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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교교육 연구원(IMER)

오늘의 말씀 2024년 4월 9일(화) 본문

성경공부, 설교/말씀묵상(QT)자료

오늘의 말씀 2024년 4월 9일(화)

후앙리 2024. 4. 9. 05:40

8 주인이 이 옳지 않은 청지기가 일을 지혜 있게 하였으므로 칭찬하였으니 이 세대의 아들들이 자기 시대에 있어서는 빛의 아들들보다 더 지혜로움이니라(16)

 

+ 말씀 설명

어떤 주인에게 종(청지기)이 있었다. 이 종은 청지기로서 바르지 못하였다. 주인의 것을 낭비 하였던 것이다. 이 소식을 들은 바르게 정산하여 보고하라고 주인은 종을 불러 따져 물었다. 종은 속으로 만약 해고를 당하면 먹고 살 것이 걱정이 되었다.

그래서 돌아가 주인에게 빚진 자들을 불러서 탕감하여 주었다. 나중에 이 직장을 잃으면 그들에게 도움을 받고자 하는 속셈이었다.

예수님께서 이 비유를 말씀하시면서 종의 지혜로움에 대한 칭찬을 하였다. 먹고 살기 위해 미리 준비하는 지혜가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 말씀은 종의 지혜에 대해 강조한 말씀이지 종이 바른 사람이라고는 하지 않으셨다. 예수님은 이 종에 대해 옳지 않은 청지기라고 표현하셨다. 그러면서 하나님의 자녀들은 이 종보다 더 지혜로워야 한다고 말씀하셨다. , 이 청지기가 잘못된 청지기지만 자기가 먹고 살 문제에 대해 지혜를 발휘한 것처럼 하나님의 자녀들도 살면서 지혜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이 청지기처럼 옳지 못한 행동을 하라는 것이 아니라, 이 비유를 통해 지혜의 중요성에 대해 강조하고 있는 것이다.

하나님의 자녀들도 지혜로워야 한다. 하나님은 하나님의 자녀들에게 먹고 사는 문제를 책임져주시지만 가만 있지 말고 하나님의 자녀로서 하나님이 주신 지혜를 최대한 발휘하며 살아야 한다.

 

+ 묵상과 적용

하나님의 도움과 우리가 해야 하는 이 세상을 살아가는 지혜 사이의 차이를 이해하는가?

내가 신앙인으로서 지혜롭게 행동하지 못하는 부분은 무엇인가?

 

+ 선교적 실천

우리 교회 공동체가 하나님이 주신 지혜를 잘 활용하기 위해서 이 세상에 적극적으로 해야 하는 선한 행위는 어떤 것이 있는가?

 

+ 오늘의 기도

1. 지혜로운 하나님의 자녀가 되어 적극적으로 하나님이 주신 지혜를 잘 활용하게 하소서.

2. 아프리카에서 지도자와 국민들이 하나되어 정치, 경제적 불안 요소들을 해결해 나가고, 빈곤과 질병으로 고통받고 있는 아프리카인들을 향한 지원과 협력들이 줄어들지 않도록

 

+ 성경 본문(16)

1 또한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어떤 부자에게 청지기가 있는데 그가 주인의 소유를 낭비한다는 말이 그 주인에게 들린지라

2 주인이 그를 불러 이르되 내가 네게 대하여 들은 이 말이 어찌 됨이냐 네가 보던 일을 셈하라 청지기 직무를 계속하지 못하리라 하니

3 청지기가 속으로 이르되 주인이 내 직분을 빼앗으니 내가 무엇을 할까 땅을 파자니 힘이 없고 빌어 먹자니 부끄럽구나

4 내가 할 일을 알았도다 이렇게 하면 직분을 빼앗긴 후에 사람들이 나를 자기 집으로 영접하리라 하고

5 주인에게 빚진 자를 일일이 불러다가 먼저 온 자에게 이르되 네가 내 주인에게 얼마나 빚졌느냐

6 말하되 기름 백 말이니이다 이르되 여기 네 증서를 가지고 빨리 앉아 오십이라 쓰라 하고

7 또 다른 이에게 이르되 너는 얼마나 빚졌느냐 이르되 밀 백 석이니이다 이르되 여기 네 증서를 가지고 팔십이라 쓰라 하였는지라

8 주인이 이 옳지 않은 청지기가 일을 지혜 있게 하였으므로 칭찬하였으니 이 세대의 아들들이 자기 시대에 있어서는 빛의 아들들보다 더 지혜로움이니라

9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불의의 재물로 친구를 사귀라 그리하면 그 재물이 없어질 때에 그들이 너희를 영주할 처소로 영접하리라

10 지극히 작은 것에 충성된 자는 큰 것에도 충성되고 지극히 작은 것에 불의한 자는 큰 것에도 불의하니라

11 너희가 만일 불의한 재물에도 충성하지 아니하면 누가 참된 것으로 너희에게 맡기겠느냐

12 너희가 만일 남의 것에 충성하지 아니하면 누가 너희의 것을 너희에게 주겠느냐

13 집 하인이 두 주인을 섬길 수 없나니 혹 이를 미워하고 저를 사랑하거나 혹 이를 중히 여기고 저를 경히 여길 것임이니라 너희는 하나님과 재물을 겸하여 섬길 수 없느니라

 

+ 언행 일치: SYIS(전인적 대인관계 기술 혁신 워크숍) 참가 후기1

내가 주로 하는 사역은 선교를 가르치는 강의를 하는 일이다. 강의할 때 나는 가능하면 나의 삶과 일치된 내용을 전하고자 한다. 때로는 나의 삶이 강의 내용과 일치하지 않을 때가 있다. 그럴 때는 그렇게 살지 못한다고 고백하면서 그래도 우리가 이런 기준을 가지고 살아야 하지 않겠느냐는 말로 가르치며 도전한다. 그리고 나도 모르게 가끔은 나의 행동과 상관없는 가르침을 하고 있을 때도 있다.

사람은 누구나 가면을 쓰고 산다. 가면이란 나쁜 의미도 있지만 좋은 의미에서의 가면도 있는데, 그 좋은 의미의 가면은 자신이 가진 직책, 혹은 일을 감당하는 것이다. 자신이 가진 직책, 즉 목사라면 목사의 직책을 가지고 사는데 그것이 가면이 된다는 것이다. 목사라는 직책의 가면을 써야 한다. 목사로서 해야 할 직무가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 목사의 직무를 집에서도 동일하게 할 수는 없다. 집에서 목사가 되어서는 안 된다. 집에서는 가장이 되어야 한다. 목사만이 아니라 사회에서 갖는 모든 직책들이 다 이와같이 가면을 쓰고 감당하는 것이다. 물론 집에서는 가면을 벗어야 한다. 한편으로 가장이라는 가면을 쓰기도 한다. 가장으로서 역할을 할 때 나타나는 가면이다. 어떻든 우리가 사회에서 하는 가면을 써야만 한다. 선교를 가르치는 강사의 일도 가면을 써야 한다.

그러나 이번 SYIS에서 리테이터(훈련자, 촉진자, 중계자)로서 내가 하는 역할은 가면을 벗지 않으면 안 되는 그런 역할이었다. 훈련에서 내가 하는 인도(강의, 가르침)는 그냥 인도자 아니라 나의 삶의 본래의 모습이 나타나야 한다는 것이다. 나의 삶과 퍼실리테이터로서의 역할이 달라서는 안 된다는 사실이다. 예를 들면, 퍼실리테이터는 스마일의 표정을 하면서 훈련생들(참가자들)의 모든 요구에 반응을 해야 하는데, 내 진심에서 나오는 반응이어야 한다는 것이다. 훈련생들에게 친절하게 대해야 하는데, 그 친절함이 평소에 친절할 때만 나타날 수 있는 그런 친절함이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평소와 다른 모습을 보일 수는 없다는 것이다. 쉬는 시간에 훈련생들과 같이 교제할 때나 훈련을 인도할 때(강의할 때)나 같아야 한다는 것이다. 평소에 웃지 않으면서 강의할 때만 웃을 수도 없고, 평소에 친절하지 않으면서 강의할 때만 친절할 수 없는 그런 퍼실리테이터의 역할이었다는 것이다. 평소에 화를 쉽게 내거나 모든 일이 부정적이거나 사람들의 표현에 대한 반응(reaction)을 잘 못 한다거나 따뜻하지 못한 사람이라면 그 퍼실리테이터로서의 역할을 감당하기 어렵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러므로 집에서나 다른 곳에서의 모습을 숨길 수 없는 역할을 하는 것이 퍼실리테이터의 역할이라는 것을 배운 것이다. 나는 이 역할을 하면서 많은 것을 생각해야 했다. 긍정적으로 살라, 감사하라, 혹은 기뻐하라는 가르침을 한다면 평소에 그렇게 살아야만 할 수 있는 역할이었다는 것을 마음에 새여야만 했다. 그런 면에서 퍼실리테잌터로서의 역할을 하는 것이 선교에 대한 강의를 하는 것이나, 설교를 하는 것보다도 훨씬 더 힘들었다. 내면의 갈등과 생각이 많은 시간이었다. 그러면서 내가 다짐한 것은 나의 삶이 진정한 퍼실리테이터가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퍼실리테이터로서의 가면을 벗어던져야 진정한 퍼실리테이터가 될 수 있다는 것이다.

나는 이번에 많은 도전을 받았다. 누구보다도 많이 배웠다. 그리고 기도와 많은 생각과 결단을 하게 되었다.

우리 주님은 삼위일체 하나님이시다. 삼위는 역할은 다르지만 하나가 되는 것이 삼위일체다.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하나 됨은 바로 사랑이라는 사실을 또한 깨달았다. 삼위일체의 하나님으로부터 나는 평소의 나 자신과 나의 역할을 하는 나 자신의 일치를 배워야 한다는 것이다. 삼위의 하나님이 일체가 되는 것처럼 나도 나의 삶이 모든 영역에서 하나, 즉 동일해야 한다는 것이다. 가능하면 가면을 벗고 사는 모습을 보여야 한다는 것이다.

그리스도인들도 신앙(믿음의 고백)과 삶의 행실이 일치가 되어야 한다. 이제는 우리가 고백하는 신앙이 삶에서 그래도 반영되도록 살아야 한다. 하나님이 하나님의 자녀들은 용서하면서 살아야 한다고 했으니 용서하는 삶을 반드시 살아야 한다. 사랑도, 감사도 마찬가지다. 그것이 진정한 일치이며, 그것이 가면을 벗는 것이다. 그것이 신앙인의 참 모습인 것이다.