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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늘의 말씀 2024년 1월 26일(금) 42 날이 밝으매 예수께서 나오사 한적한 곳에 가시니 무리가 찾다가 만나서 자기들에게서 떠나시지 못하게 만류하려 하매 43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다른 동네들
- 역시 온라인과 오프라인의 모임은 차이가 있다. 그래도 오프라인으로 모이는 것이 비교할 수 없는 유익이 있다. 오늘도 한해 계획을 계속 세우고 있다(세웠다). 계획만 세우는 것이 아니라 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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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교교육 연구원(IMER)
오늘의 말씀 2021년 8월 24일(화) 본문
24 오호라 나는 곤고한 사람이로다 이 사망의 몸에서 누가 나를 건져내랴(롬 7장)
+ 말씀설명
바울은 자신을 곤고한 사람이라고 하였다. 하나님의 법과 육신의 법이 내면에서 싸우는 상태를 곤고한 상태라고 표현한다. 바울은 하나님의 법을 즐거워하는 성령님께 속한 속사람과 악을 행하기 원하는 죄에 속한 육신 사이에 일어나는 다툼으로 인해 겪는 고통을 표현한 것이다. 죄를 지을 수밖에 없는 연약한 자신을 한탄함과 동시에 의로 살려고 하는 강력한 욕망을 볼 수 있는 말씀이다.
우리는 우리 속에 있는 죄에 대해 고통스러워하며, 의롭게 살려고 노력함과 동시에 의로운 삶을 갈망하는 사람이 되어야 할 것이다.
+ 묵상과 적용
- 나는 내 속에 있는 죄로 인해 고통스러워하는가? 죄를 지으면서도 죄에 무지하지는 않는가?
- 나는 의롭고 거룩한 삶을 추구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는 부분은 어떤 것이 있는가?
+ 오늘의 기도
1. 주님의 능력과 의를 힘입어 육신의 법을 이기고 승리하는 믿음의 제자가 되게 하소서.
2. 사역 단체 IJM(International Justice Mission)은 24개국에서 아동 인신매매, 현대판 노예와 폭력 등으로부터 가난한 사람들을 보호하는 국제적인 기독교 기관이다. 이 단체의 보고에 의하면 전 세계적으로 천만 명의 어린이가 현대판 노예 생활이나 강제 노동환경에 처해 있으며, 코로나19로 인해 교육이 중지되거나 경제적으로 취약한 계층의 아동들이 인신매매나 강제 노동에 투입될 위험성이 커지고 있다고 경고하였다.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특별히 경찰력이 부족한 국가의 지역 교회들이 당국과 협력하여 인신 매매 예방 및 감시할 수 있는 시스템이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IJM의 사역을 통해서 아동들에 대한 인신 매매와 강제 노동이 감소하고, 각국의 지역교회들이 동참하여 아동과 가난한 이들을 잘 돌볼 수 있도록 기도하자.
+ 성경본문(롬 7장)
21 그러므로 내가 한 법을 깨달았노니 곧 선을 행하기 원하는 나에게 악이 함께 있는 것이로다
22 내 속사람으로는 하나님의 법을 즐거워하되
23 내 지체 속에서 한 다른 법이 내 마음의 법과 싸워 내 지체 속에 있는 죄의 법으로 나를 사로잡는 것을 보는도다
24 오호라 나는 곤고한 사람이로다 이 사망의 몸에서 누가 나를 건져내랴
25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께 감사하리로다 그런즉 내 자신이 마음으로는 하나님의 법을 육신으로는 죄의 법을 섬기노라
* "날마다 솟는 샘물"의 QT지 본문의 순서를 따랐습니다.
+ 큰 아들
잔뜩 화가 난 큰아들이 아버지에게 불평을 늘어놓는 것은 놀랄 일이 아닙니다. “나에게는 친구들과 함께 즐기라고 염소 새끼 한 마리도 주신 일이 없습니다. 그런데 창녀들과 어울려서 아버지의 개산을 다 삼켜버린 이 아들이 오니까 그를 위해서는 살진 송아지를 잡으셨습니다. ” 잘 들어보십시오, 큰아들이 느끼는 아픔이 얼마나 큰지 알 수 있지 않습니까?
큰아들은 기쁨을 주체하지 못하는 아버지를 보면서 자존감에 깊은 상처를 받았습니다. 화가 치민 나머지 돌아온 탕자를 동생으로 받아들이지 못합니다. ‘이 아들’이란 표현만 가지고도 맏이가 아버지는 물론이고 동생과도 거리를 두고 잇음을 충분히 짐작할 수 있습니다.
큰아들 눈에는 현실감을 잃어버린 채 처음부터 끝까지 터무니 없는 장면을 연출하고 있는 아버지와 동생이 별종으로 보였습니다. 머리에는 동생의 방탕한 생활에 관한 생각들 뿐이었습니다. 큰아들 눈에는 더 이상 아우는 없습니다. 아버지도 없습니다. 둘 다 남이나 다름없었습니다. 동생을 죄인이라고 깔봅니다. 아버지는 종의 주인으로 우러러보고 두려워합니다.
큰아들이 얼마나 바른 길에서 멀리 벗어났는지 여기서 알 수 있습니다. 다른 곳도 아니고 바로 자기 집에서 이방인의 신세가 된 것입니다. 진정한 교제는 사라졌습니다. 어둠이 모든 관계에 스며들었습니다. 두려워하든 얕잡아보든, 복종하든 지배하든, 압제자 노릇이든 당하는 사람의 역할이든 그것은 모두 빛의 테두리 바깥에 있는 이들이 선택하는 길입니다. 죄를 고백할 수도, 용서를 받을 수도 없습니다. 사랑은 나누는 관계 따위는 존재하지 않습니다. 참다운 교제는 기대조차 불가능합니다.
이러한 곤경에 빠진다는 건 고통스럽고 또 고통스러운 일입니다. 어디서도 자연스러움을 찾아볼 수 없습니다. 모든 것이 의심스럽습니다. 자의식이 강해집니다. 계산적이 됩니다. 걸핏하면 넘겨짚습니다. 신뢰가 깃들 여지는 전혀 없습니다. 미미한 움직임에도 곧장 맞대응합니다. 별것 아닌 말도 낱낱이 분석합니다. 사소한 몸짓에도 평가가 따릅니다. 그 모든 것이 어둠의 병리 현상입니다.
탈출구가 있을까요? 그럴 것 같지 않을 것 같습니다. 적어도 내 경우엔 그랬습니다. 어둠에서 빠져나오려고 발버둥칠수록 사방은 더 어두워졌습니다. 흑암을 몰아낼 빛이 필요하지만 스스로 만들어 낼 능력은 없습니다. 나는 나를 용서할 수 없습니다. 사랑받는다는 느낌을 자가 생산하지 못합니다. 제 힘으로는 분노의 땅에서 벗어날 수 없습니다. 자력으로는 집으로 돌아가지도, 교제를 나누지도 못합니다. 간절히 바라고, 소망하고, 기다리고, 기도도 해보지만 진정한 자유를 스스로 만들어낼 수 없습니다.
남은 방도는 누군가에게서 받는 것뿐입니다. 나는 이미 길을 잃었습니다. 목자가 나를 찾아내고 달려와서 집으로 데려가 주길 기대할 따름입니다.
탕자의 비유는 나를 만날 때까지도 잠시도 쉬지 않고 찾아다니는 하나님의 이야기입니다. 주님은 권면하고 간청하십니다. 죽음의 권세에 의지하지 말고 그토록 소원하는 생명을 얻을 수 있는 곳으로 데려다주는 거룩한 팔에 몸을 맡기라고 사정하십니다. (헨리 나우엔. 탕자의 귀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