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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늘의 말씀 2024년 1월 26일(금) 42 날이 밝으매 예수께서 나오사 한적한 곳에 가시니 무리가 찾다가 만나서 자기들에게서 떠나시지 못하게 만류하려 하매 43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다른 동네들
- 역시 온라인과 오프라인의 모임은 차이가 있다. 그래도 오프라인으로 모이는 것이 비교할 수 없는 유익이 있다. 오늘도 한해 계획을 계속 세우고 있다(세웠다). 계획만 세우는 것이 아니라 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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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교교육 연구원(IMER)
오늘의 말씀 2020년 5월 14일(목) 본문
19 빌라도가 패를 써서 십자가 위에 붙이니 나사렛 예수 유대인의 왕이라 기록되었더라
20 예수께서 못 박히신 곳이 성에서 가까운 고로 많은 유대인이 이 패를 읽는데 히브리와 로마와 헬라 말로 기록되었더라
21 유대인의 대제사장들이 빌라도에게 이르되 유대인의 왕이라 쓰지 말고 자칭 유대인의 왕이라 쓰라 하니
22 빌라도가 대답하되 내가 쓸 것을 썼다 하니라(요 19장)
+ 말씀설명
빌라도가 예수님을 십자가에 사형 선고하고 나서 죄목을 써서 십자가에 붙였다. 십자가에 쓴 죄목은 “나사렛 예수 유대인의 왕”이었다. 이 패는 히브리어와 로마어, 헬라말로 기록되었다. 대제사장들은 빌라도에게 ‘자칭 유대인의 왕’이라고 고쳐 쓸 것을 요구했다. 빌라도는 자기가 쓸 것을 썼다고 하면서 고치지 않았다.
요한이 이 사실을 자세하게 기록한 것은 예수님이 십자가에 죽으신 원래 목적을 드러내기 위해서다. 예수님은 실제로 자칭 유대인의 왕이 아니라 진실로 이 세상의 왕이셨다. 대제사장들은 ‘자칭’이라는 말을 쓰기를 바랐지만 빌라도는 거절했는데, 이런 빌라도의 거절이 사소한 것 같지만 실제로는 예수님의 실체, 예수님의 본래의 모습을 나타낸 것이다. 이는 우연히 된 것이 아니라 성경전체에서 예수님에 대해 예언한 것을 이루는 것이었고 예수님의 참다운 실체를 드러내는 것이었다.
예수님은 자칭 왕이 아니라 실제로 이 세상의 왕이셨다. 이 세상을 지배하고 다스리시는 왕 중의 왕으로서 이 세상을 구원하기 위해 십자가에 죽으셨고 그의 희생은 왕 중의 왕임을 드러내는 것이다.
+ 묵상과 적용
- 만왕의 왕이신 예수님을 고백하는 것처럼 일상의 삶에서도 예수님을 왕으로 인정하는 삶을 사는가?
- 오늘도 왕이신 예수님의 통치 아래에 거하기 위해 무엇을 순종하겠는가?
+ 오늘의 기도
1. 만왕의 왕으로 고백하는 것처럼 삶에서도 왕으로 모시는 삶을 살게 하소서.
2. 한국교회가 예수님의 통치를 인정하고 세상에 예수님이 왕이심을 잘 드러내는 교회가 되게 하소서.
3. 교육 정책이 혼란스럽고 스승과 제자의 도리가 무너진 이 시대에, 위정자들이 성과 위주에서 벗어나 기본부터 바로잡고 멀리 내다보는 교육 정책을 마련하게 하소서.
4. 기독교 방송 프로그램의 활성화를 통해 바른 복음이 전파되게 하시고 청소년들을 위한 유익한 프로그램들이 늘어나는 콩가 국가가 되게 하소서.
+ 성경본문(요 19장)
12 이러하므로 빌라도가 예수를 놓으려고 힘썼으나 유대인들이 소리 질러 이르되 이 사람을 놓으면 가이사의 충신이 아니니이다 무릇 자기를 왕이라 하는 자는 가이사를 반역하는 것이니이다
13 빌라도가 이 말을 듣고 예수를 끌고 나가서 돌을 깐 뜰(히브리 말로 가바다)에 있는 재판석에 앉아 있더라
14 이 날은 유월절의 준비일이요 때는 제육시라 빌라도가 유대인들에게 이르되 보라 너희 왕이로다
15 그들이 소리 지르되 없이 하소서 없이 하소서 그를 십자가에 못 박게 하소서 빌라도가 이르되 내가 너희 왕을 십자가에 못 박으랴 대제사장들이 대답하되 가이사 외에는 우리에게 왕이 없나이다 하니
16 이에 예수를 십자가에 못 박도록 그들에게 넘겨 주니라 십자가에 못 박히시다
17 그들이 예수를 맡으매 예수께서 자기의 십자가를 지시고 해골(히브리 말로 골고다)이라 하는 곳에 나가시니
18 그들이 거기서 예수를 십자가에 못 박을새 다른 두 사람도 그와 함께 좌우편에 못 박으니 예수는 가운데 있더라
19 빌라도가 패를 써서 십자가 위에 붙이니 나사렛 예수 유대인의 왕이라 기록되었더라
20 예수께서 못 박히신 곳이 성에서 가까운 고로 많은 유대인이 이 패를 읽는데 히브리와 로마와 헬라 말로 기록되었더라
21 유대인의 대제사장들이 빌라도에게 이르되 유대인의 왕이라 쓰지 말고 자칭 유대인의 왕이라 쓰라 하니
22 빌라도가 대답하되 내가 쓸 것을 썼다 하니라
+ 왕의 통치
예수님이 복음을 전파한 사실을 기록한 말씀이 있다.
“요한이 잡힌 후 예수께서 갈릴리에 오셔서 하나님의 복음을 전파하여 가라사대 때가 찾고 하나님 나라가 가까웠으니 회개하고 복음을 믿으라 하시더라”(막 1:14-15).
이 말씀에 예수님은 복음을 전파하시면서 사람들에게 복음을 믿으라고 하셨다. 여기서 복음이란 무엇인가? 예수 그리스도를 입으로 고백하고 영접하면 구원을 얻는다는 것이 그리스도인들이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복음이다. 오늘날 그리스도인들은 이렇게 이해하고 있지만 사실은 예수님께서 복음에 대한 설명을 구체적으로는 하지 않으셨다. 예수님이 전파하신 복음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그 때 당시에 복음이 어떻게 쓰여 졌는가를 알 필요가 있다. 예수님 당시의 복음은 이스라엘을 지배했던 로마가 사용했던 용어이다. 로마인들에게 복음은 ‘로마가 승리한다는 소식’이다. 로마의 승리가 그들에게 복음이었는데, 그들은 강력한 군사력에 의한 로마 통치가 계속되고 전쟁의 위협 없이 로마의 지배하에 안전하게 사는 것을 믿었다. 로마의 번영이 계속되되, 그들이 정복한 땅에 대한 조직적이고 악랄한 착취를 통해 제한받지 않고 경제 성장이 가능하다는 것이다. 그들이 승리함으로, 그들이 가진 복음으로 사치하고 세상을 지배하며, 잘 먹고 잘 살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였다. 그들은 로마시민으로 우월감을 가지고 있었으며, 식민지 국가를 착취하여 영원히 그들의 기득권을 누리며 살기를 원했다. 이것이 로마인들이 믿었던 복음이다. 그러나 그들의 복음은 가난하고 힘없는 사람에게는 오히려 죽음과 가난과 고통의 연속을 의미했다.
예수님은 로마인들의 복음에 대한 이해를 가지고 ‘하나님 나라’의 통치와 번영을 복음으로 설명하셨다. 하나님 나라는 힘과 권세, 번영과 안락한 생활이 아닌 하나님 나라의 방식인 평화와 안정과 자유와 평등과 공의를 포함하는 하나님 나라다. 예수님은 이 하나님 나라의 통치를 복음으로 가르치셨다.
예수님의 제자들도 복음에 대한 이해를 할 때 로마인들이 가진 그런 힘과 부와 권세의 의미를 가지고 있었다. 이 세상에서 성공하고 힘과 부를 키우는 그런 로마인의 복음과 비슷한 개념이었다. 예수님은 이들에게 하나님의 통치, 하나님 나라의 임재를 복음으로 가르치셨다. 예수님은‘회개하고 복음을 믿으라’고 선포하신다. 여기서 회개한다는 것은 그들이 가진 복음의 의미에서의 생활방식과 삶의 가치관을 회개하고 하나님 나라의 통치에 대한 복음을 받아들이라고 말씀하시는 것이다. 그래서 참 된 회개는 거짓말, 도둑질, 살인, 미움, 시기, 분노, 음란, 등의 죄의 고백만이 아니라 삶의 방식으로서 회개를 포함하는 것이다. 로마인들이 생각했던 복음, 즉 성공하고 착취하여 잘 사는 그런 삶의 방식에서 돌이켜 하나님 나라의 복음, 즉 섬기고 사랑하고 용서하고 공의롭고 화평하고 겸손하고 온유하고 가난하고 약한 자의 편에 서는 것으로의 삶의 변화를 가져오라고 명령하신 것이다. 예수님은 삶의 방식의 변화까지 포함하는 회심과 하나님의 통치를 받아들이는 복음을 받으라고 선포하신 것이다. 그 삶의 방식은 누가복음에서 기록한 것과 같은 것들이다.
“무리가 물어 이르되 그러면 우리가 무엇을 하리이까 대답하여 이르되 옷 두 벌 있는 자는 옷 없는 자에게 나눠 줄 것이요 먹을 것이 있는 자도 그렇게 할 것이니라 하고 세리들도 세례를 받고자 하여 와서 이르되 선생이여 우리는 무엇을 하리이까 하매 이르되 부과된 것 외에는 거두지 말라 하고 군인들도 물어 이르되 우리는 무엇을 하리이까 하매 이르되 사람에게서 강탈하지 말며 거짓으로 고발하지 말고 받는 급료를 족한 줄로 알라 하니라”(눅3: 10-14)
예수님이 이 세상의 왕이심을 인정하는 것은 그분의 왕권과 왕의 통치를 받아들인다는 뜻이다. 예수님은 이 세상의 왕으로서 죽으셨다. 이 세상을 다스리시는 참 된 왕 중의 왕이신 예수님의 삶과 복음의 방식대로 사는 것이 예수님을 왕으로 모신 자들의 삶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