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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교교육 연구원(IMER)

오늘의 말씀 2024년 3월 23일(토) 본문

성경공부, 설교/말씀묵상(QT)자료

오늘의 말씀 2024년 3월 23일(토)

후앙리 2024. 3. 23. 00:52

31 곧 그 때에 어떤 바리새인들이 나아와서 이르되 나가서 여기를 떠나소서 헤롯이 당신을 죽이고자 하나이다

32 이르시되 너희는 가서 저 여우에게 이르되 오늘과 내일은 내가 귀신을 쫓아내며 병을 고치다가 제삼일에는 완전하여지리라 하라(13)

 

+ 말씀 설명

예수님이 복음을 전파하실 때 헤롯왕이 예수님을 죽이고자 하였다. 이런 위협에도 불구하고 예수님은 오늘과 내일은 귀신을 쫓아내고 병을 고칠 것이라고 말씀하셨다. 예수님이 이 땅에 오신 것은 사람들의 연약함과 부족함, 아픈 것을 회복하시기 위해서다. 어떤 외부의 위협이 있어도 하실 일을 하시겠다는 확실한 마음을 볼 수 있다. 그리고 제 삼일에는 완전하여지리라고 하셨다. 즉 예수님의 부활을 예비하신 것이다. 이 세상에서 인간의 죄를 용서하기 위해 대속자로서 죽으시고 그리고 부활로서 완성하시겠다는 예수님의 분명한 뜻을 볼 수 있다.

 

+ 묵상과 적용

어떤 어려움이 있더라도 나는 내게 주어진 사명을 꿋꿋이 감당하는가?

 

+ 선교적 실천

우리 교회가 어그러진 세상을 치유하기 위해서 해야 하는 일은 어떤 일인가?

 

+ 오늘의 기도

1. 주님의 완전하신 사역을 본받아 제게 주신 사명을 따라 살게 하소서.

2. 미국 기독교 대학에서 등록금 감면 정책들이 고무적으로 확산하면서 유능한 학생들이 기독교 교육을 접할 수 있는 기회들이 많아지고, 사회로 진출해 선한 영향력을 발휘하는 리더들로 양성되도록

 

+ 성경 본문(13)

31 곧 그 때에 어떤 바리새인들이 나아와서 이르되 나가서 여기를 떠나소서 헤롯이 당신을 죽이고자 하나이다

32 이르시되 너희는 가서 저 여우에게 이르되 오늘과 내일은 내가 귀신을 쫓아내며 병을 고치다가 제삼일에는 완전하여지리라 하라

33 그러나 오늘과 내일과 모레는 내가 갈 길을 가야 하리니 선지자가 예루살렘 밖에서는 죽는 법이 없느니라

34 예루살렘아 예루살렘아 선지자들을 죽이고 네게 파송된 자들을 돌로 치는 자여 암탉이 제 새끼를 날개 아래에 모음 같이 내가 너희의 자녀를 모으려 한 일이 몇 번이냐 그러나 너희가 원하지 아니하였도다

35 보라 너희 집이 황폐하여 버린 바 되리라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가 주의 이름으로 오시는 이를 찬송하리로다 할 때까지는 나를 보지 못하리라 하시니라

 

+ 로잔대회

4차 로잔 대회가 인천 송도에서 9월에 열린다. 로잔 대회는 복음주의(일명 보수주의로 부를 수도 있다. 정확하게는 보수주의는 아니지만) 계통의 국제 선교대회라고 할 수 있다. 진보 진영의 선교대회는 WCC(세계 교회 협의회). WCC 10차 대회가 2013년 부산에서 열렸다. 두 진영 간의 차이는 복음 전도(복음을 말로 전해서 그리스도를 믿게 하는 것)를 우선시 하는가, 총체적 선교(사회 참여의 행위가 선교다)를 우선시 하는가에 달려있다. 약간 다른 관점으로 생각한다면 복음 전도는 영혼 구원, 미래적 구원이고 총체적 선교는 육체 구원, 현세적 구원이라고도 할 수 있다.

복음주의 계통의 첫 국제선교대회가 74년 스위스 로잔에서 열렸다. 그때까지 복음주의에서는 선교를 복음 전도로만 이해했다. 그래서 총체적 선교에 대해서 소극적이었다. 그에 반해 WCC는 사회참여에 우선권을 두고 복음 전도에 대해서는 소극적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복음주의 계통의 교회들은 진보 진영의 총체적 선교의 강조에 대해 외면할 수만은 없었다. 그래서 복음 전도와 총체적 선교에 대한 해결책을 찾기 위해 로잔 대회를 열었다. 이 대회의 주체는 빌리 그래함 목사였는데 빌리 그래함 목사는 상당히 보수적인 견해를 가진 분이다. 로잔 대회의 내용과 선언문 작성은 존 스터드 목사님과 르네 빠디자 목사님이 주도하였다. 빌리그래함 목사는 선교를 복음 전도 위주의 관점을 가졌기에 총체적 선교에 대한 문을 열어놓은 존 스터드 목사와는 상반된 견해가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로잔 대회를 개최하였는데, 여기서 중요한 선언을 한다. “선교는 복음 전도와 사회참여다. 우선권은 복음 전도에 있다라는 선언문이었다. 그동안 복음주의 계통에서는 사회참여를 선교의 수단으로만 보고 선교 자체로는 보지 않았기에, 로잔 대회의 선언은 획기적, 파격적이었다고 할 수 있다. 이 영향으로 복음주의 계통의 선교의 개념은 완전히 새롭게 변화하였다. 즉 복음 전도를 하지 않아도 총체적 선교, 즉 사회 참여적인 일만 해도 선교라고 생각하게 된 것이다. 사업가가 사업하는 것 자체도 선교라는 개념으로 본 것이다. 선교의 개념이 넓어졌다고 할 수 있지만, 원래의 선교 개념인 복음 전도가 약화되는 결과를 가져왔다고 볼 수 있다. 물론 그동안 복음주의 계통에서는 총체적 선교에 대한 책임을 중요하게 생각해 온 것은 사실이다. 그렇지만 총체적 선교를 선교의 개념으로, 선교 자체로 봄으로 인해 일어날 수 있는 논쟁거리를 만든 것은 분명하다. 그래서 필리핀에서의 로잔 2차 대회에서는 복음 전도 쪽으로 약간 기우는 경향을 보였다. 이번 9월에 열릴 4차 인천 대회에서는 총체적 선교에 더욱 힘을 실어주는 대회가 될 것으로 보인다.

이 문제를 나는 몇 가지 관점에서 나누고 싶은 것이 있다.

첫째, 성경은 무엇이라고 말하는가? 하는 것에 이 논쟁의 기준을 두어야 한다는 것이다. 성경은 복음 전도와 사회 참여적인 일을 어떤 관점으로 보느냐 하는 것이다.

둘째, 한쪽으로 지나치게 치우치는 것은 균형을 잃을 수 있다는 것이다. 물론 균형을 맞추는 것이 목적은 아니다. 그러나 어떤 관점이던지 그 주장만이 진실이라고 주장하는 것은 또 다른 문제를 일으킬 수 있다는 것이다.

셋째, 각자에게 주어진 은사가 다르기에 일률적으로 개념에 대한 정의를 내리거나 혹은 어떤 것이 옳다는 식의 주장은 잘못되었다고 본다. 어떤 이의 은사는 복음 전도 쪽에 강하다면 그것으로 사역을 하면 되고 또 다른 이의 은사가 사회적 참여 쪽에 강하다면 그쪽에 맞는 사역을 하면 된다는 것이다. 물론 이럴 때, 사랑과 복음 전도에 대해서는 기본이 되어야 한다.

예수님은 이 땅에 오셔서 총체적 선교를 하셨다. 병자를 고치시고, 외로운 자를 위로해주시고, 배고픈 자에게 먹을 것을 주셨다. 총체적 선교를 하셨지만, 예수님의 초점은 십자가의 죽음에 있었다. 십자가의 죽음을 향해 나아가셨다는 것이다. 그 길로 가는 길목에 주님은 총체적인 선교를 하신 것이다. 영혼 구원을 핵심으로 생각하셨다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우리는 총체적인 선교를 너무 무시할 필요가 없다. 다만 우리의 초점은 복음 전도라는 것을 잃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복음 전도가 결여된 사회참여는 주의해야 한다. 예수님께서 열 명의 문둥병자를 고쳐 주셨다. 사회 참여적인 일을 적극적으로 하신 것이다. 그리고 감사하러 돌아온 이방인에게 구원이 이르렀다고 하시면서 다른 아홉이 어디 있는가, 물으시면 찾으셨다는 것이다. 즉 육신의 구원이 영혼 구원에는 이르지는 못한다는 것이다. 그런 면에서 총체적 선교를 무시하지 말아야 하며, 총체적 선교가 복음 전도를 향하도록 해야 한다. 그것이 최종목적임을 잃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나도 이 대회에 참석하기로 했는데, 서로 자기주장을 관철시키려는 논쟁보다는 배우는 입장에서 서로를 존중하는 송도 로잔 대회가 되길 기대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