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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교교육 연구원(IMER)

오늘의 말씀 2024년 3월 28일(목) 본문

성경공부, 설교/말씀묵상(QT)자료

오늘의 말씀 2024년 3월 28일(목)

후앙리 2024. 3. 28. 05:09

17 예수에게 자색 옷을 입히고 가시관을 엮어 씌우고

18 경례하여 이르되 유대인의 왕이여 평안할지어다 하고

19 갈대로 그의 머리를 치며 침을 뱉으며 꿇어 절하더라(15)

 

+ 말씀 설명

예수님을 잡은 로마 군인들은 예수님께 자색 옷을 입혔다. 자색 옷은 그때 당시에 왕족들만 입을 수 있는 옷이었는데, 예수님이 유대인의 왕이라고 하신 것에 대한 조롱의 의미로 군인들은 자색 옷을 입혔다. 그들은 예수님께 가시관을 엮어 씌우면서 육체적인 고통까지 안겼다. 그리고 군인들은 예수님께 경례하였는데, 이도 조롱의 의미였으며, 유대인의 왕이라고 입으로도 모욕을 하였다. 거기다 갈대로 머리를 치며 침을 뱉고 꿇어 절하는 참담한 행위를 하였다.

아무 죄도 없는 예수님이 군인들에게 이처럼 조롱과 고통을 당하신 것은 바로 예수님께서 세상의 죄를 짊어지기 위해서였다. 모든 세상의 죄를 짊어지고 십자가에 죽으심으로 죄를 용서하신 것이다.

 

+ 묵상과 적용

예수님의 고난을 묵상하며 어떤 느낌을 갖게 되는가?

 

+ 선교적 실천

예수님의 고난에 동참하기 위해 우리 교회가 세상의 구원을 위해 희생하고 섬겨야 할 것은 어떤 것이 있는가?

 

+ 오늘의 기도

1. 저를 위해 기꺼이 고난당하신 예수님을 묵상하며, 그 은혜로 살아가게 하소서.

2. 어린 나이에 사회적 관습에 매여 강제 결혼의 압박 속에서 납치당하고 자유를 뺏기게 되는 파키스탄 소녀들이 더 이상 무고한 피해를 입지 않도록 제도적 개선이 마련되고 관계 당국의 처벌이 강화될 수 있도록

 

+ 성경 본문(15)

16 군인들이 예수를 끌고 브라이도리온이라는 뜰 안으로 들어가서 온 군대를 모으고

17 예수에게 자색 옷을 입히고 가시관을 엮어 씌우고

18 경례하여 이르되 유대인의 왕이여 평안할지어다 하고

19 갈대로 그의 머리를 치며 침을 뱉으며 꿇어 절하더라

20 희롱을 다 한 후 자색 옷을 벗기고 도로 그의 옷을 입히고 십자가에 못 박으려고 끌고 나가니라

 

+ 희생이 부활을 낳는다.

십자가가 기독교의 상징이며, 핵심이다. 십자가 사상은 내가 죽는 것이다. 억울하고, 육체적 고통을 감수하고, 사람들에게 갖은 모욕을 당하면서 죽는 것이 십자가 사상이다. 우리는 매일 십자가를 져야 한다. 십자가를 지는 삶을 살아야 한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한국 교회는 부활만 있는 것 같다. 십자가는 찾아보기 어렵다. 교회가 성장해야 하며, 그리스도인은 성공해야 한다는 생각으로만 가득 찼다. 물론 하나님 나라가 확장되는 것을 반대하는 마음으로 이 말을 하는 것은 아니다. 다만, 희생과 손해라는 것, 실패라는 것에 초점을 두고 살지는 않는 것이 안타깝다는 것이다. 모두가 다 이기려고만 하고 누구도 지려고는 하지 않는다. 스스로 약해지고, 이름도 없이 섬기고, 때로는 고난을 자처하고, 죽음까지도 두려워하지 않는 믿음이 사라진 것 같다는 것이다.

교회에는 이런 십자가의 모습이 먼저 나타나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온통 부활로만 가득차 있는 것이 한국 교회의 현실이 안타까울 뿐이다. 어쩌면 한국 교회의 문제는 부흥이 아니라 실패와 손해를 받아들이지 않은 것은 아닐까를 생각한다.

이스라엘의 애굽에서의 삶은 가나안에 대한 희망을 얻게 하는 기간이었다. 바벨론 포로 생활은 이스라엘이 하나님께 돌아오게 하는 시기였다. 다윗이 쫓겨 다닌 것은 왕이 되기 위한 훈련이었다. 예수님의 십자가의 고통은 부활을 위한 전제조건이었다.

그렇다면 한국 교회는 어떤 실패를 맛보았는가? 성장과 부흥이 아닌 처참한 실패를 맛보았는가? 그때가 지금이 아닌가 생각한다. 어쩌면 지금이 진정한 축복의 시간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문득 든다. 번성했던 1980년대, 90년대, 2000년대 초가 한국 교회의 축복의 때가 아니라 오히려 처참하게 무너지고 있는 지금 이때가 하나님의 축복의 때가 아닌가 생각한다.

풍요롭고 성공하고 잘 될 때는 깊은 반성이 부족하다. 고뇌가 없다. 그러나 참된 진리를 찾는 것은 광야에서다. 고통 가운데서다. 굶주림 가운데서다.

고난 주간에 성공이 아닌 실패를 갈망하는 성도가 되었으면 좋겠다. 선교의 성공이 아닌 순교를 각오하는 선교가 되었으면 좋겠다. 한국 교회가 무너지는 것 같은 경험이 오히려 하나님의 축복의 기간이 되기를 소망한다. 모두가 이기는 것, 성공하는 것, 왕이 되는 것에 관심이 있을 때, 예수님은 아무도 예상하지 못하게 이 세상을 구원하기 위해 이 세상을 등지고 십자가를 지셨다. 고난 주간은 그 십자가를 같이 지는 기간이다. 같이 아파하고 손해 보고, 죽는 기간이다. 살아나고 소망을 찾는 기간이 아니다. 철저히 낮아지고, 완전히 밑바닥까지 내려가는 시기이다. 부활은 예수님이 하신 것이 아니다. 십자가는 예수님이 짊어지신 것이다. “하나님, 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시나이까라고 울부짖으시면서 죽으신 것이다. 그러나 부활은 성부 하나님께서 부활케 하셨다. 성부께서 부활을 이루셨다. 어쩌면 한국 교회와 성도가 해야 하는 일은 십자가를 지는 일이다. 부활은 우리의 영역이 아니다. 부활은 우리가 할 일이 아니다. 성공도 내가 이루는 것이 아니다. 부흥도 한국 교회가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오직 하나님만이 하실 일이다. 고난을 묵상하면서 내가 그 고난에 진정으로 참여하기를 바라는 마음을 회복하기를 기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