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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늘의 말씀 2024년 1월 26일(금) 42 날이 밝으매 예수께서 나오사 한적한 곳에 가시니 무리가 찾다가 만나서 자기들에게서 떠나시지 못하게 만류하려 하매 43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다른 동네들
- 역시 온라인과 오프라인의 모임은 차이가 있다. 그래도 오프라인으로 모이는 것이 비교할 수 없는 유익이 있다. 오늘도 한해 계획을 계속 세우고 있다(세웠다). 계획만 세우는 것이 아니라 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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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교교육 연구원(IMER)
오늘의 말씀 2022년 11월 17일(목) 본문
30 단 자손이 자기들을 위하여 그 새긴 신상을 세웠고 모세의 손자요 게르솜의 아들인 요나단과 그의 자손은 단 지파의 제사장이 되어 그 땅 백성이 사로잡히는 날까지 이르렀더라(삿 18장)
+ 말씀설명
단 자손이 미가의 이방 신상과 제사장을 빼앗아 갈 때에 미가가 단 자손에게 자기 것이니 돌려달라고 했다. 이 때 단 자손은 힘으로 미가에게 협박하였다. 미가는 단 자손과 싸워서 이길 수 없다고 생각하고 물러났다.
단 자손은 평화로운 라이스 땅을 정복하고 그곳에 단이라는 이름을 붙였다. 단 자손은 그곳에서 자기들을 위하여 새긴 신상(우상)을 세우고 모세의 손자인 요나단을 제사장으로 삼았다. 그렇게 충성스러웠던 모세의 신앙의 모습은 3대만에 완전 타락의 길로 가게 된 것을 볼 수 있다. 신앙의 집안에서 태어났다고 신앙을 지키는 것이 아니라 바른 신앙교육이 필요함을 볼 수 있다.
그 때 당시의 타락한 모습을 요약하면,
1. 힘센 사람들이 지배하는 세상이었다. 사람들은 힘으로 약한 자들을 압박하고 제어했다. 신앙이 아닌 힘의 논리가 앞서는 시대였다.
2. 하나님을 섬긴다고 하면서도 우상을 만들어 복을 비는 사람들이었다. 혼합된 신앙을 가진 시대였다. 하나님과 동시에 우상을 섬기면서 하나님의 백성이라고 자처하는 이들의 모습이 한국교회에도 나타나지는 않는가?
3. 신앙교육이 후손에게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는 시대였다. 오늘날 한국 교회도 신앙이 다음세대에 전수되지 않는 시대이다.
+ 묵상과 적용
신앙을 다음 세대에게 전하기 위해 어떤 일을 하는가?
혹시 나의 신앙은 혼합신앙인 면은 없는가?
있다면 어떻게 과감히 떨쳐버리겠는가?
+ 오늘의 기도
1. 하나님께서 주신 신앙을 온전히 계승하는 믿음의 가정을 이루게 하소서.
2. 니카라과 정부가 자유로운 의견과 표현에 대한 자유를 보장하고 언론과 종교에 대한 탄압을 중지하며 비판을 수용하고 경청하는 민주적 정부가 되도록
+ 성경본문(삿 18장)
21 그들이 돌이켜서 어린 아이들과 가축과 값진 물건들을 앞세우고 길을 떠나더니
22 그들이 미가의 집을 멀리 떠난 때에 미가의 이웃집 사람들이 모여서 단 자손을 따라 붙어서
23 단 자손을 부르는지라 그들이 얼굴을 돌려 미가에게 이르되 네가 무슨 일로 이같이 모아 가지고 왔느냐 하니
24 미가가 이르되 내가 만든 신들과 제사장을 빼앗아 갔으니 이제 내게 오히려 남은 것이 무엇이냐 너희가 어찌하여 나더러 무슨 일이냐고 하느냐 하는지라
25 단 자손이 그에게 이르되 네 목소리를 우리에게 들리게 하지 말라 노한 자들이 너희를 쳐서 네 생명과 네 가족의 생명을 잃게 할까 하노라 하고
26 단 자손이 자기 길을 간지라 미가가 단 자손이 자기보다 강한 것을 보고 돌이켜 집으로 돌아갔더라
27 단 자손이 미가가 만든 것과 그 제사장을 취하여 라이스에 이르러 한가하고 걱정 없이 사는 백성을 만나 칼날로 그들을 치며 그 성읍을 불사르되
28 그들을 구원할 자가 없었으니 그 성읍이 베드르홉 가까운 골짜기에 있어서 시돈과 거리가 멀고 상종하는 사람도 없음이었더라 단 자손이 성읍을 세우고 거기 거주하면서
29 이스라엘에게서 태어난 그들의 조상 단의 이름을 따라 그 성읍을 단이라 하니라 그 성읍의 본 이름은 라이스였더라
30 단 자손이 자기들을 위하여 그 새긴 신상을 세웠고 모세의 손자요 게르솜의 아들인 요나단과 그의 자손은 단 지파의 제사장이 되어 그 땅 백성이 사로잡히는 날까지 이르렀더라
31 하나님의 집이 실로에 있을 동안에 미가가 만든 바 새긴 신상이 단 자손에게 있었더라
* "날마다 솟는 샘물"의 QT지 본문의 순서를 따랐습니다.
+ 역설의 진리
고난이 유익이라는 말씀이 있다(시 11:71). 예수님은 고난이 유익이라는 논리로 많은 것을 가르치셨다. 상석에 앉지 말고 말석에 앉아라(눅 14:8). 섬기는 자가 큰 자다(막 10:44). 랍비라 칭하지 말아라(마 23:8). 심령이 가난한 자가 복이 있다(마 5:3). 낙타가 바늘귀로 들어가는 것이 부자가 천국에 들어가는 것보다 쉽다(마 19:24). 이런 말씀들이 고난은 유익이 된다는 논리와 비슷하다.
사람들은 이런 예수님의 가르침을 받아들이기를 어려워한다. 왜냐하면 세상은 정반대로 말하고, 정반대로 이루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고난보다는 안정과 평안함을 추구하고 말석보다는 상석을, 섬기기보다는 섬김을 받는 것을, 제자가 되기보다는 선생이 되기를, 가난한자보다는 부자가 되기를 바라는 삶을 지향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리스도인은 그리스도를 따르는 사람이다. 세상의 가치관을 따르는 사람이 아니다. 세상의 가치관과 예수님의 가르침이 정반대일 때는 예수님의 가르침을 따라야 하는 사람이 바로 그리스도인이다.
세상의 가치관에서 말하는 복과 성경에서 말하는 복의 개념도 다르다. 세상은 많이 소유하고 높은 자리에 앉고 고통이 없는 삶을 복된 삶이라 생각한다. 반대로 성경의 복은 그것에 상관없이 하나님의 말씀대로 사는 사람, 하나님을 신앙하는 사람을 복 받은 사람으로 말한다. 그렇다면 성경의 믿는 사람은 성경에서 말하는 기준으로 생각하고 살아야 한다.
성경은 고난이 유익이라고 했다. 성경은 애통하는 자는 복이 있다고 하면서 이런 사람은 위로를 받을 것이라고 하였다. 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그들의 것이라고 한다. 그런 의미에서 세상은 고통당하는 자들, 억울한 자들, 건강이 좋지 않는 자들, 관계가 좋지 않은 자들, 정신적으로 어려움을 당하는 자들, 즉 불행을 안고 살아야 하는 자들이 복이 있다고 할 수 있다. 혹시 억울한 일을 당했다면 억울함은 풀어질 것이고 복의 기초가 될 것이다. 혹시 남보다 더 많은 일을 해야 한다면 그 사람도 복을 받는 사람이 된다. 혹시 다른 사람보다 소득이 적다고 하더라도 복을 받은 사람이 된다. 능력이 적은 사람도 마찬가지다. 가정배경이 좋지 않은 사람, 학력이 좋지 않은 사람, 재능이 적은 사람도 복을 받는 사람이 된다. 이것이 성경이 말하는 역설적인 진리이다.
현재 일상의 삶이 힘든가? 복 받은 사람이다.
다른 사람과 비교해서 부족한 것이 더 많은가? 복 받은 사람이다.
억울한 일 때문에 잠 못 이루는가? 복 받은 사람이다.
건강을 잃어 절망하는가? 복 받은 사람이다.
슬퍼하고 애통하는가? 복 받은 사람이다.
가난한가? 복 받은 사람이다.
경쟁에서 졌는가? 복 받은 사람이다.
실패했는가? 복 받은 사람이다.
꼴찌 했는가? 복 받은 사람이다.
통장에 잔고가 없고 마이너스 통장을 가졌는가? 복 받은 사람이다.
“이스라엘의 첫 개척자들은 성서에 약속된 우유와 꿀을 기대했지만 정작 그들이 맞닥뜨린 운명은 늪과 사막, 전쟁뿐이었다. 하지만 그들에게는 약속된 땅의 악조건을 바꿔버릴 만한 무한한 잠재력이 있었다. 그들은 부정을 긍정으로, 늪과 사막을 젖과 꿀로 바꾸기 위해 부단히 노력했다. 헤츠기 아리엘리 회장이 숙명적 부족함을 첫 번째 선물이라 인정하는 까닭은 바로 이 때문이다. 현재 시온주의 아버지라 불리는 테오도르 헤르츨 역시 “유대인들이 가진 힘이란 곧 유대인들이 경험한 비참함 그 자체가”라고 말한 바 있다. 불만족하기 때문에 더 만족스러운 결과를 지향하고 지금의 처지를 개선하려는 것이 이스라엘 사람들의 본성임을 강조하는 말이다.“(후츠파로 일어서라. 윤종록 저)
하나님의 기준에서 위로받고 하나님의 위로의 말씀을 듣고 다시 일어서는 삶을 살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