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리 메뉴

선교교육 연구원(IMER)

오늘의 말씀 2024년 4월 12일(금) 본문

성경공부, 설교/말씀묵상(QT)자료

오늘의 말씀 2024년 4월 12일(금)

후앙리 2024. 4. 12. 05:23

1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실족하게 하는 것이 없을 수는 없으나 그렇게 하게 하는 자에게는 화로다

2 그가 이 작은 자 중의 하나를 실족하게 할진대 차라리 연자맷돌이 그 목에 매여 바다에 던져지는 것이 나으리라

3 너희는 스스로 조심하라 만일 네 형제가 죄를 범하거든 경고하고 회개하거든 용서하라(17)

 

+ 말씀 설명

형제를 실족케 하지 말라는 예수님의 교훈의 말씀이다. 예수님은 형제를 실족치 말게 하라고 말씀하시고 나서 형제가 회개하거든 용서하라고 하신다. 바꾸어 말하면 용서하지 않으면 형제를 실족케 한다는 말씀일 수도 있다.

그러므로 형제가 실족치 않도록 우리는 형제의 잘못을 용서해야 한다. 그럼에도 용서가 쉽지 않다. 그러나 용서는 형제가 실족하지 않게 하는 중요한 요소가 될 수 있기에 용서해야 한다.

형제가 실족하지 않게 한다는 것은 참으로 중요하다. 만약 실족케 하면 연자 맷돌을 목에 매여 바다에 빠지는 것이 나을 만큼 중요한 것이다. 한 생명을 구원하는 것이 중요한 것처럼 실족치 않게 하는 것도 동일하게 중요하다. 예수님은 안전한 양 99마리를 놔두고 실족한(잃어버린) 양 한 마리를 찾아 나서라고 하셨다. 실족한 양 한 마리가 안전한 99마리 양보다 귀하기 때문이다. 99명을 전도하는 것보다 한 명이 예수님을 떠나지 않도록 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적용해볼 수 있는 말씀이다.

용서를 통해 형제를 실족치 않게 하는 것이 중요한 것인 것만큼 우리는 오늘도 형제를 용서하도록 해야 한다.

 

+ 묵상과 적용

최근에 용서치 못해 형제를 실족하게 한 적이 있는가?

있다면 언제 어떻게 용서할 것인가?

 

+ 선교적 실천

우리 교회의 성도들이 실족치 않게 하기 위해 더욱 깨어 있어야 하는 교회 공동체의 노력은 어떤 것이 있는가?

 

+ 오늘의 기도

1. 예수님처럼 형제를 용서하게 하시고, 형제를 실족치 않게 하소서.

2. 개인 전도로 복음을 접하기 힘든 소말리아인들이 라디오 방송과 소셜미디어를 통해 성경과 복음에 대해 들으면서 조금씩 마음이 열리고, 하나님을 인격적으로 만나는 놀라운 일이 나타나도록

 

+ 성경 본문(17)

1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실족하게 하는 것이 없을 수는 없으나 그렇게 하게 하는 자에게는 화로다

2 그가 이 작은 자 중의 하나를 실족하게 할진대 차라리 연자맷돌이 그 목에 매여 바다에 던져지는 것이 나으리라

3 너희는 스스로 조심하라 만일 네 형제가 죄를 범하거든 경고하고 회개하거든 용서하라

4 만일 하루에 일곱 번이라도 네게 죄를 짓고 일곱 번 네게 돌아와 내가 회개하노라 하거든 너는 용서하라 하시더라

5 사도들이 주께 여짜오되 우리에게 믿음을 더하소서 하니

6 주께서 이르시되 너희에게 겨자씨 한 알만한 믿음이 있었더라면 이 뽕나무더러 뿌리가 뽑혀 바다에 심기어라 하였을 것이요 그것이 너희에게 순종하였으리라

7 너희 중 누구에게 밭을 갈거나 양을 치거나 하는 종이 있어 밭에서 돌아오면 그더러 곧 와 앉아서 먹으라 말할 자가 있느냐

8 도리어 그더러 내 먹을 것을 준비하고 띠를 띠고 내가 먹고 마시는 동안에 수종들고 너는 그 후에 먹고 마시라 하지 않겠느냐

9 명한 대로 하였다고 종에게 감사하겠느냐

10 이와 같이 너희도 명령 받은 것을 다 행한 후에 이르기를 우리는 무익한 종이라 우리가 하여야 할 일을 한 것뿐이라 할지니라

 

+ 퍼실리테이터는 가르쳐서는 안 된다: SYIS(전인적 대인관계 기술 혁신 워크숍) 참가 후기3

퍼실리테이터가 되는 것 중에 중요한 자질 중의 하나는 가르치려 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퍼실리테이터는 선생이 되면 안 된다. 자신의 의견을 말해서도 안 된다. 자신의 의견을 말하는 대신에 그것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에 대해 질문해야 한다. 그리고 참가자(학생)들이 스스로 그 답을 찾아가도록 해야 한다.

왜 그렇게 해야 하는가?

퍼실리테이터가 아는 것이 전부가 아니기 때문이다. 퍼실리테이터가 아는 것도 중요하지만 참가자들이 아는 것을 표현하고 그것을 정리해가는 것이 더 소중하기 때문이다. 퍼실리테이터는 한 사람에 불과하다. 참가자도 마찬가지다. 그런 면에서 퍼실리테이터는 참가자들의 잠재력을 끌어내어야 한다.

퍼실리테이터가 아니더라도 참가자들은 일상의 삶을 잘 살아간다. 단지 그 시간에 참가자로 참여할 뿐이다. 잠시 참가자가 된 것이지, 퍼실리테이터가 영원한 선생이 되는 것은 아니다. 퍼실리테이터는 참가자의 모든 삶을 주관할 수 없다. 그러기에 배움의 과정에서도 그것이 나타나야 한다. 그렇게 할 때, 퍼실리테이터가 오히려 참가자보다 더 많은 것을 배울 수 있다. 나는 그것을 이번에 배웠다. 참가자들보다 퍼실리테이타가 되어 더 많이 배울 수 있었던 것 같다. 그래서 퍼실리테이터는 가르쳐서는 안 된다. 오히려 배우려고 해야 한다. 참가자들이 가진 지식과 경험을 잘 끌어내서 퍼실리테이터의 배움으로 가져가야 한다.

사람들은 각자가 알아서 잘 살아간다. 잘 살아가는 사람에게 누가 강요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그래서 퍼실리테이터는 잘 살아가도록 격려할 뿐 어떤 것도 주장해서는 안 되는 것이다. 무엇보다도 하나님께서 뒤에서 역사하신다. 하나님이 감독으로 모든 사람을 배우로서 사용하신다. 퍼실리테이터는 배우로서 다른 역할을 받은 것이지 참가자보다 우위에 있는 다른 직책, 즉 감독의 지위를 갖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명심해야 한다.

그러므로 퍼실리테이터는 참가자들을 쉽게 판단하지 말아야 한다. 아니 판단해서는 안 된다. 판단할 수도 없다. 하나님도 사람을 판단하시지 않으신다는 것을 퍼실리테이터는 마음에 새겨야 한다. 하나님은 판단 대신에 사람을 인정하신다. 모든 사람을 하나님의 형상을 만드셨다. 그리고 소중하다고 인정하시며 기뻐하시며 좋아하신다. 이런 사람을 퍼실리테이터가 판단하면 안 된다. 오히려 퍼실리테이터는 모든 참가자들을 인정해야 하며, 그들의 삶을 소중하게 생각해야 한다. 그들의 의견도 모두 존중해야 한다.

나는 이번 워크숍에 참석하면서 이런 소중한 것들을 배웠다. 그것들이 나를 성장하게 했다고 믿는다. 그 어떤 배움보다도 소중한 배움의 장소가 되었다는 것이다. 그러기에 앞으로도 나는 강사설교가가 되기 전에 퍼실리테이터가 되어야 한다. 진정으로 사람을 돕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가르치는 사람, 나를 드러내고 자랑하는 사람, 내 사상을 알려주는 사람, 사람을 평가하는 사람이 되어서는 안 되는 것이다.

한 사람을 구원하는 것도 필요하지만 한 사람을 실족치 않게 하는 것도 소중하다고 예수님께서 말씀하셨다. 선생이 되면 사람을 실족케 할 가능성이 많다. 그러나 퍼실리테이터가 되면 사람을 판단하지 않고 사람을 도와주기 때문에 선생이 아닌 촉진자(퍼실리테이터)가 되어야 한다. 그래야 사람을 더 많이 실족치 않게 하고 더 많이 성장할 수 있는 격려자의 역할을 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