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리 메뉴

선교교육 연구원(IMER)

오늘의 말씀 2024년 4월 22일(월) 본문

성경공부, 설교/말씀묵상(QT)자료

오늘의 말씀 2024년 4월 22일(월)

후앙리 2024. 4. 21. 23:31

5 예수께서 그 곳에 이르사 쳐다 보시고 이르시되 삭개오야 속히 내려오라 내가 오늘 네 집에 유하여야 하겠다 하시니

6 급히 내려와 즐거워하며 영접하거늘

10 인자가 온 것은 잃어버린 자를 찾아 구원하려 함이니라(19)

 

+ 말씀 설명

삭개오 이야기다. 삭개오는 세리장이었다. 그는 동족들의 세금을 탈취하여 부자로 살았다. 그러나 그는 동족들로부터 외면을 받았고 키가 적어 컴플랙스가 있었을 것이다.

이처럼 외로운 삶을 살다가 예수님이 지나가신다는 말을 듣고 돌무화과 나무에 올라가 예수님을 만나보고자 하였다. 그를 보신 예수님은 내려오라고 하시고 삭개오의 집에 머물겠다고 하셨다. 삭개오는 머무시겠다는 말씀에 너무 기뻐하여 집에 정성껏 영접하였다. 예수님은 그의 집에 구원이 이르렀다고 하시고 아브라함의 자손이라 하시면서 인자(예수님)가 오신 것은 삭개오처럼 잃어버린 죄인을 구원하시는 것이라고 하셨다.

(예수님을 영접한 삭개오는 죄를 회개하고 소유의 절반을 이웃과 나누고 도둑질한 것은 네 갑절로 갚겠다고 하였다).

 

+ 묵상과 적용

나도 자격이 없지만 삭개오 처럼 구원받은 것을 인정하며 받아들이는가?

구원의 감격으로 어떤 감사의 표현을 하겠는가?

 

+ 선교적 실천

우리 교회가 구원받은 공동체로서 이 사회에 환원해야 하는 것은 어떤 것이 있는가?

 

+ 오늘의 기도

1. 예수님을 구주로 영접하고 죄에서 떠나 구원의 은혜에 감사하며 살게 하소서.

2. 콜롬비아 기독교인들이 지역사회의 핍박과 탄압 속에서도 신실하게 신앙을 키워 나가고, 수많은 명목상의 기독교인들이 복음으로 인해 변화된 새 삶을 경험하고 지역사회에 소금과 빛의 역할을 감당하도록

 

+ 성경 본문(19)

1 예수께서 여리고로 들어가 지나가시더라

2 삭개오라 이름하는 자가 있으니 세리장이요 또한 부자라

3 그가 예수께서 어떠한 사람인가 하여 보고자 하되 키가 작고 사람이 많아 할 수 없어

4 앞으로 달려가서 보기 위하여 돌무화과나무에 올라가니 이는 예수께서 그리로 지나가시게 됨이러라

5 예수께서 그 곳에 이르사 쳐다 보시고 이르시되 삭개오야 속히 내려오라 내가 오늘 네 집에 유하여야 하겠다 하시니

6 급히 내려와 즐거워하며 영접하거늘

7 뭇 사람이 보고 수군거려 이르되 저가 죄인의 집에 유하러 들어갔도다 하더라

8 삭개오가 서서 주께 여짜오되 주여 보시옵소서 내 소유의 절반을 가난한 자들에게 주겠사오며 만일 누구의 것을 속여 빼앗은 일이 있으면 네 갑절이나 갚겠나이다

9 예수께서 이르시되 오늘 구원이 이 집에 이르렀으니 이 사람도 아브라함의 자손임이로다

10 인자가 온 것은 잃어버린 자를 찾아 구원하려 함이니라

 

+ 회개는 죄를 돌이키는 행동으로 나타난다.

한국교회는 삭개오를 통해 진정한 회개와 믿음에 대해 배워야 한다. 삭개오와 같지 않아 한국교회는 세상에서 인정을 받지 못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삭개오와 같지 않다는 것은 잘못된 신앙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삭개오의 회개는 잘못한 것을 되돌려주는 회개였다. 말로만 죄를 자복하는 것이 아니라 훔친 것이 있다면 되돌려주는 것을 포함하는 회개였다. 입술의 고백만이 아니라 잘못한 것에 대해 보상을 해주는 행동이 따라오는 것이 삭개오의 회개였다.

한국교회는 신앙을 믿음의 고백으로 끝나버린 경우가 많다. 믿음의 행동을 보여야 한다고 말은 하지만 행동이 따라주지 않는 고백을 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것으로 인해 많은 불신자들이 교인들의 행동 때문에 실족하는 경우가 커진 것이다.

바울이 믿음의 고백을 강조했고, 야고보가 믿음의 행위를 강조했다면, 우리 한국교회는 이제는 믿음의 행위를 강조해야 할 때가 되었다. 믿음의 고백을 넘어 믿음의 행동을 보여야 할 때라는 것이다. 야고보가 말했던 것처럼 믿음의 행동이 없는 믿음의 고백은 헛된 것이라는 사실을 깨달아야 한다. 믿음의 행위가 없는 믿음은 잘못된 신앙관임을 알아야 한다.

믿음의 행위에는 항상 따라오는 것이 있다. 그것은 바로 희생이나 손해. 고생이나 힘듦이다. 이것이 없이는 믿음의 온전한 행위는 없다.

한국교회는 기도의 응답을 상당히 많이 강조한다. 그러나 기도의 응답이 어떤 응답인가를 살펴볼 때는 부끄럽지 않을 수 없다. 주님은 먼저 그의 나라와 의를 구하라고 하였다. 그런데 한국교회는 그의 나라와 의가 아니라 우리의 나라와 의를 구한다. 그리고 그 우리의 나라와 의를 구한 것에 대한 응답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는 사실이다. 그러므로 기도의 응답은 확실하지만 어떤 기도를 했고 어떤 기도의 응답을 받았는지에 대해서 엄밀하게 책크할 필요가 있다.

하나님의 나라와 의를 구하기 위해서는 우리가 먼저 희생과 손해를 보아야 한다. 그것이 없이는 하나님의 의가 이루어지지 않는다. 그러나 한국 교회의 기도의 응답은 자신의 나라와 의, 즉 성공, 소유를 얻음, 건강함, 이런 것들이다. 이런 것들에 대한 응답에 초점을 맞추다 보니 기도의 참된 응답인 하나님 나라와 의에 대한 응답이 부족하다. , 하나님 나라와 의에 대한 기도의 응답을 받는다는 것은 희생을 받았다는 것을 의미한다고 했다. 그러므로 바른 기도 응답은 성공이 아닌 실패, 돈을 버는 것이 아닌 잃어버림, 명예를 얻는 것이 아닌 명예의 상실이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참된 기도의 응답은 얼마나 많이 손해를 받았는가에 대한 것이다. 믿음의 행위도 얼마나 희생을 받았는가에 대한 것이다. 그래서 한국교회는 희생해야 한다. 손해를 보아야 한다. 어쩌면 성공이 아닌 실패를 가져와야 한다. 성장이 아닌 쇠퇴를 가져와야 한다는 것이다. 교회의 성장과 부흥을 이런 관점에서 본다면, 교회의 실패가 결코 저주가 아닌 복이 될 수도 있다는 것이다. 나의 건강의 약함이 복이 되고, 나의 세상에서의 가난이 믿음의 바른 행위로 나타날 수 있다는 것이다.

참된 회개는 믿음의 행위를 가져와야 하는 것을 기억해야 하며 동시에 희생과 손해가 믿음의 행위라는 것을 잊어서는 안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