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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교교육 연구원(IMER)

오늘의 말씀 2024년 4월 16일(화) 본문

성경공부, 설교/말씀묵상(QT)자료

오늘의 말씀 2024년 4월 16일(화)

후앙리 2024. 4. 16. 05:05

7 하물며 하나님께서 그 밤낮 부르짖는 택하신 자들의 원한을 풀어 주지 아니하시겠느냐 그들에게 오래 참으시겠느냐

8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속히 그 원한을 풀어 주시리라 그러나 인자가 올 때에 세상에서 믿음을 보겠느냐 하시니라(18)

 

+ 말씀 설명

예수님께서 기도하고 낙심하지 말 것에 대한 예를 말씀하셨다. 어떤 과부가 재판장에게 끈질기게 찾아가 원한을 풀어달라고 간청했다. 재판장은 끈질기게 간청하는 여인의 억울함을 풀어 주지 않을 수 없었다. 이처럼 하나님은 끈질기게 하나님께 간청하는 그의 자녀의 기도를 들어주셔서 원한을 풀어 주신다는 것이다. 기도 응답에 대한 믿음을 가지라고 강력하게 권고하신다.

 

+ 묵상과 적용

나는 끈질기게 기도하며 응답을 기다리는 믿음을 가졌는가?

 

+ 선교적 실천

세상의 변화, 곧 이 땅에 하나님 나라가 임하도록 하기 위해 교회가 끈질기게 기도하는가?

 

+ 오늘의 기도

1. 낙심하는 일이 있더라도 끈질기게 기도하게 하소서.

2. 영국 내 인도 출신 기독교인들이 신앙의 뿌리를 내리고 성장하면서 영국 교회가 다시 활력을 되찾고 신앙을 잃어버린 영국 기독교인들이 다시 회복될 수 있도록

 

+ 성경 본문(18)

1 예수께서 그들에게 항상 기도하고 낙심하지 말아야 할 것을 비유로 말씀하여

2 이르시되 어떤 도시에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고 사람을 무시하는 한 재판장이 있는데

3 그 도시에 한 과부가 있어 자주 그에게 가서 내 원수에 대한 나의 원한을 풀어 주소서 하되

4 그가 얼마 동안 듣지 아니하다가 후에 속으로 생각하되 내가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고 사람을 무시하나

5 이 과부가 나를 번거롭게 하니 내가 그 원한을 풀어 주리라 그렇지 않으면 늘 와서 나를 괴롭게 하리라 하였느니라

6 주께서 또 이르시되 불의한 재판장이 말한 것을 들으라

7 하물며 하나님께서 그 밤낮 부르짖는 택하신 자들의 원한을 풀어 주지 아니하시겠느냐 그들에게 오래 참으시겠느냐

8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속히 그 원한을 풀어 주시리라 그러나 인자가 올 때에 세상에서 믿음을 보겠느냐 하시니라

 

+ 경청: SYIS(전인적 대인관계 기술 혁신 워크숍) 참가 후기

이번 세미나에서 내 마음에 가장 많이 와닿는 것은 바로 경청이었다. 내가 경청을 잘한다고 생각했는데, 진정 나는 경청을 잘 못하고 있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나를 돌아보면서 경청에 대해 깨달은 몇 가지를 정리해 본다.

경청은 끝까지 듣는 것이다. 진정한 경청은 중간에 멈추는 것이 아니다. 예를 들면 상담

자에게 내담자가 찾아와서 말을 할 때 상담자는 끝까지 들어주는 것과 같다. 때로 내담자는 한 말을 또 하고 또 한다. 자신에게 있었던 어떤 억울한 일을 반복해서 말한다. 이는 내담자가 그 문제에 대해 아직 해결하지 못했다는 증거다. 그 일이 억울하거나 상처나 상실의 일일 때는 더욱 그러하다. 그것에 대한 큰 아픔이 있기에 계속 말하는 것이다. 내담자는 말하면서 치유 받는 것이다. 그러기에 진정한 경청은 말하는 사람의 말을 끝까지 듣어주는 것을 의미한다.

그러므로 누군가 말하고자 할 때 우리는 너무 많이 들었다고 반응해서는 안 된다. 너무 지겹다고 해서도 안 된다. 미국 사람들은 911 뉴욕 참사가 일어난 20년이 지난 오늘까지도 그것에 대한 슬픔을 말하는 사람이 있을 때 들어준다고 한다. 말하라고 한다고 한다. 진정한 경청은 화자의 말을 끝까지 듣는 것이라는 사실이다. 나는 얼마나 자주 몇 번 듣는 말에 대해 들어주지 못하고 중간에서 그만하라고 말하였던가! 끝까지 들어주는 것이 진정한 경청이다.

경청은 논쟁을 하지 않는 것이다. 진정한 경청은 논쟁이나 비판을 하지 않는다. 경청할

때 변명을 하지도 않는다. 경청은 그저 들어주는 것이다. 싸운다면 그것은 경청하지 않는다는 의미이다. 물론 토론을 하는 것이 경청을 안 하는 것이라는 말은 아니다. 그러나 결국 경청한다면 논쟁이나 싸움을 할 수 없다. 예를 들어 변호사나 상담가는 자신에게 찾아오는 사람에게 논쟁하겠는가! 아니다. 그들의 억울함을 들어준다. 그들의 편에서 들어준다. 그들과 싸우려고 하지 않는다. 도와주려고 잘 들어주고 필요한 것만 질문할 뿐이다. 그러므로 진정한 경청은 상대를 위하는 것이며, 그들에게 유익되게 하는 것이다. 변호사나 상담가처럼 말이다. 경청은 논쟁이 아니라 들어주고 도와주는 것이다.

경청은 딴 생각을 하지 않는 것이다. 나는 경청하면서 이어서 내가 무슨 말을 할까를 생

각할 때가 있다. 들어주고 그에 대한 반응을 해야 하는데, 내가 할 말을 생각하고 있는 것이다. 이것은 잘못된 태도이다. 눈과 귀와 얼굴은 들어주는 것처럼 보이지만 생각은 다른 생각을 하는 것은 진정한 경청이 아니다.

경청을 잘하는 것은 상대를 살리는 일이다. 사람들은 말을 들어줄 사람을 찾는다. 누군

가 들어주는 사람을 찾으면 그 사람은 말하고 그 말로 인해 회복이 일어난다. 선교사들은 하고 싶은 말이 많이 있다. 누군가 자신의 이야기를 들어주기를 바란다. 특별히 외딴곳에서 혼자 일을 하기에 누군가가 자기 일을 알아주었으면 하는 마음이 있다. 물론 하나님이 다 알아주시지만, 그러나 사람에게도 자신에게 숨겨진 사역을 드러내고 싶어한다. 그래서 선교사를 도와주고 회복케 하는 것은 선교사의 이야기를 들어주는 것이다.

그러므로 교회는 선교사들이 선교 보고할 수 있는 장을 마련해주어야 한다. 그래서 한국에 돌아오는 선교사들에게 선교 보고 할 수 있는 기회를 주어야 한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한국교회는 선교사의 보고의 시간을 마련해 주지 않을 뿐 아니라 선교사의 말에 귀를 잘 기울이지 않는다.

선교사를 케어하는 것 중의 중요한 것은 선교 보고를 들어주는 것이고, 그들을 디브리핑 해주는 것임을 기억해야 한다. 그들의 아픔을 잘 들어 줄 때 그들은 회복할 수 있다.

선교사만이 아니다. 우리의 일상에서 누군가는 자기를 알아주기를 바란다. 만약 가 잘 들어주는 사람이라면 는 사람을 도와주는 사람이 된다. 나는 사람을 회복시켜주는 사람이 된다. 평화의 사람이 되는 것이다. 그러기에 우리는 잘 들을 줄 알아야 한다.

보통 사역자들은 말을 많이 하는 것이 사역이라고 생각한다. 잘 가르치고 설교를 잘하는 것이 사역이라고 생각한다. 물론 그것이 사역이다. 그러나 더 깊은 사역, 더 깊은 치유의 효과는 들어주는 데에 있다. 그런 면에서 일면 설교자의 설교를 잘 들어주는 교인은 설교자들을 위한 사역을 하고 있는 것일 수도 있다. 설교를 적극적으로 듣는 성도, 교수의 가르침을 잘 듣는 학생은 자신을 위할 뿐 아니라 상대를 도와주고 새롭게 하고 힘을 주는 일을 하고 있는 것이다.

5. 마지막으로 SYIS 교재에서 나오는 경청에 대한 몇 가지 교훈을 정리해 본다.

1) 경청은 타인에 대한 나의 사랑을 측정할 수 있는 방법이다. 사랑한다면 경청을 해야 한다는 것이다.

2) 경청은 고된 일이다. 그런 의미에서 경청은 사역이다. 경청은 사람을 살리는 일이다. 말 잘하는 것보다 잘 들어주는 사람이 되는 것이 정말 중요하다는 것을 배웠다. 우리들도 말 잘하는 것보다 잘 들어주는 사람이 되도록 해야 한다. 그것이 성숙한 성도의 모습이기 때문이다.

3) 하나님도 우리의 요구를 경청하고 계신다. 하나님이 우리의 말을 들어준다는 것은 참으로 위로와 힘이 된다. 하나님이 우리의 소리를 들어주시는 것처럼 우리도 다른 사람의 말을 들어주어야 한다.

4) 몇 가지 경청의 기술이 있다.

경청할 때 주의를 산만하게 하는 것들을 속히 정리한다.

집중해서 주의를 기울인다.

적절한 눈 맞춤을 유지한다. 딴청 피우지 않는다.

목소리의 톤에 유의한다.

필요에 따라 앉도록 자리를 안내한다.

말을 시작하도록 초청한다.

공감을 보이며 반응한다.

적절하게 지지를 나타낸다.

간헐적으로 질문한다.

이해를 분명히 하기 위해 당신이 들은 말을 다시 되풀이 해서 말해보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