지 않았는데, 나는 내 이름을 부르지 않았다는 사실에 그렇게도 서운해 하고 속상해하고 슬퍼했던 것이다. 겉모습만 선교사이지 마음은 나를 자랑하기를 바라고 드러내기를 바라는 속 좁은 내 모습을 보게 되어 너무나 부끄러웠다. 선교사로서 현지인 목사님의 귀한 배려를 오해하고 오히려 스스로 화를 냈던 내 자신이 꼭 구약의 요나 선지자와 같았다. 정말 나는 선교사로서의 자격이 없는 인간이라는 것을 그 순간에 깨달았다. 겉으로는 겸손한 척 하지만 속으로는 누군가가 꼭 알아주어야 하는 연약한 인간임을 깨닫고, 하나님께 회개의 기도를 했었다. 그리고 앙헬 목사님을 오해했던 부분에 대해서도 회개하였다.

선교사는 무엇을 도와주는 존재가 아니라 오히려 현지인 목사님으로부터 도움을 받는 존재임을 다시 한 번 깨닫는 순간이었다. 선교사는 자격이 있어서가 아니라 진정으로 하나님이 선택해주셨고, 매일 매일 하나님의 은혜로 사는 존재임을 확인하는 시간이었다. 겉모습만이 아니라 속까지 겸손하고, 사람의 칭찬이 아니라 진정으로 하나님만을 바라보는 선교사가 될 것을 그날 많이 다짐하고 기도했었다. 선교사는 주는 존재가 아니라 받는 존재이고 강한 존재가 아니라 연약한 존재라는 사실을 깨닫는 소중한 경험이었다.(20161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