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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교교육 연구원(IMER)

오늘의 말씀 2024년 3월 30일(토) 본문

성경공부, 설교/말씀묵상(QT)자료

오늘의 말씀 2024년 3월 30일(토)

후앙리 2024. 3. 30. 05:23

38 이에 성소 휘장이 위로부터 아래까지 찢어져 둘이 되니라

39 예수를 향하여 섰던 백부장이 그렇게 숨지심을 보고 이르되 이 사람은 진실로 하나님의 아들이었도다 하더라(15)

 

+ 말씀 설명

예수님께서 마지막으로 엘리 엘리 라마 사막다니, 즉 어찌하여 나를 버리시나이까라는 말을 외치고 숨을 거두시자 성소 휘장이 위로부터 아래까지 찢어졌다. 이는 예수님의 죽음으로 인해 누구나 하나님의 보좌 앞으로 나아갈 수 있는 길이 열렸다는 뜻이다. 하나님과 인간 사이에 막힌 담이 허물어졌다는 의미이다.

이 모든 모습을 본 한 백부장이 이 사람은 진실로 하나님의 아들이었도다고 고백하였다. 예수님을 믿지 않았던 사람,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는 것을 그대로 지켜본, 어쩌면 동조했던 사람이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인 것을 고백하였다. 사람들은 이단의 교주가 스스로 하나님의 아들이고 이 세상의 왕이라고 외치다가 십자가에 죽는 모습을 보고 당연히 여겼고, 자신들은 잘못이 없다고 생각하였을 그때에 백부장은 십자가의 죽음을 보면서 오히려 정 반대로 예수님이 진실로 하나님의 아들이었다고 고백하게 된 것이다.

이처럼 예수님의 죽음은 단순한 죄인이 죽은 것이 아니라 이 세상을 구원할 제물로 죽으셨다는 것을 백부장의 고백을 통해 알 수 있다. 처참한 죽음이 오히려 예수님이 구세주인 것을 증거하는 그런 장면의 말씀이다.

예수님은 그냥 죄수로 죽으신 것이 아니다. 우리도 백부장처럼 고난 주간에 주님의 죽으심을 묵상하면서 진실로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고백해야 한다.

 

+ 묵상과 적용

백부장은 담대히 예수님을 고백했는데, 나도 그 고백을 세상에서 하면서 예수님을 알리는가?

 

+ 선교적 실천

예수님을 진실로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고백하는 모습을 우리 교회 공동체가 잘 보여주고 있는가? 잘 보여주기 위해 어떤 일들을 할 수 있을까?

 

+ 오늘의 기도

1. 십자가에서 사랑을 보여주신 예수님을 고백하고 선포하는 복음의 용사가 되게 하소서.

2. 중동 지역에 전쟁과 증오가 사라지고 복음으로 인한 진정한 자유와 평화가 찾아오고, 교회와 기독교인들이 협력하여 고통 가운데 있는 이들에게 참된 소망을 전할 수 있도록

 

+ 성경 본문(15)

33 제육시가 되매 온 땅에 어둠이 임하여 제구시까지 계속하더니

34 제구시에 예수께서 크게 소리 지르시되 엘리 엘리 라마 사박다니 하시니 이를 번역하면 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나이까 하는 뜻이라

35 곁에 섰던 자 중 어떤 이들이 듣고 이르되 보라 엘리야를 부른다 하고

36 한 사람이 달려가서 해면에 신 포도주를 적시어 갈대에 꿰어 마시게 하고 이르되 가만 두라 엘리야가 와서 그를 내려 주나 보자 하더라

37 예수께서 큰 소리를 지르시고 숨지시니라

38 이에 성소 휘장이 위로부터 아래까지 찢어져 둘이 되니라

39 예수를 향하여 섰던 백부장이 그렇게 숨지심을 보고 이르되 이 사람은 진실로 하나님의 아들이었도다 하더라

40 멀리서 바라보는 여자들도 있었는데 그 중에 막달라 마리아와 또 작은 야고보와 요세의 어머니 마리아와 또 살로메가 있었으니

41 이들은 예수께서 갈릴리에 계실 때에 따르며 섬기던 자들이요 또 이 외에 예수와 함께 예루살렘에 올라온 여자들도 많이 있었더라

 

+ 십자가의 의미

한 목사가 한 기독교 단체에서 일을 하였다. 그가 진짜 목사인지, 신자인지는 하나님만이 아신다. 사람들이 목사로 인정할 수 없을 만한 행동을 보였음에도 불구하고 적어도 그의 직함은 목사였다. 그가 단체를 자신의 사적인 유익을 위해 사용하려다 단체 이사회에 의해 해임을 당하였다. 이사회는 사유가 너무나 분명하여 해임을 하지 않을 수 없는 상황이었기에 인사위원회를 열어 해임하였던 것이다.

문제는 부당한 해임이라면서 이 목사가 단체를 향해 법원에 소송을 걸었다. 해임 당한지 16개월이 지났는데, 계속해서 여러 가지 소송을 진행하고 있다. 퇴직금도 주었고 법으로 이상 없이 했음에도 불구하고 법적인 문제로 소송을 진행하고 있다. 여러 개의 민사와 형사 재판이 진행되고 있는데, 일부는 기각, 일부는 승소, 일부는 재판이 계속되고 있다. 이 정도면 진짜 신자라면 물러서야 하는데, 물러날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이 단체에서 그동안 수 많은 일들이 이 목사와 함께 이루어졌는데, 그것을 이곳에서는 다 열거할 수는 없다. 내가 직접적으로 연관되어 있는 단체가 아니고, 나는 제 3자로서 이 사건을 보고 있기 때문이다. 거기다 내가 정확히 아는 것도 아니고 각자 입장 차이가 나기에 내가 뭐라고 단정지어 말하기는 어렵다.

그러나 고난 주간에 이 목사를 보면서 마음에 느낀 것은 이 목사에게는 그리스도인으로서 희생, 손해, 십자가, 양보, ”, 이런 단어는 전혀 없는 것 같다는 것이다. 상식적으로 이제는 좀 그만 둘 때도 되었는데, 얼마나 많은 이익을 보기 위해 계속된 법적인 소송을 이어갈까 하는 그런 생각이 든다. 물론 그 목사의 입장이 되어 보지 않아 섣불리 말하기는 조심스럽다. 그렇지만 최소한 그리스도인이라면 십자가를 믿고 사는 사람이라면 기본은 지켜야 한다는 것이다.

십자가가 무엇인가? 십자가는 죽음의 틀이다. 십자가의 의미는 죽을 만큼 희생을 당한다는 뜻이다. 희생은 나를 위해서가 아니라 다른 사람을 위한 것이 진정한 희생이다. 예수님의 희생이 가치 있는 것은 바로 자신이 아닌 이 세상을 위한 것에 있다.

그러기에 다른 사람을 위해 희생할 때 구원이 있고 부활이 있다는 것이 기독교의 십자가의 정신이다. 손해를 안 보고 이익만 챙기는 종교가 아니라는 것이다. 물론 모든 것을 양보하고 다 손해만 보아야 한다는 뜻은 아니다. 기본적인 기독교의 도리를 믿는 사람이라면 그래도 손해와 양보라는 것이 양심에 조금이라도 남아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우리가 사는 세상의 문제를 풀 수 있는 것은 역시 승리가 아니라 실패를 상징하는 십자가라는 것이다. 누군가 손해를 당하기에, 예수님의 죽음처럼 심지어 죽어서라도 다른 사람을 위한 일이 일어나야 하기에 이 세상은 제자리를 찾아가는 것이다. 누군가의 양보와 손해가 없다면, 그 누구도 승리할 수도 없다.

싸움은 반드시 승자와 패자가 있다. 모두가 승자일 수는 없다. 모두가 패자가 되지도 않는다. 예수님의 십자가의 죽음, 즉 패자가 있었기에 이 세상이 승자(구원받음)가 있게 된 것이다.

인간의 죄성은 이익과 성공을 챙기려 한다는 것이다. 그것에 자동적으로 방향이 정해진 것처럼 이 세상은 성공에 초점과 이상을 가지고 살고 있다. 이런 시대에 십자가를 믿는 사람이라면, 십자가의 정신으로, 실패가 성공이라는 마음으로 양보하고 희생할 줄 알아야 한다.

우리는 수 많은 문제들을 매일의 일상에서, 사람들과의 관계에서 가지고 산다. 이런 문제들이 우리를 고통스럽게 한다. 그럴 때 우리가 신앙의 본질로 돌아가야 한다. 그것이 바로 십자가의 희생이다. 우리는 이기려고만 하는 성향을 놓지 못하는 것은 없는가를 돌아보아야 한다. 그래서 십자가를 지는 의미에서 손해와 양보와 실패를 선택해야 할 때가 있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