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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교교육 연구원(IMER)

오늘의 말씀 2021년 4월 12일(월) 본문

성경공부, 설교/말씀묵상(QT)자료

오늘의 말씀 2021년 4월 12일(월)

후앙리 2021. 4. 12. 05:01

16 바울의 생질이 그들이 매복하여 있다 함을 듣고 와서 영내에 들어가 바울에게 알린지라

17 바울이 한 백부장을 청하여 이르되 이 청년을 천부장에게로 인도하라 그에게 무슨 할 말이 있다 하니

18 천부장에게로 데리고 가서 이르되 죄수 바울이 나를 불러 이 청년이 당신께 할 말이 있다 하여 데리고 가기를 청하더이다 하매(23)

 

+ 말씀설명

바울이 유대인의 전통을 파괴한다고 생각하여 바울을 죽이기로 한 유대인들이 40여 명이 되었다. 이들은 바울을 죽이기 전에는 아무것도 먹지 않기로 맹세하였다. 숨어서 40여 명의 음모를 들은 바울의 조카는 바울에게 알린다. 바울은 가까운 백부장을 청하여 이 청년을 천부장에게로 데려가서 이 상황을 알리도록 부탁한다. 백부장은 천부장에게 바울의 조카를 데리고 간다. 천부장은 찾아온 조카의 말을 듣고 바울을 보호하기 위해 모든 것을 비밀로 하기로 하였다.

죽을 위험 가운데 복음전파의 사명을 감당하기 위해 바울은 어떻게든 살고자 하였다. 살기 위해 최선을 다할 때 하나님은 조카, 백부장, 천부장을 사용하여 바울을 지켜주신 것이다. 복음으로 살 때 계속된 핍박이 있지만 하나님은 많은 사람을 통해 우리를 보호해주신다.

 

+ 묵상과 적용

죽을 위험 가운데 낙심하지 않고 끝까지 생명을 유지하여 복음 사명을 감당하는 바울의 모습을 보면서 어떤 느낌이 드는가?

나는 복음을 전하다가 어려운 일이 있을 때, 포기한 적이 있는가? 주님 주신 사명을 감당하기 위해 집중해야 할 일은 어떤 것이 있는가?

 

+ 오늘의 기도

1. 어려운 상황에서도 사명을 감당하기 위해 주님의 도우심을 바라보며 최선을 다해 살게 하소서.

2. 인도에는 학교 수업을 마치자마자 쓰레기 더미로 가서 판매 가능한 쓰레기를 줍는 아동 청소부를 포함한 5~14세의 아동 노동자들이 전역에 천만 명에 이른다고 보고 한 바 있다. 이 아동들은 빈곤의 이유로 비위생적이고 위험한 노동환경에 처하게 되는데, 인도 정부와 구호단체들이 아동들을 위한 구호정책을 적극적으로 펼치고, 아동들이 교육 혜택을 누릴 수 있도록 기도하자.

 

+ 성경본문(23)

12 날이 새매 유대인들이 당을 지어 맹세하되 바울을 죽이기 전에는 먹지도 아니하고 마시지도 아니하겠다 하고

13 이같이 동맹한 자가 사십여 명이더라

14 대제사장들과 장로들에게 가서 말하되 우리가 바울을 죽이기 전에는 아무 것도 먹지 않기로 굳게 맹세하였으니

15 이제 너희는 그의 사실을 더 자세히 물어보려는 척하면서 공회와 함께 천부장에게 청하여 바울을 너희에게로 데리고 내려오게 하라 우리는 그가 가까이 오기 전에 죽이기로 준비하였노라 하더니

16 바울의 생질이 그들이 매복하여 있다 함을 듣고 와서 영내에 들어가 바울에게 알린지라

17 바울이 한 백부장을 청하여 이르되 이 청년을 천부장에게로 인도하라 그에게 무슨 할 말이 있다 하니

18 천부장에게로 데리고 가서 이르되 죄수 바울이 나를 불러 이 청년이 당신께 할 말이 있다 하여 데리고 가기를 청하더이다 하매

19 천부장이 그의 손을 잡고 물러가서 조용히 묻되 내게 할 말이 무엇이냐

20 대답하되 유대인들이 공모하기를 그들이 바울에 대하여 더 자세한 것을 묻기 위함이라 하고 내일 그를 데리고 공회로 내려오기를 당신께 청하자 하였으니

21 당신은 그들의 청함을 따르지 마옵소서 그들 중에서 바울을 죽이기 전에는 먹지도 않고 마시지도 않기로 맹세한 자 사십여 명이 그를 죽이려고 숨어서 지금 다 준비하고 당신의 허락만 기다리나이다 하니

22 이에 천부장이 청년을 보내며 경계하되 이 일을 내게 알렸다고 아무에게도 이르지 말라 하고

* "날마다 솟는 샘물"QT지 본문을 참고하였습니다.

 

+ 무력함(영성에의 길: 헨리 나우엔)

세상을 지배하고 사람들과 그들의 땅을 파괴하는 악마적인 권력에 대한 하나님의 반응은 과거에는 어떠하였고 또 현재는 어떠한가? 이 물음에 대한 답은 심오하고도 완전한 신비이다. 왜냐하면 하나님이 스스로 무력함을 선택하셨기 때문이다. 하나님은 철저히 연약한 모습으로 인간의 역사 속으로 들어오기로 선택하셨다. 이러한 하나님의 선택이 기독교 신앙의 핵심이다. 권력의 환상을 폭로하기 위해서, 세상을 지배하는 어둠의 왕자를 물리치기 위해 그리고 분열된 인류에게 새로운 하나 됨을 가져다주시기 위해, 무력한 하나님은 나사렛 예수의 모습으로 우리 가운데 나타나셨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보여주신 신적인 자비는 완전하고 순전한 무력함을 통해서 드러난 것이었다.

하나님의 혁신적인 선택은, 권력을 완전히 제거하신 상태에서 그리고 그것을 통해서 영광, 아름다움, 진리, 평화, 기쁨 그리고 무엇보다 사랑을 보여주시고자 한 선택이다. 우리가 이러한 하나님의 신비를 이해하기란 불가능하지는 않을지라도 아주 어렵다. 우리는 전능하시고 능력 많으신 하나님께 기도하기를 계속하지만, “나를 보는 자는 아버지를 보는 것이라 말씀하시며 우리에게 하나님을 드러내 보여주신 그분은 모든 힘과 권세가 없는 상태이시다. 우리가 진정으로 하나님을 사랑하기를 원한다면, 연약함으로 점철된 인생을 사셨던 그 나사렛 사람을 살펴보아야만 한다. 그의 연약함은 우리에게 하나님의 마음으로 가는 길을 열어준다.

권력을 가진 사람은 친밀감과는 거리가 멀다. 우리는 권력을 가진 사람을 두려워한다. 그들은 우리를 지배할 수 있고 우리가 원하지 않는 일을 강제로 시킬 수 있다. 우리는 권력을 가진 사람을 우러러본다. 그들은 우리가 갖지 못한 것을 갖고 있고, 자신의 의지에 따라 그것을 줄 수도, 주지 않을 수도 있다. 우리는 권력을 가진 사람을 부러워한다. 그들은 우리가 갈 수 없는 곳에도 갈 수 있고, 우리가 할 수 없는 일도 능히 할 수 있다. 그러나 하나님의 권력은 그와는 정반대인 것이다. 하나님은 우리가 그분을 두려워하거나, 거리를 두거나, 부러워하기를 원하지 않으신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가까이, 바로 가까이, 아주 가까이 오기를 원하신다. 엄마 품에 안긴 아이처럼 우리가 하나님과 친밀한 가운데 안주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다.

그래서 하나님은 작은 아이가 되셨다. 누가 작은 아기를 무서워하겠는가? 작디작은 아기는 부모나 유모, 자기를 돌보는 사람에게 전적으로 의존한다. 그렇다. 하나님은 아주 무력한 사람이 되어, 많은 사람의 도움 없이는 먹거나 마시거나 걷거나 말하거나 놀거나 일할 수 없도록 되기를 원하셨다. 그렇다. 하나님은 자라서 우리 가운데 사시고 복음을 선포하기 위해 인간에게 의존하는 자가 되셨다. 그렇다. 하나님은 정말 무력한 자가 되기를 선택하시고, 우리 가운데서 하나님 자신의 사명이 실현되도록 하기 위해서 우리에게 전적으로 의존하시게 되었다. 우리 품 안에서 어르고 있는 아기를 어떻게 두려워할 수 있겠는가? 우리의 보살핌에 대한 반응으로 생극 웃는 아기를 어찌 부러워하겠는가? 이것이 성육신의 신비이다. 하나님은 완전한 연약함으로 권력의 장벽을 극복하시기 위해, 인간과 동일한 모습으로 인간이 되셨다. 바로 이것이 예수님의 이야기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