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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교교육 연구원(IMER)

오늘의 말씀 2021년 11월 30일(화) 본문

성경공부, 설교/말씀묵상(QT)자료

오늘의 말씀 2021년 11월 30일(화)

후앙리 2021. 11. 30. 11:38

31 유다 왕 여호야긴이 사로잡혀 간 지 삼십칠 년 곧 바벨론의 에윌므로닥 왕의 즉위 원년 열두째 달 스물다섯째 날 그가 유다의 여호야긴 왕의 머리를 들어 주었고 감옥에서 풀어 주었더라(52)

 

+ 말씀설명

바벨론 왕 에워므로닥이 즉위할 때 유다 왕 여호야긴이 감옥에서 풀려난다. 그 후 여호야긴의 후손 중의 1차 포로 귀환의 지도자인 스룹바벨이 태어난다. 결국 이 스룹바벨의 후손으로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신 것이다(1:12절 참조). 이처럼 하나님은 다윗과의 언약을 성취하셨다. , 다윗의 자손을 통해 예수님이 이 땅에 오실 것이라는 언약을 성취하신 것이다.

어려운 환경 가운데서도 예수 그리스도의 구원의 은혜는 우리의 일상의 삶에서도 하나님의 자녀로 살아갈 수 있도록 하는 은혜로 계속해서 임한다.

 

+ 묵상과 적용

- 하나님의 약속이 성취됨을 경험하며 사는가?

- 요즈음 내게 어떤 말씀이 소망과 위로가 되는가?

 

+ 오늘의 기도

1. 환란 중에도 하나님의 말씀이 성취됨을 믿으며 말씀만을 의지하며 살게 하소서.

2. 페루 정부가 고아가 된 아동들에 대해 돌봄, 정신 건강, 교육, 착취 및 범죄에 대한 피해로부터 보호할 수 있는 포괄적인 정책을 잘 준비하여 실행하며, 페루 교회와 그리스도인들이 정부와 협력하여 아동들을 잘 돌볼 수 있게 하소서.

 

+ 성경본문(52)

24 사령관이 대제사장 스라야와 부제사장 스바냐와 성전 문지기 세 사람을 사로잡고

25 또 성 안에서 사람을 사로잡았으니 곧 군사를 거느린 지휘관 한 사람과 또 성중에서 만난 왕의 내시 칠 명과 군인을 감독하는 군 지휘관의 서기관 하나와 성 안에서 만난 평민 육십 명이라

26 사령관 느부사라단은 그들을 사로잡아 리블라에 있는 바벨론의 왕에게 나아가매

27 바벨론의 왕이 하맛 땅 리블라에서 다 쳐 죽였더라 이와 같이 유다가 사로잡혀 본국에서 떠났더라

28 느부갓네살이 사로잡아 간 백성은 이러하니라 제칠년에 유다인이 삼천이십삼 명이요

29 느부갓네살의 열여덟째 해에 예루살렘에서 사로잡아 간 자가 팔백삼십이 명이요

30 느부갓네살의 제이십삼년에 사령관 느부사라단이 사로잡아 간 유다 사람이 칠백사십오 명이니 그 총수가 사천육백 명이더라

31 유다 왕 여호야긴이 사로잡혀 간 지 삼십칠 년 곧 바벨론의 에윌므로닥 왕의 즉위 원년 열두째 달 스물다섯째 날 그가 유다의 여호야긴 왕의 머리를 들어 주었고 감옥에서 풀어 주었더라

32 그에게 친절하게 말하고 그의 자리를 그와 함께 바벨론에 있는 왕들의 자리보다 높이고

33 그 죄수의 의복을 갈아 입혔고 그의 평생 동안 항상 왕의 앞에서 먹게 하였으며

34 그가 날마다 쓸 것을 바벨론의 왕에게서 받는 정량이 있었고 죽는 날까지 곧 종신토록 받았더라

* "날마다 솟는 샘물"QT지 본문의 순서를 따랐습니다.

 

+ 좋은 말

요즈음 우리 사회에서 악을 조장하는 말이 있다. 그것은 바로 악플이다. 지금은 인터넷 시대이며 인터넷을 통해 서로의 생각을 주고받는 시대이다. 그 인터넷에 댓글이나 혹은 자신의 의견을 표출하는 공간에 선플이 아니라 악플을 다는 사람들이 참으로 많다. 더 안타까운 것은 악플의 부정적인 영향은 생각보다 크다. 이 악플로 인해 연애인을 비롯한 유명인들이 자살하는데 까지 이른다. 악플은 단순히 다른 사람을 놀리고 욕하는 정도에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사람을 죽이는 역할까지 하는 것이다. 이처럼 사람들이 하는 한마디가 의외로 큰 힘을 발휘하는 것이다. 비록 모르는 사람일지라도 그 사람의 부정적인 말 한마디가 누군가의 생명과 영혼을 망가뜨리는 것이다.

나는 악플을 볼 때마다 사람이 이렇게 악한가? 하는 생각을 해본다. 왜 악플을 달까? 악플을 달면 기분이 좋을까? 누군가 공격하면 쾌감을 느끼는 걸까? 나는 악플을 다는 사람들의 마음을 이해할 수가 없지만 현실은 악플을 다는 사람들이 생각보다 많을 뿐 아니라 그 폐해도 생각보다 크다는 것이다.

이런 사회에 살면서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일상의 삶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하면서 살아야 한다. 그 하나님의 말씀이란 무엇인가? 예수 믿으라는 말인가? 사랑하라는 말인가? 그런 것들이 하나님의 본질적인 말씀이다. 그러나 이런 말을 드러내놓고 할 수 없는 분위기가 있다. 그럴 때는 직접적인 하나님(성경)의 말씀을 전하지 않더라도 간접적으로 해야 하는 말이 있다. 그것은 아프고 힘든 사람에게 하는 위로하는 말이다. 저주의 말이 아니라 칭찬의 말이다. 불평이 아니라 감사의 말이다. 깍아 내리는 말이 아니라 격려의 말이다. ‘악플이 아니라 선플을 다는 것이다.

사람은 누구나 좋은 말을 듣기는 좋아한다. 나쁜 말 듣기를 좋아하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누구나 그렇다. 일부러 나쁜 말을 듣고자 하는 노력하는 사람은 더더욱 없을 것이다. 물론 좋은 말, 칭찬의 말, 긍정의 말, 감사의 말은 모두가 듣고 싶어 한다는 사실이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인이라면 최소한 다른 사람이 듣기에 좋은 말을 해야 한다. 다른 사람이 듣고 괴롭거나, 힘들거나, 상처주는 말은 하지 않는 것이 당연하다. 왜냐하면 자신도 나쁜 말을 듣기 싫어하기 때문이다. 자신은 나쁜 말을 듣기 싫어하면서 다른 사람에게 나쁜 말을 한다면 그런 사람은 나쁜 사람이다. 악한 사람이다. 하나님의 말씀을 따르는 사람이 아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는 사람이 아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는 사람이란 상대에게 하는 말을 곱고도 아름답고, 듣기 좋은 말, 칭찬과 감사와 긍정의 말을 하는 사람이다. 오늘도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는 마음으로 말 한 마디를 할 때 좋은 말을 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