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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늘의 말씀 2024년 1월 26일(금) 42 날이 밝으매 예수께서 나오사 한적한 곳에 가시니 무리가 찾다가 만나서 자기들에게서 떠나시지 못하게 만류하려 하매 43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다른 동네들
- 역시 온라인과 오프라인의 모임은 차이가 있다. 그래도 오프라인으로 모이는 것이 비교할 수 없는 유익이 있다. 오늘도 한해 계획을 계속 세우고 있다(세웠다). 계획만 세우는 것이 아니라 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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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교교육 연구원(IMER)
오늘의 말씀 2020년 9월 28일(월) 본문
57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에게 승리를 주시는 하나님께 감사하노니
58 그러므로 내 사랑하는 형제들아 견실하며 흔들리지 말고 항상 주의 일에 더욱 힘쓰는 자들이 되라 이는 너희 수고가 주 안에서 헛되지 않은 줄 앎이라(고전 15장)
+ 말씀설명
바울은 부활 신앙을 가진 사람들이 가져야 할 태도를 말씀한다. 부활 때까지는 고난과 시련이 있을 것인데, 반드시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승리할 것을 아울러 말씀한다. 고난의 순간에도 그 승리를 주실 하나님께 감사하며, 흔들리지 말고 주의 일에 힘쓰라고 권면한다. 주님의 자녀들은 당하는 모든 수고가 헛되지 않을 것이기에 현재 맡겨진 주의 나라를 위한 일에 최선을 다해야 할 것이다.
+ 묵상과 적용
- 부활을 인해 고난과 어려움이 있어도 하나님께 감사하는 삶을 사는가?
- 견실하며 흔들리지 않고 주님의 일을 해야 하는데, 그렇게 하지 못하는 일이 있다면 그 이유는 무엇인가?
+ 오늘의 기도
1. 부활 소망을 붙잡고 끝가지 시련과 고난을 이겨내는 사명자로 살게 하소서.
2. 한국 사회에 만연한 세대 간, 계층 간, 지역 간, 성별 간 모든 갈등이 예수그리스도의 십자가의 능력 안에서 하나 되게 하시고 서로를 이해하는 은혜의 물꼬가 트이게 하소서.
3. 말레이시아 부미푸트라족: 가난과 교육 기회의 부족으로 소외돼 살아가는 이들에게 사회적 진원이 이뤄지게하시고 12개 언어의 성경 번역이 속히 진행되게 하소서.
+ 성경본문(고전 15장)
50 형제들아 내가 이것을 말하노니 혈과 육은 하나님 나라를 이어 받을 수 없고 또한 썩는 것은 썩지 아니하는 것을 유업으로 받지 못하느니라
51 보라 내가 너희에게 비밀을 말하노니 우리가 다 잠 잘 것이 아니요 마지막 나팔에 순식간에 홀연히 다 변화되리니
52 나팔 소리가 나매 죽은 자들이 썩지 아니할 것으로 다시 살아나고 우리도 변화되리라
53 이 썩을 것이 반드시 썩지 아니할 것을 입겠고 이 죽을 것이 죽지 아니함을 입으리로다
54 이 썩을 것이 썩지 아니함을 입고 이 죽을 것이 죽지 아니함을 입을 때에는 사망을 삼키고 이기리라고 기록된 말씀이 이루어지리라
55 사망아 너의 승리가 어디 있느냐 사망아 네가 쏘는 것이 어디 있느냐
56 사망이 쏘는 것은 죄요 죄의 권능은 율법이라
57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에게 승리를 주시는 하나님께 감사하노니
58 그러므로 내 사랑하는 형제들아 견실하며 흔들리지 말고 항상 주의 일에 더욱 힘쓰는 자들이 되라 이는 너희 수고가 주 안에서 헛되지 않은 줄 앎이라
* "날마다 솟는 샘물"의 QT지 본문을 참고하였습니다.
+ 고통관(苦痛觀)
오늘 잘 알고 지내는 한 선교사님과 대화를 하던 중에 선교사님께서 고통에 대한 얘기를 하셨다. 선교사님은 한국교회가 고통에 대한 이해가 좀 부족하다고 하셨다. 기독교 혹은 신앙생활의 목표가 지금까지는 고통을 벗어나는 것으로 이해하는 측면이 한국교회에 많이 있었다는 말씀을 하신 것이다. 성경은 인간이 항상 고통스러울 수는 없고 고통스러워서도 안 되지만 그러나 고통을 벗어나거나 고통을 잘못된 것으로 말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오히려 성경에서 고통은 인간에게 꼭 필요한 것이며, 고통의 결과는 인간에게 유익이며, 좋은 결실이라고 말씀하셨다. 그러기에 고통은 인간이 피해갈 것이 아니라 받아들여야 하고 고통이 올 때는 그 고통에 대해 감사해야 한다는 설명을 하셨다.
이 선교사님의 논리가 우리 각자에게는 어떻게 다가오는가? 나는 개인적으로 선교사님의 지적이 맞는다고 본다. 지금까지 한국교회는 기독교 신앙이란 고통이 없고, 신앙을 통해 고통을 빨리 벗어나야 하며, 모든 것이 잘되고 평안하게 사는 것이 신앙인의 삶이라고 믿어온 측면이 강하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신앙인들은 기도할 때 건강하게 해 달라고 기도하고, 사업이 잘되라고 기도하고, 자식이 잘되라고 기도하는 것에 너무나 익숙해져 있다. 반대로 고통을 달라고 기도하거나 고통이 오면 그것을 잘 참고 감수하게 해 달라고 기도하지는 않는다. 고통을 피하지 않고 잘 받아들이도록 기도하지 않는다. 대신에 고통을 벗어나게 해 달라고 기도하지, 고통 가운데서 살게 해 달라고 기도하지는 않는 것이 한국 교회 성도들의 현실이다.
그러면 우리의 기도는 어떤가? 우리의 신앙관은 어떠한가? 모든 것이 잘되게 해 달라고 기도하는가? 아니면 동시에 고통도 달라고 기도하는가?
성경은 고통도 유익이며 축복이라고 말씀한다. 가난한 자가 복이 있다고 말씀한다. 예수님을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르라고 하셨다(마 16:24-25). 바울은 날마다 죽노라고 하였다(고전 15:31). 우리에게는 십자가, 즉 고통이 필요하다. 그것이 우리에게 유익이다. 축복이라는 것이다.
십자가, 즉 고통을 감수하는 것이 축복이라면 그리스도인들이 살면서 당하는 억울함과 핍박 당함도 감사해야 한다. 그것을 받아들여야 한다. 무조건 싸워서 손해보지 않겠다고 하는 것이 아니라 손해 보고 힘들게 살아가는 것을 받아들이겠다고 생각해야 한다. 그런데 이렇게 생각하는 그리스도인들이 얼마나 될까?
나는 감히 한국교회의 타락의 핵심은 바로 ‘고통에 대한 잘못된 관점’이라고 생각한다. 고통이 축복이고 우리에게 필요하다면 고통 앞에서 하나님에 대한 신앙을 어떻게 지켜야 하는 방법을 찾을 수 있다. 그렇다고 굳이 고통을 찾아다니면서 매일 고통 중에 있을 필요는 없다. 일상에서 즐거운 일이 있으면 즐거워하면 된다. 그러나 고통이 오면 그것도 하나님의 은혜라고 생각하고 받아들이면 된다.
고통을 벗어나려고 하는 것이 아니라 고통을 감수하려는 것이 참 신앙인의 태도가 아닐까? 한국 교회가 다시 회복하는 것은 바로 현재의 한국교회가 당하는 고난을 받아들이고 회개하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 본다.
고통은 힘든 일이지만 장자 올 축복을 받아들일 그릇을 준비하는 것이 고통이라고 누군가 말했다. 축복을 많이 받기를 원한다면, 큰 그릇을 준비하기를 원한다면 고통이 그 역할을 한다는 사실을 기억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