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 | 월 | 화 | 수 | 목 | 금 | 토 |
---|---|---|---|---|---|---|
1 | 2 | 3 | 4 | 5 | 6 | 7 |
8 | 9 | 10 | 11 | 12 | 13 | 14 |
15 | 16 | 17 | 18 | 19 | 20 | 21 |
22 | 23 | 24 | 25 | 26 | 27 | 28 |
29 | 30 |
- 역시 온라인과 오프라인의 모임은 차이가 있다. 그래도 오프라인으로 모이는 것이 비교할 수 없는 유익이 있다. 오늘도 한해 계획을 계속 세우고 있다(세웠다). 계획만 세우는 것이 아니라 같
- 오늘의 말씀 2024년 1월 26일(금) 42 날이 밝으매 예수께서 나오사 한적한 곳에 가시니 무리가 찾다가 만나서 자기들에게서 떠나시지 못하게 만류하려 하매 43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다른 동네들
- Today
- Total
선교교육 연구원(IMER)
오늘의 말씀 2020년 3월 12일(목) 본문
23 모세의 율법을 범하지 아니하려고 사람이 안식일에도 할례를 받는 일이 있거든 내가 안식일에 사람의 전신을 건전하게 한 것으로 너희가 내게 노여워하느냐
24 외모로 판단하지 말고 공의롭게 판단하라 하시니라(요 7장)
+ 말씀설명
유대인들은 예수님이 안식일에 38년 된 병자를 고치신 것에 대해 율법을 범했다고 예수님을 죽이려고 한다. 그런 유대인들의 관점이라면 유대인들은 이미 율법을 범하고 있다고 예수님은 주장하신다. 유대인들은 할례를 반드시 행해야 한다는 율법을 지키기 위해 안식일에도 할례를 행한다. 할례는 사람을 하나님의 자녀로 인정하는 표시이며, 이는 사람의 회복을 의미한다. 사람을 회복하는 일이 중요하다면 예수님이 안식일에 38년 된 병자를 고치신 것도 사람의 회복을 위한 것이기에 안식일에 행해도 문제가 없다고 반문하시는 것이다. 그러므로 안식일에 아무것도 하면 안 된다는 겉으로의 율법만을 지킬 것이 아니라 안식일의 진정한 의미, 즉 사람 살리는 일을 하는 것이 중요하다. 예수님은 사람을 살리는 일은 안식일을 범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주장하시는 것이다. 유대인들은 율법의 내용보다는 율법을 형식적으로만 지켰다. 외모가 아니라 그 내용이 중요하다는 것을 예수님은 가르치신 것이다.
+ 묵상과 적용
나는 하나님의 말씀을 보인 것으로만 지키려고 하지는 않는가? 진정으로 하나님의 말씀의 의미를 파악하고 그 의미대로 말씀을 지키는 삶을 사는가?
말씀을 의미대로 행하고 말씀을 좀 더 바르게 해석하고 행하기 위해서 변해야 할 나의 태도는 무엇이 있는가?
+ 오늘의 기도
1. 제가 말씀을 외모로가 아니라 내용과 참 된 의미로 잘 해석하고 그렇게 행하게 하소서
2. 우리 교회가 교회의 전통이나 율법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착각하여 그것 때문에 분쟁하는 일이 일어나지 않게 하시고 말씀의 의미, 즉 하나님의 사랑과 공의를 잘 지켜 행하는 교회가 되게 하소서.
3. 한국 교회가 율법을 가지고 싸우고 다투는 것이 아니라 말씀의 진정한 의미를 잘 이해하고 실행하게 하소서.
4. 르완다의 수도 키갈리를 동아프리카 경제 중심지로 개발하려는 비전이 이뤄지도록 교회와 성도들이 기도하게 하시고 이에 필요한 국가 기반 시설들이 갖춰지게 하소서.
+ 성경본문(요 7장)
19 모세가 너희에게 율법을 주지 아니하였느냐 너희 중에 율법을 지키는 자가 없도다 너희가 어찌하여 나를 죽이려 하느냐
20 무리가 대답하되 당신은 귀신이 들렸도다 누가 당신을 죽이려 하나이까
21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내가 한 가지 일을 행하매 너희가 다 이로 말미암아 이상히 여기는도다
22 모세가 너희에게 할례를 행했으니 (그러나 할례는 모세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조상들에게서 난 것이라) 그러므로 너희가 안식일에도 사람에게 할례를 행하느니라
23 모세의 율법을 범하지 아니하려고 사람이 안식일에도 할례를 받는 일이 있거든 내가 안식일에 사람의 전신을 건전하게 한 것으로 너희가 내게 노여워하느냐
24 외모로 판단하지 말고 공의롭게 판단하라 하시니라
* "날마다 솟는 샘물"의 QT지 본문을 참고하였습니다.
+ 말보다 진실성 있는 행동
이 글은 정치적인 얘기지만 정치적인 사견을 가지고 하는 얘기는 아니다. 하나의 예에 불과한데, 너무 예민한 정치적인 이야기라서 오해할까 염려된다. 그러나 나는 어떤 정치적인 견해를 밝히거나 누구를 지지하거나, 누가 더 좋은 정치인이라고 선전하는 것이 아님을 분명히 밝힌다. 현 시대에 우리 그리스도인의 삶의 행동, 태도가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를 생각해보기 위해서 정치인의 얘기를 하는 것을 이해하기를 바라면서 글을 쓴다.
정치인들은 국민들에게 자신을 드러내고 선전하기 위해서 많은 방법을 사용한다. 주로 말로 정치를 한다. 말을 잘하면 똑똑한 것 같기도 하고 말을 통해 그 사람이 알려진다. 그러나 말보다 행동이 더 중요하다. 행동을 통해서 국민들은 그 정치인을 평가한다. 국민들은 정치인의 말보다 행동에서 더 많은 점수를 준다. 비록 그 행동이 쇼일지라도, 쇼임을 알아도 효과가 있기에 정치인은 행동을 통해 보여주는 일을 반복한다. 겨울철이 되면 연탄을 나눈다(이 일은 정치인만이 아니라 이미지 관리를 위해 연예인들도 주로 하는 방법이다). 박원순 시장은 서민이 사는 동네에서 한 달 동안 살았다. 그것이 무슨 의미가 있으련만, 백프로 보여 주기식 행동임에도 불구하고 국민들은 그것에 대해 좋은 평가를 한다. 욕을 먹기도 하지만 그러나 그것이 효과가 있기에 정치인들은 그렇게 한다.
코로나 19로 인해 대구 경북이 큰 어려움을 당했다. 대통령이 청와대에서 말로 다해도 되지만 대구로 직접 내려갔다. 대구 시장실에서 일반 국민들이 아닌 주로 공무원들과 기자들을 대면했지만 그것 또한 청와대에 있는 것보다는 국민들 마음에 훨씬 것 행동을 보여줌으로 좋은 이미지를 각인시키는 것이었다. 박근혜 대통령이 세월호 사건이 일어났을 때, 청와대에서 있으면서도 국민들에게 7시간 동안 나타나지 않아 그것이 탄핵의 빌미를 준 사건이 되었다. 행동이 그만큼 중요하다. 행동으로 나타나는 것이 말로 하는 것보다 훨씬 더 힘이 있다는 것이다. 며칠 전에는 황교안 미래통합당 대표가 대구에 내려가 길거리에서 분무기를 등에 매고 소독을 하였다. 그것으로 부정적인 비판을 하는 사람도 있지만 그런 행동 하나가 더 좋은 이미지를 보여주기 때문에 그렇게 한 것이다. 안하는 것보다는 훨씬 더 좋은 효과가 있다. 국민들은 쇼인지 알면서도 그런 정치인을 원한다. 쇼라는 것은 마음의 진정성에 상관없이 몸과 행동으로 보여주는 것이다. 마음이야 다른데 있고 몸으로만 보여줘도 효과가 좋은데 마음이 함께 하면 그 행동에 진정성이 느껴져 더 좋은 이미지를 얻을 수 있다. 안철수 국민의당 대표는 부인과 함께 대구에 내려가 직접 의사로서 환자들을 돌보는 자원봉사를 하였다. 나는 그 글에 대한 댓글을 보았다. 전에는 많은 사람들이 정치인 안철수에 대해 악플을 많이 달았는데, 이번 자원봉사의 행동에는 대부분이 칭찬하는 선플이었다. 안철수 대표가 지난 대선 때 선거 며칠을 앞두고 직접 걸으면서 선거유세를 하였다. 그 때 직접 국민과 함께 한다는 의미로 걸으면서 사람들을 만나는 것이 상당히 좋은 호응을 얻었다. 누군가는 걸으면서 국민 한 사람 한 사람 만나는 그런 선거유세를 좀 더 일찍 시작했더라면, 한 달 전에만 그렇게 했더라면 대통령에 당선이 되었을 것이라는 말도 하였다. 이번에 대구에서 코로나 19 현장에 자원봉사로 정치인이 가서 직접 몸으로 보여준 것은 안철수 입장에서는 진정성을 보여줄 수 있는 기회가 되었다. 지금까지는 정치인들이 하는 보여주기는 주로 하루 이틀 그냥 사진 찍는 수준이었지만 의사로서의 참여는 자신도 바이러스에 걸릴 각오를 한 것이고, 하루가 아니고 며칠 씩 그렇게 하는 것은 희생의 없이는 할 수 없다는 이미지를 심어주는 것이다.
그리스도인들도 마찬가지다. 성경을 많이 알고 많은 좋은 말을 하더라도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행동이다. 진정성 있는 행동, 즉 자기 희생이 포함된 행동이 필요하다. 주님이 이 땅에 성육신하셔서 태어나신 것은 구약의 말(율법, 말씀)로 만이 아니라 직접 몸으로, 행동으로 하나님을 보여주기 위해서 오신 것이다. 그 행동이 힘이 있고 그 행동이 인류를 구원하시는 방법이었다. 그런 면에서 그리스도인들도 말 대신에 행동으로 보여주는 복음 전도가 필요한 시대이다. 말로만의 전도도 필요하지만 진정으로 힘 있는 전도 방법은 좋은 행동, 희생하는 행동이다. 설교자도 마찬가지다. 설교는 말로 한다. 그러나 그 말로 하는 설교는 한계가 있다. 물론 설교 잘하는 교회가 좀 더 성장하는 것은 당연하다. 그러나 성도들에게 진정으로 복음으로 영향을 줄 수 있는 것은 목회자의 행동이다. 자기가 먼저 희생하는 행동이 있을 때 어쩌면 잘하는 설교보다 더 큰 힘이 있지는 않을까 생각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